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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심상》으로 등단한 박만진 시인의 시집 『붉은 삼각형』. 수행(修行), 자아, 순수(무구), 사랑, 고향(서산), 말재미(기표놀이) 등의 키워드로 구분되는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시들이 서로 다른 외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내면으로 수렴되면서 저자만의 시세계를 만들어간다.

‘현대시학시인선’ 013권. 1987년 『심상』으로 등단한 박만진 시인의 시집. 박만진의 시집 『붉은 삼각형』에 수록된 시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다음 몇 개의 키워드로 요약된다. 수행(修行), 자아, 순수(무구), 사랑, 고향(서산), 말재미(기표놀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키워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그의 시세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 시집의 각각의 시들이 서로 다른 외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내면으로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번 시집의 그의 시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가치는 ‘자기 수행 혹은 자아 탐구’라고 생각된다. ‘자기 수행 혹은 자아 탐구’는 자신의 생각 안에 화두를 갖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지지리도 가난한 내 눈이여!
어둠에 젖어 귀를 열려는가?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들으라.

하릴없이 쓸쓸한 내 귀여!
슬픔에 젖어 눈을 뜨려는가?

들리는 것만 듣지 말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라.
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보라.

어차피 내 눈이며 귀가 시의 둥지인 것을 어쩌랴.

2015년 6월

이은봉(시인, 문학평론가)
박만진의 이번 시집에서 자기 수행 혹은 자아 탐구의 내포는 「가야산 정경」, 「천장사 같은 시 한 채 짓고 싶다」, 「바람벽 겨울」, 「어두운 허공」, 「거울 속에 들어가다」, 「고 법장 스님과의 추억」 등의 시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시에서 그는 “산 속에서 듣는 물소리”로부터 “부처님 말씀”(을 깨닫기도 하고, “도비산 입구 수도사”의 “보름달 같은” 항아리로부터 “드렁드렁 코를 골며/ 깊이 잠든” 달마대사를 발견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수행하는 자아의 현존을 되묻고 있는 시 「거울 속에 들어가다」에서는 “시를 쓴답시고 빈둥거리는 내가 부끄럽다”라고 노래하기까지 한다. 급기야는 “거울 밖의 내가/ 거울 속의 나를 꺼내 놓는다면/ 거울 밖의 내가 나일까,/ 거울 속의 내가 나일까”라고 되묻는 것이 이들 시에서의 그이다.

수행하는 자아를 되묻고 있는 그의 시는 항상 순수하고 무구한 마음, 곧 천진한 자아와 더불어 존재한다.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이들 마음은 동심과 다르지 않다. 동심은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 곧 적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마음은 가리거나 꾸미지 않는 마음, 즉 자연의 그대로의 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들 투명하고 깨끗한 마음을 시인은 때로 노치, 사추 등의 기표를 통해 드러내기도 한다. 「노치원」 「사추기」 등의 시에 드러나 있는 철들지 않은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는 이 또한 시인이 지니고 있는 수행하는 자아의 결과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시인의 말

1부
생각의 알

호랑가시나무
만리포에 가면
배역에 대한
바퀴벌레
달걀
하루살이
사과
남산만 한 배
천년의 눈물
운석
너구리
울면
퐁, 퐁, 퐁,
서울행 버스에서
생각의 알
류방택별
류방택 선생 영정 우러러
김소엽 시인
파고다 담배

2부
개구리 헤엄

수레바퀴
강아지풀
섬
어머니 생각
상처
무이파
주먹이 운다
개구리 헤엄
노치원
사추기
무지개
홍시
가벼운 입맞춤
예쁜 고집쟁이
제발, 하느님!
외도
가시나무새
줄곧
사람새가 되어

3부
바람벽 거울

해 뜨는 서산
가야산 정경
천장사 같은 시 한 채 짓고 싶다
바람벽 거울
붉은 삼각형
호미
호랑이 얼굴
하늘 구름
어두운 허공
티브이를 켠 채로
무릎을 꿇어
20층 사내
전기밥솥
짝사랑도 사랑이다
거울 속에 들어가다
츠환러마?
복수, 복수초
장곡사 미륵불괘불탱
고법장 스님과의 추억

해설 │ 수행하는 삶 혹은 언어의 발견
이은봉 시인, 문학평론가

과일가게에서 청개구리 옷을
말끔히 차려입은 수박 한 통 샀다
푹푹 찌는 여름이
내게 수박의 무게를 들려주었다

청개구리 삼천 배의 크기라 해도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닌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는 수박,
엄연히 바닷물고기가 아니니
결코 그물을 씌운 것이 아니다

수박은 아예 입이 없으므로
일소처럼 망을 씌울 필요 없지만
덩두렷한 몸에 망을 씌운 채로
코아루아파트 104동 1005호까지
끙끙거리며 무사히 모시고 왔다

지구본처럼 생겨먹은 수박은
몇 차례 노크를 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바늘도둑이듯 소도둑이듯
부엌칼로 문 없는 문을 따니
붉은 삼각형이 수박의 문이다

―「붉은 삼각형」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