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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눕는다 : 김사과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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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17년 08월 15일
  • 쪽수 : 304
  • ISBN : 9788954646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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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는 김사과만의 남다른 시각!

독특한 개성을 지닌 젊은 작가 김사과의 두 번째 장편소설 『풀이 눕는다』. 독자들의 폭넓은 지지와 오랜 기다림을 등에 업고 8년 만에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다. 개정판 출간을 위해 저자 스스로 작품 전반을 개고하는 과정을 거쳤고, 그 결과 문장의 흐름과 장면 전환이 더욱 매끄러워졌으며 독자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던 명장면들의 짜임새 또한 한층 세련되어졌다.

자본에 짓눌린 세계에 의해 재단되기를 거부한 젊은 예술가들의 일탈과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누군가에게는 ‘루저’나 ‘인간쓰레기’로 보일지도 모를 삶이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빛나는 순간일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등단 이래 문학적 관습을 파괴하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평단과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믿음직한 작가임을 인정받았다.

출판사 서평

이것은 쓰레기 같은 삶인가,
우리가 차마 꿈꾸지 못한 낭만인가?

김사과의 두번째 장편소설 『풀이 눕는다』가 8년 만에 개정판으로 재출간된다. 자본에 짓눌린 세계에 의해 재단되기를 거부한 젊은 예술가들의 일탈과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누군가에게는 ‘루저’나 ‘인간쓰레기’로 보일지도 모를 삶이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빛나는 순간일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내 보였다. 등단 이래 문학적 관습을 파괴하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평단과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김사과는 이 소설을 통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믿음직한 작가임을 인정받게 되었다.
독자들의 폭넓은 지지와 오랜 기다림을 등에 업고 이루어진 이 개정판 출간을 위해 김사과 스스로 작품 전반을 개고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문장의 흐름과 장면 전환이 더욱 매끄러워졌으며, 독자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던 명장면들의 짜임새 또한 한층 세련되어졌다. 김사과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전 판과 달라진 점들을 찾아 읽는 즐거움이 상당한 이유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김사과의 날카로운 진단과 냉철한 전망은 작품 저변에 건재하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세상을 보는 김사과만의 남다른 시각은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감탄을 자아낸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금 이 순간만을 바라보겠다는 약속,
그게 바로 사랑이다

어디에도,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적응하지 못한 “실패한 소설가”인 ‘나’는 하루종일 내키는 대로 거리를 걸을 뿐이다. ‘나’는 부자 여동생에게 빌붙어 어울리지 않게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가족과 부대끼며 사는 것이 괴롭다. ‘나’는 돈을 벌 능력이 없고, 그러려고 노력하면 죽을 것만 같은 ‘인간쓰레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국 아무것도 써내지 못할 거라는 절망 속에서 길을 걷던 어느 날,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 한 남자의 뒷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온다. 굽은 채 천천히 흔들리는 그의 등은 ‘나’에게 이상한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멀어져가고 있었다. 난 멍하니 선 채 꿈의 한 조각이 사라지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 우리의 삶이 겹쳐졌던 유일한 조각이, 이렇게 쉽게 사라져버리다니. 그런 일은 흔히 벌어지는 일이 아니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난 그 조각을 움켜잡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 전에, 손을 뻗어야 한다. 그 조각에 찔려 상처를 입게 되더라도.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중요한 건 지금이다. 이, 순간.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그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25쪽)

그렇게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나’는 남자를 ‘풀’이라고 부르기로 마음먹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풀을 좋아하고, 그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나’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풀’의 자취방에서 함께 살며 음악을 듣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들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대신 열렬히 서로를 사랑하는 데 시간을 쓰기로 한다. ‘나’에게 ‘안정된 삶’은 사랑의 반대말이다. 사랑은 책임이 아닌 살아 있다는 것을 뜻하고, 살아 있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가 아닌 이 순간만을 바라본다는 뜻이므로. 또한 그들은 기성 사회로부터 예술성을 인정받기 위해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예술을 하길 원하지 않는다. 어쩌다 ‘나’가 문학상 시상식에 초대받거나 ‘풀’의 그림이 전시된 갤러리를 방문하게 되어도 그들은 그곳의 질서를 거부하고 기어이 레지스탕스로 돌변하여 난동을 부린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가치를 철저히 배격하는 삶을 사는 그들이기에, 세상이 알아봐주지 않았던 서로의 예술에 내재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돈은 어디에서든지 구할 수 있는 거잖아. 돈은 내 동생한테도 많아. 엄마 아빠한테도 있어. 네 작은아버지한테도 많겠지. 하지만 사랑은 여기밖에 없어(난 내 가슴을 가리켰다). 돈은 똑같지. 누구한테나 완전히. 하지만 사랑은 유일해. 우리는 돈보다 훨씬 더 굉장한 걸 가지고 있어. 돈은 아무한테서나 뜯어내면 돼.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돈이라는 건 사실 은행에서 아무렇게나 찍어내는 종이 쪼가리일 뿐이잖아? 왜 그딴 것을 얻으려고 힘들게 일하고 시간을 빼앗겨야 해? 어차피 돈이란 건 있는 사람에겐 영원히 있고 없는 사람에겐 영원히 없는 거야. 그러니까 있는 사람들한테 뜯어내면 되는 거야. 어차피 너무 많아서 다 쓰고 죽지도 못할 텐데.(55쪽)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현실을 살아가기에는 너무 낭만적이고,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아무리 몸부림쳐도 발붙이고 있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수중의 돈이 떨어지고 생활고가 현실로 육박해오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숙명처럼 삐걱거리기 시작하는데……

“너는 파괴당할 거야. 짓밟힐 거야. 너는 절대로 못 이겨.
그러니까, 너는 절대로 지면 안 돼.”


예술을 잠식한 자본주의적 사고에서 탈피한 순수한 눈으로 서로의 재능을 알아본 ‘나’와 ‘풀’. 돈을 버느니 “사랑 안에서 굶어 죽겠다”고 당차게 선언한 이들의 사랑이 견고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절망감만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이 비주류의 인간들은 닥쳐올 파국을 예견하고서도 스스로 “삶을 불확실성 속으로 완전히 밀어넣”으려 발버둥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너는 저게 싫어. 전혀 원하지 않아. 하지만 이미 너도 우리들 중의 하나야. 그건 너나 내가 정하는 게 아냐. 그냥 이렇게 되어버린 거야. 니가 아무리 아니라고 주장해도 소용없어. 세상은 이따위로 생겨먹었어. 세상은 너 혼자 아름답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아. 그렇게 되면 자기들이 무너져내리고 마니까. 그러니까 막으려고 들 거야. 무슨 짓을 해서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가 저것들을 사랑하게 만들려고 할 거야.(148쪽)

살아남기 위해 이 세계를 지속시키는 부속품으로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아이러니에 익숙해진 우리가 보기에 이들의 추락은 오히려 고결하다. 우리와 똑같은 두려움을 안은 채로 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려는 강단, 문제는 패배주의에 물든 젊은이들이 아니라 그들을 낙담시킨 사회구조에 있다는 당당한 항변. 이로써 자신이 속한 세계를 용감하게 거부해버리는 이 인물들은 여전히 빛나는 젊음을 자랑하며 소설 속에 아름답게 살아 숨쉬고 있다.

목차

PART …… ONE _007
PART …… TWO _087
PART …… THREE _151
PART …… FOUR _265
PART …… FIVE _299

본문중에서

온 세계가 돈에 짓눌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었다. 예외는 없었다. 모두가 그 흐름에 휩쓸려야 했다. 화가건 회사원이건 택시기사건 예외가 없었다. 아니 화가라면 더욱더 그래야 했다. 왜냐하면 예술가란 가장 예민한 영혼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세상이 쏟아내는 말을 듣는 자들이었다. 아니 그게 그들의 임무였다. 그들이 어리고 섬세할수록 더욱더 그랬다. 누구보다도 더 멋진 포즈로 돈에 짓눌릴 것. 그게 그들이 맡은 역할이었다. 즉 자칭 예술가로서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57쪽)

아무도 공고를 나온 화가의 그림 따위 보려고 하지 않는다. 반짝거리는 대학의 이름이나 갤러리의 이름이 없으면 아무도 그런 그림 따위 쳐다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림을 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모두가 이력서에 집착하겠는가. 이력서가 좋으면 그림도 좋고 이력서가 후지면 그림도 후지다. 이력서가 좋으면 가능성이 있고 이력서가 나쁘면 그렇지 않다. 그건 사람들이 이력서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력서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판단하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110쪽)

바보같이 살면 좀 안 돼? 꼭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해? 그냥 꿈속에서 살면 좀 안 돼? 어떤 건 그냥 아름답다고 하면 안 돼? 아름다운 거 맞잖아? 느껴지잖아? 거짓말이 아니잖아? 그런 삶이 정말 그렇게 나쁜 거야? 그렇게 살면, 사람들 말대로 정말 비참하게 살다가 고통 속에서 외롭게 죽어가는 거야? (…) 나도 알아. 아름다운 것들은 박물관과 백화점에 있지. 하지만 말이야,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게 있어. 박물관이나 백화점은 절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지 못해. 단지 아름다운 것들을 가져다놓은 것뿐이야. 단지 그것뿐이잖아. 하지만 그 사람들은 말이야. 그때 내가 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가진 아름다움은 어디선가 훔쳐온 게 아니었어. 그 아름다움은 그 사람들 속에서 태어난 거였어.(145~146쪽)

이건 사는 게 아니야. 벌을 받는 거라고. 근데 왜 내가 이런 벌을 받아야 돼? 왜? 나 진짜 열심히 살았단 말이야. 아니 열심히 산 건 아닐지도 몰라. 그래도 잘못한 건 없잖아? 이런 벌을 받을 정도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내가 그림 그린 게 잘못이야? 내가 하고 싶은 거 한 거, 그게 잘못이야? 난 진짜 모르겠어. 내가 그래, 씨발 그림에 재능이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열심히 했단 말이야. 그런데 왜 이래? 왜 앞이 안 보여? 왜 이렇게 살아야 돼? 그래 나는 돈도 없고 머리도 나쁘고 재능도 없어. 그러면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거야?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이렇게 사천원짜리 알바나 하면서 평생 고시원에서 살아야 되는 거야?(280~281쪽)

그때처럼, 그와 나의 순간이 하나로 겹쳐졌다. 이어 아주 많은 것들이 잊혀졌고, 또 되돌아왔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때 느꼈던 것들. 그 순간, 처음으로 우리의 순간이 하나로 겹쳐졌던 순간. 그러자 순식간에 삶이, 사랑이, 그리고 기쁨이 되돌아왔다. 난 알았다. 이 감정이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걸. 이 믿을 수 없는 두근거림이 행복한 결말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매번 같은 실망 속에서 깨어나리라는 걸. 하지만 상관없었다. 아무리 많은 실망도 이 두근거림을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난 살아 있으니까. 난 매번 더 깊이 후회할 것이고, 그러나 또다시 기적을 바랄 것이다.(288~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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