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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히로시마 : 1945년 8월 6일 원폭 투하 후,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6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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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1945년 8월 6일, 인류 최초의 핵 실험장 히로시마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바로 그 순간 공장의 인사과 직원 사사키 양은 옆자리의 직원에게 말을 걸려던 참이었다. 같은 시각, 의사 후지이는 자신의 병원에서 느긋하게 신문을 읽을 참이었다. 재단사의 미망인 나카무라 부인은 부엌 창으로 이웃집 남자가 자기 집을 허무는 걸 지켜보고 있었으며, 예수회 소속의 독일인 사제인 클라인조르게 신부는 속옷 바람으로 간이침대에 누워 잡지를 읽고 있었다. 적십자병원의 젊은 외과의사 사사키는 병원 복도를 따라 걷고 있었고, 히로시마 감리교회 목사인 다니모토 씨는 히로시마 서쪽 교외지역에 위치한 어느 부잣집 문간에서 짐을 풀고 있었다.
    바로 이때 순식간에 7만 8000명이 사망했으며 그 이상의 부상자가 나왔다. 원폭 투하 1년 뒤, 저널리스트 존 허시는 불바다가 된 도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중 여섯 명을 만나 그들의 증언을 기록한다. 그리고 원폭 투하 40년 후 1985년에 다시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원자폭탄으로 뒤바뀐 그들의 삶을 추적하였다.

    출판사 서평

    뉴욕대학교 언론학부 선정 '20세기 미국 언론보도 100선' 중 1위
    [타임] 선정 '100대 논픽션 도서'


    비행기에서 뿌린 휘발유가 아닐까, 아니면 가연성 가스, 혹은 커다란 소이탄 다발?
    그것도 아니면 낙하산병들의 소행일까…… 삶을 송두리째 바꾼 운명의 그날

    이 책에 나오는 여섯 명은 군인도 정치가도 아니었다. 그 전까지 단 한 번도 폭격을 받지 않았던 운이 좋은 도시, 히로시마에서 살아가던 사람이었을 뿐이다. 공장의 여성 노동자, 목사, 독일인 신부, 아이들을 홀로 키우는 여성, 의사들이었다. 그들은 영웅도 아니고 자각한 시민도 아니다. 그저 핵폭탄이 남긴 지옥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했던 사람들일 뿐이다. 전쟁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고통과 공포 속에서 인생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일 뿐이다.
    저자와 생존자 모두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직접적으로 묻지 않는다.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 왜 수많은 억울한 목숨이 사라져야 했는가?" 하지만 1945년 8월 6일 이전의 삶과 그 뒤 덤처럼 살게 된 삶을 통해 그들은 온몸으로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나카무라 부인의 원폭 이후의 삶은 생존을 위한 사투였다. 남편의 유일한 유품인 재봉틀을 수리해서 삯바느질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지만, 1주일 일하면 사나흘을 쉬어야 했다. 다행히 자녀들 모두 당시 많은 나이 어린 피폭자들이 시달리던 심각한 후유증이 없었다. 원폭성 무기력증에 맞서 천성적인 명랑함으로 기나긴 싸움을 이겨냈다. 사사키 박사는 1963년 폐암이 발견되어 왼쪽 폐를 완전히 적출하는 수술을 하면서 또 한 번 죽음을 경험했다. 노인전문병원을 세워 성공한 사사키 박사는, 아수라장으로 변한 적십자병원에서 집단화장터로 보낸 시신들이 이름 없는 영혼이 되어 떠도는 것이 회한으로 남는다고 고백한다. 또 한 명의 의사 후지이 박사는 1956년 '히로시마의 처녀들'이 성형 수술을 받으러 미국에 갈 때 동행한다.
    클라인조르게 신부는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수도자의 헌신적인 삶을 이어갔다. 그 뒤 일본 시민권을 신청하여 다카쿠라 마코토라는 이름으로 살았지만, 그는 일본인으로서보다도 피폭자로서 더 진정한 정체성을 느꼈다. 다리를 심하게 다친 사사키 양의 후유증은 다른 어느 생존자들보다 컸다. 부모를 순식간에 잃고 자신을 그런 섬뜩한 시련 속으로 몰아넣은 현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클라인조르게 신부의 극진한 위로만이 힘이 되었고, 그의 조언에 따라 수녀가 되었다. 다니모토 기요시 목사는 적극적인 원폭 증언자가 되어 미국 순회강연과 모금운동을 전개했으며, 사망한 다음해 1986년에 다니모토 기요시(谷本淸) 평화상이 제정되었다.
    올해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 70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아직도 원폭 2세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대한민국에서는 핵발전소를 확대하고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위험한 세력이 득세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기록을 읽으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다큐멘터리 기사 한 편이 원자폭탄을 증언하는 인류의 기록이 되다
    존 허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소설가이자 종군기자로서, 미군의 시칠리아 섬 상륙작전과 러시아 전선, 미얀마 정글의 전투 등에 관한 기사를 썼다. 1946년에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가 '원폭 1년 후' 특집 기사를 기획했을 때, 전설적인 편집장 윌리엄 숀은 상하이에서 중국 내전을 취재하고 있던 그에게 전문을 보냈다. 대부분의 기사가 원자탄 자체에 대해서 쓰였을 뿐 히로시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다루지 않고 있기에, 히로시마의 8월 6일을 다뤄준다면 훌륭한 기획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뒤 허시는 1946년 3월부터 3개월 동안 히로시마에 머물며 사사키 양을 비롯해 목사, 독일인 신부, 의사 2명, 재봉사의 미망인 등 원폭 생존자 여섯 명의 삶을 추적했다. 그리하여 1945년 8월 6일에서 9일까지 그들이 겪은 충격적인 체험을 3만 1천 자로 담아내었고, [뉴요커]는 1946년 8월 31일자 전 지면에 광고, 기고, 논설, 기사, 그림 없이 허시의 기사만을 실었다. 잡지 역사상 가장 긴 기사였으며, 당일 30만 부 판매라는 기록도 세웠다. [뉴욕타임스]는 1면 톱으로 [뉴요커]의 파격적인 기사 게재 방식에 대해 썼고, ABC방송은 허시의 기사를 4개월간 방송했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히로시마]라는 제목의 이 글을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가장 유명한 저널리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 글이 두 달 만에 책으로 출간되자 손바닥만 한 크기의 90쪽짜리 책은 300만 부가 팔려 나갔다. 허시는 기사에서나 책에서 폭탄의 투하 이유, 제조 과정 그리고 이것이 냉전과 미 소의 대결에 준 영향 등은 다루지 않았다. 이 책이 출간되고 40여 년이 지나 존 허시는 이 책의 주인공들을 찾아 다시 히로시마 땅을 밟았다. 그리고 그들에 관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을 [히로시마]의 마지막 장에 60쪽에 걸쳐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기록했다. 이때에도 그는 6인의 삶 그 자체만을 다뤘다. 종전을 코앞에 둔 상황임에도 전쟁에서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 모습이나 계속되는 공습으로 지쳐가던 사람들의 심리 또한 그대로 담겨 있다. 펄 S. 벅은 이 책을 "양심에 비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권한다"라고 했으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위대한 저널리즘 작품"으로 꼽았다. 또한 하워드 진은 "이 책을 필두로 원폭 피해자의 증언록들을 읽고 나서 철저한 평화반전주의자가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1949년에 원작의 6인 중 한 명인 다니모토 기요시의 번역으로 출간되었으며, 2003년에 이시카와 긴이치(石川欣一) 마이니치신문사 문화부장과 아케타가와 도루(明田川融) 법정대학 강사의 5장 추가 번역으로 소개되었다. [1945 히로시마]는 한국에서 세 번째로 출간되는 것이다. 1986년에 분도출판사에서 이부영 전 국회의원의 번역으로, 2004년에 증보판이 또 한 번 소개되었다. 이 책은 인류의 양심을 뒤흔드는 전쟁에 관한 위대한 고전이 되었다.
    존 허시는 "저널리즘은 독자로 하여금 역사를 목격하게 하지만, 픽션은 독자로 하여금 역사를 살게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논픽션 장르에 소설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접목시킨 새로운 형태의 저널리즘을 선보인 그가 히로시마 생존자 6인의 증언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6인의 생존자를 비롯해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모두가 역사의 목격자에 그치지 않고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추천사

    이 책에 나오는 여섯 명은 군인도 정치가도 아니었다. 그 전까지 단 한 번도 폭격을 받지 않았던 운이 좋은 도시, 히로시마에서 살아가던 사람이었을 뿐이다. 공장의 여성 노동자, 목사, 독일인 신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 의사들이었다. [1945 히로시마]는 이들의 고통과 그 이후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여기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 우리는 과거의 기록을 읽으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 하승수 /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이 책은 히로시마의 비극을 막지 못한 후회의 통탄이자, 미래를 향한 경계비다. 핵발전은 핵무기와 한몸이며, 잠자는 핵폭탄이다. 진정 평화와 안전을 원한다면, 그 뿌리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1945 히로시마]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 한재각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원전 24기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질병에 노출되거나 송전탑 건설로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고 있음에도 정부는 2029년까지 신규 원전을 계획하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려버린 원전은 하루빨리 멈춰야 한다. 이곳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1945 히로시마]는 핵과 이별하는 평화로운 시작이다.
    - 신경준 / 한국환경교사모임 공동대표

    1945년 8월 6일 최초의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는 쑥대밭이 되었다. 이 책은 존 허시가 기자의 관점에서 쓴 대작으로, 원폭 투하 당일 히로시마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여준다. 생존자들의 기억을 통해 기술된 이 기록은 강렬함과 온정으로 가득한 시대 초월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인류의 양심을 뒤흔드는' 고전으로 여겨진다.
    -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이 책에 관한 그 어떠한 설명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하기에 역부족이다. 즉 이 책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완벽하며 결코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인류를 대변한다.
    -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전쟁에 관한 위대한 고전'
    - [뉴리퍼블릭(New Republic)]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 [토요문학평론(Saturday Review of Literature)]

    목차

    추천사
    1 소리 없는 섬광
    2 대화재
    3 소문과 진실
    4 기장과 명아주
    5 원폭 투하 40년 후

    본문중에서

    원자폭탄은 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이 여섯 사람은 살아남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왜 자신들은 살았을까, 그들은 아직도 얼떨떨할 따름이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여러 번의 소소한 우연과 결단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나열한다. 때마침 내디딘 한 걸음, 실내로 들어가기로 한 결정, 다음 전차 가 아닌 바로 그 앞 전차에 올라탄 일 등등. 그 생존의 순간에 수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겼고 상상도 못한 죽음의 아비규환을 목격했음을 이제 그들은 안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 p.16)

    그때였다. 어마어마한 섬광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번뜩였다. 다니모토 목사는 아직도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섬광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시내에서 산 쪽으로 이동했다. 거대한 태양이 빛을 뿜어내는 듯했다.
    (/ p.21)

    그 둔덕에서 다니모토 목사는 기겁할 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가 예상했던 고이 지역만이 아니라 구름 자욱한 하늘 사이로 보이는 히로시마의 곳곳에서 짙고 무시무시한 독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가깝고 멀고 할 것 없이 짙게 깔린 먼지를 뚫고 연기 덩어리들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하늘이 그토록 조용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넓은 지역에 이토록 참혹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단 말인가. 비행기가 단 몇 대만 지나갔다 해도, 설령 아주 높은 고도로 비행했다 쳐도, 분명 소리가 들렸을 텐데…….
    (/ p.42)

    질식할 것만 같은 병원 내 인파 속에서 몇몇 사람은 사사키 박사의 주의를 끌려고 "선생님, 선생님!" 하며 흐느끼고 울부짖었다. 그나마 부상이 덜한 환자들은 직접 찾아와 그의 소맷자락을 끌어당기며 중상을 입은 환자를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그는 양말만 신은 채로 여기저기 끌려다녔고, 밀려드는 환자에 아연실색했으며, 끔찍할 정도로 드러난 생살에 자지러졌다. 결국 그는 의사로서의 직업의식을 완전히 잃었다. 능숙한 외과의사로서, 환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인간으로서 진료할 수가 없었다. 대신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닦고 바르고 감고, 닦고 바르고 감기만을 반복했다.
    (/ p.54)

    순식간에 찾아든 변화였다. 그날 아침만 해도 24만 5000명이 거주하는 부산한 도시였는데, 반나절 만에 폐허로 변하다니……. 그때까지도 거리의 아스팔트는 화재 때문에 무르고 뜨끈뜨끈해서 걷기가 불편했다. 거리에서 마주친 이는 단 한 명이었다. 여자였는데, 그들이 지나가자 "남편이 저기 잿더미 안에 있어요."라고 말했다.
    (/ p.76)

    무슨 일인지 조금이라도 생각할 여력이 있는 희생자들은 원시적이고 유치한 방식으로 그 정체를 생각하고 논의했다. 비행기에서 뿌린 휘발유가 아닐까, 아니면 가연성 가스, 혹은 커다란 소이탄 다발, 그것도 아니면 낙하산병들의 소행일까 등등. 그러나 진실을 알았다 한들, 그토록 경황이 없고 지쳐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고 심한 부상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원자폭탄의 위력을 시험하는 경이적인 첫 시험대에 오른 피실험자였음을 신경 쓸 겨를이나 있었겠는가.
    (/ p.92)

    그새 잡초들이 무성해져 잿더미를 뒤덮어버렸고, 죽은 도시의 앙상한 뼈대 사이사이로 야생화들이 만발했다. 가공할 만한 폭탄조차도 땅속에 숨어 있던 생명의 씨앗에는 그 위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을 자극했다. 푸른색의 꽃들과 유카, 명아주, 나팔꽃, 원추리, 솜털이 보송보송 난 콩, 쇠비름, 우엉, 참깨, 기장, 캐모마일 등 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 p.124)

    저희들 중 일부는 원자폭탄을 독가스와 동일한 범주에 넣어 민간인에게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일본에서 줄 곧 진행 중이던 총력전의 경우는 민간인과 군인을 따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폭탄 그 자체가 유혈 사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즉 일본을 항복시켜 총체적인 파괴를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경고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총력전을 원칙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민간인에 대한 전쟁 행위를 불평해선 안 된다는 견해는 꽤 논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난점은 현 형태의 총력전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아무리 정당한 목적을 위한 것일지라도 말이죠. 총력전이 제 아무리 선한 결과를 낳더라도 그 선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심각한 물질적, 정신적 악을 초래하지는 않을까요? 우리 도덕주의자들은 이런 질문에 언제쯤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 p.154)

    원래 그녀의 기질 속 깊은 곳에는 명랑함이 자리잡고 있었던 듯했다. 그리고 바로 그 명랑함이야말로, 즉 '어쩔 수 없는 일이지'라고 말하는 단순한 굴복보다 더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그 내면의 기질이야말로, 원폭성 무기력증에 대항한 기나긴 싸움을 버텨낼 수 있는 동력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함께 일하는 여직원들은 나카무라 부인을 좋아했다. 그녀도 항상 그들에게 작은 호의를 베풀었다.
    (/ p.167)

    누군가 저에게 자신이 피곤하다고 말하면,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피폭자라면, 저는 일반인이 그렇게 말할 때와 전혀 다른 감정을 느껴요. 그는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얼이 나갈 것만 같고 우울해질 것만 같은 그 모든 충동, 그런 모든 불쾌감을 압니다. 또 그런 불쾌감 이후에 자신이 본분을 다할 수 있을지 다시 따져보기 시작할 거라는 것도 압니다……. 일본인은 '천황 폐하'라는 말을 들을 때 서구인이 들을 때와 다르게 느껴요. 즉 외국인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일본인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매우 달라요. 이는 희생자인 사람과 아닌 사람이 다른 희생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경우와 유사하죠……. 일전에 저는 어떤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가 "저는 원자폭탄을 경험했어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 후 대화의 화제가 바뀌었죠.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잘 이해했어요. 별다른 말이 필요 없는 거죠.
    (/ p.195)

    전쟁은 원자폭탄과 소이탄 투하로 일본인들을 희생시켰고, 일본에게 침략당한 중국의 민간인들을 희생시켰으며, 죽을 수도 있고 불구가 될 수도 있는 전쟁에 마지못해 끌려나온 어린 일본인 병사와 미국인 병사들을 희생시켰다. 그리고 또 일본인 매춘부와 그들이 낳은 혼혈아도 희생시켰다.
    (/ p.207)

    사사키 수녀는 원생들이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돕는 일에 자신이 탁월한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직후 숱한 죽음을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죽음에 내몰린 사람들의 기이한 행동도 수없이 봐왔다. 그런 만큼 더는 놀랄 일도 두려워할 일도 없었다. 임종을 앞둔 원생을 처음으로 옆에서 지켜보던 순간, 그녀는 원폭 투하 직후에 찾아온 첫날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휑한 공장 마당 한복판에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버려진 채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며 밤을 지새웠던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 옆에서 죽어가던 한 청년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그녀는 그와 밤새 이야기를 나눴고, 무엇보다도 죽음을 앞둔 이의 외로움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 깨달았다.
    (/ p.211)

    1980년에 도쿄에 있는 수녀회 본부에 주재하고 있을 당시, 사사키 수녀는 인생에서 더없이 행복한 순간을 맞이했다. 수도자의 길에 입문한 지 25주년이 되는 그녀를 축하하는 만찬회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날 밤 두 번째 주빈으로 파리에서 수녀회 총본부장을 맡고 있는 프랑스 델쿠르 총장수녀가 참석했다. 델쿠르 수녀도 교단에 들어온 지 25년이 되었던 것이다. 델쿠르 수녀는 사사키 수녀에게 성모 마리아의 그림 한 장을 선물로 주었다. 사사키 수녀는 연설을 했다. "저는 과거에 매달려 살지 않을 것입니다. 원자폭탄 투하 속에서 살아남았을 때 저는 여분의 삶을 부여받은 것과 같았습니다. 저는 뒤돌아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계속 앞으로 전진할 것입니다."
    (/ p.214)

    저자소개

    존 허시(John R.Hersey)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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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소설가, 저널리스트. 1914년 중국 톈진에서 태어났으며, 1925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왔다. 예일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한때 미국 소설가 싱클레어 루이스의 비서로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타임]의 종군기자로 활동하다가, 1947년부터 소설 집필에 전념하여 [아다노의 종 A Bell for Adano]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년간 예일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픽션과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쳤고, 미국저자연맹 회장과 미국문예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다. 1993년에 사망했다. 지은 책으로 [히로시마Hiroshima]를 비롯해 [계곡 속으로 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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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번역 전공)를 졸업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신은 뇌 속에 갇히지 않는다], [진화론의 유혹], [내가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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