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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인식과 비평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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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류덕제
  • 출판사 : 한국문화사
  • 발행 : 2014년 12월 30일
  • 쪽수 : 358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6817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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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인과 비평가들과 얽혀서 나눈 대화와 끄적거린 글들의 갈무리

그동안 작가와 작품에 대해 써온 글들을 다듬어 '현실인식과 비평정신'이란 이름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1990년대를 전후해서 한국 문학계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썼던 글들이다. 그런데 글 대부분이 리얼리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탈(脫)리얼리즘의 시대에 리얼리즘을 붙잡고 있었던 꼴이다. [창작과비평], '염무웅', '현기영', '농민소설' 등의 기호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이를 대변한다. 그런가 하면 리얼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넘나드는 경계 선상의 관점이 배어있는 글들도 없지 않다. '회통(會通)'이 운위되던 시대적 배경 때문일 것이다. '최원식'을 점검하고 '형상화'를 되풀이하여 강조한 이유다. 뭉뚱그려서 보자면 리얼리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되,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을 기웃거리기도 한 모습을 연상하면 될 듯하다.

출판사 서평

다수의 글이 [사람의 문학]과 무관하지 않다. 인적 자원이나 물적 토대 어느 하나 변변치 못한 지역문학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1994년부터 대구에서 발행하고 있는 계간지 [사람의 문학]을 통해 발표한 글들이 많은 까닭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의 문학]을 둘러싸고 만났던 꼿꼿한 정신과 맑은 감성의 시인과 비평가 덕분이다. 배창환, 김윤현, 정대호, 김용락 등이 그들인데, 준 것은 없으면서도 받은 것은 많은 사람들인지라 늘 빚진 마음이 앞선다. 이들과 어울리고 얽혀서 나눈 대화와 끄적거린 글들이 이 책으로 갈무리 된 것이라 보면 된다.

이 책은 '작가와 작품의 내면', '비평의 비평', '작가를 찾아서', 그리고 '서평과 감상' 등의 이름으로 작품론과 비평론, 작가론, 그리고 서평을 담고 있다.

박정애(朴正愛)의 [물의 말]은 한국사회의 전근대를 살아온 여성의 문제를 경상도 방언의 자재(自在)한 구사로 녹여낸 재미가 여간한 게 아니었고, 뜨거웠던 80년대를 지나 호흡을 가다듬고 담담히 써내려간 정혜주의 [강, 섬, 배]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여러 번 되묻게 할 것이다. 황석영(黃晳暎)의 [오래된 정원]과 [손님]에서는 한 시대를 정리하면서 새로운 모색을 추구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1989년 방북 사건 이후 독일 등지의 망명 생활과 귀국 후 옥중 생활을 통해 구상한 [오래된 정원]뿐만 아니라 [손님] 또한 공간적 배경이 한반도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새로운 모색에는 새로운 기법적 시도도 포함되어 있다. 등의 작품을 통해 한국문학의 줄기와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정연(理路整然)한 염무웅(廉武雄)의 삶과 비평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문예미학회가 준 기회 덕분이었고, 최원식(崔元植)의 회통은 작가회의(인천)의 청탁에 응하면서 작성한 것이다. 한국문학에서 리얼리즘을 운위할 때 염무웅과 최원식을 건너뛰고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시간과 지면의 제약도 있었지만 나 자신이 웅숭깊은 비평가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기나 했는지 지금도 송연(悚然)한 마음이 없지 않다.

김주영(金周榮)과 현기영(玄基榮)은 직접 대담을 했는데, 문단 이력이나 작품적 성과로 볼 때 누가 인터뷰자가 되든 행운이면서 동시에 부담이 앞서지 않을 수 없는 작가들이다. 그들의 너른 품은 작품의 폭과 깊이에 여실히 녹아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정리하다 보니 어떤 글은 쉬 읽히는가 하면, 다른 글들은 그렇지 못한 것도 있어 책으로 묶는 것을 주저하였다. 그러나 빛과 그늘이 다 나의 소산임을 비켜갈 수는 없는 법이다. 한 시대의 정신적 궤적을 정리하는 것도 새로운 도전이나 전진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것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을 자주 확인한다. 옳다고 다 남의 동조를 받는 것도 아니다. 거꾸로 나도 그랬을 것이다.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하면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점차 많아짐을 느낀다. 정치(精緻)인가 우유부단일까? 가만 보면 사람 사는 일이 바로 저지르고 반성하고 고쳐나가는 것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리얼리즘이든 모더니즘이든 사람의 생각과 사는 모습을 살필진대 ‘사람’을 떠나서는 다 허위의식(虛僞意識)의 소산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느 것이나 진중한 자세와 성실한 노력으로 임해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책을 발간하는데 애써 주신 김진수 사장과 편집부 유채민 씨의 노력에 감사를 드린다.

목차

서문

1부 작가와 작품의 내면
농촌의 현실과 역사의 현실
자기반성과 새로운 다짐
물의 포용, 사랑의 힘, 모성
꿈과 열정이 사라진 시대의 새로운 꿈 찾기
사실과 허구의 조화, 실록문학의 가능성
소설 읽는 맛 - 삶의 건강성과 형상화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자세
시대 변화의 징후 읽기
역사 발전의 주체는 누구인가
현실인식과 작가 의식
지식인의 역할 기대
대중성의 확보와 문학성의 취약
노동자, 건전한 사회의 추동력
나라 찾기와 나라 만들기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시 읽기

2부 비평의 비평
리얼리즘 소설의 탐색과 전망
민중과 민족, 리얼리즘의 비평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 그 성과와 과제

3부 작가를 찾아서
밑바닥 삶에 대한 애정, 위안으로서의 문학
문학과 역사와 현실
식민지 시대, 조선의 얼굴을 직시한 작가

4부 서평과 감상
분단의 극복, 문학적 대응
자기 성찰의 맑은 거울 또는 차이의 인정
원칙과 기준의 회복을 위하여
알란와 샤흘란
선운사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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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그동안 작가와 작품에 대해 써온 글들을 다듬어 '현실인식과 비평정신'이란 이름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1990년대를 전후해서 한국 문학계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썼던 글들이다. 그런데 글 대부분이 리얼리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탈(脫)리얼리즘의 시대에 리얼리즘을 붙잡고 있었던 꼴이다. [창작과비평], '염무웅', '현기영', '농민소설' 등의 기호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이를 대변한다. 그런가 하면 리얼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넘나드는 경계 선상의 관점이 배어있는 글들도 없지 않다. '회통(會通)'이 운위되던 시대적 배경 때문일 것이다. '최원식'을 점검하고 '형상화'를 되풀이하여 강조한 이유다. 뭉뚱그려서 보자면 리얼리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되,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을 기웃거리기도 한 모습을 연상하면 될 듯하다.

다수의 글이 [사람의 문학]과 무관하지 않다. 인적 자원이나 물적 토대 어느 하나 변변치 못한 지역문학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1994년부터 대구에서 발행하고 있는 계간지 [사람의 문학]을 통해 발표한 글들이 많은 까닭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의 문학]을 둘러싸고 만났던 꼿꼿한 정신과 맑은 감성의 시인과 비평가 덕분이다. 배창환, 김윤현, 정대호, 김용락 등이 그들인데, 준 것은 없으면서도 받은 것은 많은 사람들인지라 늘 빚진 마음이 앞선다. 이들과 어울리고 얽혀서 나눈 대화와 끄적거린 글들이 이 책으로 갈무리 된 것이라 보면 된다.

이 책은 '작가와 작품의 내면', '비평의 비평', '작가를 찾아서', 그리고 '서평과 감상' 등의 이름으로 작품론과 비평론, 작가론, 그리고 서평을 담고 있다.

박정애(朴正愛)의 [물의 말]은 한국사회의 전근대를 살아온 여성의 문제를 경상도 방언의 자재(自在)한 구사로 녹여낸 재미가 여간한 게 아니었고, 뜨거웠던 80년대를 지나 호흡을 가다듬고 담담히 써내려간 정혜주의 [강, 섬, 배]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여러 번 되묻게 할 것이다. 황석영(黃晳暎)의 [오래된 정원]과 [손님]에서는 한 시대를 정리하면서 새로운 모색을 추구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1989년 방북 사건 이후 독일 등지의 망명 생활과 귀국 후 옥중 생활을 통해 구상한 [오래된 정원]뿐만 아니라 [손님] 또한 공간적 배경이 한반도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새로운 모색에는 새로운 기법적 시도도 포함되어 있다. 등의 작품을 통해 한국문학의 줄기와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정연(理路整然)한 염무웅(廉武雄)의 삶과 비평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문예미학회가 준 기회 덕분이었고, 최원식(崔元植)의 회통은 작가회의(인천)의 청탁에 응하면서 작성한 것이다. 한국문학에서 리얼리즘을 운위할 때 염무웅과 최원식을 건너뛰고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시간과 지면의 제약도 있었지만 나 자신이 웅숭깊은 비평가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기나 했는지 지금도 송연(悚然)한 마음이 없지 않다.

김주영(金周榮)과 현기영(玄基榮)은 직접 대담을 했는데, 문단 이력이나 작품적 성과로 볼 때 누가 인터뷰자가 되든 행운이면서 동시에 부담이 앞서지 않을 수 없는 작가들이다. 그들의 너른 품은 작품의 폭과 깊이에 여실히 녹아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정리하다 보니 어떤 글은 쉬 읽히는가 하면, 다른 글들은 그렇지 못한 것도 있어 책으로 묶는 것을 주저하였다. 그러나 빛과 그늘이 다 나의 소산임을 비켜갈 수는 없는 법이다. 한 시대의 정신적 궤적을 정리하는 것도 새로운 도전이나 전진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것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을 자주 확인한다. 옳다고 다 남의 동조를 받는 것도 아니다. 거꾸로 나도 그랬을 것이다.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하면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점차 많아짐을 느낀다. 정치(精緻)인가 우유부단일까? 가만 보면 사람 사는 일이 바로 저지르고 반성하고 고쳐나가는 것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리얼리즘이든 모더니즘이든 사람의 생각과 사는 모습을 살필진대 ‘사람’을 떠나서는 다 허위의식(虛僞意識)의 소산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느 것이나 진중한 자세와 성실한 노력으로 임해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책을 발간하는데 애써 주신 김진수 사장과 편집부 유채민 씨의 노력에 감사를 드린다.
(/ '서문 ' 중에서)

농촌의 현실과 역사의 현실

윤정모(尹靜慕)의 [들]은 [창작과비평] 1990년 겨울호에서 시작되어 1992년 여름호에 끝을 맺었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과 소설 속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시간상으로 거리가 거의 없어 현저하게 당대적인 것이 이 작품이 갖는 우선적인 특징이다. 소설 속의 시간은 1988년 총선 직전부터 1989년 12월 13일 여의도 전국 농민대회 직후까지이다. 이처럼 소설 속의 사건이 현실에도 '지금 여기' 진행되고 있는 것이어서 평가나 판단은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작가 윤정모는 80년대의 농촌(농업, 농민을 포괄함, 이하 같음) 문제를 작가 특유의 확립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치열한 산문정신에 입각하여 형상화했다.

[들]은 농촌에서 소재를 끌어왔다. 그러나 소재주의에 머무는 전원소설로 그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농촌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편중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작가는 현재의 시점을 '도실(제비울)'이라는 경기도의 한 농촌에다 맞추고 있으나, 회상을 통해 종횡으로 일제 식민지 시대, 미군정 하, 6·25 전쟁기, 박정희와 60년대, 산업화와 새마을 운동, 광주 항쟁과 5공화국 정권이 망라되어 소설의 서사적인 시공간이 확보되고 있다.

우리 시대에 농촌이나 농민이 문제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들]을 읽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질 법한 의문이다. [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농촌이나 농민의 문제가 그 자체의 문제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농촌이나 농민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독점자본과 재벌,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외세 및 부도덕한 정권이 농촌문제와 구조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나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환부를 한눈에 바라보고자 할 때 농촌과 농민이 그 창구가 될 수 있다.

소설을 '현실의 형상적(形象的)인 인식(認識)'이라고 할 때 다음 몇 가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현실과 인식인데, 인식의 필요성에 의해 사회현실을 그 대상으로 선택하게 된다. 우리 시대의 문제점이나 그릇된 모든 것들에 대해 알고자 하는 앎의 욕구가 선행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할 때 우리는 사회현실에서 그 대상을 찾게 된다. 이때의 문제가 현실에 대한 인식의 문제인데, 작가는 세계관에 따라 독자적으로 인식의 대상을 '선택(選擇)'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리얼리즘의 선택원리란 불특정 다수의 독자가 바라는, 시대정신에 어긋나지 않고 역사공간을 이탈하지 않는 의미 있는 내용을 인식의 대상으로 선택해 달라고 요구한다. 작가의 세계관에 의해 선택된 대상은 형상화되어야 한다.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이 구성되어 이야기(story)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형상화의 방법은 감동의 측면에서 다른 인식의 방법을 능가하고 매우 대중적이어서 전달이나 인식된 내용을 확산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소설을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형상화를 통해 이해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는데, 이 방법이 다른 것과 표나게 특징적인 것은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현실에 대한 선택문제이다. 우리 시대에는 하고많은 문제점과 변혁에 대한 이상이나 이념이 인식의 대상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동시에 고려한다면 현실의 다양한 생활 사실에서 작가의 확립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선택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작가 윤정모는 우리 시대의 문제점이나 변혁에 대한 남다른 의지를 일찍부터 보여 왔다. 우선 [밤길], [님], [고삐]등에서 보여준 작가정신이 그렇다. 광주 민중항쟁에서 취재한 [밤길](1986)은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이라는 우리의 역사적 과제를 문제로 제기하였고, 남북이 분단된 특수한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에게 있어서 한 재일(在日) 유학생이 겪는 터무니없는 고통이 이념이라는 것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잔잔한 필치로 치밀하게 풀어나가는 것이 [님](1987)이다. [고삐](1988)는 매춘과 외세를 연결해서 혈육이라는 원초적 고삐마저도 끊고 새로 일어서는 '정인'이 삶에 눈 떠가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작가의 모든 작품이 올바른 비판자의 위치에서 치밀하게 문제점들을 파헤쳐 나갔는지는 의문이지만, 시대의식과 사회의식의 전면을 비켜가지 않은 것만은 이로써 확인된 셈이다. 민주주의, 분단과 이데올로기, 외세의 밀물 등 우리 시대에 지나쳐서는 안 될 문제점들이 착실하게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단, 중, 장편을 통한 분리된 문제 제기였지, 함께 아우르는 서사적 공간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작가는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가 동시에 하나의 서사 공간에서 펼쳐지는 소설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부도덕한 정권, 분단과 외세, 이 모든 문제가 총체적으로 문제 되는 곳, 통시적이면서도 공시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 곳으로서, 작가는 80년대의 농촌을 선택하였다.

1930년대에 농민문학론이 대두하였던 것도 식민지 피지배 국민으로서 8할이 넘는 농민의 문제를 건너뛸 수가 없었던 점과 그들에 대한 문제가 정치 경제적인 제반 문제와 복합적으로 결부되어 있었다는 당대 식자(識者)들의 상황인식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라는 점은 두루 아는 바다. 지금은 농업 인구가 전체 산업 인구의 20%에 지나지 않지만, 농촌은 근대화 또는 산업화란 이름으로 상대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외세와 결탁한 독점자본의 이윤추구에 희생양이 되어 결국 해체의 위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 오늘의 농촌 현실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농촌과 농민들의 문제를 단지 그들만의 문제로 인식한다면 총체적인 문제 인식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농업의 해체가 자체적인 문제점으로 흡수되어 버린다면 문제는 간단하지만, 농촌(농업)과 농민의 문제가 곧 도시와 공업의 문제로 파급되어 간다는 엄연한 사실이 문제의 전체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농민이나 농촌이 소설의 초점이 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데 있는 것이다.

윤정모는 이미 [꼭둑놀음](1986)을 통해 본격적인 농촌(농민)의 문제점을 제기한 바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농외소득 어떻게 하면 증대하나'라는 문제를 두고 특별기획물을 방영하게 되었는데, 이야기는 풀내면의 이장 5명과 경제국, 농업국 측 박사 및 대학교수가 참석하여 토론하는 데서 시작된다. 농외소득이라는 것 자체가 개방농정을 추구하는 정부가 싼 외국 농산물의 수입으로 경쟁력을 잃게 된 우리 농촌(농민)이 주곡 생산에 매달려 봐야 소득증대를 꾀할 수 없으므로 다른 방법을 통해 농촌소득을 증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토론이 시작되자 교수와 대학생들이 농가부채 문제를 거론, 그 원인으로 소 값 파동과 저곡가 정책 그리고 농산물 수입을 들고 현재 농촌은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고 서두를 꺼냈다. 그리고 농촌 의료보험 문제의 허실과 쇠고기 수입의 문제점, 그리고 고추 등 농산물 수입 문제를 거론했다. 이어 영농기계화로 인한 농가부채의 가중 문제, 대재벌의 부채와 농가부채에 대한 정부의 형평을 잃은 지원 문제, 농공지구 설정의 허실, 농지 임차제 법제화의 속셈 등이 거론되고, 농정국, 경제국의 정부 당국자들의 발뺌식 답변과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방송국의 적당주의, 그리고 실제 농민들의 토론 참여를 원초적으로 막은 절름발이식 진행이 이어진다. 그러나 단편소설이라는 한계와 텔레비전 토론이라는 서사 진행 방식으로 문제의 핵심 접근이나 심도 있는 분석은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오늘날의 농촌(농민)이 권력과 자본에 의해 '부조리한 수난'을 겪고 있는 점만은 어느 정도 부각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약점은 역시 농민이 주체가 되지 못하는 상황과 현실의 한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점이다. 작가가 의도한 바는 농민운동과의 유기적인 연관이었겠지만 작품적인 성과는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꼭둑놀음]에서 제기된 문제는 서사적 공간을 확보하고 작가의 확립된 세계관과 치밀한 산문정신에 입각해 형상화될 필요가 있었다. 작가는 [들]에서 그 작업을 시도하였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류덕제(Ryu Duckjee)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58~
출생지 경상북도 성주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58년 경상북도 성주(星州)에서 태어나 1995년 경북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5년 9월부터 지금까지 대구교육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2004년 뉴저지 주립대학교(The State University of New Jersey)와, 2012년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에서 연구교수로 미국의 문학교육과 아동문학 교육을 공부했다. 2015년부터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논저로 「별나라와 계급주의 아동문학의 의미」(2010), 「윤복진의 아동문학과 월북」(2015), 「송완순의 아동문학론 연구」(2016) 등의 논문과, 『권태문동화선집』(지식을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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