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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후기에 사족의 존재 양상, 즉 양반으로 살가간다는 것이 어떤 모습과 의미를 가지는지, 그들의 주된 관심사와 생활철학은 무엇이었으며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도덕적, 실천적 기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가를 한 지방사회에 초점을 맞추어 조명한다. 저자는 양반들의 일상 생활의 여러 측면을 고문서 자료를 중심으로 집중 분석하고 이를 사회과학적 시각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1. 이 책이 새로 발견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 1) 부모가 사전에 유언으로 남긴 허여문서에는 봉사조로 장남에게 더 주는 이른바 차등분배가 있기도 했지만, 부모가 생전에 별급이나 깃급으로 주는 분배에는 시집간 딸이 아들보다 더 많이 받는 경우도 있었고, 사위까지도 분배를 받았다. 그리고 부모 사후 남매들끼리 하는 화해문서를 보면 남녀 균분원칙이 18세기까지도 적용됐음을 알 수 있다. 2) 이러한 여성의 재산권 때문에 혼인이 남자측으로서는 경제적 기반확보의 중요 기제가 된다. 그러므로 혼인은 정치적?사회적으로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수단이 된다. 3) 가장이 죽으면 그의 형제가 호주가 되어 어린 조카가 장성할 때까지, 또는 20~30년 후에 후계자를 입양할 때까지 남은 식구들과 함께 삶을 꾸려 나간다. 이때의 호주는 오늘날의 호주제와 달리 가족을 대표할 뿐 재상상속과는 무관하다. 4) 양반 가문이 명문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데는 학맥 못지 않게 혼맥이, 그리고 학문적 성취 못지 않게 경제적 기반의 구축과 유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5) 양반의 지위는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영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양반의 운명은 유동적이다. 따라서 그들은 끊임없이 국가 차원의 맥락에서 자기 문중과 인물의 역사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문집의 간행과 신원운동을 조직한다. 5) 소지(소송문서)에 대한 분석은 재판과정뿐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당사자 사이의 관계와 권력과 정치의 관계를 알게 해 준다. 때로는 상민이 양반에 대항하고, 향리와 양반 사이에 힘 겨루기가 진행되며, 판관인 수령이 타향의 양반과 자신의 행정관할 아래 있는 상민 혹은 노비를 두둔하기도 한다. ------------------------------------------------------------------------------------------------ 2. 이 연구의 특징 1) 사료의 단순한 해설이 아니다. 공문서 외에도 집안과 문중의 사적인 문서와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섭렵하고 관련된 지역과 집안에 대한 현지조사를 결합함으로써 인문학적 방법과 사회과학적 방법을 결합했다. 2) 단순히 자료에 나타난 과거의 한 부분을 재구성한 것도 아니다. 한 지역사회의 특정 종족집단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삶의 세계를 재구성함과 동시에 이를 통해 오늘날까지 관류하고 있는 한국의 전통적 문화체계와 사회의 구조적 원리를 찾아보는 중층적인 시도이다. 3) 생생한 양반의 생활세계를 그렸다. 그 동안 문중이나 인물 연구에서 식상하게 보아 왔던 특정 훌륭한 인물이나 집안의 칭송을 통한 박제화된 양반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묘사하는 차원을 극복하고, 자기 집단의 신분적 상승과 집단의 결속을 도모하기 위해 경쟁과 갈등, 대립, 그리고 타협을 해 나가는 양반들의 생생한 모습을 그렸다. 따라서 훌륭한 측면만을 부각하거나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는 대신, 그렇지 않은 면도 밝히고 바람직한 면과 부정적인 사건들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결합시킴으로써 균형적이고 현실성 있는 과거의 재현에 노력하였다. 4) 이는 학제간 연구의 모범적인 사례다. 이 책의 작업은 인간과 사회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심층적 구조와 과정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연구인 정치인류학, 사회인류학, 가족학, 여성학, 사회학, 법제사 등을 결합시킴으로써 학제간 연구에서 새로운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 체계적인 맥락 속에서 해석을 시도했다. 이 연구는 광범한 영역에서 풍부한 자료를 상세하게 분석하였고 문서가 출현한 당시뿐 아니라 그 전과 후의 시기까지 연결지어 고찰하고 있으며 국가와 지역사회가 서로 연관된 하나의 체계적인 맥락 속에서 해석을 시도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또한 연구자들은 자료해제와 문헌조사, 현지방문 연구, 기존 연구와의 대조와 참고 등을 위해 오랜 시간을 쏟았으며 입체적으로 서술함으로써 모범적인 연구자세를 보여주었다. 미시사적 접근의 성공적인 예에 해당한다. 개인과 그가 속한 문중과 지역사회의 여러 문중과 유림과 서원, 그리고 중앙의 정치무대가 서로 얽혀서 사건과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세밀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 촌락과 인물과 문서를 단편적이고 독자적인 수준에서 다루고 있는 여느 접근방식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한 장의 문서나 한 개인의 문제도 국가 차원의 전체 사회의 정치와 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것, 다른 말로 하자면 한 조각의 문서와 한 구절의 문장 속에는 국가와 지방사회의 다양한 관계가 숨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 주고 있다. ------------------------------------------------------------------------------------------------ 3. 이 책의 내용 1) 종족조직과 생활문화(문옥표)의 장에서는 종족조직의 고전적인 면모를 재현하기보다 의성김씨들이 타향인 안동에 들어와서 소수자로서 사족의 지위와 명망을 획득하는 전략적 과정과 내부적인 분화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들이 명문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데는 학맥 못지 않게 혼맥이, 그리고 학문적 성취 못지 않게 경제적 기반의 구축과 유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종법체계에 철저하고 사회적으로 영락한 가족은 냉정하게 배제함으로써 엄격하게 엘리트 지향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노론과 남인이 대립하는 조선조 후기의 전국적 수준의 정치구도 속에서 영남 사림파의 대표적 문중의 하나로서 남인이 겪는 영욕의 역사가 그들 문중의 생존 양상에 투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하위 지파 중요 가족의 호구단자를 통시적으로 분석(은기수)한 3장과 4장은 그들이 종족전략의 차원에서 가계 계승의 방법을 치밀하게 실천했으며 전통시대의 가족이 종법사상을 실천하기 위하여 혼인의 시기와 호주 승계 및 입양 등의 전략을 다양하게 구사했음을 보여준다. 가장이 죽으면 그의 형제가 호주가 되어 어린 조카가 장성할 때까지 또는 20~30년 후에 후계자를 입양할 때까지 남은 식구들을 꾸려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의 호주는 오늘날의 호주제와 달리 가족을 대표할 뿐 재상상속과는 무관함을 보여준다. 3) 분재기의 분석(문옥표)은 재산상속과 분배가 가족의 유형과 종법체계의 실천, 남녀의 법적 지위와 사회적 지위, 혼인과 사회조직의 원리 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연구의 영역임을 증명한다. 이때까지는 사회경제사적 시각에서 대개 조선조 초기에까지 남녀평등 혹은 여성의 재산권을 증명하는 단편적인 연구가 있었지만, 한 문중의 다양한 형식의 재산 분배와 상속에 대한 기록물을 종합하고 오랜 기간에 걸친 역사적 과정의 맥락 속에서 이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본격적인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비와 전답, 임야, 주택이 주된 재산항목인데, 조선시대에는 여성의 재산권이 인정?보호되었으며 가장의 권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부모가 사전에 유언으로 남긴 허여문서에는 봉사조로 장남에게 더 주는 이른바 차등분배가 있지만, 부모가 생전에 별급이나 깃급으로 주는 분배에는 시집간 딸이 아들보다 더 많이 받는 경우도 있었으며 사위도 분배를 받았다. 그리고 부모의 사후 남매들끼리 하는 화해문서에는 남녀 균분의 원칙이 18세기까지도 실천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분재기는 여성의 재산권 외에 제사 상속권의 확립이나 변화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또한 여성의 재산권은 혼인이 남자측으로서는 경제적 기반 확보의 중요 기제가 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혼인은 정치?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수단이 된다. 4) 통문과 완의문의 분석(김광억)은 전통시대 사족들이 어떤 사회적 연망을 형성하고 그들의 정치적?문화적 세계를 구축하였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연구영역의 개척인 동시에, 사회과학적 아이디어와 시각을 도입해 정치문화학적 해석을 시도한 특기할 만한 연구결과로 볼 수 있다. 문중과 문중 사이, 서원과 서원 사이, 유림과 향교가 낸 사발통문 등 다양한 종류의 통문은 그 내용분석뿐 아니라 참여 인물과 그 유통과정에 들어 있는 서원과 향교와 문중의 분석을 통하여 공론의 장이 형성되고 장악되며 이용되는 양상을 살핀다. 커뮤니케이션의 네트워크와 정치적 동맹관계의 형성은 사족에게, 그리고 국가권력에 대한 지방사회의 전통이 상호 작용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으로서 중요하다. 공론화를 시도하고 공론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적 자원으로서 문화의 생산과 소비라는 측면을 보고 있으며, 동문간의 알력과 경쟁, 학맥과 문중관계, 문중 사이의 계회를 다룬다. 또한 양반의 지위는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영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운명은 유동적임이 발견되며, 따라서 그들은 끊임없이 국가 차원의 맥락에서 자기 문중과 인물의 역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하고 문집의 간행과 신원운동을 조직한다. 완의문은 문중이나 개인이 특정 사안에 대해 그 배경과 논의과정과 결정내용을 법적 효력을 위하여 서술한 것으로, 전통사회의 다양한 관심사와 주제들이 망라된다. 그 사건의 발단과 처리방식, 그리고 그와 연결된 논리와 명분 등을 알 수 있고, 실질적으로 어떤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윤리적?철학적 기능을 하는가를 보여준다. 저자는 문서의 내용분석에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만들어진 시기와 동기, 원인, 작성과정, 참여 또는 배제된 인물, 그것을 주고받은 집단과 단위들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며, 그것들을 둘러싼 지역과 국가 차원의 여러 사건들과 연결시킨다. 완의는 곧 문중의 통합과 결속을 위한 문화적 장치로서 기능한다. 제사의 확립과 종가의 보존, 내?외손 사이의 윤리적 의무, 제사의 종류와 규범과 공동재산의 관리, 촌락공동체적 성향과 종족공동체적 모델 사이에 빚어지는 알력, 문집간행의 어려움, 서원 제향을 둘러싼 갈등과 경쟁이 그들이 관심을 쏟은 영역이며, 양반이라고 해서 반드시 편한 것만은 아니었음과, 그러므로 그들은 지역사회의 자치적 운영의 헤게모니를 위한 동약(洞約) 같은 문화적 장치를 확보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완의문의 실천은 종족의 결속과 아이덴티티 및 세력을 확보하게 해 주지만, 나아가 완의문 작성 자체가 내적 결속과 자기인식을 새로이 하는 문화의 정치적 과정이었다. 곧 문서 작성의 정치학의 현장을 발견하게 된다. 5) 이와 함께 소지(소송문서)의 분석(박병호)은 전통시대에서 공정성의 개념과 실천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재판과정뿐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당사자 사이의 관계와 권력과 정치의 관계도 풀어 본다. 흥미로운 것은 개인과 국가 혹은 관(官), 개인과 개인 사이, 문중, 양민, 상민, 관노, 노비, 향리 등등이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상민이 양반에 대항하고, 향리와 양반 사이에 힘 겨루기가 진행되며, 판관인 수령이 타향의 양반과 자신의 행정관할 아래 있는 상민 혹은 노비를 두둔하는 정치적 배려도 끼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건이 소송에서 판결, 그리고 재소송과 해결이 20~30년씩이나 되는 오랜 기간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지역사회의 권력구조와 당사자 집단 사이의 관계, 그리고 심지어 중앙정부와 지방 사족집단 관계의 또 다른 표현 기제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지방 수령에게 받은 판결에 불복하면, 관찰사(또는 감사)에게 항소(이를 議送이라 한다)하고, 여기에도 불복하면 형조에 상고하는 3심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6) 종족조직의 생활문화의 장에서 문옥표 교수가 상세하게 살펴보고 있듯이, 한 가지 사안은 그것이 소송이든, 신원이든, 사당과 서원의 건립과 서원 제향에 관한 일이든, 문집의 간행이든, 혹은 종족 공동재산을 만들고 산소를 중수하는 일이든 모든 일이 몇 년씩 그리고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서 반복되면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은 문중세력의 취약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장기간 반복적으로 일을 조직함으로써 문중의 아이덴티티가 확립되고 결속력이 강화 또는 유지되는 메커니즘이다. 7) 이 연구는 양반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 격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양반은 거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자동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었다. 양반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학문에 힘을 써서 학맥에 들어가고, 또 동격의 집안과 지속적이고 중복적인 혼인관계의 망에 들어 있어야 하며, 종족 유지를 위한 경제적 기반을 잘 운영해야 한다. 해체와 영락, 그리고 유지와 생존 사이에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그들의 생생한 모습이 책 전편에 흐른다. 8) 이 책은 과정과 역동성,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양반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연구들과 뚜렷이 구분되며, 역사인류학, 문서를 통한 과거의 재현과 해석, 과거와 현대의 연속성 등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신선한 연구이자 안내서가 될 것이다.

조선양반의 생활체계/차례
제 1장 생활사 연구와 고문서
제 2장 종족조직과 생활문화
제 3장 가계계승의 다양성과 '종족전략'
제 4장 의성김씨가 가족의 변화
제 5장 분재기를 통해 본 여성 제산상속권의 변화
제 6장 관계의 망과 문화공동체
제 7장 통합과 결속의 문화적 장치
제 8장 공정성의 개념과 실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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