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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죄송한데요 : 이기준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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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기준
  • 출판사 : 민음사
  • 발행 : 2016년 12월 30일
  • 쪽수 : 163
  • ISBN : 978893742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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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십여 년째 사장이자 직원, 가장이자 주부로 지내 온 프리랜스 북디자이너 이기준이 첫 단독 산문집『저, 죄송한데요』. 간단한 일을 결코 간단히 넘기지 못하는 ‘쫀쫀한’ 화자의 성격은 1밀리미터의 세밀한 조정을 통해 2차원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가꾸어 나가는 그래픽디자이너의 천성이기도 하므로, 답답함보다는 소소한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저, 죄송한데요』는 우리 이웃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친근성, 그리고 주변에 없다면 주변에 두고 싶은 친근성이 새삼 매력으로 다가오는, 에세이의 정통적인 미덕을 잘 보여 주는 산문집이다. 간간이 등장하는 일러스트는 주인공의 외모는 물론 성격과 개성을 빼쏘았는데, 이 정도로 자기를 객관화하는 능력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지만,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사십 년 관찰해 겨우 얻은 결과물”이다.

출판사 서평

소심한 행동이라는 일각 밑에 숨은 빙산 규모의 망설임!
잘못은 하지 않았지만, 일단은 죄송합니다

“『저, 죄송한데요』는 좋아하는 외투 주머니에 슬쩍 넣고 함께 산책하고 싶은 책이다. 도시 생활인의 면면이 담긴 치밀하고도 익살스러운 일상에 첫 페이지부터 미소 짓게 된다. 세세한 아름다움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고 근사한 책이 우리를 찾아왔다.” ? 정세랑(소설가)

십여 년째 사장이자 직원, 가장이자 주부로 지내 온 프리랜스 북디자이너 이기준이 첫 단독 산문집을 소개한다. “사장으로, 직원으로, 가장으로, 주부로 지내는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고 큰소리치고 싶지만” 어느 입장도 온전히 체화하지 못했다는 그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풍요롭게 느끼는 태평한 성격이다. 북디자이너로는 꽤 명성을 쌓았지만, 에세이스트로서는 생경한 그의 이름은 이번 책 『저, 죄송한데요』를 통해 독자들에게 각인될 희망이 보인다. 속표지를 넘겨 차례가 나옴 직한 페이지에는 “아마 이쯤에서 차례가 나오리라 여기셨겠지요.”라는 화자의 문장이 독자의 방문을 반기는데, 마치 육성으로 읊어지는 듯하다. 말 그대로 이 책에 차례는 없다. 아무 페이지나 넘겨지는 대로 시작해도 무방한 장편집(掌篇集)이다. 다만 화자의 소심함과 쫀쫀함에 실소를 터뜨리다가도 몇 개 에세이를 읽어 가는 동안, 읽지 않은 꼭지를 빠뜨리지 않기 위해 어느샌가 첫 페이지부터 성실히 정독하게 되는 소박한 마력이 담겨 있는 책이다.
간단한 일을 결코 간단히 넘기지 못하는 ‘쫀쫀한’ 화자의 성격은 1밀리미터의 세밀한 조정을 통해 2차원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가꾸어 나가는 그래픽디자이너의 천성이기도 하므로, 답답함보다는 소소한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저, 죄송한데요』는 우리 이웃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친근성, 그리고 주변에 없다면 주변에 두고 싶은 친근성이 새삼 매력으로 다가오는, 에세이의 정통적인 미덕을 잘 보여 주는 산문집이다. 간간이 등장하는 일러스트는 주인공의 외모는 물론 성격과 개성을 빼쏘았는데, 이 정도로 자기를 객관화하는 능력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지만,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사십 년 관찰해 겨우 얻은 결과물”이다.

우스울 정도의 조심성과 배려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단순한 의식주에도 긴장이 고조되는 형국이 있고 기승전결, 클라이막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먹고, 입고, 자는 일이 이렇게나 복잡한 활동이었다니, 이렇게 복잡다단한 활동을 매일같이 반복하고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우리들을 칭찬하고 싶다. “언제부터 세상이 천재들로 넘쳐 나는지” 모르겠다는 저자의 먹고 입는 일을 소개한다.

저 좀 도와주세요! 눈앞에 햄버거가 있습니다. 높이가 20센티미터쯤 되어 보입니다. 입에 들어가기는커녕 손에 잡히기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이프와 포크가 세팅된 걸 보니 도구를 사용해서 먹으라는 뜻인가 봅니다. 아슬아슬하게 층층이 쌓인 내용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포크로 눌러 압력을 가한 채 나이프로 왕복 운동을? 이등분으로 썰기가 최선일 듯합니다. 내용물이 전부 쏟아져 내려도 괜찮다는 전제 아래서요.
두 덩어리를 한입 효과로 먹기 위해 허겁지겁 칼질하는 모습이 그다지 세련되지 않습니다. A와 B를 동시에 먹는 것이 원래 디자인된 맛이겠지요. 동작이 경박하고 게걸스러워 보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 과정이 중반에 치달으면 맨 밑에 깔린 빵은 소스에 범벅이 돼 짓이긴 밀가루 반죽처럼 보입니다. 하아…… 산란한 풍경에 눈을 감고 싶어집니다. 도중에 눈을 질끈 감는 행위 역시 햄버거 설계에 포함된 과정은 아닐 것입니다. ?21쪽에서
이 정도로 비에 대비할 작정이라면 우산을 챙기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다시 솟아오릅니다. 이럴 때 초심을 지켜야 합니다. 우산을 챙기지 않기 때문에 대비하는 것이니까요. 83쪽에서

적재적소에 도구를 썼을 때의 명료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먹는 법을 아직 익히지 못했음이리라. 입는 것 역시 마찬가지. 우산을 챙기면 날이 개고, 우산을 넣어 두고 나오면 어김없이 소낙비를 맞는 체험은 수천만 머피들에게 생경한 풍경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의 주인공은 우산을 챙기지 않을 요량으로, 생활 방수 소재의 재킷부터, 물이 밑창으로 새지 않는 구두, 자전거 페달 닿는 부분에 옷감이 새로 덧대진 바지를 입는 번거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자랑한다.

그 이웃이 겪는 일상생활 속 서스펜스에는 독자도 편집자도 식은땀을 흘린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서 “하루에 몇 끼 드세요?”라는 영양사의 단순한 질문에도 쩔쩔매는 주인공, 첫 번째 질문과 첫 번째 대답 사이의 간격이 참을 수 없이 길어지면서, 첫 번째 대답과 두 번째 질문이 더 가까워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지점에서는 손에 땀이 난다.
급성 식중독으로 데굴데굴 구르는 상황에서조차 첫 ‘들것’ 경험에 앞서 양말을 챙겨 신을지 자연스럽게 맨발로 오를지 고민하고, 고속도로에서 만난 생선 트럭 운전수의 넉살 좋은 제안 앞에서는 동선과 동작을 고심하여 생각할 시간을 번다. 모든 생활인(인간)은 모험가랄 만한 데다가, 때때로 진짜 모험다운 모험이 펼쳐지기도 하는 것이 인생인가 싶다.

영양사는 손가락을 자판에 얹은 채 제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립니다. 게다가 제 뒤로 대기자가 점점 늘어납니다. 한 질문에 쓸 수 있는 시간이라도 좀 알려 주면 좋겠는데요. “이제 삼십 초 남았습니다.” 하고 방울 종을 딸랑 울려 주는 센스를 바라는 건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의 투정일까요?

“그런데 사람 생활이 일 년 내내 같을 수는 없잖아요. 온갖 변수로 가득하고, 예외가 언제 생길지 모르는데 어떻게 일주일에 몇 번이라고 말하죠? 올해엔 두 번 생긴 일이 작년엔 다섯 번 생겼을 수도 있고 재작년에는 스무 번 생겼을 수도 있는데, 그걸 일주일로 압축해서 패턴을 찾는 일이 가능한가요?” “단순한 질문이라 보통은 바로바로 대답들 하시는데요.” 단순한 질문이라니……. 언제부터 세상이 천재들로 넘쳐 나는지 모르겠군요. 31쪽에서

들것에 실리기는 처음이라 출발지는 방이지만 병원에 도착하면 바로 병실 침대로 옮겨지는지 우선 맨바닥에 내려서야 하는지 모르니까요. 게다가 오줌이라도 마려우면 화장실에 가야 하고. 검색해 보려다 너무 유난 떠는 듯해 그만두고 상식적으로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응급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 맨발에 신발만 신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다 실려 가는 만큼 맨발이 아무래도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도 외출이랍시고 양말까지 챙겨 신고 온 걸 보면 간호사들이 놀릴지도 모르니까요. 95쪽에서

생선을 가져가라고? 돈도 안 내고? 팔찌 사기단처럼 포장 뜯게 해 놓고 나중에 돈 달라는 거 아냐? 그런데 정말로 그저 선심 쓰려는 사람의 뜻을 잘못 받아들이는 거라면? 그렇다면 의심 자체가 몹쓸 짓이겠지. 선의의 대가로 의심을 받는다면 사람 사이의 불신이 불어날 테고 이내 세상은 진짜로 혼탁한 곳이 되겠지. ……이건 옳지 않아. 좋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하지만 그 반대라면? 생선으로 꾀어 납치해 달아난다면? 아직 젊고 할 일도 많은데 별로 적성에 맞지도 않는 새우잡이를 하며 여생을 보낼 순 없잖아……. 131쪽에서

책을 덮으면 그 진지한 삶의 태도에 웃음기가 걷힙니다

엄마 아빠가 귀찮아할 정도로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 이상으로, 순진한 동시에 의구심 많은 어른의 이야기는 확실히 우습고 사랑스럽지만, 자동적으로 치르는 많은 일들 속에 사실은 부자연스러운 점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반문하는 에너지가 올바르고 정의로워서 반갑기도 하다. 정상은 언제부터 정상이었고 비정상은 언제부터 비정상이었을까. 동의를 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액티브엑스 같은 삶 속에서 때로 지치고 낮게 불평하고 싶어지는 때가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은가.

다만 ‘정상’이라는 소견에 한 가지 의문이 들 따름입니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거나 밥을 불규칙하게 먹은 결과로 위염이 생겼다면 정상이겠지요? 나이 먹는 세월만큼 줄곧 신체를 사용하기 마련이니 일부가 닳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정상이겠지요? 마흔 해 썼는데도 신품과 마찬가지라면 비정상이겠지요? 소견서의 ‘정상’이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일까요? 37쪽에서

“교환, 환불은 태그가 제거되지 않은 상태로, 구매 영수증을 가지고 십사 일 이내에 방문하시면 가능하십니다.” 사용 전이라면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고 사용 후에는 문제가 있더라도 교환이 불가능해지는 겁니다. 교묘한 술책 아닙니까. 인터넷으로 뭘 살 때마다 각종 ‘동의’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것처럼요. 말이 ‘동의’지 동의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데 그게 어찌 동의란 말인가요. 한편으로는 제 탓도 해 봅니다. 신발을 신었을 때의 느낌을 충분히 전달했나 하고요. 상대는 전문가일 뿐 점쟁이나 독심술사는 아니므로 제가 말하지 않은 사실을 몰랐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는 없겠지요. 41쪽에서

물론 모든 인생에는 교훈이 있고 뭇 교훈은 값지지만, 값진 만큼 무거워야 하는 것만도 아니다. 쫀쫀한 주인공의 행동 반경이 잘고 빈틈없기는 해도 치사하고 인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인생’은 비극적이고 곤란해도 ‘인생들’은 재미있고 따뜻한 희극풍이기 때문이다. 소시민적인 내 생활 밖으로 눈을 돌리면 나와 비슷한, 닮은, 답답하고 심심한 다른 인생들이 있고, 이 ‘인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만들어 낸 스펙트럼은 꽤 화사하다. 이 말쑥한 산문집에서 만나는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일화가 한 보따리입니다. 이쯤 되면 자신의 안목이 세상의 공감을 두루 얻으리라 확신하기 힘듭니다.
자,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디자이너를 찾아올까요? 당연히 디자인의 힘으로 상품의 위력을 높이려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취향이 대중과 거리가 얼마나 먼지 깨달은 마당에 어떻게 자신 있게 의견을 펼치겠습니까. 여기에 어설픈 겸손까지 더해집니다. 내 견해가 아무리 마땅해 보여도 어디까지나 내 견해일 뿐 다른 사람이 옳을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는 것. 이렇게 저는 제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 반쪽짜리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11쪽에서
디자이너는 쫀쫀해야 합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도 있지요. 글자 크기나 선 두께를 정하려고 소수점 아래 두 자릿수 수치까지 쪼개어 검토하곤 합니다. 폰트의 쉼표 모양이나 마침표 크기가 마음에 안 든다며 다른 폰트와 섞어 쓰는 건 다반사고 그 과정에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문자나 구두점의 높낮이를 맞추기 위해 기준선을 조정합니다. 중점과 대시 등 각종 약물의 전후 간격도 일일이 고칩니다. 149쪽에서

언젠가 세상을 지탱하는 질서를 발견하게 되리라 믿어 왔지만 그런 건 원래 없을지도 모릅니다. 뿌리 없이 둥둥 떠다니는 것들이 서로 맞물리는 힘의 아슬아슬한 균형으로 겨우 유지되는 곳이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153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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