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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스케치북』은 칼 쉬니윈드가 1950년 수집해 커트 발렌틴에서 1951년에 출판한 책을 저본으로 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의 수집가 및 미술 애호가들을 위해 1,500부 한정본으로 제작되었다. 이 책은 세잔이 사용하던 원본 스케치북을 원래의 내용 그대로 출간하는 것이다. 원본 스케치북에 해설과 낱낱의 작품 설명을 곁들였다.

“세잔은 프로이트가 감정을 이해하는 법을 바꾼 것만큼이나 명징하게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법을 바꾸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최된 세잔 스케치북 특별전(A CEZANNE TREASURE: THE BASEL SKETCHBOOKS)을 크게 보도하면서 바친 헌사의 한 대목이다. 1988년 2월 MoMA는 스위스 바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세잔의 스케치북으로 특별전을 꾸몄다. MoMA는 전시 보도자료에서 “스케치북은 세잔이 얼마나 드로잉에 몰두하였으며 작품의 주제가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를 보여준다”며, 세잔이 “예술의 새로운 질서와 구조를 구현”해 가는 모습을 가공되지 않은 모습으로 발견하는 데 전시 의의를 두었다.
한동안 드로잉은 유화 작품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드로잉의 중요성에 주목한 이 가운데 한 사람이 이 책 《세잔 스케치북》(PAUL C?ZANNE SKETCHBOOK)에 해설을 쓴 칼 쉬니윈드다. 그는 유럽 근대 회화 거장들의 드로잉 작품을 정력적으로 수집하였으며, 화가들이 남긴 스케치북의 미술사적 가치에 눈을 돌려 자신이 몸 담고 있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컬렉션을 만들어나갔다.
우리 출판계에 처음 소개되는 《세잔 스케치북》은 칼 쉬니윈드가 1950년 수집해 커트 발렌틴에서 1951년에 출판한 책을 저본으로 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의 수집가 및 미술 애호가들을 위해 1,500부 한정본으로 제작되었다. 이 책은 세잔이 사용하던 원본 스케치북을 원래의 내용 그대로 출간하는 것이다. 원본 스케치북에 해설과 낱낱의 작품 설명을 곁들였다.
세잔은 흑백을 통해 색채를 드러내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회화가 완성체라면, 드로잉은 그것의 구조이며, 세잔이 지닌 근본적인 시각의 총체이다. 한 세대 이후에 등장하는 큐비즘을 예고하는 조형질서가 이미 세잔의 스케치북 속에 함축되어 있다. 이 책은 세잔이 대화가로 발전해 가는 과정과 혁명적 정신을 보여주는 유니크하고 흥미로운 자료이다. 19세기 예술의 최고봉의 한 사람이 100점이 넘는 흑백 드로잉을 통해 색조 효과, 빛, 매스 등 다양한 요소를 실험하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1869-70년부터 1885-86년에 이르는 15년 이상에 걸쳐 있다. 이 시기는 세잔의 작품 발전과정에서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시기이다.
더욱이 이 스케치북은 화가가 사용하던 원본답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준다. 우선 세잔의 아들이 그린 스케치가 몇 점 끼어들어 있다. 세잔이 자신의 아들을 그린 다수의 초상화와 더불어 아들을 얼마나 애지중지하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잔 아들의 초상화는 이 스케치북의 연대 추정을 가능하게 해주고, 아울러 스케치북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한 회화작품의 제작연대까지 가늠케 하는 열쇠이다. 1,600점이 넘는 세잔의 작품 가운데 연대가 표기된 작품은 고작 6점에 불과하다. 또한 두세 군데 나타나는 식료품 구입 목록이나 결혼 발표문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과 세잔의 성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해설
여기 원본 그대로 출간하는 세잔Paul Cezanne의 스케치북은 1950년 말에 미국으로 건너간 다섯 권의 스케치북 가운데 한 권이다. 이들 스케치북은 프랑스 리옹Lyon에 살던 모리스 르누Maurice Renou가 소장하던 것으로 '리옹 스케치북'The Lyon Sketch Books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르누는 르누와르Renoir, 세잔, 그리고 세잔의 가족과 막역한 사이였으며, 스케치북을 세잔의 가족한테서 건네받았다고 한다. 이번에 출간하는 스케치북은 세상에 최초로 선보이는 것이다.
이 스케치북은 나머지 네 권과 동일한 크기로, 가로 5인치, 세로 8과 4분의 3인치이다. 표백하지 않은 뻣뻣한 린넨 천 표지로 장정되어 있다. 한쪽 표지에는 연필을 꽂을 수 있는 연필꽂이가 달려 있고, 다른 쪽에는 반대편 표지까지 한 바퀴 돌려 단단하게 묶을 수 있도록 린넨 끈이 달려 있다. 여러 해 동안 스케치북을 사용하면서 그것을 묶고 있던 끈이 늘어나서인지 세잔은 끈 중간에 매듭을 묶어 사용하였다. 미술 재료를 취급하는 가게에 가면 요즘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이다.
종이는 흰 빛을 균일하게 띠고 있으면서 무늬가 드러나 보이지 않는 고급 재질이다. 흰색 바탕인 앞뒤 양표지의 안쪽면을 포함시키지 않으면, 50매의 내지 즉, 100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스케치북을 이전에 소유하고 있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각각의 내지 한쪽 면에 I부터 L까지 로마식 숫자 표기를 해두었다. 스케치북을 인쇄하면 이 같은 표시가 나타나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페이지를 표기하기로 하였다. 즉 로마 숫자가 표시된 페이지는 p.XX로, 그 뒷 페이지는 p.XX 뒷면으로 표기하였다.
표지를 보면 유화물감 자국이 상당히 많고, 짙은 갈색의 유화물감 얼룩이 스케치북 위쪽의 거의 모든 페이지를 관통하고 있다. 인쇄본에서는 거의 검정에 가깝다. 일부 수채화 물감 자국도 보인다(p.XLI). 스케치북에 밴 얼룩과 자국들은 세잔이 그림을 그리면서 스케치북을 가까이에 두었다는 점을 말해 준다.
이 책이 지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세잔이 그의 외아들인 폴에게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도록 허락했다는 사실이다. 스케치북에 폴이 남긴 흔적은 세잔의 특정한 작품 제작연도를 추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스케치북에 실려 있는 드로잉은 대략 다음과 같은 주제에 따라 분류될 것이다.

인물 습작(조각품을 본떠 그린 것은 제외)
근육골격도L' Ecorche 드로잉
세잔과 그의 가족의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하고 분석하는 데 사용한 이와 같은 분류체계를 유념해 두면 유용할 것이다. 또한 작품의 제작연도를 알아내는 데도 좀더 논리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인물 습작

세잔의 초기작들은 인물의 구도 연습을 위한 것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초기에 풍경을 일부 다루기도 했지만, 풍경은 세잔이 작업을 진행해 나가면서 나중에 가서야 훨씬 중요성을 갖게 된 주제다.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에서 세잔을 지도했던 스승은 전통적인 미술 교육 방식에 따라 세잔에게 인물상 연습을 주로 시켰다. 따라서, 세잔의 초기작은 주로 살아 있는 모델이나 석고 모형을 보고 그린 것들이다. 1861년 세잔은 엑스Aix 대학에서 법학 공부하던 것을 관두고, 같은 해 파리로 떠나게 된다. 파리라면 1858년에 잠시 들른 것이 전부였다. 파리에서 세잔이 자주 찾은 곳은 뤽상부르Luxembourg와 루브르Louvre 박물관이었다. 그곳에서 세잔이 특별히 존경했던 루벤스Rubens와 푸생Poussin, 들라크루아Delacroix 같은 대가들이 남긴 인물화를 공부할 수 있었다. 특히 푸생의 영향을 받은 세잔의 초기 인물 습작의 다수는 상당히 어설픈 면이 눈에 띈다(pp.XXXIII, XXXIV, XXXV).
이 시기의 작업들은 에로티시즘과 폭력성이 가미된 기이한 감성주의적 경향을 보여준다. 〈교살자〉The Strangler나 〈강간〉Rape(V.123, 1870년경)으로 알려진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의 인물 습작을 세잔이 어떻게 표현했는지 그 발전 과정을 추적해 보는 것은 아주 흥미롭다. 이 스케치북의 XIII 페이지 뒷면과 XXXIII, XXXVIII 페이지에는 두 작품의 기초를 이루는 세 사람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 습작들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그려진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이 XLII 페이지 뒷면에 실려 있다. 초기 회화와 드로잉(V.118, 1198, 1869년과 1870년 사이)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 스케치를 포함한 같은 페이지의 드로잉들은 스케치북에 담긴 작품 가운데 가장 초기작이다. 세잔이 풍경화와 인물화에서 성취해 낸 기량과는 달리 무언가 주저하는 듯하며, 고리타분한 느낌이 묻어난다.

〈교살자〉와 루벤스를 강렬하게 연상시키는 〈여인을 공격하는 파우누스〉Fauns Attacking a Woman(p.XLVI 뒷면)의 인물 드로잉을 비교해 보자. 후자의 경우 모든 인물들의 조형적 특징을 철저하게 연구하여 드로잉의 선이 형태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초기 드로잉에는 이런 점이 부족해 보인다(p.XXXIII과도 비교). 〈교살자〉를 위한 습작과 XXXIII 페이지의 구도를 보면 선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인물을 묘사하고는 있지만 인물의 해부학적 구조를 명확히 드러내지는 못한다. 즉 3차원적 양감이 부족하다. 그러나 〈두 여인〉Two Women(p.XXX 뒷면)의 구도를 보면 이전의 드로잉에는 찾아볼 수 없는 차분함이 돋보인다. 벤투리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제작연도는 1872년에서 1877년 사이인 반면, 〈교살자〉는 1870년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여인〉의 드로잉에서는 풍경의 요소가 인물의 구도와 통합적인 요소를 이루며 나타난다.
세잔의 스케치북에서 중요한 시리즈는 목욕하는 사람들의 습작이다. 이 시리즈는 모두 한 명의 동일한 남성을 그린 것으로, 구도 연습을 위해 여러 모델을 두어 그린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주로 살펴볼 것은 오른쪽 팔을 들고 있는 목욕하는 남자의 모습이다. 이 일련의 드로잉, 특히 XXIII 페이지의 드로잉은 인물의 조각적 특징에 대한 작가의 탐구를 보여준다. XXVIII 페이지에서 풍경은 배경으로 제시된다. 이들 습작들은 이후의 유화(V.259, 262, 271, 후자는 1875~77년 사이에 제작)와 긴밀히 연결된다. 양식적으로 볼 때 이 습작들은 앞서 언급했던 〈두 여인〉(p.XXX 뒷면)과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IV 페이지의 드로잉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들라크루아의 인물을 조심스럽고도 완벽한 필치로 모사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 흠뻑 빠져든 세잔은 들라크루아 작품의 특징을 따라가긴 했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붓질을 재해석하고 연필 선을 사용하는 간결한 방식으로 회화의 색채를 대체했다. 이는 세잔이 그전에는 결코 성취하지 못했던 것으로, 세부 묘사와 빛 그리고 그림자의 표현을 최소화하였다.

근육골격도

세잔은 인체 모양을 연습하기 위한 편리한 방법으로 여러 개의 소형 석고상을 활용했는데, 이는 드로잉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세잔이 골몰했던 가치가 비록 조형성에 있다 하더라도, 이들 습작을 통해 그가 3차원의 표면을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빛과 그림자의 유희에 몰두해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근육골격도L'Ecorche로 알려진 석고상을 따라 그린 아홉 점의 습작을 포함하고 있다. 이 조각상은 베를린 미술관에 보관중인 밀랍으로 만든 모델을 본따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에는 모델이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작품으로 회자되었지만, 지금은 브론즈로 만든 인체상의 복제품일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분실된 원본 조각상이 정말 미켈란젤로의 작품인지도 의문이다. 뒤러Durer는 일찍이 이 작품의 존재를 알고 에칭으로 제작하였다. 세잔은 인체 해부도를 연구하기 위해 조각상을 활용했지만, 예리한 빛과 빛으로 인해 조각상 표면에 생성되는 깊은 음영 효과에 끊임없이 몰두했다.
그의 시각은 모든 드로잉에서 달리 나타났는데, 어떨 때는 아주 미묘하게 또 어떨 때는 극적으로 변화하였다. 세잔은 모든 방향에서 돌아가며 인물을 관찰하였고, 가끔은 위에서 내려다보며 작업하기도 했다. 인물상의 위치와 빛에 변화를 줌으로써 익숙한 조각상의 모습을 왜곡하여 강조하였다. 이 습작에서 세잔은 그가 가진 데셍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XI 페이지의 드로잉의 선은 살짝 불확실하고 조각의 가능성이 제대로 발현되고 있지 않다. 이 시리즈는 XXIII 페이지 뒷면의 습작에서 최고 기량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미리 정교하게 계획한 듯, 주저함 없이 그림자 조각과 빛의 유희를 성숙한 수준으로 활용하여, 흰 종이 안에서 확실한 대비를 만들어 낸다. 세잔은 인물의 정확한 토포그래피topography를 생성해 내고 해석한다. 체계적 선들은 이후의 농익은 풍경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요소다.
이 습작들의 제작연도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른 습작들과의 시간적 연결관계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근육골격도 드로잉들은 그 시리즈 안에서는 확실히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엿보인다. 작품들이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그려진 것이라면, 책에 실린 작품 순서와 그리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 논리에 맞아 보인다. 그렇지만 근육골격도 드로잉은 XI 페이지와 XXXVII 페이지 뒷면 사이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따라서 각 스케치 사이에 일정한 시간차가 존재한다고 결론 지을 수 있다. 이는 드로잉의 스타일이 점점 발전해 나가고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안전한 추측은 근육골격도 시리즈가 목욕하는 사람들보다는 나중에, 에스타크L'Estaque(모두 1882년과 1885년 사이에 제작)보다는 먼저 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근육골격도 드로잉 시리즈는 목욕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그려진 1877년과 에스타크 습작이 가장 먼저 그려진 1882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이다.

인물화

이 스케치북을 연대기적 순서로 분류한다면 하나의 주제로 묶을 수 있는 또 다른 시리즈들을 정의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물화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드로잉이 VII 페이지 뒷면과 XXI, XXII, XXXVII, XXXIX 페이지에 실린 다섯 점의 자화상이다. 이 중에서 가장 빨리 그려진 것은 의심할 바 없이 XXII 페이지의 자화상이다. 나머지를 그려진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XXI, VII 뒷면, XXXVII, XXXIX 페이지순이다.
세잔은 아주 젊었을 적부터 나이가 들어 보이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서른대여섯 무렵부터 대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을 한 모습 때문에 제 나이보다 훨씬 노안으로 비쳤다. 또한 자신이 설정한 높은 수준에 스스로의 재능이 못 미치지 않을까 하는 끊임없는 염려와 자괴감, 실망, 자신의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외면, 주변의 조롱이 그의 감성적인 천성을 심하게 짓눌렀다. 고생한 흔적이 세잔만큼 얼굴에 표나게 드러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독하게 수줍어하는 성격은 자기주장이 필요한 예술 작업을 하는 데 엄청나게 큰 장애요인이었을 것이다. 세잔에게는 깊은 우울감과 절망적 감정이 너무 잦은 주기로 밀려오곤 했다. XXII 페이지에 나타난 세잔은 과연 몇 살 때의 모습일까? 사진에 찍힌 1875년은 좋은 단서다. 이 시기에 그려진 자화상도 똑같이 중요하다(V.286, 288, 290). 이 자화상들은 1875년과 1877년 사이에 그려졌다. 제작연도에 대한 추정은 드로잉의 양식을 보고 가능한데, 기법적으로 여전히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느낌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목욕하는 사람들의 후기작에서처럼 말이다. 이 시기의 세잔은 침울하고, 비판적이며, 소통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세잔의 자화상에 대한 이론적 연대 추정이 맞아떨어진다면, 두번째로 그려진 자화상은 XXI 페이지의 것이 된다. 이전의 자화상보다 살짝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 비록 노안이 좀더 두드러진 모습이긴 하지만, 세잔을 둘러싼 전체적 분위기는 그리 다르지 않다. 낙담한 심정이 가슴 아리게 표현되었고, 근심걱정으로 좀더 초췌해 보이는 모습이다. 드로잉 양식이 더욱 확고해짐에 따라, 풍경 드로잉에서도 명확하고 단순한 스타일에 근접해 간다. 이 습작의 제작연도는 1880년 즈음이라 추정된다.
자화상 시리즈의 세 번째 드로잉(p.VII 뒷면)에서, 세잔은 좀더 느긋하고, 언제나처럼 내향적이지만 덜 긴장되어 보이는 모습이다. 분위기도 더 느긋해졌고 예전만큼 우울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인다. 드로잉을 대하는 세잔의 태도가 느슨하면서도 분명하고, 아주 부드럽다. 앞에서 언급한 자화상들처럼 두상만 나타나 있다. 간결한 음영 처리는 에스타크 초기작을 떠올리게 하며, 근육골격도에서 보여준 둔탁한 처리보다 진일보했다. 이 작품은 1880년과 1882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세잔의 삶에서 그를 그토록 힘겹게 만든 모든 사건과 시련이 응축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XXXVII 페이지에 실린 자화상이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의기소침한 기운이 세잔의 모습 위로 드리워진 듯하다. 꿰뚫어보는 듯 분석적인 세잔의 눈빛 속에 암울한 무기력증이 실려 있다. 독설을 머금은 듯한 입매와 두 어깨 사이로 축 처진 머리. 세잔의 모습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강압적이고 가차없는 평가 그 자체다.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회화와 수채화, 드로잉을 통해 멋지게 부인해 내는 자기 평가. 세잔은 이 자화상을 그릴 당시 어떤 새로운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세잔을 망가뜨린 사건은 1886년, 그의 친구였던 에밀 졸라와의 절교였다. 게다가 같은 해 세잔은 아버지를 여의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고독감이 극심해진 새로운 시기의 세잔의 모습이다. 후기에 이르러 그나마 드로잉의 테크닉이 엄청나게 향상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XXXIX 페이지에서 아주 빠르고 힘이 넘치게, 그러나 미완성인 상태로 그린 작가의 두상 스케치를 볼 수 있다. 세잔은 피골이 상접한 듯 수척하고 늙어 보인다. 매부리코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1889년에 찍은 세잔의 사진은 끝이 뾰족하고 숱이 적은 턱수염 모습이다. 그 전의 사진이나 자화상에 나타나는 턱수염은 둥글고 덥수룩하였다. 이 자화상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앞에서 언급한 네 자화상은 이전 시기의 그의 둥근 턱수염을 잘 보여준다.
다양한 여인 초상화 가운데 두 점은 분명히 세잔의 부인인 오르탕스 피케Hortense Fiquet(1850~ ? )를 그린 것이다. XLIX 페이지 뒷면과 L 페이지 뒷면에 보인다. 두 드로잉에는 각각 '세잔 부인'(첫번째에는 'a Madame Cezanne', 두번째에는 'Madame Cezanne')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세잔의 아들이 적어 넣은 것이다. 영락없이 갓 글씨 쓰는 법을 배운 어린 아이의 서툰 손글씨다. 세잔의 아들인 폴은 1872년에 태어났다. 이 글씨가 여섯 살이나 일곱 살된 아이의 글씨라고 가정했을 때, 세잔 부인의 두 초상화는 아마도 1878년과 1879년 사이에 그려졌을 것이다. 드로잉의 양식을 통해 보건대 대략 이 시기로 보는 것이 맞아 떨어진다. 두 드로잉에 적힌 손글씨 덕에 그림 속의 인물이 정말 세잔 부인인지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의구심을 씻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는 세잔의 아버지를 그린 스케치가 총 세 점 있다(pp.XIX 페이지 뒷면, XXIX, XXXVIII 뒷면). 책에 실린 순서는 연대기적 순서와 거의 일치한다. 가장 마지막 스케치는 잠들어 있는 세잔 아버지의 모습이다.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양식적인 면에서 앞서의 드로잉들보다 더 성숙하다. 루이 오거스트 세잔Louis-Auguste Cezanne은 1798년에 마르세이유Marseille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생 쟈사리Saint-Zacharie에서 출생하여 1886년 사망하였다. 초상화는 아마도 세잔의 아버지가 죽기 몇 해 전에 그려졌을 것이다.
1872년에 태어난 세잔의 아들 폴을 묘사한 드로잉은 자그마치 스물아홉 점이나 된다. 이 가운데 스물세 점은 XXXIX 페이지 뒷면부터 XLIX 페이지 사이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 여섯 점은 그보다 앞쪽에 실려 있다. 나이 편차를 제법 부여해도 네 살에서 여덟 살 사이의 어린 아이의 모습이다. 아이의 외모로 판단해 보건대, 아마도 가장 먼저 그려진 초상화는 XXIV 페이지 뒷면, 가장 마지막 드로잉은 XXI 페이지일 것이다. 좀더 표현의 특징이 확실해진 XXI 페이지의 드로잉은 세잔의 자화상과 같은 페이지에 그려져 있다. 두 드로잉의 양식이 같은 것으로 보아, 둘은 동일한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자화상의 제작연도 추정치가 정확하다면(1880년 즈음), 폴이 여덟 살 무렵이다. 외아들 폴에 대한 세잔의 애정은 익히 알려져 있다. 아이의 모습을 애정어린 필치에 담아낸 것이 아들에 대한 세잔의 감정을 알려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끊임없이 아이를 관찰하면서, 폴의 얼굴을 다양한 각도에서 표현하였다. 잠든 모습도 있지만 주로 밝은 표정의 열린 시선으로 관찰자를 바라보는 모습니다. 아이의 모습은 민첩하고 건강해 보인다. 세잔은 아이에게 자신의 스케치북을 자유롭게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하였다. 그래서 스케치북에는 폴이 그린 아이 특유의 다양한 시도들이 가득하다. 이런 방식으로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을 것이다. 서로 마주 보는 페이지에 세잔의 풍경화와 그것을 따라 그린 폴의 드로잉이 나란히 놓여 있는 곳도 있다(pp.IV 뒷면, V). 아버지가 그린 드로잉 위에도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인물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기쁨에 자랑스럽게 자기 이름을 써넣기도 했다(p.XLVIII 뒷면).
세잔의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세잔이 세상을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작품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부친이 남긴 어마어마한 회화와 수채화, 드로잉 콜렉션을 물려받은 폴은 경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위대한 화가의 아들은 대개 자신만의 재능을 계발하는 일이 드물다. 폴은 파리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는데, 한동안 은행 사무직으로 일했다. 그러나 세잔의 작품가가 엄청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폴의 직업은 불필요하게 되었다. 그는 겸손하고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말년에 폴은 풍채 좋은, 전형적인 프랑스 부르주아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76세 때인 1948년에 사망했다.

풍경화

예술적으로, 자화상과 더불어 풍경화는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다른 주제에 비해 작품 수는 적지만 정점에 오른 세잔의 소묘 실력이 풍경화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드로잉에 전력투구하는 세잔의 모습을 살펴보았는데, 서툴렀던 초기 습작 시기를 지나 결국 세잔이 갖고 있던 머뭇거림이나 공포심이 하나둘씩 극복되어 간다. 풍경화는 간결하며 확신에 차 있다.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면서도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해석이 미묘하게 드러나 있다. 풍경화를 보면 모티프 자체의 아주 본질적인 것만을 표현하고 있어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선과 작은 음영의 조각들이 과학적으로 배열되어 있어 거기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제거하면 전체를 이루는 섬세한 구조들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만 같다. 풍경 드로잉에서 보이는 강조와 긴장들은 그 자체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시적 리듬감이 배어난다. 마치 무더운 한낮, 투명한 공기가 피어오르듯 남프랑스의 빛나는 햇살이 견고한 구조 속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듯하다. 주택의 한쪽 평평한 표면에서 눈부신 햇살이 반사하는 것 같다. 세잔은 흑백을 통해 색채를 드러내는 법을 배웠다. 색채의 변화를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이 드로잉들에 나타나 있다. 각각의 색채와 뉘앙스가 거기에 상응하는 음영의 깊이에 따라 표현되는 듯이 보인다. 앵그르Ingres 식의 명쾌함이 살아 있다. 거기에 하나 더, 다름아닌 색채를 드러내는 기법이 돋보인다.
총 열여섯 점의 풍경화 중에서 일곱 점이 에스타크를 여러 시각에서 그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두 점은 엑상프로방스 부근의 벨뷔에서 매제 막심 코닐Maxime Conil이 살던 집을 그린 것이다. 나머지 일곱 점은 정원, 집, 나무들을 보고 그린 드로잉이다. 이들 드로잉은 이후의 회화 작업이나 수채화와의 연결점이 불분명하지만, 부친의 소유지인 부팡 목장Le Jas de Bouffan 정원에서 그린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세잔의 누이 로제Rose와 결혼한 막심 코닐은 1885년경 벨뷔에 집을 샀다. 그 집은 그 당시까지 세잔이 가장 좋아하던 모티프 중의 하나가 되었다. 벤투리가 추정하기로는 1882년부터 1885년 사이로, 그 집을 그린 다수의 회화와 드로잉이 남아 있다. 이 스케치북의 드로잉 두 점(pp.X, XXXII 뒷면)이 제작된 시기와도 일치한다. 집의 한쪽 부분은 눈부신 햇살에 휩싸여 있다. 왼쪽의 좀더 가볍고 느슨한 필치로 그린 스케치는 나무 군락이다. 첫번째 드로잉에서 전체 구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집이다. 극도의 억제를 통해 세잔은 집의 양감을 생성해 내는 다양한 면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구현하고 있다. 사각형, 삼각형, 입방체, 피라미드와 같은 기본적인 요소들이 만나 집의 양감을 이룬다. 세잔은 이러한 기본 요소를 강조하고,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대략 한 세대 이후에 등장하는 큐비즘을 예고하는 듯하다. 세잔은 말년에 들어 아주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형태들이 만들어 내는 조형질서의 필요성을 의식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재평가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그의 드로잉에 좀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피카소는 같은 문제를 1909년에 접근하였다.
에스타크를 담은 일곱 점의 습작은 유명한 모티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세잔은 1870년부터 1871년까지 에스타크에 머물렀고, 1882년과 1885년 사이에도 자주 그곳을 방문했다. 우리가 소개하는 드로잉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나중 시기에 그려진 것들이다.
에스타크는 마르세이유 서부 만안灣岸의 최북단에 위치한 마을이다. 높은 지점에 오르면 마르세이유를 가운데 놓고 펼쳐지는 해안선을 볼 수 있다. 마르세이유 건너편에는 몇 개의 섬들이 있고, 마르세이유 남쪽으로 산맥 줄기가 이어진 곳에서 풍경이 멈춘다. 그것은 세잔에게 완벽한 모티프였고, 그는 자신의 작품에 최대한의 풍경을 담아냈다. 에스타크 주변은 바위 투성이로, 차분한 분위기의 항만과 언덕 너머의 수평선을 가로막는 도랑과 바위 비탈이 인상적인 경관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한다(pp.X 뒷면, XVII 뒷면).
에스타크의 모든 풍경은 서로 다른 몇 페이지를 통해 알 수 있는데(pp.V 뒷면, XVII 뒷면), 어느 정도 이 시리즈의 제작 순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양식적으로 두 드로잉은 아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XIII 페이지 뒷면과 XIV 페이지에서 세잔은 스케치북 양쪽 페이지를 가로지르는 큰 스케일의 풍경 속에 모티프를 담아내고 있다. 오른쪽 하단 구석의 부조화스러운 스케치는 〈교살범〉의 초기 습작으로, 앞에서 언급한 적 있지만 세잔의 탁월한 소묘 실력의 발전을 보여준다.
이 책에 실린 가장 위대한 드로잉의 하나는 구름다리 위에서 본 에스타크 마을(p.V 뒷면)이다. 벨뷔에서 그린 두 드로잉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거의 수학에 가까운 정확함과 생략의 미학, 스타카토와도 같은 리듬 속에서 퍼져나가는 자잘한 음영의 조각들을 발견하게 된다. 오른 쪽에 강조해서 그린 공장 굴뚝은 수평면을 좀더 새롭고 멀리 느껴지게 해줄 뿐만 아니라, 건물의 중앙을 통과하는 좀더 부드러운 형태 속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수직성을 구현하고 있다. 한 수직면이 다른 수직면으로 이어지고, 이들이 페이지의 표면과 평행을 이룸으로써, 관찰자는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구도 속으로 빨려들고 만다. 나무의 모습, 특히 오른쪽 나무의 모습이 희미해 겨우 분별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입방체 모양의 집과 대비되는 나무의 둥근 구조를 충분히 알아챌 수 있다.
이 책에는 그밖에도 총 여섯 점의 다른 풍경 드로잉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일부는 에스타크 드로잉보다 몇 해 앞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pp.V, VII, XXV). 정원과 나무를 그린 나머지 드로잉은 이들보다는 나중의 작품이지만, 1885년 이전의 작업으로 판단된다.

정물화

풍경에서 세부적인 요소를 제거하긴 했지만, 세잔은 주변에서 발견되는 가장 소소한 정물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였다. 다른 대상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의 집중력을 가지고 램프 받침이나 설탕 단지(p.XXVII 뒷면), 유리병(p.XXVII), 주전자(p.XXIII) 같은 기물의 형태를 관찰했다. 각각의 사물은 다루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지니고 있었기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이같은 습작을 통해 세잔은 사물들이 가진 본질적 형태를 기억에 담아둘 수 있었다.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세잔의 회화나 수채화의 일부 요소로 등장하는 사물들은 그 외양이나 표현력에서 특출한 힘을 발산한다.
스케치북 앞표지의 안쪽면과 I 페이지, 그리고 I 페이지 뒷면에 보이는 편지 초안은 세잔의 복잡한 성격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완벽하게 해독할 수는 없지만, 작가가 공식적인 결혼 발표문을 쓰기 위해 고심했음을 알 수 있다. 한 단락 한 단락 넘어가면서 수없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가운데 점차 확고한 형상으로 실체가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은 세잔이 얼마나 수줍은 성격이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스케치북에 담긴 드로잉을 살펴보면서 가능한 합리적인 근거를 통해 드로잉의 제작연도를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세잔이 거의 모든 작품에 날짜를 표시하지 않은 점을 명심해야 한다. 벤투리가 작성한 카탈로그에는 1,600점이 넘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오직 여섯 작품(V.22, 59, 101, 104, 138, 139)에만 날짜 표시가 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초기작으로 1864년부터 1873년 사이에 그려졌다. 이 스케치북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어디에도 날짜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세잔의 전기적 자료 및 명확히 특정할 수 있는 시기의 드로잉 양식을 분석하여, 제작연도가 불분명한 드로잉들의 얼거리를 짜맞추려 시도했다. 스케치북이 포괄하는 전반적 시기는 1869년이나 1870년(p.XLII 뒷면)부터 1885년(에스타크) 또는 후기 자화상(pp.XXXVII, XXXIX)이 그려졌다고 생각되는 1886년 무렵까지다. 따라서 이 책은 세잔의 삶 가운데 15년 조금 더 되는 시기를 담고 있는데, 이 시기는 세잔의 작품 발전과정에서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시기이다.
오늘날 세잔의 명성은 대부분 유화와 수채화에 집중되어 있다. 그에 비해 세잔의 드로잉은 덜 알려져 있고, 그의 전체 작품세계에서 그다지 중요한 부분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그의 유화 작품은 때로 왜곡과 단순화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이에 대해 표피적인 추론을 근거로 소묘 실력의 부족 탓으로 돌리곤 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오히려 세잔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형태로부터 의도적으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형태가 지니고 있는 복합적 요소들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의도된 결과에 대한 관심을 통해 왜곡과 단순화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세잔의 예리한 습작들은 모든 회화 작품의 근간이다. 회화가 완성체라면, 드로잉은 그것의 구조이며, 세잔이 지닌 근본적인 시각의 총체이다.

칼 쉬니윈드Carl O. Schniewind(미술사학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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