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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과 여성 : 고대그리스에서 마키아벨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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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숨은그림찾기, 끼어들기, 새판짜기’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해 논의할 때 흔히 말하는 3단계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사회가 ‘새판짜기’로 가기위해 인력을 모으는 ‘끼어들기’ 사회라면, 끼어들기의 동력은 과거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특히 고대와 중세를 중심으로 정치사상사 속의 여성을 찾아보려는 아를린 색슨하우스의 노력은 ‘숨은그림찾기’ 바로 그 자체이다. 과거는 현재의 동력이고, 미래로 가는 자원이기도 하기에, 오래된 과거를 살펴보는 색슨하우스의 책이 현재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정치사상과 여성: 고대그리스에서 마키아벨리까지]의 저자 색슨하우스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은 과연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았을까? 근대이전 고대와 중세의 경우 여성들의 정치적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색슨하우스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로마의 역사가와 법률가, 키케로, 중세 교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 마키아벨리 등 주요 사상가들의 저서 뿐만 아니라,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다른 작품까지 상세하게 분석한다.
    [정치사상과 여성]은 여성이 어떻게 고대부터 종교개혁시까지 위대한 정치사상 안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합리적 관점을 제공한다. 현대사회에서의 여성의 등장과 진출은 역사의 돌발사태가 아니라, 꾸준하게 진행되어 온 역사의 연속선 속에서 당연히 드러나야 할 존재가 드러나게 되는 당위적 귀결이라는 점이 이 책의 궁극적 주장이다.
    색슨하우스가 [정치사상과 여성]에서 여성을 찾아보는 작업은 역사 속에 씨를 뿌리는 작업이다. 고대와 중세 정시사상가들의 저작 속에 숨어있는 여성의 모습을 찾아보려는 시도로서의 숨은 그림 찾기로부터 현재 여성들의 지위에 대한 역사적 근거가 발견된다. 현대사회에서 여성들이 끼어들기를 할 수 있게 된 근거로서의 숨은 그림 찾기가 바로 색슨하우스가 이 책을 위해 던진 질문이었다. 씨를 뿌리는 색슨하우스를 통해서 21세기 우리는 그 열매를 맛보기도 하면서, 미래를 위해 다시 씨 뿌리는 작업을 이어갈 동력을 발견한다.

    목차

    서문
    옮긴이의 말
    제1장 배경: 정치적 삶에 대한 자유주의와 자유주의 이전의 시각들 21
    제2장 플라톤 이전의 그리스 문학에 나타난 여성, 가족, 그리고 폴리스
    제3장 플라톤: 철학, 여성, 그리고 정치적 삶
    제4장 아리스토텔레스: 불완전한 남성, 위계질서, 그리고 정치학의 한계
    제5장 로마: 제국의 정치와 여성
    제6장 초기 기독교와 중세 정치사상: 순결, 평등, 그리고 공동체의 의미
    제7장 니콜로 마키아벨리: 남성으로서의 여성, 여성으로서의 남성 그리고 모호한 성
    결론 차이를 넘어서
    주석
    참고문헌
    색인

    본문중에서

    ‘숨은그림찾기, 끼어들기, 새판짜기’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해 논의할 때 흔히 말하는 3단계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사회가 ‘새판짜기’로 가기위해 인력을 모으는 ‘끼어들기’ 사회라면, 끼어들기의 동력은 과거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거기에 역사를 살펴보아야 하는 당위성이 존재한다. 특히 고대와 중세를 중심으로 정치사상사 속의 여성을 찾아보려는 아를린 색슨하우스의 노력은 ‘숨은그림찾기’ 바로 그 자체이다. 과거는 현재의 동력이고, 미래로 가는 자원이기도 하기에, 오래된 과거를 살펴보는 색슨하우스의 책이 현재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정치사상과 여성: 고대그리스에서 마키아벨리까지]의 저자 색슨하우스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은 과연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았을까? 인류가 존속 가능했다는 말은 여성이 존재했다는 것인데, 근대이전 고대와 중세의 경우 여성들의 정치적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대와 중세의 정치사상가들은 남성 시민, 남성 전사, 남성 가장만 생각했던 것일까? 혹시 그들은 각 사회에서의 여성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색슨하우스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로마의 역사가와 법률가, 키케로, 중세 교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 마키아벨리 등 주요 사상가들의 저서뿐만 아니라,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다른 작품까지 상세하게 분석한다. 현대 사상가보다 이들에게서 여성의 중요성에 대한 민감성을 발견한다고 색슨하우스는 지속적으로 말한다. 고대와 중세 동안 여성이 정치공동체의 일부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구조, 목적, 안정성과 인간 경험이라는 전체적 맥락 속에서의 위치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 대해 사상가들이 인정하고 있었음을 색슨하우스는 찾아내고 있다.
    [정치사상과 여성]은 여성이 어떻게 고대부터 종교개혁시까지 위대한 정치사상 안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합리적 관점을 제공한다. 그 관점을 통해 이에 대한 대부분의 초기 작품이 가진 부정적 접근방식을 교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는 정치학자, 역사가, 철학자 그리고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현대사회에서의 여성의 등장과 진출은 역사의 돌발사태가 아니라, 꾸준하게 진행되어 온 역사의 연속선 속에서 당연히 드러나야 할 존재가 드러나게 되는 당위적 귀결이라 하겠다.
    미국 유학중 여성정치 분야를 접하고, 여성정치사상에 대한 생각을 가슴에 품은채 드러내지 않고 무성적(ungendered) 정치사상을 강의하던 중, ‘여성과 정치사상’이라는 대학원 과목을 가르치면서, 아를린 색슨하우스의 Women in the history of political thought를 교재로 사용하게 되었다. 정치사상사에서 여성의 연원을 찾아보려는 색슨하우스의 시도에 동감하면서, 이러한 작업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위해서 번역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가장 멀다더니, 번역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산지 5년 만에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여성과 정치사상’ 강의를 듣던 학생들이 어느 방학 때 번역을 하겠다고 이 책을 잡았고, 그들의 초벌원고를 받는 기쁨으로 그 때의 겨울방학은 끝나도 서운하지 않았던 느낌이 아직도 새롭다. 대학원생 수준에서 이 책을 잡고 씨름한 결과라 대견하기도 했고, 뿌듯하기도 했던 기억이 이미 3년을 넘겼다.
    출판을 위해 초벌 원고를 다시 보는 과정에서 해석 수준에 머물러 있어 번역서로 출판하기에는 치명적 문제들이 발견되면서, 색슨하우스의 책을 처음부터 다시 보게 되었고, 새로운 작업을 해가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다시 알게 되었다. 번역을 다시 하는 작업은 고통스러웠지만, 초벌 원고가 나름대로 완결성을 갖추었더라면 그냥 넘어가면서 보지 못했을 것들을 보게 해주는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해 겨울, 사상을 전공하는 황옥자를 필두로 형은화, 신수연, 윤가인 그들의 과감한 시도가 없었다면, 이 책도 햇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시도를 통해 이 책의 번역은 시작되었고, 일단 시작 되자 그 작업은 자체논리를 가지고 움직여 이제 출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책의 번역작업을 다시 하게 되면서 꾸중도 많이 했지만, 이들의 시작이 있어 나는 지속할 수 있었고, 끝낼 수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책의 오늘이 있게 해 준 이들이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참신한 생각과 대담한 실행력을 보면서 ‘후생가외(後生可畏)’라 했던 공자의 말과, “득천하영재이교육지(得天下英才而敎育之)”라고 군자의 3번째 즐거움을 언급했던 맹자를 떠올리며, 나는 행복하다. 10여년이나 걸린 이 책을 보면서 나를 대신해 시작해준 학생들에게 감사를 보내며, 그들의 학업과 앞길에 결실이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씨뿌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하면서, 씨를 뿌리는 일에 나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결과와 성과중심적 사회에서 씨를 뿌리는 일은 매우 외롭고 고단한 작업이다. 결실만 계산하는 세상에서 씨를 뿌리는 일은 어쩌면 역사에 드러나지 않는 빛도 없이 꿈도 없이 어둠속을 걷는 일과 같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 씨를 뿌리지 않으면 열매는 존재할 수 없다. 굳이 내가 열매를 거두지 않더라도, 내가 뿌린 씨를 누군가가 거두면서, 이 세상은 유지되어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성과와 업적으로 계산되지 않아도 씨는 뿌려야 하고, 씨를 뿌리면 반드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면서 우리의 세상은 풍요로와질 것이다. 철학자와 정치사상가들의 작업이 바로 여기서 의의를 찾는다.
    색슨하우스가 [정치사상과 여성]에서 여성을 찾아보는 작업도 바로 이러한 씨 뿌리는 작업이다. 고대와 중세 정치사상가들의 저작 속에 숨어있는 여성의 모습을 찾아보려는 시도는 주류사상가들의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일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으나, 숨은 그림을 찾아보려는 시도로부터 현재 여성들의 지위에 대한 역사적 근거가 발견된다. 현대사회에서 여성들이 끼어들기를 할 수 있게 된 근거로서의 숨은 그림 찾기가 바로 색슨하우스가 이 책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씨를 뿌리는 색슨하우스가 있었기에, 나도 그 글을 보고 과거 사상 속의 여성을 찾겠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학문의 연구란, 특히 정치사상의 연구란 바로 씨 뿌리는 작업이 아닌가 싶다. 당장은 관심 있게 보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도, 뿌려진 씨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과 잎을 내면서 성장하고, 궁극적으로 결실을 맺는다. 학문의 나무는 이렇게 세대와 공간을 넘어서 초월적으로 움직인다. 적당한 햇빛과 물, 토양 등 뿌려진 씨앗이 결실 맺는 나무로 자라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듯이, 이 책이 출간되기 위해서도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했다. 시작하게 해준 학생들로부터, 출판비용을 지원해준 전남대학교와 출판을 맡아준 전남대학교출판부 모두 이 책의 출간을 위해 준비된 손길들이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불완전한 원고를 완전하게 만들어준 교정을 담당한 손길과 책의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표지 디자인을 해준 손길에도 감사를 드린다. 한 권의 책이 연구자의 책상위에 놓이기까지 세상의 많은 지원과 손길이 필요함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며, 그래서 세상은 역시 살만한 곳이라고 소리치고 싶다.
    이 책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무엇보다 나를 지으시고, 나를 부르시고, 내가 지금의 나로 설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함과 동시에 평생 동안 변함없이 딸의 연구와 작업에 대해 한없는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면서 노심초사 지켜주시는 어머니께 이 책을 헌정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이 책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 나의 학생들과 맛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

    메타세콰이어가 보이는 정치외교학과 연구실에서
    2014년 12월
    박 의 경
    (/ '머리말' 중에서)

    제1장 배경: 정치적 삶에 대한 자유주의와 자유주의 이전의 시각들

    고대 그리스에서 근대 초기까지의 정치사상사에서 여성에 대한 연구는 정치사회에서의 가치와 목적, 그리고 기원에 대한 어떤 전제를 과감히 버릴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이슈에 대한 우리의 관점들 중 대다수는 우리를 토마스 홉스와 로크의 저작들과 함께 17세기에 시작된 자유주의의 후예로 규정한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을 던져버리기 이전에 그들의 주장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정치적 삶에 대한 시각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결국 그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자유와 공동체
    용어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자유주의는 다음과 같은 자유에 대한 관심을 우선적으로 보여준다: 즉 자의적 지배로부터의 자유, 타인의 의지가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우리 스스로 동의하지 않은 정부로부터의 자유 등이다. 자유이론의 기본에는 자연적 자유라는 가정이 존재한다. 부분적으로 자유주의는 17세기에 가장 정교하게 표현된 가부장 이론에 대한 반작용에 기인한다. 가부장 이론은 정치 사회의 기원과 의무의 근원 ―즉, 다른 사람의 권위를 수용하기 위한 근거― 을 가족관계 혹은 보다 엄밀히 말하면 아버지의 자연적 권위에서 찾는다. 가부장 이론에서 권위는 그 세대의 남성의 행위를 통해 아버지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그것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부장 이론과 달리, 자유주의 이론가들은 자연적 자유를 상정했고, 그 자유는 오직 피지배자의 공개적 사전 동의나 묵인에 의해서만 제한될 수 있다. 자연에서는 한 개인이 타인에 대한 어떠한 권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권위, 약자에 대한 강자의 권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 즉 타자의 복종을 명령하고, 타자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모두 인간이 선택한 결과이다. 세대와 같은 자연적 과정이나 강함, 인종, 지적 능력과 같은 자연적 속성은 누가 복종해야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명백한 기준을 제공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지배할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자연적 자유에 대한 자유주의의 가정은 홉스와 로크와 같은 초기 자유주의자들로 하여금 정치적 의무에 대한 새로운 근원과, 통치체제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는 근거를 찾게 했다. 유추적 사고에 의존한 가부장적 모델에서, 군주의 권위는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그것, 그리고 우주에서의 신의 그것과 같았다; 아버지와 신이 만물의 자연적 질서에 복종하도록 만든 것처럼, 군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잉글랜드의 왕, 제임스 1세는 17세기 초기 그의 저작에서 그의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하였다. “아들아, 무엇보다 신을 알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너는 두 가지의 의무(double obligation)를 지닌 사람이란다. 왜냐하면 신은 너를 남자로 만들어 줄 것이고, 또한 너를 그의 왕좌에 앉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작은 신으로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지.” 17세기 중반, 로버트 필머는 그의 글에서 아담에게 주었던 신의 태초의 기부 ―대지와 권위― 에 다시 주목하면서 자연적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궁극적으로 권력을 부여받은 군주와 부모에게 종속된 국가에서 태어났다.

    나는 어떻게 아담의 후손들이 그들의 부모로부터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되었는지, 그리고 신 자체의 계율에 의해 모든 제왕적 권위의 원천이 되는 후손의 종속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시민의 힘이란 일반적으로 신성한 제도일 뿐만 아니라 그 힘의 작동은 특별히 나이 많은 부모들에게 맡겨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이론이 자연적 자유를 전제하게 되면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자연적 자유를 향유하면서, 왜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야만 하는가? 자유주의 이론가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동의(consent)”에서 찾았다. 우리는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지시를 하는 사람이 갖는 권위의 창출에 모두 동의한다. 권위는 임의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권위의 소유자가 어떤 타고난 자질을 지녔기 때문도 아니고, 신이 우리의 지배자로서 특정인을 규정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정치체제는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동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여기에서 그 정당성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그들을 지배자의 위치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우리를 지배하는 사람들에 대한 권위를 인정한다.
    자연적 지배자로서 아버지를 규정하는 가부장적 이론은, 자연적 권위와 마찬가지로 자연적 공동체 역시 거부하거나, 질문할 필요도 없는 것으로 여겼다. 가족, 그리고 가족 내에서 누군가의 장소는 위계질서적 세계 속에 그가 있어야 할 장소를 결정해 주었다. 사람들은 관계라는 구조 속에서 아버지 또는 아들, 남편 또는 아내로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다.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연적 권위를 거부하는 자유주의의 이론적 배경에는 또 다시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는 모든 구속적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 개인이 존재한다. 다른 개인들과의 계약을 통해 정치적 권위를 창출하는 존재가 바로 이 자율적 개인이다.
    이와 같은 개인 ―권리의 담지자, 가치의 규정자, 그리고 자신이 그 일부인 정치체제의 판단자― 은 결코 그러한 명예로운 고립(splendid isolation)상태에 존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자유주의자들은 가부장주의에 이론적으로 도전하는 과정에서 고립된 개인들의 존재를 가정했다. 그들에게 있어, 공동체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수월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연합해 왔던 개별적 개인들의 합의에 의해 설립된 것이다. 이런 개인들은 그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에 근거해 정치적 공동체를 받아들인다. 본래 그들은 그 공동체의 일원(part)이 아니다. 그들은 자연적으로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한 것도 아니고, 살기 위해 (예를 들어 생존하기 위해 먹고 마시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정치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벌(bees)이나 개미와 같이 자신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체제의 일부가 되는 것을 선택한다. 초기 자유주의 이론가들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들은 계약한다.
    자유주의적 개인들로서, 우리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계약을 맺고, 정치적 공동체 속으로 들어간다. 정치적 공동체는 안정성과 신체적 안전을 담보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행복의 추구”를 가능하게 한다. 행복추구에 대한 본질은 그 혹은 그녀가 속한 도시 혹은 국가 아닌, 개개인에 의해 규정된다. 이러한 행복은 주관적이다; 무엇이 행복을 가져올지, 그리고 무엇이 그것을 방해할 것인지는 각 개인이 결정한다. 정치 공동체에 대한 지지의 여부는 특정한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인지, 아닌 지에 대한 평가에 달려있다. 가부장적 모델에서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정체의 목적을 정의하는 개인이 아닌, 통치를 하고 권위를 소유한 사람들이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운위되는 행복은 종종 사적 존재로서의 개인과 연관되고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닌 사적 행복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타인과 갈등하게 하는 것도 바로 행복이다. 자유주의 사회의 자유로운 개인은 종종 이웃과 갈등을 겪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곤 한다. 따라서 정치적 공동체는 시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중재자 즉 일련의 제도이다. 존 로크(John Locke)는 우리가 정치사회에 들어가기 전에 타자를 넘어서는 한 개인에 대한 자연적 권위는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사회로 들어서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우리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심판관(judges)이다. 정치사회 혹은 시민사회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정부에게 심판권을 양도하고, 그 정부의 법은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사적 이익들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우리는 그러한 공동체가 다른 사람들과의 분쟁을 중재하고, 우리의 행복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 ―안전― 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써 정부가 수립 된다고 믿기 때문에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 우리는 가족으로 태어나는 것처럼 정치적 공동체에 자연적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가부장적 사상가들과 근본적으로 단절하게 된다.

    평등과 불평등
    자유주의 국가(liberal state)를 구성하고 있는 자유로운 개인들은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평등하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붉은 머리카락과 파란 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의미는 본성상 어떤 개인도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그의 상황(case)을 판단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결정할 수 있는 명백하고 거부할 수 없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연적 평등은 자신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며 동의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다른 사람의 지배에 복종하지 않을 개인의 자연적 권리에서 나온다. 토마스 홉스는 우리의 평등에 대한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자연은 인간이 육체적, 정신적인 능력의 측면에서 평등하도록 창조했다: 때로는, 육체적 능력이 타인에 비해 명백히 강한 사람도 있고, 정신적 능력이 타인보다 뛰어난 경우도 있지만 이 둘을 합하여 평가한다면, 사람과 사람간의 능력의 차이는 그리 고려할만한 것은 아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이익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크지는 않다. 왜냐하면 체력이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음모를 꾸미거나, 혹은 같은 입장에 있는 약자들끼리 공모하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각자가 우리의 이웃을 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바로 그 안에서 홉스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평등을 발견한다. 따라서 그는 부성(paternity, 아버지다움)과 같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한 개인(아버지)을 구별하는 것이 그 사람(아버지)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확실한 근거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가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힘(Strength)은 적절하지도 않거니와 재치도 아니고 지혜도 아니다. 실제로 홉스의 모델에서, 성(sex) 조차도 타인에 대한 개인의 권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반면에, 몇몇 사람들은 좀 더 우월한 성(sex)이라는 이유로 남성만이 지배권을 부여받는 것으로 여기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남녀 사이에는 전쟁 없이 결정될 수 있을 만큼의 힘이나 사려 깊음(prudence)의 차이가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커먼웰스[공화국]에서 이 논쟁은 시민법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대체로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아버지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온다. 그것은 거의 대부분의 커먼웰스가 가족들 중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들에 의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복종을 요구하고 의무를 기대할 수 있는 개인을 선택하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성(paternity)은 자유주의 이론가들에게 이 기준을 제공하지 못하고, 최소한 홉스에 있어서는 남성성(masculinity)도 그 근거가 되지 못한다.
    [시민정부에 대한 두 번째 논고(제2정부론)](Second Treatise on Civil Government)에서 존 로크(John Locke)도, 보다 온건하고 또 성평등으로 이어지는 논쟁을 배제하면서, 홉스와 마찬가지로 자연적 평등을 강조했다.

    이 점은 동일한 종류의 피조물은 차별 없이 자연의 혜택을 받고 태어나 동일한 재능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피조물의 주인이자 지배자가 그의 의지를 명시적으로 선언함으로써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위에 놓고 뚜렷하고 명백한 지명을 통해서 의심할 여지없는 지배권과 주권을 그에게 수여하지 않는 한, 어떠한 복종이나 종속 없이 상호간에 평등해야 한다는 데서 명백히 드러나 있다.

    로크는 신이 “명백하고 확실한 약속” 같은 것을 누군가에게 부여 하지 않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근본적 평등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를 지배하고 주권적 권력을 가질 사람을 다수결에 의해 선출해야 한다. 권위의 행사를 승인하는 것은 그들의 고귀한 출신성분과 높은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다수의 동등한 개인이다. 독립선언서에서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기본적 자유주의의 주제를 제시한다. 그는 여기서 우리의 평등이 양도할 수 없는 권리, 특히 임의적 지배(arbitrary rule)에 구속받지 않을 권리를 각각의 개인에게 부여하는 자명한 진리에 근거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 역시 평등의 근본적 가정으로부터 시작해, 다른 사람에 대한 한 사람의 권위는 자연 발생적이 아닌, “피지배자의 동의”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우리는 평등한 개인들로서 정치 체제로 들어서고, 그것이 우리를 평등한 의무를 가진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우리의 동의에 의해 형성되어온 법 앞에 평등한 권리를 가진 평등한 개인으로서 대우할 것을 기대한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정치 체제의 평등한 창조자로서, 그러한 체제의 본질과 특성, 그리고 작동을 결정하는데 있어 평등한 역할과, 그것의 이점을 향유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기대한다. 정의와 공정함(fairness)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동등한 대우와 동등한 기회와 같은 개념으로 표현되어 온 평등에 근거해 왔다. 개인의 고유한 특징 ―성별(sex) 혹은 인종, 경제적 지위와 같은― 에 따른 차별적 대우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의심과 비난의 대상이 된다. 가부장 이론은 바로 그 차별적 대우에 근거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와 달랐다; 따라서 그[남편]의 지위와 권위는 그를 다르다고 인정했다. 마찬가지로 군주는 그의 신하와 달랐다; 따라서 그는 신민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특권을 향유하였다.
    가부장 이론가들이 언급했던 위계적이고, 불평등한 사회에서 출신성분, 성별, 혹은 나이와 같은 특징들은 한 사람의 지위를 결정하였다. 자유주의는 결국 평등한 사람들의 공동체에 누가 포함이 될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해야 했다. 17세기 자유주의의 도래 이후 누가 원래부터 평등한 사람인지에 대한 정의는 급격하게 변화해 왔다. 처음에는 “평등한 사람들”은 단지 상당한 재산을 소유한 성인 남성들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그 시기 이래로 대부분의 정치사상사에서 ―실제로, 자유주의 국가에서 대부분의 정치적 관행에서도― 다양한 경제적 집단과 인종, 종교, 심지어 다른 성(sex)의 구성원들을 포함하도록 ‘평등’ 개념의 확장이 수반되었다. 비록 로크는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지만, 홉스가 시사했던 것처럼 자유주의에서 ‘성평등’의 근거는 이미 그 전제로부터 도출되는 논리적 결론 속에서 발견된다. 자유주의 사상의 근저에 있는 자는 천부적으로 자유롭고 동등한 개인이며, 여기서 개인이 남성 혹은 여성, 흑인 혹은 백인, 그리고 성공회교도 혹은 재세례파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유주의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남성이나 여성이 소속된 정치체제에서의 개인의 참여는 성, 종교, IQ의 수준, 힘의 세기와 같은 특징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에 관한 동시대의 논쟁들 대부분에서 발견되는 긴장관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정치체제의 사상적 근거인 자유주의의 평등주의적 가정과, 우리 사회의 성장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가부장적이고 성적인 차이라는 관행 사이의 갈등에서 발생한다. 때로 자유주의 사회(또는 사상)에서도 그것이 과거의 흔적으로 남아있기도 하지만, 성적 불평등은 자유주의의 내재적 특성은 아니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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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주요 관심사는 서양 근대정치사상과 여성정치이고, 궁극적 지향점은 여성정치사상의 정립과 민주주의의 사상적 완성이다.
    저서로 [여성의 정치사상]과 [인권의 정치사상](공저), [좋은 삶의 정치사상](공저)이 있으며, 번역서로 [지하드 맥월드], [고백록](역해)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다문화 사회에서의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 [전쟁의 길과 평화의 나무], [참여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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