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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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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도, 또 가장 고통스럽게도 만드는 사랑의 열병

이 책 [사랑]은 서양사학자 주경철 교수,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 중국문학자 박지현 교수가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의 신입생들과 ‘사랑’을 놓고 벌인 유쾌하고도 치열한 강의 내용을 담은 결과물이다. 한마디로 사랑에 대한 학제적 탐구라 할 수 있다. 서양사를 전공하는 주경철 교수는 유럽에서 사랑이 줄곧 공동체와 종교의 규제 하에 있었으나 서서히 변화를 거쳐 뒤늦게 19세기에 와서야 낭만적 사랑이 본격 등장하게 되었음을 들려준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는 그와 같은 역사적 발전 과정보다는 차라리 실험과 통계, 뇌영상촬영 등 과학적 분석을 통해 사랑의 본질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본다. 박지현 교수는 중국 문학의 여러 텍스트를 통해 동양의 사랑은 서양 문명과는 다른 맥락에서 다른 가치를 지니며 변화해왔음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 영혼을 온통 흔들어놓는 사랑보다 더 아름답고도 잔혹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중요한 문제인 사랑에 관해 가능하면 다양하고 색다르게 탐구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융합적 태도뿐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사유의 세계를 깊고 넓게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사랑에 관해 서울대학교 신입생들과
세 명의 교수 사이에서 벌어진
유쾌하고도 치열한 논쟁


이 책은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의 교양 필수 수업인 [주제탐구세미나]의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2009년 시작되어 매 봄 학기에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개설되는 이 세미나는 ‘인문’과 ‘자연’을 아우르는 하나의 큰 주제를 던지고 전공이 다른 교수 세 명과 신입생들이 함께 다양한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고, 학생 스스로 전공의 경계를 넘어보게끔 도와주는 실험적이고 독특한 수업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동안 이 세미나에서 다룬 주제들은 생명, 사랑, 시간, 지식, 문명, 행복 등이며, 함께 참여한 교수들의 전공은 철학, 역사학, 생물학, 물리학, 인류학, 정치학, 문학, 사회학, 과학기술사, 미술사학, 음악학, 종교학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 책은 이 세미나에서 다룬 ‘사랑’에 관한 탐구 과정을 담은 것이다.

사랑은 변하는 것!!
사랑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1장 [사랑의 역사]는 서양사학자 주경철 교수의 글이다. 저자는 유럽에서 사랑은 어떤 변화를 거쳐서 오늘날에까지 이르렀을까?란 질문을 던지고, 각 시대의 사랑에 관한 특징을 살펴본다. 먼저 중세시대에는 남녀 간의 사랑, 특히 육체적 쾌락이 극도로 억압되었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 지극히 이상화된 사랑의 관념이 탄생했음을 이야기한다. 근대 초기인 16~18세기에는 억압적인 가부장제가 공동체의 질서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통에 개인의 사랑이 억눌려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녀 간 혹은 가족 사이의 관계에서 점차 완고한 성격이 완화되어간 사실을 살펴본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결혼하여 따뜻한 가정을 꾸미고 또 부모와 자식 간에 애틋한 애정을 나누는 관계가 확고하게 정립된 18~19세기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렇듯 시대마다 사랑의 양태는 매우 다르게 나타났으며, 사랑하는 연인끼리 만나 삶을 함께 한다는 이상, 곧 낭만적 사랑에 의한 결혼은 오랜 기간의 변화를 거쳐 비교적 최근 시대에 와서야 자리 잡았음을 들려준다. 그토록 애타게 고대하던 사랑의 해방을 맞이한 오늘날, 인간 관계는 폭발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났고, 수많은 사랑의 모델이 혼재하며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음도 논의한다.
주경철 교수의 이 글을 읽다 보면,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20대 젊은이부터 8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지상천국의 환희를 안겨줄 듯하다가도 때로는 너무나 애처롭게 몰아가는 이 사랑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존재이유일까? 젊은날 한때의 가슴 아픈 성장통일까? 혹은 그 아무것도 아닌 허황된 신화에 불과할까? 그토록 힘들게 지속해온 노력의 결과 낭만적 사랑을 쟁취한 서구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행복해진 걸까? 등. 이러한 질문에 다양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사랑에 관해서, 더 나아가 인생에 관해서 사유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사랑에 빠진 순간, 도대체 그들은 왜 그랬을까?
사랑에 관한 보편적인 법칙이란 게 있을까?


2장 [사랑을 바라보는 과학의 시선]은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글로, 도대체 형체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사랑을 과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가지 관점을 제공한다. 이 글은 신경과학자와 사회심리학자, 진화심리학자 등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간이란 동물의 ‘낭만적 사랑’이란 행동을 관찰하고, 설문조사하고 그들을 인터뷰 하고 그들의 뇌를 찍어봄으로써 알게 된 사실들의 기록이다. 정재승 교수는 수많은 실험과 통계를 소개하면서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야기한다.
처음 만나서 고통받으면서도 행복하며 사랑했던 순간에서부터, 헤어지고 때론 배신당한 순간을 거쳐, 결국 시큰둥해지거나 몰래 바람을 피우는 중년의 사랑, 그리고 80대 노인들의 ‘황혼의 로맨스’에 이르기까지, 개인들이 겪게 되는 사랑의 순간들을 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보고, 노골적으로, 때론 냉정하게 들려준다.
저자는 이 글에서 사랑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와 뇌’라는 생물학적 기관을 통해 온몸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를 제대로 이해할 때, 현명한 사랑에 눈을 뜰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내 사랑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랑은 절대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보편적인 사랑의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임에도 온 인생을 통해 매번 남다른 색깔의 사랑을 펼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랑은 무엇보다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랑 담론의 과제는 ‘마음’에 대한 검토임을!
사랑의 본질과 규범에 관해 논의하다


3장 [문학 속 사랑의 담론]은 중문학자 박지현 교수의 글로, 중국 한대(漢代)에서 청대(淸代)에 이르는 중국 문학 속 사랑의 담론을 살펴본다. [시경]에 수록된 시편들에서부터 불륜서사의 대표적인 작품인 [금병매], 중국 최고의 고전문학으로 꼽히는 [홍루몽] 등 문학 속 사랑의 담론에 관해서 서술한다.
인간의 감정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지만, 사랑은 변덕스럽고 모호하며 당황스럽고 낯설다. 순간의 설렘 혹은 떨림, 환희, 기쁨, 절망, 증오, 미움, 원망, 그리움, 상처, 때론 참혹함, 때론 무모함으로 가학과 피학을 오가며 변화무쌍하게 다가오는 그것을 어찌 희로애락과 같은 정의 가능한 감정의 하나로 분류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문학에서 사랑의 담론은 그 실체에 대한 탐색이라기보다 본질에 대한 탐색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무엇인가는 사랑이 지닌 수많은 속성 가운데 무엇이 좀 더 본질적인 것인가에 대한 물음과도 같은며, 이것은 사랑은 어떠해야 하는가와 같은 규범론으로 연결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사랑의 실체가 아닌 본질과 규범에 관한 논의, 즉 사랑의 ‘진정성’이라 부를 수 있는 이것이 곧 문학 속 사랑 담론의 특징이라 말한다.
우리가 적어도 인생에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사랑의 열병, 그 ‘진정성’의 실체는 무엇일까. 자기 복제를 위한 DNA의 욕망일까. 그 혹은 그녀와 섹스를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함께 있고 싶다로 느껴지는 그 감정의 실체, 때론 키스보다 감미로운 대화, 세상 다른 어떤 일도 생각할 수 없는 정신의 몰입, 나를 다 내어주고도 후회가 없는 강렬한 이타심, 그리고 집착, 이 모든 것이 생물학적 욕망의 고도로 발달된 자기기만과 포장의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엄밀히 말하면 욕망은 변화의 주범이 아니다. 욕망의 메커니즘은 예나 지금이나 일정하고 균일하다. 오히려 변화의 주범은 이 욕망을 어떻게 발현할까를 결정하는 내 안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사랑의 진정성이 의심 받고 그 전적인 책임을 욕망이 뒤집어쓰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 담론의 과제는 무엇보다 ‘마음’에 대한 검토라고 말한다.

목차

머리말-사랑을 보는 세 개의 시선

1. 사랑의 역사-주경철
-프롤로그: 사랑은 변하는 것!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이 억압된 중세 유럽에서 이상화된 사랑이 탄생하다
아내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마라 | 아가페도, 에로스도 아닌 내면의 특별한 경험 | 오직 진정한 기사만이 진짜 사랑을 | 가윈 경과 녹색기사, 전사에서 사랑의 기사로 | 이루어지지 않아야 고결한 사랑이다 | 고통스러운 열정을 공유해야만 | 고귀한 여성의 힘으로 사랑을 고양시키다
-왜 사랑하는데 결혼하지 못하나? 근대, 낭만적 사랑에 눈뜨다
개인의 열정, 공동체와 갈등하다 | 멋진 이성에게 끌리는 것은 광기다! | 억압과 규제 속에서 눈치껏 사랑하라 | 과연 결혼 전에 어느 정도까지 진도를 나갔을까? | 아내의 즐거움이 지나치지 않도록 만져라 | 조금씩, 느리게 변화하다
-영혼의 떨림, 사랑이 폭발하다
낭만적 사랑이 시작되다 | 시골사람들도 사랑의 표현을 배우다 | 사랑, 드디어 가정에 들어가다 | 짐승처럼 행동하고 천사처럼 미소지어라 | 도시와 농촌의 서민들은 어떻게 사랑했을까 | 육체적 사랑의 만개가 몰고온 재앙
-에필로그: 현대를 향하여

2. 사랑을 바라보는 과학의 시선-정재승
-프롤로그: 사랑에 관한 보편적인 법칙
-‘첫눈에 빠진 사랑’에 관한 낭만적 환상
1970년대와 1990년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 때론 헤어짐의 핑계 또는 작업 수단
-사랑의 신호는 어디에서 포착되는가?
오랫동안 눈 맟출수록 높은 애정지수 | 명대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수컷의 이력서 혹은 사랑의 조건
한 살 많아지면 매력은 4퍼센트 감소 |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가 좋아 | 때론 키보다 중요한 유머감각
-암컷의 이력서 혹은 사랑의 조건
말로 못하겠다고? 그런 ‘동물적 이끌림’이야 | 미녀의 조건, 어린 나이와 매력적인 얼굴 | 엉덩이 대 허리가 0.7인 여자
-성격이 연인들에게 미치는 영향
연인들은 심지어 정신질환도 공유한다 | 상대방에게 소중한 것을 이야기하라
-섹스를 경험하기 위한 그 필사적인 노력
여자는 NO, 남자는 YES | 먼저 마음속으로 답해보시라
-사랑에 관한 오해: 행복하려고 사랑하는 게 아니다!
사랑에 빠진 표정을 지어보라 | 사랑은 행복이 아니라 희열임을
-일부일처 혹은 ‘사랑의 독점’에 관한 본능
내 유전자를 잘 보호할 것인가, 더 많이 퍼트릴 것인가 | 인간은 ‘사회적 일부일처제’ | 순애보와 불륜은 호르몬 차이? | ‘원나이트 스탠드’에 따르는 손실
-질투는 진화의 힘
‘jalouse’ 뒤에 숨어 지켜보다 | 일단은 의심하는 게 진화에 유리해 | 질투하는 사람은 네 번 괴롭네
-실연당한 이들의 뇌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
뇌는 모르는 거니? 사랑의 시작과 끝을 | 쾌락이 사라졌을 때, ‘좌절-공격’ 가설 | 분노하라, 새로운 사랑을 위하여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사랑은 불청객, 초대 없이 오고 가고 | ‘의기소침’은 구원을 요청하는 신호
-그렇게 당하고도 또 나쁜 남자를 찾는 나는 도대체 뭐니?
사랑에도 ‘복기’가 필요하다 | 아름답고 잔혹한 ‘양다리’의 달인들 | 남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진다 | 당신 옆에 사람이 그 사람일지도...
-바람둥이를 가려내는 과학적 방법
"씻지 말고 기다리시라" | 욕은 먹어도 실속은 챙긴다 | 사랑은 사랑하게 만드네
-에필로그: 원숙한 사랑에 관한 낭만적 기대
기혼여성 90퍼센트 "섹스리스는 남자 책임" | 마지막 성관계 나이 61.3살

3. 문학 속 사랑의 담론-박지현
-프롤로그: 문학 속 사랑과 현실의 사랑
문학, 사랑의 진정성을 논의하다 |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 | 중국의 사랑: 전복이 아닌 타협, 파괴가 아닌 복원의 사랑 | 21세기의 사랑: 절대 자유를 얻었으나 여전히 치명적인 사랑
-사랑의 발견: 그리움의 미학
즐거우나 지나치지 않고 슬프나 상하지 않게 | 그대와의 거리만큼 그리워하다 | 근원적 거리의 절대 간극이 주는 슬픔 |
-욕망의 문제: 환상의 미학
섹스의 욕망, 미학으로 끌어들이다 | 일상의 경계를 벗어난 특별한 한 번의 만남
-신의의 문제: 맹세의 미학
욕망이 아닌 약속으로서의 사랑 | 프러포즈, 약속이 사랑을 만들다
-자유연애, 담론의 중심으로 들어오다
연애, 기이한 사건으로서의 사랑 | 영혼의 분리, 욕망과 윤리의 간극을 해소하다 | 건국부인이 된 기녀 이와 | 사랑과 결혼은 달라 | ‘아름다운 그녀’ 앵앵
-불륜, 용서할 수 있거나 없거나
탐할수록 허기진 욕망 | 뒤틀린 절대욕망의 끝, 그 불편한 파멸 | 외로움에 지친 ‘이런 죽일 년놈들’의 사랑
-‘정(情)’의 대두: 무엇이 사랑을 지속시키는가?
마음의 진실성 | 이성이 아닌 감성의 약속
-‘사랑’ 그 자체를 이야기하다
일체감을 욕망하다 | 왜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에필로그: ‘마음’에 관하여

본문중에서

유럽에서 사랑은 어떤 변화를 거쳐서 오늘날에까지 이르렀을까? 물론 우리는 수천 년에 걸친 사랑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고찰할 수는 없다. 여기서는 다만 각 시대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에 만족하자. 앞으로 설명할 내용의 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우선 중세(대개 서기 500~1500년 사이의 시대를 가리킨다)에는 남녀 간의 사랑, 특히 육체적 쾌락이 극도로 억압되었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 지극히 이상화된 사랑의 관념이 탄생했다는 점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다음 시기인 근대 초기(16~18세기)에는 억압적인 가부장제가 공동체의 질서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통에 개인의 사랑이 억눌려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녀 간 혹은 가족 사이의 관계에서 점차 완고한 성격이 완화되어간 사실을 살펴볼 것이다. 그와 같은 변화는 18~19세기에 정점에 이르러 드디어 사랑이 ‘해방’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결혼하여 따뜻한 가정을 꾸미고 또 부모와 자식 간에 애틋한 애정을 나누는 관계가 확고하게 정립된 것이다.
(/ p.22)

과연 청춘 남녀들은 결혼 전에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갔을까?
물론 이 문제를 명확하게 알 도리는 없다. 역사학자들의 추정도 엇갈린다. 어떤 학자들은 당시 도덕과 각종 검열, 교회의 감시 등으로 젊은이들의 혼전 성적 접촉이 별로 없었다고 본다. 이것이 분명 일리 있는 것은 사생아가 지극히 적다는 연구 결과에서 알 수 있다. 현재 인구사(人口史) 연구 결과를 보면 17~18세기에 세례를 받은 사람들 중 사생아의 비율은 농촌은 2퍼센트, 도시는 5퍼센트 수준이었다. 이것은 오늘날과 비교해보면, 또 피임 방법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당시 사정을 감안하면 지극히 낮은 수준이다. 다시 말해서 당시에는 혼전의 성적 결합이 매우 적었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18세기 후반에 가서 농촌보다는 도시에서 사생아 비율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을 뿐이다.
(/ p.62)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 어린아이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대체로 17세기 즈음에 사회의 상층에서 ‘아이를 발견’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아이들의 응석을 받아주고 같이 놀아주는 식으로 아이들을 한껏 예뻐해주는 태도(mignotage) 가 눈에 띄게 늘었다. 그 이전에는 엄마들이 아이를 전혀 예뻐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가정은 부부간에 그리고 부모자식 간에 따뜻한 애정이 감도는 곳으로 그 의미가 변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가 어느 한순간 갑자기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사랑은 사실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그것은 수세기 동안 복합적인 모습을 띠며 존재했다. 사랑은 대체로 문학 속에서나 존재했으며, 주로 결혼 전이나 가정 바깥의 일이었고, 대개 국가와 교회의 엄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서 이제 감정과 욕망은 당당히 자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사랑은 아주 서서히 해방되어갔다.
(/ p.70)

사실 19세기 부르주아의 성과 가정 문제는 흔히 허위로 가득했다. 표면상으로 19세기 사회는 청교도적이었다. 어린이들에게는 성과 관련된 문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숨겼다. 어른들은 대화 중에 아이가 들어오면 순식간에 말을 멈추었다. 생식기를 가리키는 용어는 모두 대명사(그것)를 사용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주는 것으로 가르쳤다. 섹스는 곧 ‘죄’와 연관지었다. 자위는 천벌 받을 행위로 비난받았고, 의사들은 옷 위로 촉진을 해야 했다. 부부간에도 벗은 몸을 보여서는 안 되었으므로 사랑을 나눌 때에도 불을 끈 다음 절반만 옷을 벗고 하곤 했다. 정상체위 이외의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딥 키스나 구강성교 같은 것은 창녀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특히 재산이 있는 집안에서는 연애결혼은 불가능하고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혼인을 해야 했다. 혼외정사에 대해서는 남성은 벌금형으로 대신하는 반면, 여성은 감옥행이었다. 사생아는 상속에서 제외되었다.
이런 현상들만을 보면 당시 사람들은 지나치게 순결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말 그랬을까?
(/ pp.81~82)

그렇다면 첫 만남에서 어떻게 상대방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첫눈에 상대를 반하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가 사실은 우리 코 위에 있다. 사랑이 어디에서 오느냐고? 사랑은 심장이나 생식기가 아니라 바로 눈에서 시작된다. 눈과 눈의 만남을 통해 사랑은 마음을 얻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정서관계가 만들어질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시각기관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헤어질 때 "다음에 또 봐요"라고 인사하지, "다음에 또 냄새를 맡아요"라고 하지 않는다.
(/ p.107)

"너는 왜 그 남자를 사랑해?" "그 여자의 어떤 점이 좋아?" 대한민국에선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답을 듣기가 쉽지 않다. 우리 학교 ‘사랑학’ 수업 시간에도 사랑에 빠진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의 답변은 한결같다. "특별히 어떤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요, 그냥 다 좋아요."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어요."
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답변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문화적인 압력도 작용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선 이유를 댈 수 있는 사랑을 ‘낮은 수위의 사랑’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절대적인 사랑은 사랑에 빠진 이유를 댈 수 없어야 한다.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자체가 그냥 좋은 ‘운명적 사랑’을 최고의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를 댈 수 없는 것은 그 사랑이 나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생물학적 이끌림’ 때문이라는 고백과 다름없다.
(/ p.117)

그런데 내가 더 관심이 있는 것은 ‘그렇다면 왜 사람마다 질투의 정도가 다를까’ 하는 것이다. 질투가 성적 배신을 막는 데 유용한 전략이라면 왜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른 것일까? 질투가 적은 사람은 성적 배신에 너그러운 것일까? 아니면 자신도 성적 배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죄책감으로 인해 좀 더 관대한 것일까?
질투는 성적 배신을 막으려는 이성적 전략이기도 하지만, 성적 배신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배우자의 바람기가 심각한 수준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할수록 질투심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 pp.146~147)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로 가장 좋은 것은 ‘가까운 친구와 나누는 속 깊은 수다’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까운, 그러면서도 인내심 있고 입이 무거운 친구를 찾아가 실패한 사랑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고 감정의 앙금을 털어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별 직후 나누는 대화일수록, 친구는 그저 들어주고 위로해주려고 노력해야지 실연당한 사람을 평가하고 질책해선 안 된다. 지나친 간섭과 질책은 오히려 역효과라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특히 부모님들은 명심하실 것). 영화 [미스터 로빈 꼬시기]에 나오는 명대사를 잊지 말자. "이별한 여자에게 필요한 건, 함께 울어줄 친구지 비평가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평정심을 되찾거든, 다시 그 친구에게 가서 자신의 ‘사랑의 기술’에 대해 냉정한 조언을 구하라. 당신이 찼든 혹은 차였든, 실패할 사랑을 고르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사랑에도 ‘복기’가 필요하다. 버림받은 남자와 여자가 견뎌내야 하는 고통은 아마도 그로 하여금 장래에는 그와 비슷한 잘못된 선택을 피해가도록 하는 안내자가 될 것이다. 이때에도 여전히 좋은 말만 듣길 바란다면, 친구를 잃진 않겠지만 사랑을 다시 얻지 못할 수도 있다.
(/ p.157)

끝으로, 남자들이 알아두면 좋을 만한 바람둥이의 중요한 전략 한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카사노바의 자서전 [불멸의 유혹]을 보면 그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을 언급한 대목이 간간이 나오는데, 여기에 주목할 만한 메시지가 있다. 카사노바는 여성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말하면서 "여성은 자신이 매우 사랑받고 있으며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그저 여성을 (매번!)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여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일깨워주고 소중하게 대해주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 놀랍게도 여성들은 (원래 그렇지 않던 여성들도) 실제로 아름다운 존재로, 사랑받는 존재로 변하고 그렇게 행동하며,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듯, 사랑은 여성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의 하나로 그가 제안하는 것은 이성과 대화할 때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상대방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때로는 이를 위해 공부를 할 필요도 있다. 상대방이 관심 갖고 있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만큼 사랑스러운 순간은 없다는 것이 희대의 바람둥이가 우리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아,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 p.167)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신의는 오늘날까지도 사랑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는 듯하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프러포즈는 엄밀히 말하면 ‘나는 앞으로 너를 계속 사랑하겠다’라는 약속의 프러포즈다. 사랑의 약속은 원래 사랑을 전제로 맺어지는 것이지만 때론 약속이 사랑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사랑의 형식이라 할 수 있는 약속은 그 자체로 충분히, 혹은 사랑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오늘날 아직도 많은 드라마에서 조강지처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이유는 사랑을 신의라, 약속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하지 않는데 같이 사는 것만큼 기만적인 일이 또 있을까.
(/ p.215)

열정은 뜨겁고 강렬하지만 정은 따뜻하고 애틋하다. 열정은 불태우지만 정은 느낄 뿐이다. 열정은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만 정은 시작과 끝이 분명치 않다. 열정은 우연적이고 언제든 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순간 가속의 감정이지만 정은 반드시 공유된 기억과 일정한 시간의 흐름이 있어야 발동하는 경험 기반의 감정이다. 원래 중국에서 ‘정(情)’은 ‘성(性)’과 대립되는 개념이었다. ‘성’은 태어나면서 갖춰지는 보편으로서의 본성이다. 그에 반해 ‘정’은 감정으로 나타나는 마음의 움직임을 가리킨다. 그것은 흔히 ‘칠정(七情)’이라 하여 인간의 일반적인 감정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였으나 점차 남녀 간의 사랑을 지칭하는 용어로 전화되었다.
(/ p.246)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0.10.12
출생지 서울특별시
출간도서 32종
판매수 18,702권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
지은 책으로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마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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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72.05.06~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42종
판매수 123,754권

카이스트에서 물리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일 대학교 의과 대학 정신과 박사 후 연구원, 고려 대학교 물리학과 연구 교수, 컬럼비아 대학교 의과 대학 정신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구 분야는 의사 결정 신경 과학, 뇌-기계 인터페이스, 뇌 기반 인공 지능이다. 저서로 『열두 발자국』,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1.4킬로그램의 우주, 뇌』(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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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수 0권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지냈고 북경대외경제무역대학에서 강의했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및 서강대학교 언어정보연구소의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와 서강대에서 중국의 서사전통 및 문화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중국의 부계(扶}?) 신앙과 문인문화] [중국의 서 사전통과 현대화] [상상 중국과 현실 중국: 개인, 가문, 국가] 등이 있으며, 공저로 [동서양 서사문학의 환상과 기이의 미학] [중 국의 지식장과 글쓰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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