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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광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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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전봉관
  • 출판사 : 살림
  • 발행 : 2005년 01월 15일
  • 쪽수 : 330
  • ISBN : 8952203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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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낮에는 금을 캐고, 밤에는 글을 쓴 문인들


    1938년 여름 어느 날, 『탁류』와 「태평천하」등의 뛰어난 작품으로 한국문학사를 굵게 장식하고 있는 소설가 채만식은 오랜 고민 끝에 금광사업에 뛰어 들었다. 그 무렵 ‘일장기 말소사건’의 책임을 지고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물러난 당대 최고의 논객 설의식을 설득하여 함께 금광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처음에는 일시적 유행으로 여기던 지식인들도 금광열풍이 점점 거세어지자 슬그머니 그 열차에 올라탔다. 이성을 찾자고 타일러도 시원찮을 신문기자, 법학자, 경제학자, 공학자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뜨거운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펜 대신 곡괭이를 들었던 문인들 역시 부지기수. 「금따는 콩밭」,「노다지」,「금」등 금광 3부작을 집필한 김유정을 비롯하여 「영월영감」,「패강랭」같은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긴 이태준 등이 그들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초 금광열풍이 엄습했을 때, 사실 제일 먼저 금광으로 달려간 소설가는 팔봉 김기진이었다. 조선 프롤레타리아트 예술 동맹(KAPF)을 조직하고 이 땅에 사회주의 문예운동의 기틀을 다진 김기진은, 사회주의를 향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 일확천금의 꿈을 이루어야 한다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실행에 옮긴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그 무렵 신춘문예의 당선작들도 모두 금광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 ‘황금광시대(黃金狂時代)’를 다루고 있었다.



    한반도의 골드러시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 당시 한반도에서 금광에 몸이 달뜬 사람들은 문인들뿐만이 아니었다. 1930년대에 한반도를 엄습한 금광 열풍은 특정한 사람들, 특정한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고, 삼천리 방방곡곡이 금광꾼들의 삽질에 성한 곳이 없을 만큼 전국적이고 전국민적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반도의 금광 열풍은 무슨 이유에서 그토록 거세게 불어 닥쳤던 것일까? 1849년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는 요한 서터의 농장에서 제임스 마샬이 금을 발견함으로써 시작되었지만, 1930년대 한반도의 골드러시는 누군가 금을 발견하여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위기와 균열이 만들어낸 해프닝이었다.

    그 당시 조선총독부가 체제의 사활을 걸고 식민지 조선의 금광 개발에 매진한 것은 당시 통화제도의 근간이었던 금본위제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금본위제 하에서 금은 국내 화폐이기 이전에 국제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외화였다. 일본 정부는 통화 가치의 안정을 위해 엄청난 양의 금이 필요했는데, 당시 자본주의 열강들은 금(외환)의 보호를 위해 금 수출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금을 스스로 조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필요성에서 조선총독부는 법규를 정비하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어 식민지 조선의 금광 개발에 사력을 다하게 된다.


    그 결과 1931년 금광업은 100%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인다. 그리고 매년 50% 이상씩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전도유망한 산업이었다. 그 당시 조선총독부 광무과의 공무원들은 연일 계속되는 금광관련 업무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업무처리가 늦다는 민원인들의 질책과 원성에 시달려야 할 정도였다는 사실만 봐도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1939년 한반도에서 생산된 금은 31톤이었는데, 식민지 조선 덕택에 그 해 일본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국, 소련, 호주에 이어 세계 5대 금 생산국가가 되었다.



    조선 농민의 희망이 되어버린 ‘조선의 황금귀(黃金鬼) 최창학’

    그 무렵 ‘조선의 황금귀 최창학’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희망의 동의어나 다름없었다.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나 지리멸렬한 젊은 시절을 평북일대의 금광을 전전하며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던 최창학은 나이 삼십 줄에 접어들어 평안도 고향근처의 조악동에서 5년의 세월을 보낸 끝에 조선 최대의 금맥을 발견하여 180도 바뀐 인생 역전을 이룬다.


    졸지에 돈방석에 오른 최창학의 소문은 국경 넘어 중국 상하이에까지 날아가 무장독립군이 군자금을 확보하기위해 밤중에 삼성금광을 습격할 정도였다. 1924년 한 해 동안 무장독립단의 공격을 4차례나 받았고 단순 강도를 37차례나 당했다. 자다가 칼을 든 자객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밤중에 기관총 세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창학은 삼성금광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그 부근에 금광을 가지고 있던 다른 광주들이 목숨을 부지하겠다는 생각에 헐값에 내 놓은 금광을 한꺼번에 걷어갈 만큼 황금에 대한 집념은 놀라웠다. 그렇게 부를 늘려가던 최창학은 금을 캐서 축적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금광을 사고팔면서 조선굴지의 대자산가로 성공했다. 마치 큰손들이 여유자금으로 아파트를 사고팔아 시세차익을 남기듯 최창학은 금광을 사고팔며 돈을 눈 덩이 뭉치듯 불렸던 것이다.


    졸지에 조선 최대의 대자산가가 된 최창학의 벼락출세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최창학’이라는 이름 석자는 지금 삼성의 이건희 회장처럼 백만장자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그는 대중들에게 금광 하나 잘 만나면 하루아침에 팔자를 고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살아있는 신화였고, 그의 성공을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금광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금과 금광을 둘러싼 엽기적인 사건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는 ‘황금광시대’라는 이름답게 금과 금광을 둘러싼 엽기적인 사건이나 범죄가 끊이지를 않았다. 책에 소개된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몇 개만 추려보면, 우선 광부들은 삼엄한 감시를 뚫고 광산에서 금이 함유된 광석을 훔쳐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상투나 신발 속에 숨기거나 입속, 귓속, 사타구니 사이에 감추는 것은 애교 있는 편이고, 거칠디 거친 주먹만한 감석을 항문에 쑤셔 넣거나 입속으로 삼키고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또 만주의 금값이 조선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에 밀수출꾼들은 금괴를 숨긴 채 기를 쓰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넜다. 1933년 <신동아>지에 두 명의 노파가 금괴3개를 항문과 부끄러운 부위(?) 속에 감추고 꼬박 이틀을 견디다가 검거되었다는 에로틱(?)하고도 그로테스크한 기사가 실려 있을 정도였다.


    한편 어느 시대건 사람들의 욕망이 집중되는 품목에는 ‘투기’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17세기 네델란드에서 튤립 투기가 기승을 부렸던 것처럼 황금광시대에는 ‘금광 출원증’ 즉 금광개발권이 매력적인 투기의 대상으로 대두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천만원 정도를 들여 금광을 출원했다가 어리숙한 부자 한명 잘 만나서 출원증을 팔면 적게는 수십 배 많게는 수천, 수만 배의 횡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금광 값이 치솟자 어떤 통 큰 사내는 20만원에 사들인 금광을 300만원에도 팔지 않고 버텼다고 하는 믿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금광 사기 사건도 기승을 부렸다. 아연석을 내놓고 금이 들어있는 광석이라 속여 2억원을 갖고 종적을 감춘 이도 있었고, 금광 출원비 명목으로 평양의 부자를 꼬드겨 돈을 갈취해 도망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금광 야마시(사기꾼)패’들에게 비길 바가 못 되었다. 종로를 무대로 활약하던 ‘김진오 야마시패’가 대표적인 조직이었는데, 이들은 철저한 연구와 준비를 거쳐 경기도 시흥 땅에 있는 평범한 야산을 금광이라 속이고 비싼 값에 팔아 ‘야마시계’의 전설이 되었다. 이들이 서울의 손꼽히는 부호 임창수를 사기 친 대목은 마치 영화 「범죄의 재구성」을 보는 듯 그들의 용의주도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금을 둘러싼 진풍경은 금광이 아닌 곳에서도 진귀하게 펼쳐졌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의 황금머리를 도굴한 사건이다. 후백제 견훤의 군대에 포위된 상황에서 왕건의 복장을 하고 후백제 군사를 유인하다 목이 잘려나간 신숭겸의 공을 기려, 고려 태조 왕건은 순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후하게 장사를 지냈는데, 황금광 시대의 광풍이 이를 비껴 갈 리 없었다. 신숭겸의 황금머리를 노린 여러 패의 도굴꾼들이 신숭겸의 묘지를 파헤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도 도굴꾼들이 극성을 부려 평산 신씨 문중에서는 아예 천막을 치고 밤낮으로 경계를 섰다고 하니, 천 년 전에 죽은 조상 때문에 후손들이 죽을 맛이었다.


    또 한편에서는 아이디어 하나로 팔자를 고친 일도 있었다. 인생역전을 꿈꾸며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인 유하라는 어느 날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른다. 금만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 주리라 골몰하던 그는 화장장의 잿더미 속에 죽은 사람의 금니며 금반지가 타다 남아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당장 화장장 정리 허가를 얻은 그는 당시 돈으로 하루 2천 5백원 정도의 금을 얻어 벼락부자가 될 수 있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조선 전역에 퍼져 어느덧 화장장은 도심 속의 작은 금광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 불어 닥친 골드러시는 한반도의 천연자원, 식민지의 값싼 노동력, 일본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금을 캐내고야 말겠다는 일본 정부의 결연한 의지가 결합된 종합적인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정권을 장악한 일본 군부는 세계를 제패하고 싶었고, 전쟁을 사랑했고, 그래서 황금이 필요했다. 세계대전을 준비하던 군부의 음모. 1930년대 한반도의 골드러시는 그렇게 시작됐고 전 국토는 광풍에 휩쓸렸던 것이다.


    『황금광시대』는 경제서도 통계서도 아니고, 뻔한 인문서는 더욱 아니다. 굳이 이름 짓자면 그런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1930년대를 산 우리 선배들의 내면풍경이다. 욕망의 외경(外經) 쯤이라고 이름 지으면 적당할 『황금광 시대』를 읽고 있으면, 왠지 씁쓸하고, 그러나 감정 한 켠에서는 힘이 생기고, 그러면서 또 허탈하며, 자꾸 웃음이 난다. 그 막을 수 없는 웃음을 웃으면서 우리의 몸 어딘가로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감을 우리는 퍼뜩 느끼게 된다. 그것이 무엇일까?



    금광을 연구하는 세계에서 단 한명뿐인 국문학자


    현재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있는 저자는 1999년 가을부터 5년 동안 금광 연구에 매달렸다고 한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국문학자이다. 그의 나이가 이제 30대 초반이니 인생의 황금기를 ‘황금’이 아닌 ‘70여 년 전 이 땅에서 황금을 찾던 사람들의 흔적’을 쫓으며 지낸 셈이다. 5년여에 걸쳐 푸석푸석한 옛날 신문과 먼지 나는 잡지들을 뒤적이며 황금광시대를 탐험했던 저자는 그 작업의 종착점에서 발가벗은 인간의 욕망을 만났던 모양인지, 황금광시대는 70년 전 이야기이지만 70년 전 ‘끝난’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황금에 대한 욕망은 시대가 지나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코스닥 벤쳐 열풍’으로 ‘부동산 투기 바람’으로, 그리고 ‘10억 만들기’ 열풍으로 그 대상만 변해갈 뿐, 인간의 집착은 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목차

    Ⅰ 금을 찾아 나서다


    1. 황금광시대?



    2. 금을 찾는 사람들

    금광 열풍
    펜 대신 곡괭이를 든 지식인들
    낮에는 금을 캐고, 밤에는 글을 쓴 김기진
    갑갑해서 곡괭이를 든 채만식



    3. 동방의 황금 왕국

    금광업, 1930년대 경제의 성장 동력 산업
    대공황 속에서 호황을 누린 금광업
    금 땅 위에 살아서 더 슬픈 백성



    4. 말세의 풍경

    금 땅에서 태어난 보람
    유랑골의 금광 열풍
    풍년에 배가 고픈 농민들



    Ⅱ 황금을 둘러싼 탐욕과 투기


    1. 광업권 투기

    내가 하면 투자고 남이 하면 투기다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조선의 금광 투기
    위험한

    폭탄 돌리기
    ?금 따는 콩밭?으로 읽는 조선광업령
    투기꾼의 구세주가 된 ‘왜인’들



    2. 투기꾼에게 몰리는 사기꾼

    투기와 사기 사이
    희대의 장사꾼 금광 브로커
    ‘김진오 야마시패’10만 원 갈취 사건



    3. 금을 갖고 튀어라

    금을 빼돌리는 7가지 비법
    성공 확률 100%의 비기(秘技)
    에로 금괴 밀수출 사건



    4. 새로운 풍속도

    신숭겸의 황금 머리
    사람은 죽어서 금을 남기고
    손가락 절단주의보



    5. 보물선의 전설

    발틱함대의 세계일주
    나히모프호의 저주
    돈스코이호의 망령



    Ⅲ 황금의 제왕


    1. 황금귀(黃金鬼)라 불리던 사나이

    백범의 정치자금
    조선의 황금귀 최창학
    조악동 채플린
    성공의 서막이 오르다



    2. 심야의 혈투

    상하이에서 온 편지
    무장독립단의 활약상
    한여름 밤의 혈투
    새옹지마



    3. 장밋빛 인생

    백만장자 최창학
    황금은 황금을 낳고
    천만장자의 세상살이



    4.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황금귀

    애국과 매국의 갈림길
    해방과 함께 찾아든 시련
    사회면 귀퉁이를 장식한 부고



    5. 또 한 명의 금광왕 방응모

    조선을 주름잡던 금광왕 넘버 투
    정주 촌부의 금광출사
    교동금광을 딛고 조선일보 사장이 되다| 백석 그리고 화려한 에필로그



    Ⅳ 금광열풍은 어디서 불어왔는가


    1. 금본위제 실시로 광기의 서곡이 울리다

    1849년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
    일본제국의 금수출이 시작되다
    금, 귀금속에서 돈으로 바뀌다
    금본위제로 날아간 일확천금의 꿈



    2. 불황 속에서 일어나는 금 바람

    하마구치 내각은 왜 금본위제로 복귀했나?
    경제 대국을 꿈꾸는 작은 섬나라
    황금광보다 먼저 찾아온 중석광시대
    전후공황과 관동대지진이 불러온 시련
    금융공황과 외환투기
    대공황의 와중에 단행된 긴축정책
    비판 언론과 버티기



    3. 황금의 전성시대

    영국의 금본위제 정지
    군축으로 쓰러진 라이언 수상
    재벌들의 외환투기로 무너지는 일본
    금재금으로 기대했던 세 가지 경제효과
    국제 금쟁탈전으로 도래한 황금의 전성시대
    군부의 음모로 시작된 황금광시대



    Ⅴ 황금광시대의 몇 가지 미스터리


    1. 황금 왕국의 비밀



    2. 무진장 황금은 어디서 났는가?

    1998년 황금아파트의 탄생



    3. 금값은 왜 오르기만 했을까?



    4. 그 많은 금은 어디로 갔을까?

    조선은행 금고에는 황금이 없었다
    야마시다 보물선으로 환생한 황금광시대



    ■참고문헌

    ■황금광시대 주요 연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1.02.25~
    출생지 부산
    출간도서 7종
    판매수 4,628권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KAIST 인문사회과학과 및 문화기술 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근대 문학을 공부하다가 그 시대 문화의 발랄함과 역동성에 매료되어 박사 학위 취득 후 본격 적으로 근대 문화 연구에 뛰어들었다. 근대 조선의 살인 사건, 스캔들, 투기, 사기·협잡, 자살 사건, 가정 문제, 애정 문제 등을 매개로 현대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비판하는 독특한 형식의 글을 발표하고 있다.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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