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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박태준 : 대한민국의 위대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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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진정한 신뢰로 위대한 일을 창조한 롤모델이 우리 권력동네엔 없는가?

    이 책은 ‘광복 70년 대한민국’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정리한 실록으로 ‘진정한 신뢰, 완전한 신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박정희와 박태준’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박태준의 박정희 회고를 바탕으로 구성한 책으로 박정희의 공과(功過)를 살피고 따지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출판사 서평

    역사의 법정은 지도자를 늘 피고석에 앉힌다. 방청석의 작가는 최후 변론과 최후 판결이 나온 뒤에도 그의 내면과 인간적인 또 다른 가치를 놓치지 않으려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은 박정희의 공과(功過)를 살피고 따지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가 먼 험로(險路)를 걸어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발자취처럼 남겨둔, 흥미롭고 아름다운 ‘박정희와 박태준의 완전한 신뢰의 인간관계’를 사실 그대로 챙기고 있다.

    ‘진정한 신뢰, 완전한 신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주는 책이다.
    아득한 미래의 언젠가 박정희와 박태준은 신뢰에 대한 한국 고사(故事)의 ‘쌍박일심’ 같은 사자성어로 거듭날 것이다.


    광복 70년 대한민국, 오늘도 우리는 ‘믿음을 주는 정치동네, 신뢰를 주는 권력동네’에 몹시 목말라한다. 다만, 우리의 갈증을 적셔줄 감로수는 광복 70년의 한 지층에서 솟아나고 있다. ‘박정희와 박태준의 위대한 만남’이다. 우리는 중국 고사(故事)에서 유래한 사자성어에 익숙하지만 아득한 미래의 어느 날부터 박정희와 박태준이 신뢰에 대한 한국 고사의 단골로 불려나오며 ‘쌍박일심(雙朴一心)’ 같은 사자성어로 거듭날지 모른다.

    2004년 12월 [박태준] 평전을 저술해 “서구에서 나온 수작(秀作)의 평전에 견줄 만한 한국 평전이 나왔다”라는 서평을 받았던 작가가 ‘박태준의 박정희 회고’를 바탕으로 구성한 책이다.

    1997년 5월 포항에서 70세 박태준과 처음 만났던 작가 이대환은 그때부터 주인공이 세상을 떠난 2011년 12월까지 15년간 거의 매주 한두 차례씩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 박태준이 작가에게 “내가 만났던 박통 이야기도 참 많이 했는데, 이 선생은 정리해볼 수 있겠소?”라는, 청유도 부탁도 아닌 질문을 불쑥 던진 때는 2011년 9월이었고, 이에 작가는 “작가정신이 옹호할 가치에 관한 문제”라는 대답을 했으며, 이 책은 작가로서 그 약속의 실현이기도 하다.

    연재 기간에 해외동포를 비롯해 많은 독자들이 “자랑스럽고 감동적이다.
    자녀들에게 읽히고 싶다.”라는 감사와 찬사를 보내준 글이다.


    ‘광복 70년 대한민국의 영광’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하고 일류국가와 평화통일로 나아갈 실력을 갖춘 것이다. 물론, 오늘날 영광은 고난의 시대를 감당하고 극복해낸 ‘우리 모두’가 함께 쟁취한 창조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근대화시대’의 우리 권력동네에서 일어난 온갖 비사들 중에 우리 국민과 우리 역사가 언제 어디서나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내세워도 좋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가 바로 ‘박정희와 박태준의 위대한 만남’일 것이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13개월간 주 2회 내지 1회 간격으로 프리미엄조선에 관련사진들과 함께 연재하는 동안 해외동포를 비롯해 많은 독자들이 작가에게 “자랑스럽고 감동적이다. 노고에 감사하다. 자녀들에게 읽히고 싶다.”라는 성원을 보내주었다.

    왜 위대한 만남인가?

    신뢰에 목말라하는 시대, 그 갈증을 풀어주는 감로수!
    광복 70년 대한민국의 위대한 만남, 박정희와 박태준


    박정희와 박태준의 인연 앞에 ‘위대한’이라는 말을 시들지 않을 꽃다발처럼 놓는 뜻은 단순히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에 기여한 크기에 대한 기억의 예의가 아니다. 포스코를 개인이나 가문의 기업이 아니라 가장 훌륭한 민족기업, 국민기업으로 육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열매들의 단 하나도 사적 소유로 만들지 않았다는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고결성에 대한 경의(敬意)의 예의이다.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비즈니스스쿨은 포스코의 성공 요인으로 “박정희의 강력한 의지와 박태준의 탁월한 리더십”을 정확히 집어냈다. 그러나 그 ‘강력한 의지’와 그 ‘탁월한 리더십’이 어떤 관계였는가? 대체 어떤 관계였기에 그것이 성공의 최강 동력으로 작용했는가? 이 질문이 더욱 중요하다. 바로 ‘독특한 인간관계’였다. ‘독특한 인간관계’란 ‘완전한 신뢰의 인간관계’를 뜻한다. 이것은 박정희와 박태준의 만남을 20세기 대한민국 산업화시대의 ‘위대한 만남’으로 나아가게 하는 레일이었다.

    박정희의 혜안이 없었다면 포스코의 박태준은 없었고, 박정희와 박태준의 완전한 신뢰관계가 없었거나 박태준이 없었다면 제철혁명의 대하드라마는 대성취를 거둘 수 없었다. 무사심(無私心)과 순명(殉命)의 애국주의로 무장한 박태준의 일생에서 ‘박정희와의 약속’은 꼿꼿한 척추였다.

    포스코의 주식을 공로주로든 뭐로든 단 한 주도 받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한 박태준이 만약 박정희 서거 후에라도 ‘딴생각’을 품었더라면 두 인물의 만남은 ‘위대한 만남’의 종착역에 도달할 수 없었다. 떠난 이의 뜻과 남은 이의 뜻이 끝까지 일치한 점, 이는 ‘위대한 만남’의 화룡점정이다.

    아마도 박정희의 혼령과 박태준의 혼령은 밤에 짝을 지어 마실 나가듯이 가끔씩 동작동 현충원을 빠져 나와서 ‘한강의 기적’의 추억을 더듬어볼 수 있는 어느 호젓한 자리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곤 할 것이다. 한 번쯤은 이런 소박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요새 막걸리는 우리 때하고는 맛이 많이 다른 거 같은데.”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는 막걸리도 아껴야 했으니 물을 엄청 타지 않았습니까? 요새는 물도 안 타는 데다 그렇게 금하셨던 쌀로 막걸리를 만든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이러고는 둘이서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은, 그러나 밤하늘에 너울 같은 파문을 일으킬 만하게 한바탕 호방한 웃음을 날렸을 것이다.

    목차

    작가의 말

    프롤로그
    박정희와 박태준, 왜 위대한 만남인가?

    제1장 동행
    1968년 만우절에 ‘강철 맹세’가 있었네
    박정희가 박태준의 영혼을 건드린 첫 만남
    ‘진짜 고춧가루 포대’에 담긴 박태준의 ‘매운 청렴’을 박정희가 꿰뚫어보다
    박정희가 술로써 박태준을 시험하다
    꽃 피는 동백섬에는 봄이 왔건만
    태풍의 눈과 같은 편지, <낙화유수>의 그 밤에 지다
    박정희와의 동행에 운명을 건 박태준
    박정희의 ‘박태준 귀국 환영연’, 그리고 새벽이 오다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털어놓은 속마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면 처자(妻子)를 부탁하려 했어.”

    제2장 정치는 싫다니 경제로
    박정희, 박태준을 경제 방면으로 보내다
    박태준이 속아 박정희도 속다
    박정희의 첫 해외 정상회담인 박정희-이케다 회담에는 박태준의 손이 깊었다
    30만 톤짜리 울산종합제철 계획을 차관 실패로 무산시킨 박정희의 한
    녹색혁명 출발선상에 박정희와 박태준 그리고 이정환이 있었다
    포항지역 사방공사와 ‘사방기념공원’에도 박정희와 박태준의 사연이 있다
    박정희가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하지만 박태준은 “불합리의 종합판 같다”며 거부한다
    상공장관을 맡으라는 박정희에게 박태준은 “군정 연장으로 비친다”며 미국 유학을 고집한다
    1964년 설날, 박정희는 박태준을 일본 특사로 파견하며 “집 장만하라”는 하사금을 건넨다
    일본 정재계의 막후 실세인 양명학 대가 야스오카, 박정희가 보낸 ‘박태준의 비범성’을 알아보다
    대한중석을 맡은 박태준은 박정희에게 맨 먼저 “정부, 여당의 간섭 배제”를 건의한다
    박정희는 대한중석을 혁신하는 ‘박태준의 경영’을 주목한다
    박정희가 종합제철을 구상할 때 한국에는 ‘대형 고로’ 기술자가 한 명도 없었다

    제3장 “나는 고속도로, 임자는 종합제철이야!”
    1965년 6월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말한다-“나는 고속도로, 임자는 종합제철이야!”
    포항제철 성공에는 분단 비극의 희생자 김철우 박사도 있었네
    롯데 신격호, 이후락의 부탁에 종합제철 준비하다 박태준을 만나고는
    박정희와 박태준이 합작한 한국 최초의 세계 최고는 챔프 김기수였다
    한국정부가 염원한 국제차관단(KISA)을 왜 박태준은 불신했는가?
    종합제철은 영일만 어링불로, 박정희와 박태준의 ‘종합제철’ 포항 보내기
    박정희는 박태준을 종합제철 책임자로 공표하고, IBRD는 한국에 모욕적인 조건을 내걸고
    박정희가 일단 참석하라고 권유해도 박태준은 종합제철 기공식에 불참한다
    ‘KISA와 기본협정’ 체결 후 박정희가 박태준을 종합제철 책임자로 공식 임명한다
    박태준이 박정희와 세 차례 토의해서 ‘주식회사 종합제철’로 출발하다

    제4장 절명의 위기를 함께 넘어서다
    포항제철이 탄생했으나 KISA는 수상쩍은 계획서를 내놓는다
    KISA에 수정안을 제기한 박태준은 영일만에 ‘롬멜하우스’를 짓는다
    세계 최대 고아원에 세우는 세계 최고 제철소
    은행 빚으로 사원주택 부지를 마련한 박태준, 국회가 시끄러워도 묵묵한 박정희
    처음 영일만을 찾아온 박정희가 모래벌판을 바라보며 쓸쓸히 탄식한 까닭은?
    KISA가 피츠버그까지 찾아온 박태준에게 “No” 사인을 보낸 밤에
    하와이에서 환호한 박태준이 도쿄로 날아가다
    박태준의 ‘하와이 구상’에 대한 반박이나 트집은 틀린 것이다
    마침내 박정희가 종합제철을 위한 최후 비장의 카드를 빼들다
    박정희가 박태준을 위해 중앙정보부장에게 꾸짖은 말, “그 친구 원래 그래. 건드리지 마!”
    박태준의 열정이 통산상 오히라의 실눈을 뜨게 만들다
    “포철 자금을 합의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박정희가 김학렬에게 엄명했으니
    박정희의 종합제철 의지와 ‘일응’을 빼기 위한 박태준의 마라톤
    황무지에 내리는 가을비의 섭리가 포철 착공을 앞당겨준다
    마침내 박태준이 ‘진정한 착공’ 준비에 돌입하다

    제5장 ‘우향우’와 ‘종이마패’의 기적
    박태준의 “우향우”를 박정희는 ‘종이마패’로 옹호한다
    박태준이 중후판공장부터 짓자 박정희는 정주영에게 조선소를 강권한다
    박정희가 “마음대로 써라”며 돌려준 보험 리베이트를 박태준은 교육보국의 밀알로 심는다
    정치자금 요구를 거절하면서 “중통령”이라 불러 달라는 박태준
    일본과 동등한 조건으로 원료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열연비상을 걸다
    “현장의 나는 전쟁터 소대장”이라 외치는 박태준의 철저한 현장제일주의
    첫 출선을 준비하며 속을 태우는 박태준과 포철 사내들
    애정 어린 음성으로 세 차례나 ‘박태준’을 호명한 박정희
    박태준에게 ‘기적’이란 말을 선물하는 박정희
    박태준에게 물 먹은 아이젠버그의 첫 음모
    박태준에게 내리 세 번 패퇴한 아이젠버그가 다시 꾸민 음모
    가택수색을 당한 박태준이 박정희에게 사표를 내는데
    제강사고를 극복한 박태준에게 이병철이 찾아오다
    부실공사를 폭파한 박태준이 ‘가난뱅이국가’ 딱지도 날려 버리다
    정주영의 현대와 박태준의 포철이 벌인 제2제철소 쟁탈전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다
    “박태준을 중국으로 수입하면 되겠다”는 덩샤오핑
    박태준의 외국손님들을 위해 박정희는 숙소자리까지 피해준다
    ‘김대중 납치사건’을 일으킨 이후락에게 재떨이를 날렸다고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털어놓은 밤
    박태준의 가슴에 박힌 박정희의 마지막 말, “나는 여기까지가 아닌가 하는 느낌”
    홀연 박정희가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한 박태준은 두문불출 후 약속실현을 다짐한다

    제6장 화룡점정
    박정희와의 약속을 실현한 박태준은 스스로 정계와 포스코 회장직을 떠난다
    완전한 신뢰의 아름다운 재회 - 박태준이 박정희의 영전에 올리는 보고
    박태준의 국회의원선거 지원 유세에서 ‘침묵의 열변’을 토한 박지만
    박태준이 김대중을 박정희 생가로 안내하다
    베트남에서 박정희의 빚도 갚고 싶었던 박태준
    식민지 배상금, 박정희, 순직 동지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여든네 살의 박태준
    ‘박정희 동상’ 제막식에 못 가게 되는 박태준은…
    북한에 제철소를 짓고 싶어 했던 박태준의 소망
    박정희와 박태준의 혼령이 한강을 내려다보며 막걸리를 마실 때

    부록 박태준이 생의 황혼에 남긴 말들

    한일국교정상화 40년과 동북아의 미래
    -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기조연설

    젊은 세대의 시대적 좌표와 엘리트의 길
    - 하노이국립대학교 특별강연

    본문중에서

    광복 70년은 분단 70년이다. 분단은 곧 건국의 미완을 뜻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미완의 건국시대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건국 완성의 대장정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가를 가늠하기 어려운 광복 70년, 그 시련과 영광을 성찰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가장 한심하게 여기는 것은 정치동네, 권력동네의 후진성이다. 민주화 투쟁시대에 김지하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구했는데, 오늘도 우리는 ‘믿음을 주는 정치동네, 신뢰를 주는 권력동네’에 몹시 목말라한다. 다만, 우리의 갈증을 적셔줄 감로수는 광복 70년의 한 지층에서 솟아나고 있다. 이 책은 마르지 않을 그 감로수를 받아놓은 것이다.
    (/ p.13)

    그때(4·19 직후) 상황을 통찰하고 통탄한 장준하가 박정희처럼 5·16을 ‘혁명’이라 불렀다 해도 5·16 그 자체는 쿠데타였다. 그러나 5·16의 장도는 그 귀결이 혁명에 이르렀다고 평가하는 견해도 굵직하게 형성돼 있다. 5·16은 쿠데타로 출범하여 혁명에 귀결했다고 평가할 경우, ‘귀결이 혁명’이라는 그 속에 박정희의 공(명)이 시대적 실체로 존재한다. 그 공(명)의 뒷면이 과(암)다. 그 과(암)는 ‘독재’라 불린다. 여기서 나는 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찍힌 엄중한 질문을 다시 받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독재 없는 혁명이 있을까? 혁명 없는 독재는 있지만, 독재 없는 혁명이 있을 수 있을까? 노동해방의 공산주의혁명에도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있어야 한다지 않는가? 이 역사의 한계를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맨 처음 돌파할 것인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현재 ‘혁명’이라는 평가가 굵직하게 형성된 박정희의 그 공(명)은 산업, 의식, 안보(국방), 녹색 등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산업혁명은 오천 년 절대빈곤의 농경사회를 산업사회로 확실히 탈바꿈시켰다는 것이다.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했다. 그 기적의 저변에는 ‘공돌이’ ‘공순이’라 불린, 광복 70년엔 어느덧 예순 살을 넘어 머리칼이 허옇게 센 노령세대의 피땀이 쌓여 있었다. 의식혁명은 산업화의 정신적 동력이었다. 노예제도와 사농공상과 소중화(小中華) 맹신, 그리고 식민지, 전쟁, 절대빈곤, 부정부패 등이 대대로 조장해온 패배주의, 사대주의, 파벌주의, 그것들이 민족적 정조(情調)처럼 세뇌하고 조장한 체념과 한탄……. 그 어두운 의식구조에다 “우리도 하면 된다” “세계로 나아가자”라는 도전의식과 진취기상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안보혁명은 최초로 자주국방을 기획하고 실천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후 류성룡이 피눈물로 쓴 [징비록]에서 그토록 강조한 ‘자강(自彊)의 국가’ 가 그로부터 350년이나 더 지난 뒤에야 국가의 진정한 비전으로 추진되었다. 자주국방, 부국강병 없는 근대 독립국가는 없다. 녹색혁명은 헐벗은 강토를 푸르게 가꾸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까지 푸르게 물들여주는 푸른 산들은 박정희 통치시대가 물려준 ‘푸른 혁명’의 푸른 증거이다. 박태준의 공적은 박정희의 혁명이라 불리는 그 공(명) 속에 소중한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산업혁명에는 종합제철의 대성공이 있다. 의식혁명에는 철저히 추구한 세계일류주의가 있다. 안보혁명에는 세계 최고 제철소뿐 아니라 포항공과대학교,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포항방사광 가속기연구소의 바탕에 흐르는 “철강과 과학기술은 국부(國富)와 국방의 원천”이라는 확고한 신념과 실천이 있다. 1962년 1월 ‘무연탄을 쓰면 자원도 되고 산림녹화도 된다’는 이정환 국립광물지질연구소 소장의 캐치프레이즈는 녹색혁명의 나침반과 같았다. 석탄개발과 십구공탄 보급으로 이어지는 그 앞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안내해간 이가 상공담당 최고위원 박태준이었다. 박정희와 박태준은 그것을 국토녹화의 전략적 정책으로 지목했다.
    (/ pp.22~23)

    탄도학 첫 시간. 강의실에 들어서는 박정희 교관을 쳐다본 순간, 박태준은 싸늘한 새벽 공기가 앞문으로 불어 닥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신선한 긴장감으로 돋아났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빳빳이 고쳐 앉았다. 깐깐하게 생긴 교관의 작은 체구는 온통 강한 의지로 똘똘 뭉쳐진 것 같았다. 강의실 공기가 삽시간에 팽팽해졌다. 목소리도 카랑카랑했다.
    (/ p.41)

    9월 4일 박태준은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실장에서 재정경제위원회 상공담당 최고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드디어 박태준이 국가경제의 일선에 나서게 되는 그 인사는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중대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박태준의 능력을 ‘정치’ 방면으로 활용하지 않고 5·16의 최고 명분 이자 가치라 할 ‘경제’ 방면으로 활용하겠다는 박정희의 포석, 이것은 5·16을 통해 어느 누구보다 크게 돋보인 김종필을 박태준과 나란히 세울 때 확연히 대비된다. 박태준의 선택을 받아들인 박정희의 용인술이 박태준을 경제 방면으로 배치한 그 출발점은 ‘박정희와 박태준의 만남’을 역사의 어두운 그늘에 들지 않게 만든 첫걸음이기도 했다.
    (/ p.84)

    ‘일본에서 차관은 무슨 차관…….’
    박태준은 새삼 일본 차관을 한쪽으로 밀어내며 아쉬워했다. 처음부터 일본하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한 조각의 후회 같은 감상도 스쳐갔다. 그런 다음이었다. ‘일본 차관’이란 단어가 사라진 자리에 전광석화처럼 ‘대일청구권자금’이란 단어가 나타났다. 순간, 그는 전율했다.
    “그래, 바로 그거다!”
    박태준은 벌떡 일어섰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대일청구권자금의 종합제철 건설비 전용. 하와이 와이키키의 뜨거운 해변에서 박태준이 구원의 밧줄처럼 거머쥔 그 아이디어를 뒷날에 포스코 사람들은 ‘하와이 구상’이라 명명한다. 그것은 한국 산업화시대 중대한 이정표의 하나로 삼아도 좋다. 대일청구권자금 일부를 밑천으로 삼지 않았다면 걸음마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말았을 포스코가 결과적으로 한국 산업화의 견인차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 pp.245~246)

    그런데 포스코가 ‘하와이 구상의 실현’이라 부르는, 박정희가 박태준의 대일청구권자금 전용 아이디어를 재가하고 강력히 밀고나간 ‘사실’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며 반박하거나 부정하는 시각과 회고가 있다. 이에 대한 반박과 트집은 잘못된 것이다. 포스코의 ‘하와이 구상’이 조작이라는 주장은 무엇보다도 1969년 1월 31일에 박태준이 미국으로 출국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근거가 붕괴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그 위에 세운 논리들도 다 붕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논리세계의 준엄한 법칙이다. 1969년 1월 31일 폭설에 덮인 김포공항에서 미국으로 출발했다는 박태준의 회고를 정확히 뒷받침해주는 결정적인 자료가 존재한다. 그것은 1969년 2월 1일자 '매일경제신문'의 제2면에 자리 잡은 [공항왕래]라는 조그만 알림이다. 주요 인사의 출입국 동정을 일러주는 바로 거기에 ‘박태준이 1월 31일 14시 45분발 미국행 KAL편’으로 출국한 사실이 나와 있다. 출국 목적이나 정부의 동행자도 박태준의 회고와 정확히 일치한다. 출국 목적이 ‘KISA와 공장건설에 따른 확정재무계획 협의차 2주간 일정으로 미국에 간다’고 되어 있으며, 같은 비행기에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 정문도가 박태준과 같은 용무(외자도입 협의차)로 탑승한 사실도 알려주고 있다.
    (/ pp.251~253)

    “이 고로의 불꽃이 국가재건, 민족중흥의 불꽃이야.”
    “이 불꽃을 끝까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그래. 우리는 이 불꽃을 짊어져야 해.”
    우리는 이 불꽃을 짊어져야 돼. 박정희가 되뇐 말을 박태준은 첫사랑의 밀어(蜜語)처럼 남몰래 가슴에 아로새겼다.
    (/ p.334)

    박정희의 박태준에 대한 완전한 신뢰, 박태준의 논리에 대한 박정희의 냉철한 수긍이 하나로 뭉쳐져서 현대 경영진과 대통령 비서진의 동맹을 격파한 순간이었다. 또한 그 결정에는 박정희가 박태준의 ‘오랜 빛나는 노고에 대한 인간적인 보답’으로서 그에게 안기는 선물의 의미도 담겼다. 물론 선물을 받는 쪽은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제2제철소 실수요자라는, 포항제철소와 같은 제철소를 하나 더 세우라는 엄청나게 무거운 박정희의 선물을 받은 박태준. 그러나 그는 까맣게 몰랐다. 그것이 박정희의 ‘마지막 선물’이 될 줄이야…….
    (/ p.381)

    박정희는 상공부 장관이 맡겨둔 서류에 결재를 했다. ‘제2제철소’라고 쓴 부분을 펜으로 지우고 친필로 ‘포철 제2공장’이라 쓰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제2제철이 아냐. 포철 제2공장이야.” 그 말은 친필 글씨에 단단히 입히는 보호막 같았다. 이 장면을 직접 지켜보면서 가슴이 찡해오는 무엇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최각규는 그때로부터 어언 36년 가까이 흘러간 2014년 2월 13일, '포스코신문'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청와대에 두고 온 서류(제2제철소 실수요자 선정 관련)에 결재가 난 것은 꽤 시간이 지나서였다는데, 대통령께서 서류를 다시 읽어보시더니 ‘제2제철’이라고 쓴 부분을 펜으로 지우고 대신 친필로 ‘포철 제2공장’이라고 쓰셨어요. 그러면서 ‘제2제철 아냐. 포철 제2공장이야.’ 하면서 아예 못을 박듯이 말씀하셨어요. 박정희 대통령의 포철에 대한 애착과 박태준 사장에 대한 강한 신뢰가 물씬 느껴져 왔어요.”
    (/ p.383)

    포철 정문을 나와서 경주 보문단지의 대통령 숙소로 향하는 대통령 승용차에는 상공부 장관이 동승했다. 이때 나눈 박정희와의 대화를 최각규는 길이 잊지 못한다. 준공식을 마친 뒤 대통령께서 포철의 영빈관에서 주무시지 않고 경주의 호텔로 가셨어요. 그때 내가 대통령 차에 동승했는데, 가다 보니 박태준 사장이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박 사장이 안 따라옵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내가 오지 말라고 했어. 외국 손님들도 많고 한데 그 일이나 잘하라고 했어. 사실은 그래서 내가 그 자리를 피해준 거야. 내가 거기 있어 봐. 내게 신경 쓸 일이 좀 많겠어” 이러시는 거야. 긴 말 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없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막말로 다른 국영기업체 사장이라면 대통령이 오지 말란다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안 오겠어요?
    ( pp.388~389)

    박태준은 묵묵히 있었다.
    “재차 만났을 때도 카터는 양국간 가장 중요한 문제가 인권개선 조치라고 하더군. 그때는 나도 예의를 차렸어. 현재로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확언할 수 없으나 대통령 각하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해줬던 거야……. 왠지 모르겠어. 나는 여기까지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
    나는 여기까지가 아닌가 하는 느낌, 이것이 1979년 한여름 밤에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털어놓은 자기 운명에 대한 예감 같은 것이었다. 박정희와 마지막 만남, 마지막 대작, 마지막 대화에 대한 노인(박태준)의 회고는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각하가 그렇게 돌아가신 뒤부터 현재까지도 내 가슴속에는 ‘나는 여기 까지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라는 그때 그 말씀이 가시처럼 박혀 있소.”
    (/ p.403)

    박정희의 실존이 없는 지상에는 두고두고 그의 공과(功過)에 대한 시비가 격렬하고도 지루하게 이어지게 되지만, 박정희의 갑작스런 공백이 발생한 시간대에 오직 포스코만으로 한정해서 들여다볼 경우, 그의 죽음은 포스코로 불어오는 온갖 정치적 외풍을 막아주던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느닷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박태준은 오싹했다.
    ‘그 누가, 그 무엇이 앞으로 회사의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줄 것인가’
    공든 탑이 무너지랴. 이것은 속담이어도 틀린 말일 수 있다. 공든 탑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고 힘차게 주장하는 말인데, 실상은 탑을 쌓아 올리기야 어려워도 무너뜨리기야 얼마나 쉬우랴.
    (/ p.408)

    저 1961년 5월, 거사 명단에 박태준의 이름을 빼놓은 박정희가 거사에 실패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면 자신의 가족을 부탁하려 했던 박태준. 쿠데타라 불리는 그 거사를 감행하고 십여 년쯤 지난 뒤부터는 민주화 세력과 본격적으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가운데 고달픈 나날의 기나긴 근대화를 혁명적으로 이끌었으나 용퇴 기회를 놓치고 열여덟 해 지도자의 삶을 비극으로 마친 박정희. 고인의 오래된 뜻을 고이 받들어 유택 앞에서 새삼 언약한 대로 방황하는 황야의 박지만을 경영인으로 이끌어준 박태준. 그는 ‘박정희와 박태준’의 독특한 인간관계, 완전한 신뢰의, 그 자신의 고백을 그대로 옮기자면 “절대적인 신뢰의” 인간관계를 1992년 개천절 국립묘지 한 귀퉁이에서 마침내 비장한 아름다움으로 매듭지었다.
    (/ p.418)

    1997년 11월 하순, 대선 형편이나 경제 형편이나 긴박하게 돌아가는 그 즈음의 어느 아침, 박태준은 김대중 대선 캠프의 젊은 국회의원 김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단하고도 분명한 용건이었다. 12월 5일에 김대중 후보와 함께 구미시 박정희 대통령 생가를 방문하는 일정을 잡아서 재가를 받으라는 것. 박태준은 김대중에게 미리 말해둔 대로 이제는 박정희와 김대중이 화해 할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표를 얻어오는 데야 얼마나 도움이 되랴마는 김대중의 대선에 ‘철저한 박정희의 사람’이라고 알려진 박태준이 두 팔을 걷고 나섰으니 더 미룰 수 없는 중대사라고, 그는 생각했다. 과거의 정적(政敵)이었던 박정희와 김대중, 그러나 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남으로써 미처 인간적으로 만나볼 기회도 얻지 못했던 두 사람. 이제는 살아있는 사람이 먼저 화해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산업화세력과 민 주화세력의 화해, 영남과 호남의 화합.’ 지금 박태준이 외로이 외치고 있는, 아직은 메아리가 미미한 그 화해와 화합의 길을 닦는 일에 김대중이 앞장서야 하고 박태준은 열심히 도와야 한다고, 그는 확신했다. 12월 5일, 삼십 년 전 박정희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선포한 그날, 김대중은 박태준의 안내를 받아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생가를 찾아갔다. 김대중의 대통령 재임 중에 정부가 편성하고 승인하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예산의 단초가 되기도 한 그 자리에는 박정희의 외아들도 함께했다. 박지만의 동행, 이는 박태준이 설득한 결과였다. 산 사람이 찾아와서 죽은 사람과 오래 전에 맺었던 나쁜 매듭을 푼다고 알려진 자리에는 지역민 500여 명이 모여들었다. 김대중이 무슨 말을 하려나. 그들은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화해의 마당에 들어선 대선 후보는 화해의 말들을 간추리고 있었다. 그가 박태준에게 먼저 밝혔고, 듣는 이가 고개를 끄덕인 내용이었다. 김대중 이 지역민들 앞에서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박정희의 혼백을 향해, 산업화 와 민주화가 마치 동일한 역사의 무대에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어처구니없이 상충했던 유신체제의 시대를 향해,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여야 했다.
    “고인이 경제에 7할을 바치고 인권에 3할을 쓴 분이었다면, 고인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시절의 나는 인권에 7할을 바치고 경제에 3할을 쓴 사람이었습니다. 고인과 나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김대중은 에둘러 말했지만, 속이 시원하도록 직방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박정희 통치 18년에 대해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평가하고 정리하는 것에 가까웠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날의 화해 행사가 대통령선거운동 기간에 이뤄진 탓인지 보수 성향의 주요 일간지들이 거의 다루지 않아 결과적으로 국민의 가슴에 널리 전파되지 못한 것이었다.(광복 70주년에 그 뉴스를 재생하면 더욱 반갑고 귀중한 ‘역사적 뉴스’가 되지 않을까
    (/ pp.423~424)

    목숨 건 대수술의 결심을 세운 박태준은 거실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자신보다 훨씬 젊은 박정희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4년여 해외 유랑 시절에도 늘 방안을 지켜주었던 사람, 도쿄 12평 아파트에서 맞은 새해 첫날에는 양복을 차려입은 그의 세배를 말없이 받아준 사람. 물끄러미 박정희를 쳐다보는 박태준은 별안간 귓전을 맴도는 친근한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임자, 힘내야지. 됐어. 그만하면 많이 했어.”
    박태준의 두 눈이 돋보기 유리알 뒤에서 촉촉이 젖고 있었다.
    (/ pp.426~427)

    저자소개

    이대환(Lee Daehwa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58
    출생지 경북 포항
    출간도서 20종
    판매수 1,177권

    1958년 포항 출생. 1980년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주관 장편소설 현상 공모 당선, 1989년 《현대문학》 지령 400호 기념 장편소설 공모 당선. 소설집 『조그만 깃발 하나』 『생선창자 속으로 들어간 詩』, 장편소설 『새벽, 동틀 녘』 『겨울의 집』 『붉은 고래』(전 3권) 『큰돈과 콘돔』, 바이링궐 소설 『슬로우 불릿 Slow Bullet』, 에세이 『하얀 석탄』, 평전 『박태준 평전』 등 저서 다수.

    언론사 추천 및 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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