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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시선」 제49권 박필용의 시조집 『달무리 고운 밤』. 시인은 끊임없이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이야기한다. 그럼으로 다른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윤곽선을 드러내고자 시도한 것이다. 《부엉이 우는 밤》, 《석별의 자리》, 《속울음 삼키어라》, 《댕기머리 소꼽친구》, 《그리움을 낳는다》 등 다양한 시를 감상할 수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이전에, 반추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가지는 기억은 동물이 가지는 단순한 습관이 만들어 내는 기억과는 다르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추억이다. 단순히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것 외에 감성과 이성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이 확장되고, 활동이 지향성을 가지는 것은 기억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것들을 양산한다.
기억이나 흔적은 현재에는 부재하는 것으로 아무 때나 나타나지 않는다. 어떠한 계기가 있을 때 그것을 바탕으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일이 연관되어 나타나게 되어있다. 기억의 반추는 단순히 예전의 일을 기억해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에 여러 가지 감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현재를 이끌어나간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기억이라는 능력과 기억을 통한 추억이라는 시간 그리고, 추억을 단순히 과거 시간의 복제로 그치지 않고 현재에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건이나 사고의 해결책이나 탈출구로 이용하기 위하여 감성과 이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동물에게는 없는 사색과 글쓰기는 표현을 통한 자기 존재의 인식과 자아 확립으로 체험과 체험의 확장을 통한 상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시를 쓰는 것은 이러한 요건의 작용을 통하여 과거를 현재로 되돌려 놓아 미래를 준비하는 행위이다.
박필용 시인이<달무리 고운 밤>에서 서정 가득한 목소리 옛일을 읊조리는 것 역시, 단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추나 회한이 아니라 추억으로 현 존재를 인식하고 다가올 미래를 다듬는 일이다.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경쾌하게 추억을 이야기하는 박필용 시인의 시는 바람에 그네를 타는 이슬 같은 풍경으로, 시는 어떠한 형태의 추억이든 인간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하고 빛나는 흔적이라고 들려준다.

1부-굽은 등 다독인다

지난추억/지난 봄 머문 자리/그리움이 머무는 그곳/비에 젖어 무거운 날/달은 밝은데/세상살이/마음을 비워보렴
빈자리/호미/빈집/외딴 섬/선인장/그때도 봄이든가/이 하루/산촌에 밤 깊은데/부엉이 우는 밤/가을 연서/뿌리/흘러간 세월/설렌 맘 하나/두고 온 정/깊은 산사/매 난 국 죽


2부-꽃은 져 쓸쓸한데

야생화/봉선화/낙엽/겨울산/어물전/봄은 또/봄이 오는 길목/나그네/꽃 진자리/첫사랑/소꼽친구/석별의 자리/입동 근처/가슴에 사는 사람
/그리움 털고 있다/신열을 앓고 있다/그립고 외로워라/모정/댕기머리 상사화/통한의 세월/늘그막에/산나리 꽃/해 묵은 사연


3부-한 백 년 꿈을 접어

오가는 세월/유년의 꿈/사랑은 떠나가고/흘러간 향수여라/황혼에 서서/기다림/옛 사랑/그대는 가고/덜 깬 꿈/밤 비/농심/갯벌
/속울음 삼키어라/무명초/달빛여행/작은 가슴/진실로 외로운 밤/정/향수/외롭다 하기엔/늦가을/그대와 나/말을 할 걸/봄 비


4부-빙그레 터진 미소 한때는 부풀었지

울 할매/취하고 싶다/그리움/세상사/추억 찾아/옛 동무/댕기머리 소꼽친구/봄의 여울목/미련/우수/차라리 꿈이라면/못다 꾼 꿈/동반자/텃밭
/열매/소나기/동행/산 넘어 그 너머엔/시심詩心/신도시/만추/독거노인/상사화/둥지

5부-다시 만날 세월의 강

마음이 머문 그곳/울 엄마/왜 돌아보느냐고/빛과 그림자/잊고 싶은 날/정이란/아쉬움/과메기 꿈/겨울나무/다 낡은 청춘에도/가는 봄/고향 생각/나그네 연서/짝사랑/아쉬운 정/황혼길/그리움 머문 자리/인생길/유곡 청류/보릿고개/생각이 괜히 간질/임아/삐알밭 당신/유년의 꿈/내 유년의 세월/그리움을 낳는다

여치가 부른 노래
우는지 웃는 건지

애절한 그 소리에
귀 열고 눈 돌리면

포름히
움트는 상사
밤잠을 설치였지


귀뚤이 사랑노래
애가 탄 이 한밤에

지는 꽃 머문 향기
비워지는 여린 가슴

기우는
달빛 너머로
불러보는 옛사랑.

-달은 밝은데-



가뿐숨 토해내며
허리한번 못 편 채

투박한 성품 되도록
날선 손톱 다 닳도록

침묵은
미덕인 듯이
안으로만 감춘설움

때로는 불꽃 튀는
그 아픔 꾸겨 넣고

갸날픈 지친 육신
헐거워 허죽 되면

몸과 맘
따로 따로 놀며
노을 속에 녹이 슨다

-호미-



흘리고 닦아 내도
마음은 노상 고향

추억을 되새기며
연분홍 봄을 심고

간간히
우는 뻐꾸기
돌아 뵈는 고향 산천


그립단 핑계로는
갈수는 없겠지만

벗가고 생각남아
공연히 서글퍼져

마음은
영을 넘어서
고향 벌 다 적신다

-나그네-



긴긴밤 뜨개질로
웃음꽃 피던 날도

무릎베개 베고 누워
귓불을 만져 주던

그 손길
살가운 미소
눈에 삼삼 아린다.


달빛이 밝은 이 밤
낙엽으로 흠뿍 젖어

가슴에 고인 서름
시립도록 적막한날

그리워
허기진 세월
향 짙어 아릿하다.

-가슴에 사는 사람-


왜 거기 서있느뇨
세월이 물어오면

바람에 지는 꽃잎
서러워 남긴 말씀

그것을
묻지 못했네
꽃잎으로 덮인 시절


많이도 쓸쓸했던
지는 꽃 알갱이들

가는 봄 서러움을
그리움에 모아두고

타는 놀
누리에 앉아
새누리 꿈을 꾼다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