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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전당 시인선〉 0252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2004년 《시인정신》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성규 시인의 시집. 시집 한 권으로 펼쳐내는 투명하고 맑은 숲은 이 시대에 지나쳐선 안 되는 것들로 우거져 있다.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이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운 세계 속에는 여전히 생명의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그것은 관찰에 지나지 않고 자신의 어두웠던 삶에 불을 켜고 살아갈 자리를 정비하는 시인의 의지로 번져나간다. 꾸밈없이 언어를 입고 태어난 그의 숲과 무수히 많은 생명력이 숨 쉬는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다시 봄,
겨울이 길었다지만
아름다웠던 것들을
가슴에 묻어
싹을 틔우리라
새싹이 돋으면
못다 부른 노래를 부르리라
언 땅에 돋아나는 새싹들처럼
희망의 노래를 부르리라
구름도 바람도 쉬어 가도록
노래를 부르리라

고향의 봄은
늘 따뜻하니까.

박지영(시인 문학평론가)
박성규 시인의 시는 언뜻 보아서는 직설적인 화법에 언어 표현의 묘미도 두드러지지 않아 단순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박성규 시인만의 독특한 어법이다. 특히 농담(濃淡)에 얹힌 삶의 시학은 시적 울림이 매우 크다. 어찌 보면 동심(童心)에서나 볼 수 있는 언어 표현이지만 그 나름의 긍정성과 투명성을 가지고 있다. 그 명징한 언어 표현이 그의 서정과 맞물려 또 다른 울림을 빗어낸다. 달과 별, 종다리, 메뚜기, 피마자, 쑥, 접시꽃, 수련을 보면서 맑은 마음을 길어 올려 자연과 소통하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에 평생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 고향 경주에 집을 짓고 들어앉았다. 오라고 한 적 없는 고향이지만 거기 살며 못다 부른 노래를 부를 거라고 다짐한다. 못다 부른 노래란 그가 앞으로 쓰고자 하는 詩이리라. 고향에 둥지를 틀고 자연에 몸을 담고 순리에 적응해 가는 그의 모습이 선연하게 그려진다. '우주 저 먼 곳까지 내가 주인이 되는 곳에 터를 잡으니 황제가 따로 없다'([황제가 되다])고 했듯, 고향 경주에서 신라의 향기가 배어나는 새로운 시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시인의 말

제1부
달구지 13
나는 유령 14
슈퍼문 15
형산강의 별 16
뻐꾸기 울던 날 18
실종신고 19
그날 밤의 악몽 20
피마자 22
실수의 변명 23
숨바꼭질 24
새싹들의 소야곡 26
우편엽서 27
이웃사촌 28
순리 30
미련 31
흥정 32

제2부
거울을 보다가 35
유전법칙 36
움막 설계 37
경계측량 38
동짓날의 비애 39
달의 밥 40
가방 42
그늘도 막이 있다 43
자정 44
황제가 되다 46
타타타 47
동지(同志) 48
감기몸살 49
촌놈 연습 50
용맹정진 51
입춘 52

제3부
별 하나 나 하나 또 하나 55
입택 56
스러진 길 57
짜스기 마랴 58
주전의 달 59
체면치레 60
사랑을 읽다 62
몽환의 흔적 63
국민교육헌장 64
백로 66
눈싸움 67
생존기술 68
까치밥 69
늦가을 소묘 70
소나기 오던 날 71
황혼을 찾아가는 길 72
우리 땅 74

제4부
모내기 77
지진, 그 후 78
일기예보 79
방하착(放下着) 80
전입신고 82
브레이크 달린 눈 83
나비의 랩소디 84
은하수 85
표정관리 86
청춘 87
하루살이를 쓸어내다가 88
장돌뱅이 89
실업급여 90
꿩 대신 닭 91
벽돌 쌓기 92
고민 93
초원 궁전 94
내가 할 수 있는 일 95
수북3길 27_8 96

해설 | 농담(濃淡)에 얹힌 삶의 시학 97
박지영(시인·문학평론가)

농담(濃淡)에 얹힌 삶의 시학


『이제 반딧불을 밝혀야겠다』에서는 고향마을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자연에 자신을 빗대어 보고 있다. 「고민」의 접시꽃이나 「동지」의 송아지나 「입춘」의 까마귀까지 다 그의 ‘동지’들이며 시인의 주변에 있는 자연은 다 그의 식솔들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어린아이 같은 시심(詩心)을 대할 수 있어서 슬며시 미소 지으며 긴장했던 마음을 해제시킨다.

힘없는 눈으로 두리번거리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면 피해버린다
그러다가 다시 눈이 마주치면 눈싸움을 한다
서로 지지 않으려 핏기가 어리도록 용을 쓴다

그러기를 서너 번
힘주었던 눈을 해방시키고 나니
하늘이 어두컴컴했다

눈이 오면
다시 눈싸움 해야겠다

?「눈싸움」 부분

농담은 긴장하고 있던 제3자를 무장해제 시킨다. 「눈싸움」에서 보듯 농담은 무의식적인 것이 시어를 통해 즉각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농담은 이해를 강요하거나 설명을 하면 농담에서 오는 즐거움이 반감된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농담이 언어의 망을 타고 흘러가는 것처럼 언어로 상징화되는 순간 언어에 의한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존재가 존재를 확인하는 시대
남이 불러주는 이름도
내 이름이라고 말 못한다

내가 거처하는 세상에는
유령들만 득실거린다

유령끼리 잘 어울려야 하는 시대
그 속에 내가 있다

?「나는 유령」 부분

화자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되뇌었겠지만 어떤 대답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유령」이란 시는 존재와 그 존재에 내포되어 있는 결핍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근원적인 주체의 결핍에 대한 시이다.

주체는 결핍으로 존재하고 그것은 존재조건 자체의 결핍이며, 누군가를 호명할 때 존재는 분열되고 따라서 결핍의 공간이 생기게 된다는 논리이다. 한마디로 말해 존재 결핍은 “존재가 존재를 확인하는”그런 결핍이다. 존재 결핍의 문제는 욕망과 관련이 있는데 욕망은 주체 밖의 존재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내의 결핍 때문에 결핍을 메우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