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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양장]

원제 : Vous n’aurez pas ma ha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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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로 아내를 잃은 저널리스트 앙투안 레이리스의 책. 저자는 파리 테러가 일어난 지 사흘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IS에게 공개서한을 띄웠다. 그의 글을 접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추모와 위로, 공감과 연대의 메시지로 화답했다. 세계의 언론들은 "용감하고 감흥을 줄 뿐만 아니라 문학적이고 지성적이며 감각적"이라고 평했다.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는 절망뿐인 상황, 상실의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놀라운 힘을 가진 책이다. 저자 앙투안 레이리스는 분노와 증오의 원천에 저항할 때 그것에 휩쓸리거나 잠식당하지 않고 어떻게 인간답게 맞서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우리의 삶이 계속되어야만 하는지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그의 말은 흉포와 야만, 분노와 증오로 점철된 이 시대에 숭고한 빛이 되어 우리 앞의 어두운 길을 환하게 비춘다.

출판사 서평

흉포와 야만의 시대에 숭고한 빛이 된 단호한 선언
파리 테러 1주기. 미국, 영국 등 전 세계 동시 출간!


- 프랑스 출간 직후 20만 부 이상 판매
- [르몽드], [리베라시옹] 등 주요 언론 극찬
-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전 세계 24개국 출간
- 미국, 영국 아마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아마존 선정 11월 최고의 책!

"이날 저녁, 죽음은 파리 곳곳으로 떼 지어 몰려갔다."
2015년 11월 13일 저녁 프랑스 파리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려 퍼진 굉음과 총성은 빛의 도시 파리를 피로 물든 암흑의 도시로 바꿔놓았다. 이날 IS가 일으킨 파리 테러로 무고한 시민 131명이 숨졌고, 전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 후 수개월간 세계는 '파리를 위해 기도합니다(Pray for Paris)'라는 문구로 파리와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파리 테러가 일어난 지 사흘 뒤인 11월 16일,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파리 테러로 아내를 잃은 파리 시민 앙투안 레이리스(Antoine Leiris)는 IS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글은 이렇게 시작됐다.
"금요일 저녁 당신들은 예외적인 한 사람, 내 필생의 사랑이자 내 아들의 어머니인 한 여인의 생명을 도둑질했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글은 페이스북을 통해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는 IS에게 보내는 이 공개서한에서 "나는 당신들에게 증오라는 선물 따위는 줄 마음이 없다. 당신들은 그걸 원했을 테지만, 증오에 분노로 답하는 것은 당신들을 지금의 당신들로 만든 그 무지함에 굴복하는 것일 터이다."라며 단호한 어조로 운을 뗀 다음, "당신들이 얻은 그 승리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아내가 매일 우리와 함께할 것이며, 당신들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천국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아들과 나, 우리는 이제 둘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군대보다도 강하다."라며 태어난 지 17개월 된 아들 멜빌과 함께 남겨진 삶을 더 단단하게 지켜낼 것임을 '선언'했다.
이 글에 담긴 용기와 희망, 자유와 행복의 메시지는 흉포와 야만, 무지와 분노가 판치는 세상에 대항하고자 하는 한 인간의 성숙하고 결연한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글을 접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추모와 위로, 공감과 연대의 메시지로 그에게 화답했다. 세계의 언론들은 그의 글에 대해 "용감하고 감흥을 줄 뿐만 아니라 문학적이고 지성적이며 감각적"이라고 평했다.
바로 이 책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원제- Vous n'aurez pas ma haine)는 앙투안 레이리스의 글 한 편을 단초로 탄생한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르몽드], [리베라시옹] 등 주요 언론의 극찬과 더불어 2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전 세계 24개국에서 판권을 가져갔다. 이번 한국어판은 파리 테러 1주기(2016년 11월 13일)를 앞두고 미국, 영국 등과 함께 동시 출간된 것이다.

상실감으로 몸부림치는 이에게서 마침내 솟아오른 문장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는 2015년 11월 13일 파리 테러가 일어난 날 밤부터 2015년 11월 25일 앙투안 레이리스가 아내 엘렌 뮈얄 레이리스(Helene Muyal-Leiris)의 장례식을 치른 다음 날 아들 멜빌과 함께 다시 묘지를 방문하는 아침까지 단 13일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2주가 채 안 되지만 저자가 보낸 13일은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저자는 '그날' 이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나버린 시간과 인생과 기억의 파편들을 고스란히 글로 옮겼다. 테러가 일어난 지 사흘이나 지난 뒤에야 앙투안은 아내의 시신을 마주한다. 사흘 만에 차가운 시신이 되어 돌아온 아내를 조우한 날 밤, 앙투안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헤집고 다니며 하나씩 또는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말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상실이 가져다 준 소음이 최대치에 이르자 오히려 그것은 절대적 침묵이 되었다. "산만하게 흩어진 채 제멋대로 귀에 거슬리는 소리들이 들려오는가 싶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음표들이 섞이면서 우리의 등골을 타고 솟아오른다. 그 소리가 점점 더 강력해져서 절대적인 침묵에 도달하면 비로소 제대로 된 연주가 시작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의 정제된 말이 침묵을 뚫고 나왔다.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자들에 대한 반감 위에
우리의 새로운 삶을 쌓아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얄궂게도 세상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돌아간다. 전기 계량기 검침원이 방문하면 문을 열어줘야 하고, 아들 멜빌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야 한다. 앙투안은 아내 엘렌이 없는 세상에서 아들 멜빌과 단둘이 살아갈 수밖에 없고, 또 살아가야만 하는 둘만의 소박한 일상을 애써 담담하게 묘사한다. 언제 무너져버릴지 모른다는 불안, 아내의 부재라는 현실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덮쳐오는 상실감이 그를 자꾸만 우두커니 멈춰 서게 만들지만, 그래도 그들은 눈물을 훔치고 천천히 앞으로 한 발씩 내딛는다.
페이스북을 통해 그의 편지가 널리 알려진 뒤에는 세계 각지에서 우편물이 도착했다. 장문의 편지, 소박한 엽서, 멜빌에게 보내는 그림.... 앙투안은 그 속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편지 봉투 하나를 뜯어 읽는다. 보낸 남자의 이름은 필리프. 편지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변을 당한 건 당신인데, 그런 당신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군요!"
필리프가 편지에 쓴 바와 같이 이 책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는 절망뿐인 상황, 상실의 고통 속에 빠져 있는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놀라운 힘이 있다. 저자 앙투안 레이리스는 분노와 증오의 원천에 저항할 때 그것에 휩쓸리거나 잠식당하지 않고 어떻게 인간답게 맞서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우리의 삶이 계속되어야만 하는지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그의 말은 흉포와 야만, 분노와 증오로 점철된 이 시대에 숭고한 빛이 되어 우리 앞의 어두운 길을 환하게 비춘다.
"죄를 지은 자, 자신의 분노를 퍼부을 대상을 눈앞에 빤히 두고 있다는 건 말하자면 반쯤 열린 출구, 자신의 고통을 용케 피해나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범행이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범인의 존재는 이상적인 분노 배출구가 되어줄 것이고, 증오 또한 정당화될 것이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자들에 대해 생각하면 되고, 자신의 삶을 증오하지 않기 위해서 그자들을 증오하면 되며, 살아남은 자들에게 미소 짓지 않기 위해서 그자들의 죽음에 기뻐하면 될 것이다. (...) 경기관총의 일제 사격으로 그들은 우리의 퍼즐을 엉망으로 흩어놓았다. 우리가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맞추게 될 때, 완성된 퍼즐은 예전과 똑같을 수 없을 것이다. 퍼즐 속 그림엔 분명 빠진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우리 둘만 남아 있을 테지만, 우리는 빠진 사람의 빈자리마저 모두 채울 것이다. 엘렌은 그곳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의 눈 속에서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게 될 것이며, 우리 두 사람의 기쁨 속에서 그녀의 불꽃이 타오를 것이고, 우리 두 사람의 혈관을 타고 그녀의 눈물이 흐를 것이다. 우리는 절대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자들에 대한 반감 위에 우리의 새로운 삶을 쌓아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삶 속에서 나아갈 것이다." (2015년 11월 16일의 기록 중에서)

추천사

용감하다. 테러리즘이 거둔 찰나의 승리를 뛰어넘어 삶이 지속될 것이라는 단호한 선언이다. 도저히 파괴할 수 없는 이토록 아름다운 단어들... 가슴이 터질 듯한 조사(弔辭).
- [뉴욕 저널 오브 북스New York Journal of Books]

지극히 이례적일 정도로 우아한 책. 감동적인 여정에 대한 너무나도 특별한 이야기.
- [옵서버Observer]

소박하고도 가까운, 사랑과 상실에 관한 모든 것. 이 책을 읽고 나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 [선데이 타임스Sunday Times]

영원히 기억될 메시지. 이처럼 단단하고 용감하며 완벽히 아름다운 책에서 우리는 앙투안이 미처 하지 않은 더 많은 말들을 본다.
- [엘르Elle]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단어들. 용감하고 감동적이다.
- [커커스 리뷰Kirkus Reviews]

범상치 않은 슬픔의 언어들을 단숨에 몰입해서 읽게 만드는 이 책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 [북리스트Booklist]

한밤중의 섬광과 같이 돋보인다. 순수한 우아함의 결정체. 말하자면 이 책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남는 것의 의미를 밝히는 데 필요한 언어에 관한 책이다.
- [인터뷰 매거진Interview Magazine]

정말 놀라운 책이다. 정직하고 친근하며,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다. 사랑과 상실과 슬픔에 대한 증언이자 때때로 잊히고 마는 남겨진 이들,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찾아 나서야 하는 길에 대한 이야기.
- [아이리시 인디펜던트Irish Independent]

목차

야만적인 밤
기다림
무당벌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녀와의 재회
이제 연주는 시작되어도 좋다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시간의 주인
집에서 만든 음식
N.
용기를 내세요......
손가락 끝 살점
침울할 권리
아내의 물건을 정리하며
멜빌의 편지
이야기의 끝
엄마 여기 있어

옮긴이의 말

본문중에서

2015년 11월 16일
오전 9시 30분
멜빌은 어린이집에 있다. 오늘, 파리 15구의 한 담배 가게 겸 카페에서 맞이하는 월요일 아침에 사람들은 꿈이 산산조각 나버린 자들의 우중충한 낯빛을 하고 있다. 노상 목청 돋게 만드는 세금 올리기나 독감 확산 같은 주제로만 만족할 수 없어 다른 대화거리를 찾고 있는 카페 손님 모두의 눈이 쏠린 BFM TV 화면에서는 같은 장면만 계속 반복해서 돌아간다. 오늘은 월요일인데, 사람들은 모두 금요일에 관해서만 떠들어댄다.
"진한 커피 한 잔!"
아침에 나는 법의학 연구소로 엘렌을 보러 가야 한다. 옆자리에서는 마흔다섯에서 쉰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못 볼 것을 너무 많이 봐서 지쳐버린 눈길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카페의 카운터에 자리 잡고 선 이상 남들의 대화를 피하려고 기를 쓰는 건 소용없는 짓이다. 대화를 듣지 않을 수 없으니까. 평소 같았으면 커피 한 잔 마시는 동안 전혀 모르는 타인의 삶의 한 조각 속에 은근슬쩍 껴들어가는 혼자만의 즐거움을 만끽했을 테지만. 그런데 오늘은 내 삶이 조각나버렸다.
두런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시선을 돌려도 소용없다. 몇몇 단어들이 기어이 에스프레소 커피 기계가 뿜어내는 수증기 속을 뚫고 내 귀까지 전해진다.
"......그 모든 죽음이 무용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지......."
유용한 죽음이란 것이 있긴 있고?
운전기사가 브레이크 페달 밟는 걸 잊었건,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더 고약한 악성 종양이었건, 핵폭탄이었건 뭐든 상관없다. 중요한 딱 한 가지는 거기에 엘렌이 없었어야 한다는 점이다. 각종 무기, 총알, 폭력, 이 모든 건 실재 문제가 되고 나서의 장면, 그러니까 부재라는 장면의 무대 장치에 불과하다.
그토록 빠른 시간에 엘렌이 살해당한 정황을 넘겨버리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나의 태도를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저마다 내가 사건을 잊었는지, 용서했는지를 묻는다. 나는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잊지 않았으며, 다음으로 넘어가지도 않았다. 더구나 그토록 빨리 페이지를 넘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각자 삶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 사건과 더불어 살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우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걸 거부한다면 그건 자신을 부인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바싹 마른 엘렌의 몸에서 시체의 냉기만이 뿜어져 나올지라도, 그녀와의 입맞춤에서 아직 약간의 온기가 남은 피비린내가 느껴질지라도, 그녀가 내 귀에 속삭이는 소리에서 진혼곡의 얼음장같이 섬뜩한 아름다움만 흘러나올지라도, 나는 그녀에게 입 맞추어야 한다. 나는 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야 한다.
물론 죄를 지은 자, 자신의 분노를 퍼부을 대상을 눈앞에 빤히 두고 있다는 건 말하자면 반쯤 열린 출구, 자신의 고통을 용케 피해나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범행이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범인의 존재는 이상적인 분노 배출구가 되어줄 것이고, 증오 또한 정당화될 것이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자들에 대해 생각하면 되고, 자신의 삶을 증오하지 않기 위해서 그자들을 증오하면 되며, 살아남은 자들에게 미소 짓지 않기 위해서 그자들의 죽음에 기뻐하면 될 것이다.
게다가 아마 가중 처벌까지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가중 처벌이라면 소송에서 손실을 정량화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눈물은 정량화할 수도 없거니와 소맷자락 한 번 들어 올려서 분노를 닦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주하거나 원망할 대상이 없는 사람들은 슬픔과 더불어 혼자이다. 나는 내가 그런 부류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머지않아 그날 저녁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묻게 될 아들과 더불어 혼자이다. 우리 이야기의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해버리면 나는 아들에게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아들은 그날 벌어진 일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로 몸을 돌려야 한단 말인가? 그날 저녁, 죽음이 아이의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자들은 그 죽음을 전하는 저승사자였을 뿐이다.
경기관총의 일제 사격으로 그들은 우리의 퍼즐을 엉망으로 흩어놓았다. 우리가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맞추게 될 때, 완성된 퍼즐은 예전과 똑같을 수 없을 것이다. 퍼즐 속 그림엔 분명 빠진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우리 둘만 남아 있을 테지만, 우리는 빠진 사람의 빈자리마저 모두 채울 것이다. 엘렌은 그곳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의 눈 속에서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게 될 것이며, 우리 두 사람의 기쁨 속에서 그녀의 불꽃이 타오를 것이고, 우리 두 사람의 혈관을 타고 그녀의 눈물이 흐를 것이다.
우리는 절대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자들에 대한 반감 위에 우리의 새로운 삶을 쌓아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삶 속에서 나아갈 것이다.
"커피 한 잔 더 주세요. 그리고 계산서도요!"
"아무리 생각해도 주말에 벌어진 일은 정말 미친 짓이야......."
"...... 전 그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경황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주말에 집에 없어서 아이를 돌봐야 했거든요. 전 지금 아내를 만나러 갑니다."
(/ pp.35~39)

"준비되시면 말씀해주실래요?"
엘렌이 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다가가다가 몸을 돌려 분명 방 안에 우리 두 사람뿐임을 확인한다. 이 순간은 우리의 것이다. 유리벽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다. 나는 내 온 체중을 실어 그 벽에 바짝 붙는다. 우리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는 그 밖의 다른 삶이라고는 산 적이 없는 것 같다. 엘렌은 달이었다. 우윳빛 피부에 짙은 갈색 머리칼, 약간 겁에 질린 듯한 올빼미 눈, 온 세상을 그 안에 담고 있는 미소. 나는 우리가 결혼하던 날 그녀가 지었던 그 미소를 다시 본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추억의 앨범 속에 붙여놓은 순간들이 아니다. 나는 우리가 그저 서로를 사랑했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나이 든 노부부를 보면서 그들을 닮고 싶어 했던 시간. 깔깔대며 웃던 시간. 시트 속에서 나른하게 뒹굴던 새하얀 아침의 시간.
이렇듯 보여줄 것도, 이야기할 것도 없는 아주 사소한 시간들이야말로 제일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나의 기억을 채워주는 시간들도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엘렌은 늘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아름답다.
세상을 떠난 자의 눈을 감겨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에게 삶을 돌려주는 것이다. 엘렌은 여전히 아침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 엘렌과 닮아 있다. 그녀의 초췌한 육신 곁에 내 몸을 눕혀 그녀를 따뜻하게 덥혀주면서 내가 이제껏 만난 여자들 가운데 그녀가 제일 예쁘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고는 나도 눈을 감고서 멜빌이 우리를 부를 때까지, 아이가 구겨진 시트 속으로 파고들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싶다.
엘렌은 사랑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인지 나에게 자주 묻곤 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내가 그녀를 여전히 사랑할 것인지도 물었다. 정작 아이가 태어나자 더 이상 그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는 운다. 그러면서 한 시간, 아니 최소한 하루, 어쩌면 한평생 당신 곁에 머물러 있고 싶다고 그녀에게 말한다. 그렇지만 이제 그녀를 떠나야 한다. 월요일이 저물어야 하니까. 오늘, 11월 16일에 태양은 이제 우리의 새로운 "옛날 옛적에... ..." 위로 떠오른다. 두 사람이 충성을 맹세했던 아름다운 달님의 도움 없이 홀로 커가는 아비와 아들의 이야기.
"선생님, 이제 그만 나가셔야 합니다...... ."
(/ pp.48~50)

이제, 누군가가 나에게 "잘 지내?"라고 묻는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서 의례적인 답변, 그러니까 "응, 잘 지내. 넌?" 같은 응답을 기대해선 안 된다. 그런 답변은 별일 없으니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는 암묵적인 허락에 해당되니까.
나는 모두가 알다시피 전혀 잘 지내지 못하며, 그래서 내가 그렇게 대답하고 나면 사람들은 평소처럼 날씨나 전날 본 TV 프로그램, 사무실에 떠도는 뒷담화 같은 주제로 넘어가지 못한다. 요즘엔 누군가가 나에게 "잘 지내... ...?"라고 물을 때 예전보다 훨씬 느린 말투에, 특히 '잘'이라는 음절을 말할 때면 거북한 침묵을 피하기 위해 약간 질질 끄는 듯한 음성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얼굴을 약간 숙이는데, 대체로 오른쪽으로 숙이며, 이때 눈썹은 조금 올라가는데, 주로 왼쪽 눈썹이 올라가며, 입은 마치 "무슨 말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듯 살짝 오므라든다. 그런 다음엔 어린아이가 병 밑바닥에 거의 숨어 있다시피 들어 있는 분홍색 사탕, 다시 말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의 사탕을 꺼내기 위해서 병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것처럼 내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려는 듯한 눈길을 보낸다. 나에게는 슬픔이 분홍색 사탕인 셈이다. (...)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처럼 지내."는 말하자면 내진 설계가 된 건물이다. 그건 천재지변이 훑고 지나간 후 사람들이 사진으로 남기는 것, 다른 모든 것은 폐허가 되었지만 기적처럼 홀로 살아남아 버티고 서 있는 작은 오두막집 같은 것이다.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버티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
"너한테 일어난 일은 정말로 유감이야. 용기를 내...... ."
나는 아직 이 말을 하는 상대에게 해줄 피상적인 응답을 찾지 못했다. "다음에 보자"는 약속처럼 들리고, "몸 잘 챙겨"는 초대의 말 같은 반면, "용기를 내"는 최종 판결처럼 들린다. 그 말은 짧은 대화를 통해서나마 나에게서 덜어내 주려는 슬픔을 고스란히 다시 안겨준다.
(/ pp.89~92)

나는 우편물들을 거실 탁자 위에 흩어놓는다. 좀처럼 보기 힘든 색상의 봉투 하나가 내 눈길을 끈다. 빛바랜 흰색 봉투. 지나간 시대에서 온 편지. 게다가 상단에 주소와 이름까지 인쇄된 편지지. 편지를 보낸 남자의 이름은 필리프. 나는 아코디언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을 떠올려보며 그의 말 속으로 빠져든다. 내가 썼던 편지글에 대한 답장이다. 아름다운 글. 빛바랜 봉투 속에 몸을 웅크리니 온몸이 따뜻해진다. 편지지 아래쪽엔, 마치 서명처럼, 이렇게 적혀 있다. "변을 당한 건 당신인데, 그런 당신이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군요!"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서 무언가를 바라볼 때면 늘 가장 참혹한 것에서 살아남은 자를 영웅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나는 내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운명이 칼을 뽑았고, 그래서 일이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운명은 나에게 내 의견 따위는 묻지 않았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따위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운명은 그저 엘렌을 데려갔고, 나는 그녀 없이 혼자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후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나한테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편지를 쓴 필리프를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편지를 보낸 다른 모든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가 작성한 편지는 이미 수습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고 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 편지에 적힌 말들이 물론 내 안에서 나온 말임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나의 전부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문득 나는 무섭다. 내가 그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봐 두렵다. 나에게도 용감하지 않을 권리가 남아 있는 걸까? 분노할 권리,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릴 권리, 기진맥진할 권리,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담배를 끊지 못할 권리가 나에게도 있는 걸까? 다른 여자를 만날 권리, 여자라고는 아무도 만나지 않을 권리. 앞으로 더는 절대 사랑하지 않을 권리. 내 삶을 새롭게 시작하지 않을 권리. 다른 삶 따위는 바라지도 않을 권리. 아이와 놀아줄 마음이 들지 않을 권리.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가지 않을 권리.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 권리. 실수할 권리. 그릇된 결정을 내릴 권리. 시간이 없을 권리. 아이와 함께 있어주지 않을 권리. 유쾌하지 않을 권리. 냉소적이 될 권리. 몇 날 며칠씩 짜증을 부릴 권리. 늦잠을 잘 권리. 어린이집에 아이를 좀 늦게 데리러 갈 권리. 집에서 직접 만들어보려고 시도한 요리를 망칠 권리. 기분이 좋지 않을 권리. 모든 걸 다 말하지 않을 권리. 그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권리. 상투적일 권리. 두려움에 사로잡힐 권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권리. 역량이 부족할 권리. (/ pp.105~107)

이 책을 나는 편지를 쓴 다음 날부터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바로 그날 저녁부터였을 수도 있다. 멜빌이 어린이집에 있을 때마다 나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단어들을 컴퓨터에 쏟아냈다. 음악을 너무 크게 틀어놓는 위층 이웃처럼. 나는 그 말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입을 닫으라고 요구하기 위해서 컴퓨터 자판으로 그것들을 두드렸다. 그 말들이 서로 싸우기를 멈추고, 마침내 잠들기 바라면서.
말들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즉시 나는 그것들을 내 몸 안의 이물질처럼 바라보았고,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읽고,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다시 읽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말들을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손을 맞잡고 있는 그 말들을 바라보면서 가끔 큰 소리로 그것들을 불러보려 한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닿을 수 없다. 그 말들은 이미 나에게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 pp.125~126)

저자소개

앙투안 레이리스(Antoine Leiris)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종
판매수 34권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프랑스 앵포(France Info)], [프랑스 블뢰(France Bleu)]에서 문화 칼럼니스트로 일했다. 2015년 11월 13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파리 테러 당시 바타클랑(Bataclan) 극장에 공연을 보러 간 아내 엘렌 뮈얄 레이리스(Helene Muyal-Leiris)를 잃었다. 태어난 지 17개월 된 아들 멜빌과 단둘이 남겨진 그는 상실감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펜을 들었다. 그는 펜이라는 무기를 들고서 아내를 살해한 테러범들에게 "당신들은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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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불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코리아헤럴드》 기자와 《시사저널》 파리통신원을 지냈다. 옮긴 책으로 『6시 27분 책 읽어주는 남자』, 『식물의 역사와 신화』, 『포스트휴먼과의 만남』, 『탐욕의 시대』, 『빈곤한 만찬』, 『그리스인 이야기』,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재미가 지배하는 사회』 등이 있으며, 김훈의 『칼의 노래』를 프랑스어로 옮겨 갈리마르 사에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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