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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당나귀 곁에서 : 김사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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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깊은 울림을 자아내는 간절하고 귀한 목소리

    2015년 ‘창비시선’의 문을 여는 첫번째 시집으로 김사인 시인의 신작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가 출간되었다. 2006년 무려 19년 만에 "너무 슬프고 너무 아름답다"(신경림)는 평을 받은 두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을 펴내며 문단에 신선한 감동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후 다시 9년이라는 긴 시간 뒤에 선보이는 세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삶과 죽음의 갈피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여여(如如)하게, 또는 엄숙하게 수락하는" 겸허한 마음을 가다듬으며 "대문자 시의 바깥에서 종용히 움직이는 미시(微詩)의 시학"(최원식, 발문)을 펼쳐 보인다. 고향의 토속어와 일상언어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빼어난 언어감각과 정교하고 정감어린 묘사로 "생로병사의 슬픔 일체를 간절한 마음의 치열한 단정(端正)에 담아"(김정환, 추천사)낸 시편들이 나직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출판사 서평

    육성 시낭송 및 ‘소규모’ 콜라보 음원 수록 더책 무료 제공
    특별히 이 [어린 당나귀 곁에서]는 시집으로서는 최초로 시낭송 오디오북을 무료로 써비스하는 ‘더책 특별판’으로 출간되어 김사인 시인이 직접 고르고 낭송한 스무편의 시편들을 시인의 목소리로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또한 이번 더책 써비스에는 시인의 육성 낭송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디밴드인 ‘소규모(소규모 아카시아 밴드)’가 김사인 시인의 신작 시로 만든 시노래 신곡 두곡 [꿈의 앤솔러지] [둥근 등]도 함께 수록되어 무료로 제공된다. 시인의 육성으로 직접 듣는 시편들에는 시인의 호흡과 느낌이 그대로 실려 있어 시의 감동을 더 실감할 수 있다. (*책에 부착된 NFC 태그에 스마트폰을 대면 곧바로 시낭송을 감상할 수 있다.)

    귓속이 늘 궁금했다.//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길 끝에 입을 대고/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낱으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그 안에서 달팽이는/천년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귀가 죽고/귓속을 궁금해할 그 누구조차 사라진 뒤에도/길이 무너지고/모든 소리와 갈증이 다한 뒤에도/한없이 느린 배밀이로/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망해버린 왕국의 표장(標章)처럼/네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더듬더듬/먼 길을.
    (/ '달팽이' 중에서)

    작고 여린 것들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여기는 시인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삶의 소소한 풍경들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어린 연둣빛 귀뚜리 하나를/늙은 개미가 온 힘을 다해 끌고"([사바(娑婆)]) 가는 모습에서 생의 경건함을 발견해내는 시인은 "버려진 집에 뒹구는 이 빠진 종지처럼"([옛 우물])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하찮은 것은 "부디 하찮은 대로"([이대로 좀]) 놔두기를 바란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가련한 생명들을 사랑과 연민으로 품어안는 것이다. 공사판을 떠돌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노동자의 삶을 냉정하리만큼 담담하게 기록한 [허공장경(虛空藏經)]에서는 비극을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운명애가 사뭇 비장하기도 하지만, 폐지를 묶는 팔순 노인의 작은 몸을 응시하는 시인의 눈시울은 뜨거워진다.

    굽은 허리가/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몸뻬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바짝 벽에 붙어선다/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고독한 바짝 붙어서기/더러운 시멘트 벽에 거미처럼/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 벽에/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차가 지나고 나면/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천천히 다시 펴진다./밀차의 바퀴 두개가/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기운 씽크대와 냄비들/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목이 멘다/방 한구석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 '바짝 붙어서다' 중에서)

    그런가 하면 "한때는 놀던 몸"([통영])이라고 짐짓 허세 아닌 허세도 부리면서 "인생 그까이거 좆도 아닌"([서부시장]) 세상에 "침이나 한번 카악 긁어 뱉어주고"서 "쌍"([8월]) 은근슬쩍 ‘인간미 있는’ 욕도 한번 질러보는 능청을 떨기도 한다. "자본주의보다 훨씬 오랜 식욕의 역사"([먹는다는 것])를 지닌 인간의 성욕을 시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고개를 꼬고 앉은 치마 속에도/사과 같은 엉덩이가 숨어 있다는 엉큼한 생각"([엉덩이])이 피어오르기도 하면서 "미시의 환골탈태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발문) 이 시집은 그래서 ‘재미’도 있다.

    몸은 하나고 맘은 바쁘고/마음 바쁜데 일은 안되고/일은 안되는데 전화는 와쌓고/땀은 흐르고 배는 고프고/배는 굴풋한데 입 다실 건 마땅찮고/그런데 그런데 테레비에서/[내 남자의 여자]는 재방송하고/그러다보니 깜북 졸았나/한번 감았다 떴는데 날이 저물고/아무것도 못한 채 날은 저물고//바로 이때 나직하게 해보십지/'에이 시브럴-'/양말 벗어 팽개치듯 '에이 시브럴-'
    (/ '에이 시브럴' 중에서)

    그리고 삶의 한 가녘에서 시인은 아득한 추억에 젖는다. 어린 시절 "설 쇠고 올라오던"([비둘기호]) 길에 ‘젊은’ 아비와 겪었던 슬픈 기억은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지울 수 없는 음화로 남아 여전히 먹먹하고, 먼저 떠나보낸 이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놓는 시인의 손끝은 쓸쓸하고 눈물겹지만 슬픔 너머 고요한 곳을 가리킨다. "겁 많은 귀뚜라미처럼" 혹은 "그 바닥 초본식물처럼 엎드려 살다"([김태정]) 간 김태정 시인, "눈물과 노래가 일품이었던"([박영근]) ‘노동자 시인’ 박영근, "검붉게 술에 탄 얼굴 다복솔 머리 헐렁한 바지"([바보사막]) 차림의 신현정 시인과 "꼬지지한 염생이 수염 몇올과 퉁방울눈"([영동에서])이 선량하기만 했던 ‘소리꾼 시인’ 윤중호, "사람이 통째로 칼이 되"([칼에 대하여])어 혁명전사로서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김남주 시인, 그리고 "인사동 고샅을/밤마다 순찰 돌"([인사동 밤안개])던 ‘민중미술가’ 여운 화백. 컴컴한 세상을 ‘사람답게’ 살다 간 이들을 애틋한 그리움으로 호명하며 시인은 "슬픔 없는 나라"([화양연화(花樣年華)])에서 "이제 걱정 말고 편히 쉬라고"([김태정]) 안부를 전한다.

    여섯살이어야 하는 나는 불안해 식은땀이 흘렀지./도꾸리는 덥고 목은 따갑고/이가 움직이는지 어깻죽지가 가려웠다.//검표원들이 오고 아버지는 우겼네./그들이 화를 내자 아버지는 사정했네./땟국 섞인 땀을 흘리며/언성이 높아질 때마다/나는 오줌이 찔끔 나왔네./커다란 여섯 살짜리를 사람들은 웃었네.//대전역 출찰구 옆에 벌세워졌네./해는 저물어가고/기찻길 쪽에서 매운바람은 오고/억울한 일을 당한 얼굴로/아버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눈을 보냈네./섧고 비참해 현기증이 다 났네.//아버지가 사무실로 불려간 뒤/아버지가 맞는 상상을 하며/찬 시멘트 벽에 기대어 나는 울었네./발은 시리고 번화한 도회지 불빛이 더 차가웠네.//핼쑥해진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어두운 역사를 빠져나갔네./밤길 오십리를 더 가야 했지./아버지는 젊은 서른여덟 막내아들 나는 홑 아홉살// 인생이 그런 것인 줄 그때는 몰랐네./설 쇠고 올라오던 경부선 상행.
    (/ '비둘기호' 중에서)

    슬픔 너머로 다시 쓸쓸한/솔직히 말해 미인은 아닌/한없이 처량한 그림자 덮어쓰고 사람 드문 뒷길로만 피하듯 다닌/소설 공부 다니는 구로동 아무개네 젖먹이를 맡아 봐주던/순한 서울 여자 서울 가난뱅이/나지막한 언덕 강아지풀 꽃다지의 순한 풀밭./응 나도 남자하고 자봤어, 하던/그 말 너무 선선하고 환해서/자는 게 뭔지 알기나 하는지 되레 못 미덥던/눈길 피하며 모자란 사람처럼 웃기나 잘하던/살림 솜씨도 음식 솜씨도 별로 없던//태정 태정 슬픈 태정/망초꽃처럼 말갛던 태정.
    (/ '김태정' 중에서)

    "절망을 수락하되 절망에 투항하지 않는" 단호한 걸음
    이번 시집에서 또 우리가 가만히 눈여겨볼 것은 과거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이 깃든 ‘정치적’ 시편이다. 시인은 "칠성판에 묶여 개구리처럼 빠둥거리"던 고문의 기억을 복원하거나([일기장 악몽]) "팔공년 봄 광주"의 "한 속살"을 촘촘히 들여다보고([오월유사(五月遺事)]), "친구들 생각하면 눈물"만 나는 현대사를 돌아보며([한국사]) "남산 지하실 같은 어둠이 내리"는 현실을 직시하는([불길한 저녁]) 시편들을 통해 새로운 형식의 시적 정치성을 실험한다. 그중에서도 국가폭력의 상징인 ‘국정원’을 통렬하게 풍자한 [내곡동 블루스]는 오늘 우리 사회의 위기를 예견한 듯한 일종의 ‘시참(詩讖)’으로 읽힌다. 이 시편들을 아울러 문학평론가 최원식은 "미시로부터 진화한 정치시가 개화했다"(발문)고 평한다.

    국정원은 내곡동에 있고/뭐랄 수도 없는 국정원은 내곡동에나 있고/모두 무서워만 하는 국정원은 알 사람이나 아는 내곡동에 박혀 있고//(...)/아무튼 모른다 아무도/다만 비가 내릴 뿐/우울히 비가 내릴 뿐/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그밖의 삼인칭 우수마발(牛瘦馬勃)도 알 리 없고/원격 투시하는 천안통 빅 브라더께서는/그러나 그이야 관심이나 있을까/내곡동의 비에 대해/내뿜는 담배연기에 대해/우수 어린 내곡동 바바리코트에 대해/신경질적인 가래침에 대해/하느님은 아실까/그러나 그걸 알 사람도 또한 국정원뿐/그러나 내곡동엔 다만 비가 내릴 뿐
    (/ '내곡동 블루스' 중에서)

    김사인 시인은 시단에서 ‘과작의 시인’으로 손꼽힌다. 등단 34년에 이제 세번째 시집이니 마땅히 그럴 만도 하다. 2-3년이면 으레 시집 한권을 묶어내는 요즘 세태에서는 자칫 시작(詩作)에 대한 ‘소홀함’이나 ‘게으름’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인의 말대로 ‘과작이 자랑은 아니지만’ 단어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되다 만 시는 결코 장에 내지 않는 문학적 결백성을 보자면 "네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더듬더듬/먼 길을" 가는 "한없이 느린 배밀이"([달팽이])가 오히려 믿음직스럽고 든직해 보인다. 그의 시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 응답하기라도 하듯 천천히 꺼내놓은 이번 시집은 편편이 깊고 아름답고, 하찮고 슬프면서도 환하고 따스하다. 이 절망의 시대에 우리는 "절망을 수락하되 절망에 투항하지 않는(...) 마침내 시인"(최원식, 발문)을 얻었다. 또한 "허튼 책"(시인의 말)이 아니라 시인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가장 튼튼하고 가장 미래지향적인, 죽음에 이르는 미학"이 "아름다움의 슬픈 깊이를 더해가는"(김정환, 추천사) 귀한 시집을 얻게 된 것이다.

    ‘다 공부지요’/라고 말하고 나면/참 좋습니다./어머님 떠나시는 일/남아 배웅하는 일/‘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 하고 계십니다’/말하고 나면 나는/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눈만 내리깐 채/숫기 없는 나는/아무 말 못하겠지요만/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눈물 핑 돌겠지요만.//날이 저무는 일/비 오시는 일/바람 부는 일/갈잎 지고 새움 돋듯/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 '공부' 중에서)

    추천사

    이 시집의 첫 시, 그러니까 서시 격인 [달팽이] 마지막 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 안에서 달팽이는/천년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귀가 죽고/귓속을 궁금해할 그 누구조차 사라진 뒤에도". 오늘날 김소월은 시적으로 극복될 수 없다. 근대시 문법을 여는 듯 닫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서정주는 극복될 수 없거나, 극복이 부질없다. 그의 시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근대 이전 정서가 언어의 처음을 입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수영은 극복될 수 있고, 극복이 유의미하다. 그가 여전히 동시대인인 까닭이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혹시 본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김사인의 시는 그 점을 성취와 한계 양면에서 보여줘왔다. 느리지만, 참으로 끈질기게. 그만큼 생의 태도가 겸손한 사람을 찾기 힘들지만, 특히 이번 시집에서, 그의 시는 겸손하다기보다 생로병사의 슬픔 일체를 간절한 마음의 치열한 단정(端正)에 담아내는 식으로 김수영과 또다른 길을 내려는 야심이 만만하고, 단정은 그의 가장 튼튼하고 가장 미래지향적인, 그러니까 죽음에 이르는 미학이다. 아무렇게나 한구절, 이를테면 "비라도 오는 밤은 내 남은 혼/초분 위에 올라앉아 원숭이처럼/긴 꼬리 서러워 한번쯤 울어도 보리."([초분])쯤을 중간역 삼아 이 시집을 다 읽고 다시 첫 시, 그러니까 서시 격인 [달팽이]로 돌아오면 마지막 연이 이렇게 끝난다. "네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더듬더듬/먼 길을." 우리는 생로병사의 구조가 순환할수록 단정으로 아름다움의 슬픈 깊이를 더해가는 희귀한 현대 시집을 한권 얻었다.
    - 김정환 / 시인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6~
    출생지 충북 보은
    출간도서 9종
    판매수 2,856권

    1956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대전고와 서울대 국문과에서 공부했다. 1981년 [시와 경제] 동인 결성에 참여하면서 시를 발표했으며, 1982년부터는 평론도 쓰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이 있고, [박상륭 깊이 읽기] [시를 어루만지다] 등의 편저서가 있다.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십년째 고양시 일산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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