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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은 헤겔의 초기 저작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헤겔 철학의 형성사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법철학을 담았고, 《인륜성의 체계》와 《법철학》으로 이어지는 전체 체계 속에서 완성되는 개념과 원리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특히 후기의 근대적 소유와 법질서에 대한 분 석이 이 논문에서 상당 부분 선취되었을 뿐만 아니라, 청년 마르크스 사상과 유사한 까닭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근대 자연법 사상과 시민사회의 내적 모순에 대한 탁월한 분석, 폴리스적 공동체를 모델로 한 인륜성의 이념, 고대 비극작품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이의 역사철학적 적용, 전체 정신철학으로서의 실천철학이라는 체계론 등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철학ㆍ정치학ㆍ법학을 연구하면서 근대 경험주의와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의 논거를 찾는다면, 개인과 사회ㆍ자유와 공공성의 양립가능성을 체계화에 고심한다면,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논쟁에 참여하려 한다면, 이 책을 참고하는 것이 유익하다.

“근대 철학의 거두 헤겔, 인륜성의 비극을 논하다”
절대적 인륜성, 굴종적이지 않은 참되고 생동하는 합일!

‘자연법에 대한 학적 취급방식들, 실천철학에서 자연법의 지위와 실증법학과의 관계에 대하여’
헤겔 「자연법」의 위상

‘「자연법」`으로 불리는 이 논문은 헤겔의 초기 저작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헤겔 철학의 형성사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법철학을 담았고, 『인륜성의 체계』와 『법철학』으로 이어지는 전체 체계 속에서 완성되는 개념과 원리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특히 후기의 근대적 소유와 법질서에 대한 분 석이 이 논문에서 상당 부분 선취되었을 뿐만 아니라, 청년 마르크스 사상과 유사한 까닭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글에서 헤겔은 당대를 풍미했던 양대 사상과 대결하여 자신의 사상을 차별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홉스를 비롯한 경험주의적 자연법 이론과 칸트와 피히테의 형식주의적 자연법 이론을 치밀한 지성으로 비판하고, 근대 시민사회와 실증법학의 근본 취약점과 병폐를 분석하여 절대적 인륜성의 체계로서 참된 자연법을 구축한다. 헤겔이 주장하는 바는 개별성을 무화하고 민족공동체로 합일해야 정신과 자연ㆍ개인과 사회제도ㆍ이념과 현실이 통일되며, 동시에 생동하는 총체성으로서 절대적 인륜성을 전제로 할 때 개인의 자유가 진정하게 실현되어 분열된 시민사회와 억압적 지배질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대 자연법 사상과 시민사회의 내적 모순에 대한 탁월한 분석, 폴리스적 공동체를 모델로 한 인륜성의 이념, 고대 비극작품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이의 역사철학적 적용, 전체 정신철학으로서의 실천철학이라는 체계론 등이 「자연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철학ㆍ정치학ㆍ법학을 연구하면서 근대 경험주의와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의 논거를 찾는다면, 개인과 사회ㆍ자유와 공공성의 양립가능성을 체계화에 고심한다면,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논쟁에 참여하려 한다면, 이 책을 참고하는 것이 유익하다.

“「자연법」은 신진 학자 헤겔의 당찬 도전”
헤겔 「자연법」의 배경

G.W.F. 헤겔. 「자연법」을 쓸 당시의 헤겔은 주류 학계에 도전하는 패기만만한 신진 학자였다.
1801년 무렵, 헤겔은 신진 학자로서 주류 학계에 정식으로 도전한다. 당시의 예나는 괴테, 실러, 슐레겔 형제, 노발리스 등 낭만주의 작가들을 주축으로 한 문학가들의 집결지이자 피히테와 셸링이 독일 관념론을 확립해가던 학문의 중심지였다. 학창시절의 절친한 친구였던 셸링이 헤겔이 예나 대학으로 옮겨 정착하는 일을 도왔고, 사상적 동지로서 지성의 결전을 함께했다.
「자연법」은 『철학비평지』에 발표한 일련의 논문 가운데 하나였는데, 헤겔의 첫 번째 공식 저서인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 차이』와 예나 시절의 마지막 저작이자 전체 저작 목록에서 첫 번째 주저로 기록되는 『정신현상학』 사이에 위치한다.

“잠다한 경험의 집합과 공허한 부정의 형식”
경험주의적 자연법론과 형식주의적 자연법론에 대한 비판

헤겔은 논문의 상당 부분을 종래의 자연법 이론들에 대한 비판에 할애했다. 이것은 새로운 사상의 정립을 위한 치밀한 설정이었다. 홉스와 로크로 대표되는 경험주의적 자연법론에 대한 비판의 요점은, 경험 그 자체 안에서는 내적 통일을 정초할 아무런 원리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론구성을 위해 그리고 사회적 통합과 법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요청되는 보편적 통일은 논변의 비일관성으로 자의적이고 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경험에 대한 잡다한 규정이 단순하게 열거되고 내적 필연성이 결여되고도, 형식적이고 임의적인 통일을 통해 지배적인 규정이 단지 선택되는 것뿐임을 지적한다. 또한 어떻게 이기적 욕구들이 충돌하고 타산적인 합리성이 난무하는 시민사회 속에서 단지 강압에 의한 법질서가 도출될 수 있는지, 어떻게 유용성의 원리가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고 법공동체를 보전할 수 있는지에 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게다가 헤겔은 형식주의적 자연법론을 경험주의의 자기모순적 발전의 연장선상에서 분석했다. 경험주의의 불완전한 이론적 통일성이 다른 극단으로 치달으면 순수한 관념적 통일이라는 선험적 형식주의가 발생하는 것이다. 형식주의의 원리는 결국 경험적 의식에서 나오고, 경험주의의 개인주의적 경향은 오히려 더욱 강화된다. 근대의 대표적인 사상이었던 경험주의와 형식주의는, 헤겔에 따르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동전의 이면(裏面)이자 반면(反面)으로 얽혀 있었다.

“굴종적이지 않은 참되고 생동하는 합일”
헤겔이 제시한 절대적 인륜성의 이념과 체계, 개인의 자유 문제

헤겔이 대안으로 제시한 ‘절대적 인륜성’은 자연적 상태와 법, 개인의 자연적 자유와 공동체의 인륜적 자유가 “굴종적이지 않은 참되고 생동하는 합일”을 이루는 것으로 설명된다. 절대적 인륜성은 경험주의와 형식주의의 단순한 혼합과 절충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두 계기의 틀을 넘어서는 제3의 것이다. 절대적 인륜성은 경험주의와 형식주의가 각각 일면적으로 고수하는 실제적인 것(다수성, 유한성, 관계)과 이념적인 것(단일성, 무한성, 무차별)의 절대적 동일성이자 절대적 통일이다.
헤겔의 인륜성 이념은 전체주의적이라기보다는 총체주의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옮다. 참된 인륜성의 체계는 인륜적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통합체다. 헤겔은 대립된 규정들 사이에서 선택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보았다. 진정한 자유란 “외적인 것은 없으며, 따라서 자유에 대해서 어떠한 강제도 불가능”해야 했다. 내적으로 전체와 통합된 개인만이 전체와의 직접적인 합일 속에서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고 그 개별성을 존중받을 수 있다. 헤겔의 자유관은 개인에게 그 자체로 보편적 개별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종래의 자연법 사상에 뒤따르는 개인에 대한 강압과 헤겔 자연법 사상이 주장하는 개인에 대한 제압을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헤겔의 인륜성, 실증법학과 대결하다”
헤겔 역사철학의 초안, ‘인륜 속의 비극’

한편 논문 속에서는 깊은 인상을 남기는 문학적 비유로서 ‘인륜 속의 비극’을 읽어볼 수 있다. 이는 인륜적인 것 자체의 불가피한 내적 운명을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이상향으로부터 로마 제국시대의 쇠퇴와 근대 시민사회의 희극적 상황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통해 고찰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극은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삶의 일환으로 그려지며, 대립자와의 화해를 통한 자기완성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헤겔이 후기철학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드러나는 여러 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인데, 이를 통해 동시에 헤겔 변증법적 역사철학의 기본 골격을 짚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절대적 인륜성과 자연법에 준거해서 실증법학과 대결한다. 헤겔은 절대적 인륜성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철학적 법이념을 참다운 자연법으로서 보다 상위에 놓고 있다. 실증법학의 결함은 다름 아닌 실증성에 있기 때문이다. 즉 경험주의와 형식주의의 관련 속에서 실증법학 역시 진정한 학문이라는 권리주장을 포기한 채 경험적 지식들의 모음으로 전락했고, 형식적 법관계만을 포착하여 학적 완결성이 불가능해졌으며, 상대적이고 유한한 법률규정의 양적인 팽창만을 낳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13. 근대 자연법론 비판과 절대적 인륜성의 체계 ㅣ 김준수
63. 자연법에 대한 학적 취급방식들, 실천철학에서 자연법의 지위와 실증법학과의 관계에 관하여
177. 참고문헌
181. 헤겔 연보
185. 옮긴이의 말
189.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