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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 : 박노해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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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노해
  • 출판사 : 느린걸음
  • 발행 : 2014년 12월 10일
  • 쪽수 : 172
  • ISBN : 9788991418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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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30년을 넘어 『노동의 새벽』은 오늘 다시 새롭다.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출간 30주년을 맞은 개정판이다. 『노동의 새벽』에서 그려진 처절한 노동과 저항 끝에 이루어낸 산업화와 민주화의 대한민국,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일당 4000원짜리” 노동자는 ‘5,210원짜리 노동자’로 바뀌었을 뿐, ‘기계’는 늘어나고, ‘일자리’는 희소해지고, ‘인간’은 저렴해지고 있다. 여전히 불의한 시대, 여전히 불안한 영혼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용기의 메시지다.

특히 이번 개정판은 1984년 초판본의 미학과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했다. 표지의 ‘실크 인쇄’는 오랜 인쇄 기법 중 하나로, 기계가 아닌 장인적 노동으로 완성된 것이다. 또한 1984년 초판본의 납활체를 가능한 그대로 살렸으며, 세월이 흘러 읽기 어려운 글자는 하나하나 수작업을 거쳐 되살려냈다. 컴퓨터 글자가 아닌, 저마다 다 다른 ‘살아있는 글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출판사 서평

27살 청년이 쓴 시집 한 권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1984년, 군사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된 '시대의 고전'.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출간 30주년을 맞아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박노해를 통해서만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처절하고 감동적인 노동의 서사이며 한 시대 노동의 운명에 대한 진실한 증언”(도정일, 문학평론가),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단일 시집으로서 가장 많이 노래로 만들어진 시집” 등 객관적 역사 기록과 그를 뛰어 넘는 충격적 감동의 내적 기억의 책. 그래서 30년이라는 세월은 한 시집이 망각 속으로 소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나 『노동의 새벽』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고전’이다. 이 시집 속의 노동은 곧 삶이요, 노동자는 곧 인간이 되어 오늘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노동의 새벽』에서 그려진 처절한 노동과 저항 끝에 이루어낸 산업화와 민주화의 대한민국,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일당 4,000원짜리” 노동자는 ‘5,210원짜리 노동자’로 바뀌었을 뿐, ‘기계’는 늘어나고, ‘일자리’는 희소해지고, ‘인간’은 저렴해지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노동이란 / 슬픔과 분노와 투쟁이란 / 오래되고 또 언제나 새로운 것 / 묻히면 다시 일어서고 /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 // 스무 살 아프던 가슴이 / 다시 새벽 노래를 부른다”(박노해, 『노동의 새벽』 개정판 서시)

특히 이번 『노동의 새벽』 개정판은 1984년 초판본의 미학과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했다. 표지의 ‘실크 인쇄’는 오랜 인쇄 기법 중 하나로, 기계가 아닌 장인적 노동으로 완성된 것이다. 또한 1984년 초판본의 납활체를 가능한 그대로 살렸으며, 세월이 흘러 읽기 어려운 글자는 하나하나 수작업을 거쳐 되살려냈다. 컴퓨터 글자가 아닌, 저마다 다 다른 ‘살아있는 글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내가 자살한다면 새벽일 거야." 여전히 불의한 시대, 여전히 불안한 영혼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용기. 30년을 넘어 『노동의 새벽』은 오늘 다시 새롭다.

1984년, 27살 청년이 쓴 시집 한 권이 세상을 뒤흔들다

1984년, 한 공장 노동자의 손에서 한 문학평론가의 손으로 신문 하나가 건네졌다. 그 신문지 사이에서, 얇은 습자지 위에 연필로 또박또박 눌러 쓴 시들이 쏟아져 나왔다. 군사독재 치하의 엄혹한 시절, 한 편 한 편의 시는 가슴에 불을 지피는 충격이었고 눈물이었고 위험한 그 무엇이었다. 시인은 자신을 밝히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며 사라졌다. 그 시들이 묶여 한 권의 시집으로 탄생했고, 그것이 바로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었다.

『노동의 새벽』은 곧바로 엄청난 충격과 논란을 몰고 왔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중의 한 권으로 남게 되었다. 저자 박노해는 이 시집을 세상에 발표하고 곧바로 위험 인물로 떠올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각종 시국 사건의 배후 인물로 추적당했다. 그는 '불순한' 노동자, '불온한' 시인, '위험한' 혁명가였다.

군사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새벽』은 출간 이듬 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박노해는 등장하자마자 평론가 김윤식, 임헌영 등이 뽑은 ‘1984년의 시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1988년에는 계간 『문예중앙』과 평론가들이 선정한 ‘지난 10년간 최고의 작품 한 편’으로 『노동의 새벽』이 뽑히기도 했다. 1991년 그가 구속될 때까지 공식 기록은 없지만 이 시집은 100만 부 가까이가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노동의 새벽』이 던진 파장은 넓고 컸다. 문단은 경악했다. 그의 시는 지식인 시인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닿을 수 없는 지점에 이미 도달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목소리로, 군홧발로 짓밟혀온 1천만 노동자의 살아있는 실체의 모습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것은 ‘잊혀진 존재’였던 노동자가 역사의 당당한 주체로 걸어 나오는 시대적 예감이었다. 이로써 『노동의 새벽』은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하나의 커다란 지침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노동의 새벽』은 단일 시집으로서 가장 많이 노래로 만들어진 시집”(강헌, 대중음악평론가)이라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노동의 새벽』에 묶인 42편의 시 가운데 「가리봉시장」, 「지문을 부른다」, 「시다의 꿈」, 「진짜 노동자」, 「노동의 새벽」, 「바겐세일」 등 20여 편의 시들이 80년대 민중가요로 작곡되어 노래의 몸을 입고 울려 퍼졌다. 2004년, 故신해철 씨가 프로듀싱을 맡고 싸이, 윤도현, 한대수, 언니네 이발관 등의 뮤지션이 참여한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앨범』이 발매되었는데, 한 권의 시집에 음반과 공연이 헌정되는 것은 한국음악사상 유례 없는 일이었다.

“1980년대를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박노해는 역사이고 상징이며 신화이다. 고달픈 저임금 노동자로부터 몸을 일으켜 이 나라 최초의 빛나는 노동자 시인이 된 희귀한 존재, 사회 모순이 절정에 달했던 시대의 고통과 꿈과 투쟁을 기적처럼 한 몸에 구현했던 투사? 문학사적으로나 사회사적으로 우리는 그런 존재를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도정일, 문학평론가)

2014년, ‘노동의 새벽’은 이미 왔는가, 아직 오지 않았는가?

2014년, 『노동의 새벽』 출간 30주년을 맞이했다. 30년이란 세월은 한 세대 이전의 시간이며, 한 시집이 망각 속으로 소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노동의 새벽』은 세월을 뚫고 새삼스럽게 다시 기억의 전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의 새벽』이 여전히 '불온한' 물음을 던지는 생생한 목소리로 되살아나는 까닭은, 이 시집이 가진 시공을 뛰어넘는 근원의 저항과 소망 때문일 것이다.

어찌 보면 불과 30년 전의 이 노래들은 지금 시대를 경유하는 이들이 가닿을 수 없이 아득하기만 하다. 하여 노동의 새벽은 쉬이 잊혀져서는 안 될 ‘기억’을 ‘대물림’하는 일이기도 하다. 동시에 우리는 그것을 암울했던 과거 한때의, 처절했던 누군가의 이야기로 읽을 수 없다. 이 시집 속의 노동은 곧 삶이요, 노동자는 곧 인간이 되어 오늘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노동의 새벽』에는 '평온한 저녁 밥상'을 앞에 두고자 하는 소박한 열망, 사람 대접받고,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이 곳곳에 녹아있다. 단지 인간다운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그러나 사회의 모순구조에 의해 그 본질적인 욕망이 짓밟힌 인간 군상의 신음과 일어섬이 담겨 있다.

그 처절한 노동과 저항 끝에 이루어낸 산업화와 민주화의 대한민국, 그러나 오늘의 노동 현실은 출구가 없는 상태로 치닫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일당 4,000원짜리” 노동자는 ‘5,210원짜리 노동자’로 바뀌었을 뿐, ‘기계’는 늘어나고, ‘일자리’는 희소해지고, ‘인간’은 저렴해지고 있다. 비단 그 시절 육체 노동만이 아니라 사무 노동, 지식 노동, 감정 노동 등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몸과 정신과 영혼에 대한 ‘노동 착취’는 여전하지 않은가. 노동은 갈수록 자연과 자율과 몸과 영혼에서 분리되고, 내 노동과 그 생산물이 자아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진정한 ‘노동 소외’는 여전하지 않은가.

“많은 강을 건너고 / 많은 산을 넘었다 / 새벽은 이미 왔는가 / 아직 오지 않았는가 //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부으며 / 온몸으로 부르던 새벽 / 그때 우리는 스무 살이었다 // 나는 처음 노래했지만 / 노래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 누구의 가슴에나 이미 있었고 / 누구라도 받아쓰지 않으면 안 될 / 우리들 가난한 사랑의 절규였다 // 인간의 삶이란, 노동이란 / 슬픔과 분노와 투쟁이란 / 오래되고 또 언제나 새로운 것 / 묻히면 다시 일어서고 /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 // 스무 살 아프던 가슴이 / 다시 새벽 노래를 부른다”(박노해, 『노동의 새벽』 개정판 서시)

30년을 맞은 『노동의 새벽』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과연 노동은 삶을 신성하게 하는 노동으로, 노동자는 인간으로 해방되었는가? 노동의 새벽은 ‘이미’ 왔는가, ‘아직’ 오지 않았는가? 그대 자신의 삶은 해방되었는가? "아마도 내가 자살한다면 새벽일 거야." 『노동의 새벽』의 수많은 얼굴들은 '또 다른 나’의 얼굴이 되어 지금 우리 앞에 서있다. 하여 『노동의 새벽』은 여전히 불의한 시대, 여전히 불안한 영혼에게 바치는 위로이자 용기이다. 그 강인한 시들의 힘이 우리를 강하게 할 것이다.

장인적 노동으로 완성된 개정판, 실크 인쇄와 납활자의 복원

이번 『노동의 새벽』 개정판은 1984년 초판본의 미학과 정신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그것은 단순한 형태의 복구가 아닌 정신의 복원에 가깝다. 『노동의 새벽』은 노동자가 부른, 노동자가 주인공인, 노동자의 노래이다. 또한 노동자가 만든 책이기도 하다. 하여 개정판의 디자인과 제작 전반에 창조적 노동의 과정을 오롯이 담아내고자 하였다.

1984년 초판본의 정체성은 표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판화가 故 오윤이 목판에 새겼던 ‘강인한 노동자의 뼈대’ 같은 제목, 그리고 깊은 새벽의 검푸른 빛은 한 시대의 상징이었다. 2014년 『노동의 새벽』 개정판에서는 “내가 자살한다면 새벽일 거야”로 노래한 그 시린 아픔과 슬픔이 짙게 스며든 코발트 블루, 그리고 현대적 타이포그래피로 새로 태어난 검은 글자가 초판본을 창조적으로 계승했다. 디자인은 한국의 대표적인 타이포그래퍼이자 출판디자이너 홍동원이 맡았다.

기계화, 자동화의 진행으로 출판 인쇄 영역 또한 대량생산과 효율성을 따지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이번 『노동의 새벽』 개정판에서 구현한 ‘실크 인쇄’는 오래된 인쇄 기법 중 하나로, 사람의 손이 훨씬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노동의 새벽』이 담지한 정신을 구현하고자 한 것으로, 기계의 미학이 아닌 장인적 노동의 미학을 담아내고 있다. “실크 인쇄의 기술은 시간이 갈수록, 그것을 다루는 장인의 경륜과 경험이 깊어질수록 더 새롭고 아름다워진다. 색이 쉽게 변질되지 않고 오래가며, 색감 또한 일반 인쇄에서는 구현되기 힘든 깊이를 지닌다.”(홍동원, 글씨미디어 대표)

개정판 본문의 특징은 바로 ‘납활체’에 있다. 납활체는 컴퓨터가 상용화된 이후 거의 사라져 지금은 찾아 보기 어렵다. 『노동의 새벽』 개정판 본문은 1984년 초판본의 납활체를 가능한 그대로 살렸으며, 세월이 흘러 읽기 어려운 글자는 하나하나 수작업을 거쳐 되살려냈다. “납활체는 글자 하나하나를 일일이 손으로 만들고, 또 사람이 누르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에 같은 글자가 한 글자도 없다. 손으로 글씨를 쓸 때 강약과 느낌이 다 다른 것처럼. 그것이 살아있는 글자이며, 거기서 우리는 ‘글자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홍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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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80년대의 『노동의 새벽』을 역사적인 대상이나 지난 날의 기억으로 돌리는 일과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인간정신의 재생을 찾는 일 가운데서 후자의 사명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은, 시인)

“1980년대를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박노해는 역사이고 상징이며 신화이다. 고달픈 저임금 노동자로부터 몸을 일으켜 이 나라 최초의 빛나는 노동자 시인이 된 희귀한 존재, 사회 모순이 절정에 달했던 시대의 고통과 꿈과 투쟁을 기적처럼 한 몸에 구현했던 투사? 문학사적으로나 사회사적으로 우리는 그런 존재를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깊은 밤 다시 『노동의 새벽』을 펴들고 거기 수록된 시편들을 눈물 없이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해보라.” (도정일, 문학평론가)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만큼 충격적인 예술적 사건은 그 앞에도 그 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시집은 장르를 넘어 모든 고정관념을 타파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서술했다. 『노동의 새벽』은 단일 시집으로서 가장 많이 노래로 만들어진 시집이기도 하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당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셨던 선배님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배우기 위해 『노동의 새벽』20주년 헌정 음반에 참여해 ‘하늘’이라는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참으로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싸이, 가수)

“박노해님의 시와 노래, 아니 그의 절규와 휴머니즘은 이렇게 먼 시절로부터 지금까지 각박한 삶과 노동살이로 식어진 우리네 삶을 어루만지며, 또한 지금도 역시 어딘가에 구석자리를 마련한 노동자들의 서러운 술자리를 위로합니다. 세월을 넘어서도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토하며 다가오는 그를 새기고 그 안의 정신을 위해 노래합니다.” (넥스트N.E.X.T, 가수)

“박노해, 그에겐 수많은 이름과 명칭이 있지만 그는 누가 뭐래도 『노동의 새벽』의 시인이다. 이 시집을 빼놓고 어찌 80년대를 추억할 수 있으랴. 그 시절, 돈도 명예도 없었지만 함께 부를 수 있는 시가 있었기에 진정, 행복했음을. 우리 시대 청춘들도 부디 이 행운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그리하여 시와 혁명, 일상과 투쟁, 저항과 구도가 눈부시게 조우하는 ‘인간의 새벽’을 노래하게 되기를!” (고미숙, 고전평론가)

책속으로 추가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P99)
나면서부터인가 / 노동자가 된 후부터인가 / 내 영혼은 불안하다 // (…) 아마도 내가 자살한다면 / 새벽일 거야 // 잔업 끝난 늦은 귀갓길 / 산다는 것, 노동자로 산다는 것의 / 깊은 불안이 또다시 나를 감싼다 // 화창한 일요일 / 가족들과 오붓한 저녁상의 웃음 속에서도 / 보장 없는 내일에 / 짙은 불안이 엄습해 온다 // (…) 괴롭기만 한 긴 노동 / 쪼개고 안 먹고 안 입어도 / 남는 것 하나 없이 물거품처럼 / 이러다간 언제 쓰러질지 몰라 // 상쾌한 아침을 맞아 / 즐겁게 땀 흘려 노동하고 / 뉘엿한 석양녘 / 동료들과 웃음 터뜨리며 공장문을 나서 / 조촐한 밥상을 마주하는 / 평온한 저녁을 가질 수는 없는가 // (…)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 평온한 미래를 위하여 / 결코 평온할 수 없는 / 노동자의 대도大道를 따라 / 불안의 한가운데로 휘저으며 / 당당하게 당당하게 / 나아가리라

노동의 새벽 (P103)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 아 /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 오래 못 가도 / 끝내 못 가도 / 어쩔 수 없지 // 탈출할 수만 있다면, /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 (…) 아 그러나 /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 이 질긴 목숨을, / 가난의 멍에를, /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 새근새근 숨 쉬며 자라는 / 우리들의 사랑 / 우리들의 분노 /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잔을 /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 노동자의 햇새벽이 / 솟아오를 때까지

사랑 (P115)
사랑은 / 슬픔, 가슴 미어지는 비애 / 사랑은 분노, 철저한 증오 / 사랑은 통곡, 피투성이의 몸부림 / 사랑은 갈라섬, / 일치를 향한 확연한 갈라섬 / 사랑은 고통, 참혹한 고통 / 사랑은 실천, 구체적인 실천 / 사랑은 노동, 지루하고 괴로운 노동자의 길 / 사랑은 자기를 해체하는 것, / 우리가 되어 역사 속에 녹아들어 소생하는 것 / 사랑은 잔인한 것, 냉혹한 결단 / 사랑은 투쟁, 무자비한 투쟁 / 사랑은 회오리, / 온 바다와 산과 들과 하늘이 들고일어서 / 폭풍치고 번개 치며 포효하며 핏빛으로 새로이 나는 것 /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은 / 고요의 빛나는 바다 / 햇살 쏟아지는 파아란 하늘 / 이슬 머금은 푸른 대지 위에 / 생명 있는 모든 것들 하나이 되어 / 춤추며 노래하는 눈부신 새날의 / 위대한 잉태

목차

1. 사랑이여 모진 생명이여
하늘 15 | 멈출 수 없지 18 | 신혼 일기 22 | 천생연분 24 | 이불을 꿰매면서 28 | 얼마짜리지 31 | 어디로 갈꺼나 33 | 한강 36 | 그리움 38 | 포장마차 40 | 가리봉 시장 44 | 지문을 부른다 47 | 영어회화 51 | 썩으러 가는 길 55 | 남성편력기 60 | 모를 이야기들 65 | 통 박 69

2 노동의 새벽
바겐세일 75 | 시다의 꿈 77 | 봄 79 | 졸음 81 | 휴일특근 84 | 손 무덤 87 | 어쩌면 91 | 당신을 버릴 때 94 | 진짜 노동자 97 |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99 | 노동의 새벽 103 | 어쩔 수 없지 106 | 석양 109

3. 새 땅을 위하여
사랑 115 | 바람이 돌더러 117 | 밥을 찾아 119 | 대결 124 | 떠나가는 노래 127 | 떠다니냐 130 | 삼청교육대 Ⅰ 133 | 어머니 141 | 아름다운 고백 145 | 별 볼일 없는 나는 149 | 장벽 152 | 허깨비 155 |

해설 | 노동현장의 눈동자 _ 채광석 159

본문중에서

하늘 (P15)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 나의 하늘이다 //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 나의 하늘이다 // 두 달째 임금이 막히고 /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 감옥소에 집어넌다는 경찰관님은 /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 무서운 하늘이다 //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 관리들은 / 겁나는 하늘이다 //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 모두 하늘처럼 뵌다 / 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 검은 하늘이시다 // 나는 어디에서 /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 대대로 바닥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 그 사람에게만은 / 이제 막 아장걸음마 시작하는 /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것지 //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 서로를 받쳐 주는 /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 그런 세상이고 싶다

지문을 부른다 (P47)
평생토록 죄진 적 없이 /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 살리고 / 수출품을 생산해 온 /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 지문을 찍는다 / 아 / 없어, 선명하게 / 없어, / 노동 속에 문드러져 / 너와 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 지문이 나오지를 않아 // (…) 긴 노동 속에 / 물 건너간 수출품 속에 묻혀 / 지문도, 청춘도, 존재마저 / 사라져 버렸나 봐 // 몇 번이고 찍어 보다 / 끝내 지문이 나오지 않는 화공약품 공장 / 아가씨들은 끝내 울음이 북받치고 / 줄지어 나오는, 지문 나오지 않는 사람들끼리 / 우리는 존재조차 없어 / 강도질해도 흔적도 남지 않을 거라며 / 정형이 농지껄여도 / 더 이상 아무도 웃지 않는다

바겐세일 (P75)
오늘도 공단거리 찾아 헤맨다마는 / 검붉은 노을이 서울 하늘 뒤덮을 때까지 / 찾아 헤맨다마는 / 없구나 없구나 / 스물일곱 이 한목숨 / 밥 벌 자리 하나 없구나 // (…) 10년 걸려 목메인 기름밥에 / 나의 노동은 일당 4,000원 / 오색영롱한 쇼윈도엔 온통 바겐세일 나붙고 / 지하도 옷장수 500원짜리 쉰 목청이 잦아들고 / 내 손목 이끄는 밤꽃의 하이얀 미소도 / 50% 바겐세일이구나 // 에라 씨팔, / 나도 바겐세일이다 / 3,500원도 좋고 3,000원도 좋으니 팔려가라 / 바겐세일로 바겐세일로 / 다만, / 내 이 슬픔도 절망도 분노까지 함께 사야 돼!

시다의 꿈 (P77)
긴 공장의 밤 / 시린 어깨 위로 /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 드르륵 득득 /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 시다의 언 손으로 / 장밋빛 꿈을 잘라 /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 / 피 흐르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 끝도 없이 올린다 // (…) 아직은 시다, / 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 / 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 /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 시다의 꿈으로 / 찬바람 치는 공단거리를 / 허청이며 내달리는 왜소한 시다의 몸짓 / 파리한 이마 위로 / 새벽별 빛나다

손 무덤 (P87)
올 어린이날만은 /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 손목이 날아갔다 // (…)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 기름 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 36년 한 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 차마 손만은 꺼내 주질 못하였다 // (…) 내 품속의 정형 손은 /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 일 안 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 묻는다 /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 일하는 손들이 /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 묻고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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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박노해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57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 벌교에서 자랐다. 16세 때 상경하여 선린상고(야간)를 졸업했다.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27살 현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에 펴낸 이 시집은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되며, 한국 사회와 문단을 충격적 감동으로 뒤흔들게 된다. 이때부터 박노해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며 시대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1991년, 7년 여의 수배생활 끝에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을, 1997년 옥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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