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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시집 『아침햇빛편의점』. 정영희 시인의 시 작품을 담은 책이다. 크게 4부로 나뉘어 있으며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을 작가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문학의전당 시인선〉 243. 2010년 《전남일보》, 201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영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이번 시집에서 그는 원형적 상상력을 지피는 언어의 긴장미와 숙련도의 폭과 깊이를 더하면서, 그 특유의 ‘통섭에 의한 타자와의 소통’을 더욱 세련되고 건강하게 구축해내고 있다. 그의 통섭은 대상과 새로운 눈으로 만나면서 새로운 발성법을 얻는다. 그 발성법 속에는 무한한 상상력과 직관이 내재해 있어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해주고, 관념을 배제하고 바라보는 시안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획일화된 삶 속에서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혼돈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법을 넌지시 귀띔해주면서, 어떻게 하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영희 시인이 들려주는 새로운 발성법이다. 그 발성법은 다분히 불온하지만 그 불온한 방법으로 세상을 새롭고 정직하게 읽어낸다. 포즈에 대한 통찰이며 내가 너를 향해 흘러들어갈 수 있는 통섭이다. 시집을 열면 정영희 시인이 담아놓은 통섭의 숨결과 화법이 우르르 몰려나올 것이다.

첫 시집 『선암사 해우소 옆 홍매화』를 상재한 지 삼 년 만이다.
고르는 일도, 쓰는 일만큼 고통스럽긴 매한가지다. 일상에 지고 피는 풍경마다 삶의 보고요, 생의 동력장치이니 따뜻하여 아름답다. 내 삶의 풍경 하나쯤 숨 쉬는 창으로 불러들였으면 좋겠다만 아직도 소갈머리가 없다.
순천만 파노라마, 갈대 물결로 난리굿인 철새들의 주막이 펼쳐져 있다. 노을이 찬란할수록 돌아가지 않는 몇 마리의 철새, 논바닥에서
이리저리 낟알을 뒤적거리느라 엽사(獵師)의 총구마저 까맣게 잊고 있다.
광화문 광장, 촛불이 환하여 뜨겁다.

신병은(시인)
정영희의 시편들은 삶의 우물에서 길어낸 이야기들이다. 낯설지만 낯익은 이야기다. 아낙네들의 다양한 화법의 공간인 ‘오래된 우물’은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은 말솜씨가 꽃피는 공간이자, “두레박 수사법”으로는 밝힐 수 없는 뜬소문의 공간이면서 삶의 갈증을 풀어주는 힐링의 공간이다. 그의 시는 하나같이 ‘오래된 우물’이다. 정영희 시인의 이번 시집은 획일화된 삶 속에서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혼돈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법을 넌지시 귀띔해주면서, 어떻게 하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새로운 발성법이다. 그 발성법은 다분히 불온하지만 그 불온한 방법으로 세상을 새롭고 정직하게 읽어낸다. 포즈에 대한 통찰이다. 내가 너를 향해 흘러들어갈 수 있는 통섭(統攝)이다. “문을 열자 누군가 슬어놓은 꽃숨들이 가득했어요”(「산수유 옆 간이우체통」)처럼, 시집을 열면 정영희 시인이 담아놓은 통섭(統攝)의 숨결과 화법이 우르르 몰려나올 것이다.

시인의 말

제1부

2월 13
감이 열리는 집 14
맛있는 노을 15
11월 16
가족관계증명서 17
검은딱새의 필력(筆力) 18
괜히 등이 가렵다 20
구례읍사무소 앞 팽나무 21
견인유감(牽引有感) 22
결핍유감의 시대 23
아침햇빛편의점 24
겨울 산 26
고귀한 식탁 27
9월이 오면 28
가벼워진다는 것 29
그늘의 평수 30

제2부

나팔꽃세탁소 33
눈엣가시 34
꽃담 35
걸어가라, 그냥 36
그해 여름 38
나무처럼 39
노량진, 어느 골목쯤엔가 40
누가 세 들어 살고 있다 42
다림질 43
그 섬은 따뜻했네 44
꽃 진 자리 46
단 한 줄의 유언을 쓰려거든 47
달 48
달맞이꽃주유소 50
달콤한 치과 51
무등서설(無等序雪) 52

제3부

마른 꽃 55
진달래기차가 타고 싶다 56
일용근로자 대기소에서 57
닭의 생활사 58
풍경이 숨 쉬는 창(窓) 60
한 숟갈 퍼 담으시지요 61
마지막 축제 62
문신(紋身) 63
수평의 힘 64
문자(文字)를 걸다 65
물레 돌리는 시간 66
미루나무 아래로 68
보도블록이 있던 자리 69
빨리 오는 봄 70
무질러갈수록 더 좋다 71
사라진 부처 72

제4부

초복(初伏) 75
산수유 옆 간이우체통 76
상사화에 대하여 78
슬픈 전설 80
오래된 우물 81
솟대 82
위대한 포식자 84
첫사랑 85
신몽유도원도(新夢遊桃源圖) 86
엽서 한 장 88
춤추는 리본 89
열다섯 살 90
폐교장(廢校場)에서 92
환승역에서 93
마지막 여물 94

해설 | 세상의 안부를 묻다, 통섭(通涉) 그리고… 95
신병은(시인)

세상의 안부를 묻다, 통섭(通涉) 그리고…

우리 삶에서 어떤 경우에도 ‘인간’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고 본다. 시 또한 우리로 하여금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는 것, 살 만한 세상,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해 끊임없이 보여준다. 또한 시는 자연과 인간,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공통 언어를 찾는 소통시키는 통섭(通ㆍ통할통, 涉ㆍ건널 섭)이다. 통섭은 단순한 동반자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 상생의 논리를 다지는 통합이며, 다른 곳에서 이쪽을 더 잘 보게 하는 감정의 재발견이다.
이런 점에서 정영희 시인의 시의 몇 가지 키워드를 보면 ‘인간’, ‘통섭 그리고 융합과 퓨전’, ‘새로운 발성법’, ‘유비적 상상력과 투사’ 등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발상이 참신하고 언어의 경계가 분명하며, 은유의 기발함이 있지만 지나친 비약에 대한 견제가 있다. 온몸으로 밀어올린 울림이 있는 깊은 맛과 참신한 언어 구사는 물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응시가 있다. 정영희 시인의 시를 ‘시창작의 교과서’라 일컬을 수 있는 이유도 그만큼 대상을 만나 이해하는 속력이 빠를 뿐만 아니라, 대상과 대상을 매개하는 언어 직조력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여천공단 입구 주유소 옆에 아침햇빛편의점이 있습니다 어그러진 톱니의 아우성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컵라면과 라이터, 담배와 일회용 면도기, 칫솔에 양말, 검정봉지에 진공 포장된 어둠 몇 숟갈이 눈을 깜빡거립니다 하품에 재채기를 더하여 텁텁한 목감기까지 그러나 검정봉지를 지키는 편의점 불빛은 더디 오는 아침이 지루합니다 이제야 눈금 없는 시계가 정남북을 가리킵니다 야적장 폐타이어는 더 오를 곳이 없어 제 고집대로 굴러다닌 지 오랩니다 작업장의 높은 천정에 눈이 가물거리기도 했으나 자외선보다 더 따가운 불꽃의 폭력 앞에선 산소용접 마스크도 무용지물입니다

돌아가는 차량이 꼬리를 물면서 아침햇빛편의점이 부산해집니다 야간작업을 마친 이들이 이빨에 낀 어둠찌꺼기들을 이쑤시개로 걷어냅니다 쓴 입맛에 방금 눈곱을 뗀 흰 햇빛봉지를 한 개씩 집어 듭니다 집안 칙칙한 습기를 쓸어내기 위한 햇빛빗자루, 단잠에 빠진 아이들을 깨우는 햇빛과자, 아내 손금의 물기를 닦을 햇빛이 백 그램씩 포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낮잠을 무르익게 할 검정 수면용 봉지에 먼저 손이 갑니다 그 봉지에는 무거운 눈꺼풀이 찰싹 달라붙게 하는 수면용 어둠 백 그램에 일 그램의 햇빛이 들어 있습니다

아내의 배가 검정 수면용 봉지로 서서히 부풀어 오릅니다
-「아침햇빛편의점」 전문

제목부터가 시적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며 신선한 충격을 주는 표제작 「아침햇빛편의점」은 따뜻한 시적 감수성과 함께, 현대적 삶을 대변하는 공단 풍경과 편의점을 아침햇빛과 연결하는 세밀하고 애정에 찬 통섭의 눈으로 삶의 신성을 발견해내는 정밀한 언어 직조력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상이 발현된 비유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상상력이 없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어떻게 다르게 볼 것인가의 문제라면, 정영희 시인의 상상력의 원천은 예의 그 ‘통섭(統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여러 시들에서 통섭에 의한 유비적 상상력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상상력은 특히 개념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개념분석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내는 비결로써 대상과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확장되고 변이되기 때문에 이 또한 통섭이다. 관계 짓기, 투사하기를 통해 대상의 개념을 확장 변이시켜 삶의 이해를 돕는다.
정영희 시인의 상상력의 근저를 또 하나 눈여겨보면, 질문의 차이에 있다. 시는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란 점에서 작가는 작품 속에 질문을 담아놓고 독자는 작품을 통해 다시 또 다른 질문을 보태는 것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의 질문에 또 다른 질문을 보태는 것, 그래서 시의 완성은 독자의 몫이 된다. 시의 질문은 엉뚱할수록 더 즐겁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여 추상적 깊이로 나아가는 서구적 상상력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관계성을 중시하면서 과거 중시, 경험 안에서 사유하는 동양적 상상력에 닿아 있다. 관념어 하나 없이도 펄펄 살아있는 시, 삶의 건강함이 방금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몸을 파닥이는 시가 바로 정영희 시인의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