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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수업 + 동물의 사생활과 그 이웃들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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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의 사생활과 그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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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품의 분류

    책소개

    숲의 이야기꾼, 동물의 마음을 읽다!

    동물들의 머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학자들이 오랫동안 주장했듯 정말로 우리 인간만이 다채로운 감정을 만끽하는 것일까? 인간만 유일하게 의식 있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나무 수업』의 저자 페터 볼레벤은 이 책에서 동물의 감정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 통역사이자 동물 세계의 자잘한 퍼즐 조각을 맞추어 그들의 비밀을 관찰할 수 있게끔 하는 길잡이를 자청한다.

    이 책은 나무에 자신의 심상을 투영한 감성적인 에세이가 아니라, 숲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전문가인 저자의 이력이 묻어나 있고 숲 관리에 있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독일의 성공과 실패의 자취가 잘 드러난 뛰어난 논픽션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나무의 삶은 놀랄 만큼 이상적인 인간의 삶과 닮아 있고, 인간이 삶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밀려난 나무가 벌이는 생존 투쟁은 눈물겹다. 이를 통해 저자는 나무와 숲을 다시금 우리 삶의 영역에 되살릴 것을 강조한다.

    출판사 서평

    독일 최고의 숲 전문가가 들려주는 나무의 사생활과 그 이웃들

    지금 숲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나무도 감각과 감정, 기억을 갖고 있다고? 나무들이 숲에서 서로 대화하고 소통한다고? 그들은 어린 세대를 사랑하고 보살필 뿐만 아니라 늙고 병든 이웃을 돌보기도 한다. 나무 한 그루가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주변의 다른 나무에게 위험을 알리고, 이 경고를 받은 나무들은 서둘러 대비하여 자신을 방어한다. 30년 가까이 나무와 친구로 지내 온 저자 페터 볼레벤이 들려주는 나무와 숲의 비밀!

    ◈ 친환경 숲 전문가, 나무와 숲의 비밀에서 살아가는 법을 보다
    나무는 우리가 문밖을 나서면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자연으로(가로수), 도시를 떠나 마음의 안식을 얻고 싶을 때 떠올리는 대자연의 숲으로 존재한다. 도시의 조경이나 미관, 녹지를 위한 인공적인 자연물, 목재, 마음의 안식처 등 인간에게 필요한 대상 말고 나무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독일의 나무/숲 전문가인 페터 볼레벤Peter Wohlleben이 30년간 나무를 돌보고 숲을 관리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감동적인 에세이에서 우리가 마치 정물처럼 인식했던 나무의 삶과 비밀이 밝혀진다. 지난 해 독일에서 출간된 이래 이 책은 1년 가까이 베스트셀러에 머물렀는데, 환경/생태 에세이로는 매우 이례적이다. 저자는 20년 이상 주 정부 산림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어린 시절부터 꿈꿔 온 친환경 숲을 실현하고자 농약과 대규모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숲을 조성하고 관리하고 있다.
    이 책은 나무에 자신의 심상을 투영한 감성적인 에세이가 아니라, 숲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전문가인 저자의 이력이 묻어나 있고 숲 관리에 있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독일의 성공과 실패의 자취가 잘 드러난 뛰어난 논픽션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나무의 삶은 놀랄 만큼 이상적인 인간의 삶과 닮아 있고, 인간이 삶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밀려난 나무가 벌이는 생존 투쟁은 눈물겹다. 이를 통해 저자는 나무와 숲을 다시금 우리 삶의 영역에 되살릴 것을 강조한다. 나무와 숲에서 조용하지만 역동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고독과 우정, 경쟁과 연대, 생존과 소멸이 뒤섞인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이다.

    ◈ 나무는 느끼고 기억하고 대화한다
    나무의 뿌리에는 경험과 기억을 저장하고 그에 따른 대처와 명령을 수행하는 두뇌에 해당하는 기관이 있다. 우열을 가리는 생물 분류학적 고정관념 탓에 이와 같은 나무의 감각, 학습 능력은 그간 부각되지 못했다. 나무도 인간이나 다른 동물처럼 감각을 느끼고 기억을 저장하며 이를 자신의 다른 조직이나 다른 나무에게 전달한다. 곤충이 잎을 갉아 먹으면 나무는 통증을 느끼며 베어 먹힌 자리 주변 잎의 조직이 변한다. 또한 인체처럼 전기 신호를 송출한다. 이런 전기 자극은 수백만 분의 1초 안에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인체와 달리 분당 겨우 1센티미터밖에 가지 못한다. 그래서 애벌레의 입맛을 망치는 방어 물질이 잎에 저장되기까지는 무려 한 시간이 걸린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나무의 각 부위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뿌리에 문제가 생기면 그 정보가 나무 전체로 퍼져 나가고, 나무는 잎을 통해 향기를 발산한다. 그 이후로는 같은 종의 애벌레가 다시 공격을 해 올 경우 곧바로 방어 태세에 돌입할 수 있다. 나무는 이러한 외부 공격의 경험을 향기를 통해 다른 나무들에게 전달한다. 나무들이 곤충이나 가뭄, 기타 위험 정보를 주고받는 숲은 이처럼 일종의 '월드 와이드 웹'인 것이다.
    나무는 사회적 존재이다. 오랜 기간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한 나무는 뿌리를 통해 이웃 나무의 지원을 받거나 서로의 뿌리가 뒤엉켜 하나의 뿌리처럼 결합하는 방식으로 생존할 수 있다. 왜 나무는 자신의 영양분을 다른 동료들과, 그리고 적이 될 수도 있는 다른 개체와 나누는 것일까? 인간 사회처럼 나무 역시 함께하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 그루의 나무는 숲이 아니기에 그 지역만의 일정한 기후를 조성할 수 없고 비바람이나 외부의 불리한 변수에 무대책으로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이 나무 공동체는 나무의 생존에 필수적인 빛을

    동물의 감정, 그 낯선 세계를 발견하다

    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감정이 있을까? 인간의 감정과 그 메커니즘을 둘러싼 비밀조차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은 현 시점에서 동물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기는 쉽지 않다. 최근 동물의 생존권이나 복지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동물권’ 논의가 정치적 의제로도 부상했지만, 동물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현실이 여전히 압도적이며 동물 애호, 보호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동물은 인간에게 시혜적 대상에 머물러 있다. 동물이 인간처럼 고통과 슬픔, 통증을 느끼고 다른 생물 종과 교감을 나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떻게 달라질까?[동물의 사생활과 그 이웃들]은 동물의 감정이 인간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전작[나무 수업]으로 책이 처음 출간된 독일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페터 볼레벤의 신작이다. 30년 넘게 친환경적인 삼림을 조성하고 관리해 온 저자는 숲에서 만난 동물과 집에서 함께 살아온 반려동물을 오랜 기간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깨달은 동물의 감정 세계를 감동적으로 서술한다. 저자는[나무 수업]과 마찬가지로 과감한 의인화와 최신 연구 결과를 쉽게 녹여 낸 서술 방식을 택해 동물의 감정을 우리에게 전하는 통역사이자 동물 세계의 자잘한 퍼즐을 맞추도록 해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의 통역과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반려동물이나 숨어 있는 낯선 동물을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원으로 대하고 그들의 행복과 복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왜 강아지는 고아 멧돼지들을 입양했을까

    동물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인간의 감정에 비해 열등하다고 폄하하는 데는 본능과 무의식에 대한 인간의 뿌리 깊은 오해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의식과 본능을 구분하고 본능을 동물의 속성으로 서둘러 연관 짓고 동물에게서 관찰되는 의식이나 감정의 존재를 입증해 주는 여러 양상은 쉽게 무시해 버린다. 페터 볼레벤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의식과 본능에 의해 작동되며 그 점에 있어서는 동물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예를 들어 본능적 모성애를 뛰어넘는 입양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인간의 경우 동물과 달리 의식적으로 활성화되는 모성애에 의해 입양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빼면 동물에게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며 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동물의 감정이나 본능을 경시하는 태도는 인간의 특권적 지위 상실에 대한 불안과 관련되는 것이다.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각 동물에 대한 오래된 관념과 인간 중심적인 분류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동물의 존재 이유와 의의를 인간에게 이로운가 유해한가로 분류하고 이 분류법에 의거해 그들의 생사를 결정짓기까지 한다. 다람쥐는 유익하고 진드기는 유해한 동물일까? 이러한 분류는 모든 생물과 생태계가 마치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세계관이 아니라면 성립할 수 없다.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저 존재하고 생존을 위해 분투하며 인간의 의도에는 관심이 없다.

    동물도 느끼고 사랑하고 아프다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통증과 고통,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동물의 고통과 통증은 단순한 생물학적 기제가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세대를 내려오며 이어지고 진화 과정에 반영된다. 인간이 사냥하는 방식과 기술의 발전에 맞춰 동물은 생존 방식을 바꾸고,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 무리들은 고통을 느끼며 그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기술을 학습한다. 인간이 시각이 아니라 후각으로 사냥한다면 동물이 진화를 거치며 냄새를 잃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가정은 뼈아픈 대목이다.동물이 인간처럼 행복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왜 인간은 저항감을 느끼는 것일까? 정치인이나 대형 축산업 등의 산업 관계자들, 때로는 과학자들조차 동물의 감정을 간과해 버린다. 저자는 독보적 서술 방식으로 택하고 있는 의인화에 대한 비판에도 이러한 이해관계가 개입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동물을 인간과 비교하는 것이 비과학적이고 몽상적이며 신비적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인간 역시 동물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를 상기한다면 동물과 인간의 비교는 전혀 억지가 아니며 이러한 의인화를 통해서 동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노루와 멧돼지, 까마귀가 나름의 완벽한 삶을 살면서 생을 즐긴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오래된 숲의 낙엽 더미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뒹구는 작은 곤충에게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향한 투쟁에서도 긴밀한 결합을 맺고 있는 동료 나무에게는 가지를 뻗지 않는 우정을 보여 준다.

    ◈ 나무의 치열한 생존 투쟁,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나무는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능력으로 인해 종의 다양성을 유지해 왔다. 너도밤나무는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활용하여 경쟁자들을 내쫓는다. 무턱대고 경쟁자의 수관(樹冠) 속으로 밀고 들어가 그 위로 자신의 가지를 뻗어 상대의 수관을 덮어 버린다. 즉 경쟁자에 비해 우위에 있는 '생태적 니치'를 찾아 경쟁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다. 유럽서어나무는 이러한 너도밤나무의 무시무시한 잠식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늘과 가뭄, 더위에 잘 견디며 끈질기게 생존하여 너도밤나무가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 때 기회를 맞는다.
    먼 곳에서 와서 도심의 가로수가 된 나무는 어떻게 살아갈까? 숲의 '에티켓'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도시의 나무는 빛을 아껴 쓰며 단단하게, 이웃 나무와 더불어 자라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 흥청망청 웃자란 나무는 여기저기 뿌리를 뻗을 틈이 없나 쑤셔 보지만 차도에 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고 각종 관이 묻힌 단단하게 다져진 땅에 도무지 뿌리를 내릴 수 없다. 그러니 여름에 태풍이 불면 가로수들이 우르르 쓰러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절대 고독과 인간 중심적인 환경, 도심의 열기는 나무를 '거리의 아이들'로 만들고 이들은 외롭고 짧은 삶을 견뎌 낸다.
    저자는 우리가 숲 생태계를 필요 이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동물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나무에게서도 불필요한 고통을 덜어 줄 수는 없는지를 고민한다. 나무가 사회적 욕구를 실현할 수 있고, 완벽한 흙을 갖춘 진짜 숲에서 성장할 수 있으며, 쌓은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나무에게 맞는 삶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숲을 주로 나무 공장이나 자재 창고로 취급하는 산림 경영 방식을 비판적으로 체험한 저자에게 숲은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수십만 종의 생물이 생태계를 이루는 곳이며 인간은 물론 전 세계의 다른 자연 공간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추천사

    "나는 나무의 언어, 나무의 사회생활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와 기적에 민감한 예술가와 더불어 그것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페터 볼레벤 같은 탐구자들은 많을수록 좋다.
    - 정현종 / 시인

    숲 이야기에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앞만 보고 달려온 현대인들에게 숲은 영원한 안식처이다. 이럴 때 누군가 옆에서 페터 볼레벤처럼 속삭여 준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 우종영 / 나무의사

    볼레벤은 숲 해설가다. 그러나 그는 숲에서 세계 전체를 발견한다.
    - 슈피겔 문학 Literatur Spiegel

    볼레벤은 숲에 영혼을 돌려주었다.
    - 쥐트도이체 차이퉁 Suddeutsche Zeitung

    주목! 극적 사건과 비밀을 둘러싼 가족과 공동체, 사랑과 고뇌, 우정과 경쟁
    주인공: 나무
    사건 장소: 숲
    숨겨진 이웃 세계의 발견! 매혹적인 책.
    - 그린피스 매거진

    숨겨져 있던 위대한 피조물을 명백하게 드러낸 매혹적인 책.
    - 디 벨트 Die Welt

    이 책은 진지한 연구와 오랜 관찰의 결과물이다.
    - 옌스 예센Jens Jessen / [디 차이트Die Zeit]

    볼레벤의 책들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확장해 준다.
    - 데니스 셰크Denis Scheck / [타게스슈피겔Der Tagesspiegel]

    목차

    머리말

    우정
    나무의 언어
    사회 복지
    사랑
    나무들의 복권
    언제나 느리게
    나무의 에티켓
    나무 학교
    함께하면 더 행복해
    물 수송의 비밀
    나무는 나이 앞에 당당하다
    참나무는 약골?
    전문가
    나무일까, 나무가 아닐까?
    어둠의 왕국에서
    이산화탄소 흡입기
    나무 에어컨
    숲은 물 펌프
    내 편이냐 네 편이냐
    집 짓기
    생물 다양성의 모선
    겨울잠
    시간 감각
    성격의 문제
    병든 나무
    빛이 있으라
    거리의 아이들
    번 아웃
    북으로 북으로! 저항력 최고!
    폭풍의 시절
    새 식구
    숲 공기는 건강에 좋다?
    숲은 왜 초록일까?
    사슬에서 풀려나
    바이오 로봇

    감사의 글

    들어가는 글

    쓰러질 때까지 모성애를 발휘하다
    본능은 열등한 감정일까?
    인간에 대한 사랑
    머리에서 불이 반짝반짝
    멍청한 돼지
    감사의 마음
    거짓과 속임수
    도둑을 막아라!
    용기를 내!
    흑백
    따뜻한 꿀벌, 차가운 사슴
    집단 지성
    속마음
    구구단
    그냥 재미있어서
    욕망
    죽음을 넘어서
    이름 짓기
    슬픔
    부끄러움과 후회
    공감
    이타심
    교육
    자식을 독립시키는 법
    야생은 야생이다
    도요새 똥
    특별한 향기
    편리함
    험한 날씨
    통증
    공포
    상류층
    착하고 못됐고
    잠의 요정이 찾아오면
    동물의 신탁
    동물도 나이가 든다
    낯선 세상
    인공적 생활 공간
    인간을 위하여
    마음을 전하다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나가는 글: 한 걸음 뒤로
    감사의 글

    본문중에서

    다람쥐는 우리 인간이 동물 세계를 어떻게 나누고 구분하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다람쥐는 까만 단추 같은 눈망울이 너무나 귀엽고 붉은 색이 도는(갈색-검정색 버전도 있다) 부드러운 털로 덮여 있으며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다. 또 다람쥐가 모아 두고 까먹은 식량 창고에서 이듬해 봄에 어린 나무가 솟아나기 때문에 새로운 숲의 창시자라 불러도 무방하다. 한마디로 다람쥐는 진정으로 유익한 동물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우리가 놓친 것이 있다. 바로 다람쥐가 제일 좋아하는 먹이가 새의 새끼라는 사실이다. 우리 사택 서재 창으로는 그런 사냥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봄에 다람쥐가 나무줄기를 타고 기어오르면 현관 앞 늙은 소나무에 알을 낳은 회색머리지빠귀의 작은 둥지 밑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그러니까 다람쥐는 좋은 동물이 아니라 나쁜 동물인 것일까?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자연의 변덕은 우리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여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좋거나 유익한 것과는 다른 문제다. 우리가 사랑하는 새를 죽이는 다람쥐의 이면 역시 나쁜 것이 아니다. 다람쥐도 배가 고프고 역시나 새끼에게 젖을 먹여 새끼를 키워야 한다.... 다람쥐는 우리의 분류법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다. 그것들은 제 몸과 자기 종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살고자 하는 것이다.
    ('쓰러질 때까지 모성애를 발휘하다' 중에서/ pp.13~15)

    감정을 강렬하게, 또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길은 정말 인간의 길 한 가지밖에 없는 것일까? 진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혹은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일방적이지 않다. 뇌가 정말로 조그만 새들이야말로 꼭 인간의 길이 아니어도 지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공룡의 시대를 거친 후 공룡의 후손으로 인정받는 조류의 진화는 우리와는 다른 방향을 택했다. 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조류는 신피질이 없어도 고도의 정신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DVR(등쪽뇌실능선, dorsal ventricular ridge)이라 부르는 부위가 있어 우리의 대뇌피질과 비슷한 임무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사람들은 층층 구조인 인간의 신피질과 달리 새의 그것은 작은 덩어리이기 때문에 인간과 비슷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까마귀와 무리를 이루어 사는 다른 새들의 지적 능력이 영장류에 버금가거나 심지어 영장류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또한 동물의 감정과 관련해서는 학자들이 과도하게 조심스러운 논리를 펼치며, 명백한 정반대의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절대로 동물의 지적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왜 그러는 것일까? 그냥 (그리고 올바르게) 잘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머리에서 불이 반짝반짝' 중에서/ pp.44~45)

    박새는 애벌레를 잡아먹어 유익하다. 고슴도치는 달팽이를 잡아먹어 유익하다. 달팽이는 채소를 갉아먹어 해롭다. 진딧물은 식물의 즙을 빨아 먹어 해롭다. 그리고 놀랍게도 모든 해충에겐 그것의 갈 길을 가로막는 유익한 곤충이 있다. 하지만 자연을 그런 식으로 나누려면 자동적으로 두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창조자의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정교하게 짜 맞추어 균형 있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설계도 말이다. 둘째 이 창조자는 세상을 완벽하게 인간의 욕구에 맞추어 만들었다. 이런 세계관에선 논리적으로 진드기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물론 나는 그것도 비판하고 싶지 않다. 자연 보호 협회조차 인공 새둥지를 만들어 인간에게 유익한 새를 도와주겠다는 주장을 퍼트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연을 정말로 그런 서랍에 억지로 끼워 넣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은 어떤 서랍에 들어가야 할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명력 넘치는 수백만 종의 생명체가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딱딱 아귀가 맞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인정사정없이 모든 자원을 착취하는 너무나 이기적인 인간 종이 생태계를 파괴한 후 그 생태계와 그곳의 주민들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흑백' 중에서/ pp.8

    현대의 산림 경영은 목재 생산에 주안점을 둔다. 그러다 보니 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다시 새 묘목을 심는 일에만 열중한다.... 매일 수천 그루의 가문비나무와 너도밤나무와 참나무와 소나무를 바라보며 '이것들을 어디에 써먹어야 할까', '이것들의 상품 가치는 얼마나 될까'만 생각하며 살피는 사이 어느덧 나의 시각 역시 나무의 상품 가치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 갇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20여 년 전 우연히 산림 관광 상품으로 서바이벌 트레이닝과 통나무집 투어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그 상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나는 수목장 장지와 원시림 보호 구역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관광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로소 숲을 바라보는 나의 눈도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휘고 옹이 진 나무를 만나면 관광객들은 탄성을 질렀다. 내 눈에는 아무런 상품 가치도 없는 하급 나무였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함께 나무의 몸통과 그것의 품질만 따지던 습관을 버리고 괴상한 모습으로 얽힌 뿌리, 특이한 모양의 나뭇가지, 나무껍질을 덮은 부드러운 이끼에도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여섯 살 때 시작되었던 자연을 향한 나의 무한 애정이 다시금 활활 타올랐다. 그와 더불어 놀랍게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기적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말' 중에서 / pp.7~8)

    왜 나무들은 사회적 존재가 되었을까? 왜 자신의 영양분을 다른 동료들과, 나아가 적이 될 수도 있는 다른 개체들과 나누는 것일까? 이유는 인간 사회와 똑같다. 함께하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나무 한 그루는 숲이 아니기에 그 지역만의 일정한 기후를 조성할 수 없고 비와 바람에 대책 없이 휘둘려야 한다. 하지만 함께하면 많은 나무가 모여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고 더위와 추위를 막으며 상당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고 습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환경이 유지되어야 나무들이 안전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다. 그런데 그러자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 모든 개체가 자신만 생각한다면 고목이 될 때까지 수명을 유지할 수 있는 나무가 몇 그루 안 될 것이다. 계속해서 옆에 살던 이웃이 죽어 나갈 것이고 숲에는 구멍이 뻥뻥 뚫릴 것이며 그 구멍을 통해 폭풍이 숲으로 밀고 들어와 다시 나무들을 쓰러뜨릴 것이다. 또 여름의 더위가 숲 바닥까지 침투하여 숲을 말려 죽일 것이다. 그럼 모두가 고통을 당할 것이다.
    ('우정' 중에서 / pp.14~15)

    나무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알린다. 바로 향기다.... 아프리카의 기린은 우산 아카시아를 먹는다. 아카시아 입장에서 보면 이 대식가가 그야말로 불청객이다. 그래서 아카시아는 이 기린을 쫓아 버리기 위해 기린이 자신에게 입을 대자마자 곧바로 몇 분 안에 유독 물질을 잎으로 발송한다. 그럼 기린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다른 나무에게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바로 옆에 있는 나무를 먹지 않고 굳이 100미터나 뚝 떨어진 곳까지 걸어간 다음 다시 식사를 시작한다.... 잎을 뜯어 먹힌 아카시아는 경고의 가스(이 경우 에틸렌)를 방출하여 주변 동료들에게 여기 적이 왔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 즉시 옆에 서 있던 나무들도 똑같은 유독 물질을 잎으로 내려보내 재앙을 방지한다. 기린은 이미 이런 시스템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수고스럽지만 좀 떨어진 곳까지 가서 아직 경고를 받지 못한 나무의 잎을 뜯어 먹는 것이다. 혹은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가서 잎을 먹는다. 향기의 메시지는 공기를 타고 옆 나무로 전달되기 때문에 바람의 역방향으로 걸어가면 바로 옆에 있는 아카시아도 기린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무의 언어' 중에서 / pp.18~20)

    어린 나무들은 한시바삐 자라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 마음만 먹으면 한 철에 0.5미터는 거뜬히 자랄 수 있다. 하지만 엄마가 반대한다. 엄마가 거대한 수관으로 어린 자식들을 뒤덮고, 다른 어른 나무들과 힘을 합하여 숲 전체에 두꺼운 지붕을 씌운다. 그 결과 숲의 바닥이나 아기 나무들의 잎까지 당도할 수 있는 햇빛의 비율은 겨우 3퍼센트밖에 안 된다.... 적절한 성장은 말할 나위도 없고 나무 몸통을 튼실하게 키울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런 엄하디
    엄한 교육에도 저항은 꿈도 꿀 수 없다. 저항을 하려고 해도 에너지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엄마들의 행동은 어린 나무들의 행복에 기여하는 교육적 조치다.... 교육의 수단은 빛의 삭감이다.... 어릴 때의 느린 성장은 오래 살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느냐고?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이다. 현대의 산림 경영은 나무의 나이가 80~120살 정도면 초고령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면 베어 쓰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적 환경이라면 그 나이 정도의 나무는 연필 정도의 두께, 사람 키 정도 높이밖에 안 된다. 워낙 느리게 자라기 때문에 나무 내부의 세포는 크기도 매우 작고 공기 함량도 아주 적다. 그래서 탄성이 뛰어나 폭풍이 불어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훌륭한 교육은 긴 수명의 보증 보험이다.
    ('언제나 느리게' 중에서 / pp.50~52)

    나무들이 꿈꾸는 지상낙원은 대개 다 비슷한 모습이다. 유럽에 사는 대부분의 수종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영양이 풍부하고 몇 미터 아래까지 통풍이 잘되는, 딱딱하게 굳지 않은 보슬보슬한 땅을 좋아한다. 또 습기가 많아야 하는데 특히 여름에 그렇다. 너무 더워서도 안 되고 너무 추워서도 안 된다. 눈은 적당하게 와야 하는데 녹으면서 땅을 충분히 적실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앞에 산이 가려 주어 태풍이 와도 피해가 적어야 하고 껍질과 목질을 공격하는 균류와 곰팡이가 많이 살지 않아야 한다. 아마 나무들에게 살고 싶은 곳을 이야기해 보라면 꼭 이런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낙원은 지상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과 같은 종의 다양성을 누릴 수가 있다. 만일 지금의 중부 유럽에 그런 지상낙원이 찾아온다면 경주에서 1등을 할 너도밤나무만 창궐할 테니 말이다. 너도밤나무는 유익한 환경을 완벽하게 활용하여 모든 경쟁자들을 내쫓는다. 무턱대고 경쟁자의 수관 속으로 밀고 들어가 그 위로 자신의 가지를 뻗어 상대의 수관을 덮어 버린다. 그러므로 그런 무시무시한 경쟁자와 싸워 살아남으려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경쟁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물론 그러자면 어려움이 많다. 너도밤나무 옆에서 자신만의 틈새, 즉 생태적 니치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특정 부분에서 금욕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지구에 있는 생활 공간 대부분은 이상적인 조건이 아니다....그런 곳에서 잘 버티는 자는 널리 널리 퍼져 나가 거대한 지역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 중에서 / pp.102~103)

    뿌리가 왜 더 중요한 부위인가 하는 문제로 돌아가 보자. 아마 나무의 두뇌에 해당하는 것이 그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도 학습을 할 수 있다는, 그러니까 경험을 저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에 해당하는 장소를 나무에서 찾을 것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뿌리가 이런 목적에 가장 적합한 장소인 것도 사실이다.... 뿌리는 물질을 흡수하여 그것을 전달하며 광합성 생산물을 균류 파트너에게로 인도하고 심지어 이웃 나무들에게 경고성 물질을 전달한다. 그렇긴 하지만 과연 두뇌라는 말까지 써도 되는 것일까? 두뇌라고 부르려면 신경 과정이 필요하고 전달 물질 이외에도 전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전류를 측정할 수가 있다. 이미 19세기부터 측정해 왔다. 오래전 학자들 사이에서 격론이 불붙었다. 식물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식물에게도 지능이 있을까?... 과연 뿌리를 지성과 기억력, 감성의 장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마 식물학자들의 다수는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이들의 거부감은 무엇보다도 이렇게 식물의 상태를 동물의 상황에 적용하다 보면 결국 동물과 식물의 경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기인한다.... 동물과 식물의 구분은 어차피 자의적이다. 구분의 기준은 식량을 구하는 방식이다. 한쪽은 광합성을 하고 다른 쪽은 생명체를 먹는다. 그러니까 결국 차이라고 해 봤자 정보를 처리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느린 생명체는 빠른 생명체보다 당연히 열등한가? 나무와 식물이 많은 점1~82)

    벌들은 벌집 안에서 춤을 춰서 꽃꿀이 있는 곳과 그곳까지의 거리 정보를 제공하고 타액선의 즙을 꽃꿀에 첨가한 다음 그 혼합물을 작은 혓바닥에서 건조시켜 벌꿀로 가공한다. 또 밀랍을 분비하여 그것으로 벌집을 만든다. 학자들은 벌의 능력을 일찍부터 높이 평가했지만, 그렇게 작은 두뇌가 그와 같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그 모든 것을 일종의 초개체로 폄하했다. 그것들의 인지 능력도 집단 지성이라고 불렀다. 그런 초개체에선 모든 개체들이 열심히 협력하여 자신보다 훨씬 큰 신체의 능력을 발휘한다. 각 개체는 비교적 멍청하지만 다양한 과정의 협력과 환경 자극에 대한 반응 능력이 합쳐져서 이것들을 지성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식의 평가 방식은 개체의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고 각 개체를 큰 건물의 석재, 퍼즐의 조각으로 축소시킨다.... 베를린 자유대학의 란돌프 멘첼Randolf Menzel 교수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벌집 밖으로 처음 나온 어린 벌들이 태양을 일종의 나침반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벌은 태양을 이용하여 머릿속으로 집 주변의 지도를 그리고 그 지도에서 자신의 비행 항로를 찾아낸다. 한마디로 자기 주변이 어떤 모습인지를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머릿속 지도 덕분에 우리와 유사한 방식으로 방향을 찾는다.... 그러니까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벌이 기억을 하고 고민을 해서 새 길을 개발했다고 말이다. 이런 경우 집단 지성은 별 도움이 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불러온 것은 그 벌의 작은 머리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다른 지성이다. 미래를 계획하고 아직 본 적 없는 것을 생각하며 이런 맥락에서 자신의 몸을 인식함으로써 벌은 자신을 의식한다. 란돌프 멘첼의 말대로 "벌은 자기가 누구인지 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집단이 필요치 않다.
    ('집단 지성' 중에서/ pp.100~103)

    나는 가치 있는 이타심은 진정한 선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돕기 위해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포기를 해야만 가치 있는 이타심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이 언제 그런 식의 이타심을 발휘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능이 높은 동물들을 살펴보면 대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새들이 바로 이런 동물이며, 실제로 새들에게선 꾸준히 희생의 장면이 목격된다. 예를 들어 박새는 천적이 다가오면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놈이 비명을 질러 경보를 발령한다. 그럼 다른 박새들이 얼른 몸을 숨겨 안전을 도모한다. 하지만 정작 비명을 지른 박새는 적의 관심을 끌게 되므로 위험에 처한다. 물론 녀석도 얼른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길 수 있겠지만 다른 박새들보다는 천적에게 붙들릴 위험이 매우 높다.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일까?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언뜻 무의미한 짓 같기도 하다. 비명을 지른 새가 잡아먹히나 다른 새가 잡아먹히나 그 종 전체에게는 전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볼 때 이타심은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기도 하는 것이어서 희생정신이 크고 마음이 넓은 개체에게 다시 이익이 될 수 있다.
    ('이타심' 중에서/ pp.157~158)

    인간은 ‘시각의 동물’이다. 눈으로 보고 사냥을 한다. 따라서 사냥감이 될 수 있는 동물들은 어떻게 하든 인간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만약 우리가 냄새를 맡고 사냥을 한다면 동물들은 진화를 거치면서 아마도 냄새를 잃었을 것이고, 우리가 소리를 듣고 사냥을 한다면 극도로 소리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눈으로 사냥을 하기에 동물들은 우리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낮에 조심을 한다. 어두워지면 인간은 거의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사냥감들이 활동을 밤으로 미루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우리도 노루와 사슴과 멧돼지가 밤에 활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녀석들은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먹이를 먹어야 한다. 그래서 낮에는 으슥한 수풀이나 인적 드문 숲에서 먹이를 찾는다. 초지나 숲 가장자리에서 먹이를 찾는 것이 지극히 정상인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인간들의 시야가 흐려지는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트인 곳으로 나온다.... 숲에서 일을 하거나 사냥을 하는 사람이라면 야생동물들이 경험을 수집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사냥 시설은 맛난 먹이가 잔뜩 널려 있는 곳에 서 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사냥꾼들이 씨를 뿌려 사슴이나 노루가 좋아하는 풀을 키운다. 그런 ‘야생동물 풀밭’에서 키우는 풀을 두고 흔히 ‘야생동물 풀밭 찌개’라고 부른다.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돌지 않는가? 그래서 밤마다 룰렛 게임이 벌어진다. 주린 배가 이기면 노루와 사슴이 너무 이른 시각에 숲길로 나와 사냥꾼의 시야로 걸어간다. 공포가 이기면 녀석들이 주린 배를 안고 어둠이 내릴 때까지 참기 때문에 사냥꾼이 빈손으로 돌아간다.
    ('공포' 중에서/ pp.210~212)

    모든 동물 종이 세상을 다 다르게 보고 느낀다면 수십만 개의 다른 세상이 존재할 것이다.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이 중에서 많은 세상은 우리가 찾아 주기를 고대하며 우리 곁에 숨어 있다. 앞서 소개한 동물 종들 말고도 중부 유럽에는 너무 작고 매력이 없어서 아직 체계적인 연구가 되지 않은 동물이 수천 종이나 있다. 당연히 우리는 녀석들의 감정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우리가 눈여겨볼 만큼 중요한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녀석들에게 투자할 연구비도 없는 것이다. 녀석들의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며, 녀석들이 어떤 욕망을 품으며, 지금과 같은 상업적인 산림 경영으로 어떤 고통을 겪는지 알지 못하기에 누구도 녀석들을 위해 보호 구역을 지정할 뜻이 없는 것이다.
    ('낯선 세상' 중에서/ p.261)

    우리는 보통 인간과 동물의 소통을 너무나 일방적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다른 종에게 자신의 언어를 가르치려고만 든다. 상대편 동물이 우리의 개념이나 명령을 알아듣고,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있으면 매우 지능이 높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사랑앵무, 까마귀, 코코 같은 고릴라가 질문에 우리의 언어로 대답이라도 하면 그야말로 감격하여 감탄사를 쏟아 낸다. 우리가 실제로 이 지구에서 가장 지적인 종이라면-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왜 과학은 정반대의 길을 걷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실험 동물에게 몇 년씩 힘들여 제스처를 가르칠까? 지금의 연구 수준에서 보면 우리보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동물들에게 말이다. 우리가 동물의 언어를 배우는 쪽이 더 간단하지 않을까? 지금의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을 갖추었다. 예전에는 말과 똑같이 두 가지 음의 히히힝 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가 우리의 관심사를 각각의 동물 언어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방향으로 진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마음을 전하다' 중에서/ p.283)

    우리는 다른 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진화해 왔기에 그들과 싸우고 그들과 더불어 생존해야 했다. 단연코 늑대와 곰, 야생마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 낯선 인간의 얼굴을 해독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했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육감이 우리를 속일 수도 있고 개나 고양이의 행동에 너무 과도한 감정이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본능은 옳다. 그렇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과학적 연구 결과들은 놀라운 발견이 아니다. 그저 여태 우리가 동물을 향해 품었던 감정들을 재확인하는 차원일 뿐이다. 동물의 감정을 부인하는 목소리에서 나는 희미하게나마 약간의 불안을 감지한다. 인간의 특별한 지위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나아가 동물의 이용이 어려워질 것이며 밥을 먹을 때마다, 가죽옷을 입을 때마다 도덕적 죄의식으로 마음이 어두워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새끼를 교육시키고, 심지어 새끼의 산파 노릇까지 하고, 이름을 알아듣고, 거울 테스트에 합격하는 예민한 돼지를 생각하면 유럽연합에서 도살하는 돼지만 따져도 2500만여 마리에 이르는 현실에 어찌 소름이 돋지 않겠는가.
    ('나가는 글: 한 걸음 뒤로' 중에서/ pp.292~293)
    에서 동물과 얼마나 비슷한지를 확실히 알게 된다면 과연 사람들은 그것들을 지금보다 더 많이 배려할까? 정말로 그럴지 나는 의문스럽다.
    ('나무일까, 나무가 아닐까?' 중에서 / pp.112~115)

    내 고향 마을 휨멜에서 아어Ahr 계곡의 이웃 도시로 가는 국도변에 참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세 나무의 주변 환경이 동일하다. 땅, 물, 지역의 미기후, 이 모두가 1미터 이내에선 차이가 없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참나무들이 다른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오직 각자의 다른 성격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셋은 다른 행동을 한다.... 가을이 되면 이들 삼형제의 협동심에 살짝 금이 간다. 오른쪽 참나무는 이미 물이 들었는데 중간 것과 왼쪽 것은 아직 짙푸른 초록이다. 그로부터 2주쯤 지나야 중간 것과 왼쪽 것도 겨울잠에 들어간다. 서 있는 장소가 같은데 왜 이 셋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일까? 나무가 언제 잎을 버리느냐는 실제 성격에 좌우된다.... 나무는 다가오는 겨울을 예상할 수 없다. 얼마나 혹한일지, 아니면 온화한 겨울이 될지 알지 못한다. 줄어드는 낮의 길이와 떨어지는 기온밖에 감지하지 못한다. 그런데 가끔씩 가을인데도 늦여름처럼 뜨거운 공기가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 세 그루 참나무들은 진퇴양난에 빠진다. 온화한 기온을 이용하여 광합성을 조금 더 해서 당분을 조금이나마 더 저장할 것인가? 아니면 추위가 갑자기 몰려올지도 모르니 안전을 기해 얼른 잎을 던지고 겨울잠에 들 것인가? 이때 셋이 내리는 결정이 각기 다른 것 같다. 오른쪽 나무는 친구들보다 겁이 많다. 긍정적으로 표현해 더 합리적이다.
    ('성격의 문제' 중에서 / pp.193~195)

    도시의 나무들은 거리의 아이들이다.... 신이 나서 뻗어 나가던 뿌리는 갑자기 나타난 예상치 못한 난관에 흠칫 놀란다.... 여기저기 틈이 없나 쑤셔 보지만 차도에 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인도에도 각종 관들이 묻혀 있고 그것들을 설치하느라 땅을 단단히 다져 놓았다. 그런 상황에서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하다. 플라타너스, 단풍나무, 보리수의 뿌리는 지하의 하수도관 속으로 잘 들어간다.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이 장마철에 도로가 물바다가 되면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다.... 사람들은 더 이상 뿌리가 들어올 수 없도록 더욱 단단히 다진 흙에다 관을 묻는다. 그러니 여름에 태풍이 불면 가로수들이 우르르 쓰러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숲에서라면 700제곱미터 이상을 뻗어 나갈 수 있을 지하의 뿌리가 보잘것없는 면적에 갇힌 채로 어떻게 몇 톤에 이르는 줄기의 무게를 버티겠는가? 나무의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도시의 미기후는 열기를 고스란히 간직하는 아스팔트와 시멘트의 작품이다. 숲은 한여름에도 밤이 되면 서늘하지만 도로와 건물은 밤이 되면 열기를 토해 내어 대기의 기온을 높게 유지시킨다.... 도시의 나무는 너무 큰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이 오래 살지 못한다. 어린 시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살 수 있지만 그것이 도시 생활의 단점을 상쇄해 주지는 못한다.
    ('거리의 아이들' 중에서 / pp.221~223, 226)

    우리도 결국엔 자연의 일부고 신체 구조상 다른 종의 유기물을 이용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이런 필연성은 모든 동물과 우리가 공유하는 공통점이다. 문제는 다만 우리가 숲 생태계를 필요 이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동물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나무에게서도 불필요한 고통을 덜어 줄 수는 없는지 하는 것이다. 나무에게도 나무에게 맞는 삶을 허용한다면 동물을 이용하듯 나무를 이용하는 것 역시 별문제가 안 될 것이다. 나무에게 맞는 삶이란, 나무가 사회적 욕구를 실현할 수 있고, 완벽한 흙을 갖춘 진짜 숲에서 성장할 수 있으며, 쌓은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일부나마 존엄하게 늙어 갈 수 있고 마침내 자연사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바이오 로봇' 중에서 / p.296)

    저자소개

    페터 볼레벤(Peter Wohllebe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4~
    출생지 독일 본
    출간도서 5종
    판매수 839권

    1964년 독일 본에서 태어났으며 로텐부르크 임업대학을 졸업하고 산림 기사가 되었다. 20년 넘게 라인란트팔츠주 산림 관리 공무원으로 일하다 2006년부터 친환경적 산림 경영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독일 중서부 휨멜 조합의 산림경영지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이곳의 숲 아카데미에 집중하고 있다.
    이곳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대규모 기계 대신 말이나 사람의 손을 이용하여 산림을 관리하는 독일 전역에서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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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독일 하노버에서 공부했다.
    《삶의 무기가 되는 심리학》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나무 수업》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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