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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주원익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14년 11월 10일
  • 쪽수 : 13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4626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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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당신은 이미 흘러가버린 침묵,
    나는 완성되고 온전히 허물어졌다”


    끝의 시작
    예리한 시선으로 순간의 시학을 포착하는 능력을 인정받으며 2007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한 주원익이 첫번째 시집을 펴낸다. 총 3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언어 너머의 언어를 향해 가며 되돌아오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사이의 시간을 구축한다. 이 시간에서 시인의 언어는 ‘당신’에게 말해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타버리듯 허물어지고, 사라져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온전함의 불가능을 말한다.
    주원익의 시에 목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침묵으로 가라앉지도, 온전한 말로 떠오르지도 않는 ‘침묵의 목소리’일 것이다. 58편의 시들은 스스로 미완성이 되기를 자처하며 완전함이 언어의 자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즉각적이고 자체적으로 열리는 무한의 공간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시인은 단지 ‘있음’이라 단정지어 말하지 않고 움직임의 방향을 나타내는 조사 ‘으로’를 붙여 말한다. 시는 ‘있음으로’라고.

    재의 언어
    주원익의 언어는 보표가 없는 공백의 종이에 그려진 음표들같이 허공을 부유한다. 보표 없이는 음표의 음계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온전치 못한 혹은 온전하지 않으려는 언어는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는 기호로 남으려는 듯 그저 쓰여질 뿐이다. 이 과정에서 ‘사이’가 드러난다. 의미와 무의미의 사이, 열림과 닫힘의 사이, 쌓아짐과 허물어짐의 사이, 있음과 없음의 사이. 발화한다는 것은 언어로 대상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것을 뜻하지만, 실제로 언어는 대상과의 간격을 만들어내며 미끄러진다. 이렇게 발화(發話)되지만 제대로 쓰여질 수 없는 언어는 시인의 눈앞에 발화(發火)하는 불의 꽃으로 피어나 언어 그 스스로의 견고함을 불태운다.

    침묵이 밝혀질 수 없다 밝혀질수록
    침묵을 밀어낼 수 없다
    꽃이 멀어질수록 불의
    꽃을 밝힐 수
    없다

    당신은
    타오를 수 없다
    타오를수록
    불꽃에 다가설 수 없다

    밝혀진 것이 아닌
    침묵의 밝음이 사라지지 않고

    밤의 재로 번져가는 꽃 번져가는 불
    (/'재의 꽃' 중에서)

    꽃불은 언어를 태우며 일렁이기에 언어로 설명하여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다. 꽃불이 더 밝아지고 더 크게 일렁일수록 본래의 언어는 사라지고, 그렇기에 ‘당신’이라는 읽는 이는 설명될 수 없으며 ‘당신’ 또한 이 시에 쓰여진(쓰여졌던) 언어에 다가갈 수 없어진다. 이러한 모순은 침묵에서도 이어져 침묵을 밝히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순간 침묵은 깨지고 “밝혀질수록/ 침묵을 밀어낼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무엇이나 적이나 합일이나
    적대의 유구한 타오름으로
    먼지, 불꽃, 그것들, 무한의 자식들이
    우리를 낳고 언어를 가두고
    쇠창살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것, 당신, 저것, 시간에 걸린
    꽃송이들의 꽃, 밤의 낮으로 발화한다

    시야를 방랑하는
    아무것, 모든 없음 또한
    시간이 걸린다
    (/'너무 가까운 너머의' 중에서)

    불에 타면서 부재로 향하는 말들은 재, 먼지, 잔해, 돌가루 등으로 바뀌며 본래의 모습을 지우지만, 타오르며 빛으로 피어나는 “꽃불”은 말들이 태워지는 만큼 밝아진다. 사라지는 것과 태어나는 것이라는, 쓰는 이의 언어와 읽는 이의 언어. 이 두 개의 언어라는 간격에서 닫혀졌다고 생각되던 문장들은 ‘사이의 시간’을 만들어내며 열린다.

    사이의 시간
    1부의 마지막 시 [발생]은 “그것은 사라진다. 빛. 있음으로 누군가 당신을 겪어내고 있는”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 것은 언어의 열림, 끝이 열리는 어느 틈으로 시인이 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게 주원익은 2부에서 ‘부재하는 글자’의 발자취를 따라 타버린 재로 변한 것들로 언어를 온전하게 읽어내려는 시도를 감행한다.

    재빠르게 우리는 움직인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너에게서 그것에게로 달아난다

    혀를 집어삼킨 듯 중얼거리면서 하얀 돌 속의 길을 따라

    굳어간다, 침묵으로 침묵을 깨뜨린다

    검은 말들이 뚜벅뚜벅 그림자 밖으로 사라지는 동안

    내일의 바람은 내일의 발자국을 지우고

    우리는 으스러진 허공의 파편이 되어 꿈을 꾼다

    우리가 그것에게로 가는 꿈처럼

    끝내 온전한 파편을 꿈꾸지 못한다
    (/'하얀 돌' 중에서)

    글자가 타버리고 없다면 백지 위에 글자가 타버린 모양으로 그 글자들을 어느 정도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형태가 뚜렷하지 않으므로 “그림자” “구멍” “망령” “유령”처럼 부재나 사라짐의 흔적으로 그려지며 무언가를 흉내내는 것에 그친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언어로 설명하는 과정은 끝없이 미끄러져, 원본과는 비슷하지만 온전하게 같지는 않은 유사함을 너무도 많이 낳을 뿐이다. 그렇기에 화자는 “혀를 집어삼킨” 것처럼 부분의 언어를 중얼거리며 끝내 “온전한 파편”조차 되지 못한다.

    아마도 빛이 없음으로 존속한다
    없음으로 누구나 이후에만 있고 이후로 사라지는

    어두움이 누구에게나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로 지대는 시야의 열림을 추방한다

    없지는 않았을 누구나 아무 말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인데 누구나 누구의 이후에 남아, 있다
    (/'맹점 이후' 중에서)

    온전해지지 못하는 언어는 “이후에만 있”으며 “이후로 사라”지기에 시인은 말한다고 하지 않고 말해진다고 표현한다. 발화된 언어는 지금 ‘나’가 말한 것이 아니라 이후의 시간에서 ‘당신’에 의해 말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시들은 서로 쓰이고 읽히며, 허물어뜨리고 허물어진다. 바로 그것이 멈추지 않고 움직임 그 자체를 말하는 ‘사이의 시간’이다. ‘사라짐’이라고도 ‘존재함’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사라지는 중’이자 ‘피워내는 중’이라는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간, 쓰는 일과 읽는 일이 피동의 방식으로 진행되어 서로를 빗겨가는 시간. 그 지점에서 “쓰여지는 순간 나는 완성되고/ 온전히 허물어지”는 동시에 “읽혀지는 순간 나는 완성되고 온전히/ 허물어졌다”([미래의 책])가 가능해진다.

    침묵의 목소리
    주원익은 언어가 ‘당신’이라는 자리에 가닿음을 믿으라고 하는 대신 언어의 사이에 동일성으로 잡히지 않는 요소들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당신은 말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러므로 당신은 말할 수 없”는([침묵의 복화술사에게]) 침묵의 목소리를 통해 여기의 언어는 저기의 언어에게 사이의 시간을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언어로 떠오르지도 흘러가지도 않는 것들을 말하기 위해 “상자를 열고 재를 모아, 비밀에게/ 내 것이 아닌 비밀을 보여”([스테인드글라스])주는 것처럼.

    주원익은 이번 시집에서 끝없이 지워나간다. 말하고 지우고, 말하고 지우고, 그는 지우개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 지우개가 완성을 위한 행위의 지우개가 아님을 기억하자. 만약 그랬더라면 그의 시는 완벽하고 완전한 단 한 편의 시로 남았으리라. 그러나 그의 지우개는 놀랍게도 지우는 대상과 같은 말이다. 그는 말로 말을 지워나간다. 이것은 먼저의 말을 부정하는 것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 부정이든 긍정이든 그것은 새겨지는 것이다. 부정도 하지 않고 긍정도 하지 않으며 말을 지워나가는 말은, 말이 말을 덜어낼 때 생긴다.
    - 함성호
    (/'그냥 말' 중에서)

    ‘나의 언어’로 대상을 말한다는 것은 대상의 고유한 타자성을 침범하기에 끝내 대상의 자리에 들어서지 못한다. 언어의 완전한 동일시를 부정하는 것으로 주원익의 시들은 ‘끝’에서 처음으로 돌아가 ‘시작’된다. 그렇게 우리는 58편의 시를 읽으며 침묵으로만 말해질 수 것들을 엿보고 사이의 시간, 그 움직임 속으로 같이 걸어들어갈 것이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재의 꽃

    눈물, 항해자들의 별
    너무 가까운 너머의
    미래의 책
    자오선
    공백의 악보
    재의 꽃
    망각된 밤
    기다림의 내륙에서
    모래의 책
    체크메이트
    망치
    날개 감옥
    서명
    극광의 재
    발생

    2부 하얀 돌

    공명
    돌의 선율
    백야
    한낮의 성좌에서
    메아리 광대
    꽃 핀 나무 아래
    순례
    닫혀가는 달
    하얀 돌
    사랑

    거울 속의 거울
    엠블렘의 봉인
    구원된 눈동자를 위한 수난곡
    유산들
    일식
    꽃과 구덩이
    발화
    죽음의 눈
    추억의 형식
    만종
    모래의 경
    덫, 돛, 닻
    온실효과

    3부 겹침

    재와 사랑
    징조
    후생의 바다
    육화
    불면의 시간이
    기계는 기계를 모방한다
    침묵의 복화술사에게
    이명
    하얀 그림자
    거울
    스테인드글라스
    맹점 이후
    서울역
    검은 돌
    하현과 그믐 사이
    눈물
    합창
    입맞춤
    키프로스

    해설
    | 그냥말
    | 함성호(시인)

    본문중에서

    아무것도 아닌 말과 침묵하는 문장들 사이
    공백과 무한의 세찬 갈라짐으로부터
    시는 시인을 낳아준다.

    아직, 별들의 음악은 회전하고 흩뿌려지며
    밤낮없이 흘러가고 있다.

    거슬러갈 수 있게,
    혼돈의 길목에서, 없는 길을 보여준
    친구들에게 감사드린다.

    2014년 11월
    주원익
    (/'시인의 말' 중에서)

    메아리 광대

    어릿광대의 눈물처럼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무뎌진다 무너진다

    말문이 트이면 돌아오지 않는 말

    가고 가고 갈수록
    오고 오고 돌아온다

    왕관에서 떨어진 핏방울
    그 빛이 마르면 걸어가리라고,

    부서진다 부셔진다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눈부심으로 태어나는 바깥
    눈물은 믿음처럼 타오르고

    길 없는
    길이 없다

    목발 없이, 목발도 없이

    말문이 사라지면
    절뚝거리는
    (/본문 중에서)

    검은 돌

    나는 그것이라고 말해졌다

    그것의 처음 잿더미를 삼킨 바람,

    빛을 버리지 않는 달의 연인이라고 말해졌다

    태양이 식을 때까지 그것의 눈먼 불꽃이라고

    말해졌다

    달빛 가득 고인 진흙 항아리, 망자들의 언덕에서

    나는 그것의 부스러진 이름이라고

    말해졌다 그을음을 뒤집어쓴 모음들

    검은 얼룩이 말한다

    선홍빛 장미의 성채를 휘감아오르는 공기의 속삭임으로

    모든 세계는 말하여졌다

    쇠사슬을 끌고 별들의 시궁창으로 쏟아지는 그림자,

    눈물 먹은 돌들이 말해졌다

    그것의 빛이 태양을 삼키는 암흑의 사랑이라고

    말해졌다

    검은 얼룩이 말하여졌다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80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7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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