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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과 간디 : 평화를 향한 같고도 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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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홍규
  • 출판사 : 들녘
  • 발행 : 2015년 05월 22일
  • 쪽수 : 312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75276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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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간디와 함석헌의 삶과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함석헌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운동사와 기독교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또한 간디는 톨스토이에 이어 세계적 평화주의자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이들 두 사람은 살던 시대와 나라는 달랐지만 자국 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과 독립, 더 나아가 인류의 평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인간의 모범이자 인류의 스승으로 간주된다. 그만큼 숭배의 대상으로, 혹은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는다. 사실 함석헌과 간디는 '제국주의에 국권을 침탈당한 식민지'라는 배경 아래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 살아온 궤적의 유사함 때문에 종종 함께 거론되고 비교되어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는 비슷한 점만큼이나 다른 점이 많다. 이를 테면 사상의 측면에서도 함석헌과 간디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민중을 말했으나 민중의 입장에서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간디와 달리 함석헌은 사회주의를 거부했고, 서양 기독교 사관에 입각한 함석헌이 동서양을 철저히 구분한 오리엔탈리스트였으며 한국을 비롯한 동양 역사에 대해 열등감을 가졌던 반면 간디는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에 반대해 동서양의 구분이 문제가 아니라 현대 서양의 물질문명이 문제라고 보았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자국 역사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간디가 인도문명에 대한 자부심으로 민중의 자존심을 고취하면서 독립을 추구했던 데 비해 함석헌은 만주 중심의 역사관과 신의 뜻을 주장하는 '섭리사관'을 견지한다. [함석헌과 간디: 평화를 향한 같고도 다른 길]은 한마디로 함석헌과 간디를 역사 속에서 소환하여 되짚어보는 책이다. 무조건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방치하기보다 그들의 삶과 사상을 통해 '오늘 우리가 본받아 따라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적확하게 짚어야만 비로소 두 사람의 참뜻이 온전하게 부활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이 책은 '간디와 함석헌 뛰어넘기'를 시도한 최초의 비판서이자 두 사람의 진정한 부활을 꿈꾸는 첫 시도가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함석헌과 간디를 실천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비판적 톺아보기!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가 따라야 할 인간의 모범 함석헌과 간디
    그 두 사람의 삶과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분석한 최초의 책!!


    왜 함석헌과 간디 비판인가?
    함석헌과 간디의 삶, 그리고 사상은 같으면서도 달랐다. 자유와 민주주의, 문명과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교육사상, 역사관도 달랐다. 이런 차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할 테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과연 어떤 가치들을 공유했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그들은 자유, 자치, 자연의 가르침을 공유했다. 인간과 사회, 자연을 늘 함께 생각했다. 에콜로지, 아나키즘, 세계시민주의, 비폭력주의, 생활의 절제, 평화주의, 민중민주주의, 직접행동주의, 공동체주의 등등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들 가운데엔 현대인이 따라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보여준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삶 자체가 그렇다. 하지만 함석헌과 간디에 대해 "그 시대, 그 나라에서는 대단히 중요하고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는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지 않는 한 존경과 숭배는 무의미하다. 우리 시대, 우리나라에 맞게 충분히 재검토하고 재조명함으로써만 그들의 사상을 더욱 완전하게, 비판적으로, 지금 여기에서 주체적이며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한국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함석헌과 간디의 사상을 보다 정확하게 편견 없이 이해하고, 이를 통해 종국에는 간디와 함께 함석헌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과제이다. 그래야만 그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보다 더 차갑고 음습한 겨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리고 우리 후손들이 봄다운 봄, 진정한 새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숭배가 끝나는 순간 존경이 시작된다
    함석헌과 간디는 종교에 바탕을 둔 위대한 사상가이며 행동하는 지성인이자 비폭력 평화운동의 지도자였고, 자연을 중시한 생태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이며 민주주의 인권운동가였다. 이제 간디나 함석헌의 사상은 인도나 한국이라는 좁은 영역을 떠나 19~20세기는 물론 인류사 전체를 아우르는 세계사상사의 차원에서 폭넓게 조명되어야 한다. 특히 함석헌은 기독교나 기독교사상의 차원만이 아니라 세계와 한국의 역사 전반, 사상사 전반, 종교사 전반, 문학사 전반, 사회사 전반의 차원에서 충분히 심도 있게 검토되어야 한다. 이 같은 맥락 아래 두 사람을 비교하면서 저자는 "무엇보다도 나는 함석헌과 간디 두 사람의 비교가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령 함석헌이 간디를 수용하고(그 반대가 아니라), 함석헌의 간디 이해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고 해서 누구의 우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태도이다. 어떤 사람이나 사상을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통하는 절대 진리인 양, 혹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해결사인 양 취급하는 것은 미신에 다름 아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판 없이 발전 없다. 그 누구도 비판 없는 성역에 머물 수 없고 머물러도 안 된다"고 덧붙인다. 맹목적인 추종이 아니라 '그들처럼 넓고 깊은 마음으로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갈' 때, 함석헌과 간디의 정신이 진정으로 이 땅에서 부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학자, 언론인, 지도자, 종교인의 모범이자 인간의 모범인 함석헌과 간디. 지금은 그들을 거울삼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다.

    가장 적극적으로 자율과 평화의 삶을 실천한 인류의 스승
    물론 함석헌과 간디의 사상이 지금 우리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중에는 따르지 말아야 할 것도 많다. 간디가 병원을 무척 싫어했다는 점이라든지 카스트제도를 인정한 점, 비폭력주의를 주장하면서 일견 폭력행위를 묵인했던 것, 필요에 따라 말을 바꾸었던 행동 등이 그렇다. 함석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 역사 전체를 신의 섭리에 의한 고난이라고 본 것, 그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만주 땅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 것, 오리엔탈리즘이나 반공주의, 그리고 엘리트주의와 성경주의, 이스라엘주의와 문명주의 등에 대해서 무조건 찬성할 수는 없다. 이렇듯 간디와 함석헌에게도 비판해야 할 점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간디와 함석헌을 '인간의 모범'으로 여기는 이유는 두 사람의 자율성 철학과 비폭력주의, 그리고 평화를 향한 부단한 행보에 있다. 무엇보다 함석헌과 간디는 소박한 자율의 삶이야말로 인류가 나아갈 삶의 방향이라는 믿음을 준다. 이제 우리는 간디의 사상을 발판 삼아 시민저항에 필요한 전략적 수단으로서 비폭력주의, 그리고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권운동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함석헌의 역사관을 뛰어넘어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가 고민했던 바처럼 민중의 나아갈 길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간디가 구상했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비전에 주목함으로써 함석헌이 수용했던 제한된 간디 사상을 극복해야 한다.

    새로 쓰는 함석헌과 간디 이야기
    '함석헌의 간디 사상 수용'에 대한 연구와 저술 활동의 결과물인 이 책은 "왜 지금 우리에게 함석헌과 간디가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앞뒤로 하여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의 형성 과정, 가르침, 세상과의 만남, 각 분야에 대한 관점 등을 다룬다. 1장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겠는가?]는 함석헌이 왜 살아생전 그토록 셸리의 시 ?서풍?을 애송했는지, 그 시를 알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서풍?은 함석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탐색한다. 2장은 [함석헌의 삶, 간디의 삶]이라는 타이틀 아래 간디와 함석헌의 삶을 구체적으로 되짚는다. 특히 간디가 스승으로서 존경한 톨스토이를 먼저 소개함으로써 톨스토이→간디→함석헌에 이르는 자율과 평화운동의 계보를 이해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간디와 함석헌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살펴보는 재미를 쏠쏠하게 맛볼 수 있는 장이다. 3장 [함석헌의 간디 수용]은 함석헌이 간디의 삶과 사상을 어떤 식으로 수용했는지 보여준다. 4장 [함석헌과 간디의 역사 인식]은 이 책의 클라이맥스다. '자국사관', '동서양관', '동양관'을 기준으로 두 사람의 역사관을 비교하는데, 함석헌이 영향을 많이 받은 우치무라와 후지이를 다룬 내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또한 함석헌의 트레이드마크인 '섭리사관'과 만주사관, 그리고 그의 한국사 해석 방법 등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저자의 비판적 시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장이기도 하다. 5장 [바가바드기타로 본 함석헌과 간디의 종교관]은 두 사람이 중시한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분석한다. 이 장을 통해 함석헌과 간디의 종교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 장인 6장은 [함석헌과 간디 사상의 비교]이다. 민중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문명', '국가주의', '자본주의', '자유와 민주주의', '자치사상', '사회주의', '비폭력주의적 정치행동', 그리고 '교육'에 대한 두 사람의 사상을 비교·검토할 수 있다. [함석헌과 간디 : 평화를 위한 같고도 다른 길]은 함석헌과 간디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 그들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더욱 자세히 이해하길 원하는 사람, 그리고 인류가 나갈 방향과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다.

    목차

    저자의 말
    프롤로그
    왜 함석헌과 간디인가? | 나의 함석헌과 간디 | 비판의 의미 |편집의 묘미인가, 진실의 곡해인가? | 정신분열증, 혹은 또라이?

    1장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겠는가?
    함석헌과 [서풍]
    [서풍] | 시인 함석헌이 사랑한 시 | 함석헌은 왜 [서풍]을 좋아했을까? | 서풍은 정치 해방의 상징이다 | 함석헌은 어떻게 [서풍]을 알게 되었나? | [1819년 영국] | 함석헌이 좋아한 셸리
    [서풍] 속으로
    [서풍]은 에콜로지 시인가? | 나도 서풍이 그립다

    2장 함석헌의 삶, 간디의 삶
    간디의 삶
    런던의 간디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간디의 사상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 영국의 소로 헨리 솔트 | 동양문화에 심취한 시인 에드윈 아널드 |
    여성 지도자 애니 베전트 | 종교 단체 '윤리적 종교' | 시 짓는 사회사상가 카펜터
    간디의 스승 톨스토이
    톨스토이의 단순한 삶 | [천국이 네 안에 있다] | 톨스토이의 종교관·국가관·사회관·과학관 |
    톨스토이, 삶의 전환점에 서다 |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인생론]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확립하다 | 톨스토이, 간디를 통해 인도에서 부활하다
    남아프리카의 간디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동료애를 강조한 사회사상가 존 러스킨 | 폴락과 칼렌바흐 | 1906년과 1909년 런던과 남아프리카의 간디
    함석헌의 삶
    함석헌의 학생기 | 함석헌의 교사기 | 함석헌의 사도기 | 함석헌의 투사기
    함석헌에게 영향을 준 사상들
    함석헌과 디오게네스 | 함석헌과 신채호 | 함석헌, 간디, 톨스토이, 우치무라 | 웰스, 함석헌, 웨브 |함석헌과 무교회 | 함석헌과 퀘이커 | 함석헌의 미국 여행 | 테야르 드 샤르댕

    3장 함석헌의 간디 수용
    '한국의 간디' 함석헌
    함석헌은 간디를 언제 어떻게 받아들였나?
    일제하 조선의 간디 수용 | 1959년 이전 함석헌의 간디 수용 | 1959년 이후 함석헌의 간디 인식 |
    함석헌이 본 한국의 '간디의 길' | [새 인도와 간디] | 함석헌이 이해한 인간 간디

    4장 함석헌과 간디의 역사 인식
    역사를 어떻게 볼까?
    함석헌과 간디의 역사관 비교
    함석헌과 간디의 역사관 | 간디와 함석헌의 자국사관 | 간디와 함석헌의 동서양관 |간디와 함석헌의 동양관
    함석헌과 우치무라
    우치무라는 누구인가? | 우치무라의 역사관 | 우치무라와 함석헌
    함석헌과 후지이
    후지이의 역사관 | 함석헌과 후지이 | 함석헌과 일본 | 함석헌의 미국 사랑
    함석헌의 섭리사관
    고난의 역사 | 만주를 되찾아야 고난이 끝난다? | '삐뚤어진 역사' | 함석헌의 섭리사관 |섭리사관이 아니라는 주장의 검토
    함석헌은 한국사를 어떻게 해석했나?
    만주를 중심으로 한 만주사관 | 종교에 대한 함석헌의 섭리적 해석 |일제강점기 이후에 대한 견해의 변화 | 3ㆍ1운동에 대한 견해

    5장 [바가바드기타]로 본 함석헌과 간디의 종교관
    왜 [바가바드기타]인가?
    간디와 함석헌은 [바가바드기타]를 어떻게 해석했나?
    해석 방법의 비교 | 기본적 이해의 비교 | 간디가 본 [바가바드기타]의 본질 |함석헌이 본 [바가바드기타]의 본질
    [바가바드기타] 1~3장 해석
    [바가바드기타] 1장에 대한 해석 | [바가바드기타] 2장에 대한 해석 | [바가바드기타] 3장에 대한 해석
    [바가바드기타] 4~16장 해석
    [바가바드기타] 4장에 대한 해석 | [바가바드기타] 5~11장에 대한 해석 |[바가바드기타] 12~16장에 대한 해석
    함석헌과 간디의 종교다원론 비교

    6장 함석헌과 간디 사상의 비교
    민중에 대한 생각
    민중이 무엇인가? | 함석헌의 씨알사상
    문명 비판
    국가주의 비판
    자본주의 비판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하여
    자치사상
    사회주의를 바라보는 시각
    비폭력주의적 정치행동
    교육사상

    에필로그
    함석헌과 간디 | 지금 우리에게 함석헌과 간디는 왜 문제인가?
    간디 연보 | 함석헌 연보

    본문중에서

    함석헌은 이 세상 누구보다 강력한 유신론자였다. 그는 인간의 모든 역사를 신의 섭리로 보았다. 물론 함석헌 외에도 역사를 신의 섭리로 보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함석헌 같은 저항인이 아니라 도리어 순응자다. 역사는 신의 섭리이니, 신의 뜻이니 그것에 무조건 순응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한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인 대부분이 그렇다. 종교인 대부분이 그렇다. 아니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 그래서 역사는 그것을 만드는 소수에 의해 제멋대로 흘러간다. 그 결과 다수는 언제나 고난에 빠지게 된다. 함석헌도 그것이 역사라고 했다. 고난이 역사라고 했다.
    왕조나 일제나 독재나 모두 고난의 역사이긴 매한가지다. 그러니 당연히 반항해야 했다. 함석헌처럼 불타는 반항정신을 소유한 자들은 지극히 당연히 반항해야 했다. 물론 함석헌도 반항했다. 그러나 다수는 반항하지 않았다. 특히 그것을 신의 섭리라고 믿는 기독교인, 종교인들은 반항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역사를 신의 섭리라고 믿었던 함석헌은 반항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파괴자로서의 서풍은 낡은 독재나 제도나 악습을 파괴할 수 있는 혁명의 힘을 가진 존재다. 그리고 이 같은 혁명을 통해서만 정의와 선이 넘치는 이상국가가 가능하다는 것을 노래한다. 파괴자와 보존자는 별개의 것이 아니고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정반합 이론처럼 서로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즉 서풍은 광명의 세계를 여는 혁명의 정신이며, 기존의 타락한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가져올 혁명가이자 시인 자신이다. 검은 비, 번개, 우박 등은 구시대의 악습이나 제도들을 소탕할 필연적인 혁명의 세력이다. 이 세상에 공존하는 선악이 충돌하듯 인민과 권력자들의 충돌은 불가피한 필연이다.
    (/ '1장 [서풍] 속으로' 중에서)

    1909년 런던에서 간디는 참정권자들의 폭력운동에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톨스토이의 [인도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비폭력운동이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톨스토이와 연락하려고 노력했고, 그의 제자들인 체르트코프, 모드, 메이요와 만난다. 당시 체르트코프와 모드는 각각 톨스토이 공동체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간디가 톨스토이 농장과 출판사를 운영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모두가 톨스토이를 모방한 것이었다.
    간디에게는 이 모든 것이 그 뒤 평생토록 자기 삶에서 추구해야 할 모범이 되었다. 톨스토이와 그 제자들의 공동체는 간디의 여러 아쉬람으로 평생 이어졌고, 그들의 출판사는 간디의 말과 글로 이어져 그가 죽은 뒤에는 방대한 100권의 전집으로 남았다. 톨스토이는 곧 새로운 삶의 형식이자 내용으로서 간디의 전부를 지배하고 형성했다. 그야말로 간디는 완벽하게 새로운 삶과 생각으로 환골탈태한 셈이다
    (/ '2장 남아프리카의 간디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중에서)

    1961년 7월, 그는 두 달 전에 터진 5.16을 정면으로 비판한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글을 《사상계》에 발표했다. 그해 겨울에는 해인사에 머물면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를 개작하여 이듬해인 1962년 3월,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그 2개월 뒤인 1962년 5월부터 함석헌은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3개월간 미국여행을 한데 이어 10개월간 퀘이커 학교에서 수학한 뒤 영국, 네덜란드, 독일을 방문하고, 1963년 6월에 귀국한다. 한국에 돌아온 직후 《사상계》에 쓴 [꿈틀거리는 백성이라야 산다]에서 함석헌은 단 하나, "군인이 제자리로 도로 물러가고 민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1964년에는 한일회담에 반대하면서 우리 역사의 모든 문제는 일본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 제국주의 밑에 36년 종살이가 그들의 잘못이지 어찌 우리 잘못인가." 1965년 말 한일협정이 비준되자 절망한 함석헌은 강원도 산속으로 들어가 명상을 하면서 종교와 과학, 특히 기독교와 진화론을 종합하려고 한 테야르 드 샤르댕(P. Teilhard de Chardin, 1881~1955)의 [인간현상The Phenomenon of Man]을 읽었고 [비폭력혁명]을 비롯하여 간디에 공감하는 글을 많이 썼다.
    함석헌은 1970년부터는 월간 《씨알의 소리》를 내고 집필과 강연 활동을 전개했다. 1971년 8월의 삼선개헌 반대투쟁 직후 《씨알의 소리》 10월호에 쓴 [군인정치 10년을 돌아본다]에서 "5.16은 와서는 아니 되는 것"이라고 하고 "우리나라는 이날까지 농업국이다. 그러면 설혹 앞을 보아 공업화한다 해도 이 파리한 농민을 키워 그들을 살찌워 그들이 자기 손으로 모은 자본으로 공업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 원리원칙이다"라고 했다. 함석헌을 비롯한 당시 일부 세력의 그런 주장은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 '2장 함석헌의 삶' 중에서)

    그 밖에 함석헌이 인도의 중립주의, 언론 자유, 비종교주의를 지적한 것은 옳았지만, 한국에서 네루 같은 비종교주의가 주장되었다면 네루는 벌써 "찢어지고 말았을 것"이라고 한 데에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비종교주의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다는 것으로 인도나 한국 등 다른 대부분의 나라에서 택하는 현대 헌법의 보편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도에서 비종교주의가 채택된 것은 이미 영국의 지배 아래에서였지 인도 해방 이후에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함석헌은 "인도를 새로 나게 한 것은 인도 민중"이고 "사티아그라하 운동이 아니라면 인도는 도저히 독립할 수도, 오늘같이 놀라운 의기를 가지고 일어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평가에도 의문이 있다.
    요컨대 1950년대 말부터 함석헌이 간디를 수용하면서 가장 강조한 점은 정치와 종교의 일치 내지 조화였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그는 1959년에 쓴 [정치와 종교]에서 원시시대의 제정일치가 분리된 것은 "생명 성장의 필연적인 법칙"에 의한 것이므로 그 복구를 꿈꿀 수 없고 두 가지의 균형도 이룰 수 없다고 하면서도 정치나 종교의 목적은 '하나 됨', 즉 '세계통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간디는 정치를 종교로 해결해야 한다든가, 정교일치를 주장한 적이 없다. 간디는 힌두교가 독립 후 인도를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 '3장 새 인도와 간디' 중에서)

    함석헌이 역사의 3요소로 지리, 민족, 섭리를 들고 지리를 무대, 민족(인류)을 배우, 섭리를 각본이라고 본 것도 우치무라의 인식과 비슷하다. 이는 우치무라가 1899년의 [흥국사담]에서 흥국의 요소로 지리, 인종, 종교, 시간을 들었는데 시간이란 역사를 의미하므로 같은 것이 된다.
    특히 함석헌은 지리를 중시해 한국의 경우 "5천 년 역사가 그저 억눌림과 빼앗김의 계속인데 그 원인이 적어도 절반은 이 위치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자리에서 고난을 아니 당하려면 억센 민족이 되는 수밖에 없"지만 "섭리는 그렇지 않"아서 "고난의 길을"을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함석헌은 본다. 이는 지리적 결정론이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함석헌은 민족이나 지리보다 더 중요한 결정적인 것이 섭리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먼저 둘은 저대로 서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 안에 그 존재 이유를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따라서 민족이나 지리도 섭리에 의해 움직여진다. 이러한 주장도 우치무라에서 비롯됨은 물론이다.
    이상에서 보듯 무교회운동을 비롯한 함석헌의 사상이 "우치무라를 벗어난 주체적인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썼을 때에는 자신이 무교회운동조차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을 테지만 이는 그의 역사관이 우치무라의 역사관을 벗어났다고 보는 것과 별개의 문제이다.
    (/ '4장 우치무라와 함석헌' 중에서)

    여하튼 함석헌은 민주주의가 기독교에서 나왔다고 보았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다"라고 미국 독립선언서에서 쓴 "고귀한" 사상도 "기독교가 아니고는 몰라"라고 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서양에서 먼저 발달했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서양에서는 천 년간 기독교 교육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정의의 관념도 우리보다 강하고 인도주의도 발달했다고 본다. 동양의 의보다 서양의 하느님의 의가 더 강하다고도 했다. 그래서 동서독의 공존은 "유럽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강하"니까 가능하지만 남북한 사람에게는 그런 의식이 없으니 공존이 안 된다고 보았다. 나아가 함석헌은 그런 이유로 유럽의 통합은 가능하지만 아시아에서는 불가능하며 또 유엔이 유지해가는 것도 기독교 덕분이라고 보았다.
    반면 간디는 함석헌이 말한 식의 기독교에 근거한 민주주의나 전체주의를 주장한 적이 없다. 그가 말한 민주주의는 도리어 집단적인 것에 대해 개인적인 것이 우선하는 민주주의다. 즉 개인의 자유에 근거한 민주주의다. 그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어떤 집단주의적 논의도 거부하고 오로지 개인이 '양심'을 실천할 수 있고 따라서 '도덕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간디의 민주주의란 가장 순수한 형태의 비폭력이다. 즉 비폭력의 법이 개인과 정부를 규율한다. 나아가 여론에 근거해 선거된 의회와 지방자치의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와 평등에 근거해 인권을 보장하고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치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특히 그는 마을의 자치를 민주주의의 근본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토대를 경제적 평등으로 주장했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주의와 직결된 것이었다.
    (/ '6장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하여' 중에서)

    함석헌의 사상에 비해 적어도 서양 중심적이거나 엘리트적이지 않은 간디 사상은 간디 사후 지금까지 인도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환영받고 있다. 특히 간디의 반자본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이지만 자본과 노동의 공존을 주장하는 경제사상을 비롯하여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치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정치사상과 생태적 자연에 대한 존중 사상은 여전히 주목되고 있다. 더욱이 간디와 함석헌은 그들이 각각 속한 인도인과 한국인의 정신적 차이에서가 아니라 치밀한 조직가인 간디가 쌓은 수십 년의 경험과 섭리사관을 믿은 엘리트 종교인의 절대적 믿음의 차이에서 크게 달랐다. 함석헌이 믿은 기독교는 선민 종교로서 경쟁에서의 승리를 강조한 제국주의적 잔재였다. 반면 간디는 제국주의의 논리에 따라 그들을 넘어서려는 경쟁의식이 자살행위임을 명백하게 자각하고 그러한 논리 자체를 거부한 비폭력을 주장했다. 반면 함석헌은 비폭력이 반제국주의에서 나오는 것임을 명백하게 자각하지 못했다.
    이제 함석헌을 되살리고 한국을 되살리는 길은 간디의 사상을 더욱 완전하게, 비판적으로, 지금 여기에서 주체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수용하고자 새롭게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서 간디와 함께 함석헌을 뛰어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긍정적 태도다. 사실 이미 함석헌식의 자학사관은 그 뒤의 역사학에 의해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함석헌이 개탄한 조선시대 이후의 기술이나 중산층이나 국가사상의 부족도 역사적 사실과 달랐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함석헌 사상을 미화하는 식으로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학은 함석헌이 입각한 서양식 가치관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역시 비판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간디의 역사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더 중요한 점은 사회 전체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다. 즉 동서양을 넘어 자유로운 개인이 자치적으로 이루는 사회를 자연 속에서 확보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도 간디의 비전은 우리에게 여전히 소중하다. 나아가 간디의 사상을 비폭력주의에 한정하지 않고 시민저항을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서 비폭력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권운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간디가 구상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비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함석헌이 수용한 제한된 간디 사상을 극복하는 길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2.09.09~
    출생지 경북 구미
    출간도서 63종
    판매수 7,796권

    법학을 연구하는 법학자이자 인문과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예요. 영남대학교와 오사카시립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지금은 영남대학교 교양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자유와 자연, 자치의 삶을 실천하려 애쓰며, 인문과 예술의 부활을 꿈꾸면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답니다. 지금까지 《자유란 무엇인가》《함석헌과 간디》《사랑수업》《니체는 틀렸다》《인문학의 거짓말》 등을 썼으며, 《간디, 비폭력 저항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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