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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의 목소리 : 최문자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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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최문자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15년 08월 20일
  • 쪽수 : 140
  • ISBN : 9788954637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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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최문자 시인의 시집 『파의 목소리』. 총 63편의 시가 3부에 나뉘어 담긴 최문자 시인의 시편들은 익숙한 우리네 일상이 어찌하여 특별한 상상의 세계로 거듭날 수 있는지 그 과정을 비교적 쉬운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시편마다의 색채감은 읽는 우리로 하여금 눈앞에 그 시의 세계를 왕성한 소화력으로 재현해내게 하는데 이때 감탄의 지점이라 하면 컬러감을 발휘하는 소재들이 뿜어내는 특별한 자기만의 향에 있다. 도무지 감추려 해도 도저히 감춰지지가 않는 냄새의 힘. 대표적으로 ‘풀’이 그렇고 ‘열무’가 그렇고 ‘파’가 그러하다.

출판사 서평

“언제나 마지막 얼굴은 빈 트럭
이것이 가끔 나였구나”

문학동네시인선 071 최문자 시집 『파의 목소리』


최문자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파의 목소리』가 출간되었다. 앞선 시집들에서도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듯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 특유의 유연한 목소리와 자유자재로 뻗는 상상력의 자발성과 그럼에도 다소곳한 성품의 차분함이 읽는 내내 어떤 울컥함으로 내 안에 차고 고임을 느끼게 된다. 관록이라 부름직하지만 41년생, 우리 나이로 일흔다섯의 시인이 써나가는 시라 할 때 이토록 엄살 없이 아플 수 있을까, 이토록 긴긴 달굼 없이 뜨거울 수 있을까, 이토록 풍만하고 이토록 군살 없으며 이토록 처음 시를 쓸 때의 그 긴장의 허리뼈를 여전히 곧추세울 수 있을까.
최문자의 시는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놀랍게 읽힌다. 삶과 죽음 사이, 사랑과 이별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 하늘과 땅 사이…… 인간이 제아무리 설명한다 해도 실패로 끝나기 십상인 온갖 우주의 섭리를 여타의 다른 비유를 빌리지 않고 온전히 제 살아옴의 경험만으로 빗대 무척이나 솔직한 어조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 간만에 시다운 시, 시답다할 시, 시여야만 하는 시를 만난 기분이다. 그래 시는 이렇게 우리 얼굴을 간질이는 동물의 털처럼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짐승들이 자꾸자꾸 몸안에 들어와 입이 되고 발이 되”는 소리 아닌가. 그러다 만나는 게 가끔 온전한 내가 아니던가.

지도에 없는 마을에선 눈이 왔다
수증기가 이야기를 해주는 밤이 있다
무슨 말을 해도 글썽이다가 그냥 가는 연인도 있다
흰 눈에게도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바퀴 달린 사랑이 있다
한 번은 아찔하고 한 번은 출렁거리다 멈춰
며칠이나 지층에 머리 박고 죽으려 했던 자해의 흔적이 있다

(……)

그리운 것들이 기화되면 어디에 가 묻히나
마지막으로 육체끼리 얼어붙는 얼음 사랑이 있는 곳
눈의 지도에만 있다
―「눈의 지도」 부분

밑줄 긋는 시의 구절들마다 아프다. 시인은 그새 꽤 아팠던 모양이고, 그새 더 아픈 영영 이별의 순간도 맞닥뜨려봤던 듯싶고, 그럼에도 더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며 살다 간 ‘어머니’를 마치 처음 알게 된 여인처럼 와락 껴안으며 그녀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듯 묘한 생경스러움으로 묘한 친밀함으로 그녀, ‘어머니’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문자 시인에게 모성은 자식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몸에 들일 때도 동일한 완력으로 그 당겨 안음에 온몸을 다하고 있는데, 이때의 이 ‘정성’과 ‘곡진함’은 최문자 시인이 평생 써온 시에 들이는 그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다.
총 63편의 시 매 편마다 세상의 각진 것을 둥글게 오므려가며 안으로 더 안으로 무성해지는 눈물을 삼키고 선 여인. “눈물을 가리던 고독한 우산도 쓰지 않”고 그저 “잠시 잠깐 신에게 그곳 땅을 조금 빌려 사는 들짐승의 털이 날리는 유목민의 아내”처럼 “어떤 슬픔인지도 모르는 그걸 멈추려고 거기다 너무 많은 못을 박”은 여인. 그렇게 마지막 상상으로 “유목민의 아내”를 꿈꾸는 여인.

알고 있었니
어머니는 무릎에서 흘러내린 아이라는 거
내 불행한 페이지에 서서 죄 없이 벌벌 떠는 애인이라는 거
저만치 뒤따라오는 칭얼거리는 막내라는 거
앰뷸런스를 타고 나의 대륙을 떠나가던 탈옥수라는 거

내 몸 어디엔가 빈방에 밤새 서 있는 여자
지익 성냥불을 일으켜 촛불을 켜주고 싶은 사람

어머니가 구석에 가만히 서서
나를 꺼내 읽는다

자주 마음이 바뀌는 낯선 부분
읽을 수 없는 곳이 자꾸 생겨나자 몸밖으로 나간 어머니
알고 있었니
기도하는 손을 가진 내 안의 양 한 마리
―「어머니」 전문

최문자 시인의 시편들에 있어 더한 매력은 팽창하여 터지는 온갖 색채감에 있다. 더불어 오감을 자극하는 향에 있다. 희고 빨갛고 노랗고 연두에 초록에 회색과 황색과 검정이 눈과 사과와 꽃과 열무와 파와 재와 모래와 죽음을 대신하는데 이 색들이 뒤섞인 이번 시집은 그럼에도 얼룩덜룩한 것이 아니라 선명하고 고유한 제 빛깔로 깊이 잘 물든 손수건을 건네기에 충분하다. 이는 시인이 직관적으로 잽싸게 시로 끌고들어온 소재들 본연의 향과 컬러가 특별하기에 가능하다는 얘기도 된다. 도무지 감추려 해도 도저히 감춰지지가 않는 냄새의 힘. 대표적으로 ‘풀’이 그렇고 ‘열무’가 그렇고 ‘파’가 그러하다. 그러니까 식물의 힘. 여성이라는 힘. 어머니라는 힘. 그리고 사랑이라는 힘이 절대적이기에 다분히 소박하다 할 수 있는 소재들이 발휘하는 내공은 어떤 줄자로도 가늠이 불가능하다 하겠다.
초록으로 쭉 뻗은 파. 머리 깊이 땅에 묻고 물구나무서듯 반듯하게 몸을 추슬러온 듯하나 뽑으려 밭에 들어갈라치면 작심하고 그 매운 내를 풍겨버리는 파. 식물의 전형이나 동물의 본성처럼 질기다 할 파. 이 파 없이 어떤 요리이든 그 맛을 제대로 낼까 싶다만 너무 만만해서 너무 당연해서 너무 흔하디흔해서 안중에 두지 않을 가능성이 큰 파. 이 파의 목소리로 시를 쓰고 시집을 채운 최문자 시인은 여성을 꼭 빼닮은 이 연하고 무른 상상력과 재기발랄한 시어들로 온 군데 파밭에서 풍기는 온갖 시의 냄새들을 힘껏 피워냈다. 매운 여자, 쓰라린 여자, 그러나 그만큼 건강한 여자들의 냄새를!

뜨는 무지개만 여러 번 보았다
무지개가 죽는 건 본 적이 없다
무지개는 죽을 때 어디다 색깔을 버릴까
적어도 일곱 가지 이상의 감정을 죄다 지우고
회칠한 듯한 흰 손 들고
어디 가서 몰락할까
죽는 순간
하얀 홑이불 한 겹 뒤집어쓰고
뭉게뭉게 떠돌다
모네의 그림 상단에서 멈췄을까
쓰라린 파밭을 내려다보고 있다
―「파밭」 부분

풀의 증상이라고 합니다
울다가도
달빛이 좋아서
온몸에 풀이 나고
흐린 무릎엔 달빛이 맨발로 서 있습니다
푸른 느낌표처럼

풀의 흔적이 없는데
자고 깨면
풀의 신발이 신겨 있습니다
―「풀의 증상」 부분

목차

1부
트럭 같은 1
빠따고니아
화석
재깍재깍
트럭 같은 2
꽃구경
이름
유목성
지상에 없는 잠
빨강과 노랑 사이
비탈이라는 시간
청춘
얼룩말 감정
기념사진
트럭 같은 3
어머니
눈의 지도
이상한 번역
응답
파밭
구름 애인

2부
사과처럼
사과꽃
못 박힌 여자
그 여름
가방의 고요
사과보다 더 많아
박(拍)
밀알
별과 침
흰 개 검은 개
풀의 증상
열무의 세계
아주 잠깐
욱 하고 희망이
재료들
실종
탈피
무서운 봄
자화상
은하
식목일
흐느낌
동쪽
오렌지 성만찬

3부
옥수수 모퉁이를 돌다
달콤한 은유
뭐가 이리 붉은가
나를 놓고 가요
그때부터
토마토가 몰려온다
해바라기
수요일
연인은 하루살이처럼
2013년
마지막 달래기

레몬 달빛
오래된 이별
희미함의 세계
얼음 장면
길 위의 대화
모호한 지구
해설|식물성 고통요(苦痛謠)의 꽃, 만개
|나민애(문학평론가)

본문중에서

어머니를 꽉 쥐면
주르륵 눈물이 쏟아진다
주원료가 눈물이다

사랑을 꽉 쥐어짜면
쓰라리다
주원료가 꺼끌꺼끌한 이별이다

매일매일 적의를 품고 달려드는 삶을 쥐어짜면
비린내가 난다
주원료가 눈이 어두운 물고기다

CT로 가슴을 찍어보면
구멍 뚫린 흰 구름 벌판
주원료가 허공이다
―「재료들」 전문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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