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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콘과 도끼 1 : 해석 위주의 러시아 문화사[양장]

원제 : The Icon and the Axe: An Interpretive History of Russia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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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러시아적’ 이중성의 상징 ‘이콘’과 ‘도끼’

    빌링턴이 천 년에 걸친 러시아의 역사, 특히 문화의 발전이라는 비밀을 여는 일종의 열쇠로 본 것이 바로 이콘과 도끼였다. 그에게 이콘은 러시아 문화의 종교적, 정신적 표상물인 반면에 도끼는 그 문화의 실용적 도구였다. 러시아 문화의 원형을 이루는 요소를 이콘과 도끼라는 두 가지 물품으로 파악하는 빌링턴의 시각은 일본 문화의 원형을 이루는 요소를 국화와 칼로 보았던 루스 베네딕트의 시각과 흡사하다고도 할 수 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일본 이해에 필수적이듯 [이콘과 도끼]는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하다. 러시아 문화사의 고전이다. 거기에 [이콘과 도끼]가 다른 러시아 문화 연구서와 구별되는 강점은, 키예프 루스 시대부터 소련 흐루쇼프 집권기까지 거의 천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러시아 문화를 자기만의 독특한 관점에서 일괄하면서 그것을 반영하는 상징인 이콘 속에 효과적으로 통합했다는 데 있다.

    출판사 서평

    미국의 역사가이자 러시아 전문가인 제임스 빌링턴이 쓴 [이콘과 도끼]는 러시아 문화사의 고전이다. 문화사 연구의 대가이며 러시아사 및 문화사에 관한 역작을 여러 권 저술한 제임스 빌링턴이 1966년에 내놓은 연구서인 [이콘과 도끼]는 오래 전부터 러시아 문화사 분야에서 고전 반열에 오른 명저이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인이 러시아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지대한 이바지를 해왔다. 러시아어 번역본이 2001년에 모스크바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러시아 학계도 [이콘과 도끼]가 지닌 크나큰 가치를 인정했음을 잘 보여준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일본 이해에 필수적이듯
    [이콘과 도끼]는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하다

    ‘이콘’과 ‘도끼’가 러시아 문화사에서 갖는 의미

    빌링턴이 천 년에 걸친 러시아의 역사, 특히 문화의 발전이라는 비밀을 여는 일종의 열쇠로 본 것이 바로 이콘과 도끼였다. 그에게 이콘은 러시아 문화의 종교적, 정신적 표상물인 반면에 도끼는 그 문화의 실용적 도구였다. 그에 따르면, 이콘과 도끼라는 책 제목은 "러시아 북부의 삼림 지대에 있는 농가의 벽에 전통적으로 함께 걸려있는 두 물건에서 비롯된다. 그 두 물건은 러시아 문화의 천상적 면모와 지상적 면모를 시사한다." 러시아 문화의 원형을 이루는 요소를 이콘과 도끼라는 두 가지 물품으로 파악하는 빌링턴의 시각은 일본 문화의 원형을 이루는 요소를 국화와 칼로 보았던 루스 베네딕트의 시각과 흡사하다고도 할 수 있다.

    ‘해석 위주’의 러시아 문화사?
    키예프-모스크바-페테르부르그-모스크바로의 이동을
    변화의 축으로 삼고
    문명과 야만, 정신과 육체, 유럽과 아시아라는
    ‘러시아적’ 이중성을
    ‘이콘’과 ‘도끼’라는 상징을 통해 해석한다

    [이콘과 도끼]는 러시아 문화사라는 주제를 ‘망라’하기보다는 이미 이루어져 있는 합의에 새로운 정보와 해석을 내놓고자 하는 책이다. [이콘과 도끼]가 다른 러시아 문화 연구서와 구별되는 강점은, 키예프 루스 시대부터 소련 흐루쇼프 집권기까지 거의 천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러시아 문화를 자기만의 독특한 관점에서 일괄하면서 그것을 반영하는 상징인 이콘 속에 효과적으로 통합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빌링턴은 통시적으로는 키예프-모스크바-페테르부르그-모스크바로 이동하는 국가권력의 중심을 변화의 축으로 삼되 각각 이콘과 도끼로 함축되는 ‘문명과 야만’, ‘정신과 육체’라는 상징의 보편성 속에서 러시아 문화사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빌링턴이 제시한 결론은 문화를 역동적으로 통시성과 공시성의 조화, 변화하는 것과 불변하는 것의 결합으로서 해석한 생생한 사례이다. 러시아 학계의 내재적 관점으로 규명한 바 있는 이러한 "러시아적인 것"의 이중성은 사실상 [이콘과 도끼]가 보여주는 외재적 시선을 통해 비로소 완전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의 러시아 문화 연구는 이러한 이원적 접근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이러한 전환 자체, 그리고 그 이원적 대립을 지양하는 제3의 종합이 기본적으로는 [이콘과 도끼]에서 제시한 논의에 바탕을 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러시아 문화 연구의 최근 동향을 이해하는 기본 전제로서 [이콘과 도끼]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러시아 문화에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강력한 힘:
    자연환경, 동방 그리스도교의 유산, 서방과의 접촉

    제임스 빌링턴은 천 년에 걸친 유구한 러시아 역사를 문화의 여러 다양한 영역과 유기적으로 연관 지어 아주 풍부하게 해석한다. 예를 들어, 빌링턴은 우선 자기가 러시아 문화를 규정하는 세 가지 거대한 힘으로 본 자연환경, 기독교 전통, 서구와의 접촉을 수도 건설과 관련된 국가 정체성 차원에서 규명한다. 이러한 시도는 러시아의 뿌리인 키예프와 러시아의 자연을 연계한 제1장, 키예프 루스의 그리스도교 수용과 몽골 지배를 끝낸 모스크바 공국의 연관성을 보여준 제2장, "서유럽으로 향한 창문"인 성 페테르부르그의 건설이 당대에 미친 영향을 서술한 제4장에서 두드러진다. 다른 한편으로, 빌링턴은 이러한 러시아性의 원천이 러시아 문화의 어떤 특성을 창출했는지를 구체적인 문화예술 장르와 연관해서 고찰한다. 이러한 고찰은 러시아화한 그리스도교의 결정체인 이콘을 집중적으로 고찰한 제3장, 그리고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통해 러시아의 본성을 둘러싼 형이상학을 재점검한 제5장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소비에트 러시아 시기에 나타난 레닌과 스탈린의 우상화 현상을 러시아인 고유의 원초적 ‘망탈리테’와 연계함으로써 수백 년에 걸친 러시아와 러시아인에 대한 통찰은 보편성을 확보한다. 저자는 회화와 문학만이 아니라 건축, 음악, 비평, 지식인에 관한 분석 등을 러시아 역사에 다각도로 접목하며, 19세기 문학과 회화의 상관 관계, 그리고 10월혁명과 음악의 상관 관계에 관한 독특한 설명은 [이콘과 도끼]에서만 접할 수 있는 탁월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무미건조하고 딱딱하지 않은 유려한 문학적 서술

    마지막으로, [이콘과 도끼]라는 역사서의 특성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유려한 문장과 문학적 표현력이다. [이콘과 도끼]는 곳곳에서 마치 그림이나 사진을 보여주듯 선연한 서술과 묘사로 긴장을 풀어주고 이해를 도와준다. [이콘과 도끼]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처럼 저작 곳곳에서 문학 작품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탁월한 문장과 표현에 마주치게 된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일본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저작이라면, 마찬가지로 [이콘과 도끼]는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저작이며 학술적 가치는 거의 동등하다. 외국 학자 가운데 [이콘과 도끼]를 읽고 러시아 역사와 문화에 흥미를 느끼고 러시아 전문가가 되었다는 사람이 많듯이, 출간된 지 거의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이콘과 도끼]는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집어들어야 할 필독서로 불리고 있다.

    목차

    일러두기
    머리말
    감사의 말

    I 배경
    01 키예프
    02 숲
    도끼와 이콘
    종과 대포

    II 대립
    01 모스크바국 이념
    02 서방의 도래
    노브고로드
    “라틴인”
    “게르만인”
    종교 전쟁

    도판: 성모 마리아의 형상
    1. 블라디미르의 성모
    2. 어린 아이의 기쁨
    3. 16세기의 한 이코노스타시스의 한가운데 있는 삼체성상의 성모와 그리스도
    4. 페트로그라드의 1918년, 쿠즈마 페트로프-보드킨

    약어
    참고문헌
    지은이 주

    러시아(루스) 군주 계보: 류릭 조
    러시아 황조 계보: 로마노프 조
    인물 설명

    옮긴이 해제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이 책은 근대 러시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한 해석 위주의 역사서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연구와 숙고와 특수한 관심의 산물이다. 러시아의 유산의 백과사전식 목록을, 또는 그 유산을 이해하는 어떤 간단한 비결을 내놓겠다는 망상은 없다. 그러겠다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 책은 이미 이루어져 있는 합의를 잘 정리하기보다는 새로운 정보와 해석을 내놓고자 하는, 즉 이 엄청난 주제를 “망라”하기보다는 터놓고 이야기해 보려는 선별적 서술이다.

    고찰 대상이 되는 시대는 러시아가 강력하고 독특하고 창조적인 문명으로 떠올랐던 시기인 최근 600년이다. 러시아 문화의 위업과 더불어 고뇌와 포부가, 과두 지배체제와 더불어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반대파가, 시인과 정치가와 더불어 사제와 예언자가 이야기될 것이다. 개개의 문화 매체나 유명 인물의 모습을 완전하게 그려내려는, 또는 한 특정 주제에 바쳐진 일정 분량의 낱말을 고유한 문화 특성의 필수 색인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저작은 각각의 러시아 문화발전기의 독특한 핵심적 관심사를 가장 잘 예증한다고 보이는 자료를 활용할 것이다.

    러시아인에게 영속적 의미를 지니는 - 이콘과 도끼라는 - 두 물품을 제목으로 골랐다. 이 두 물건은 숲이 많은 러시아 북부에서 전통적으로 농가 오두막의 벽에 함께 걸려 있었다. 이콘과 도끼가 러시아 문화에 지니는 의미는 이 책의 첫 부분에서 설명될 텐데, 이 두 물건은 러시아 문화의 이상적 측면과 현세적 측면 양자를 시사하는 구실을 한다. 그러나 모든 인류 문화에 나타나는 신성과 마성 사이의 영원한 분열은 러시아의 경우에는 거룩한 그림과 거룩하지 못한 무기 사이의 그 어떤 단순한 대비로도 제공되지 않는다. 협잡꾼과 선동정치가가 이콘을, 성자와 예술가가 도끼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에 이 두 시원적인 물품에 맞춰지는 초점에는 우리가 러시아 문화의 고찰을 끝마칠 때 가지게 될 아이러니한 전망을 일러주는 실마리가 들어있다. 이 책의 제목은 이 책이 주로 서방의 사상과 제도와 예술양식의 관점에서 러시아의 현실을 살펴보기보다는 러시아의 상상력에 독특한 역할을 했던 상징물을 찾아내어 그 기원을 더듬어 찾아가는 시도를 할 저작임을 시사하는 구실도 한다.

    이 저작에서는 러시아인이 두호브나야 쿨투라라고 일컫는 관념과 이상의 세계가 강조된다. 이 세계는 파악하기 어려우며, 두호브나야 쿨투라는 영어의 등가어인 “영적 문화”보다 종교를 머릿속에 떠오르게 만드는 힘이 훨씬 더 약한 용어이다. 이 저작의 취지는 이념을 경제적인 힘과 사회적인 힘에 체계적으로 연계하거나 역사에서 물질적인 힘과 이념적인 힘이 지니는 상대적 중요성이라는 더 심오한 문제를 예단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저작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СССР)의 마르크스주의적 유물론자들까지도 자기 나라의 발전에서 매우 중요했다고 인정하는 정신적인 힘과 이념적인 힘의 역사적 정체를 더 충실하게 알아내고자 할 따름이다.

    이 저작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가지만 지도에는 잘 나오지 않는 사상과 문화의 지형을 위한 개설적 역사 안내서를 제공함으로써 번번이 정치사와 경제사에 집중되는 현상을 얼마간 상쇄하려고 시도한다. 여기서 “문화”라는 용어는 “독특한 성취물과 신앙과 전통의 복합체”라는 넓은 의미로 쓰이지, “문화”가 더 높은 문명 단계 앞에 있는 사회 발달의 초기 단계로, 또는 박물관에서 함양되는 고상한 취미라는 소양으로, 또는 구체적 맥락에서 완전히 따로 떼어놓을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성취로 가끔 이해되는 더 특화된 의미 그 어떤 것으로도 쓰이지 않는다. “민족이나 국가의 활동에서 사회적ㆍ지성적ㆍ예술적인 측면이나 힘에 집중하”는 문화사라는 일반 범주 안에서 이 저작은 - 사회사는 부수적으로만 다루고 사회학적 분석은 전혀 다루지 않으면서 - 지성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이나 힘을 강조한다.

    이 연구의 기본 얼개는 경제사나 정치사에서만큼이나 문화사에서도 중요한 연대순 배열이다. 잠깐 뒤로 가서 앞 시대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가서 뒷시대를 미리 들여다보기도 할 것이다. 배경이 될 제1장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주요 관심사는 그다음 장들에서 연속적인 러시아 문화발전기의 연대기적 서술을 내놓는 것이다.

    제2장은 16세기와 17세기 초엽의 시원적인 모스크바국과 서방의 초기 대립을 묘사한다. 그다음에 한 세기씩 담당하는 두 개의 긴 장이 나온다. 제3장은 급성장하던 17세기와 18세기 초엽의 러시아 제국에서 새로운 문화 형식이 오랫동안 추구되는 양상을 다루고, 제4장은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중엽까지 꽃을 피운 거북할지언정 화려한 귀족 문화를 다룬다. 제5장과 제6장은 산업화와 근대화라는 문제가 러시아 문화 발전의 더 앞선 유형과 문제 위에 얹혀진 마지막 100년에 할애된다. 제5장은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기 동안 시작된 매우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시기를 다룬다. 마지막 장은 20세기 러시아 문화를 과거의 러시아 문화에 연계해서 살펴본다.

    대다수 러시아 문화에는 일치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개개 러시아인과 각각의 예술양식이 어느 모로는 공동의 창조적 추구나 철학 논쟁이나 사회 갈등의 부차적 참여자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드미트리 멘델레예프의 화학, 니콜라이 로바쳅스키의 수학,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바실리 칸딘스키의 회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모두 다 그들의 러시아적 배경에, 또는 특정한 과학 체나 예술 매체의 기준 이외의 다른 기준에 비교적 적게 대조하고서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러시아 문화는 - 사실은 참으로 유럽적인 이 인물들이 만들어낸 대다수 문화는 - 러시아의 맥락에 놓일 때 부가된 의미를 획득한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다른 많은 민족 문화의 경우보다 각각의 창조적 활동의 민족적 맥락의 일정한 이해가 더 필수적이다.

    함께 연루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이런 느낌의 결과로, 서방에서는 흔히 개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유의 논쟁이 러시아에서는 자주 개인 안에서 훨씬 더 격렬하게 벌어졌다. 많은 러시아인에게 “생각하기와 느끼기, 이해하기와 괴로워하기는 같은 것”이며, 그들의 창조성은 “원초성이 대단히 강하고 형식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자주 입증해준다. 성 바실리 대성당의 색다른 외형, 모데스트 무소륵스키의 오페라 한 곡의 파격적 화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한 편의 진한 구어체는 고전주의 정신에 거슬렸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다수 사람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며, 그럼으로써 형식의 결핍이라고 하는 것이 한 문화를 분석하기 위해 쓰이는 전통적 범주에 들어맞지 않는 데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점을 우리 머릿속에 떠올려준다.

    러시아 문화의 역사를 바라볼 때, 문화 이면의 형식보다는 힘들을 생각하는 것이 유익할지 모른다. 특히 - 자연환경, 그리스도교의 유산, 러시아와 서방의 접촉이라는 - 세 힘은 이후 이 책의 지면에 당당하게 부단히 나타난다. 이 세 힘에게는 인간의 노력을 재료 삼아 위기와 창조성이라는 그 나름의 이상한 거미줄을 짜는 능력이 있는 듯하다. 비록 그 세 힘이 - [의사 지바고]에서 나타났다 금세 사라지는 몇몇 순간에서처럼 - 가끔 모두 다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보일지는 몰라도, 대개 그 힘들은 어긋나서 따로따로 작용하고 있다.

    첫째 힘은 자연 그 자체의 힘이다. 러시아의 사상가는 정식 철학자가 아니라 시인이라는 말이 있었다. “시”와 “자연 원소”를 가리키는 두 러시아어 낱말(스티히(стихи), 스티히야(стихия))이 겉보기에는 우연히도 비슷하다는 것 뒤에는 러시아 문화와 자연계 사이의 긴밀한 여러 연계가 있다. 어떤 이들은 러시아 땅에서 스키탈레츠(скиталец), 즉 “떠돌이”가 되고 싶은 어수선한 충동이 땅과의 “대지적”(大地的) 일체감과 번갈아 나타난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이들은 “나는 여기가 따듯하다”는 이유로 낳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태아가 나오는 시에 있는 러시아 특유의 혜안을 이야기한다. 신화에 나오는 “촉촉한 어머니 대지”의 땅 밑 세상은 키예프의 동굴에 있는 최초의 수도원에서 시작해서 방부처리된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을 모셔놓은 오늘날의 성소(聖所)와 겉치레한 카타콤인 모스크바 지하철에 이르는 많은 형태로 사람들을 꾀어왔다. 땅뿐만 아니라 - 중세 우주론의 다른 “자연 원소”인 - 불과 물과 하늘도 러시아의 상상력을 위한 중요한 상징이었다. 심지어는 오늘날에도 러시아어에는 유럽의 더 세련된 언어에서는 걸러져 사라진 토속적 함의가 많이 남아있다.

    근대 러시아 문화의 배후에 있는 초인격적인 둘째 힘은 동방 그리스도교라는 힘이다. 토착종교의 잔존 요소가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상고 시대 스키타이인의 예술이 아무리 대단해도, 최초의 러시아 고유문화를 만들어내고 예술 표현의 기본 형식과 신앙 구조를 근대 러시아에 제공한 것은 정교였다. 또한, 정교회는 특별한 존엄성과 운명이 한 정교 사회에 있으며 그 정교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논쟁에는 정답이 딱 하나 있다는 기본적으로 비잔티움적인 사고에 러시아를 물들이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서 종교는 - 문화의 격리된 한 양상이 아니라 문화 안에서 모든 것에 스며들어 가는 하나의 힘으로서 - 중심 역할을 할 것이다.

    자연과 신앙과 나란히 셋째 힘인 서방의 충격이 있다. 이 연대기의 전체 기간에 서유럽과의 상호작용은 러시아 역사에서 한 주요 요인이었다. 러시아인은 이 관계를 정의하려는 시도를 거듭하면서 공식 하나를 늘 찾았다. 그 공식으로 러시아인은 서방에서 문물을 빌릴 수 있으면서 서방과 구별되는 상태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1840년대에 친슬라브주의자와 “서구주의자” 사이에 벌어진 유명한 논쟁은 기나긴 싸움의 한 일화일 뿐이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19세기의 자의식적이고 지성화된 그 논쟁은 러시아 문화의 방향을 결정하려고 시도했던 다른 서방화 세력, 즉 이탈리아에서 온 라틴화론자, 독일에서 온 경건주의자, 프랑스에서 온 “볼테르주의자”, 영국에서 온 철도 건설자를 고려함으로써 역사적 전망 속에 놓일 것이다. 서방이라는 효모를 러시아 안에 집어넣었던 러시아의 중심지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그 중심지란 실제의, 그리고 기억 속의 노브고로드와 당당한 메트로폴리스 성 페테르부르그-레닌그라드이다.

    이 저작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역점 가운데에는 소련 이념가들의 공식 해석이나 서방의 지적인 역사가 대다수의 비공식적 합의에 현재 반영된 일반적 이미지와 맞지 않는 것이 많다. 내 해석에는 일반적이지 않아서 논란이 일 수 있는 특이한 사항이 들어있다는 점을 전문가는 알아차릴 (그리고 그런 점이 비전문가에게는 경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사항으로는 “모든 시대는 영원으로부터 등거리에 있다”는, 그리고 때로는 직전의 상황보다 형성기의 영향력이 그 뒤의 사태전개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는 믿음에서 (비록 상고시대는 아닐지라도) 고대를 전반적으로 강조한다는 점,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통치기 교회분열의, 그리고 알렉산드르 1세 통치기의 반(反)계몽의 시작처럼 결정적인데 자주 무시된 몇몇 전환점을 세세하게 파고든다는 점, 종교적인 사상과 시류와 더불어 세속적인 사상과 시류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보인다는 점, 더 낯익은 1825년 이후 시대의 안에서 상대적 역점을 러시아 발전의 더 확연하게 서방적인 양상, 즉 “근대화” 양상보다는 러시아 특유의 양상에 둔다는 점 등이 있다. 이 주제들에 관해 쓰인 더 오래된 자료의 부피와 소비에트 연방의 안과 밖에서 러시아 문화에 깊이 빠져든 많은 이 사이에서 지속되는 그 주제들에 관한 관심의 깊이에 힘을 얻어 나는 이 연구의 특별한 강조점에는 러시아에 관한 객관적 사실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으며 단지 역사가 한 개인의 주관적 호기심만 반영되어 있지는 않다고 믿게 되었다.

    본문은 대체로 1차 사료와 상세한 러시아어 연구단행본을 - 특히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인문학이 활짝 꽃을 피운 마지막 기간에 간행된 자료를 - 새롭게 읽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서방과 최근 소련의 학술서도 꽤 많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다른 역사 개설서들은 비교적 별로 이용되지 않았고, 분량은 상당하지만 중언부언하고 전거가 의심스러운 일단의 대중적인 러시아 관련 서방 문헌은 거의 전혀 이용되지 않았다.

    본문은 폭넓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쓰였으며, 바람이기는 하지만 러시아사 사전지식이 없는 이들에게도 아주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이 책 끝에 있는 후주의 용도는 중요한 인용의 원어 원전과 주요 유럽어로 된 입수 가능한 - 특히 논쟁거리가 되거나 낯설거나 다른 데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주제에 관한 - 자료의 간략한 서적해제 안내를 더 전문적인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나의 해석과 강조점이 완벽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거나 권위의 아우라를 부여하려는 의도로 기다란 자료 목록을 붙여놓지는 않았다. 이용되거나 언급되지 않은 훌륭한 저작이 많으며, 논의되지 않은 중요한 주제가 많다.

    나는 이 저작을 체계적 분석이나 철저한 규명으로서가 아니라 안정적이지 않지만 창의적인 한 민족을 내적으로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공동 탐구에서 일어난 일화로서 학자와 일반 독자에게 내놓고자 한다. 목적은 임상시험처럼 들리는 “감정이입”이라기보다는 독일인이 아인퓔룽(Einf?hlung)이라고 부르는 것, 즉 “안에서 느끼기”, 그리고 러시아인 스스로는 잉크가 빨종이에, 또는 열이 쇠에 스며든다는 의미로 - 침투나 침윤을 뜻하는 - 프로니크노베니예(проникновение)라고 부르는 것이다. 연루되어 있다는 이런 감정만이 외부의 관찰자가 일관성 없는 인상을 넘어서서 불가피한 일반화에서 헤어나 업신여기기와 치켜세우기, 공포와 이상화, 칭기즈 한과 프레스터 요한 사이를 이리저리 어지럽게 왔다갔다 하지 않도록 막아줄 수 있다.

    이런 더 깊은 이해의 추구는 내면을 성찰하는 러시아인 스스로의 논의를 오랫동안 불러일으켜 왔다. 아마도 20세기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일 알렉산드르 블록은 러시아를 스핑크스에 비긴 적이 있다. 그리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경험은 러시아 역사의 더 앞 시기의 미해결 논쟁에 새로운 논란을 보탰다. 이런 이해의 추구는 바깥 세계에서도 이루어진다. 바깥 세계는 근대 러시아 문화의 두 주요 사건으로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그 두 사건이란 19세기에 일어난 문학의 폭발과 20세기에 일어난 정치 격변이다. 역사가는 과거를 연구하면 어떻게든 사람들이 현재를 깊이 이해할지 - 심지어 어쩌면 미래의 가능태에 관한 단서의 파편이라도 얻을지 - 모른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러시아 문화의 역사는 그 자체를 위해 말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이다. 더 앞 시대의 이 문화가 오늘날 도시화된 공산주의 제국과 연관성이 별로 없다고 느끼는 이들마저도 여전히 러시아 문화에 도스토옙스키가 자기가 느끼기에 죽은 문화인 서방 문화에 다가선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다가설지 모른다.

    나는 내가 가는 곳이 그저 묘지라는 걸 알아, 하지만 가장, 가장 소중한 묘지야! …… 거기에는 소중한 망자들이 누워 있으며, 그들 위에 놓인 비석 하나하나가 다 내가 …… 땅에 엎어져 이 비석에 입을 맞추고 그 위에서 울어버릴 만큼 지난 치열한 삶을, 그리고 그 삶의 위업, 그 삶의 진실, 그 삶의 투쟁, 그 삶의 지식에 관한 열렬한 믿음을 알려주고 있지.
    (/ '저자 서문' 중에서)

    빌링턴이 1,000년에 걸친 러시아의 역사, 특히 문화의 발전이라는 비밀을 여는 일종의 열쇠로 본 것이 바로 이콘과 도끼였고, 그는 이 두 물품을 책 제목으로 삼았다. 그에게 이콘은 러시아 문화의 종교적, 정신적 표상물인 반면에 도끼는 그 문화의 실용적 도구였다. 그에 따르면, 이콘과 도끼라는 책 제목은 "러시아 북부의 삼림 지대에 있는 농가의 벽에 전통적으로 함께 걸려있는 두 물건에서 비롯된다. 그 두 물건은 러시아 문화의 천상적 면모와 지상적 면모를 시사한다." 러시아 문화의 원형을 이루는 요소를 이콘과 도끼라는 두 가지 물품으로 파악하는 빌링턴의 시각은 일본 문화의 원형을 이루는 요소를 국화와 칼로 보았던 미국의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의 시각과 흡사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콘과 도끼] 이전에도 적지 않은 러시아 문화사 저작이 있었으나, 대개의 경우에는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 개별 영역의 기본적 사실을 그저 시대 순에 따라 나열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콘과 도끼]는 이런 경향을 극복하면서, 키예프 루스 시대부터 1960년대의 니키타 흐루쇼프 집권기까지 러시아인이 가꾸고 키워온 문화를 자기 나름의 독특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관점으로 살펴본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얻었다. 달리 말해서, 빌링턴은 통시적으로는 키예프 ? 모스크바 ? 성 페테르부르그로 이동하는 국가권력 중심의 변화를 씨줄로 삼으면서 이콘과 도끼로 표상되는 문명과 야만, 천상과 지상, 정신과 육체라는 상징의 보편성을 날줄로 엮어 넣어 러시아 문화사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빌링턴이 내놓은 기본 시각은 문화를 통시성과 공시성의 조화, 변동성과 불변성의 결합으로서 역동적으로 해석하는 전략의 성공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러시아 문화의 이중성, 즉 문명성과 원시성, 유럽성과 아시아성의 공존과 충돌을 강조하는 빌링턴의 기본 시각이 전혀 새로운 것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러시아 문화의 이중성은 이미 19세기에는 니콜라이 베르댜예프가, 20세기에는 러시아 구조주의 계열의 타르투 학파가 제시했던 논제이다. 그러나 러시아 내부의 이른바 내재적 관점이 제임스 빌링턴이라는 외국인 학자가 쓴 [이콘과 도끼]에 들어있는 외재적 시선을 통해 더 충실해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러시아와 서방에서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 문화사 연구는 이러한 이원적 접근이 약점과 한계를 안고 있다는 측면을 부각하면서 이런 점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동시에 이런 최근의 러시아 문화사 연구가 기본적으로는 빌링턴이 제시한 러시아 문화의 이원성에 관한 논의를 밑바탕 삼아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콘과 도끼]가 향후 발전을 위한 일종의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이콘과 도끼]를 조금 더 상세히 들여다 보자! 빌링턴은 600쪽에 이르는 본문에서 러시아 문화의 형성과 발전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강력한 요인으로서 자연환경, 동방 그리스도교의 유산, 서방과의 접촉이라는 세 가지 힘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빌링턴이 당시의 주류적 통념에서 과감히 벗어나서 펼친 자기 나름의 주장은 차르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통치기에 일어난 교회분열의 시작, 예카테리나 대제 통치기에 융성한 서방의 갖가지 영향력, 19세기 초에 성행한 반계몽의 특성에 관한 설명과 분석에서 특히 잘 드러나 있다. 그는 그때까지 러시아사 연구자들이 간과해온 프리메이슨의 영향과 그 비중도 부각한다. 또한 그가 러시아 사상에 푸시킨이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그리 큰 유산도 남기지 않았다고 본다는 점, 그리고 머리말의 끝부분에서, 마지막 부분 ?러시아 역사의 아이러니?에서 도스토옙스키를 인용하는 데에서 드러나듯이 그가 러시아 문화사를 붙이는 아교로 활용하는 인물이 바로 도스토옙스키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콘과 도끼]를 통독하는 독자라면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러시아 문화의 형성과 변화에서 종교,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리스도교의 위상에 빌링턴이 부여하는,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강조이다. 그는 종교적 차원에 관한 역사학계의 관심이 모자란 탓에 러시아에 관한 이해 전체가 뒤틀린다고 느꼈고, 지금도 그렇다. 1991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역사학계에 논평을 해달라는 요청에 "거의 서른 해 동안 역사학부에서 가르치거나 역사학계에 직접 참여한 적이 없다"는 단서를 달며 조심스레 말하면서도 종교적 요소를 등한시하는 경향을 비판했다. 그의 기본 시각은 다음과 같은 발언에 잘 드러나 있다.

    분명히, 지성적 관점에서는, 만약 당신이 한 문화를, 그것도 종교가 스며 배어있는 문화를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면, 당신은 제가 하는 것만큼 종교를 중시해야 합니다. 현대까지 러시아에서 종교적 요소가 강력하게 지속된다는 점은 종교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다고 가정하는 경제결정론자와 심리역사학자, 그리고/또는 행동주의 사회과학자의 영향을 심하게 받은 미국의 역사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뒤로는 너무 자주 무시한 러시아 문화의 여러 차원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그는 "[이콘과 도끼]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이 종파(구교도)에 대한 나의 매료"라고 스스럼없이 밝힐 만큼 구교도가 러시아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유난히도 강조했다. 구교도 연구에 빌링턴이 품은 애착은 그가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17세기 러시아의 구교도에 관한 연구 초안을 써놓고도 학계를 떠나 미의회도서관 관장이라는 직무를 수행하느라 그 연구를 마무리하지는 못했다고 애석해 하면서 "미의회 도서관의 직위에서 물러난 뒤 내게 하느님이 그럴 힘을 주신다면 그 책을 완성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는 데에서도 엿보인다. 역사의 전개에서 종교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빌링턴의 강조는 침례교 전통에 자란 아버지와 독실한 영국 성공회 신자 어머니를 둔 그의 성장 환경과 무관하지는 않은 듯하다. 빌링턴 자신도 영국 성공회의 세례를 받은 신자이며, 그의 아들 한 명은 사제가 되었다.

    한편으로, 아무리 빼어난 연구라도 취약점과 허점이 없을 수는 없다. 빌링턴이 [이콘과 도끼]에서 제시한 주장과 전개한 논지에서 미진한 구석이 없지 않은 몇몇 부분, 그리고 독자가 비판적으로 읽어내야 할 몇몇 부분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빌링턴이 말하는 러시아에 대비되는 존재로서 거론하는 "West", 즉 서방의 정의가 분명하지 않다. 흔히는 영국과 프랑스가 서방이라고 일컬어지지만, 빌링턴이 말하는 서방의 범위는 훨씬 더 넓다. 독일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폴란드, 스칸디나비아 국가까지 서방에 포함되어 논지가 전개된다. 빌링턴이 명시적으로 정의하지는 않지만, 러시아 서쪽에 위치한 유럽 국가를 통칭해서 서방이라는 용어를 쓰는 듯하다. 즉 흔히 말하는 남유럽, 중유럽, 북유럽이 서방으로 지칭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여기에 동유럽 국가로 분류되는 폴란드까지 서방으로 거론되므로 혼란이 가중된다. 이런 혼란을 막으려면 빌링턴은 먼저 서방의 지리적, 문화적 정의를 내려놓고 논지를 전개했어야 했다.

    둘째, 러시아 역사의 전개와 러시아 문화의 발전에서 러시아와 서방의 접촉이라는 요인을 강조하다 보니,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서방 못지않게 영향을 준 몽골이나 튀르크에 관한 분석이 매우 빈약하며 때로는 간과되거나 거의 무시되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이런 점은 매우 큰 취약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서 서방이 준 충격과 영향을 최우선시하는 빌링턴의 기본 시각은 그가 [이콘과 도끼]를 구상하고 집필하던 1960년대까지 이른바 서방의 학계에 횡행하던 유럽중심주의,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미중심주의와 전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유럽, 즉 서유럽, 특히 영국이 걸어온 역사 경로가 올바르고도 모범적인 것이고 그 밖의 경로는 이탈이거나 변형이라는 관점이 빌링턴의 기본 시각의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중심주의를 지양하려는 노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콘과 도끼]를 더 비판적으로 독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더군다나 냉철한 독자라면 [이콘과 도끼]가 냉전기에 러시아의 적대 국가인 미국, 또는 서방의 시각에서 씌어진 책이라는 점에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넷째, 빌링턴은 러시아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부각하는 기본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모든 역사에는 연속성만큼이나 불연속성도 있기 마련이다. 그는 러시아 현대사에서 두드러지는 불연속성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했다. 따라서 [이콘과 도끼]에는 20세기의 최대 사건들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러시아 초기가 지나치게 소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러시아 혁명이 세계사, 특히 문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이런 측면은 적잖은 실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출간된 지 거의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빌링턴의 [이콘과 도끼]는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집어 들어야 할 필독서의 지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콘과 도끼]라는 역사서의 특성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 역사서가 지닌 유려한 문장과 문학적 표현력이다. 분석과 논리에 치중하는 학술서는 전문가가 아닌 독자에게는 대개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기 쉽지만, [이콘과 도끼] 곳곳에는 마치 그림이나 사진을 보여주는 듯 선연한 서술과 묘사가 있어서 긴장감을 풀어주고 이해를 도와준다. [도끼와 이콘]을 읽어내려 가다 보면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처럼 저작 곳곳에서 문학 작품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탁월한 문장과 표현에 마주치게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단이 그렇다.

    종교적 열정이 전례 없이 만개했다는 인상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싱그러운 봄보다는 지나치게 무르익은 늦가을에 더 가까웠다. 야로슬라블에서 두 해마다 한 채가 넘는 꼴로 쑥쑥 생겨난 네덜란드풍과 페르시아풍의 화려한 벽돌 교회는 오늘날에는 비잔티움 양식과 바로크 양식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실속 없는 막간극으로, 즉 땅과 이어주는 줄기는 시들어버렸고 생명을 앗아가는 서리가 바야흐로 내릴 참임을 모른 채 10월의 나른한 온기 속에서 말라가는 묵직한 열매로 보인다. 지역의 예언자와 성자를 그린 셀 수 없이 많은 이콘이 마치 너무 익어 문드러져 수확되기를 빌고 있는 포도처럼 이코노스타시스 밑층 열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며, 동시에 빠르게 읊조리는 유료 위령제 기도는 죽음을 바로 앞둔 가을 파리가 어수선하게 왱왱거리는 소리와 닮았다.

    다음과 같은 문단도 못지않게 선연하다.

    예술 양식이 인민주의 리얼리즘에서 백은시대의 관념론으로 바뀐 것은 음주 취향이 더 앞 시기의 선동가와 개혁가의 독한 무색의 보드카에서 새로운 귀족적 미학자 사이에서 인기를 얻은 다디단 진홍색 메시마랴로 바뀐 것에 비길 수도 있다. 메시마랴는 희귀한 이국적 음료였는데, 무척 비쌌고 푸짐하고 느긋한 한 끼 식사의 끝에 가장 알맞았다. 백은시대의 예술처럼 메시마랴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반쯤 이국적인 환경의 산물이었다. 메시마랴는 핀란드의 라플란드에서 왔다. 라플란드에서 메시마랴는 북극의 짧은 여름 동안 한밤의 해가 익힌 희귀한 나무딸기류 식물을 증류해서 만들어졌다. 20세기 초엽 러시아의 문화는 똑같이 이국적이고 최상급이었다. 그것은 불길한 조짐이 감도는 진미의 향연이었다. 메시마랴 나무딸기가 그렇듯이, 때 이르게 익으면 그만큼 빨리 썩기 마련이었다. 한 계절 한밤의 햇빛은 다음 계절 한낮의 어둠으로 이어졌다.
    (/ '옮긴이 해제' 중에서)

    저자소개

    제임스 빌링턴(James Hadley Billingto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29.6.1~
    출생지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우드로윌슨국제학술센터 소장을 거쳐(1973~1987) 제13대 미 의회도서관장(1987~2015)을 지낸 미국의 권위 있는 러시아 연구자. 프린스턴대학교 졸업 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하버드대학교와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러시아사를 강의하였다. 러시아학술원 외국인 회원이기도 하며, 러시아 역사·문화·정치에 관한 다수의 수준 높은 저서들을 집필하였다. 대표 저서로 러시아 문화사 연구의 고전이 된 [이콘과 도끼](The Icon and the Axe, 1966)를 비롯하여 [인간들 가슴속의 불꽃](Fire in the Minds of Men, 1980), [러시아의 얼굴](The Face of Ru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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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66~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영국 에식스대학 역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현대사를 연구해 왔으며, 특히 혁명기 러시아와 제2차 세계대전에 관심을 쏟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탈계급화인가, 탈볼셰비키화인가?", "러시아 혁명과 노동의무제", "여성 노동자인가, 노동하는 바바인가?", "전쟁의 기억과 기억의 전쟁"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지식의풍경, 2003), [빅토르 세르주 평전](실천문학사, 2006), [러시아 혁명: 1917년에서 네프까지](박종철출판사, 2007), [2차세계대전사](청어람미디어, 2007), [이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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