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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포 : 김종호 연작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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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종호
  • 출판사 : 문학실험실
  • 발행 : 2016년 12월 26일
  • 쪽수 : 15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9562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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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김종호 소설가 연작소설집 [디포]
“의미는 탈구되고 형식은 단순해지며 남는 것은 표현뿐이다.”
은둔과 실종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이야기 바깥으로 밀어내는, 김종호 소설이 지닌 특유의 미학으로의 초대.


쓰는 자가 읽고, 읽는 자가 쓰는, 이중 나선 위에 놓인 텍스트 [디포]

쓰는 자와 읽는 자 사이에, 소설이 놓여 있다. 누가 쓰고 누가 읽는가? 우리는 쓰는 행위로써, ‘씀’을 완성할 수 있는가? ‘디포’와 함께 마주하는 이 질문은 공허하지도 난해하지도 않다. “엉덩이로 이름을 쓰듯” 견뎌야 하는 치욕을 견뎌낸 자의 텍스트가 ‘이름’도 아니고 ‘이름 아닌 것’도 아니듯이, 이 소설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읽히면서 동시에 지워진다.

이제 무엇을 지울까. 강아지를 지웠다. 고양이가 눈을 번쩍 뜨더니 병아리에게 다가갔다. 암탉이 부리로 고양이를 콕콕 찍으며 막아섰다. 병아리들은 암탉 뒤에 조르르 모여 땅에 부리를 조아렸다. 고양이를 지웠다. 암탉과 병아리와 나와 아이가 남았다. 암탉을 지우자 병아리들이 우왕좌왕한다. 병아리를 한 마리씩 지웠다. 나와 아이가 남았다. 누구를 먼저 지울까. 나를 지웠다. 백지 안에는 아이만 남아서 울먹거렸다. 눈물을 그려 넣자 마음 놓고 울기 시작했다. 마음을 완전히 놓아버린 듯 크게 울었다. 울음소리를 써넣었다. 아이를 지웠다. 울음소리는 곧 사라졌다. 백지만 남았다. 이제 무엇을 지워야 할까. 백지를 지우자. 그래, 백지를 지워버리자. 백지를 지우자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태양만 남았다. 자기를 다 태워 먹을 듯 타오르다 자기를 다 태워 먹고 시커먼 숯덩어리만 남긴 채 태양은 꺼져버렸다. 그래서 다시는 해가 떠오르지 않았다. 캄캄한 밤이었다. 민낯을 보여주지 않는 밤이었다. 짐승들은 이제 더 구경할 것이 없겠구나 싶었는지 산 너머로 절룩거리며 사라져 갔다.
(/ pp.63~64)

난처에 은거한 소설가의 숙명 혹은 이야기의 숙명

윤경희 평론가는 김종호의 [디포]가 분명 은둔자 서사의 계보를 잇는다고 이해한다. 그는 이 소설이 “은둔하는 인간형을 거듭 불러내고 고쳐 쓰는 전략을 채택하면서 소설을 의태하려” 하며 “소설의 역사 속에서 또 하나의 주소지 없는 난처를 개간하려” 한다고 평가한다. 이는 실제로 이 작품집이 소설가 스스로 서울 생활을 접고 전라남도 곡성의 시골에 안착한 뒤, 밤의 저수지를 산책하며 써내려간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장의 곡진함이나, 작품의 감각적 무게가 만만치 않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난(難)처(處). 벤야민이 인용한 루카치에 따르면, 집 없음의 선험. 상상적 시공간의 좌표에서 자기가 유래하고, 거주하고, 귀환하는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 측량의 무능. 만약 소설가가 독거 은둔자라 한다면, 그것은 그가 타인의 일상 생활권에서 외떨어져 자족적으로 연명한다기보다는, 아무리 번잡한 세상 한가운데서 부대끼든 얼떨떨한 소외와 유리를 겪으리라는 뜻이다. 게다가 은둔과 독거는 소설가만의 실존 조건이 아니다. 벽난로 앞에 웅크려 앉아 소설을 탐독하는 독자도 그러하고, 공동의 체험이 와해되고 그것을 매개했던 서사 기술이 소실된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그러하다. […]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서 이야기꾼과 이야기 기술의 사라짐은 불가역적인 완료형이 아니라 다발적 진행형의 사건이 아닌가. 이야기꾼과 이야기는 거듭 사라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멀어지면서도, 그것들은 항상 잔존한다. 독거 은둔자는 멀리 사라지는 인간상을 의태하며 그의 잔존을 잠식하며 출몰한다.
('윤경희 작품 해설 중에서')

문학실험실이 준비한 '틂-창작문고' ‘콘셉트’ 작품집 시리즈의 두 번째 책

독립 문학 공간이자 비영리 사단법인인 문학실험실은 '틂-창작문고'의 첫 책으로 2016년 5월 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을 출간한 바 있으며, 이제 그 두 번째 책으로 김종호 작가의 연작소설집 [디포]를 세상에 내어놓는다.

문학실험실은 한국문학의 질적 발전과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기 위해, 도전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언어 탐구의 작업들을 기획하고 실천해나갈 목적으로 2015년 설립되었다. 앞으로도 문학실험실의 '틂-창작문고' 시리즈는 작가의식과 문학적 문제의식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양질의 작품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또한, '틂-창작문고' 시리즈를 새로운 문학의 거주공간으로 구축해 장르를 나누지 않고, 시, 소설, 희곡, 텍스트실험 등을 출간해갈 예정이다. 소설은 연작 형태의 단편 3~4편을 묶거나, 중편 소설 등이 선보일 예정이고 장르를 극복한 ‘텍스트 실험’과 그간 문학 현장에서 외면받아온 ‘희곡집’도 문학의 이름으로 과감하게 출간할 예정이다. 문학실험실의 '틂' 시리즈는 정성을 다한 양장 제본으로 꾸며졌지만 무겁지 않은 판형으로 가볍게 지니고 다니며, 어디서든 읽은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교양서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목차

디포의 주머니
디포의 계절
디포의 밤
디포의 디포

- 작가의 말 : 책, 표현주의
- 感 : 난처와 의태_윤경희
- 김종호 작가 저서 목록

본문중에서

이제 무엇을 지울까. 강아지를 지웠다. 고양이가 눈을 번쩍 뜨더니 병아리에게 다가갔다. 암탉이 부리로 고양이를 콕콕 찍으며 막아섰다. 병아리들은 암탉 뒤에 조르르 모여 땅에 부리를 조아렸다. 고양이를 지웠다. 암탉과 병아리와 나와 아이가 남았다. 암탉을 지우자 병아리들이 우왕좌왕한다. 병아리를 한 마리씩 지웠다. 나와 아이가 남았다. 누구를 먼저 지울까. 나를 지웠다. 백지 안에는 아이만 남아서 울먹거렸다. 눈물을 그려 넣자 마음 놓고 울기 시작했다. 마음을 완전히 놓아버린 듯 크게 울었다. 울음소리를 써넣었다. 아이를 지웠다. 울음소리는 곧 사라졌다. 백지만 남았다. 이제 무엇을 지워야 할까. 백지를 지우자. 그래, 백지를 지워버리자. 백지를 지우자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태양만 남았다. 자기를 다 태워 먹을 듯 타오르다 자기를 다 태워 먹고 시커먼 숯덩어리만 남긴 채 태양은 꺼져버렸다. 그래서 다시는 해가 떠오르지 않았다. 캄캄한 밤이었다. 민낯을 보여주지 않는 밤이었다. 짐승들은 이제 더 구경할 것이 없겠구나 싶었는지 산 너머로 절룩거리며 사라져 갔다.
(/ pp.63~64)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2000년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집필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설집 [검은 소설이 보내다] [산해경草], 장편소설 [인어공주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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