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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의 경연일기 : 난세에 읽는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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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이
  • 역 : 오항녕
  • 출판사 : 너머북스
  • 발행 : 2016년 01월 25일
  • 쪽수 : 65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94606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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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율곡의 직언, 선조의 침묵에 담긴 조선 정치의 진면목

    [경연일기]는 1565년(명종 20) 7월, 문정왕후의 죽음에 대한 기록으로부터 시작하여 1581년(선조 14) 11월까지, 약 17년간 '경연'을 무대로 한 조선 정치의 현장에서 율곡 이이가 쓴 일기이다. 율곡이 홍문관 관원으로서 경연에 참석하고 사간원·사헌부 관원으로서 언관이자 '일기'를 작성하는 겸춘추(사관)의 직무에 대한 책임감에서 쓴 기록이다. 이 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사림의 등장과 동서분당 등 향후 조선 정치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선조 시대를 생생하게 조망하게 한다.

    출판사 서평

    좋은 정치를 하려는 뜻이 있습니까?
    율곡의 직언, 선조의 침묵에 담긴 조선 정치의 진면목


    1575년(선조 8년) 9월 경연. 북방의 후금이 심상치 않다는 상소에 대해 다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선조는 말실수를 하였다. 조정에 큰소리치는 사람이 많으니 이들을 데려다 막으라 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율곡 이이는 '큰소리치는 사람'이란 실력이 없는 사람일 텐데 어찌 적을 막을 수 있겠으며, 만일 유신(儒臣 유학자 신하, 즉 홍문관 관원)들을 큰소리치는 사람이라 비꼰 것이라면 양 혜왕과 제 선왕을 만나 선정을 강론한 맹자도 목소리만 큰 사람이냐고 물으며 비판한다. 나아가 임금의 잘못된 말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충언에 이르자 선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좋은 정치를 할 수 없다 말씀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때가 따로 있습니까?' '인재가 없는 시대가 있습니까?' '구습을 고집하고 나은 세상으로 나아간 일이 있습니까?' '동과 서로 편을 나누는 것이 나랏일과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민생의 고통보다 우선한 예법이 있습니까?' 율곡을 왜 조선 최고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꼽는지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율곡의 경연일기]는 율곡의 직언과 선조의 침묵이 부딪히는 가운데 소통·화합·민생을 위한 정치란 무엇인지를 고민한 조선시대 정치의 중심이었던 '경연'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경연일기]는 1565년(명종 20) 7월, 문정왕후의 죽음에 대한 기록으로부터 시작하여 1581년(선조 14) 11월까지, 약 17년간 '경연'을 무대로 한 조선 정치의 현장에서 율곡 이이가 쓴 일기이다. 율곡이 홍문관 관원으로서 경연에 참석하고 사간원·사헌부 관원으로서 언관이자 '일기'를 작성하는 겸춘추(사관)의 직무에 대한 책임감에서 쓴 기록이다. 이 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사림의 등장과 동서분당 등 향후 조선 정치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선조 시대를 생생하게 조망하게 한다. 특히 파란의 시대를 거치며 숱하게 명멸해간 100여 명에 가까운 인물들의 전기적 초상을 사건과 연관하거나 '졸기'의 형식으로 신랄하면서도 엄격하게 드러내는 대목들은 율곡 스스로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그의 인생관과 인물관, 경제관을 동시에 반증하고 있다. 율곡은 경연일기의 마지막 대목을 쓴 2년 뒤인 1583년(선조 16) 6월, 선조로부터 '나라 일을 그르친 소인'이라는 전교를 듣고 파주로 낙향한다. 그리고 이듬해 1월 16일 서울 대사동(탑골공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불과 49세였다.
    [율곡의 경연일기]는 역사학자 오항녕 교수(전주대)의 정확하고도 쉬운 번역과 해설로, 동료 학자들과 함께 물두하고 있는[율곡전서]정본화의 첫 결실이다. 오항녕 교수는 [경연일기]의 번역과 아울러, 이 텍스트가 등장한 시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쟁점-상복논쟁, 이황과 이이의 차이의 배경, 조광조와 기묘사화, 공안 개정, 군적 정리 등-을 추출하여 '경연일기 깊이읽기'로 해설을 더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율곡과 선조가 겪었던 긴장에 '요순'이 등장하는 까닭은?

    선조 초반의 정치상황은 어떠했는가? 명종의 죽음과 함께 선조가 등극했고, 윤원형으로 대표되던 외척 권신들이 몰락했다. 선조가 이황, 이항, 조식 등을 불러내면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 또한 높았다. 율곡은 경연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조에게 '좋은 정치'를 행할 것을 촉구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 방안을 올렸다.[경연일기]의 초반, 율곡의 충언과 비전에 대해 선조는 율곡이 올리는 옳지만 싫은 소리를 억누르지 않고 침묵으로나마 인정한다.
    하지만 율곡의 기대와 달리 선조의 망설임은 더해가고 번번이 옛 규례를 고치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거나, "나는 덕이 없는 데다 다스리기도 어려운 때를 만나 큰일을 하기 어렵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율곡은 선조의 이런 태도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주상께서는 '좋은 정치를 할 능력이 없다'고 하시나, 신은 믿지 아니합니다. 지금 전하께서 여색에 깊이 현혹되셨습니까. 음악을 좋아하십니까. 술을 즐기십니까. 말 타기와 사냥을 좋아하십니까."라며 좋은 정치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공부가 부족하고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적시하고,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면 능력 있는 신하를 기용하여 일을 맡기면 될 것이라고 선조를 다그친다.

    선조가 20세가 되던 해(선조 4) 4월 율곡은 "이황이 죽고 중망이 노수신에게 쏠려 있으나, 상은 은총만 베풀 뿐 국사를 같이 다스릴 뜻은 없어, 수신의 의견을 대부분 채택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이듬해 8월 기대승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할 때도 "상이 중히 돌아보는 마음이 없어 고향으로 갔다"고 판단했다. 선조 8년 율곡은 "예전에 맹자가 제 선왕에게 '사방 국경 안이 다스려지지 않았으면 어찌 하겠습니까?' 하고 묻자, 왕이 좌우를 돌아보고 다른 말을 하였는데 주자는 그가 큰일을 할 수 없다고 비판하였습니다."라고 하며, "지금도 나라 안이 다스려지지 않았으니, 전하께서는 어찌하시렵니까?"라고 말했다. 제 선왕처럼 선조 역시 답하지 않았다.
    선조와 사림의 갈등이 을사위훈 삭제 문제와 선조의 생부 덕흥군 추숭을 둘러싸고 깊어간다. 율곡은 덕흥군 추숭을 추진하던 임기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음에도 죄를 주지 않은 이유가, 선조가 사류를 싫어하였기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주상의 마음이 이러하니, 어찌 치세를 바랄 도리가 있겠는가?"라고 실망한다. 실망은 정언지를 충청 감사에 임명할 때 또 이어졌다. 율곡은 선조가 무능한 정언지를 탁용하여 사류들이 시정의 잘잘못을 말하지 못하도록 길들이려는 처사로 보았다.

    [경연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율곡의 '직간'과 선조의 '침묵'이란 긴장 관계를 통상적인 정치영역에서 명령과 복종이란 위계적 종속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율곡이 [경연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한 사상과 경세관은 무엇인가? 이 책을 번역하고 정본화를 시도한 오항녕 교수는 [경연일기]를 읽는 관전 포인트에 대해 첫째는 상하(上下)의 관계, 즉 권력 문제이고, 둘째는 그 권력을 통해서 사회의 삶을 어떻게 조직, 경영할 것인가 즉 경세론의 측면에서 일독하기를 권한다. 그는 "율곡이 '임금과 신하의 교류와 소통'을 강조한 핵심은 현실 정치권력에서 나타나는 비대칭적 위계를 '요순'이란 성인 모델을 통해 보편적 가치를 지닌 대칭성으로 바꾸고, 이를 경세론의 구체성 속에서 실현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율곡과 사림들은 인(仁)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왕에게 요구하며 기대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협박(?)을 하고, 선조는 이를 강제적인 명령과 복종으로 억누르지 않고 침묵으로나마 지지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가칭 '요순담론'이라는 이 기본틀이 오항녕 교수는 이때에 만들어지고 조선 후기 사회를 이끌어간 동력의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이 경연이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당시 조정의 풍토. 텔레비전을 보면 국무위원들은 열심히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는데 막상 뉴스를 통해 확인하는 대통령의 말에는 받아 적을 만한 내용이 거의 없는 현재의 정치. 오항녕 교수는 정말 율곡 때와 대비된다며 이 대비야말로 역사학의 과제라 한다.

    율곡의 경세론, 소통·화합·민생을 위한 정치란 무엇인가

    율곡이 실현하고자 한 요순 방식의 '교류와 소통'이 어떻게 민생을 위한 경세론으로 이어지는지 [경연일기]는 펼쳐낸다. 퇴계 이황에게 삶의 화두이자 과제는 조광조 등 사화(士禍)를 당한 명현들의 복권이었다. 사화의 시대를 살면서 젊은 사림을 키우고 시대를 견딜 학문을 이룩하는 데 진력하였다. '요순 담론'은 정암 조광조 이래 조정이 구현해야 할 모범으로 열망했지만 조선의 현실에서 구현할 제도적 방법을 기획하기에는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율곡에 와서는 달랐다. 율곡의 화두는 사림 정치를 통해 사회의 삶을 어떻게 나아지게 할 것인가? 즉 경세론에 가 있었다. 실제 율곡의 [경연일기]는 경전 공부보다는 국가 정책, 인재 등용, 시사에 따른 정치적 판단 등 정치활동의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경세론의 출발은 간단했다. "군주는 다 가졌으므로 가지면 안 된다."였다. 1573년(선조 6) 율곡은 "요즘 대간에서 계달하는 것이 궁중이나 내수사의 일에 관한 사안이면 주상께서 고집스레 거부하시므로 신하들이 전하께서 사심이 있느냐 의심하게 되니 어디서 본답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선조 7년의 '황랍 사건'도 마찬가지의 문제였다. 율곡은 이 무렵 향약 실시를 거두게 한다. 물론 율곡도 향약이 만민을 바르게 하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성을 기르는 것을 먼저 할 것이고, 백성을 가르치는 것은 뒤에 해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급한 민생의 고통을 풀어야 향약이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때 율곡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폐해는 공납제의 문란이었다. 선조 7년 2월 율곡은 "조종의 법을 모조리 변경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공안(貢案) 같은 것은 연산군이 첨가하여 제정한 것이요 조종의 법이 아닙니다. 신이 개혁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민폐를 구제하자는 것입니다."라며 공납문제의 대변통의 논의를 꺼낸다. 단순이 공물을 줄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세제 전반을 뜯어고치는 것이 율곡의 착상이었다. 이 문제는 후일 대동법으로 이어진다.
    율곡의 [경연일기]에는 지방제도 개혁 논의, 군역의 폐해에 따른 군적 정리 문제 등 국가 운영과 관련한 정책의 설정과 그 타당성에 대한 검토가 어떻게 행해지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는지 그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조선 정치의 생생한 현장을 체험해볼 수 있는 좋은 텍스트라 할 수 있는 것이다.

    100여명에 대한 신랄하면서도 엄격한 인물평, 율곡이 생각한 좋은 위정자의 모습은 무엇인가?

    율곡이 일기를 쓴 이 시기는 조선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건과 인물이 출현한 때이다. 사화를 거치며 사림이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했으며, 동서분당의 기미가 시작되는 등 향후 조선 정치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시기였다. 한국사 통틀어 역사의 무대에 이만큼의 인물이 대거 등장한 시기가 있을까? 율곡은[경연일기]에 23명의 인물에 대한 졸기(卒記, 압축적인 전기)를 남겼다. 그리고 일기와 근안(謹按, 본문 번역어 '율곡 생각') 곳곳에 100여명에 가까운 인물평을 적고 있는데, 신랄하면서도 엄격한 이들에 대한 기록은 당시의 정치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게 하며 율곡의 인간관과 정치관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퇴계 이황이 조정의 부름에 끝내 응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있었으나 그의 선비로서의 처신과 학문의 깊이를 높이 평가하며, 특히 조광조와 이황을 비교하여 "이황은 당세 유학의 종주로 조광조 뒤로는 그에 비할 사람이 없었다. 이황의 재주와 국량은 조광조를 따르지 못하나, 의리를 깊이 연구하여 정미한 경지에 이른 것은 조광조가 그를 따르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여, 학문의 경지에서는 이황이 조광조보다 낫다고 하였다. 한편 조광조의 추증에 부쳐서는, 조광조가 중종반정으로 출사하게 된 과정과 이후 기묘사화로 축출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하고는, 뒤이어 조광조가 경세제민의 재주를 가졌으나 학문이 미처 대성하기 전에 갑자기 요로에 올라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였다. 그러나 율곡은 조선에서 성리의 학문이 있는 줄을 알게 된 것은 모두 조광조의 힘이라고 치하하였다. 한편 문묘에 종사되기도 한 이언적에 대해서는 을사사화 때 직언으로 사림을 구원하지 못한 일을 두고 절개가 없는 인물이라고 혹평하였다.
    그렇다면, 함께 조정에서 활동한 현직 동료에 대한 율곡의 생각은 어땠을까? 기대승의 졸기 중 일부를 보면 "학문은 변론이 박식하고 원대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실천하는 공부가 없었다. 또 남을 이기기를 좋아하는 병통이 있어 남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는 까닭에 지조 있는 선비는 어울리지 않았고 아첨하는 사람이 많이 따랐다." 유희춘에 대해서는 "박람강기하여 책이나 역사를 읽으면 다 외웠다. 그러나 경세의 재주와 곧은 말을 하는 절조가 부족하여 언제나 경연에서는 문장 이야기뿐이었고, 현실의 폐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못하니, 식자들이 부족하다 생각하였다."했다. 노수신은 당시 19년이라는 오랜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선조를 잘 보좌하여 새 시대를 여는 데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 율곡은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귀양살이 끝에 노수신의 기개는 꺾였고, 불만한 정치는 하나도 없이 그저 자리나 보전하는 데 그쳐 율곡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신은 도리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할 수 없으면 그만두는 것이다. 노수신이 시폐를 구제할 재주가 없으면 자신과 능력의 분수를 생각하여 함부로 정승자리에 있지 말아야 할 것이고, 만약 그런 재주가 있다면 정성껏 주상을 인도하여 그 말을 써 주지 않은 연후에 사퇴하는 것이 옳다. 지금 우두커니 정승의 지위에 않아 건의하는 것도 없이 다만 병으로 사퇴하는 것만 능사로 삼다가 상이 간절히 묻는데도 한 가지 방책도 아뢰지 못하였다. 아 애석하다! 수신의 맑은 명성과 중망으로도 시무에 통달하지 못하고 마침내 녹봉만 먹는 것을 면치 못하였다."

    율곡은 나랏일을 맡은 관리라면, 자신의 직분에 맞게 '해야 할 말'을 에두르지 않고, 바로 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라고 보았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와 다름없으니, 그런 사람은 벼슬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사람에게는 재능과 기개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과 아울러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은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아량임을 정철이나 이준경, 기대승 등의 사례 등을 통해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도 상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결국 쓰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은 율곡의 생각은 그가 동과 서로 분열된 두 세력을 화합시키고자 노력한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동과 서의 구분이 나랏일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애초 심의겸과 김효원의 사소한 감정 다툼으로 시작된 갈등이 선조 8, 9년(1575, 1576년)에 이르면, 조정에서 두 사람의 갈등을 해결할 방안으로 둘을 외직 발령 내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두 세력 간 갈등은 오히려 점점 심해져 선조 11년(1598년)이 되면 심의겸의 무리를 서西라 하고, 김효원의 무리를 동東라 지목하면서 조정 신하들이 완전히 분열하게 된다. 이때에 정철은 서라고 지목을 받았고, 이발은 동편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이가 매번 정철과 이발에게 "자네들 두 사람이 화합하여 한마음으로 조화시키면 사림이 무사할 것이다." 하고 간절히 말하여, 정철과 이발이 서로 교류하며 화평할 논의를 시작하였으나, 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수의 옥사' 등을 일으켜 두 세력 간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어 화합은커녕 이제는 상대를 소인小人이라 칭하기에 이르렀다. 나랏일의 처리에서 이제 공론公論은 사라지고, 인물 개개인의 자질도 분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율곡 생각(謹按), 조정에서는 식견이 중요하다. 식견이 없으면 현인이라도 일을 그르친다. 지금 사류의 싸움은 모두 사안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왔다. (중략) 동에 붙은 자들이 날로 일어나 새로운 논의를 다투어 내놓았고, 서인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는 유속 구신이 이윽고 요직에 있으면서 권세를 부리고 감정을 풀고자 논의를 준절하게 하여 스스로 동인에게 충성을 보이려 하였다. 하지만 서인은 아무리 착한 선비라도 도우 등용되지 못하였다. 청명이 있는 선비들이 도리어 속류와 하나가 되어 청탁(淸濁)이 혼잡해졌으므로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율곡은 관직에서 잠시 물러나 있을 때인데, 조정이 동과 서로 나뉘는 것을 보고는 두 세력을 화합시키는 역할을 자처하였으나, '백인걸의 상소 대필 사건' 등에 얽히며 오히려 공격을 당하게 된다. 율곡은 서인이 굳이 '심의겸이 옳고 김효원이 그르다'고 하는 것, 동인이 굳이 '김효원이 옳고 심의겸이 그르다'라고 하는 것은 같은 경우일 뿐이며, 더구나 '두 사람의 시비를 분간하는 것이 나라의 안위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 하여 현실을 개탄하였다. 결국 이런 무의미한 다툼은 '혼란한 틈에서 우세한 세력에게 빌붙어 권세를 잡은 자들이 나랏일을 망치는' 결과를 낳을 뿐인데, 율곡은 끝내 두 세력이 화합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현실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만 갈수록 실감하게 되었다.

    난세에 읽는 정치학, 율곡의 경연일기에서 '좋은 정치'를 생각하다

    어느 시대나 시대가 처한 문제의 정도만 다를 뿐, 시대마다 난세라고 일컬을 만한 문제는 언제나 있어왔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를 읽으며 놀라는 사실은 각각의 처한 문제의 겉모양은 다르지만, 그 본질적인 내용은 같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 학자이자 경세가로 활동한 율곡이 끊임없이 고민했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좋은 정치'를 통해 '치세治世'를 이룰까였다. 민생의 고통이 무엇인가에 주목하고, 그것의 해결을 위한 방안 마련에 골몰하였으며, 분열된 위정자 집단의 화해를 촉구하였다. 물론 그의 요구와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노력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또한 당시 선조가 비록 율곡을 비롯한 대신들과의 논의를 실천으로 옮기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언로마저 막지는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통의 공간이자 함께 공부하고 미래를 구상하는 자리였던 경연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듣기 싫은 소리이지만 묵묵히 신하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선조의 태도 또한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더욱이 조선이라는 사회는 그와 같은 소통의 장, 그리고 국가 정치에 대한 감시의 기능을 제도적으로 보장했다는 것이다.

    "경연은 바로 국왕과 신하가 책도 읽고 토론도 하는. 실제로 임금이 신하에게 배우는 자리였다. 공직자들이 모이는 자리이니만큼 중요한 국가 정책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를 담당하는 부서는 집현전·홍문관으로, 이들은 춘추관의 사관, 사간원·사헌부의 언관과 함께 조선의 문치주의를 이끌었던 트로이카였다. 경연은 소통의 공간이고, 소통의 결여는 결국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귀결된다. 경연을 게을리한 군주가 폭군(연산군)이거나 혼군(광해군)이었던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 머리말 중에서

    율곡의 시대는 마치 우리 시대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은 과거의 화석화된 언어로 읽히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불화의 시대, 불통의 시대, 어지러운 시대라고 하는 지금, 율곡의 [경연일기]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목차

    치세로 가는 길 _ 머리말

    외척의 몰락 _ 명종 20년(1565, 을축년)
    사림의 정치 바로잡기 _ 명종 21년(1566, 병인년)
    다음 임금은 누구입니까 _ 명종 22년(1567, 정묘년)
    선조의 시대가 열리다 _ 선조 즉위년(1567, 정묘년)
    인순왕후 수렴청정을 거두다 _ 선조 1년(1568, 무진년)
    정치를 하려면 때를 알아야 합니다 _ 선조 2년(1569, 기사년)
    을사사화를 바로잡다 _ 선조 3년(1570, 경오년)
    한심한 재상 위태로운 나라 _ 선조 4년(1571, 신미년)
    대신은 바른말을 하지 않고 나라의 기강은 해이해지니 _ 선조 5년(1572, 임신년)
    정치를 잘하려는 뜻이 있습니까 _ 선조 6년(1573, 계유년)
    좋은 정치를 하려거든 공부해야 합니다 _ 선조 7년(1574, 갑술년)
    김효원 편 심의겸 편 _ 선조 8년(1575, 을해년)
    사림 끝내 갈라서다 _ 선조 9년(1576, 병자년)
    을사위훈을 삭제하다 _ 선조 10년(1577, 정축년)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어지다 _ 선조 11년(1578, 무인년)
    누가 쓴 상소인가 _ 선조 12년(1579, 기묘년)
    묵은 폐단을 버려야만 나아갈 수 있습니다 _ 선조 13년(1580, 경진년)
    인재가 없는 시대는 없습니다 _ 선조 14년(1581, 신사년)

    [경연일기 깊이 읽기]

    상복논쟁- 흰 갓 검은 갓이 왜 그리 중요한가
    노수신과 숙흥야매잠
    퇴계 이황의 독서당 동창생들
    사림과 유속의 구분
    세대차이로 본 성리학 이황과 이이
    조광조, 그리고 기묘사화의 조짐
    율곡의 만언소- 만언봉사
    공안 개정이 필요했던 이유
    황랍사건이 내포한 시대상
    가슴속에 맹자를 담은 사람들
    군적정리

    옮긴이 해제
    부록 선조·이이의 세계도|이이가 쓴 인물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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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중에서

    상이 사정전에서 조강에 임하였다. 그때에 상이 아직도 권도를 좇지 아니하니 영상 홍섬 이하가 다 권도를 따르시라고 반복하여 아뢰었으나 상이 모두 답하지 아니하였다. 집의 신점이 아뢰기를,
    "북병사 박민헌이 늙고 재략이 없으니 불가불 체직시켜야 하겠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북방이 텅 비어 오랑캐 기병이 쳐들어온다면 막아낼 계책이 없으니 미리 장수를 선택하여 기르십시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조정에 큰소리치는 사람이 많으니 오랑캐 기병이 오거든 큰소리치는 사람을 시켜 막을 것이다."
    하였다. 이이가 나아가서 아뢰기를,
    "주상께서 말씀하신 '큰소리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지목하신 것입니까. 만일 큰소리만 하고 실속이 없는 자를 쓰면 반드시 일을 그르칠 것인데, 어찌 그 사람을 시켜 적을 막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옛것을 좋아하고 성인을 사모하는 사람을 큰소리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면 주상의 말씀이 극히 온당치 못합니다. 예전에 맹자가 양 혜왕과 제 선왕을 만나서도 오히려 요순을 목표 삼았는데, 이것이 어찌 큰소리를 좋아하는 것이었겠습니까.
    지금 유학자의 말은 털끝만큼도 채택하지 않으면서 한갓 큰소리라고 지목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북쪽 오랑캐를 막도록 하시겠다는 것은 마땅치 아니한 듯합니다. 임금의 말이 한번 나오면 사방으로 전파되어 옳지 못한 일이라면 천 리 밖에서도 왕명을 거역하는 법입니다. 지금 전하께서 유학자를 큰소리나 치는 사람이라고 지목하여 북쪽으로 보내려고 하시면, 어진 사람은 기운이 꺾이고 불초한 자는 갓을 털며 좋아할 것입니다. 임금의 발언이 선행하는 사람을 좌절시키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를 기쁘게 해 준다면 어찌 그릇된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상이 아무 말이 없었다. 이이가 이어서 아뢰기를,
    "전에 주상께서 착한 말을 즐겨 들으시며 유신에게 마음을 기울이시어 온 나라가 다 기뻐하였는데, 요즘 주상의 마음이 돌연 변하시어 유신을 소외하시니 전하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러십니까. 마음을 돌리시어 어진 이를 가까이하고 선을 좋아하시어 사림으로 하여금 흥기하도록 하시면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일 것입니다."
    (/ pp.357~359)

    저자소개

    생년월일 1536~1584
    출생지 강원도 강릉
    출간도서 32종
    판매수 15,605권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율곡 이이는 1536년(중종 31)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강릉이고, 고향은 파주 율곡으로, 그는 율곡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여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이래 모두 아홉 번의 과거에 합격하고 그중 일곱 번 장원하였다.
    선조 2년, 홍문관 교리였던 율곡은 일종의 연구 휴가인 사가독서를 얻는다. 그 기간에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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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지곡서당(태동고전연구소)에서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한학을 공부하였다. 한국사상사연구소 연구원, 국가기록원 팀장,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냈다. 현재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가와 공동체, 기억과 기록, 역사와 정치, 제도와 인간이라는 주제를 조선 문명 속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호모 히스토리쿠스』, 『조선의 힘』, 『기록한다는 것』,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밀양 인디언, 역사가 말할 때』, 『유성룡인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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