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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향 시집 『좌회전 화살표』. 정이향 시인의 시는 그의 삶처럼 야무지고 단단하다. 사물을 통해 존재를 응시하는 눈이 따스하고 웅숭깊다.

바라보는 일보다 사랑해야 할 일이 많듯
시들지 않는 꽃을 기다리며
세상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너무 많습니다.
고단한 여행을 마치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오늘은 좌회전으로 핸들을 돌려
길을 떠나봅니다.

2016 해 저물녘
정이향

고영조(시인)
1987년 고향에 문학의 씨를 뿌린다고 ‘가향문학회’를 만들고 이듬해 ‘뜨락문학회’를 만들었다. 정이향 시인은 그 ‘뜨락문학회’의 멤버였다. 나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어 어언 30년이 다 되어간다. 격세의 감이 남다르다. 더구나 정이향 시인은 문학이란 동아줄을 끝까지 놓지 않고 첫 시집을 상재하고 내가 약평을 쓰게 된 것도 귀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상재된 그의 시를 일별하니 시 속에 내재한 따스한 시 정신이 가을밤에 반짝이는 농가의 불빛같이 정겹다. 대표적으로 「외가 가는 길」에서는 나와 어머니와 외할머니, 굴뚝의 흰 연기를 상호작용케 함으로서 비탈진 언덕길에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누던 계집애의 천진무구한 몸짓마저도 애잔한 그리움으로 치환한다. 그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첫 시집을 계기로 그의 시가 한층 깊어 질 것을 기대한다.

이상옥(시인, 중국 정주경공업대 교수)
정이향 시인의 시는 그의 삶처럼 야무지고 단단하다. 사물을 통해 존재를 응시하는 눈이 따스하고 웅숭깊다. 타자와 자아 간 경계 없이 넘나들고 때로 한몸이 되기도 하며, 시리고 아픈 실존을 위무하는 시적 아이덴티티는 분명 눈여겨볼 만하다.

제1부
바라보다·11
둥근 터널 속에는·12
바코드·13
진동시장에서·14
의자·15
목욕탕 1·16
목욕탕 2·17
휴대전화·18
달·19
발톱의 운명·20
호미곶에서·21
흙·22
탑골·24
합성동에서는·26
해변·27
방파제 끝에서·28
신용카드·30
날아가다·31
돼지 잡는 날·32
그 사람·33

제2부
좌회전 화살표·37
어깨에 손을 얹고·38
아버지 다녀가신 날·40
집으로 가는 길·42
집을 찾아·44
어머니·45
볼연지·46
신발·47
흔적·48
외가 가는 길·50
병상일기 302호·52
맷돌·53
밥·54
멸치·55
단술을 마신다·56
9월 12일·57
시래기·58

제3부
졸업식장에서·63
벌초·64
엄마와 딸·66
고3의 화려한 무늬·68
강아지·70
주머니·71
은행나무·72
식당에서·73
돌이킬 수 없는 그날·74
환제가 다시 엄마 품으로·75
진동에서 1·76
진동에서 2·77
들쥐·78
들개·79
바다·80
수행자·81
건재공구 파는 집·82
배드민턴·84
염좌(捻挫)·85
전어(錢魚)·86

제4부
봄 굿·91
창문을 밀고 들어오는 손님·92
동백꽃·93
국화는 가을에만 피지 않는다·94
능소화·95
하얀 목련·96
네모 세상·97
산북도로·98
둥근 여름·99
구조 변경·100
오후·102
가을 산·104
김밥·105
단추를 단다·106
곰팡이·107
12월·108
둥그런 세상·109

해설·111
시인의 말·127

파란색 표지판

벌써 몸을 돌리고 있다

낱말 들고 문장을 끼우러 가는 길

뒤따라나오는 차들이 추월선을 향하고

질주하는 속력, 쉼표가 빠져있다
―「좌회전 화살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