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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는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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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사노 요코의 명품 이야기 에세이

    [그렇게는 안 되지]는 사노 요코의 이야기 에세이집이다. 사노 요코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속사포 같은 수다의 향연은 이야기 에세이라는 형식에서 한층 더 빛을 발한다. 사노 요코의 무심한 수다 속에서 독자들은 인생에 대한 그 어떤 설교보다도 더 뻐근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구절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그려내는 생생한 풍경과 그러한 풍경을 바라보는 사노 요코의 시선이 겹쳐지면서 만들어지는 전체적인 그림은 명화를 감상하듯이 구석구석 차분하게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출판사 서평

    수다로 득도한 사노 요코의 명품 이야기 에세이

    '그런데,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야기 에세이란 거, 무섭다. 이것이 만약 보통의 에세이였다면, 어떤 등장인물도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 에쿠니 가오리, '해설' 중에서

    [그렇게는 안 되지]는 사노 요코의 이야기 에세이집이다. 사노 요코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속사포 같은 수다의 향연은 이야기 에세이라는 형식에서 한층 더 빛을 발한다. 픽션의 형식을 빌렸지만 소재들은 사노 요코의 일상생활과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다. 가족과 친구들, 우연히 카페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 해외 단체 여행의 동반자, 젊은 시절 사기를 당했던 사기꾼, 헤어진 남친을 뺏어간 매력녀, 이혼 서류에 도장 날인을 요구하는 전 남편, 도쿄대에 갈 줄 알았던 아들이 삼류대학에 들어가 질질 짜는 엄마... 실로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인상적인 이야기들 속에는 특유의 관찰력으로 인물을 파악하는 사노 요코의 시선이 있다. 단지 관찰하는 것만이 아니라 당연히 사노 요코도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일상적인 삽화가 대부분이지만 동화 같은 우화도 있고, 베스트셀러 그림책을 낸 뒤의 자신의 내면에 대한 환상적이면서도 쓸쓸한 여행담, 순수한 픽션에 이르기까지 소설과 에세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넘나들며 '아 자유롭구나' 하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드는 글들이다.
    사노 요코의 원래 전공은 그림이다. 출중한 문재로 그림책만큼이나 많은 훌륭한 에세이들을 남겼지만 사노 요코의 언어는 삶의 양상을 눈에 보이듯 그려 보이는 그녀의 또 하나의 붓이요 물감이다. 그리고 거침없이 그 붓을 날카로운 가위처럼 휘둘러 쓱쓱 이야기를 잘라낸다. 절묘한 호흡으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솜씨로, 타고난 감수성과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으로 이야기들은 마치 한 장 한 장의 그림이 모여 애니메이션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듯이 분방하면서도 발랄한 생기를 내뿜는다.

    명화처럼 빛나는 이야기의 화첩

    [그렇게는 안 되지]에 실린 이야기 에세이들의 발랄한 생기는 주로 북적거리는 여자들에게서 온다. '강렬하기 짝이 없는 마치코 씨를 비롯하여 화려하게 꽃을 짓밟는 마리에 씨, 173센티미터인 것이 굉장한 데다가 머리는 대담하게 1.5센티 길이로 자른 빠글빠글 파마머리에 너무 착하게 컸고 너무 의젓한 가오루 씨, [배, 당당하게]에 나오는 여고 동창생들...' 읽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일 정도로 분 냄새 후끈한 여자들이 '남자라든가 돈이라든가 한창 나이의 자녀라든가 늙은 부모라든가, 제각각 머리 아픈 문제를 떠안고 울거나 소동'을 피운다. 여자들의 독특한 활력은 그들의 쩨제하고, 허세 만만하고, 연애에 사족을 못 쓰고, 어리석고, 억척스럽고, 때로는 독선적인 그들의 삶에서 나오지만 그럼에도 묘한 감칠맛이 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인생에 대한 비장감 같은 것을 주는 게 아니라 그저 독자들을 어이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 어이없음 뒤에 삶에 대한 따듯한 시선과 위로를 읽는 이에게 남긴다.
    사노 요코의 무심한 수다 속에서 독자들은 인생에 대한 그 어떤 설교보다도 더 뻐근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구절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그려내는 생생한 풍경과 그러한 풍경을 바라보는 사노 요코의 시선이 겹쳐지면서 만들어지는 전체적인 그림은 명화를 감상하듯이 구석구석 차분하게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옮긴이의 말마따나 '한 점 한 점 오려서 액자에 넣고 나만의 방 속에 걸어 놓고 봐도 좋을, 빛나는 이야기의 화첩'이다.

    '글을 읽으며 인간이란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또 인간은 슬프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사노 씨의 문장은 독자를 비관에 빠지지 않게 하는 생명력이 있다. 그것은 달관한 척 잘난 체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체념하는 것 또한 아닌, 뭐랄까 페어한, 탄력이 있는, 솔직하고 크고 진실한, 사노 요코 그 자체임에 틀림없다. 문장에 생명력이 스며 있는 것은 그 안에 사노 요코가 스며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 에쿠니 가오리, '해설' 중에서

    목차

    1
    안경
    그 사람
    로맨틱 가도

    그렇게는 안 되지
    사랑은 이긴다
    닮았을 뿐이야
    밤새 안녕하십니까
    뭉클했어

    플라스틱 양동이의 남자
    갑자기 달린다
    나의 죄
    뉴욕 뉴욕
    고로
    만주
    곳간 안의 은자
    어디로 갈까
    잘 잤어요?
    어머니의 다리
    그럼 이만
    노파
    포르셰 마크 II
    다마가 죽었다
    배, 당당하게
    라면
    입술
    어리마리
    울지 않는다
    다섯 번째 여자
    구두
    긴쓰바
    이쪽은 계단밭, 쭈-욱이야

    2
    어떤 여자

    해설 - 에쿠니 가오리
    옮긴이의 말

    본문중에서

    아버지가 누군가의 부인을 "학처럼 늘씬한 여자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다 말고 언짢은 말투로, "네에, 네, 나는 멧돼지 같고요" 하고, 학처럼 아름다운 여자의 흉을 봤다. 난 어머니가 싫었다. 글쎄 내가 보기에도 그 사람은 정말 쭉 뻗은 것이 예뻤는걸. 난 언제까지나 그 사람을 바라보고 싶었는걸.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친구에 대해서, "그 애는 얼굴이 못생겼더구나. 앞으로 엄청 고달플 거다"라고 말하곤 했다. 난 아버지도 싫었다. 그렇지만 난 친구라도 예쁜 아이인 쪽이 좋았다. 나랑 비슷한 정도면 그래도 낫다. 나보다 예쁘지 않은 아이에게는 짜증이 났다. 난 예쁜 아이가 좋은데, 예쁜 아이를 봐도 짜증이 났다.

    더 커서, 난 연애란 예쁜 사람만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예쁘지 않은 사람도 연애를 하는 것이었다. 예쁘지 않은 사람이 연애를 하면 음란하게 보였다. 그래서 예쁘지 않은 사람이 연애하는 것을 보면 불쾌했다. 그래서 나는 그저 가만히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연애를 했다. 나 자신이 멋있어진 기분이었다. 단숨에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에 물었다.
    "나, 예뻐?"
    "얼굴 같은 거 난 신경 안 써"
    하고 그 사람은 말했다. 나는 기쁘고 분했다.

    그 사람은 내가 연애한 사람과 결혼했다. 나한테 "얼굴 같은 거 신경 안 써"라고 말한 사람과. 난 울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아 그래, 어쩔 수 없지, 글쎄 그렇게 예쁜걸 뭐. 게다가 다정한 눈을 하고 있었는걸. 그러고 얼마 지나서 울었다. 아주 조금. 아무도 밉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쓸쓸해서 울었다.

    이시다는 파를 닮았다.
    파의 뿌리 같은 머리를 가늘고 긴 몸 위에 얹고, 파의 잎 같은 다리를 휘청휘청 앞뒤로 움직이면, 그것이 이시다가 걷는 모습이다. 때때로 파 전체를 신문지로 싼 것 같은 코트를 입는데, 그때는 아직 여물지 않은 야쿠자 똘마니로 보인다. 게다가 새카만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니 정말 어느 조직에 속한 젊은 양아치인가 싶다. 물론 나는 실제로는 그런 젊은 양아치를 한 명도 아는 바가 없으니 실제로 조직에 속한 사람은 좀 더 건실하고 빈틈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발코니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저거, 에게 해라고. 웃음이 절로 나오네. 아무한테도 말 안 했지만, 내 새 그림책, 앞으로 10만 부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따라잡는다니까. 앗하하하. 사쿠라가오카의 은행에서 매일 달그락달그락거리며 컴퓨터가 내 통장의 0을 늘리고 있을 거다. 앗하하. 언제 죽어도 좋아. 여기는 돈 쓸 일도 없으니 더 좋네.

    나는 곰 우리 앞에서 곰 사진을 찍었다. 곰은 거의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두 발로 일어서거나 우리를 신기한 듯이 보거나 했다. 그러다가 풀썩 양다리를 앞으로 뻗고 앉아 하품을 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달려가 다른 곰과 치고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이서 하늘을 쳐다보고 쿠오오 쿠오오 울부짖었다. 온몸의 가죽이 굼실굼실 펄럭였다. 그러고는 따분하다는 듯이 털썩털썩 네발걸음으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온천욕을 하는 할아버지 같은 얼굴을 하고 눈을 멀뚱멀뚱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늘 신문을 보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재를 재떨이 바깥에다 털곤 했었지. 나는 노상 "봐요, 재는 재떨이 안에다 떨어야죠" 하고 잔소리를 했다. 난 그 사람의 얼굴이 좋았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밖에 나갔을 때는 키 크고 좀 잘생긴 그 사람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이거 내 거야 하는 얼굴을 하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난 물에 비친 달을 휘젓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데도 나는 깔깔 웃으면서, 이걸 어쩌지, 귀찮게 됐네, 난 고등학교 정말 싫었는데 하는 생각을 한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불편할 것 없었던 고등학교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연락책이야."
    "탁월한 총무였으니 어쩔 수 없지."
    이건 꽤나 대담한 어림짐작이다.
    "어머, 너 잘도 기억하는구나."
    내가 생각해도 놀랍다. 맞혔다.

    "정말이야. 그래도 드디어 끝났어. 정말이지 그야말로 이건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말해줘도 모를 거야. 우리 집은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둘 다 치매가 왔어. 두 분이 차례로 죽을 때까지 8년 걸렸어. 치매가 겹친 기간이 1년 반. 하나는 밖으로 튀어나가지. 순찰차 부르는 사이에 다른 하나가 응가를 벽에 문질러 바르지.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니까. 하지만 다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거짓말 같아."
    "넌 시아버지였으니까 정말 힘들었을 거야. 나는 친정엄마. 놀랐던 게, 글쎄 손님이 와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나 싶더니 엄마가 옷을 홀랑 벗고 서 있는 거야. 그래도 신통하게 두 손으로 앞은 가리고 있었어."
    "어머나, 가리는구나. 그렇게 돼도."

    가오루는 굉장하다. 첫째로, 키가 173센티미터인 것이 굉장하다. 그 장신을 당당하게 한껏 꾸미는 것이 훌륭하다. 싸구려 티셔츠에서부터 잇세이미야케까지를 종횡무진 누비는데, 머리는 대담하게 1.5센티미터 길이로 자른 빠글빠글 파마머리다. 패션모델로 보이지 않는 건 머리가 조금 크기 때문인데, 따라서 얼굴도 크고 그래서 입술도 당연히 거대하다 해도 좋다.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 큰 입술에 착실히 립스틱을 바른다.
    아오야마 거리를 황새걸음으로 휙휙 걸어가면 시골 촌놈은, 과연 도쿄야, 멋있는 여자가 있어, 하며 관광버스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감탄하게 마련이다. 돈 씀씀이도 대단하다. 55만 엔을 갖고 나가 20년대의 스팽글 달린 꿈같은 앤티크 드레스를 한꺼번에 세 벌을 사온다.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가도 돼?" "언제?" "지금." "아니, 일은 어쩌고?"
    가오루는 전화 너머에서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지금 갈게."
    인간이란 한심하고 딱하며 삐딱하고 종잡을 수 없는 존재라서, 이런 전화가 걸려오면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온몸에 힘이 넘치기 시작한다. 나는 갑자기 기운이 넘쳐서 냉녹차를 만들고 냉장고의 멜론을 꺼내 의욕적으로 자른다.
    173센티미터의 여자는 불량한 선글라스를 끼고 현관으로 들어왔다.
    "미안. 아무리 해보려 해도 일을 할 수가 없는 거야."
    선글라스를 벗으니 눈이 붓고 붉어져 있다.
    "뭐 마실래? 녹차가 좋을까, 커피로 할까?" "다 필요 없어." "멜론도 있는데." "필요 없어." "어떻게 된 거야?" "아키라가 바람을 피웠어."
    좋았어. 기대했던 대로다.

    "그게 말이지, 아키라가 아니라 그 여자 쪽이 아키라를 건드리는 모양이야. 아키라가 난처한가봐. 갈팡질팡이야."
    피 솟고 살 떨리는 굉장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나 웬걸, 덩치 큰 가오리가 느릿느릿 천천히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아-함 아-함 아-함 하고 하품이 나오려고 한다.
    "끔찍한 얘기지. 그 여자는 이름이 아오야마 유미코래. 프랑스어 번역을 하면서 완전히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결혼 생각은 없지만 아이는 갖고 싶다고 한대. 그것도 아키라의 아이를 원한다는 거야.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해?"
    "정말 너무하네."
    하지만 나는 소파 위에서 그 피 솟고 살 떨리는 드라마를 들으면서도 이제는 몸이 옆으로 축 늘어져서 쿠션을 끌어안는다.

    마치코는 미국 회사에 다닌다.
    "너, 영어 가르쳐줄래?" "좋아" 우리 집의 지저분한 3평짜리 방에 나는 친구를 한 명 더 불러서, "디스 이즈 어 펜"을 시작했다. "안 돼, 다시." "아아아-, 한 번 더" 하고 마치코는 제법 엄격하다.
    "미스 오가타? 하우 올드 아 유?" "아임 서티포-. 앤드 하우 올드 아 유?" 돌연 마치코는 탕 하고 책상을 치고, "돈트 애스크 미" 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와아, 대단하다. 깜박 하고 말할 만도 한데, 절대로 자기 나이 말 안 하네."

    신은 마치코를 버리지 않았다. 교양, 지성, 사회적 지위, 감성 나무랄 데 없는 남자가 마치코의 연인이 됐다.
    "그 사람, 이상해."
    "왜?"
    "오면 바로 날 만지고 싶어 해."
    "당연하지."
    "어라-, 모두 그래?"
    "당연하지요."
    "글쎄, 마치 그것만을 위해서 오는 것 같다고.""좋잖아. 고마운 일이야."
    "나는 좀 더 로맨틱하게 하고 싶은데."
    "예를 들면?"
    "음악을 황홀하게 듣는다든가."
    "음악을 황홀하게 들으면 만지고 싶어질 텐데."
    "징그럽잖아."
    "글쎄, 징그러운 짓을 하고 싶어서 연인을 만드는 거 아닌가?"

    '여차' 할 때에 '남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차' 할 때를 위해 남자는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 마치코의 유일한 철학이며 신념이며 사상이며 결의이며 강박관념이며 알기 쉽게 말하면 입버릇이다.

    "미국인 훈남한테서 식사 초대를 받았어. 이게 웬일, 하고 의욕이 넘쳐서, 회사 휴가 내고 미용실에 가고 온 집안을 뒤집어놓으면서 옷 골라서 거울에 비춰봤더니 말이야, 가슴이 좀 부족한 거야. 그래서 브래지어를 두 개 했어. 그리고 멋지게 호텔 오쿠라에서 풀코스로 식사를 했어. 식사가 끝나자 방에서 술 마시자는 거야. 좋-아, 좋-아 하고, 신이 나서 방까지 갔어. 당연히 분위기가 그럴듯해졌는데, 난 헉 하고, 집에 갈래요 하고 서둘러서 돌아왔어. 완전 실수였어."
    "뭐가?"
    "브래지어를 두 개 했잖아. 하나만 했어야 했는데."
    "아이고, 브래지어 두 개는 됐고, 기요시는 어떡할 거냐고 기요시는?"
    "여기서 기요시 얘긴 왜 해? 뭐 어때? 나 좋다는 사람 있으면 신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아, 그 사람이 이번에 홍콩에 같이 가자고 하는데, 그 사람 브래지어 한 개면 지난번하고 다른 거 알아차릴까?"
    알게 뭐냐.

    "네가 부끄럽다고? 좀 더 근본적인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해, 난."
    "근본적인 거라니 뭘?"
    아-아-아-.
    말해줄까? 넌 인색함과 욕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어. 한 번쯤 선물을 가져와 봐. 아니 한 번쯤 랩에 1회 분량의 녹차라도 싸서 가져와 본 적 있어? 몇 십 년이나 밖에서 밥 먹을 때 넌 내게 밥 한 번 사주는 건 고사하고 네가 먹은 밥값도 낸 적이 없어. 넌 뭔가 호르몬 부족으로 정서가 메말라서 남자한테 빠지지도 못하고, 그런데도 아예 연애감정이란 게 없어서, 그걸 별로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아 분해라. 내 월 수입의 세 배는 되는 월급을 받잖아. 한 번쯤 나한테 밥을 사라고.

    "하지만 계속 자유롭게만 살다 보면 가끔은 어디엔가 매이고 싶어. 난 헌신하는 타입이야.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그야말로 이루 다 쓸 수 없을 만큼 남아돌아. 그런데 기요시는 뭐든 스스로 하는 사람이라 내가 헌신해서 해줄 게 없어. 나 남자가 그렇게 부지런한 거 좋아하지 않아. 남자답게 그냥 떡 하니 버티고 있어주면 좋겠어. 내가 헌신할 수 있게. 아-아- 헌신하고 싶어라."
    "그렇게 남아돌면, 나한테 헌신해. 난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으니까."
    "어머, 싫어. 어이없어."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사노 요코(Yoko Sano)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8~2010
    출생지 중국 베이징
    출간도서 29종
    판매수 40,470권

    1938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그림 작가이자 수필 작가인 사노 요코는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돌아와 무사시노 미술대학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 1971년 [염소의 이사]를 펴내며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다. 주요 그림책으로 [100만 번 산 고양이], [아저씨의 우산], [내 모자] 등이 있고,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쓸데없어도 친구니까], [보잘것없어도 추억이니까], [열심히 하지 않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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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일어일문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전문 일한 번역 · 통역가로 활동 중이다. 번역 작품으로는 『반상의 해바라기』, 『거울 속 외딴 성』, 『달의 영휴』, 『펭귄 하이웨이』,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어쩌면 좋아』, 『그렇게는 안 되지』,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기억술사』, 『하루하루가 안녕이면 땡큐』, 『어두운 범람』, 『해피해피 브레드』, 『서른 넘어 함박눈』,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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