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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 알렉시스 조르바의 성자다운 생애

원제 : Zorba The Greek: The Saint’s Life of Alexis Zor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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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 타계 6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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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진정한 자유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그 너머

    1883년 오스만 제국 치하 크레타 섬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나 1957년 독일에서 세상을 떠난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의 타계 60주년을 기념하여 [그리스인 조르바]가 전문번역가 이종인의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국제적인 베스트셀러이며 앤서니 퀸이 주연으로 나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동명 영화의 원작이다. 이 소설은 지적인 광산 소유주와 요란스러운 공사 반장 사이의 기이한 우정을 소개하면서 정신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 사이의 영원한 대결을 탐구한다.
    ‘조르바’는 문학이 창조해낸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는 [아라비안나이트]의 뱃사람 신드바드, 셰익스피어의 사극 [헨리 4세]의 폴스타프, 세르반테스의 장편소설 [돈키호테] 중 산초 판사 등 위대한 문학의 전통을 잇는 캐릭터이다.
    조르바는 인생이 제공하는 모든 도전에 힘차게 응전한다. 그는 산속 수도원에서 미친 수도사들과 대면할 때, 자신의 과거 모험담을 아름답게 꾸며낼 때,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여자들과 사랑을 나눌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거침없이 당당하게 행동한다. 조르바의 이런 헌걸찬 기상은 나이가 들어가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다. 인생에서 겪어야 하는 즐거움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조르바의 씩씩한 기상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은 힘겨운 인생을 낙관의 시선으로 긍정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이다.

    "만약 나에게 세상에서 한 명의 스승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분명 조르바를 선택할 것이다. 그는 나에게 열정적인 생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추천사

    “카잔차키스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시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그의 소설은 호메로스의 정신을 부활시켰다.”
    - 토마스 만

    “햇빛 환한 인간정신의 양지로 떠나는 자극적인 여행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볼테르의 [캉디드]나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처럼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
    - 뉴욕타임스

    “[그리스인 조르바]는 전 세계 54개국 100명의 저명한 작가들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 100권 중의 하나이다.”
    - 가디언

    목차

    옮긴이의 말
    프롤로그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제13장
    제14장
    제15장
    제16장
    제17장
    제18장
    제19장
    제20장
    제21장
    제22장
    제23장
    제24장
    제25장
    제26장

    작품 해설 - 진정한 자유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니코스 카잔차키스 연보

    본문중에서

    만약 오늘날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단 한 명의 영적 지도자-인도에서 말하는 ‘구루’ 혹은 아토스 성산(聖山)에서 수도사들이 말하는 ‘거룩한 신부’-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내가 주저하지 않고 선택할 사람은 조르바일 것이다. 그는 펜대 굴리는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로 하는 바로 그것을 소유했다. 가령 저 높은 곳에서 멋지게 자양분을 얻어내는 원초적 시선. 날마다 동틀 때면 새롭게 거듭나는 창조적인 천진난만함. 모든 것을 마치 처음인 양 바라보면서, 바람, 바다, 불, 여자, 땅 등 아주 일상적인 요소들에 처녀성을 부여해 주는 초발심(初發心), 손의 날렵함, 마음의 신선함, 자신의 영혼이 제 그릇보다 더 큰 힘을 품을 수 있다고 믿는 듯한 영혼에 대하여 농담을 걸 수 있는 용감하고 강건한 사람의 능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의 내면 깊은 곳보다 더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야성적이고도 걸걸한 웃음소리 등이 그런 구원의 요소이다. 그 웃음은 노인 조르바의 가슴으로부터 중요한 순간마다 구원을 주려는 듯이 터져 나오는데 인간이 자기 주위에 쳐놓은 차단막, 가령 도덕, 종교, 민족주의 등을 단숨에 폭발시킬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녔다(실제로 폭발시켰다). 이에 반하여 불쌍하고 심약한 인간들은 그런 장애물을 주위에 쳐놓으면 그들의 한심한 소인배 생활을 무난히 어기적거리며 영위할 수 있으리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 p.31)

    사랑하는 친구와의 작별을 오래 끄는 것은 못할 일이다. 단칼에 떠나보내는 것이 더 좋다. 그러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풍토인 고독으로 되돌아올 수 있으니까. 그러나 과거의 그 비 오는 새벽에 나는 친구로부터 떨어질 수가 없었다(나는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는데, 슬프게도 그때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배를 타고 이 항구까지 왔다. 그의 선실에서, 흩어진 여행 가방들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 그의 정신은 다른 데 팔려 있었다. 나는 그의 뚜렷한 특징들을 정밀하게 재고 조사하듯이 찬찬히 의도적으로 살펴보았다. 밝은 청록색 눈, 약간 살이 오른 젊은 얼굴, 자부심이 강한 세련된 이목구비, 그리고 무엇보다도 손가락이 긴 그의 귀족적 두 손을. 어느 한순간, 그는 내 시선이 그의 온몸을 탐욕스럽게 살피며 훑고 지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서 감정을 감추고 싶을 때면 항상 그러하듯이 약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았다. 작별의 슬픈 분위기를 희석시키기 위하여 그는 냉소적인 미소를 일부러 지으며 내게 물었다. “얼마나 더 오래?”
    (/ p.42)

    나는 여행 다닐 때 가지고 다니는, 단테의 [신곡] 문고판을 꺼내들었다. 내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벽에 기대면서 편안한 자세를 잡았다. 잠시 나는 어느 부분을 선택할까 생각에 잠겼다. 이 불멸의 시편들 중 어느 부분이 좋을까. 지옥의 불타는 타르를 다룬 부분, 연옥의 기분 좋게 서늘한 불꽃, 혹은 인간 희망의 가장 상층부인 천국 부분? 그건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단테 문고판을 손에 들고서 나는 순간적으로 그 자유를 만끽했다. 게다가 이 첫새벽에 내가 고른 시편들이 그날 하루의 운세를 결정할 것이었다. 나는 결정을 내리려고 가장 환상적인 시들의 모음집인 단테 책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나는 갑자기 불안함을 느끼면서 고개를 쳐들었다.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내 뒤통수에 두 개의 눈알이 딱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갑자기 몸을 돌리면서 이중 유리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친구를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전광석화처럼 내 마음속을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그 기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어떤 나이 든 남자-예순다섯 살가량에 아주 키고 크고 호리호리하며 툭 튀어나온 눈을 가진 사내-가 유리문에 딱 달라붙어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겨드랑이에 고기 파이처럼 납작한 자그만 보따리를 끼고 있었다.
    (/ p.49)

    바다, 가을의 청명한 날씨, 햇빛 속에 멱을 감는 섬들, 그리스의 영원한 남루함을 감싸는 가느다란 빗줄기의 반투명한 베일. ‘그 사람은 행복한 자이어라.’ 하고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항해할 수 있었던 사람은.’ 이 세상은 여자, 과일, 생각 등 많은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러나 어느 청명한 가을날 이 바다를 항해하면서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여행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은 없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천국으로 들어올린다. 바다 이외의 곳에서는 평온함과 걱정 없음에 힘입어 현실을 몽상으로 바꾸어 놓는 그런 황홀감을 느껴볼 수가 없다. 현실과 몽상의 경계는 사라진다. 아주 남루한 배의 돛대에서조차도 싹이 트고 포도송이가 매달린다. 여기 그리스에서는 남루한 궁핍이 화려한 기적으로 꽃피어 나는 것이다.
    (/ p.59)

    “보스,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그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내가 온갖 일을 다 했다고 아까 말했지요. 그래서 한때는 옹기장이 노릇을 했어요. 아주 그 일에 완전 미쳤었지요. 흙 한 덩어리를 집어 들고서 그걸로 자기가 원하는 질그릇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녹로와 흙덩어리는 슈웃 소리를 내면서 미친 듯이 돌아갑니다. 그러는 동안 당신은 그걸 쳐다보며 ‘주전자를 만들어야지.’ ‘쟁반을 만들어야지.’ ‘등유 램프를 만들어야지.’ ‘악마가 아는 걸 만들어야지.’ 하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 순간에 당신은 진짜 인간이 되는 겁니다. 자유!”
    (/ p.62)

    인생이 내 앞에서 하나의 동화처럼 번쩍거렸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우리 또한 상상의 난파선에서 하선하여 온몸이 물에 젖은 채로 저 놀라운 해변을 탐사하다가 이제 이 섬의 살아있는 사람들과 정식으로 수인사를 나누게 된 것이었다. 나는 마담 오르탕스를 그 섬의 여왕 혹은 수천 년 전에 이 모래 많은 해변에 좌초하여 하릴없이 썩어 가고 있는, 일종의 콧수염 달린 반짝거리는 물개, 그것도 향수를 친 행복한 물개라고 상상했다. 그녀의 뒤에는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칼리반-그러니까 이 섬의 온 주민, 번들번들하고 뻣뻣하고 흥분 잘하는 주민-이 경멸과 아첨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가면 쓴 왕자인 조르바는 이제 그녀에게 존경을 바치고 있다. 불룩 튀어나온 눈을 가진, 저 오래된 시절의 동료인 조르바는 아주 먼 바다에서 저 나름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승리를 거둔 낡은 순양함으로서, 때로는 정복을 당하여 상처를 입고, 승강구는 입을 벌리고, 돛대는 부러지고, 돛은 찢어져, 이제 금 간 곳이 무수하나 그녀가 이제 분으로 그곳을 메워줄 터인데, 그녀는 일찍이 이 해변에 도착하여 4만 군데의 상처를 입은 선장, 조르바를 속절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던 터였다. 나는 이 두 배우가 이처럼 간단하게 준비된 무대, 조잡하게 페인트칠을 한 크레타의 해변가에서 마침내 기쁜 마음으로 상봉하는 것을 보고서 내심 즐거운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
    (/ p.80)

    “나는 나브라코스를 사랑했어요. 크레타는 당시 또 다른 아나스타시가 벌어져서 여러 나라의 함대들이 수다(Souda)에 정박했어요. 며칠 뒤 나도 닻을 내렸지요. 아아, 그 장엄함이라니! 당신은 그 네 나라-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의 나브라코스를 보았어야 해요! 어디에서나 황금이 번쩍거렸고 최고급 가죽 구두를 신었고 머리에는 화려한 깃털을 꽂았지요. 마치 수탉들처럼. 덩치 큰 거대한 수탉들이었어요, 두당 170파운드 혹은 195파운드가 나갔으니까. 그들이 나를 망쳐놓았어요. 아 그 턱수염! 곱슬곱슬하고 비단처럼 부드러웠지요. 검은색, 블론드, 회색, 갈색. 그리고 그 냄새! 각자 저마다 냄새가 달랐어요. 나는 그들 각자에게 밤마다 그걸 얘기해 주었지요. 영국 제독은 오드콜로뉴의 냄새, 프랑스 제독은 바이올렛, 러시아 제독은 사향, 그리고 이탈리아 제독은 파촐리 향유를 미친 듯이 좋아했지요. 하느님 맙소사, 정말 대단한 턱수염이었지요! 우리 다섯 명은 종종 나브라키다(기함: 제독의 배)에 함께 앉아서 아나스타시에 대해서 얘기했지요. 우리는 모두 야회복을 입고 있었어요. 나는 자그마한 실크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제독들이 그 옷과 나를 샴페인으로 적셔버리는 바람에 내 몸에 딱 달라붙었지요(때는 여름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아나스타시를 논했고 심각한 얘기를 했으며 나는 저들의 턱수염을 잡아당기며 저 불쌍한 크레타 청년들을 상대로 함포 사격을 하지 말라고 애원했어요. 우리는 망원경으로 그들을 볼 수 있었어요. 그들은 하니아 근처의 커다란 바위 위에 집결해 있었는데 자그마한 개미들 같았어요. 노란 신발을 신고 기저귀 같은 푸른 옷을 입고 있었어요. 그들은 대가리가 떨어져 나갈 듯이 소리를 질러댔어요. ‘자유 만세! 자유 만세!’-그리고 그들은 깃발을 가지고 있었어요.”
    (/ p.95)

    나는 조르바의 담배 피는 모습을 쳐다보며 그를 부러워했다. 나는 손을 내뻗어 내 파이프를 가져왔다. 그것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오래전의 어느 날 오후에 서유럽에서 내 친구가 건네준 것이었다. 그는 회녹색 눈빛에 손가락이 가느다란 귀족 같은 친구였다. 그는 공부를 마치고 그날 저녁 그리스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궐련 피우는 걸 끊게.” 그가 내게 말했다. “그것에 불을 붙이고 절반쯤 피우다가 내버리는 것이 마치 거리의 여자에게 하는 짓 같지 않은가. 부끄러운 짓이야! 정숙한 여자인 파이프와 결혼을 하게. 아주 안정적이지. 자네가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자네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를 기억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자네는 공중에 그려지는 파이프 담배의 동그란 연기를 쳐다봐 주게!” 그것은 이른 오후였다. 우리는 베를린의 한 박물관을 나서는 중이었다. 친구는 그곳에 걸려 있는, 평소 애호하는 렘브란트 작품 「황금 투구를 쓴 남자」에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들렀었다. 그 키 큰 청동 투구, 창백하고 수척한 양 뺨, 슬프면서도 단호한 시선. “내가 한평생 동안 뭔가 용감한 행위를 한다면.” 그가 고개를 숙이지 않는 용감한 전사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건 이 남자 덕분일 거야.” 우리는 전시실에서 나와 박물관 안뜰의 기둥에 기대어 섰다. 우리 맞은편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알몸 아마존 여전사의 청동 조각상이 있었는데 안장 없는 말에 올라탄 그녀는 아주 우아하고 자신에 넘치는 자세였다. 자그마한 노랑할미새가 잠시 아마존의 머리 위에 내려앉아서 꼬리를 힘차게 흔들고 조롱하듯이 두세 번 짹짹거리더니 공중으로 날아갔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내 친구를 보며 물었다. “저 새소리 들었나? 저 새가 날아가기 전에 우리에게 뭔가 말을 해준 것 같아.” “저들은 새야, 새들은 노래하게 내버려둬. 저들은 새야, 새들은 노래하게 내버려둬.” 내 친구가 민중의 속요를 인용하여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오늘 이 크레타 해안의 새벽에 저 먼 과거의 순간이 갑자기 생각나서 내 마음을 슬픔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 p.103)

    마담 오르탕스의 안뜰에서 늙은 수탉이 울음을 울었다. 햇빛이 마침내 작은 창문을 통하여 하얀 백묵 색깔로 스며들어 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인부들이 도착하여 큰 곡괭이, 쇠지레, 곡괭이 등을 덜거덕거렸다. 나는 조르바가 그들에게 지시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이미 작업을 시작했다. 그가 지시를 내릴 줄 알고 책임을 사랑하는 남자라는 걸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천창을 통하여 조르바가 거무튀튀하고 허리가 잘록하고 볼품없는 서른 명 정도의 남자들 사이에서 우뚝 키가 큰 거인처럼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인부들은 통이 크고 가벼운 전통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조르바는 지시를 할 때마다 팔을 내뻗었으나 그의 말은 간단하고 직설적이었다. 어느 한순간, 어떤 젊은 친구가 뭐라고 중얼거리며 뒤로 물러서자, 조르바는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서 소리쳤다. “할 말이 있으면 크게 말해. 난 입안에서 중얼거리는 건 좋아하지 않아. 일을 하려면 적극적인 마음가짐이 있어야 해. 그런 마음이 없다면 지금 즉시 카페로 꺼지는 게 좋을 거야!”
    (/ p.110)

    매일 저녁 조르바는 나를 데리고 그리스, 불가리아, 콘스탄티노플로 산책을 나갔다. 나는 눈을 감고서 그 광경을 보았다. 그는 분쟁이 터져서 엄청난 고통을 당한 발칸 지역을 거의 다 훑었고 그의 매 같은 작은 눈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내려다보았다. 때때로 그의 툭 튀어나온 눈은 우리들이 평소에 당연한 것으로 여겨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을 날카롭게 관찰하며 끄집어냈다. 그런 것들은 조르바의 앞에 무서운 수수께끼로 등장했다. 그는 눈앞에 있는 어떤 여자를 보면서 겁먹은 듯 말을 멈추었다. “이 신비는 무엇입니까” 그는 물었다. “이 ‘여자들’이라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왜 그들은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립니까? 머리의 나사가 풀어지게 하고 나를 돌아버리게 만드는 겁니까?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내게 말해 줄 수 있습니까” 그는 마찬가지로 그 툭 튀어나온 눈으로 어떤 남자의 모습, 꽃 피는 나무, 신선한 한 잔의 물 등을 응시하면서 놀라는 목소리로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매일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마치 지금 처음 보는 것처럼 쳐다보았다.
    (/ p.114)

    “보스, 지난번에 우리가 말하던 거 기억납니까? 당신은 대중을 계몽하여 그들의 눈을 열어 주려고 했지요. 좋아요. 가서 아나그노스티스 아저씨의 눈을 한번 열어 주세요. 그 사람의 마누라가 완전 얼어서 남편의 하회를 기다리며 서 있는 것을 보았지요? 이봐요, 나리, 지금 당장 그 부부에게 가서 여자에 대해서 설파해 주면 어떨까요?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고, 돼지가 살아서 당신 앞에서 아파 죽겠다는 듯이 날뛰고 있는데도 태연히 그 돼지의 거시기를 먹는 것은 야비한 짓이라고 말해 주세요. 또 당신은 굶어죽고 있는데 신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은 정말 똥 대가리 같은 생각이라고 말해 줘요. 그러면 그 혐오스러운 불쌍한 친구인 아나그노스티스 아저씨가 당신의 그 고명한 헛소리로부터 아연 눈을 뜰 것 같습니까? 당신은 그자에게 골칫거리만 가득 안겨 줄 겁니다. 그 마누라도 무슨 득을 볼 것 같습니까? 부부 사이에 싸움이 벌어질 겁니다. 암탉은 수탉이 되고 싶어 할 거고 부부는 만날 싸우면서 상대방의 피를 다 빨아먹을 겁니다. 만약 그 부부의 눈을 열어준다면 그들은 무엇을 보게 될까요? 그들이 서로에게 가진 악의와 냉담한 비사교성만 볼 거예요. 그러니 그들의 눈은 계속 감겨 있는 게 좋아요. 그러면 차라리 꿈이라도 꿀 수 있잖아요!”
    (/ p.130)

    내가 두 눈을 감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인생은 말짱 헛것이었어.’ 나는 그런 생각을 계속했다. ‘스펀지를 들고서 내가 지금껏 읽은 것, 본 것, 들은 것을 모두 닦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조르바 학교에 들어가 진정으로 위대한 알파벳을 다시 배울 수 있으련만! 그러면 나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을 텐데! 마침내 나의 오관을 완벽하게 구사하면서-내 모든 피부를 동원하면서-삶을 즐기고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달리고, 씨름하고, 헤엄치고, 말 타고 달리고, 배의 노를 젓고, 차를 몰고, 총을 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텐데. 내 영혼을 살로 채우고, 다시 살을 영혼으로 채워서 마침내 나의 내부에서 저 두 철천지원수들을 화해시킬 수 있을 텐데.’ 매트리스에 앉아서 나는 쓰레기 같은 내 인생을 계속 생각했다. 나는 열려진 문을 통하여 별빛 아래에 있는 조르바를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그는 둥지에 돌아온 밤 올빼미처럼 바위에 걸터앉아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그는 진리를 발견했어.’ 나는 계속 생각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야.’ 다른 시대, 가령 원시적이고 창조적인 시대였다면, 조르바는 족장이 되어 맨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면 벌채 칼로 나무를 쳐내며 새로운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귀족들의 성을 방랑하면서 노래 부르는 저명한 음유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성의 모든 사람들-귀족, 하인, 귀부인 등-은 그의 걸쭉한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 매달리듯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한심한 시대에 태어난 바람에, 그는 양들 사이에 떨어진 배고픈 늑대 신세 혹은 펜대 굴리는 자의 광대가 되어 그 자신을 타락시킨 처지에 지나지 않는다.
    (/ p.150)

    조르바는 내 질문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그의 정신은 저 먼 바다를 항해하고 있어서 내 목소리가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손을 내밀어 그를 가볍게 흔들었다.
    “조르바, 결혼은 몇 번이나 했어요?” 내가 다시 물었다.
    “이런 참! 아, 왜 당신은 거기 그렇게 앉아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이나 하고 그래요” 그가 대답했다. “나는 인간이 아닌가요? 나 또한 아주 멍청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유부남들은 내 말을 듣고서 양해해 주시기를. 결혼이야말로 바로 그거예요. 그래요, 나는 아주 멍청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결혼을 했단 말이지요.”
    “잘했어요. 몇 번이나?”
    조르바는 멋쩍은 듯이 목을 잠시 긁으며 생각에 잠겼다.
    “몇 번이나?” 그가 마침내 따라서 말했다. “정직하게 말하면 한 번이지요(그는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절반만 정직하게 말하면 두 번, 그리고 부정직하게 말하자면 1천 번, 2천 번, 3천 번…… 나는 장부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 p.159)

    “보스, 주판알 튕기는 건 그만두어요.” 조르바가 계속 말했다. “숫자는 잊어버리고, 그 지겨운 저울은 부숴버리고 좁쌀 같은 야채상 가게는 문 닫아 버려요. 이제는 당신이 영혼을 구제하거나 파괴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예요. 잘 들어요, 보스. 손수건에다 영국 파운드 동전 두세 개를 집어넣고 싸세요. 지폐는 안 되고 황금 동전이어야 해요. 그래야 상대방의 눈을 부시게 하니까. 그런 다음 그걸 미미토스 편에 과부에게 보내고서 이렇게 말하라고 해요. ‘갈탄광 사업의 사장이 인사드립니다. 이 손수건을 받아주세요. 별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랑을 담아 보내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암양은 걱정하지 마세요. 설사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개의치 마세요. 우리가 여기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시고요. 당신이 카페 앞을 뛰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퍽 놀랐고 또 걱정이 되었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그리고 그 직후, 가령 내일 저녁쯤에-쇠뿔도 단김에 빼야 하는 거예요!-그녀의 집 대문을 노크하는 겁니다. 아, 길을 잃었는데 어두워지고 있군요, 라고 말하세요. 혹시 등불을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혹은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그러는데 물 한잔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세요. 혹은 이게 더 좋은데, 아예 암양 한 마리를 사서 그녀에게 가지고 가는 거예요. ‘이거, 당신이 잃어버린 암양입니다. 내가 찾았어요.’ 하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과부는-보스, 이제 내 말을 잘 들으세요-당신에게 암양을 찾아주었다고 사례를 할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암말에 올라타고서 천국에 들어가는 겁니다(오, 하느님! 내가 그 말의 엉덩이에 걸터앉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의 선량한 친구, 이 세상에는 그것 말고 다른 천국이 없어요. 사제들이 하는 말을 믿지 마세요. 그 외의 다른 천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p.190)

    밤은 추웠고 바다는 물결이 일어서며 노호했다. 금성은 동쪽에 희롱하듯이 매달려서 장난스럽게 춤을 추었다. 해변을 따라 걸으면서 나는 파도와 함께 장난질을 쳤다. 그들은 나를 적시려고 달려들었지만 나는 재빨리 피했다. 나는 행복했다.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야. 아무런 야망도 없지만 마치 모든 야망을 다 이룰 것처럼 아주 끈덕지게 일하는 것. 다른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지만 그들을 사랑하고 또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이제 크리스마스이니 잘 먹고 마시는 것. 그런 다음에, 혼자서, 모든 유혹에서 도망치면서도 머리 위의 별들을 다 소유하는 것. 왼쪽에는 땅, 오른쪽에는 바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인생의 최종적 성취를 달성했으므로, 인생이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갑자기 깨닫는 것.”
    (/ p.216)

    나는 과거의 어느 새벽에 우연히 소나무에 걸린 나비의 고치를 본 게 기억났다. 그것은 번데기의 껍질이 터져서 안쪽의 영혼이 막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것은 느렸고 나는 바빴다. 그 껍질을 내려다보며 내 숨결로 그것을 덥히기 시작했다. 나는 초조해하며 계속 숨결을 불어넣었고 마침내 기적이 내 눈 앞에서 부자연스러운 속도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껍질은 완전히 열렸고 나비는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나는 그 공포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날개는 밖으로 펼치지 못한 채 안으로 말려 있었다. 그 나비의 자그마한 몸뚱어리는 날개를 밖으로 펴려고 안간힘을 다하면서 떨고 있었다. 그러나 펼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숨결로 그것을 도와주려 했으나 허사였다. 그것은 햇빛을 받아가며 천천히 성숙하여 날개를 펼쳐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너무 늦었다. 내 숨결은 그 나비가 구겨지고 미숙한 상태로 예정 시간보다 빨리 나오게 만든 것이었다. 그것은 미숙아로 태어났고,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어대다가 곧 내 손바닥에서 죽고 말았다. 그 나비의 솜털로 뒤덮인 사체(死體)는 지금껏 내 양심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부담이 되어 왔다. 내가 그날 깊이 깨달은 것은 이러하다. 영원한 법칙을 촉진시키려는 것은 죽어 마땅한 죄이다. 인간의 의무는 자연의 영원한 리듬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 p.219)

    ‘내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이 부드러운 대지, 공기, 정적, 그리고 꽃피는 오렌지 나무의 향기를 즐기면서.’ 내가 성당 안에서 보았던 바쿠스 성인의 성상이 내 가슴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웠다. 나를 가장 크게 감동시키는 요소들-환경과 조화된 통합의 행동, 지속적인 노력, 일관성 있는 동경-이 다시 한 번 내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곱슬머리가 포도송이처럼 이마 앞으로 흘러내리는 이 기독교 성인의 우아한 성상에 축복이 있기를! 헬레네의 디오니소스와 기독교의 성인 바쿠스가 통합되었다. 그들은 동일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포도 잎사귀와 카속 아래에서, 햇볕에 그을린 동일한 유혹적 신체-그리스!-가 거센 흥분을 느끼며 일어서고 있었다.
    (/ p.329)

    “제우스는 어떻게 되었지요? 화제를 바꾸지 말아요.”
    “아, 그 불쌍한 친구!” 조르바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가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아는 사람은 나뿐이에요. 그가 여자들을 사랑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당신네 펜대 굴리는 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 사랑한 건 아니에요. 그건 전혀 아니라고요! 그는 여자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그 여자들 하나하나의 동경을 잘 이해하고 그래서 그들을 위해 희생을 한 겁니다. 그는 지방 오지의 근심하는 노처녀나 남편이 출타 중이어서 잠들지 못하는 구미가 당기는 귀여운 아내-설사 그녀가 구미가 당기는 여자가 아니라 빌어먹을 귀신같이 생겼더라도 상관없어요-가 있으면 그는 너무 안타까워 성호를 그을 겁니다. 그는 그 여자들을 너무 배려하는 나머지 옷을 갈아입고 여자들이 머릿속에서 그리는 남자의 모습을 하고서 그 여자의 방에 들어갑니다. 정말이지, 그는 사랑 놀음을 별로 즐기지 않아요. 그는 종종 아주 피곤해하는데 다 이유가 있어요. 어떻게 그 불쌍한 친구 혼자서 그 많은 여자들을 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종종 내키기 않고 따분하고 몸 상태가 안 좋습니다. 보스, 혹시 여러 마리의 암염소를 상대하고 난 후의 숫염소를 본 적이 있습니까? 그놈은 침을 질질 흘리고, 눈빛은 흐려져서 눈에서 진물이 나오고 기침을 하면서 찢어지는 소리를 내고 네 발로 서 있을 만한 힘도 없습니다. 불쌍한 제우스가 때때로 그런 상태라니까요. 그는 새벽녘에 집에 돌아와 이렇게 불평합니다. ‘젠장, 언제 편안히 침대에 누워서 잠을 좀 자볼 수 있을까? 이거 두 발로 서 있을 힘조차 없는걸.’ 그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내기 바빠요. 그러다가 느닷없이 그는 여자의 한숨 소리를 듣습니다. 저기 지상에서 어떤 여자들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베란다로 나와서 신음을 하고 있는 겁니다. 갑자기 제우스의 가슴은 부드럽게 녹아내립니다. ‘좋아, 다시 지상에 내려갔다 오자.’ 그는 혼자 중얼거립니다. ‘힘들지만 지상에 다시 한 번 다녀오자. 여자가 한숨을 쉬고 있네. 내려가서 위로해 주어야지.’ 그래서 그런 여자들 때문에 그는 녹초가 되어버립니다. 허리는 아프고 완전 죽을 지경인 거예요. 그는 거듭하여 구토를 하고, 전신 마비가 되더니 버킷을 걷어차 버렸어요. 이어 그의 후계자인 그리스도가 등장했습니다. 전임자 신의 곤경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는 선언했습니다. ‘여자들과는 거래를 하지 말자.’”
    (/ pp.356~357)

    불쌍하고 불운한 존재인 인간은 그 자신의 영혼 주위에 높고 침입 불가능한 방어 시설을 쌓아올린다. 그는 그 자그마한 영역을 요새로 강화해 놓고 그 영역 안에서 그 나름의 일상적인 영육간(靈肉間) 생활에 질서와 안전을 부여한다. 그 영역 안에서 모든 것은 기존의 도로와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하고 간단하면서도 분명한 규칙들을 준수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벌어지게 되어 있는 일을 다소의 확실성을 가지고 예측할 수 있고 또 우리가 자기 이익을 유지하면서 행동하는 방식을 미리 설정할 수 있다. 인생을 둘러싼 신비의 갑작스런 습격에 단단히 대비하는 이 영역 안에서, 우리가 예측하는 확실성이란 실은 자그마한 지네가 갖고 있는 확실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단 하나의 아주 무섭고 또 아주 많이 미움을 받는 적(敵)이 있다. 그것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지각 있는 피조물이든 지각없는 피조물이든 가리지 않고 체내에 원천적인 저항감을 느끼는 적이다. 그것은 위대한 확실성(죽음.-옮긴이)이다. 이제 이 위대한 확실성이 내 영혼의 1차 방어 시설을 뛰어넘어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 p.467)

    5년이 흘러갔다. 그 길고 끔찍한 세월 동안에 지리적 경계들이 춤과 합류하고, 시간이 가속화하고, 국가들이 아코디언처럼 퍼졌다가 접혀졌다. 조르바와 나는 폭풍우 같은 한 시기에 휩쓸려 사라졌다. 기근과 공포가 개입했다. 나는 첫 3년 동안 그로부터 간단한 엽서를 가끔씩 받았다. 때로는 성산(聖山)에서 보낸 엽서도 있었다. 커다란 슬픈 눈과 단단한 의지의 턱을 내보이는 파나기아 포르타이티사의 삽화가 든 엽서에서, 그는 종이를 찢어버릴 듯한 두텁고 묵직한 필체로 내게 소식을 전했다. “보스, 여기서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여기 수도사들은 너무 똑똑해서 벼룩에게 편자를 박으려 해요! 나는 떠날 예정입니다.” 며칠 뒤에 보내온 또 다른 엽서. “앵무새 조롱을 들고서 수도원들을 여행할 수가 없어요. 내가 마치 복권 판매상인 것처럼 보이니까. 그래서 그걸 새 좋아하는 수도사에게 주어버렸어요. 그는 검은 새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 새는 성가대원처럼 ‘주님, 제가 당신에게 울부짖사옵니다!’라고 성가를 부른다고 해요. 저 악당! 저 친구는 내 앵무새한테도 성가를 가르칠 거예요! 저 빌어먹을 앵무새는 한평생 타락한 꼴만 보아 왔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성가라니. 이봐 앵무새, 자네 이제 사제가 되었구먼. 저주를 받으면 그런 결과가 오는 거지요. 우정의 포옹과 키스를 보냅니다. 알렉시스 신부, 저 혼자 단독으로 가는 수도사.”
    (/ p.477)

    이처럼 내가 혼자 있으면, 위안을 얻는 순간이면 조르바가 내 잠 속에 나타났다. 나는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그가 왜 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심장은 빠르게 뛰놀면서 터질 것 같았다. 갑자기 그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내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동시에 나는 우리 두 사람이 크레타 해변에서 함께 보냈던 생활을 재구성하고, 내 기억에 압박을 가하여 그 흩어진 대화, 외침, 동작, 웃음, 눈물, 조르바의 춤 등을 모두 기억해 내고 싶은 강력한 욕망, 아니 욕구에 사로잡혔다. 그 모든 것을 잘 갈무리하여 온전하게 보관하고 싶었다. 나의 이런 욕망은 너무나 강렬하고 급작스러운 것이어서 나는 이게 혹시 요사이 지구상 어딘가에서 조르바가 죽음의 단말마적 고통을 견디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만약 내 영혼이 그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 중 어느 하나가 상대방을 전율하게 하고 비명을 내지르게 하는 것 없이 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 p.484)

    저자소개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zantzakis)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883.02.28~1957.10.26
    출생지 그리스
    출간도서 77종
    판매수 51,289권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린다.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으며, 터키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사상적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은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닫는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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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54~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지금까지 25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번역 입문 강의서 『번역은 글쓰기다』, 『살면서 마주한 고전』 등을 집필했으며, 옮긴 책으로는 『유한계급론』(소스타인 베블런), 『진보와 빈곤』(헨리 조지), 『리비우스 로마사 I, II』, 『로마제국 쇠망사』, 『고대 로마사』, 『숨결이 바람 될 때』, 『변신 이야기』, 『작가는 왜 쓰는가』, 『호모 루덴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중세의 가을』, 『동물농장』 등이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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