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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사 5 : 제국주의와 인상주의: 프로이센ㆍ프랑스 전쟁에서 세계대전까지

원제 : Kulturgeschichte der Neuzeit: Die Krisis der Europaischen Seele von der Schwarzen Pest bis zum Ersten Weltkri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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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에곤 프리델의 [근대문화사(KULTURGESCHICHTE DER NEUZEIT)] 한국어판 드디어 출간

    독일어판 1,600쪽 분량에 가까운 [근대문화사]는 출간되자마자 대중에게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당대에도 표현주의 작가 알프레트 되블린과 저널리스트 레오폴트 슈바르츠쉴트, 극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 등의 추천을 받은 [근대문화사]는 수십 개 나라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출판사 서평

    흑사병 발병 시기인 1340년대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까지
    600여 년의 유럽 문화를 관통한다


    “결단코 일어나지 말아야 했을 사건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는 것이 역사기술자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모든 현실 교양인의 천부적 권리이기도 하다.”
    - 오스카 와일드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600여 년간 서구인이 겪은 문화적 부침의 역사를 섬세한 예술적·철학적 문화프리즘으로 그려낸다. 이 부침의 역사 속에는 예술과 종교, 정치와 혁명, 과학과 기술, 전쟁과 억압 등속의 거시적 문화 조류뿐만 아니라 음식·놀이·문학·철학·음악·춤·미술·의상·가발 등과 같은 미시적인 일상생활의 문화 조류도 포함된다.

    저자 에곤 프리델이 [근대문화사]에서 역사를 보는 관점은 이전까지의 문화사(文化史) 책과 다르다.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나열하며 논지를 풀어가는, 백화점식 보고 형식이나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기존의 논리적 역사기술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미학적·도덕적 성격이 짙다. 저자 에곤 프리델은 ‘문화사 기술방식’을 ‘사실의 설명적 보고’와 ‘사실 인과관계의 논리적 기술’ 및 ‘사실의 미학적·윤리적 기술’로 종래 방식대로 구분하면서도 이를 넘나들며 모두를 망라한 ‘융·복합적 기술방식’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이야기 전체를 풀어가는 서술방식은 창조적인 ‘시학’ 내지는 문화적 ‘미학서’와 같은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미시적 문화 조류에 대한 섬세한 탐색
    망탈리테의 역사, 이야기체 역사의 선구

    ‘시대정신’이 어떻게 구체적인 ‘일상적 삶’으로 표현되는가
    의·식·주의 스타일이 각 ‘시대정신’과 어떻게 만나는가
    - 천재적인 딜레당트 에곤 프리델이 그린
    정신적 의상(衣裳)의 역사(Seelische Kostumgeschichte)


    에곤 프리델의 [근대문화사]의 강점은 무엇보다 미시적 문화 조류에 대한 탐색이 섬세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큰 종 모양의 치마, 일명 ‘정절지킴이’로 불렸던 의상 라이프로크는 바로크의 형식적 화려함 속에 가려진 몰락의 추태를 나타내주기도 하지만 이 의상의 출현 때문에 파리와 같은 도시의 골목길이 넓혀지는 문화적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미시적 문화와 거시적 문화의 변증법적 통일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에곤 프리델은 이 책에서 근대를 규정하는 수세기에 걸친 다양한 조류를 추적하며, 가장 중대한 정신적·정치적·사회적 발전 면모를 설명하면서 그때마다 결정적인 인물들을 뚜렷한 초상으로 그려낸다. 프리델의 문화프리즘을 통해 보면 위대한 인물과 시대정신은 상호 연관성을 지니면서도 마치 독립적인 듯한 변증법적 모순을 함축한다. 이의 압축된 표현이 바로 “천재는 시대의 산물이다”, “시대는 천재의 산물이다”, “천재와 시대는 공약수가 없다”는 식의 테제일 것이다. 루터, 라파엘로, 발렌슈타인과 구스타프 바사, 프리드리히 2세와 루이 14세, 펠리페 2세, 스피노자, 괴테, 칸트, 니체, 슈펭글러, 볼프, 고흐, 비스마르크, 프로이트, 빌헬름 2세 … 이들도 자신들의 삶에서 시대정신을 체현하고 있다. 한 시대는 그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간 구체적인 인물의 삶을 통해 들여다 볼 필요가 있으며, 이는 시대정신을 구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이해할 통로를 제공해 준다. 시대정신을 체현하는 이 테제의 핵심을 가로지르는 것이 그가 만든 개념인 ‘정신적 의상의 역사(Eine seelische Kostumgeschichte)’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시대정신’이 어떻게 구체적인 ‘일상’으로, 위대한 인물 개인의 삶으로 표현되는가, 의·식·주의 스타일이 각 ‘시대정신’과 어떻게 만나 그 시대의 생활형식(Lebensform)이 되는가를 서술하려 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서술방식은 ‘두텁게 읽기, 다르게 읽기, 작은 것을 통해 읽기’ 등의 방법론으로 요약되는 망탈리테의 역사, 이야기체 역사를 앞선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권력을 획득한 대(大)부르주아지가 즉물적으로, 현실적으로 재미없게, 그래서 따분하게, 그리고 꾸밈도 환상도 없이 처신하는 것도 일종의 의상인 셈이다. 금융자본가가 자신의 은행 집무실 바깥에서도 동물적인 성실함을 갖고 실용적으로 서민처럼 행하는 그 모든 것도 의상이며, 연기와 그을음을 먹고 살아가는 날품팔이, 마권(馬券) 장수, 외판원, 그리고 상인과 저널리스트들, 상품유통이나 정보수집의 어설픈 대리인들에게도 나름의 의상이 있었다.”
    (/ 본문 중에서)

    반유대주의의 유대인, 에곤 프리델
    [근대문화사] 또한 그 시대의 집단적 의식의 산물이다


    “최상의 것은 병적인 것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 노발리스

    [근대문화사]에는 저자 프리델의 민족심리학이 반복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저자가 만일 유대인 출신 나치 희생자가 아니라 제국 문서실 일원이었다면 반유대주의의 선동으로 보일 부분도 있다. 그 자신 유대인이었던 프리델은 ‘유대인의 정신’에 대한 반감을 결코 감추지 않았다. 이는 유럽에 동화되려는 19세기 유대인들 사이에서 때때로 볼 수 있었던 ‘자기혐오’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치가 등장하자 그는, 프리델 선집에 [책임과 속죄(Schuld und Suhne)]를 후기로 쓴 헤르베르트 일리히(Heribert Illig)의 추측에 따르면, 자책감에 시달린 것 같다. 일리히는 이렇게 추단한다. “프리델은 히틀러의 등장에 공범 의식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그의 작품은 니체의 작품이 그랬듯 ‘위대한 독재자’에게 수많은 변명거리를 제공했다. 그는 이 사실을 알았다. 자신의 [근대문화사]를 ‘대단히 반근대적·반자본주의적·반기술적·반합리주의적인 작품, 한마디로 앵글로색슨계에 반하는 작품’으로 판정했었기에 …” 19세기 말~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은 보수와 진보, 전통과 현대,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유대인의 활동과 반유대주의, 이 모든 모순적 요소가 뒤섞여 있었다. 이에 따라 에곤 프리델 역시 각 시대의 모든 요소가 뒤섞여 상쇄·절충되는 진통을 [근대문화사]에서 서술한다. 이는 그가 흑사병이 발생한 1348년을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의 ‘근대’는 보편적 파국에 따른 쇼크와 뒤이은 카오스 상태로 집단적 표상이 유동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헛되게도 이성은 편견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이성 자체가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면 이성도 마찬가지로 편견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 이폴리트 텐

    에곤 프리델이 [근대문화사]로 들려주려 했던 ‘새로운 문화 이야기’는 근대 계몽의 당찬 기획을 실패로 본 1940년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관점을 그들보다 먼저 보여준다. 이는 [근대문화사]의 부제인 [유럽 영혼이 직면한 위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리델에게 근대화 과정은 위기였으며, ‘실재론(Realismus)’에 대한 ‘유명론(Nominalismus)’의 승리, 신에 대한 이성의 승리, ‘귀납적 인간(induktiver Mensch)’에 대한 ‘연역적 인간(deduktiver Mensch)’의 승리였다. ‘연역적 인간’의 승리는 ‘이성’에 복종하지 않는 모든 것을 단박에 ‘불량종자(mauvis genre)’로 취급하는 데카르트적 이성의 승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이성은 ‘형제가 없는 정신’이 될 수밖에 없고, 중세적 공동체는 해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근대문화사]를 관통하는 문화프리즘이다. ‘형제가 없는 정신’을 [계몽의 변증법?의 저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말로 표현하면 ‘도구적 이성’이 될 것이다. 이런 이성의 궁극적 표현이 세계대전으로 귀결된다고 보는 데서도 [근대문화사]와 [계몽의 변증법]은 서로 닮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계몽의 변증법]은 ‘이성’에 내재하는 억압적 요소를 ‘계몽을 넘어서는 계몽’과 같은 반성적 계몽을 통해 극복하려 하는 반면 [근대문화사]는 지금까지의 세계를 구성해온 이분법적 체계, 즉 정신과 물질의 세계와는 다른 곳에서 오는 제3의 불빛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은 현실 너머에 서 있고, 물질은 현실 아래에 있다 … 그러나 이와 동시에 다른 쪽에서부터 비쳐오는 흐릿한 불빛이 하나 반짝이고 있다. 유럽 문화사의 다음 장은 바로 이 불빛의 역사가 될 것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옮긴이 글

    문화사에 딜레탕트인 내가 프로페셔널리즘보다 딜레탕티즘을 선호하는 에곤 프리델의 이 유명한 책, [근대문화사]를 처음 접한 것은 2003년 4월 즈음이었다. 그 무렵은 내가 악셀 브라이히(Axel Braig)와 울리히 렌츠(Ulrich Renz)의 공저인 [일 덜 하는 기술(Die Kunst, weniger zu arbeiten)[을 막 번역 출간한 때이다. [일은 적게 하면서 인생은 자유롭게 사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일 덜 하는 기술[은 책 끝머리에 부록으로 [권하고 싶은 책] 여남은 권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우리의 주제를 훨씬 넘어서서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고 소개한 책이 바로 에곤 프리델의 [근대문화사]였다. 그 후 얼마 뒤 이 책을 직접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을 때,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읽을거리’라는 소개말은 의례적으로 하는 빈말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 중 하나인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Neue Z?richer Zeitung)]이 일찌감치 “프리델의 [근대문화사]는 그 문학적 형상화의 힘 덕분에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읽힌다”고 평가한 말 역시 이 책 서문 첫머리를 읽으면 이내 이해될뿐더러 참으로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읽을거리’임을 확인하게 된다.

    무한히 깊은 우주 공간에는 신의 반짝이는 사유이자 축복받은 도구이기도 한 수많은 별이 운행하고 있다. 창조주가 그 별들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별은 행복하다. 신이 세계를 행복하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별들 가운데 이 운명을 공유하지 않는 별이 딱 하나 있다. 이 별에는 인간만이 서 있을 따름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신이 이 별을 망각했던가? 아니면 신은 이 별에 본래의 힘을 벗어나 스스로 축복을 쟁취할 자유를 주었던가? 그것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이 작은 별의 역사가 만들어낸 자그마한 파편 하나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고자 한다.

    언뜻 봐도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건조한 ‘문화사’에 관한 말투로 느껴지지 않는다. ‘존재론’에 관한 명상록 같기도 하고, 마르크스가 말한 ‘물신숭배(Fetishism)’의 세계에 대한 우울한 철학적 반성의 글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야기 전체를 풀어가는 서술방식, 이를테면 세계 전체가 시인을 위해 창조되었다, 세계사는 작품이나 말의 시인을 위한 소재를 갖고 있다, 세계사가 새로운 행위와 꿈을 꾸도록 부채를 건네는 그 시인은 누구일까? 그 시인은 바로 다름 아닌 후대 세계 전체일 뿐이다, 천재는 시대의 산물이다, 시대는 천재의 산물이다, 천재와 시대는 공약수가 없다는 등과 같은 변증법적 표현에서 보면 그의 이 책은 허무주의적 반성의 ‘존재론적’ 명상록의 차원을 넘어 창조적인 ‘시학’ 내지는 문화적 ‘미학서’와 같은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사실 저자 에곤 프리델도 자신의 [근대문화사] 서술형식의 골간을 받치고 있는 관점은 과학적 성격보다 미학적ㆍ도덕적 성격이 강하다고 서문 앞쪽에서 미리 고백하고 있다.

    이 책의 첫머리를 읽는 순간 이 글은 지금까지의 문화사(文化史) 책이 대개 보여주듯 사실관계를 단순히 나열하는 백화점식 보고 형식과도 다르며,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기존의 논리적 역사기술의 문화사 연구방식과도 확연히 다른 미학적 성격이 짙다는 점을 금세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소설 같다’는 평가를 내리는 문화사 ‘전문가’도 있지만 대단히 유명한 오스트리아 작가 힐데 슈필(Hilde Spiel)과 같은 이는 프리델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박식함과 매혹적인 유머, 정확한 학술적 이해와 대단히 섬세한 예술취향을 겸비하고서” 그 “시기의 인간을 각 시기마다 그 시기의 외부적 환경과 정신적 환경 속에 세우고서 그런 인간의 일상과 복장, 관습을 그 시대의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조류와 함께 신선하게 환기시킨다”는 말로써 사람들을 [근대문화사] 속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울리히 바인치를(Ulrich Weinzierl)은 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에서 프리델의 [근대문화사]를 두고 “그 표현력이 경쾌하고도 흥미로워 수십 년 동안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을 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이런 ‘경쾌함’과 ‘흥미로움’의 참맛은 [근대문화사]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볼 때만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옮긴 나로서는 바인치를의 주장이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물론 이 확신을 얻기까지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2003년 4월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해서 2015년 7월 지금 번역서로 이렇게 내놓기까지 꼬박 12년 3개월이 걸린 셈이다. 미적 표현과 그 예술적 서술방식에 매료되어, ‘이런 식의 문화사 기술도 가능하구나!’하는 느낌으로 간간이 읽고 우리말로 옮겨오다가 한국연구재단 ‘2011년 명저번역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본격적으로 번역해온 일도 벌써 만 4년이 다 되었다. 표현력의 ‘경쾌함’과 소설 같은 ‘흥미로움’ 때문에 밤을 꼬박 새우면서 ‘새로운 시대의 문화 이야기(Kulturgeschichte der Neuzeit)’, 즉 [근대문화사]에 빠져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집중된 4년과 전체 12년은 결코 인내하기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나의 ‘몸’에 불균형만 초래한 것이 아니라 가족의 일상적 바이오리듬도 깨는 용감한 ‘반가족주의’의 길이기도 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래도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동의 얻기 쉽지 않은 말로나마 함께 위로하고 싶다.

    이 책이 아무리 ‘흥미진진한 소설’ 같아도 번역하기에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저자 에곤 프리델이 쓰기에도 5년 이상 걸릴 만큼 긴 시간이 요구된 독일어판 1,600쪽 분량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프리델은 처음 이 책을 3부작으로 출간했다(여기서 번역 텍스트로 사용한 것은 베크(C. H. Beck) 출판사가 3부 5권으로 나뉜 것을 2008년 한 권으로 묶어 내놓은 특별판이다). 1927년 7월에 완성된 1부에는 [문화사란 무엇이며, 문화사를 왜 공부하는가?]라는 서문과 [르네상스와 종교: 흑사병에서 30년 전쟁까지]라는 제목의 1권이 포함된다. 1928년 12월에 나온 2부는 [바로크와 로코코: 30년 전쟁에서 7년 전쟁까지]의 2권과 [계몽과 혁명: 7년 전쟁에서 빈 회의까지]의 3권을 포함하며, 3부는 1931년 말에 완성된 것으로서 [낭만주의와 자유주의: 빈 회의에서 프로이센ㆍ프랑스 전쟁까지]의 4권과 마지막 5권 [제국주의와 인상주의: 프로이센ㆍ프랑스 전쟁에서 세계대전까지]를 포함한다. 흑사병 발병 시기인 1340년대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까지의 기간을 보면 에곤 프리델의 [근대문화사]는 [르네상스와 종교]에서 [제국주의와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근 600여 년의 유럽 문화를 관통하고 있다.

    한 권의 특별판으로 묶은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흥으로부터 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600여 년간 서구인이 겪은 문화적 부침의 역사를 섬세한 예술적ㆍ철학적 문화프리즘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부침의 역사 속에는 예술과 종교, 정치와 혁명, 과학과 기술, 전쟁과 억압 등속의 거시적 문화 조류뿐만 아니라 음식ㆍ놀이ㆍ문학ㆍ철학ㆍ음악ㆍ춤ㆍ미술ㆍ의상ㆍ가발 등과 같은 미시적인 일상생활의 문화 조류도 포함된다. 그런데 에곤 프리델의 [근대문화사]의 강점은 무엇보다 이 미시적 문화 조류에 대한 탐색이 섬세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큰 종 모양의 치마, 일명 ‘정절지킴이’로 불렸던 의상 라이프로크는 바로크의 형식적 화려함 속에 가려진 몰락의 추태를 나타내주기도 하지만 이 의상의 출현으로 파리와 같은 도시의 골목길이 넓혀지는 문화적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미시적 문화와 거시적 문화의 변증법적 통일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에곤 프리델은 이 책에서 근대를 규정하는 수세기에 걸친 다양한 조류를 추적하며, 가장 중대한 정신적ㆍ정치적ㆍ사회적 발전 면모를 설명하면서 그때마다 결정적인 인물들을 뚜렷한 초상으로 그려낸다. 프리델의 문화프리즘을 통해 보면 위대한 인물과 시대정신은 상호 연관성을 지니면서도 마치 독립적인 듯한 변증법적 모순을 함축한다. 이의 압축된 표현이 바로 “천재는 시대의 산물이다”, “시대는 천재의 산물이다”, “천재와 시대는 공약수가 없다”는 식의 테제일 것이다. 이 테제의 핵심을 가로지르는 것이 그가 만든 개념인 ‘정신적 의상의 역사(Eine seelische Kostumgeschichte)’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의상 하나에도 정신이 깃들어 있고, 정신 하나도 어떤 문화로든 표현된다는 것이다. 에곤 프리델이 [근대문화사]로 우리에게 들려주려는 ‘새로운 문화 이야기’는 인간에게서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세계의 주인으로 세우겠다는 근대 계몽의 당찬 계획을 실패로 보았던 1940년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계몽의 변증법]의 관점을 선취한 듯하다. 이는 [근대문화사]의 부제로 달려 있는 [흑사병에서 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유럽 영혼이 직면한 위기]라는 소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을 법하다. 이 위기의 근대화 과정을 프리델은 ‘실재론(Realismus)’에 대한 ‘유명론(Nominalismus)’의 승리에서 찾고 있다. 그것은 곧 신에 대한 이성의 승리이고, ‘귀납적 인간(induktiver Mensch)’에 대한 ‘연역적 인간(deduktiver Mensch)’의 승리를 함의한다. ‘연역적 인간’의 승리는 다양한 경험을 허용하지 않고 대전제가 되는 ‘이성’에 복종하지 않는 모든 것을 단박에 ‘불량종자(mauvis genre)’로 취급하는 데카르트적 이성의 패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이성은 ‘형제가 없는 정신’이 될 수밖에 없고, 중세적 공동체는 해체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바로 에곤 프리델의 [근대문화사]를 관통하는 문화프리즘이다. ‘형제가 없는 정신’을 [계몽의 변증법?의 저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말로 표현하면 ‘도구적 이성’이 될 것이다. 이런 이성의 궁극적 표현이 세계대전으로 귀결된다고 보는 것에서도 [근대문화사]와 [계몽의 변증법]은 서로 닮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후자는 ‘이성’에 내재하는 억압적 요소를 ‘계몽을 넘어서는 계몽’과 같은 반성적 계몽을 통해 극복하려고 하는 반면에 전자는 지금까지의 세계를 구성해온 이분법적 체계, 즉 정신과 물질의 세계와는 다른 곳에서 오는 제3의 불빛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경험 심리학과 경험 물리학이 동일한 결과에 다다랐다. 즉 정신은 현실 너머에 서 있고, 물질은 현실 아래에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다른 쪽에서부터 비쳐오는 흐릿한 불빛이 하나 반짝이고 있다. 유럽 문화사의 다음 장은 바로 이 불빛의 역사가 될 것이다.

    에곤 프리델은 ‘유럽 문화사의 이 새로운 불빛’을 보지 않고 1938년 3월, 밤 10시경에 향년 6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삶의 ‘유쾌함’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군사적 ‘진지함’으로 ‘삶’을 억압하는 히틀러의 폭압적 군대가 오스트리아에 진입했을 때 4층 창밖으로 몸을 날려 죽음으로 저항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사망한 지 77년이 지났지만 아직 ‘다른 쪽에서 비쳐오는 흐릿한 불빛 하나’ 볼 수 없다. 오히려 지금은 ‘유럽’이 직면했던 그 ‘영혼의 위기’뿐 아니라 ‘지구’ 전체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맞아 지구적 ‘삶 자체’가 위기에 봉착한 듯하다. 그것도 인간의 삶과 직접 관련된 ‘경제적 위기’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생태학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불길한 여러 징후가 지구촌 곳곳에서 감지된다. 에곤 프리델의 말대로 왜 지구는 행복의 운명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반성할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그 ‘흐릿한 불빛’은 이 반성에서 반짝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1931년, [근대문화사]가 출간되고 현지의 뜨거운 반응을 넘어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된 지도 한참 되었지만 우리는 이제야 그 빛을 보게 되었다. 아주 때늦게 빛을 보게 되었지만 이 빛의 탄생과정에 실로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독일어판 원서 1,600여 쪽이나 해당하는 분량의 책을 오늘 5권의 번역본으로 내기까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 책은 국내에서 빛을 보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재단에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사실 수차례에 걸쳐 곤혹스러울 정도로 집요하고도 날카롭게 교정을 봐준 ‘한국문화사’의 이지은 팀장께 이 자리를 빌려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그리고 생활박자를 초스피드로 다그치는 신자유주의의 무서운 속도감을 고려치 않고, 각 권 평균 400쪽 이상 되는 5권의 책을 무심코 읽어달라고 용감하게 부탁해야 할 잠재적인 독자들에게도 미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 책이 오늘 우리 시대의 ‘고단한 영혼’을 달래주는 하나의 굄목이 될 수 있다면 역자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추천사

    프리델의 [근대문화사]는 그 문학적 형상화의 힘 덕분에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읽힌다.
    -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Neue Zuricher Zeitung)

    [근대문화사]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박식함과 매혹적인 유머, 정확한 학술적 이해와 대단히 섬세한 예술취향을 겸비하고서 그 시기의 인간을 각 시기마다 당대의 외부적 환경과 정신적 환경 속에 세우고서 그런 인간의 일상과 복장, 관습을 그 시대의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조류와 함께 신선하게 환기시킨다.
    - 힐데 슈필(Hilde Spiel)

    [근대문화사]는 그 표현력이 경쾌하고도 흥미로워 수십 년 동안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을 담고 있다. 정신사적 세계극장(theatrum mundi)이 이 이상으로 입체적이고 재미있게, 우아하고도 매력적으로 연출될 수는 없을 터이다.
    - 울리히 바인치를(Ulrich Weinzierl) -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근대문화사]는 모순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다. 확신에 찬 부조리함과 백발백중의 잘못된 추론이 넘치고, 가장 즐거운 방식으로 독자를 분개시키는 딜레당트의 빛나면서도 실패한 책이다. 그러나 그의 오판은 그가 이로부터 담금질해서 주조할 수 있는 정신적 자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 알프레트 폴가르(Alfred Polgar) - 위대한 딜레탕트(Der große Dilettant)

    목차

    01 검은 금요일
    누가 실재를 만드는가? | 비스마르크의 시대 | 프랑스의 행군 | 독일의 군사행동 | 중립국들 | 평화 | 코뮌 | 사회주의자보호법 | 문화투쟁 | 베를린 회의 | 전쟁 임박 | 2국 동맹·3국 동맹·재보장조약 | 독일 제국의 정신 | 뒤링 | 양식 없는 양식 | 마카르트 부케 | ‘독일 르네상스’ | 에펠탑 | 복장 | 마이닝겐 극단 | ‘종합예술’ | 최고의 연극 | 바그너의 곡선 | [박쥐] | 문학 | 빌헬름 부슈 | 전화기·백열등·자전거 | 입체화학 | 화성운하 | 전-인상주의자들 | 인상주의란 무엇인가? | 노동자 | 색채로 형성된 반기독교도 | 공쿠르 형제 | 졸라 |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 마지막 비잔틴 사람 | 악한의 변호 | 고발자 | 예술가의 증오

    02 악마에게 끌려가다
    쉼표 | 데카당스로서의 권력 의지 | 헤겔과 할스케 | 새로운 속도 | 전자기 빛 이론 | 방사능 | 원자핵분열 | 페이비언주의자들과 강단 사회주의자들 | 김나지움 개혁 | 빌헬름 황제 | 비스마르크의 사퇴 | 케이프-카이로 | 북아메리카 | 동아시아 | 러?일 전쟁 | 비스마르크 이후의 세계정책 | 3국 협상 | 합병 위기 | 실용주의 | 마흐 | 베르그송 | 분트 | [교육자로서의 렘브란트] | [성과 성격] | 스트린드베리 | 폭뢰 | 방랑자 | 니체의 심리학 | 니체의 기독교도 정신 | 마지막 교부 | 제2기 인상주의 | 툴레에서 온 가수 | 마지막 고전파 작가 | 시민극장의 정점 | 편협한 연극론 | 입센의 우주 | 노르웨이의 보복 | 입센의 예술형식 | 근대의 유언장 | 문학적 혁명 | ‘자유무대’ | 자연주의 | 하우프트만 | 주더만 | 폰타네 | 베데킨트 | 모파상 | 분리파 | 뵈클린 | 슈니츨러와 알텐베르크 | 베리스모 | 도리언 그레이 | 쇼의 반어 | 공간 사랑 | 상징주의자들 | 4차원의 연극 | 정신감응을 일으키는 드라마 | 균열 | 외교란 무엇인가? | 발칸 전쟁 | 사라예보 | 구름

    에필로그: 현실의 함몰
    새로운 잠복기 | 분자로서의 우주 | 우주로서의 분자 | 시간은 장소의 한 기능이다 | 질량은 에너지다 | 동시성이란 없다 | 우주 속으로의 폭발 | 물병자리의 출현 | 역사의 몰락 | 논리학의 몰락 | 다다 | 드라마의 파국 | 예술의 자살 | 초현실주의 | 바벨탑 | 두 마리의 히드라 | 다섯 가지 가능성 | 메타심리학 | 부도덕의 노예반란 | 지하 세계에서 온 오르페우스 | 정신분석학의 도그마 | 전위된 물 자체 | 다른 쪽에서부터 비쳐오는 흐릿한 불빛

    후기 / 울리히 바인치를 / 에곤 프리델의 삶과 [근대문화사]

    연표
    인명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문화사 기술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사적 현상이다. 이 현상은 문화의 각기 단계, 즉 유아기ㆍ청년기ㆍ성년기ㆍ노년기를 관통할 수밖에 없다. 유아기의 인간은 식물처럼 살기 때문에 자기 자신만을, 그리고 자신과 가장 가까운 대상만을 생각하며,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어떤 역사도 기술하지 못한다. 청년기의 인간은 세계를 시적으로 바라보며, 그래서 역사를 시의 형태로 구상한다. 성숙한 성년기에는 행위 속에서 모든 현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간파하여 정치적 역사를 기술한다. 노년기에는 마침내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하지만 삶에 너무 지쳐 포기한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 '1권 문명사학' 중에서)

    “우리의 과제는 그리스 사람들의 사유방식과 관점의 역사를 제시하고 그리스의 생활에 작용한 건설과 파괴의 생생한 힘을 인식하려는 데 있다. 문화사는 과거 인류의 본질로 파고들어 인류가 어땠고,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생각했으며,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알려준다. 문화사는 우리의 정신과 실제의 내적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고, 우리와의 친화성을 통해서든 우리와의 대비를 통해서든 실제의 참여를 고무할 수 있는 그런 사실들을 강조한다.”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한 민족의 모든 생활을 구성하는 거대한 유기적 통일을 아주 생생하게 모사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한 사람의 머리에서 이토록 참신한 관찰과 까마득히 먼 상황에 이토록 창의적으로 감정을 이입하는 능력이, 가장 보편적인 연관관계를 들여다보는 호방하고도 광범위한 시선과 결합한 적이 없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정신적 호기심, 부단한 탐구, 가장 낯선 것, 가장 기묘한 것, 까마득히 잊힌 것, 깊이 감추어진 것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부르크하르트 정신의 정수였다. 이 점에서 부르크하르트가 스위스 사람이라는 사실이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산악의 작은 분지, 이곳은 독일ㆍ프랑스ㆍ이탈리아 사람들이 공통의 민주헌법 아래서 서로 이해하면서 살아가는 일종의 작은 유럽이다. 이런 공간에서는 사해동포와 중립의 감정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그밖에도 이 공간에는 부르크하르트가 계속 추구했던 독일 역사학의 고상한 전통이 있었다. 랑케와 그의 계승자들뿐만 아니라 고전주의자들, 이를테면 칸트ㆍ헤르더ㆍ괴테ㆍ훔볼트ㆍ실러도 세계시민적 역사기술의 이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종교적 명랑과 활력과 넉넉함을 담고 있는 부르크하르트의 저작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정신은 지상의 다양한 시대의 경험에 대한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한때 환희와 탄식이 무엇이었던가를 이제는 인식해야만 한다.” 이 말이 그의 평생 활동의 신조였다고 할 수 있다.
    (/ '1권 부르크하르트' 중에서)

    “우리는 시간ㆍ기후ㆍ욕구ㆍ세계운명이 촉발하는 계기에서만 구상할 뿐이다. 나무는 자라고, 인간은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이는 세월과 관계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진행 중에 있다는 것만큼은 명백하다!” “행복에 겨운 모습조차도 상황과 지역에 따라 변한다. 모든 구(球)에는 그 중심이 있듯 모든 민족은 행복의 중점을 자체에 두고 있는 것이다!” 헤르더는 중세의 역사가 단순히 우두머리, 즉 황제와 몇몇 선제후의 병리학일 수 없고 전 민족적 구체, 즉 생활방식ㆍ교양ㆍ풍습ㆍ언어 등속의 생리학이어야 한다고 주창한다. 역사는 “왕들ㆍ전투ㆍ전쟁ㆍ법률ㆍ야비한 인물들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 전체와 그 상황, 종교, 사유방식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는 “여론의 역사”에서 행위역사의 열쇠를 발견한다.
    (/ '1권 레싱과 헤르더' 중에서)

    슈펭글러가 이해하듯, 서구 발전의 궁극 목적은 신경과민에 걸릴 만큼 훈련된 문명인의 정신 상태이며, 환상 없는 사실철학, 즉 세계시민의 회의주의와 역사주의이다. 한마디로 슈펭글러 자신이다. 그러나 슈펭글러가 무신론자ㆍ불가지론자ㆍ위장된 유물론자라는 점에서 그는 자기 시대의 산물인 셈이다. 그는 생물학ㆍ실험심리학ㆍ엄밀한 통계학뿐만 아니라 동력학에도 발을 딛고 있다. 우주의 의미나 내재적 신성을 믿지 않는다. 슈펭글러는 기술시대의 가장 예민하고 영민한 마지막 유산이며, 실제로는 다윈과 영국 감각주의 전체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이들의 학설을 뒤집을 때까지 파고들었던 점에서 그들의 최대 강적이었던 셈이다.
    (/ '1권 문명사학' 중에서)

    과학의 전체 역사를 보면 딜레탕티즘의 가치를 여전히 알려주는 실례가 많이 있다.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줄이라는 이름의 한 맥주 양조업자 덕분이다. 프라운호퍼는 유리 연마공이고 패러데이는 도서 제본업자였다. 괴테는 삽간골을 알아냈고, 멘델 목사는 기초적인 이종교배법칙을 발견했다. 연극연출 기술의 딜레탕트였던 마이닝겐 공작은 새로운 연극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의술의 딜레탕트였던 농부 프리스니츠는 새로운 치료법을 창안했다. 이는 19세기 사례에 불과할 뿐이며, 수많은 사례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완벽히는 알지 못하는 관계들에 대해 말하려는 용기, 정확히 관찰한 것은 아닌 사실들에 대해 보고하려는 용기,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사건들을 설명하려는 용기, 간단히 말해 어떤 사태에 대해 기껏 증명한다는 것이 틀렸다고만 말할 수 있을 뿐인 그런 것을 두고 말하려 하는 용기, 이런 용기야말로 모든 생산성, 특히 철학적ㆍ예술적 생산성, 혹은 예술이나 철학과 조금이라도 친화성이 있는 것의 생산성의 전제가 된다. 문화사에 관한 한, 그것을 딜레탕트의 손길 외에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역사가로서는 특정 지역, 예를 들어 15세기 후반의 뷔르템베르크 시에서 벌어진 반목에 대해 권위 있고 신빙성 있게 기술할 것인가, 아니면 슈바벤의 마가레테 마울타슈의 계보에 대해 그렇게 할 것인가, 아니면 문화사 국비장학생 외르겐 테스만 박사가 그랬듯이 중세 브라반트 주의 가내공업에 대해 그렇게 할 것인가, 아니면 가능한 모든 지역을 비교ㆍ요약할 것인가를 선택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경박하고 부정확한 모호한 방식을 취하기 마련이다. 세계사는 수많은 딜레탕트의 연구와 무자격자의 판단, 허점투성이의 정보로 조립될 수 있을 뿐이다.
    (/ '1권 타고난 딜레탕트' 중에서)

    우리가 이미 슈펭글러의 경우에서 강조했듯이, 생명력이 있고 결실을 볼 수 있는 훌륭한 사상은 개인에 의해 창안되기보다는 항상 한 시대 전체의 집단적 의식의 산물이다. 이때 문제는 누가 그러한 사상을 가장 예리하게 공식화하고 가장 명확히 조명하여 광범위하게 그것을 응용할 수 있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 '1권 합법적 표절자' 중에서)

    새로운 역사단면의 시작은 새로운 인간을 수태하는 그 시점에서 비롯된다. 수태한다는 말은 이중적 의미를 띤다. 새로운 시기는 큰 전쟁이 발생하거나 중단되었을 때, 강력한 정치적 변혁이 일어났을 때, 영토의 결정적 변화가 발생했을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종의 새로운 변이형이 착상되는 순간에 시작된다. 왜냐하면 인류의 내적 경험만이 역사에 계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개 직접적 충격은 지축을 흔드는 외적 사건, 즉 보편적 파국, 이를테면 무서운 역병ㆍ사회계층의 근본적 위치변동ㆍ광범위한 침략ㆍ경제적 가치의 갑작스러운 변동 등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변화의 시작은 대개 어떤 엄청난 트라우마, 예컨대 도리스인의 이동ㆍ민족대이동ㆍ프랑스 혁명ㆍ30년 전쟁ㆍ세계대전과 같은 쇼크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쇼크에 이어 새로움의 자궁이 되는 정신적 외상의 노이로제가 나타난다. 이 증상을 통해 모든 것이 철저히 키질되면서 ‘교란되어’ 불안한 무정부와 카오스의 상태가 유발된다. 집단적 표상이 유동하면서 이른바 동원되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가 말하는 ‘수의운동의 상부구조’는 이후에야 형성된다. 그것은 뇌수 조절과 억제 및 안정의 체계로서 ‘평소’의 정신적 기능 작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의고전주의’는 시대의 이러한 그룹에 귀속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도식에 근거해서 이제 우리는 근대의 인간을 수태한 해는 ‘흑사병’이 발생한 1348년이었다고 감히 주장해본다.
    (/ '1권 새로운 인간의 수태' 중에서)

    권력을 획득한 대(大)부르주아지가 즉물적으로, 현실적으로 재미없게, 그래서 따분하게, 그리고 꾸밈도 환상도 없이 처신하는 것도 일종의 의상인 셈이다. 금융자본가가 자신의 은행 집무실 바깥에서도 동물적인 성실함을 갖고 실용적으로 서민처럼 행하는 그 모든 것도 의상이며, 연기와 그을음을 먹고 살아가는 날품팔이, 마권(馬券) 장수, 외판원, 그리고 상인과 저널리스트들, 상품유통이나 정보수집의 어설픈 대리인들에게도 나름의 의상이 있었다.
    (/ '4권 가스등 불빛 아래의 세계' 중에서)

    저자소개

    에곤 프리델(Egon Friedell)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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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8년 1월 2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 자유주의 분위기가 지배적인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헤겔을 공부함. [철학자로서의 노발리스]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진보적인 잡지 '횃불'에 글을 실으면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함. 극작가, 연극평론가, 문예비평가, 문화학자로 활약함. 1920~1930년대, 오스트리아 빈 문화계에서 중요한 인사로 활동함.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가 이끄는 베를린과 빈 극단에서 1922년부터 1927년까지 연극배우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음. 히틀러 군대가 오스트리아로 침공한 직후인 1938년 3월 16일, 나치 돌격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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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 독어독문학과에서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cs) 연구(2000)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대구대학교 기초교육대학 창조융합학부 교수로 재직 중. 저서로는 [예술과 실천], [비판과 해방의 철학](공저), [계몽의 신화학을 넘어]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G. 루카치의 [이성의 파괴](전2권), [발자크와 프랑스 리얼리즘], H. M. 엔첸스베르거의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 A. 브라이히, U. 렌츠의 [일 덜 하는 기술], L. 코와코프스키의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전3권), E. P. 톰슨의 [이론의 빈곤] 등이 있음. 주요 논문으로는 [무정부주의와 유토피아], [탈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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