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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의 시대 : 신의 죽음 이후 우리는 어떤 삶을 추구해왔는가

원제 : THE AGE OF NOTHING: How We Have Sought to Live Since the Death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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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신 없이 살아가기 위한 인간 노력의 전모, 그것은 결국 20세기 예술과 과학의 백과사전이자 인명사전

이 책은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 직후 세대부터 현재까지 130년 동안 펼쳐진 거대한 문화의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숨 가쁘게 연대기적으로 조망한다. 문학에서 미술, 철학, 심리학과 정치운동, 세계대전과 극예술과 대중문화까지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사이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연결하여 인간과 그 사상의 전개에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독자들을 위해 또 한 편의 작품을 완성했다.

출판사 서평

'거대 서사'를 잃어버린 인간을 위한, 한 편의 거대 서사 '모든 것의 시대'

'있음'과 '없음'의 존재론, 나아가 그에 대한 '앎'을 다루는 인식론은 '함'과 '됨'의 실천론으로 이어진다. 21세기 현재 갖가지 이데올로기와 '이즘'들이 이미 무너지거나 막다른 골목에 봉착해 있다. 제국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스탈린주의, 파시즘, 모택동주의, 유물론, 행동주의, 인종주의까지, 그리고 2008년의 '신용 경색'과 그에 따른 혼란스러운 여파로 자본주의까지….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맨 20세기의 문화사, 지성사, 정치사, 종교사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책 [무신론자의 시대]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당연히 무시무시한 박학다식의 소유자 피터 왓슨(Peter Watson). 과학부터 시, 철학, 뉴에이지 '심령주의'와 테라피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비종교적 사상의 역사에 질서를 부여하여, 니체로부터 윌리엄 제임스, 밥 딜런, 심지어 재즈 사이의 동떨어진 지점들을 연결해나간다. 지성사의 바다를 비추는 등대, 그물 같은 사상의 경로를 안내하는 GPS가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 직후 세대부터 현재까지 130년 동안 펼쳐진 거대한 문화의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숨 가쁘게 연대기적으로 조망한다. 문학에서 미술, 철학, 심리학과 정치운동, 세계대전과 극예술과 대중문화까지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사이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연결하여 인간과 그 사상의 전개에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독자들을 위해 또 한 편의 작품을 완성했다. 모든 페이지의 반짝이는 문장들은, 만만치 않은 끈기와 지성과 지식을 요구하는 이 학구적 작품에 도전하는 지적인 독자들을 위한 피터 왓슨의 선물이다. 아울러 저자보다 더 박학다식한 독자들을 위해 아이디어의 출처를 밝힌 주석과 찾아보기를 함께 소개한다.
'아멘' 없는 시대, 무신론자의 시대는 세계를 판단할 단 하나의 압도적 기준이 사라진 시대이다. 이 책은 그 진실을 깨닫는 데서 나아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누리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사람은 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이성의 빛 속에서 걷기보다는 스스로 다음 시대의 예언으로서 걸어야 한다."

신도 이성도 없이 스스로 예언자가 되어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1882년 프리드리히 니체의 단호한 선언 이후, 용기 있고 성찰적인 많은 사람들이 각자 신 없이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구상하는 창의적인 일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신이 아닌 '창작'과 '열정', '희망', '기지',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자립'의 형식들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용감하고 혁신적인 이야기는 그저 각각의 이야기로 묻혀 있었을 뿐, 하나의 거대 서사로 통합된 적이 없었다.
[무신론자의 시대]는 종교적 신앙이 사라진 곳에서 대담하게 새로운 길을 개척한 수많은 철학자, 화가, 극작가, 시인, 소설가, 심리학자, 과학자, 무용가 들의 용감한 성취의 역사를 담아냈다. 이것은 이제 더 이상 공론가, 독재자, 허풍선이 들의 역사가 아니다.
1차 세계대전 때까지 니체는 예술에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알다시피 1차 대전은 니체와 그 사상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완전히 뒤집어엎었다. 가장 폭발적이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은 부류는 아방가르드 지식인과 예술가, 문필가 들이었을 것이다. 애슈하임이 '니체 세대'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새로운 무엇이 되고, 새로운 무엇을 나타내고, 새로운 가치들을 표상하라"라는 니체의 제안은 상징적인 것이었다. 니체는 기성의 고급문화에서 소외된 아방가르드에 의미를 부여했다. 니체가 지지한 두 가지 힘은 급진적이고 현세적인 자기창조와 디오니소스적인 자기탐닉의 명령이었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총체적' 공동체, 구원적 공동체를 찾기 위한 모색 속에 개인주의적 충동을 녹여 넣으려는 몇 가지 시도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제일 먼저 주목한 것은 허무주의가 처한 곤경에 대한 니체의 진단이었지만, 그들은 재빨리 다른 쪽으로도 관심을 돌렸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흥분과 진정성, 강렬함, 그리고 이전에 지나간 것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것을 만들어낼 새로운 위버멘쉬(초인) 인간형을 북돋워 주고 그들에 의해 변화된 문명이었다. 표현주의 시인 에른스트 블라스는 독일제국 시기 베를린의 카페 생활에 대해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 일은 당시의 거대한 속물주의에 맞선 전쟁이었다. … 그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이들은 누구보다도 반 고흐와 니체, 프로이트, 베데킨트였다. 사람들이 원한 것은 합리주의 이후의 디오니소스였다."
1914년, 역설적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반겼다. 그들은 참호전의 참상 뒤에 자리한 심연, 즉 구속(救贖)과 공동체의 복원을 응시하는 자들이었다. 전쟁을 한 사람이 지닌 영웅적 자질들에 대한 궁극의 시험이자 의지의 시험으로 보고 무아경의 경험을 할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로 보았다는 점에 니체의 배음이 깔려 있었다. 이후 우리에게 특히 의미 있는 두 요소가 1차 세계대전의 전면에 등장한다. 하나는 시였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였다. 시와 전쟁이 그토록 잘 어울렸다는 사실은 대단히 이례적이며 많은 점을 시사한다.
2차 대전으로 인류는 '0시'에 도달했고, 세 가지 장기적 결과와 마주했다. 첫째는 주로 프랑스에서 일어난 것으로, 후설의 현상학적 관념들에서 싹을 틔워 들끓는 전쟁과 점령 상황 속에서 결실을 맺은 실존주의 철학의 태동이었다. 둘째는 미국 사회에서 깊이 각인된 폭넓은 변화로, '자유방임적 방향 전환'이 이어지면서 급속도로 세속화로 치달았다. 그 결과 사회와 사람에 대한 종교적 이해가 별안간 심리학적 이해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셋째는 홀로코스트가 유대인들의 생각에 남긴 영향이다.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신이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치할 수 있다는 말인가? 홀로코스트의 원인은 무엇이고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이 세 가지 결과는 커다란 사건이었으며, 무력 충돌이 다 끝난 뒤에도 종교적 맥락과 세속적 맥락에서 오래도록 사상과 문화를 형성했고, 오늘날까지도 계속 형성하고 있는 관심사들이다.

참삶을 추구하는 방법들

무신론자들은 무신론과 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서 다른 삶의 방식, 곧 세계에 존재하는 다른 형태의 의미를 찾고자 했으며, 수많은 사람이 초자연적 초월이라는 개념을 상실한 바람에 생긴 필연적 결과라고 여긴 그 무시무시한 결핍을 극복할 방안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들은 말한다. 구체적인 개인들, 개별적인 것들, 구체적 해결책, 모든 것에 존재하는 끈질긴 실체성, 절정의 순간, 작은 기쁨, 휴일의 삶, 자발적 긍정, 지엽적 행동, 자기를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통해 유한한 완전함을 볼 수 있다고. 시에서, 행복에서 높은 산에서, 풍경에서….
이들이 신을 대체할 것을 찾아 애쓰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현대 문화의 핵심적 요소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무신론자들이 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결코 아님을, 듣기 좋은 노랫가락은 신이나 악마의 차지만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책의 원제 '무의 시대(The Age of Nothing)'를 '모든 것의 시대(The Age of Everything)'라고 표현해도 좋겠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조마조마하고 도발적인 사유들은 결국 다양한 형태로 독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며 일종의 위안을 준다. 지구촌 모든 사람이 하나씩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참삶'의 방법이 각자에게 있을 수 있다는.

[이 책의 내용]

신이 없어진 세계에 대해 접근하고자 한 방법 중 가장 심오한 것은 현상학이었다. 말라르메는 '주름 없는 단어들(따라서 사상들)'을 추구했고, 보들레르는 '행복한 순간들'을, 발레리는 '질서로 이루어진 작은 세계들'을 소중히 여겼다. 체호프는 '구체적인 개인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자잘하고 실용적인 답들'을 선호했으며, 지드는 '체계화는 변질시키고 왜곡하고 빈약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토머스 네이글은 "개별적인 것들에는 자아의 모든 측면이 투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경쟁적이지 않은 완전함이 있을 수 있다"라고 표현했으며, 로버트 노직은 "이것이 바로 시인들과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작은 것들이 지닌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남이다. 모든 것에는 '그만의 끈질긴 실체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다시 삶의 일화적 성격, 프루스트의 '지복의 순간들'과 입센의 '정신적 가치의 섬광들', 쇼의 '극미한 증가분들'과 '무한한 의미를 지닌 순간들'과도 일맥상통한다. 칸딘스키는 '작은 기쁨들'을, 말로는 '일시적 피난처'를 말하며, 예이츠는 '황홀한 긍정의 짧은 순간들'을, 조이스는 '에피파니(현현)'를 말한다.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오르가슴을 모형으로 한 '절정 경험'을 말했고, 프로이트는 행복이란 하나같이 일화적이라고 생각했다. 인상주의 예술은 기실 인상주의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쉬이 사라지는 경험의 덧없는 성질을 정성을 다해 포착하는 데 전념한 흐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모네의 루앙 대성당과 건초 더미, 수련이 그 전형적 예이다.
버지니아 울프, 로베르트 무질, 유진 오닐, 사뮈엘 베케트도 '존재함'의 순간들은 단지 그 순간들일 수밖에 없다고,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짧게 경험하는 고조된 강렬함뿐이라고 말한다. (울프와 무질이, 또한 릴케와 비트겐슈타인이 표현한 것처럼) 마치 존재에는 두 영역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그 두 영역 모두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하지만, 또한 실제로 존재하는 것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초자연적 영역은 존재하지 않으며, 울프의 표현을 빌리면 '목화솜에 둘러싸여 보내는 시간'에서 벗어나 누리는 짧은 휴일들만이 존재한다. 삶의 목적은 사랑스럽고 사랑할 만한 것에 대한 '자발적 긍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조지 산타야나와 소설에서 합리성으로부터 벗어난 '휴일'을 즐기는 인물을 묘사한 필립 로스도 같은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삶의 크기, 생활의 상수들이며, 조이스가 말한 '사실에 맞게 몸을 낮추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종교적 감정에 불을 지폈던 '우주적 의식'과 정반대의 견해이며, 조지 무어와 버지니아 울프, 데이비드 슬론 윌슨 등은 우리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친밀하고 '지엽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제안함으로써 그 견해를 한층 더 탄탄하게 뒷받침했다. 무어는 아주 생생한 경험은 가까운 친지들이나 친구들과 함께할 때에만 얻어진다고 생각했다. 울프에게 내밀함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 가운데 영적인 감정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고, 윌슨은 지엽적인 활동을 할 때가 매혹을 경험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도 강조되는 것은 삶의 크기다.
인격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우리 중 누구도 단 하나의 인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우리의 경험은 일화적 성격을 띤다. 리처드 로티는 여러 철학자들이 '인간 실존에는 구조가 없다'라고 단언했음을 상기시킨다. 앙드레 지드는 자신에게 매일 새로운 자아가 생겨난다고 생각했고, 체스와프 미워시는 '그저 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썼다. 예이츠는 '인격이란 끊임없이 갱신하는 선택'이라고 보았고, 에즈라 파운드와 T. S. 엘리엇도 거의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바 있다. 한편 영국의 철학자 존 그레이는 "우리는 우리가 지속적인 자아라는 의식을 떨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그런 자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고, 유진 굿하트는 "일관된 인격이란 이음매 없이 매끈하게 접합된 통일체가 아니라, 자기를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통일성에 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졌다. 형이상학과 초월, 신이라는 존재의 이미지와 관련하여 우주의 붕괴는 우리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통일성의 한 형식은 서사다. 별개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한 인생의 서사 말이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행위 혹은 행동은 서사 속에 담길 때에만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든 그레이엄에 따르면 "단순히 존재하는 것과 달리 인생을 살아가는 일의 열쇠는 … 서사의 명료함에 필요한 요건들에 맞추어볼 줄 알고 행동할 줄 아는, 후천적이며 갈수록 더 정교해지는 능력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부분적으로는 모방을 통해 배우지만, 그 픽션이 제공하는 이해의 기회를 통해 그러한 연결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능력을 갖고 있다"라고 덧붙인다. 이런 설명에 따르면 삶이란 '[서사적] 전체에 대한 예상'의 안내를 따르는 '지속적인 해석의 움직임'이다. 컬럼비아대학 인문대 교수인 브루스 로빈스는 세속주의는 그 자체로 진보의 서사이며, 그런 점에서 종교적 믿음보다 한 단계 향상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를 단 하나의 압도적 개념이 없는 상태로 다시 데려다놓는다. '전체성' 또는 '단일성'이라는 관념의 퇴조는 아마도 20세기에 이루어진 성취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우리에게 하나의 전체로서, 그러나 제한된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느낌을 전해준다고 보았고, 바로 그러한 한계들에 대한 의식, 그 한계들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야말로 신비로움을, 즉 무언가 빠진 것이 있다는 생각을 구축한다고 보았다. 이는 시인이란 세계에 '점진적으로 무한히 가깝게' 접근하는 사람이며, 우리는 의미에 차츰 가까이 다가갈 뿐 결코 닿지는 못한다는 폴 발레리의 생각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조지 스타이너는 언어에는 한계가 없을지 모르지만, 역시나 존재하는 것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는 말자고 말한다. 나아가 케임브리지 대학의 철학자 사이먼 블랙번은 매킨타이어를 연상시키는 말도 덧붙인다. "나는 [삶의] 문제들을 이해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좋음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세속화는 불신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훌쩍 넘어서서 삶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 그리고 어느 정도는 더 응집력 있는 방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우리에게 디테일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세계를 바라보도록 가르쳐준다. 누구나 예술가가 되지는 못하지만 예술적 접근법을 취할 수는 있다. 스티븐스는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는 지적으로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감성적으로는 늘 도달한다. 시에서, 행복에서, 높은 산에서, 풍경에서 그러하듯이."
세속화에 따르는 부차적 문제가 있다. 슈테판 게오르게의 견해에 따르면 과학은 세계를 향상시키는 대신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유진 오닐은 과학이 자본주의의 손아귀에 들어감으로써, 자선적인 목표들에서 확실히 등을 돌려버렸다고 믿었다. 울프는 심리학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다른 과학 분야들은 도덕적 삶이나 미학적 삶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D. H. 로런스는 과학이 비합리적인 것들과의 접촉을 회피함으로써 스스로 '삶'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고 보았다. 좀 더 앞서서 하이데거도 말했지만 스타이너가 보기에 과학은 예나 지금이나 지배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오염되어 있다.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했다. "과학이 만들어내는 진리들은 우리가 삶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것들이 아니다. 과학이 할 수 있는 일과 명백하게 해낸 일은, 욕망을 만족시키는 기술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네이글은 최근에 펴낸 책에서 환원주의적인 진화론의 서사는 잘못되었음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과학이 종교에 대한 완벽하고 충분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분명히 자연의 세부들과 과정들에서 평생토록 이어질 만큼 충분한 외경과 아름다움, 매혹을 발견한 사람들이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살려면, 그리고 우리가 우리 모두를 최대한 이롭게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에도 과학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추천사

인간 조건과 사상의 전개에 지적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에 끌릴 것이다. 종교가 없는 독자들이라면 특히 더 매력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무신론에 관한 책이 아니며, 세계관의 하나로서 딱히 무신론을 옹호하는 책도 아니다. 과학부터 시, 철학, 뉴에이지 ‘심령주의’와 테라피까지 모든 것을 포괄한 비종교적 사상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다룬다.
- 그렉 제임슨 / [엔터테인먼트 포커스]

이 책의 대단한 점은 터져 나오는 다채로운 사상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왓슨의 능력이다. ...왓슨이 니체로부터 윌리엄 제임스, 밥 딜런, 재즈 사이의 동떨어진 지점들을 연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독자들은 큰 지적 즐거움과 깨달음을 맛볼 것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문화사, 지성사, 정치사, 종교사를 풍성하게 엮어낸 ...지난 140년 동안의 다층적인 연대기인 이 책은 문학에서 미술로, 철학으로, 또 심리학과 정치 운동으로, 세계대전과 극예술과 대중문화로 그 사이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연결한다. 독자들에게 만만치 않은 끈기와 지성과 교육을 요구하는 학구적 작품.
- [커커스 리뷰]

이 책은 모든 페이지에서 흥미로운 생각들을 탐색하며 반짝이는 산문을 펼쳐낸다. ...피터 왓슨의 설명은 연구와 통찰만이 아니라 숨 막히게 훌륭한 문장으로 더욱 빛난다. 피터 왓슨은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최고의 저술가 중 한 명이며,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순수한 즐거움이다.
- Focus.com

566페이지로 서구 문화에서 신을 제거하는 일을 기세 좋게 다루고 있는, 피터 왓슨의 [무신론자의 시대]도 놓치고 싶지 않다.
- 톰 스토퍼드 / [타임 리터러리 서플먼트] 2014년 올해의 책

신 없이 살아가는 일에 대한 철학적이고 열정적인 반응들을 바라보는 매혹적이고 경이로운 시선.
- 오스트레일리안 파이낸셜 리뷰

목차

서문 우리 삶에는 무언가 빠져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니체의 탓인가

1부 세계대전 이전: 예술이 중요했던 시절
1 니체 세대: 황홀경, 에로스, 과잉
2 꼭 지켜야 하는 단 하나의 삶의 방식은 없다
3 사물의 관능성
4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방향이다
5 에덴동산의 비전들: 색채와 금속, 속도, 지금 이 순간의 숭배
6 욕망의 집요함
7 우리 뺨 속의 천사
8 '엉뚱한 초자연적 세계'

2부 하나의 심연을 지나 또 다른 심연으로
9 전쟁에 의한 구속
10 과학적 무신론을 향한 볼셰비키의 십자군운동
11 삶의 암묵성과 존재의 규칙들
12 불완전한 낙원
13 사실에 맞게 몸을 낮추어 살아가다
14 형이상학의 불가능성, 메타심리학 숭배
15 철학자들의 믿음
16 나치의 피의 종교

3부 인류의 0시와 그 이후
17 여파의 여파
18 행위의 따뜻함
19 미국식 전쟁, 원죄설의 쇠퇴
20 아우슈비츠, 묵시록, 부재
21 “생각을 멈춰라!”
22 비전의 공동체와 삶의 크기
23 행복이라는 호사와 그 한계
24 디테일에 대한 믿음
25 '우리의 영적 목표는 진화의 서사시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
26 '좋은 삶이란 좋은 삶을 추구하며 사는 삶'

결론 핵심적이고 건전한 활동
옮긴이 후기 / 주 /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니체에게 특별한 무엇이 있었던 걸까? 다른 모든 사람의 문장을 제치고 그의 문장만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차피 신에 대한 믿음은 이전에도 꽤 오랫동안 퇴조 일로에 있지 않았던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니 어쩌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는 신-또는 신들이나 모든 종류의 초자연적 존재들-에 대한 믿음이란 도저히 말이 안 되는 헛소리였다. 대부분의 불신앙 혹은 회의의 역사는 18세기에 에드워드 기번 및 데이비드 흄과 함께 시작되어, 볼테르와 프랑스혁명을 거치고, 칸트와 헤겔과 낭만주의자들, 독일의 성서 비평, 오귀스트 콩트와 실증주의의 약진을 포괄한다. 19세기 중반이 되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카를 마르크스, 쇠렌 키르케고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등장했고, 찰스 다윈을 필두로 찰스 라이엘과 로버트 오언, 로버트 체임버스, 허버트 스펜서는 지리학적·생물학적으로 막강한 파괴력을 행사했다.
(/ p.41)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안과 밖 모두에 존재하는 혼돈, 곧 '삶의 짐'을 통제하려는 이러한 고군분투가 우리를 더 강렬한 존재 양식으로 이끌어줄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인생에서, 지금 여기 이 삶에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목표라고 한 니체의 말이다. 우리의 윤리적 태도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강렬함을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것이어야 하며, 우리의 유일한 의무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의무다.
(/ p.44)

시간이 지날수록 독일에는-그리고 정도는 약하지만 나머지 유럽 지역에도-니체 세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졌다. 토마스 만도 그 점을 분명히 의식했다. "1870년 무렵에 태어난 우리는 니체와 아주 가까이 있었고, (어쩌면 지성사에서 가장 끔찍하고 가장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비극과 개인적 운명에 동참했다. 우리의 니체는 전투하는 니체였다. 승리에 찬 니체는 우리보다 15년쯤 뒤에 태어난 이들에게 속하는 니체다. 우리는 그로부터 심리적 감수성과 서정적 비판을, 바그너 경험과 기독 교 경험을, '모더니티' 경험을 얻었으며, 언제까지고 그 경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 그러기에 그 경험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심오하며 너무나 유익했다."
(/ p.58)

반본질주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보편적으로든 개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으로든 고정된 인간 본질은 없다는 생각이다. 듀이는 개인의 자족적 자아(그는 이를 '자아의 고정성과 단순성에 대한 믿음'이라고 표현했다)라는 개념은 '영혼에 통일성과 미리 만들어진 완전성이 있다는 신학자들의 도그마'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도리어 모든 자아는 서로 일관되지 않고 반드시 조화를 이룰 필요도 없는 여러 자아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듀이의 통찰이었다. 이러한 관념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앞으로 우리가 살펴볼 모든 분과를 관통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특히 신이 없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해방감을 선사하는 원칙이었다.
(/ p.95)

이 접근법의 …… 즉각적인 함의 두 가지만 먼저 짚어보자. 첫째, 현상학적 관점은 삶에 대한 과학적 접근 또는 종교적 접근보다는 예술적 접근을 떠받치는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삶이란 서로 다른 무수한 관찰과 경험, 계시적 깨달음과 통찰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것들은 평생에 걸쳐 축적된다는 것, 그리고 완전성 또는 전체성은 종교적이거나 치유적인 어떤 '초월적' 사건을 통해 단숨에 성취되지 않으며 고된 노동이나 교육의 결과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 p.106)

모호할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신비롭기도 한 무의식은 세속 세계에서 영혼에 맞먹는 것으로 여겨진다. 앞으로 여러 차례 보게 되겠지만, 20세기 내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때로는 종교적 열성에 가까워 보이는 태도로 심리치료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신경증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심리치료사를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수없이 비판받으면서도 오든이 '사상적 기후'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이유다.
(/ p.127)

우리가 니체의 선언이 일으킨 여파가 고스란히 미치고 있던 시기의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두 가지 일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그때는 예술, 즉 연극, 시, 회화, 소설이 변화를 일으키고 발전의 길을 제시하겠다는 실제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새롭고 즉각적이며 근본적인 위기가 닥쳤다고, 문명화된 삶이 심연의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걸쳐져 있다고 확신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그 심연이 그다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p.130)

쇼는 희망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로버트 휘트먼이 지적했듯이 쇼에게 희망은 일종의 도덕적 책임이었다. "지옥은 떠다니는 것(목적의 부인)이며, 천국은 키를 잡고 조종하는 것이다. … 생명이란 생명 자체를 조직해나가는 무수한 실험들이며 … 점점 더 고차원적인 개인들을 만들어낸 힘이다." 쇼의 초인은 니체의 위버멘쉬와 달리 하나의 목표나 최종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과정, 발달의 한 단계다.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방향이다."
(/ p.147)

우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결속시키는 것은 욕망의 힘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욕망은 신성하다. 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중요하지만,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품은 '욕망'은 그와는 상당히 다른 경험이다. 공동체의 관점에서 볼 때 안정과 정체성 등을 확립하는 것이 아무리 바람직하다고 해도, 공동체의 삶은 개인이 욕망을 경험하는 것에 비하면 그 흥미로움과 성취감과 매혹에서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 기억이 개별적인 것처럼, 욕망도 개별적이다. 헨리 제임스와 프루스트뿐 아니라 기성 교회들까지 인정했다시피, 욕망의 집요함은 파괴적이고 위험하다. 그래서 욕망은 신성한 것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 p.203)

시의 경우 특히 더 그렇다. 21세기 초 현재, 시는 대체로 소수의 관심사다. 물론 대단히 열정적인 소수가 그 주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실 시는 어느 정도 늘 소수의 활동이지만,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 즉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몇 십 년과 전쟁 당시에는 시에 대해 대단한 야심을 품고 시가 당연히 종교의 후계자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프랑스의 말라르메와 발레리, 독일의 슈테판 게오르게와 그의 동아리, 영어권 나라들의 예이츠와 스티븐스 같은 이들에게 시는 제2의 자아, '더 고차원적인' 자아를 낳고 '더 확장된 세계'를 제시하는, '운명의 실현'이었다.
(/ p.205)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 조직은 '전투적 무신론연맹'이었다. 이 연맹은 1925년부터 1941년까지 존속했고, 레온 트로츠키가 스탈린의 측근 보좌관 야로슬랍스키에게 밀려난 뒤로는 종교문화적 표현을 버리지 않을 경우에는 세속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전제하는 정책이 이어졌다. 그리하여 종교적 표현을 억압하고 그 자리에 과학적 무신론을 세우기 위해 거의 십자군전쟁에 가까운 일련의 논쟁이 촉발되었다. 스탈린이 장려한 과학적 무신론에 따라 "소비에트 시대 내내 확대되고 발전된 광범위하고 정교한 의례 체계가 확립되기 시작하여 … 세례와 견진성사, 종교적 결혼식과 장례식 등을 대체하는 소비에트식 대안이 만들어졌다.
(/ p.299)

하이데거에 따르면 우리는 세계 속으로,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환경 속으로 '던져진' 존재들이며, 그 세계는 우리 이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 세계에 적응하고 그 세계의 명시적 규칙뿐 아니라 암묵적 규칙까지 배워야 하며, 동시에 세계는 우리가 결코 완전하게 정복할 수 없는 '드러나지 않은 풍부함'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유한 인간 본성이나 본질 같은 것은 없으며, 이러한 본질의 결여에 직면한 채 그 규칙들을 배우는 동안, 우리는 또한 언젠가 우리가 죽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삶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가 결단성임을 뜻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의 생각들의 산물인 것 못지않게 (그 이상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결정과 행위의 산물임을 의미한다. 하이데거 철학의 상당 부분은 강화라는 개념, 즉 삶을 강렬하게-우리가 살아온 것보다 더 강렬하게, 되도록 강렬하게-사는 것은 우리가 얻게 되거나 얻을 수 있는 의미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바쳐졌다.
(/ p.310)

여기에 나열한 스티븐스의 말 중에 사람들이 논쟁을 걸 만한 것은 없다. 시의 우위성을 명확하게 주장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논거들을 확대하고 강화하고 예시하는 은유들 속으로 용케 달아난다. 그리고 삶 전반과 삶에서 상상력이 맡은 역할로 자신의 주장을 확장할 순간들을 스스로 선택한다. 여기서 그는 시인의 언어 구사력과 상상력을 가지고,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거의 성서 구절 같은 전망 혹은 통찰을 표현한다. "불완전한 것이 우리의 유일한 낙원이다." "우리는 우리가 주는 것만을 받는다./ 그리고 자연은 우리의 삶 속에만 살고 있다." "만물은 그저 존재하지, 인간의 목적에 맞추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p.346)

조이스는 파리에 살다가 [아이리시 타임스]의 예술평론가가 된 아일랜드인 친구 아서 파워에게 자신의 그런 성향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사실주의에서는 세계의 기반을 이루는 사실들을 다루지. 이 갑작스러운 사실성이 낭만주의를 곤죽이 되게 뭉개버린다네.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실망을 안겨준 일말의 낭만주의, 잘못된 발상으로 만들어졌기에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이라네. 사실 이상주의는 인간의 폐허라고 말해도 될 걸세. 원시인들이 달리 어찌할 수 없어서 그랬듯이, 우리도 사실에 맞게 몸을 낮추어 살아간다면 우리는 더 잘 살 것이네. 우리는 바로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니까. 자연은 낭만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네. 자연에 낭만을 집어넣은 것은 바로 우리이며, 그것은 거짓된 태도이고, 모든 자기중심주의가 다 그렇듯 어리석은 자기중심주의지. [율리시스]에서 나는 계속 사실에 밀착하려고 노력했네." 조이스는 새로운 형태의 허위의식을 짚어낸 것이다.
(/ p.367)

융은 자신이 '형이상학을 혐오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사상은 프로이트의 사상보다 더 형이상학적이고 경험적 토대는 더 허술하다. 그리고 융은 프로이트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프로이트는 종교가 오이디푸스적 딜레마에 갇혀 억압된 성적 에너지에 뿌리를 둔 일종의 집단신경증이라고 주장한 반면, 융은 종교적 감정이 신경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융의 모호한 이론을 달리 어떻게 설명하든, 그리고 그 이론이 얼마나 성공했든지 실패했든지 간에, 그의 이론이 지금까지 신학과 심리학을 융합하려 한 가장 정교한 시도였음은 분명하다.
(/ p.404)

두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1차 대전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여전히 너무나 생생했고, 러시아와 독일은 전체주의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서구는 불황으로 일그러지고 있던-에 대서양을 사이에 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철학자들은 그 즈음의 정치적 전개와 과학적 발전을 평가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었다.
(/ p.412)

그리고 이것이 나치즘이 발휘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호소력을 설명해준다. "단결하라. 강하다고 느껴라. 영웅적으로 행동하라." 적들이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며 도전하는' 동안 그들은 단지 '위대해질 운명을 타고난' 독일인으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잠재력 있고 선택받은 영웅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모든 독일인은 (니체의 개념인) '초인'이라는 생각이었다. '피'는 다른 모든 것에 맞서 지켜내야만 하는 신성한 본질이었다.
(/ p.446)

그의 소설 [성채(Citadelle)]가 다루는 것은 바로 이러한 철학이다. 정신은 사실과 기억을 보관하는 '용기'가 아니라, 하나의 행위이다. 세계는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고갈되지 않는 무궁무진한 것이어서 획득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성채]는 "육체를 위한 물건들에 대한 것이든, 정신을 위한 원칙들에 대한 것이든, '막대한 소유의 갈망' 속에 내재된 오류들을 보여준다. 삶은 '다가가는 움직임'이지 물질적 소유가 아니며, 행복은 '행위의 따뜻함' 속에 있다. 문명이 의존하는 것은 거기에 속한 사람들에게 문명이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서 거두어가는 것이다. 삶은 영원한 창조다."
(/ p.478)

1940~1950년대에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내면성으로의 전환은 어느 정도 다른 서구 국가들에서도 이어졌고, 누군가는 이를 '낙관적 자아상의 극치'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원죄설의 쇠퇴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현상이었다. 이제 개인은 '선천적으로 타락한' 존재가 아니었고, 대신 사람은 자아로 만들어진 존재가 되었다. 이는 사람들에게 노먼 메일러가 [하얀 흑인(The White Negro)]에서 쓴 표현처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자아의 반항적 명령들 속으로 여행을 떠날' 자유를 부여했다.
(/ p.509)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사고방식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며, 실제로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생각의 줄기가 있었다. 하나는 대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신은 감춰져 있었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신은 이제 전능하거나 이롭게 하는 존재가 아니며 심지어 '남성'도 아니므로, 신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셋째 줄기는 신이 아우슈비츠에서 부재했고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은 '신이 죽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 p.518)

오래도록 잦아들 줄 모르던 2차 세계대전의 긴 여파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신에게 등을 돌리는 동안, 예술계에서는 당시 일어나고 있던 변화들을 이해하고 다루는 방식, 그리고 새로운 성취의 방식들을 찾아낼 방법을 보여주기 위한 세 가지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첫째는 미니멀리즘이고, 또 하나는 '자발성의 문화'이며, 마지막은 의미의 탐구에서 신체가 차지하는 역할을 새로이 조명하는 '역동적 지식'의 문화였다. 이 셋의 공통점은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버드')가 자기 제자들에게 한 말에 잘 표현되어 있다. 그 말은 이전에 D. H. 로런스가 버트런드 러셀에게도 했던 것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할 때는 "생각을 멈춰라!"라는 것이었다.
(/ p.535)

로잭은 구원이란 다름 아닌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과정에서만, 즉 '만들고 행하고 개선하는 행위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대항문화가 '비전의 공동체', 즉 수천 개의 실험적 코뮌, 유기농 농가, 확대가족, 무상 학교, 무상 클리닉, 간디식 아쉬람, 품앗이 등을 퍼뜨렸다고 칭송한다. 이런 방식들을 통해서만 평화롭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또한 그런 관계를 통해서만 영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그는 믿었다. 로잭은 사람들이 물질과 역사만이 실재라고 생각하던 '단선적 시각과 뉴턴식 수면'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 p.594)

1970년에 러셀이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저서 가운데 60종 정도가 여전히 출간되고 있었던 이유를 이만하면 알 것 같지 않은가. '행복'은 찰스 테일러에게는 '얄팍한' 개념이고 영국 철학자 테리 이글턴에게는 '휴가 캠프 같은 단어'인지 모른다. 그러나 행복이 얄팍하든 그렇지 않든, 러셀은 행복을 좇고 행복을 누리는 것이 결코 간단명료한 문제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종교가 심리학으로 대체되는 삶의 '심리화' 현상이 등장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문제와 역설이 쏟아져 나오던 20세기 말에 그런 점은 더욱 분명해졌다.
(/ p.603)

미워시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어떤 과학이나 철학도, 시인이 매일 새롭고 기적처럼 말도 안 되게 복잡하며 아무리 해도 고갈되지 않는 현실 앞에 선 채로 그 현실을 언어 속에 되도록이면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바꿔놓지는 못한다. 오감으로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접촉이 어떤 정신적 구축보다 더 중요하다. 모방을 달성하려는, 디테일에 충실하려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욕망이 시를 건강하게 만들고, 시에 불리한 시기에도 시가 살아남을 가능성을 부여한다. 니체가 뭐라고 말하든, 만물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 자체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따라서 진실한 세계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 p.639)

정신은 언제나 도덕성과 종교와 신화를 만들어내려 한다고 그(에드워드 오스본 윌슨)는 믿었다. 과학도 하나의 신화인 것이, 과학의 진실들도 결코 결정적으로 입증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학적 정신의 기풍이 종교보다 우월하다. 과학은 물리적 세계를 '설명하고 통제하는' 일에서 반복적으로 승리해왔고, 본성상 계속 스스로 수정해나가며, 종교를 진화론적 의미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 모든 점을 생각해보면 '진화의 서사시는 앞으로도 우리가 갖게 될 모든 신화 중에 최고의 것'이며, '우리의 영적 목표는 진화의 서사시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된다.
(/ p.666)

고대의 철학자들이 경고했듯이, 전혀 성찰하지 않는 삶 역시 나쁜 삶이다. 책임지는 삶에는 어떤 실효적인 윤리적 확신을 '최소한 이따금이라도 끌어들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자기 삶을 좋은 삶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면 나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정의로운 정부는 존엄에서 나오며, 존엄을 목표로 한다.
(/ p.723)

이는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논리적 귀결처럼 보인다. '압도할' 만한 속성들이 결여된 압도적 개념이며,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정의가 무한히 후퇴하여 도달한 놀랍도록 태평스러운 종착점이다. 여기에 [서문]에서 살펴본 올리비에 루아의 분석을 덧붙일 수 있겠다. 세계화되고 탈영토화한 종교들이 특정 문화의 색채를 지워내 '더 순수해짐'으로써 더 근본주의적인 종교가 되고 이념적으로는 더 얄팍해지는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 말이다. 종교는 시간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진화하는 중이다.
(/ p.739)

신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우리의 주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도덕적 삶이다. 모든 부류의 철학자들은(최근의 네이글은 제외하고) 진화론의 주요 원리들과 함께 도덕성이 진화의 결과라는 진화생물학 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교리문답서와 용서를 진화의 관점에서 탐색했는데, 이는 분명 흥미진진한 진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설명을 하는 데는 신이 필요 없을 뿐 아니라, 도덕에 관해서는 진화가 신보다 더 큰 권위를 갖고 있다. 진화론은 합리적으로 도덕성이 왜 정당화되는지를 보여주었고, 도덕성이 제공하는 혜택들이 무엇인지 짚어냈으며, 규칙을 따르지 않을 때 어떤 손해를 입을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실험을 통해 확증되었다. 특히-아마 이 점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그 연구들은 '이기적 유전자'의 요구들이 어떻게 협동에 대한 필요와 정당화로 이어지는지 보여주었다. 생물학이 윤리와 도덕을 연결해준 셈이다.
(/ p.756)

저자소개

피터 왓슨(Peter Watso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2종
판매수 157권

1943년 영국 출생. 전 언론인, 지성사가, 문화사가. 더럼대학교, 런던대학교, 로마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좌파 시사 주간지 [뉴 소사이어티] 부편집장을 지냈고, [선데이 타임스]의 탐사보도팀에서 4년간 일했다. [타임스]의 뉴욕 특파원, [옵서버] [펀치] [스펙테이터] [뉴욕 타임스] 등 유명 신문/잡지의 프리랜서로도 활동했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케임브리지대학교 맥도널드고고학연구소 협동연구원을 역임했고, 하버드대학교와 런던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생각의 역사 I: 불에서 프로이트까지 Ideas: A History of Thought and Invention, from Fire to Fre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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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학을 공부한 뒤 영어와 독일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좀 더 다양한 언어를 공부하여, 더 재미있고 알찬 책들을 번역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유쾌한 딜레마 여행], [르네상스의 비밀](공역), [보쉬의 비밀], [과연 그것이 미술사일까?], [마녀 백과사전], [상처난 무릎 운디드니],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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