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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원제 : がんばり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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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는 게 뭐라고] 저자, 사노 요코의 쓰라린 일상에 바르는 빨간약 같은 이야기들

    이 책은 자신의 특이함과 까칠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가 사노 요코가 40대에 쓴 수필집이다. 그녀는 [100만 번 산 고양이] 등으로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감동을 준 그림책 작가이며, 다수의 수필집으로 사랑받은 수필가이다. 이 책에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40대의 일상까지, 너무 애쓰지 않아도 즐겁고 여유로운 그녀의 삶과 추억이 담겨 있다. 예쁘지 않은 외모에 대한 이야기들은 솔직한 그녀만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고, 그녀의 일상과 추억 이야기는 사노 요코와 우리를 친근하게 맺어 주며, 그녀라서 생겨난 에피소드들은 계속 인연을 맺고 싶은, ‘나를 웃게 하는 사람’으로 그녀를 찜하게 만든다. 근심과 걱정을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들어주는 책,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하는 그림 에세이집이다.

    출판사 서평

    거침없는 솔직함으로 심각한 것도 가볍게 만드는 시크한 그녀가 왔다!

    자신의 특이함과 까칠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림책 작가이자 수필가인 사노 요코가 중년에 쓴 수필집이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수필집에는 너무 애쓰지 않아도 즐겁고 여유로운 그녀의 삶과 추억이 담겨 있다.

    “40대 중반의 사노 요코가 남긴 이 작품은 그녀의 더없는 솔직함으로 독자의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진다. 그는 이 작품 속에서 단지 자신의 어린 시절, 아이 키우는 이야기, 개 키우는 이야기, 이 인간 저 인간과 얽히는 이야기 등 일상의 소소한 경험과 기억을 마치 누에가 실을 뱉어 내듯이 속닥일 뿐이다. 너무나 솔직하여 조금은 창피한 마음으로. 그런 솔직함과 자유분방함이 만들어 내는 유쾌함 덕분에 번역하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다. 그렇게 많은 웃음을 주면서도 그의 글이 읽는 이의 마음속에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 소소함 속에 그의 인생의 깊이와 깊은 통찰력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 '역자 후기' 중에서)

    기대고 싶은 왕언니의
    듣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유쾌한 수다 에세이’


    사노 요코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독특한 색은 한 가지 색으로 이뤄져 있지 않다. 그녀로서 살아가게 해 주는 사람들, 책, 일상, 추억 등 그녀를 둘러싼 것들을 살펴보면 그녀가 보인다.

    ▶ 그녀와 남자: - 소녀 시절 빠져 있던 소녀소설의 주인공은 아름답고 우아했다. 반에는 소녀소설 주인공 느낌의 여자아이가 한두 명씩 있었는데, 남자아이들은 그 아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울리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아이에게 왕복으로 뺨을 맞아도 울기는커녕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다. 그녀는 아름다운 소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것과 자신의 뺨을 때리는 것은 ‘괴롭힘’이라는 점에서는 같을지 몰라도 완전히 다른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괴롭히는 방법을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주문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 연애는 당연히 아름답고 다정한 여자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도 대학 2학년 때 잘생긴 남자와의 첫 키스를 눈앞에 둔 순간이 있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다음 얘긴 생략한다.)
    - 그녀는 TV나 영화를 보면서 남자 주인공과의 만남을 상상한다. 늘 미남이 자신을 쫒아 다니지만 그 미남은 걷어차고 오히려 그녀는 차도남에게 매달린다. 상상 속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 그녀와 가족: - 옆집 아이가 예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기 딸이 한 번도 예쁘다는 말을 들은 적 없어 울적할 자신의 부모님을 더 신경 쓴 그녀. 그녀는 그 정도로 남을 깊이 배려하는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그녀를 맘씨 예쁜 여자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그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중요한 인물이다. 억척스러운 어머니와 대조적인 인텔리로 기억되는 아버지는 객관적인 분이셨나 보다. 사노 요코가 중학생이 될까 말까 할 때부터 그는 기술을 익히라고 적극적으로 권했다고 한다. 그 적극적 권유의 이유는 한마디로 요약됐다. “너 같이 못생긴 애를 누가 데려가겠니.” 그녀는 그런 예측이 억울했다. 자신은 어머니를 똑 닮았으니까 자신도 아버지 정도의 남자를 꼬이는 것은 가능한 거 아닌가

    - 그녀는 개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산다. 그들에게 회나 붕장어 초밥 등 초호화 식단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그들을 가족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적어도, 한 번만이라도 새끼를 낳게 해 주고 싶었는데”라며 거세한 고양이를 안고 눈물을 글썽인 아들 때문에 버려진 까만 고양이를 거두어 기르게 됐을 땐 의사에게 데리고 가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검은 고양이는 우왕좌왕 집안을 돌아다니며 어두운 소리를 내고, 밖에 나갔다가 여기저기 털이 빠져 돌아왔다. 그래도 목소리만은 힘이 넘쳤고, 휘청거리면서도 기어코 남자가 되었다. 그렇게 검은 고양이의 모습은 거세된 고양이보다도 숙명적으로 슬프고 갸륵하고 눈물겨웠다.

    ▶ 그녀와 친구 : -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 떠는 것은 그녀에게 꽤나 중요한 일상이다. 그녀는 우울증에 빠진 친구를 전화로 위로하고 인격자로서 조언해 준다. 그러다 때론 그녀가 친구들에게 응석 부리며 위로받는다. 그녀는 그런 순간을 위해 인격자를 해 왔던 거라고 말한다. 끈적끈적한 거미줄 같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말이다.
    - 그녀 주위에는 남자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 이사하던 날 짐을 나르던 이삿짐센터 청년에게 반해 독신이냐고 묻던 고등학생 학부모 친구, 동물병원에 강아지를 데려오는 주인들이 소녀만화 남자 주인공처럼 잘생기고 씩씩한 남자들뿐이었다고 말하니, 내일 갈 때 함께 가자고 말하는 친구 등등
    - 그녀는 한동안 지인들의 별장을 옮겨 다니며 ‘얹혀삶’을 실천했다. 아들과 이 별장 저 별장 옮겨 다니며 별장 주인에게 그 별장을 칭찬해 준 후, 별장 주인 대신 그곳에서 그야말로 별장 생활을 즐겼다.

    ▶ 그녀와 소설 & 영화 : - 그녀에게 소설은 모두 연애소설이다. 연애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이 있으면 그녀는 그 부분을 수상쩍게 여기고 연애 사건이 출현하지 않는 것은 거기에 분명 감추고 싶은 러브신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소설을 이런 입장에서 읽기 때문에, 어떤 소설을 ‘연애소설’이라고 따로 분류할 수가 없다.
    - 그녀에게 영화는 그 영화를 보던 때 일어난 사건이나 함께 본 사람에 대한 추억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그 영화를 잊지 못한다.
    - 그녀는 한 영화에서 애정의 도피 행각을 하려고 오토바이에 올라탄 남녀 주인공의 현실감 있는 모습을 본다. 남자 주인공의 삐져나온 뱃살과 여자 주인공의 처진 가슴을 본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왠지 해피엔딩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진짜 같아서 곤란한 거다. 우리는 어딘지 모르게 거짓말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서 구원받고 싶어 하는 걸까.”

    ▶ 그녀와 여행 : - 종종 눈썹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그녀이기에 여행을 자주 가지는 않지만, 여행을 떠나 빨리 나의 진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자신이 여행 중이란 것을 절절히 느끼며 ‘아아, 여행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제 이곳에 올 일은 다신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말하며, 여행의 즐거움은 이미지가 조금 깨지는 것이라고 한다.

    - 그녀가 온천에 가거나 여행하거나 하면 ‘어머, 팔자가 늘어지셨네’ 하는 눈빛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여행은 딱히 가고 싶지 않지만, 일상으로부터 울고 싶을 정도로 도망치고 싶을 때 그녀는 병에 걸린다. 그리고 하나뿐인 저금통장을 가지고 입원한다. 세상으로부터 차가운 눈총을 받지 않아서 좋고, 병원으로 여행 가니 ‘돈’ 얘기뿐인 아들조차도 얌전해지는 것이, 깊은 산 속 고원의 어느 호텔 트윈룸에 가는 것보다도 좋기 때문이다.

    사노 요코가 보여 주는 먹고, 자고, 즐기며 나이 드는 법

    40대 중년의 연륜과 여유,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비움에서 오는 자유, 살아온 만큼 살아야 할 남은 생에 대한 희망, 사람에 대한 깊어진 이해와 사랑이 그녀의 이야기에 유쾌한 웃음과 따뜻함을 만들어 내고, 공감하게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이모나 왕언니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재밌고, 가끔은 심하게 솔직하지만 그래서 편안하게 마음을 열 수 있고, 조언을 구하면 뻔한 교과서적인 답이 아닌 ‘어?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며 좀 더 편하게 마음먹게 만드는 얘기를 해 줄 것 같은 그런 존재 말이다.

    굳이 힘내라고 말하지 않아도 듣고 있으면 힘이 나는 그녀의 이야기들

    혼자 품고 있을 땐 창피했던 일이나 심각하게 느껴졌던 고민들도 편안한 상대에게 얘기하다 보면 웃긴 일로 승화되거나 그 무게가 가벼워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이야기하는 순간 웃긴 에피소드나 시트콤의 한 장면이 되는 기분이 드는. 그런 작용은 들을 때도 마찬가지로 생긴다. 서로 깔깔대며 웃는 동안 사르르 풀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이야기가 모두 웃기기만 한 건 아니다. 사노 요코는 때론 자신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담하게 말한다. 그런 이야기도 그녀는 듣기 불편한 궁상 모드로 말하지 않는다. 슬픔을 무겁게 대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위로해 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주지 않으며, 우리 가슴 속 더 깊은 곳에서 공감을 불러낸다.
    “산다는 건 뭘까?” 친구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든 한다는 거야. 별 대단한 거 안 해도 돼.”

    추천사

    사노 요코의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와 자유로움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어, 듣기만 하는 거였지만 오랜만에 아주 긴 수다를 떨었다. 항상 나도 공감할 수 있는 지점에서 시작하는 그녀와 그녀의 이웃들에 관한 수다는 너무나 솔직해서 정답이 아닌 늘 엉뚱한 결론으로 향한다.‘너무 솔직하신 거 아니에요?’ 킥킥대며 한참을 푹 빠져들었다.
    - 이동건 / 만화가. [유미의 세포들] 작가)

    사노 요코의 일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나이 들어가는 여성에 대해 가지는 통념과 거리가 멀다. 나이 든 여성에게서 희생하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연상하는 일은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평생 가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헌신해 온 어머니, 불철주야 자식 잘되기만을 축원하는 어머니 대신, 그녀는 한 명의 독립적인 개인이었다. 사노 요코의 글에는 자신의 몸과 자신의 생활에 대해 독립적인 결정권을 가진 완벽한 개인으로서의 그녀가 있다.
    - 정이현 / 소설가, [달콤한 나의 도시] 저자)

    읽으면서, 그래 그 말이 맞아, 그대로야 하고 소리를 지를 정도로 공감하기도 하고, 큰 소리로 웃어서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때의 사노 요코는 나의 활력이며 생활의 생기였습니다. (…) ‘사노 요코’의 책은 ‘마약’ 같은 거더군요. 한 번 빨려 들어가면 손에서 한시도 놓을 수 없게 됩니다. 문장이 조금만 더 엉터리였다면 그냥 덮어 버릴 수 있을 텐데 하면서, 또 손에 집어 들고 맙니다.
    - 오스기 / 영화평론가

    목차

    그것은 영원히 구멍일까
    소녀소설은 인류에게 무엇을 했나 / 그것은 영원히 구멍일까 /생생한 빨간 토슈즈
    나의 후지 산은 비프스테이크입니다 / 훈시를 듣던 나날 / 소공녀와 고기만두
    천장에 붙어 늘어져 있던 메밀국수 / 흙탕물에 발을 담그고, 거짓말도 하나의 방편
    서랍과 빵떡모자

    부지런하고 성실한 인류여
    창피한 일 / 굉장히 날씨가 좋은 문화의 날이었다 / 부지런하고 성실한 인류여
    다가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 / 다카하시 다카코를 읽은 밤 / 다빈치, 당신 탓이에요
    오하구로 힐만과 국산차 / 인테리어 잡지를 산 날 / 인격자와 우울증
    외국어는 괴물들이 쓰는 말이다

    여러 종류의 사람과 함께 영화를 봤다
    여러 종류의 사람과 함께 영화를 봤다 / 미녀는 응가도 못하나
    더스틴 호프만은 너무 헷갈려 / 리얼리티는 궁상맞다 / 극한에서의 초밥과 프랑스 영화
    아름다운 사람은 서 있다

    1만 번 회전하는 세탁기
    친절 / 마당 / 영어 / 애완동물 / 합리주의 / 병원 / 세탁기 / 수첩
    특별히 볼일은 없는데

    멋쟁이 같은 거 난 모른다
    나의 반쪽 / 외출복 / 청바지 / 개 / 스키 / 창 / 백작부인의 북 / 강둑 / 말
    개구리 왕자 / 오리 새끼 / 기억 / 가오루 / 고양이 / 아이 / 가족 / 유화 물감

    외국어는 멋있는 음악이다
    외국어는 멋있는 음악이다 / 이게 인생이야 / 타국의 장어구이 / 스페인 시골 읍내의 인생
    방랑자의 틀니 / 그저 잠만 잘 뿐인 여행 / 연사(戀辭) 레슨
    황야에 서면 나는 남자가 되고 싶다

    독서는 나태한 쾌락이다
    인텔리 콤플렉스 / 야한 책 / 책 좋아하는 여자의 이혼 확률
    어머니는 평생을 두고 하는 오락이다 / 지성은 에로틱한 것입니다
    소설은 모두 연애소설이다 / 잘 가오 신데렐라 / 몽골말처럼

    수화기를 붙들고
    연꽃밭에서 / 장례식을 좋아합니다 / 사랑받으며 죽는 것보다는 낫다
    오토바이는 남자의 탈것이다 / 이불은 평생의 반려입니다 / 수화기를 붙들고
    무지 청명한 가을날에는 왠지 사람이 그립다 / 슈욱 사라진다

    후기
    옮긴이 후기

    본문중에서

    소녀소설은 한편으론 나에게 열등감을 심어 줬다. 공터 안 나무에서 남자아이를 밀어 떨어뜨리고 팬티를 치마 밑으로 비어져 나오게 입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 다니는 여자아이는 소녀소설에는 조연으로도 안 나왔다. 소녀소설에서는 악역조차 부자에다가 미인이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고함치거나 손을 들어 올리거나 하면 나는 즉각 소녀소설 속 각박한 운명을 견뎌 내는 주인공으로 변했는데, 그것도 생각해 보면 쾌락의 하나였다. 밖에서는 남자아이를 울리고 놀다가 집에 와서는 비련의 소녀소설 주인공이 되자니 나도 바빴다. 하지만 걱정도 되었다. 소녀소설의 주인공은 아름답고 다정하고 우아했는데, 그 점은 몇 십 권을 읽어도 예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하라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라고.
    (/ p.14)

    전철 문 옆에 서 있는데 중년의 인품 있어 보이는 점잖은 신사가 내 하반신을 뚫어져라 보면서 때때로 얼굴을 돌렸다. 나는 전철에서 치한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라서, 친구들이 치한이 그 부근을 만졌다며 “기분 나빠!” 하는 말을 들으면 괜히 기분이 근질근질해졌다.
    빨리 치한이라는 것과 대면해서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하고 그 손을 비틀어 올리든가, “어딜! 힘들 걸” 하며 요리조리 방어 자세를 취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철이 멈추려 했다. 그때 신사가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게 아닌가. 왔군, 왔어. 그는 내 옆에 바싹 다가와서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지퍼가 열렸어요.” 그러고는 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정말로 신사였던 거다. 그때는 창피했다. 열린 지퍼보다 아무도 몰랐던 내 마음이.
    (/ p.56)

    육체가 없어지는 죽음은 단 한 번뿐인데다가 현실로는 자신의 사후를 체험할 수 없다.
    그러나 이별이라고 하는, 인생의 도정에서의 죽음은, 우리의 혼과 육체로 견뎌 내야 한다. 아마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때 마음을 위로해 줄 따뜻한 말 한마디 같은 게 있을까. 헤어지자는 인간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이란 게 도대체 있을 수나 있을까.
    마음 독하게 먹고 “싫어졌어,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아” 하고 말을 뱉은 다음, 상대로부터 경멸과 증오를 몸으로 받아 낼 각오가 없다면, 사람과 헤어지는 일은 안 하는 게 좋다. 헤어질 때는 괜히 좋은 소리 하지 말고 독하게 말하는 게 정답이다. 단 한마디의 이별의 말이 실로 다양한 드라마를 상상하게 한다. 이별도 상상으로 해 보는 건 재밌네.
    (/ p.214)

    할 수 있으면, 비척거리는 보이프렌드와 손에 손을 잡고 카페오레를 마시면서 “그 여배우 미스캐스팅이라고 생각 안 해요? 도대체가 가슴이 너무 커요.”
    “아니, 나는 제법 괜찮은 여배우라고 생각하는데.”
    “흐음, 그 가슴이 좋아요? 아, 알았어요” 하고 사랑싸움도 훌륭하게 해 주자.
    내 그림에 대한 주문도 없어졌을 테니 서툰 그림이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만 내 맘대로 그리고, 마음 내키면 SF소설도 쓸 거다. SF는 과학적 지식이 필요해서 어려울 것 같으면, 살인물이라도 써서, 죽이고 싶은 사람을 차례차례 등장시켜 닥치는 대로 산산조각을 내 주는 거다. 나이 먹으면 먹을 것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게 된다고 하니, 하루가 걸리더라도 감자죽을 만들어 후우 후우 먹겠다. 돈이 없을 게 분명하니, 미식은 몸에 좋지 않다고 나 자신을 설득하면서. 입이 험한 것은 나의 숙달된 무기니까 험한 입으로 “저 할망구 예쁜 데가 없어” 하고 젊은 녀석들이 나를 싫어하게 만들 거다. 이런 것을 일러 깊은 배려심이라고 하는 거다. 내가 죽으면, 아,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줬으면 좋았을 걸 하고 주위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지 않게 말이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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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사노 요코(Yoko Sano)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8~2010
    출생지 중국 베이징
    출간도서 27종
    판매수 40,558권

    1938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그림 작가이자 수필 작가인 사노 요코는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돌아와 무사시노 미술대학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조형대학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 1971년 [염소의 이사]를 펴내며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다. 주요 그림책으로 [100만 번 산 고양이], [아저씨의 우산], [내 모자] 등이 있고,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쓸데없어도 친구니까], [보잘것없어도 추억이니까], [열심히 하지 않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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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일어일문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전문 일한 번역 · 통역가로 활동 중이다. 번역 작품으로는 『반상의 해바라기』, 『거울 속 외딴 성』, 『달의 영휴』, 『펭귄 하이웨이』,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어쩌면 좋아』, 『그렇게는 안 되지』,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기억술사』, 『하루하루가 안녕이면 땡큐』, 『어두운 범람』, 『해피해피 브레드』, 『서른 넘어 함박눈』,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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