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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유고 3

원제 : 孤山遺稿
소득공제

2013년 9월 9일 이후 누적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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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고산유고] 번역서 완간!

[고산유고] 번역서 완간의 의미

이제까지 고산의 문학에 대해서 우리는 주로 국문 시가 위주의 연구를 해 왔다. 그 이유는 그의 작품 대부분이 난해한 한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2011년 하반기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고산유고] 번역서가 전 4권으로 완간됨으로써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국문시가 외에 그동안 살피지 못했던 한문으로 이루어진 고산 문학의 정수를 쉽게 살필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기존에 다루어 왔던 국문시가에 대한 이해 역시 보다 더 깊이 있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껏 국문문학 중심으로 논의되었던 고산의 문학세계 전반을 비로소 균형 있게 총체적으로 살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번역서의 발간은 매우 큰 의의를 갖는다고 하겠다. 물론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어지러운 정치 현실에 대하여 소신을 밝힌 상소문, 예송 등 당대 주요 논쟁에 대하여 소견을 피력한 것이 많아 정치적,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연구 자료로 활용 가치가 매우 높다. 이 번역서가 발간됨으로써 조선 중기의 정치, 사상, 문학 등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자료가 추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출판사 서평

윤선도의 고산유고(孤山遺稿) 최초완역!!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와 더불어 국문 고전시가의 3대 시인으로 꼽히는
고산 윤선도의 문집이 마침내 국내 최초로 전 4권으로 완역되었다.

■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의 삶 ː 혼란의 시대에 대처하는 지식인의 자세


고산이 살던 시대는 정치적 혼란기였다. 당파싸움의 격화와 사화(士禍), 광해군의 즉위에 따른 정치적인 혼란, 이이첨(李爾瞻) 세력의 전횡, 인조반정, 이후 일어난 병자호란의 참화, 효종의 승하와 이를 둘러싼 예송 논쟁 등 어느 하나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정치적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산은 부침을 거듭하는 한평생을 살았다.
1616년(광해군8) 고산은 30세의 나이로 이이첨의 전횡을 탄핵하는 [병진소(丙辰疏)]를 올렸다. 정계에 갓 입문한 신예 관료가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과 직접 대결한 이 일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후 고산의 삶을 결정지었다. 고산의 강직한 성품이 잘 드러난 대신에 결과적으로 이이첨 세력들로 인하여 경원(慶源)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이는 만년에까지 계속되는 유배의 시작이 된 것이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에도 고산은 바로 출사하지 못하고 42세인 1628년(인조6) 별시 문과 초시에 장원급제하면서부터 중앙 관직에 진출하였다. 뒷날의 효종인 봉림대군(鳳林大君)과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사부에 제수되고, 주요 관직을 거쳤으나 결국 정적들의 견제로 고향 해남(海南)으로 물러났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고산은 배를 타고 강화로 가다가 도성이 함락되고 인조가 삼전도(三田渡)에서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주도로 배를 돌렸다. 그러나 이 일 때문에 고산은 ‘왕을 알현하지 않고 돌아갔다[不奔問]’는 죄목으로 1638년 영덕(盈德)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여 자신의 사부였던 고산을 특명으로 부르자, [진시무팔조소(陳時務八條疏)]를 올려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붕당을 혁파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 당시의 실력자인 원두표(元斗杓)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다시 관직을 삭탈당하고 해남으로 돌아갔다. 69세인 1655년(효종6)에 다시 서용(敍用)되었지만 이후 끊임없는 반대로 결국 퇴직하고 말았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하자 고산은 73세로 효종의 산릉을 간심(看審)하는 데 참여하였다. 이때 본격적인 예송 논쟁이 시작되면서 고산은 남인으로서 삼년설을 주장하는 장문의 소를 올려 기년설을 주장한 송시열(宋時烈)을 배척하였으나, 이 논쟁에서 패하여 함경도 삼수(三水)에 위리안치되었다가 이후 광양(光陽)으로 이배되는 등 약 8년간의 유배 생활을 겪었다. 1667년(현종8) 8월 해남으로 돌아온 고산은 부용동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5년여 간 유유자적하게 보내다가 1671년에 85세로 별세하였다.

위에서 보듯 고산의 일생은 청년기에서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임병양란의 사회적 혼란과 사색당파의 어지러운 정치 현실 속에서 파란만장한 부침을 거듭하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신념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자신의 주장을 펴고 불의와 맞서 싸우다 박해를 받았다. 우리가 흔히 기억하고 있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문인의 이미지와는 사뭇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은 늘 혁명가를 꿈꾸는 존재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지식인으로서 혼란한 시대에 정면으로 맞서 살아간 윤선도의 치열했던 삶은 그 시대 못지않게 혼란한 오늘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 [고산유고] ː 문학서이자 경세서

1.
[고산유고] 번역서는 모두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권에는 시 250여 제가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간혹 시편에 주석이 붙어 있어 시적 성취뿐 아니라 고산의 개인사와 관련한 여러 상황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제2권에는 소(疏)와 서(書)가 수록되어 있다. 소(疏)에는 이이첨 등의 주벌을 청한 [병진소], 양전(量田)의 문제에 대해 논한 [을해소], 새로 즉위한 효종(孝宗)에게 진언한 [기축소(己丑疏)], 삭출(削黜)의 계기가 된 [논원두표소], 정개청을 변호하고 그의 문집 간행을 청한 [국시소], 자의대비 복제의 삼년설을 주장한 [논예소] 등이 실려 있다. 서(書)는 안부 편지와 특정 사안의 문답이 많다.
제3권에는 서(書), 제문(祭文), 서(序), 기(記), 설(說), 비명(碑銘), 잡저(雜著), 의(議), 잡록(雜錄) 등 다양한 종류의 산문이 실려 있다. 해남에 있으면서 지은 [금쇄동기(金鎖洞記)], 복제(服制) 문제로 삼수(三水)에 유배 갔을 때 지은 [서회(敍懷)], 효종의 산릉을 정하기 위해 올린 [산릉의(山陵議)] 등이 실려 있다.
제4권은 별집(別集)으로 장편시(長篇詩)와 부(賦), 논(論), 책(策) 등 각종 과제(科製)로 지은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뒤에 특히 국문 문학의 백미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산중신곡(山中新曲)], [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 [고금영(古琴詠)], [어부사시사], [몽천요(夢天謠)], [견회요(遣懷謠)], [우후요(雨後謠)] 등이 실려 있다. 끝에는 부록으로 1677년(숙종3) 홍우원(洪宇遠)이 지은 시장(諡狀)이 있다.

2.
조선 시대 사대부들에게 한시는 단순한 문학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가 가진 지적 역량이나 학문적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전하는 대부분의 문집에는 한시와 한문 산문이 대등한 비중으로 수록되어 있거나 때로는 한시만 수록되어 있는 경우까지도 있다.
그런데 고산 윤선도는 우리에게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와 함께 고전 국문시가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 일컬어져 왔고, 많은 사람들이 고산을 [오우가] 혹은 [어부사시사]의 작가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고산의 문집을 살펴보면 국문시가는 문집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 대부분은 한시나 한문으로 쓴 문장들이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문학창작 활동은 한문학이 중심일 수밖에 없다고 볼 때, 국문학 작가로서 고산의 문학적 성취를 살피는 것은 고산 문학의 극히 일부만을 살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고산에게 강호에서의 생활은 타의에 의해 강요된 선택이었다. 하지만 격동의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부침을 거듭하던 고산의 일생은 오히려 강호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흥취를 얻고 향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얻은 심미적 체험은 그에게 시작품을 통해 자연 경물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창작 동기와 여건을 아울러 얻게 해 주었다. 따라서 사물의 다양한 모습은 그의 시에서 중요한 주제가 된다.
[고산유고]의 경우 번역서 제1권과 제4권에 한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국문시가보다 분량도 훨씬 많을 뿐 아니라 내용 또한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다. 고산이라는 한 작가의 작품이 국문과 한문으로 표현 매체를 달리하여 나온 것이라고 본다면, 고산의 국문시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한문으로 창작된 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완간된 [고산유고] 번역서는 고산의 한시에 대한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기존의 국문시가 연구도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고산의 명성이 널리 알려진 것은 운문이 아니라 산문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이첨의 전횡을 탄핵한 [병진소(丙辰疏)]의 일부를 보자.

신하 된 자가 만약 나라의 권세를 한 손에 쥐게 되면, 자기의 복심(腹心)을 중요한 자리에 배치하여 위복(威服 상벌(賞罰))의 권한이 자기에게서 나오게 할 것입니다. 설사 어진 자라도 이렇게 하면 안 될 것인데, 더군다나 어질지 못한 자가 이렇게 한다면 나라가 또한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지금 성상(聖上)께서 임어(臨御)하시어 군군신신(君君臣臣)하는 때이니 당연히 이와 같은 사람은 없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 삼가 예조 판서(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이 하는 짓을 보건대, 불행히도 여기에 근사(近似)하기에, 신은 삼가 괴이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신하가 임금의 권세를 가로챘을 때의 문제점을 직접 거론하고 있다. 고위관직에 있는 상대의 권위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숨김없이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산은 경원(慶源)으로 유배를 갔다. 게다가 당시 많은 선비들이 시사(時事)를 말하다가 북쪽으로 유배를 당했는데, 이이첨은 이것마저도 불쾌하게 여기고 "북쪽으로 귀양 간 사람들이 호지(胡地)에 가까이 있는 만큼 필시 오랑캐와 내통할 것이니, 모두 남쪽 변방으로 옮겨야 한다."라고 하여 고산은 기장(機張)으로 이배(移配)되었다.
인조반정 후에는 원평부원군(原平府院君) 원두표(元斗杓)가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로만 믿고, 제멋대로 기세를 올리며 교만하게 굴자 사람들이 모두 걱정하였으므로, 고산이 또 상소를 올렸다.

원두표는 재주는 많아도 덕은 없고, 이익만 좋아할 뿐 의리는 없으며, 성질이 사납고 음흉하며, 표독스러우면서 화심(禍心)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길가에서 이야기하는 자들이 모두 좋게 죽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원두표를 먼 외방에 한가히 머물게 하여 공신(功臣)을 보호하는 도리를 곡진히 하소서.

이 때문에 고산은 문외출송(門外黜送)을 당하였다. 그런데 원두표는 이때부터 자신을 억제하며 단속하려고 힘썼으므로, 그가 생애를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공이 상소한 덕분이라고 사람들이 말하였다고 한다.
예법 문제로 상소를 올리려고 할 때 동료가 그 소를 그만두도록 권한 일이 있었는데 이때 고산은 그에게 이렇게 답하였다고 한다.

나의 소장(疏章)이 가로막혀서 위에 진달할 수 없다면 그만이지만, 어찌 내가 스스로 그만둘 수가 있겠는가. 처음부터 나의 이해를 계교(計較)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위세(威勢)와 화복(禍福)에 겁을 먹은 나머지 뜻을 굽혀 세상에 아부할 수가 있겠는가.

당당하고 이해에 얽매이지 않는 고산의 기상을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목차

일러두기

고산유고 제4권

서書 단單
이 현풍 필성 에게 답하는 글 임신년 答李玄風 必成 書 壬申
예조 판서에게 올리는 글 임신년 上禮曹判書書 壬申
서제 선하에게 부치는 답서 갑술년 寄答庶弟善下 甲戌
백 생원 상빈 에게 답하는 글 을해년 答白生員 尙賓 書 乙亥
어떤 사람에게 답하는 글 정축년 答人書 丁丑
이 사부 심 에게 주는 글 병술년 與李師傅 書 丙戌
강진 성주에게 올리는 글 呈康津城主書
이 사부 심 에게 답하는 글 무자년 答李師傅 書 戊子
정 판서 세규 에게 올리는 글 무자년 上鄭判書 世規 書 戊子
어떤 사람을 대신하여 상주 관아에 올리는 글 代人呈尙州
해남 성주에게 올리는 단자 무자년 呈海南城主單子 戊子
정 판서 세규 와 심 판서 액 에게 올리는 글 기축년
上鄭判書 世規 沈判書 書 己丑
정 정언 세보 에게 답하는 글 기축년 答鄭正言 世輔 書 己丑
정 판서 세규 에게 올리는 글 기축년 上鄭判書 世規 書 己丑
권반금 해에게 부치는 글 경인년 寄權伴琴海書 庚寅
탐라백 이원진 에게 답하는 글 答耽羅伯 李元鎭 書 辛卯
탐라백 이원진 에게 주는 글 신묘년 與耽羅伯 李元鎭 書 辛卯
홍 경력 면경에게 답하는 글 계사년 答洪經歷勉卿書 癸巳
거산 우관 이화봉에게 주는 글 을미년 與居山郵官李華封書 乙未
송 좌윤 시길 에게 답하는 글의 별폭 을미년 6월
答宋左尹 時吉 書別幅 乙未六月
전남 아막에게 보내는 글 을미년 10월 抵全南亞幕書 乙未十月
전남 방백에게 올리는 글 병신년 呈全南方伯書 丙申
전남 방백에게 올리는 단자 병신년 呈全南方伯單 丙申
전남 순상에게 올리는 단자 병신년 呈全南巡相單 丙申
전남 순상 조계원 에게 답하는 글 병신년 10월
答全南巡相 趙啓遠 書 丙申十月
전남 순상에게 주는 별폭 병신년 11월 與全南巡相別幅 丙申十一月
족제 윤선각에게 답하는 글 정유년 答族弟尹善覺書 丁酉
성주에게 올리는 글 정유년 上城主書 丁酉
성주에게 올리는 글 정유년 8월 上城主書 丁酉八月
변 서천 인길 에게 답하는 글 무술년 答邊舒川 麟吉 書 戊戌
권 찬선 시 이 타인의 소지를 보내온 것에 답하는 글 무술년 7월
答權贊善 抵他人小紙 戊戌七月
이 사간 무 에게 주는 글의 별폭 무술년 10월 與李司諫 書別幅 戊戌十月
정 지사 세규 에게 올리는 글 무술년 11월 上鄭知事 世規 書 戊戌十一月
정 진사 길보의 《대학》 문목에 답하다 무술년 12월
答鄭進士吉甫大學問目 戊戌臘月
별지 別紙
정 진사 길보에게 주는 글 기해년 1월 與鄭進士吉甫書 己亥正月
별폭 別幅
정 진사 길보에게 주는 글 기해년 1월 與鄭進士吉甫書 己亥正月
격물과 물격에 대한 설 格物物格說
정 지사 세규 에게 올리는 별폭 기해년 1월 上鄭知事 世規 別幅 己亥正月
정 진사 길보에게 답하는 글 기해년 2월 答鄭進士吉甫書 己亥二月
외손 이양원에게 답하는 글 기해년 答外孫李養源書 己亥
외손 심주 심단 형제에게 답하는 글 기해년 答外孫沈柱檀兄弟書 己亥
정 진사 길보의 문목에 답하다 기해년 3월 答鄭進士吉甫問目 己亥三月
정 진사 길보의 별폭에 답하다 기해년 3월 答鄭進士吉甫別幅 己亥三月
이 해남 휴징에게 주는 짧은 편지 기해년 윤3월
與李海南休徵小牘 己亥閏三月
정 진사 길보에게 주는 글 기해년 윤3월 與鄭進士吉甫書 己亥閏三月
정길보의 별폭 문목에 답하다 기해년 4월 答鄭吉甫別幅問目 己亥四月
정 지사 세규 의 별폭에 답하다 기해년 4월
答鄭知事 世規 別幅 己亥四月
정 진사 길보에게 답하는 글 기해년 5월 答鄭進士吉甫書 己亥五月
총호사에게 올리는 글 기해년 6월 上摠護使書 己亥六月
심 승지 광수 에게 답하는 글 기해년 6월 答沈承旨 光洙 書 己亥六月
총호사에게 올리는 글 기해년 7월 上摠護使書 己亥七月
황 서산 도명에게 답하는 글 기해년 7월 答黃瑞山道明書 己亥七月
정 진사 길보의 문목에 답하다 기해년 9월 答鄭進士吉甫問目 己亥九月
정 진사 길보의 문목에 답하다 기해년 9월 答鄭進士吉甫問目 己亥九月
정 진사 길보의 문목에 답하다 기해년 12월
答鄭進士吉甫問目 己亥十二月
족제 윤선각에게 답하는 글 경자년 1월 答族弟尹善覺書 庚子正月
정 진사 길보의 문목에 답하다 答鄭進士吉甫問目
이 사간 무 에게 주는 글 경자년 與李司諫 書 庚子
정 진사 길보의 문목에 답하다 答鄭進士吉甫問目
백헌 상공에게 올리는 글 경자년 2월 上白軒相公書 庚子二月
정 진사 길보에게 부치다 경자년 3월 柬鄭進士吉甫 庚子三月
백헌 상공에게 올리는 글 경자년 3월 上白軒相公書 庚子三月
이 해남 휴징에게 답하는 글 경자년 答李海南休徵書 庚子
함경 도사 황도굉에게 주는 글 경자년 與咸鏡都事黃道宏書 庚子
정 진사 길보에게 주는 글 경자년 6월 與鄭進士吉甫書 庚子六月
서제 선양에게 부치는 글 경자년 7월 寄庶弟善養書 庚子七月
별감 윤기문과 진사 윤기장을 위로하는 글 경자년
慰尹別監機文進士機章書 庚子
정 상서 세규 에게 주는 글 경자년 與鄭尙書 世規 書 庚子
이생 보만에게 답하는 글 경자년 答李甥保晩書 庚子
안생 서익에게 답하는 글 경자년 答安甥瑞翼書 庚子
이 진사 만봉에게 주는 글 신축년 與李進士萬封書 辛丑
정 상서 세규 에게 답하는 글 신축년 6월 答鄭尙書 世規 書 辛丑六月
어떤 사람에게 답하는 글 신축년 答人書 辛丑
외손 이양원에게 답하는 글 신축년 答外孫李養源書 辛丑
안서익에게 답하는 글 신축년 6월 答安瑞翼書 辛丑六月
소아 예미 에게 부치는 글 신축년 寄小兒 禮美 書 辛丑
양제에게 답하는 글 신축년 答養弟書 辛丑
이 진사 만봉에게 답하는 글 신축년 7월 答李進士萬封書 辛丑七月
아손에게 주는 글 신축년 與兒孫書 辛丑
안생 서익에게 답하는 별폭 신축년 9월 答安甥瑞翼別幅 辛丑九月
정 진사 길보에게 부치는 글 신축년 寄鄭進士吉甫書 辛丑
조용주에게 주는 글 임인년 與趙龍洲書 壬寅
조용주의 답서 趙龍洲答書
외손 심주와 심단 형제에게 답하는 글 임인년 答外孫沈柱檀兄弟書 壬寅
정 진사 길보에게 답하는 글 임인년 2월 答鄭進士吉甫書 壬寅二月
이 진사 만봉에게 답하는 글 임인년 2월 答李進士萬封書 壬寅二月
외손 심주와 심단 형제에게 주는 글 임인년 與外孫沈柱檀兄弟書 壬寅
정자 강석규에게 주는 글 임인년 與姜正字錫圭書 壬寅
갑산 일향에 답하는 글 임인년 4월 答甲山一鄕書 壬寅四月
객목 임인년 4월 客目 壬寅四月

고산유고 제5권 상

서 書
갑산 부사 조부에게 주는 글 임인년 5월 與甲山伯趙書 壬寅五月
조주봉에게 답하는 글 임인년 6월 答趙柱峯書 壬寅六月
남병사 이여발에게 주는 글의 별폭 임인년 11월
與南兵使李 汝發 書別幅 壬寅十一月
삼수의 교생 등이 본군에 정소하는 글 임인년 12월
三水校生等呈本郡書 壬寅十二月
남병상 이여발에게 주는 글 계묘년 1월 與南兵相李 汝發 書 癸卯正月
이석과 이후 두 손자에게 답하는 글 갑진년 2월 答錫厚兩孫書 甲辰二月
청해 소부 황도굉에게 주는 글 갑진년 4월 與靑海少府黃道宏書 甲辰四月
손자 이후에게 답하는 글 갑진년 4월 孫爾厚答書 甲辰四月
주부 권념에게 답하는 글 갑진년 윤6월 答權主簿書 甲辰閏六月
남병상 구문치에게 사례하는 글 갑진년 8월
謝南兵相具 文治 書 甲辰八月
조용주에게 답하는 글의 별폭 갑진년 9월 答趙龍洲別幅 甲辰九月
이석과 이후 두 손자에게 부치는 답서 을사년 1월
答寄兩孫爾錫爾厚書 乙巳正月
대아에게 부치는 답서 을사년 答寄大兒書 乙巳
하 의흥 홍도 에게 답하는 글 을사년 答河義興 弘度 書 乙巳
조 판서에게 올리는 글의 별폭 병오년 4월 上趙判書別幅 丙午四月
태인의 수재 이민정에게 주는 글 병오년 7월 與泰仁李敏政書 丙午七月
별지 別紙
정유악에게 답하는 글 정미년 1월 答鄭維岳書 丁未正月
대아에게 부치는 글 寄大兒書
어떤 사람에게 답하는 글 答人書
어떤 사람에게 보내는 글 抵人書

고산유고 제5권 하

제문 祭文
윤명보에 대한 제문 을묘년 祭尹明保文 乙卯
현고에 대한 제문 기미년 祭顯考文 己未

회문 回文
파산 선조의 묘에 가토하고 개사초하는 회문 기축년 坡山先祖墓加土改莎草回文 己丑
오대조 고비 삼위의 신주를 매봉하는 회문 기축년 五代祖考三位神主埋奉回文 己丑
선조의 묘제에 대하여 입의한 조약의 회문 기축년
先祖墓祭立議條約回文 己丑
파산 제파의 미포를 수합한 것과 관련한 회문 기축년
坡山諸派米布收合回文 己丑
파산 제파의 미포를 수합한 것과 관련한 회문 坡山諸派米布收合回文
제사에 쓰는 미포에 대해서 핑계를 댄 사람들 아래에 표시한 제목 기축년 祭用米布托故之人下立標題目 己丑

축문 祝文
파산 육대조 묘제의 축문 기축년 坡山六代祖墓祭祝文 己丑
산신의 축문 山神祝文
파산 오대조 묘제의 축문 기축년 坡山五代祖墓祭祝文 己丑
산신의 축문 山神祝文
부용동 토신제의 축문 芙蓉洞土神祭祝文

조약 條約
향사당의 조약 병신년 鄕社堂條約 丙申

서 序
봉사 숙을 전송하는 서 送奉事叔序
장한이 강동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는 서 送張翰歸江東序
이 제주를 전송하는 서 정유년 送李濟州序 丁酉
〈삼수군선생안〉의 서 三水郡先生案序

기 記
금쇄동의 기문 金鎖洞記

설 說
예설 禮說
말이 개를 짓밟은 것에 대한 설 馬踐犬說

비명 碑銘
증 가선대부 이조 참판 행 통훈대부 시강원 필선 정공의 신도비명 병서 신축년 贈嘉善大夫吏曹參判行通訓大夫侍講院弼善鄭公神道碑銘 幷序 辛丑
통훈대부 행 한성부 판관 조공의 묘갈명 병서 병오년 通訓大夫行漢城府判官曺公墓碣銘 幷序 丙午
통훈대부 행 통례원 상례 이공의 묘갈명 병서 通訓大夫行通禮院相禮李公墓碣銘 幷序
금산군의 묘갈명 병서 錦山君墓碣銘 幷序
군자감 봉사 백공의 묘갈명 병서 軍資奉事白公墓碣銘 幷序

잡저 雜著
신해년 원일에 회포를 적다 辛亥元日記懷
전답 상송 문안의 결미에 붙여 쓴 책자의 앞면에 제하는 글 題田畓相訟決尾傅書冊面
기해년 봄에 동고와 율곡 양공의 문집을 보고 느낀 점이 있기에 쓰다 己亥春見東皐栗谷兩公文集有感
회포를 적다 敍懷
을사년 8월 18일의 꿈을 기록하다 乙巳八月十八日記夢

의 議
산릉의 기해년 山陵議 己亥
김영렬의 묘산 金英烈墓山
윤반의 묘산 尹磻墓山
광주 속달의 동래군 묘산 廣州束達東萊君墓山
남양 홍 정승의 묘소와 홍기영의 족장 南陽洪政丞墓所洪耆英族葬
수원 호장 집의 뒷산 水原戶長家後山
낙생역의 이증 묘소 樂生驛李增墓
양재의 새로 천거하는 산 良才新薦山
벌아치산 伐兒峙山
왕십리의 산 王十里山
건원릉 안에서 새로 얻은 산 健元陵內新得山
건원릉 좌측의 첫 번째 언덕 健元陵左一岡

잡록 雜錄
성산 현감에서 체차된 뒤에 추고를 받고 함답하는 글 을해년 겨울
星山遞來後推考緘答 乙亥冬
공사 무인년 4월 供辭 戊寅四月
산릉을 간심할 때 추고를 받고 함답하는 글 기해년
山陵看審時推考緘答 己亥

저자소개

생년월일 1587~1671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조선 시대에 활동했던 문인이자, 시조 작가다. 본관은 해남(海南)이고, 자(字)는 약이(約而)이며, 호(號)는 고산(孤山) 혹은 해옹(海翁)이다. 1612년 26세의 나이로 진사(進仕)에 급제했고, 성균관 유생 신분으로 1616년 당시의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 일파를 탄핵하는 상소([병진소])를 올렸다가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이 시기 유배지에서 [견회요]와 [우후요] 등의 시조를 창작했다. 1618년 유배지가 경상도 기장으로 옮겨졌다가, 인조반정(1623) 직후 대사면령이 내려 유배에서 풀려 전라도 해남으로 돌아갔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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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49
출생지 전주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전주 출생.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의 연수부, 상임연구원, 전문위원을 거친 뒤, 한국고전번역원의 수석연구위원으로 재직하였다. 한국불교전서의 역서로 [원감국사집]·[대각국사집]·[기암집]·[침굉집]·[부휴당대사집]·[사명당대사집]·[송운대사분충서난록]·[무용당유고]·[청허당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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