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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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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완서
  • 그림 : 이철원
  • 출판사 : 열림원
  • 발행 : 2016년 07월 10일
  • 쪽수 : 33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70639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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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영혼의 신비로부터 시작된 노년의 진실한 고백

    그리운 작가가 열어둔 마음속 빈방으로의 초대

    "예수의 위선을 까발리기 위해서 성서를 통독"한 박완서 작가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천주교 [서울주보]에 그 주일의 복음을 묵상하고 쓴 ‘말씀의 이삭’을 엮어낸 산문집이다. 연재 순으로 엮었기에 의혹이 이해로, 분노와 원망이 견결한 의지로, 욕심과 집착이 겸허한 자유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1998년, ‘아치울 노란집’으로 이사한 작가는 ‘보이지 않는 손길’을 더욱 가깝게 느끼며 살아생전에나 사후에나 누구라도 "바람처럼 공기처럼 스며들어" 쉬어갈 수 있는 빈방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책은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의 개정·증보판으로, 미수록 원고 5편을 새로이 찾아 넣고 [노란집]의 일러스트를 그린 이철원 작가의 그림을 더해 박완서 작가의 정신세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출판사 서평

    "빈방이 많아 사는 게 이렇게 매일매일 허전하고 허망한 줄 알면서도 남에게 내줄 빈방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빈방이라면 잠긴 방과 무엇이 다르리까."


    죄 없는 고통 앞에서 인간은 ‘왜’를 묻는다. ‘왜 하필 나인가?’ ‘이런 끔찍한 일은 왜 벌어지는가?’ ‘신은 왜 이런 부조리를 눈감는가!’ 고故 박완서 작가 또한 그랬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누구보다 아름답게 살아낸 친구의 죽음이나 숱한 사람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대형 참사 앞에서 그는 극심한 분노와 의혹에 시달리고, 다리 없는 몸을 바닥에 끌며 구걸하는 이의 찬송을 들으면서는 "주님, 저 불쌍한 이한테까지 찬양을 받으셔야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너무 잔인하십니다."라며 원망하기까지 한다.
    스스로를 "차가운 이기주의자"라 칭한 박완서 작가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천주교 [서울주보]에 그 주일의 복음을 묵상하고 쓴 ‘말씀의 이삭’과 이를 엮어낸 산문집 [빈방]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제가 예수에게...사로잡혔다고는 하나 곧이곧대로 믿은 건 아니었습니다. 이건 분명히 위선일 것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예수의 위선을 까발리기 위해서 성서를 통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서를 읽는 동안 작가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그토록 냉랭하게 말할 것은 없지 않느냐, 귀신 들린 딸을 구해달라는 여인에게 그렇게 야박하게 구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예수께 따지고 든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산상수훈에 대해서도 그랬다. "예수님이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의 옹호자로 오신 것은 알겠지만 마음까지 가난하라니요?...그건 당신이 일관되게 설하신 사랑이나 나눔의 정신과도 앞뒤가 안 맞아 더욱 혼란스럽습니다."라며 의문을 표한다. "가난한 마음이란 혹시 빈자의 창고처럼 열린 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끝에 그는 가난한 마음이란 곧 "겸손한 자유인"을 뜻함을 스스로 깨친다.
    박완서 작가는 의심했기에 오히려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예수의 사랑을 [빈방]을 통해 증언한다. 이불을 널다 발견한 봄날 들꽃에서 부활을, 지하철역 앞에서 떡을 파는 아주머니의 옷깃에 달린 어버이날 종이꽃에서 생명을 목격하며, 일 못하는 파출부가 남기고 간 일거리를 기쁨으로 정돈하는 친구에게서 예수와도 같은 연민의 정을 발견한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성서 속 예수의 행적을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읽고 고민한 끝에 작가는 인간의 의지를 정련하는 생의 고난이 곧 신의 사랑임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비극 앞에서조차 보다 견결해지고야 만다.
    "당신의 시신을 지상으로 내려서 널 위에 뉘었을 때 피 묻고 찌그러지고 너덜너덜해진 당신의 육신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참의 극치군요....그걸 피하지 못했으니 당신은 철두철미 인간이었고, 그걸 피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정말로 인간도 아니군요. 당신의 참혹한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느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는 그닥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이란 바로 제 자식도 이렇게 죽일 수 있는 아버지, 엄혹 그 자체라는 깨달음이 전율처럼 등줄기를 스쳤습니다."

    "저를 향해 굳게 문 닫고 있다 해도 가끔 그들 사이로 돌아와 바람처럼 공기처럼 스며들어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1998년, 박완서 작가는 서울시 잠실동 아파트에서 구리시 아치울 노란집으로 이사한 후 "보이지 않는 손길"을 더욱 가깝게 느낀다. 다음 해 ‘말씀의 이삭’ 중 94편을 묶은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가 출간됐으며, 2006·2008년의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은 그 개정판이다. [빈방]은 세 번째 개정판이자 첫 번째 증보판으로, 미수록 원고 5편을 새로이 찾아 넣고 [노란집]의 일러스트를 그린 이철원 작가의 그림을 더해 박완서 작가의 정신세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각 꼭지는 연재 순서를 그대로 지켜 실었다. 때문에 책 초반에는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어야 하"는 소금이 되는 것도, 제 몸을 태워야 세상을 비출 수 있는 "빛이 되는 것도 사양하겠습니다."라던 그가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살아생전에나 사후에나 누구라도 "바람처럼 공기처럼 스며들어" 쉬어갈 수 있는 빈방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박완서 작가에게 성서-예수를 이해하는 일은 곧 삶의 이치와 자연의 섭리를 알아가는 일이었다. "오십이 넘어서 가톨릭 신자가 되었는데도...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였던 게 아닌가." 했던 것 또한 그 때문이었다. 그는 백화점에선 암말 않으면서 노점에서는 깎아달라 조르는 자신을 "죄인 중에도 가장 얼굴 가죽 두꺼운 죄인"이라 나무라며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부끄러움이 뭔지 깨닫게 하소서."라고 기도했고, 성서 속 예수와 같이 소박한 식사를 나눔으로써 모든 생명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자리를 꿈꾸었다. 연민과 사랑, 그리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겸허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빈방]은 노년기 박완서 작가의 내밀한 고백이자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신과 인간에게 올리는 헌사다.

    목차

    책을 펴내며

    들어가지 않고는 나올 수도 없는 문
    우리 안에 공존하는 동방박사와 헤로데
    복된 첫사랑의 추억
    부르는 소리 있어...
    이의 없습니다
    차라리 해바라기가 되게 하소서
    두 번 못 박긴 싫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주님, 정말 이러시깁니까?
    고고한 은둔에의 유혹
    놀랍고 황홀한 순간
    그 말씀만은 도저히 못 알아듣겠습니다
    주님도 편애를 하시나요
    최초의 크리스트 세일즈맨
    은행나무보다 큰 봄까치꽃
    에미 마음, 여자 마음
    미처 알아보지 못한 만남들
    들어가지 않고는 나올 수도 없는 문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참으로 좋은 달
    눈물 그렁한 당신의 시선
    당신의 상흔을 알아보게 하소서
    아이고, 하느님. 그것만은 못 하겠습니다
    축복받은 첫 영성체
    돌아오라, 다시 한 번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숨을 곳을 모르겠나이다

    이 고해에서 익사하지 않은 까닭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서 말의 구슬보다 한 톨의 씨앗으로 족하게 하소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싶은 근원적 물음
    측은지심
    이 고해에서 익사하지 않은 까닭
    에미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법
    헤아릴 길 없는 신비
    내 이름으로 모인 곳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주님의 잣대
    말과 행동
    내 친구 이야기
    어떤 교만
    빈 무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최초의 경이
    다양해서 아름다운 세상
    가장 부끄러운 고백
    산타 할아버지
    외치는 소리
    어느 중년 가장의 고백
    두들겨 깨우소서
    영광과 고통

    순명의 아름다움
    별을 보여주세요

    부르시는 방법
    말의 힘
    우울한 전망
    외딴곳
    광야
    아름다운 시절
    우리에게 평화를
    두려운 자유
    빈방
    공과 사
    주여, 저희들을 쟁기질하소서
    우리의 소원
    예수님의 변덕
    정보의 안개
    잔인한 여름
    우리 모두 돌아가야 할 곳
    소금과 부패균
    꽃보다 아름다운 계절
    가난한 사람은 우리의 쓰레기통이 아니다
    도망칠 수 없는 당신
    주님, 어서 오소서
    저희 마음에 요한을 보내주소서
    지도자에게 겸손을
    순명의 아름다움
    그 어머니에 그 아드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언
    선입관에 대하여
    예수님의 미끼
    자화상
    나의 안과 밖
    바위를 이기는 건 물뿐
    내가 꿈꾸는 부활
    궁금한 예수님의 얼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언
    우리가 구해야 할 기적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주님
    우리는 야단맞아 쌉니다
    또 하나의 기회
    주님의 양면성
    좁은 문은 지속적 관심
    염량세태
    당신의 종
    신의 겸손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
    자비심
    회개와 행동
    요한의 의심
    경천애인

    본문중에서

    세상을 환하게, 그리고 샅샅이 비추면서 어둠을 몰아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우쭐해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 어떻게 빛이 되죠? 저더러 촛불이나 횃불, 등잔불처럼 제 몸을 태워 빛을 내라고는 마옵소서.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제 몸을 태우라 하십니까. 허나 아무리 찾아봐도 몸을 태우지 않고 빛을 발하는 물건은 눈에 띄지 않는군요. 우리가 거저 진정한 빛이 될 수 없는 거라면, 빛이 되라는 말씀은 이웃을 위한 자기희생을 돌려서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닌가 싶어집니다.
    그렇다면 주님, 빛이 되는 것도 사양하겠습니다. 그 대신 제 언행이 주님의 빛을 기리며, 부지런히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가 되게 하소서. 금력이나 권력을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가 안 되는 것만도 저로서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 헤아려주소서.
    ( '차라리 해바라기가 되게 하소서' 중에서/ p.32)

    시청 앞에서 전철을 타고서야 내가 아침에 기도한 생각이 나면서 마치 주님을 온종일 내 심부름꾼으로 부리고 있었던 것처럼 으쓱해졌다. 그래서 또 한 번 기도를 했다. “주님, 전 지금 몹시 피곤합니다. 저한테 자리 하나만 내주십시오.” 전철은 러시아워를 넘기고 한산했기 때문에 그 소망쯤은 쉽게 이루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성내역까지 올 동안 어쩌면 내 근처에서 빈자리가 하나도 안 났다.
    “주님, 정말 이러시깁니까?” 이렇게 대들려는데 주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꿀밤을 한 대 먹이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넌 왜 나를 떠보려 하느냐?” 그러나 무서운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혀만 한 번 날름 내밀고 말았다.
    나는 악마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별로 궁금하지 않다. 나는 안다. 악마가 나처럼 생겼으리라는 것을. 왜냐하면 나는 주님을 떠보는 데 선수니까.
    ( '주님, 정말 이러시깁니까' 중에서/ pp.41~42)

    길고긴 초겨울 밤 출출할 무렵 뜨끈뜨끈한 고사떡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은근히 기다려지는 맛있고 든든한 먹거리였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건 단지 속담이나 비유만이 아닌 것이, 누구네 집에서 고사를 지낸다는 것만 알면 아닌 게 아니라 동치미 국물을 떠다 놓고 기다렸다. 고사떡 할 형편이 안 되는 집도, 또는 그런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젊은 새댁도 남에게 얻어먹은 것을 갚기 위해서라도 고사라는 걸 지내야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그러니까 그 시절의 고사는 미신적인 기복의 의미보다는 이웃과의 나눔과 친교의 의미가 더 깊은 것이었다.
    나는 시어머님이 계셔서 그분이 주관해서 떡도 하고 빌기도 하니까 심부름이나 했지 그게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하는 비판 의식 같은 건 품을 엄두도 못 냈다. 그래도 떡시루 앞에서 뭘 그렇게 정성스럽게 비실까 궁금해서 한번은 그걸 여쭤본 적이 있다. 그분의 대답인즉 “신령님, 제 마음 다 아시지요? 제 마음 다 아시지요?”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뜻밖의 대답에 웃고 말았지만 그 말씀은 지금도 나에게 가장 간결하고 아름다운 기도문이 되어 남아 있다. 그분은 돌아가실 때까지 종교를 갖진 않았지만 그 간단한 말 속에 함축된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일치와 친교에의 갈망과 어린애 같은 신뢰야말로 바로 종교적인 심성이 아니었을까.
    (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중에서/ p.149)

    죽음이 무서운 것은 혼자 가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저승에 천당이라는 데가 있다면 제가 이승에서 사랑한 꽃들보다 더 예쁜 꽃, 더 아름다운 나무, 더 빛나는 햇빛, 더 상쾌한 물결, 더 찬란한 노을, 더 명랑한 새소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승에 떼어놓고 가는 피붙이나 친구들이 그곳에 있을 리가 없다면 그 좋은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데려가서는 절대로 안 되는, 그러나 차마 헤어지기 싫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혼자 가야 하는 절대 고독은 생각만 해도 무섭고 끔찍합니다.
    주님, 저에게 천당을 허락하지 않으셔도 좋으니 부활의 희망만은 죽는 날까지 버리지 않게 하소서.…제가 꿈꾸는, 제게 합당한 부활은 저의 전체 중 가장 미소한 일부인 저의 좋은 점으로 하여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스며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저를 잊지 않고 저를 향해 마음의 문을 늘 열고 있기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그들이 저를 향해 굳게 문 닫고 있다 해도 가끔 그들 사이로 돌아와 바람처럼 공기처럼 스며들어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자주 저를 기억하지 않는다 해도 슬플 때 제가 생각난다면 기쁨이 되고, 어려울 때 제가 생각난다면 힘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 제 육신을 떠난 영혼에 그러한 자유를 주신다면 임종의 순간에도 결코 두렵지 않으리이다.
    ( '내가 꿈꾸는 부활' 중에서/ pp.283~284)

    이백여 년 전 우리의 신앙 선조들이 천주교를 처음 받아들이고 나서 겪은 처절한 순교의 역사를 보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도무지 상상이 안 됩니다.…순교자들 중 상당수가 천민들과 여자들과 어린이들이었습니다.…태어날 때부터 사람대접을 못 받고 억눌려 살아온 그들에게 있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말씀만으로도 목숨을 걸고 싶은 복음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사대부가에서 태어나 공부를 많이 하고 벼슬길이 보장된 선비들이 감히 국법을 어기고, 일가친척과 척을 지고, 가문과 일신의 몰락을 각오하면서까지 이 외래 종교를 지켜낸 건 무슨 까닭이었을까요. 그분이 불을 놓으러 오셨다는 걸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 불의 광휘를 본 사람이 암흑에 갇혀 사는 것은 죽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한번 진리를 깨치고 나면 다시 무지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주님 안에 일치를 이룸으로써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믿고 구해온 저희들로서는 뜻밖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의와 타협해서 얻은 평화는 죽음이나 다름없는 굴종일 뿐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근세사를 통해서도 얼마나 여러 번 보아왔습니까.
    ( '주님의 양면성' 중에서/ pp.304~305)

    유난히 밤 주우러 온 사람이 많은 어느 상쾌한 날, 저는 온종일 창가에 의자를 놓고 앉아 숲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올 때 보니 적으면 한 됫박, 많으면 두 됫박 정도의 밤을 주웠다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봉지가 아래로 축 처져 있습니다.…아침 일찍 남보다 먼저 숲으로 들어간 사람이나 남들이 온종일 휘젓고 다닌 뒤에 느지막이 들어간 사람이나 거의 같은 양의 밤을 주워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면 얼마나 신기한지요.…마치 그 안에 어떤 손길이 숨어 있어 공평하게 분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날 저는 마음이 텅 빈 채 열려 있었나 봅니다.
    숲 속에 있기는 있되 보이지 않는 분배의 손길이야말로 하느님 마음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이 감미롭게 스며드는 것이었습니다.
    숲을 바라보며 즐기고 산 지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숲의 복음을 들은 거였습니다.
    (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 중에서/ pp.32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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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박완서 [저] 베스트작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1.10.20~2011.1.22
    출생지 경기도 개풍
    출간도서 244종
    판매수 347,185권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1950년 숙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나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나목』 『미망』 『휘청거리는 오후』 『목마른 계절』 『도시의 흉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등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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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72~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단편 애니메이션 [Cloy], [왕과 화가]를 제작하였고 대림건설, 극지연구소, 에버랜드, 29초 영화제 등의 컨셉디자인 작업을 했다. [역사신문], [길 위에 시간을 묻다], [노란집] 등의 작품에 삽화를 그렸다. 현재는 조선일보 미술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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