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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원찬 시집『귀가 운다』. 안원찬 시인의 주옥같은 시를 모았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추는 생긴 대로 웃는다, 풀 먹고 살던 할머이, 도심에서 시들던 나는, 곰치찜, 꽃다발을 해체한다 등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인생은 커다란 학교요 극장이다. 하지만, 삶에 너무 기대되는 의미 부여하고 싶지 않다. 있는 둥 없는 둥 표시 없이 길가의 풀 한 포기처럼 살다 가고 싶다. 비비 꼬이며 말라비틀어지더라도 내색 없이 생을 접고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흩어지고 싶다.
2016년 초여름 옥류산방에서
안원찬

나호열(경희대 교수)
안원찬의 시는 삶의 뒷면이나 속살을 헤집어 보여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허위와 허세에 길들여진 자아의 내면을 들춰내는 일은 자칫하면 자기비하나 냉소에 빠질 수도 있는 법인데, 시인은 그럴 때마다 익살로 버무린 해학으로 난경을 헤쳐나간다. 시인의 시선에 포착되자마자 사물과 현상은 말문을 열고 전복(顚覆)된 세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수도자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마디로 안원찬의 시편은 슬프면서 기쁘고 기쁘면서 슬그머니 눈물을 훔치게 하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공광규(시인)
아마 “논머리에 서 있는 미루나무가 달리”는 “논두렁이 본적”인 안원찬 시인은 “밤마다 거대한 빌딩숲”이 있는 도심에서 시들어 산 적이 있다. 이런 그의 시집에서 풀과 꽃과 나무와 곤충과 물고기들이 재미있는 토속화를 그려낸다. 어느 경우에는 길섶의 “꽃눈에 한소끔 쉬어가는 봄볕/고울사 향토의 꽃 민들레 애기똥풀 꽃마리 부처꽃/굼틀굼틀 움질움질 자궁벽 두드리”는 “부동산 투자 없고 연금보험 종신보험 들지 않는” 자연의 세계가 있다. 달맞이꽃은 꽃대에 “노랑나비 몇 마리” 앉아있는 것으로 비유되며, “국숫발처럼 쏟아져 내리는 비”는 “아스팔트 위에 연한 물꽃”인 무생물의 꽃을 피우기도 한다. 화자가 아이보다 먼저 아내의 젖을 빨아 무럭무럭 늙었다는 기지와 등교하던 여학생 서넛이 서서 키득거리는 꽃말이 재미있는 개불알꽃이 있다. 거적때기를 걷고 들어가서 쪼그려 앉아 햇살과 구름과 별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를 듣는 “뒷간이 좋다”는 시인은 박새와 찌르레기와 꾀꼬리와 참새와 파랑새와 솔새가 희희낙락하는 오월의 숲을 “나체족으로 마냥 거닐고 싶”어 하는 원초적 자연주의자임에 틀림없다.

시인의 말ㆍ05

제1부
밤나무ㆍ13
단추는 생긴 대로 웃는다ㆍ14
시ㆍ16
갯고랑ㆍ17
큰개불알꽃ㆍ18
오월의 숲ㆍ19
야! 시벌로마ㆍ20
여자는 가방을 좋아한다ㆍ22
뒷간이 좋다ㆍ24
투숙ㆍ25
풀 먹고 살던 할머이ㆍ26
논두렁이 본적(本籍)이다ㆍ28
철봉ㆍ30
가정통신문ㆍ31
무럭무럭ㆍ32

제2부
무당벌레ㆍ37
저수지ㆍ38
귀가 운다ㆍ39
정년퇴직ㆍ40
환경미화원ㆍ42
버들강아지ㆍ43
도심에서 시들던 나는ㆍ44
임플란트ㆍ46
긴밭들ㆍ48
난곡마을을 떠올리며ㆍ49
리모컨에 의해 잠들고 깬다ㆍ50
폐교ㆍ52
바닷가 우체국ㆍ54
물꽃ㆍ55
달맞이꽃ㆍ56
꽃떨기ㆍ57

제3부
할매 셋이랑ㆍ61
곰치찜ㆍ62
미라네 할미ㆍ64
맑은 곰치탕ㆍ65
도다리ㆍ67
간이의자ㆍ68
차(茶) 맛에ㆍ69
생닭집에서ㆍ70
된장ㆍ72
바코드를 긁는다ㆍ74
뚝새풀ㆍ76
북엇국ㆍ78
묵호항 달동네ㆍ80
허기ㆍ81
밥ㆍ82
꽃다발을 해체한다ㆍ84

제4부
해우소ㆍ89
부처를 훔치다ㆍ90
부고ㆍ91
법정 스님 영결식ㆍ92
이승에서 밀려난 사람ㆍ93
달빛 공양ㆍ94
부조ㆍ95
어머니의 임종ㆍ96
달님ㆍ98
소사나무ㆍ99
피안으로 가는 길ㆍ100
얼갈이배추ㆍ101
잡초ㆍ102
49재 이야기ㆍ104
유언ㆍ106
법고ㆍ107

해설ㆍ109

소리의 먼지가 쌓이고 있다
귓속에서 밤낮 시냇물이 흐른다
나뭇가지가 바람을 흔들고 바위가 파도를 끌어안는다
똬리를 틀고 세력을 번창시키며 진 치고 있는 놈들
막무가내 일가를 이루고 있다
귓속으로 그 소리들을 불러들인 건 나다
그러니 내 속에 사는 너는 얼마나 답답할까
출구를 잃어버린 소리들이
귓속에서 살림내고부턴 환하게 웃어본 적 없다
피곤할수록 소리가 더 커지고
적막과 고요가 잠을 사납게 흔들어댄다
아이처럼 달래보지만 더 치열해진다
숲에 들어 풀잎 사이에 귀를 내려놓는다
귀가 운다 지축을 흔들며 귀가 울고 있다
―「귀가 운다 」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