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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 소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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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세이운 상, 일본 SF 대상, 구마니치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SF 미스터리의 거장,
가지오 신지가 선보이는 멀티 장르의 향연!

일본 SF 미스터리의 거장, 가지오 신지의 신작!
SF, 추리, 로맨스, 드라마를 아우르는 멀티 장르의 향연

국내 독자들에게 ‘가지오 신지’라는 이름은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 SF 대상, 구마니치 문학상 등 일본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이운 상을 무려 4차례나 수상한 경이적인 이력의 소유자이다. 특히 세이운 상은 일본 SF 팬그룹회의가 주관하는데 수상작과 수상 작가의 대중적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척도가 된다. 덕분에 가지오 신지는 대중적 재미와 탁월한 문학성을 고루 갖춘 명실공히 일본 SF계의 거장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가지오 신지의 작품들은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능수능란한 플롯,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철학이 어우러져 영화, 만화, 텔레비전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원작이 되었다. 우리에게 ‘초난강’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구사나기 쓰요시가 주연을 맡은 영화 [환생]을 비롯해 국내외에 두터운 마니아층을 거느린 만화 [에마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번에 출간된 SF 미스터리 장편소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_소실형]은 가지오 신지의 장점과 매력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소실형’이라는 가상의 형벌을 소재로 SF, 추리, 범죄 스릴러, 로맨스, 휴먼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와 정서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실형의 함정에 빠진 한 남자의 처절한 생존기는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으며,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두뇌 게임은 고품격 지적 유희를 한껏 선사한다. 특히 세상과 단절되고 존재마저 잊혀 버린 주인공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한 부분은 이 작품의 백미이다. 더불어 극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독자들의 가슴속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가고 있다.

아무한테도 내 존재를 알릴 수 없다.
대화를 나눌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내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형벌, ‘소실형’의 실체는?

벌금, 구금, 태형, 사형 등 형벌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죄인의 자유나 재산을 박탈하고, 더 나아가 고통을 주거나 목숨을 앗는다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형벌이 있다. 이른바 ‘소실형’이라 불리는데 죄수의 목에 ‘배니싱 링’이라는 특수한 금속 링을 채우는 형벌이다. 이 링은 특수한 전파를 발산하여 링을 찬 사람이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어 준다. 또한 링은 죄수의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변화를 감지하고 분석하여 죄수가 타인과 소통하려는 의도나 시도, 즉 말을 걸거나 접촉하는 등의 형태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경우 자동적으로 수축하여 죄수의 목을 옥죄는 고통을 준다. 마치 손오공이 머리에 차고 있는 링 ‘금고아’처럼 말이다.
하지만 죄수에게는 이외의 특별한 제약은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교도소가 아닌 자신의 집에서 홀로 생활할 수 있으며 집 밖으로도 얼마든지 외출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자, 여러분은 ‘소실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정도는 너무 쉽다’거나 ‘벌을 받는 것 같지 않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_소실형]은 독자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으며 멘탈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니까.
가지오 신지는 작품 속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소실형’의 원형이 미국 작가 로버트 실버버그의 아이디어인 ‘무시형’임을 밝히고 있다. 로버트 실버버그는 미국 SF 문학의 황금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랜드 마스터’로 불리는 작가인데,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시형은 모든 사람들이 죄인을 보고도 못 본 척, 없는 척하며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형벌이다. 가지오 신지는 무시형을 모티프로 삼아 과학적 상상력과 현실성을 더해 소실형을 창조했다. 그런 만큼 소실형이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죄인을 옭아매는지, 그리고 시스템에서 벗어났을 때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확인하는 것은 이 작품을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된다.

소실형의 함정에 빠진 한 남자의 처절한 생존기
인간의 존재론적 고찰을 형상화한 고품격 SF 미스터리

폭행 사건에 휘말려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아사미 가쓰노리는 정부에서 테스트 중인 소실형을 선택할 경우 8개월로 감형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흔쾌히 승낙한다. 그에게는 배니싱 링을 목에 찬 채 외부와 어떤 소통이나 접촉도 허용되지 않으며 텔레비전, 전화, 글을 쓰는 간단한 유흥거리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고 홀로 자신의 집에서 8개월만 보내면 된다는데 이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지낸다는 것은 가쓰노리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끔찍한 일이었다.
가쓰노리는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투명 인간이 되어 죽음과도 같은 절대 고독과 싸우고 존재에 대한 회의로 몸부림치며 하루하루를 버티어 간다. 하지만 불완전한 소실형 시스템은 형기가 끝난 그를 배니싱 링의 속박에서 풀어주지 않는다. 그렇게 마지막 희망마저 잃어버렸을 때 가쓰노리는 초자연적인 힘의 도움으로 한 여자와 소통하게 된다. 운명처럼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 그는 다시 한 번 삶의 의지를 되살리지만 그녀가 목숨마저 위태로운 범죄에 휘말렸음을 알아차린다. 과연 가쓰노리는 사랑하는 그녀를 무사히 구해내고 배니싱 링의 속박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_소실형]는 자극적인 흥미만을 좇는 여타의 미스터리와 차별되는 깊이를 담고 있다. 국가의 범죄 관리 시스템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상충되는 가치를 고민하고,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증명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고찰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동안 SF적 상상력과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이 어우러진 할리우드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이 영화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색다른 여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본문중에서

가쓰노리는 믿을 수가 없었다.
배니싱 링에서 미약한 특수 전파를 내보낸다고 들었다. 그 전파가 배니싱 링을 찬 사람을 감싸 돌면서 수형자가 주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뇌가 감지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가쓰노리는 자신이 만만히 여기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배니싱 링은 ‘미약한 특수 전파’로 ‘뇌가 감지할 수 없게’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경우 미약한 전파가 뇌에 영향을 주지 못하지 않을까, 하고 자신도 모르게 생각해 버렸다. 그러니까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라면 운전자가 가쓰노리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가쓰노리는 희망적으로 내다보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배니싱 링의 효과는 생각 이상이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배니싱 링을 끼운 사람은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까딱하다 치일 뻔 하는 것이다.
덕분에 가쓰노리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하나 배울 수 있었다.
신호등 옆에서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오는 걸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그리고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오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횡단보도를 함께 건넌다. 길을 건너려는 사람의 바로 왼쪽에서 같은 속도로 건너는 쪽이 안전하다는 사실도 금세 몸으로 익혔다.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데도 마치 무인도에서 혼자 생활하는 로빈슨 크루소 생존기 같다고 가쓰노리는 생각했다.
뉴스카이 호텔 앞에서 고메야마치로 빠져나간다. 그러자 벌써 가쓰노리 집 근처가 나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집을 비우지도 않았는데 반가운 마음이 든다. 눈에 익은 풍경인데도.
그러나 산책하는 노부부도,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도 가쓰노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노부부는 틀림없이 이웃에 살고 있다. 자주 본 얼굴이다. 이름도 모르지만 아침부터 만나면 인사
를 주고받았는데 지금은 가쓰노리와 마주쳤어도 잠자코 스쳐지나갈 뿐이다.
이것이 소실형이다. 가쓰노리는 조금 쓸쓸하다고 느꼈다.
(/ pp.26~27)

외출 중에 누군가 집에 들어왔을까?
문의 손잡이를 밀자 예상대로 아무런 막힘도 없이 열렸다.
틀림없다. 집을 비웠을 때 누군가 마음대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낌새를 가쓰노리는 느꼈다.
집 안을 빙 둘러본다.
어질러진 흔적은 없다. 하지만 미묘하게 뭔가가 달라진 기분이 든다.
그 이유를 알았다. 식탁 위에 A5 크기의 종이가 놓여 있었다.
‘형기 종료 통지서’였다.
구마모토 교도소 소장의 서명이 되어 있다. 그 통지서에 따르면 아사미 가쓰노리는 11월 5일로 형기를 다했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형기가 종료되었다는 사실을 통지한다는 무미건조
하고 간결한 공문서였다.
종이는 두 장이 겹쳐져 있었다. 그 밑에 있는 종이에는 좀 더 구체적인 지시가 쓰여 있었다.
이미 가쓰노리의 목에서 배니싱 링이 자동적으로 떨어져 나갔다는 걸 전제로 그 문서는 작성되어 있다.
배니싱 링이 떨어져 나갔어도 사회 복귀 지원을 위해 반드시 구마모토 교도소 서부 관리 센터로 출두해서 담당관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지시였다.
소실형을 받는 기간이 지났는데도 가쓰노리가 나타나지 않아서 거주지로 등록된 이 집에 문서를 남겨 연락을 꾀한 듯하다.
요컨대 소실형 수형 기간이 끝났는데도 배니싱 링이 떨어져 나가지 않은 경우는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그 증거로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법은 전혀 쓰여 있지 않다.
얼떨결에 가쓰노리는 그 문서 두 장을 꽉 움켜쥐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 pp.182~183)

지금 들린 비명의 주인공은 진짜로 목소리를 낸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비명은 가쓰노리의 머릿속에만 울려 퍼졌다.
지금의 비명은 나쓰미가 질렀다.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도 없다.
나쓰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가쓰노리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왜 그녀가 비명을 질렀을까?
악몽을 꾸었을까?
뜻을 담은 말이었다, 분명.......
확실히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싫어!"라든가 "도와주세요."라는 종류의 외침이었다.
처음에는 새로 날을 잡아 신마치의 나쓰미 집을 찾아가려고 생각했다. 탈모크림을 바르고 옷차림을 가다듬고.
하지만 그 비명을 들은 지금은 이제 달리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다행히 지금은 설날이다. 자동차의 통행도 적다.
뛰어가는 게 우선이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쓰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하는 건 그다음 일이다.
일찍이 소실형 복역 기간에 접어들고 나서 지금까지 가쓰노리가 질주했던 적이 있다면 노숙자 아라토가 습격을 당하려고 할 때 정도일까. 그밖에는 주위에 신경을 쓰면서 조심스레 걸었다.
그러나 지금은 뛰어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느낀 여성을 도와주러.
나쓰미가 사는 신마치의 집을 향해. 숨이 끊어지든 다리가 뒤엉키든 아랑곳하지 않고.
(/ pp.278~279)

저자소개

가지오 신지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47
출생지 일본 구마모토현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47년에 구마모토 현에서 태어났다. SF 작가로 1971년에 단편 [미아에게 보내는 진주]가 잡지 [SF 매거진]에 실리면서 문단에 나왔다. ‘단편의 명인’, ‘SF의 거장’, ‘서정파 이야기의 시인’, ‘광대극의 기인’이라는 별칭이 있다. 서정적인 이야기부터 순수한 사랑, 판타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기괴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지구는 플레인 요구르트]로 제10회 세이운 상을, [공룡 라우렌티스의 환상]으로 제23회 세이운 상을, [마취목의 백일몽]으로 제32회 세이운 상을, [죽은 사람은 모른다]로 제35회 세이운 상을 받았다. [미지의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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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일본어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좋은 책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르게 번역하고 싶은 꿈이 있다. 옮긴 책으로 『어떻게 나를 지켜낼 것인가』, 『왜 나는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려 하는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소실형』, 『오늘은 고양이처럼 살아봅시다』, 『발상의 전환으로 살아남기』, 『집착에서 벗어나기』, 『굿바이 마이 러브』, 『인간 실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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