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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본비교 징비록 懲毖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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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징비록]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에게 엄청난 재앙을 안겨 준 임진왜란은 왜 일어났는가? 조선은 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가?
    명군은 과연 조선의 은인이었는가? 전란 중 조선 조정과 관군, 그리고 의병과 백성은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이러한 전란을 미리 막을 수는 없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류성룡의 [징비록]이다. 후세에는 이러한 재난을 다시는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절실한 마음에서 류성룡은 이 책을 지었다. [징비록]은 류성룡의 뼈저린 반성의 결과물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간절한 선물이다.

    출판사 서평

    판본비교를 통한 정본 [징비록]

    기존의 번역본은 어느 판본을 대본으로 삼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원문을 벗어난 윤문으로 다른 번역본을 윤색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번역 대본으로 삼은 원문을 명시하지 않고, 판본을 대조하여 정본을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행이 계속되는 한, 자생 인문학은 수입 인문학에 밀려 발전하기 어렵다. 우리 인문학의 위기는 바로 이러한 관행에서부터 야기된 것이다.

    기존에 알려진 '징비록'의 국내 판본은 두 종류로 옥연서원에서 간행한 16권본과 간행자 미상의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일명 이권본이 그것이다. 여기에 일본에서 간행된 '조선징비록'과 이를 바탕으로 중국에서 간행된 '징비록]이 있었지만, 중국의 것은 오탈자가 많다고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역자들이 판본을 다시 조사해 본 결과, 대동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징비록'은 옥연서원본과 일부 다른 점이 나타났으며, 또 국회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다른 판본의 '징비록'도 발견하였다. 이에 역자들은 '징비록' 번역 최초로 국내 4종과 조선총독부 1종, 일본 간행 1종 등 도합 6종을 대조하였다. 이 외에도 일명 '초본징비록'이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초고이므로 글의 편차와 글자의 출입이 매우 많아 필요할 때만 참조하였다.

    왜 또다시 [징비록]인가

    전쟁은 실로 참혹한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입은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전란 전 170만 결에 이르던 경작지가 54만 결로 감소했다. 한 번 감소된 경작지는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일컬을 정도로 막대한 인적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최소한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쟁의 참상을 바로 알 필요가 있다. 왜 전쟁이 일어나고 그 과정은 어떠한지 도대체 그 속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한반도를 중심으로 강대국의 힘의 균형이 깨어졌을 때, 우리가 사는 바로 이곳 한반도에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큰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그리고 21세기 현재 한반도를 중심으로 미·일·중의 힘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 임진왜란에서 40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징비록'에 담긴 뜻은 매우 크다.

    목차

    책을 펴내며일러두기

    자서自序

    권1

    1. 일본 사신 귤강광이 국왕 평수길의 서신을 가져오다
    2. 황윤길과 김성일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다
    3. 왜침에 대한 두 사신의 의견이 엇갈리다
    4. 명나라에 왜국 국서의 내용을 알리다
    5. 왜침에 대비하였으나 백에 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다
    6. 이순신을 발탁하고 진관법을 건의하다
    7. 신립이 왜적을 가벼이 여기다
    8. 4월 13일에 왜적이 쳐들어오다
    9. 이일과 신립을 선봉으로 보내다
    10. 김성일을 초유사로 삼다
    11. 김늑을 경상좌도 안집사로 삼자 의병이 크게 일어나다
    12. 이일이 상주에서 패하고 충주로 퇴각하다
    13. 흉흉해진 도성의 민심과 해이해진 군정
    14. 왕세자를 세워 인심을 수습하게 하다
    15. 사신 이덕형이 평행장을 못 만나다
    16. 왜적의 서울 침입에 대비하다
    17. 신립이 충주에서 패하다
    18. 임금님께서 서쪽으로 몽진가시다
    19. 삼도순찰사의 군대가 용인에서 패하다
    20. 승전한 부원수 신각을 참수하다
    21. 왜적이 임진강을 건너다
    22. 왜적이 함경도에서 두 왕자를 사로잡다
    23. 순변사 이일이 평양으로 오다
    24. 요동도사가 임세록을 보내 왜군의 실정을 탐지하다
    25. 좌의정 윤두수에게 평양을 지키도록 하다
    26. 어가가 평양을 떠나 영변으로 향하다
    27. 평양이 함락되다
    28. 명나라 군사의 군량을 마련하기 위해 힘쓰다
    29.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던 신점이 구원병을 요청하다
    30. 명나라 군사의 군량을 마련하다
    31.평양성 탈환에 실패한 조승훈이 요동으로 돌아가다
    32. 이순신이 왜적을 크게 무찌르다
    33. 조호익이 군사를 모집하여 적을 토벌하다
    34. 왜적의 전라도 침범을 막아내다
    35. 이원익과 이빈이 평양성 탈환에 실패하다
    36. 심유경이 평행장과 휴전에 합의하다
    37. 경기 감사 심대가 습격을 받고 죽다
    38. 왜적을 섬멸한 원호가 춘천에서 전사하다
    39. 훈련원 부봉사 권응수와 정대임이 영천을 수복하다
    40. 좌병사 박진이 비격진천뢰로 경주를 수복하다
    41. 각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다
    42. 이일을 순변사로 삼고 이빈을 행재소로 부르다
    43. 첩자 김순량을 잡아 간첩을 일망타진하다

    권2

    1. 명나라 군대와 함께 평양을 수복하다
    2. 순변사 이일을 이빈으로 교체하다
    3. 이여송 제독이 벽제관 전투에서 패하다
    4. 제독이 평양으로 돌아가다
    5.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승리하다
    6. 남은 군량미로 백성을 구제하다
    7. 류성룡이 이여송의 강화 제의에 반대하다
    8. 서울을 수복하다
    9. 진주성이 함락되다
    10. 심유경과 평행장이 강화를 모의하다
    11. 강화 협상이 결렬되다
    12. 이순신이 백의종군하다
    13. 명나라 군대가 다시 출병하다
    14. 원균의 수군이 괴멸되다
    15. 황석산성이 함락되다
    16.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삼다
    17. 남원성이 함락되다
    18. 이순신이 명량에서 크게 승리하다
    19. 왜적이 경기도에서 물러가다
    20. 명나라 군대가 울산 왜성을 공격하다
    21. 경리 양호가 파면되어 돌아가다
    22. 이순신이 전사하다
    23. 이순신의 기개와 지조
    24. 이순신이 밤낮으로 경계를 엄중히 하다

    녹후잡기錄後雜記

    1. 임진왜란이 일어날 조짐
    2. 하늘의 도움으로 임진왜란을 극복하다
    3. 평양 수복 후 왜적을 섬멸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다
    4. 전쟁은 지형을 이용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5. 성城의 치雉를 이용해 성을 지키는 방법
    6. 진주성에 포루가 설치되지 못한 것을 애통해 하다
    7. 장수는 평상시에 재주 있는 이를 가려 뽑아야 한다
    8. 임진강에 칡덩쿨로 다리를 만들다
    9. 훈련도감을 만들다
    10. 심유경이 김명원에게 보낸 편지
    11. 심유경은 유세가였다

    서애 류성룡 연보
    옮긴이의 말
    색인

    본문중에서

    이 날(4월 13일), 왜적의 배가 대마도로부터 바다를 덮고 왔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부산 첨사 정발이 절영도絶影島(부산 영도)에 사냥을 나갔다가 허겁지겁 성으로 들어왔다. 왜병이 뒤따라 상륙하여 사방에서 구름같이 모여드니 순식간에 부산성이 함락되었다.
    경상좌수사 박홍은 적의 세력이 큰 것을 보고 군사를 출전시키지 못하고 성을 버리고 도망갔다. 왜군은 군사를 나누어 서평포西平浦(부산시 사하구 구평동)와 다대포多大浦(낙동강 하구 최남단에 있는 포구)를 함락시켰는데, 이때 다대포 첨사 윤흥신은 힘껏 싸우다 전사했다. 경상좌병사 이각은 소식을 듣고 병영에서 동래로 들어갔는데, 부산성이 함락되자 이각은 겁을 집어먹고 어쩔 줄 모르다가 ‘성 밖에 나가 양면 작전을 펼치겠다.’라고 핑계를 대고 성에서 나와 소산역蘇山驛(부산시 금정구 선동 하정마을에 있던 역)으로 물러나 진을 쳤다. 부사 송상현이 함께 머물며 성을 지키자고 했으나 이각은 따르지 않았다.
    (/ '권1, 8 4월 13일에 왜적이 쳐들어 오다' 중에서)

    그러나 불행하게도 경상도 수군과 육군의 장수들이 모두 겁쟁이였다. 바다에 있어서는 좌수사 박홍은 한 명의 병사도 출병시키지 않았으며, 우수사 원균은 비록 물길이 좀 멀기는 하지만 거느리고 있는 배가 많았고, 또 적병이 하루에 한꺼번에 쳐들어 온 것도 아니었으니,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전진하여 군대의 위세를 보이고 서로 대치했어야 했다. 다행히 한 번이라도 이겼다면 왜적은 마땅히 배후를 근심하여 갑자기 깊이 쳐들어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라만 보고도 멀리 피해서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왜적이 육지에 오르자 경상도 좌병사 이각은 도망쳤고 우병사 조대곤은 교체되었다. 왜적은 북을 치며 거침없이 전진하여 무인지경의 수백 리의 땅을 밟고 밤낮으로 북상하였지만, 단 한 곳도 용감하게 대항하여 조금이라도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려는 자가 없었다.
    (/ '권1, 17 신립이 충주에서 패하다' 중에서)

    얼마 후에 이순신은 판옥선 40척을 거느리고 이억기와 함께 약속하여 거제도에 이르러서는 원균과 군대를 합쳐 진격하여 적선과 견내량에서 맞닥뜨렸다. 이순신이 말하였다.
    “이곳은 바다의 폭이 좁고 수심이 얕아서 뱃머리를 돌리기가 어렵습니다. 거짓으로 물러나 적을 유인하여 바다가 확 트인 곳에서 싸우는 것이 더 좋습니다.”
    원균은 화를 내면서 곧장 앞으로 나가 부딪쳐 싸우려고 하였다. 이순신이 말하였다.
    “공은 병법을 모르오! 이와 같이 하면 반드시 패할 것이오!”
    드디어 깃발로 배를 지휘하여 물러나게 하니 왜적들이 크게 기뻐하며 다투어 배를 타고 쫓아왔다. 이미 좁은 곳을 빠져나오자마자 이순신이 북을 한번 치자 모든 배들이 일제히 노를 돌려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열을 지어 벌려 섰는데, 정면으로 적선과 맞부딪치니 서로의 거리가 수십 보에 지나지 않았다. (중략) 여러 배가 일시에 합세하여 공격하니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가득하였고 적선을 수도 없이 불태워버렸다. 어떤 적장이 누각이 있는 커다란 배에 타고 있었는데 그 높이가 몇 길이나 되었고, 배 위에 망루도 있어서 붉은 비단과 채색 담요로 그 밖을 두르고 있었다. 그 배 역시 대포에 맞아 부서졌고 적병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그 뒤에도 왜적들이 계속해서 싸움을 걸었지만 모두 패하였다. 마침내 부산과 거제로 도망쳐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 (중략) 이보다 앞서 적장 평행장이 평양에 이르러 글을 보내 말하였다.
    “일본 수군 10여 만 명이 또 서해로부터 올 것인데, 대왕께서는 이곳에서 어디로 가려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왜적은 본래 수군과 육군이 합세하여 서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 한 번의 싸움에 힘입어 마침내 왜적의 한쪽 팔을 끊어버렸다. 그래서 평행장이 비록 평양을 점령했으나 형세가 고립되어 감히 더 이상 진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국가에서는 전라도·충청도를 보전할 수 있어서 황해도·평안도 연해지역 일대까지 군량을 보급하고 조정의 명령이 전달되도록 하여 나라의 중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요동의 금주·복주·해주·개주와 천진 등의 땅도 난리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나라 군사가 육로를 통해 구원해 줄 수 있어서 왜적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모두 다 이 한 번의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호라! 그러니 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었겠는가?
    (/ '권1, 32 이순신이 왜적을 크게 무찌르다' 중에서)

    대군이 개성부에 도착한 지 오래되어 군량미가 이미 바닥이 났다. 다만 뱃길을 따라 조와 말먹이 풀을 강화도에서 구해왔고, 또 충청도·전라도의 조세로 바쳐진 곡식을 배로 운반했는데 조금씩만 도착해서 이르자마자 바닥이 났으니 그 형세가 더욱 위급하였다.
    하루는 여러 장수들이 군량미가 떨어진 것을 핑계로 제독에게 군사를 돌리자고 청하였다. 제독이 화가 나서 나와 호조판서 이성중과 경기 좌감사 이정형을 호출하여 뜰아래 무릎을 꿇리고 큰 소리로 꾸짖으면서 군법을 가하려고 하였다. 나는 사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을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 '권2, 3 이여송 제독이 벽제관전투에서 패하다' 중에서)

    초현리에 이르렀을 때 중국인 세 사람이 말을 타고 내 뒤에서 달려와 큰소리로 외치기를 ‘체찰사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대답하였다. “내가 체찰사다.” 말을 돌리라고 소리쳤는데, 한 사람이 손에 쇠사슬을 들고 긴 채찍으로 내 말을 마구 때리며 “달려라, 달려라!”라고 외쳤다. 나는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어쩔 수 없이 말을 돌려 개성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 사람은 말의 뒤를 따르면서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다. 나를 수행하던 사람들은 모두 뒤쳐졌고 다만 군관 김제金霽와 종사관 신경진만이 힘을 다해 뒤따라 왔다. 청교역靑郊驛을 지나 토성의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또 한 사람의 기병이 성 안에서 말을 달려와 세 명의 기병에게 무슨 말을 하였다. 곧 이어 세 명의 기병이 나에게 인사를 하며 말하였다.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돌아왔다. 다음날 이덕형의 통지를 받고서야 비로소 그 까닭을 알게 되었으니, 이러한 연유가 있었다. (중략) 대개 제독은 내가 강화를 늘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평소에 불평하는 마음이 있었던 까닭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듣자마자 다시 살펴보지도 않고 갑자기 이처럼 화를 내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위험해졌다고 여겼다.
    (/ '권2, 7 유성룡이 이여송의 강화 제의에 반대하다'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542~1607
    출생지 경상북도 의성
    출간도서 28종
    판매수 10,375권

    조선 중기의 관료, 인문학자, 의학자, 저술가이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경상도 의성의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간성군수 유작(柳綽)의 손자이며,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柳仲?)의 차남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조목(趙穆)·김성일과 동문 수학하였으며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과거를 통해 관료로 등용되어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를 계기로 강경파인 이산해, 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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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대 문과대학 한문학과 졸업
    성균관대 교육대학원 한문교육전공 석사
    현 상문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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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대 문과대학 한문학과 졸업
    전주대 대체의학과(심신의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현 성균관대 강사(금석서예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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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대 문과대학 한문학과 졸업
    홍익대 교육대학원 한문교육전공 석사
    현 서대문구청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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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노수신(盧守愼)의 시를 연구하여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명나라 사신과 조선 접반사 사이의 문학적 교류 양상을 연구한 "황화집(皇華集) 연구(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주대학교와 동국대학교에서 "한국문집 소재 부(賦) 역주 해제"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하였으며, 이후 청주대학교 학술연구소의 연구원을 지냈다. 성균관대.청주대.안동대.한림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명나라 사신은 조선을 어떻게 보았는가 .황화집 연구-](다운샘), 공저로 [옥동 문익성 및 그 후예들의 학문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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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대 문과대학 한문학과 졸업
    성균관대 교육대학원 한문교육전공 석사
    전북대 중어중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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