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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수호자들

원제 : Verdensredde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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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화려한 상품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수많은 얼굴들......
    "누가 이 옷들을 만드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


    "어딘가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의 수호자들]이 10대 청소년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소설은 노르웨이 중산층 가정에서 풍족한 삶을 누리는 고등학생 에밀리에의 이야기와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리나의 이야기를 교차하여 전개하면서, 대기업의 횡포와 아동 노동자 문제 등을 폭로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박진감 있게 그려 낸다.
    전작 [바르삭]에서도 불법 이민과 아동 노동 학대 등 사회적 문제들을 다룬 바 있는 노르웨이 작가 시몬 스트랑게르. 그는 이 책 [세상의 수호자들]에서도 청소년들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공정하고 능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길 권한다. 그리고 그저 가만히 있지 않고 직접 행동함으로써 세상을 조금씩 바꿔 나갈 수 있음을 흥미진진하게 보여 준다.

    "우리는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당신도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짝사랑하는 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새 옷을 사러 쇼핑에 나선 에밀리에. 옷가게에서 마주친 수상한 소년 안토니오를 통해 '세상의 수호자들'을 만난다. 세상의 수호자들은 에밀리에 또래 청소년들이 직접 세상을 바꿔 보겠다며 결성한 비밀 클럽. 에밀리에는 이들로부터 새 티셔츠와 달콤한 초콜릿 등의 상품 뒤에 거대 기업에 의해 노예처럼 학대당하는 어린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세상의 수호자들에 가입한 이후로 에밀리에의 세상은 바뀐다. 물론 에밀리에나 세상이 정말로 눈에 띄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에밀리에는 여전히 친구와의 관계에 전전긍긍하고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는 평범한 열일곱 살 여자아이다. 다만, 세상을 보는 에밀리에의 사고방식은 서서히 달라진다. 새 옷, 최신 휴대폰이나 컴퓨터처럼 돈만 있으면 손쉽게 살 수 있는 현대 문명의 이기들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엄연한 진실을 대면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수호자들 멤버는 우리를 둘러싼 현실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어른들의 책임으로 미루지 않는다. 이 클럽에 가입한 에밀리에 역시 더 이상 가만히 앉아 방관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멤버들과 함께 세상에 진실을 알리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한다. 이들은 크고 작은 캠페인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아동 노동 착취와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 등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고발한다.
    이 소설은 아직 10대인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세상을 변화시킬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 낸다. 이들은 어떤 캠페인 방식이 옳은가를 두고 서로 대립하기도 하고, 의견을 일치시키지 못해 분열되기도 한다. 누구나 이들을 격려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처럼 세상에 문제를 알리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그래도 멤버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다. 힘들면 포기하는 것이 더 쉽고 편하다고까지 생각하는 요즘 청소년 독자들에게 이들의 노력은 어쩌면 신선하게 비쳐질 것이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그 순수한 마음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특징

    새 옷을 쇼핑하는 소녀 Vs. 하루 종일 새 옷을 만드는 소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에밀리에만이 아니다. 소설은 노르웨이에서 한참 떨어진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사는 열두 살 리나의 일상을 가장 먼저 따라간다. 리나는 어렸을 적부터 의류 공장에서 일해 온 노동자다. 재봉틀 여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공장 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이 몇 번이고 똑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그런데 리나에게 처음으로 가슴 뛰는 일이 생긴다. 레자라는 소년을 만나 서로 좋아하게 된 것이다.
    소설은 기계처럼 반복되던 일상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하는 리나의 이야기와 세상의 수호자가 되어 가는 에밀리에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보여 준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좋아하는 남자아이 앞에서 가슴 설레는 모습은 두 소녀가 꼭 닮아 있다. 그러나 리나와 에밀리에가 놓여 있는 상황은 극명하게 다르다. 리나가 적은 봉급을 받으며 하루 종일 구슬땀 흘려 만든 티셔츠를, 에밀리에는 부모님이 준 용돈으로 옷가게에서 척척 사 입는다.

    세상의 수호자들을 알기 전 에밀리에는 자신이 산 옷에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made in Bangladesh'라는 말이 쓰여 있는 걸 보면서도 생산 과정의 실상을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 에밀리에의 모습은 우리의 현재 상황을 보여 준다. 일상적으로 구입하는 상품 뒤에 숨겨진 상황에 무관심한 소비자의 모습 말이다. [세상의 수호자들]은 윤리적인 소비 의식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멤버들이 신상품 티셔츠의 가격표에 '새 옷을 사서 기분이 좋은가요? 이 옷을 만든 노예들은 그렇지 않답니다'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정한 소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번거롭기도 하고 돈이 더 들 수도 있다. 단기간에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부당한 노동 환경, 인권 침해, 자연 파괴 등 상품을 둘러싼 문제들을 인식하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고자 할 때 작은 변화의 가능성이 생긴다. 소비자가 변하면 기업도 변하기 때문이다.
    에밀리에는 착취당하는 자와 이익을 누리는 자 사이의 모순을 깨닫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드러나는 무자비한 현실은 끝내 리나가 난생 처음 맛본 삶의 행복을 지켜 주지 못한다. 소설은 이 두 소녀를 통해 좀 더 많은 이들이 모순을 직면하고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세상의 수호자들]은 불합리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좀 더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플라스틱 장난감 한 개, 티셔츠 한 장, 커피 한 잔, 초콜릿 한 조각에 숨겨진 지구 저편의 고통과 눈물을 외면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윤리적 소비에 우리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할 때 비로소 불합리와 불의의 그물이 찢어지게 되리라는 메시지가 가슴 깊이 와 닿는다. 10대들의 그 아름답고 힘찬 연대를 위해 세상의 수호자들은 지금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_이용우 이대부속중학교 국어교사

    빨간 티셔츠를 부탁해!

    소설 속 세상의 수호자들은 빨간 티셔츠를 입고 거리 곳곳을 누빈다. 이 소설은 직접 행동하는 10대들의 이야기다. 소설에는 뉴스나 신문에서 보도하는 사회적 문제들을 그냥 흘려듣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대로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서슴지 않는 청소년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유달리 특별한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각자 사는 환경이나 개성, 관심 분야가 다른 보통의 고등학생들일 뿐이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멤버가 있는가 하면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멤버도 있다. 저택이 즐비한 중산층 지역에 사는 멤버도 있고 낡은 아파트에 사는 멤버도 있다. 그런 멤버들에게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세상에 대한 관심'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울타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바깥 세계에 눈길을 돌려 좀 더 넓은 시야로 보고 생각할 줄 안다.

    에밀리에는 안토니오를 만나 세상의 수호자들에 가입하면서 행동할 줄 아는 청소년으로 변해 간다. 매일 단짝 친구와 붙어 다니면서 잘생긴 남자애나 어제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해 수다 떠는 걸 좋아했지만, 같은 또래이면서 생각과 행동은 전혀 다른 멤버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물론 멤버들도 에밀리에처럼 이성에 관심이 많고 멋 부리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평범해 보이는 이들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점은 세상에 질문을 던질 줄 안다는 것이었다. 보이는 것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질문하고 비판하는 멤버들에게 자극받아 에밀리에도 점차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키우게 된다.

    멤버들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느라 바쁘다. 수능에 대한 걱정 때문에 상당 시간을 책상 앞에 있으면서 진짜 세상은 어떤지,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돌아볼 여유가 없는 대다수의 대한민국 청소년들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라 가슴 아플 정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의 수호자들 멤버들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청소년들 역시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행동에 필요한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10대는 세상에 나아갈 준비를 하기 위한 도약의 시간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그 귀중한 시절을 보내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울타리가 세계의 전부가 아니며 그 바깥으로 얼마든지 나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잘못된 세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줄 기회가 될 것이다.

    이제 하얀 토끼를 만나러 갈 시간이야

    세상의 수호자 멤버들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이 노르웨이 어딘가에서 실존하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오슬로의 칼요한 거리나 국회 의사당 사자상 앞, 아커스후스 성벽 잔디밭으로 가면, 사람들 틈에 몸을 숨기고 뭔가를 준비하거나 둥글게 모여 앉아 열성적으로 다음 캠페인을 모의하는 멤버들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세상의 수호자들]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교묘하게 놓여 있다. 작가 시몬 스트랑게르는 마치 실존하는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처럼 에밀리에와 안토니오, 오로라, 라스, 리세와 그들이 벌이는 캠페인을 실감 나게 묘사한다. 마치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뛰어다니는 10대들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독특한 스타일은 소설에 등장하는 사회 문제들이 보다 생생하게 와 닿도록 만든다.

    작가가 성장 소설에서 사회적 문제를 다룬 것은 [세상의 수호자들]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에도 출간된 바 있는 전작 [바르삭]에서 불법 이민과 아프리카 아동 노동 문제를 다뤘다. 작가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스페인의 그란 카나리아로 휴가를 갔다가, 자신이 휴양지에서 누리는 모든 것이 아프리카 노동자에게는 꿈 같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때의 기억이 [바르삭]과 [세상의 수호자들]처럼 주제 의식 강한 작품들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작품 속에서 약자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것이나 현실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끊임없이 현재에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것 역시 이런 영향 때문일 것이다.

    많은 성장 소설들이 독자 또래의 인물을 등장시켜 공감 가는 메시지를 전한다. [세상의 수호자들]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이 작품은 생생한 묘사를 통해 마치 멤버들과 함께 거리를 누비는 듯한 느낌을 전달해 준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독자들은 에밀리에와 함께 몰래 초콜릿에 표어 스티커를 붙이고, 갇힌 닭들을 풀어 주기 위해 양계장 문을 여는 안토니오를 지켜보며 함께 긴장할 것이다. 멤버들과 함께하는 동안 현실은 더 크게 다가오고 그들의 의욕과 열정에 또한 전염될 것이다. 책장을 덮은 후에는 세상의 수호자들 못지않은 자신만의 비밀 클럽을 꿈꾸게 될지도 모른다. 안토니오가 에밀리에에게 주었던 하얀 토끼 모양의 비밀 USB가 이제 독자들의 손에 건네진 것이다.

    목차

    제1부
    1 빨간 티셔츠
    2 '여기'를 클릭하지 마시오
    3 쇼핑센터에서
    4 나 혼자 춤을 추고 있어요
    5 홀로
    6 자격 테스트
    7 하얀 토끼를 따라갈 시간이야

    제2부
    8 초콜릿 노예
    9 에밀리에, 버전 2.0
    10 신입 멤버 모집
    11 기다림
    12 세상의 수호자들

    제3부
    나는......

    제4부
    13 아이 슬레이브 iSlave
    14 세상의 파괴자들
    15 고문 양계장
    16 설득
    17 한밤의 행렬
    18 들통난 거짓말

    막간극
    여름 방학

    제5부
    19 비상경보!
    20 창고를 습격하다
    21 출구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세상의 수호자들- 한 소녀가 바닷가에 갔어요. 파도에 실려 온 많은 불가사리들이 모래사장에 모여 있었죠. 소녀는 불가사리를 하나하나 집어 올려 다시 바닷물 속으로 던져 넣었어요. 그걸 보고 있던 한 남자가 다가와서 왜 그런 일을 하냐고 소녀에게 물었어요. 그 많은 불가사리들을 다시 바닷속으로 돌려보내기도 불가능하거니와, 언젠가는 다시 파도에 실려 돌아올 테니 말이에요. 그러자 소녀는 불가사리 하나를 들어 올리고선 남자에게 이렇게 대답했죠. "적어도 이 불가사리 하나에겐 도움이 될 거예요." 소녀는 대답과 함께 그 불가사리를 바닷속으로 던져 넣은 후, 또 다른 불가사리를 집어 올렸어요. "그리고 이것도, 또 이것도......."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회의자93-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하지만 우린 지금 해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건 지금 당장 필요한 긴급 구호 같은 게 아니라, 어떻게 전 세계적인 상황을 바꿔 놓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닌가요?
    세상의 수호자들- 네, 맞습니다.
    회의자93- 그렇다면 당신들은 어떤 방법으로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거죠?
    세상의 수호자들- 지금 말씀하시는 분이 여자 분인가요?
    회의자93- ......?! 성별이 중요한가요?
    세상의 수호자들- 아뇨. 하지만 여성들이 어떻게 투표권을 얻게 되었는지 알고 있어요? 그 시대 사람들이 모른 척 가만있었기 때문에 여성도 투표권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해서 노동자들이 주 5일 근무를 하게 되었고, 유급 휴가와 유료 병가제가 가능해졌다고 생각하세요? 노동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기업 소유자가 먼저 이런 혜택을 주겠노라 약속했다고 생각해요?
    회의자93- 아니요....... 듣고 보니 일리 있는 이야기네요.
    세상의 수호자들- 그렇죠? 누군가가 먼저 시작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이루기 위해 투쟁하고,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해요.
    회의자93- 불가사리를 한 번에 하나씩 바다로 되돌려 보내는 것처럼 말이죠?
    ('제1부 나 혼자 춤을 추고 있어요' 중에서)

    빨간 티셔츠
    에밀리에는 진열된 티셔츠 중 하나를 들어 올려 앞면의 무늬를 살펴보았다. 'Surfin' Honolulu(서핑 호놀룰루)'라는 글자가 60년대에 유행했던 글씨체로 찍혀 있었고, 그 밑에는 집채만 한 크기의 하얀 파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때 짙은 갈색의 부스스한 머리를 한 어느 소년이 에밀리에의 곁으로 다가왔다. 안절부절못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소년은 에밀리에와 눈이 딱 마주쳤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설마 옷을 훔치려는 건 아니겠지?'
    소년을 바라보던 에밀리에는 자신도 모르게 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소년은 티셔츠를 가방 속에 몰래 집어넣는 대신, 바지 주머니에서 스티커 한 줌을 꺼내 들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행동이었다. 그는 마치 에밀리에를 향해 시위라도 하듯 스티커 한 장을 치켜들고 손톱으로 뒷면을 떼어 냈다. 그러고는 그 스티커를 티셔츠의 가격표 위에 붙인 후 에밀리에 쪽으로 밀어 놓고 다시 옆에 있던 다른 티셔츠에도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에밀리에는 가격표에 붙어 있는 스티커에 과연 뭐라고 적혀 있는지 읽어 보았다.
    새 옷을 사서 기분이 좋은가요?
    이 옷을 만든 노예들은 그렇지 않답니다.
    '이게 도대체 뭘까? 일종의 캠페인 같은 걸까?'
    소년은 에밀리에가 점원에게 고자질하지 않을 것이라 믿기라도 한 듯, 계속 태연하게 스티커를 붙였다. 바로 이때, 가게의 점원이 한 무더기의 바지를 들고 이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두 사람 앞에서 발을 멈추고 티셔츠 진열대 위로 한 손을 올렸다. 그녀가 상황을 눈치챈 건 아닐까? 만약 티셔츠를 한 벌이라도 들춰 본다면 소년의 행동이 발각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 pp.12~13)

    '여기'를 클릭하지 마시오
    에밀리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과 흥분을 꾹 누르고 식구들이 식탁에서 일어날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 마침내 방으로 돌아온 에밀리에는 얼른 컴퓨터를 켰다. 그러자 화면에 티셔츠 그림이 나타났다.
    이것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아십니까?
    정말 알고 싶나요?
    만약 계속 무지 속에서 살고 싶다면 절대 '여기'를 클릭하지 마세요!
    에밀리에는 '여기'라는 글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몇 초간의 망설임 끝에 마우스를 글자 위로 가져가 클릭하고 말았다. 그러자 세상의 수호자들 홈페이지가 열렸다. 보아하니 홈페이지는 이미 만들어 놓은 틀에 따라 제작된 것 같았다. 배경에는 시원한 바닷가 사진과 아름다운 황혼의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에밀리에는 홈페이지에 소개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재봉틀 앞에서 하루 열서너 시간씩 휴일도 없이 일하는 어린이들. 바느질을 한 땀이라도 잘못하면 구타를 당하는 작업 환경. 에밀리에는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인터뷰 기사도 함께 읽어 보았다. 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끼니를 겨우 연명할 수 있을 만큼의 최저 임금밖에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의 하루 평균 일당은 6크로네밖에 되지 않았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만약 구매자가 티셔츠 한 장에 1크로네(약 150원)만 더 지불하고, 그 돈이 노동자에게 모두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이런 문제도 처음부터 생겨나지 않았을 텐데. 단돈 1크로네만이라도! 에밀리에처럼 이렇게 간단한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을까.......
    (/ pp.23~24)

    초콜릿 노예
    에밀리에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단 한 장의 스티커도 붙이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고 말한다면, 다른 멤버들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에밀리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맡은 일을 해 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머리를 써야 했다. 우선 코앞에 앉아 있는 점원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 에밀리에는 초콜릿 하나를 들고 점원 앞으로 다가갔다.
    "저, 실례합니다."
    "네?"
    "제 친구 하나가 글루텐 과민성 장질환을 앓고 있어서 그러는데요....... 혹시 글루텐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초콜릿은 없나요?"
    "글루텐......이라고요?"
    점원은 마치 외국어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멀뚱멀뚱 에밀리에를 쳐다보기만 했다.
    "네. 밀가루에 특히 많이 들어 있는 물질인데, 제 친구는 이 글루텐을 조금이라도 먹게 되면 심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해요. 그런데 이 가게엔 글루텐이 들어 있지 않은 초콜릿은 없나 보네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렇다면 초콜릿 포장지에 적혀 있는 성분들을 찬찬히 읽어 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점원은 그렇게 하라며 고개를 끄덕인 후, 무관심한 표정으로 신문을 펼쳐 들었다. 에밀리에는 초콜릿 진열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초콜릿 포장지의 뒷면을 읽는 척하면서 주머니에 있던 스티커를 슬쩍 꺼냈다. (...)
    노예 제도를 방불케 하는 노동 착취를 찬성하십니까?
    그렇다면 초콜릿을 마음껏 드세요!
    에밀리에는 스티커 한 장을 떼어 내 스니커즈 초콜릿의 포장지 위에 붙였다. 계산대 쪽에선 무더운 날씨에 대해 불평하는 노부인의 말소리와 플라스틱 봉지 소리가 들려 왔다. 에밀리에는 갖가지 브랜드의 초콜릿 포장지 위에 차례차례 스티커를 붙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곁눈질을 하며 계산대 쪽의 동정을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계산대 앞이 텅 비자, 에밀리에도 스티커 붙이는 일을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스무 장도 넘게 스티커를 붙였기 때문에 결과는 퍽 만족스러웠다. 이제 초콜릿을 사려고 물건을 집어 든 사람들이 포장지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보고 생각을 바꾸겠지? 어쩌면 캠페인에 관심을 갖게 된 몇몇 사람들은 집에 가서 세상의 수호자들 홈페이지를 찾아볼지도 모른다. 그러면 세상의 수호자들로 직접 연락을 해 오거나, 자신의 페이스북에 홈페이지 링크를 걸어 놓는 사람들도 생기겠지.......
    (/ pp.88~89)

    고문 양계장
    오슬로 동쪽의 아파트 단지를 지나자 눈앞에는 푸른 들판이 펼쳐졌다. 차창 밖으로 푸른 들판 위의 붉은 헛간과 전나무 숲이 스쳐 지나갔다. 리세는 스테레오에 자신의 아이팟을 연결해 레게음악을 틀었다. 소나무 숲을 지나면서는 모두 밥 말리Bob Marley의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불렀다.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아가씨, 울지 말아요. 울지 말아요)!"
    에밀리에도 함께 노래를 불렀다. 수줍음은 떨쳐 버린 지 오래였다. 이젠 에밀리에도 이들과 함께, 또 세상과 함께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아닌가. 오로라의 전화벨이 울리자, 리세는 볼륨을 낮췄다. 일행은 누가 오로라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모르는 채, 단지 오로라가 하는 말만 들었다.
    "안녕, 시멘! 어, 그래? 그게 정말이야? 좋아! 응, 장담할 수 있어. 괜찮을 거야. 안녕."
    전화 통화를 마친 오로라가 일행을 향해 말했다.
    "사실은...... 나 남자친구가 생겼어."
    "정말?"
    "그래서 최근에 클럽 활동이 뜸했던 거야."
    "우리가 아는 사람이야?"
    라스가 백미러로 오로라를 보며 물었다.
    "아니야. 그 애 이름은 시멘이고......." (...)
    "와, 축하해, 오로라!"
    앞좌석에 앉아 있던 리세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떤 사람이야?"
    안토니오가 물었다.
    "사실은 시멘도 세상의 수호자들 멤버야. 지난번 초콜릿 캠페인에 참여했었어. 우리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기도 했지. 나랑 채팅을 하던 중에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만나기 시작했어. 시멘에게 정신을 빼앗기다 보니 자연히 클럽 활동에도 뜸하게 되었던 거고......."
    오로라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pp.188~189)

    에밀리에는 화면에 뜬 사진을 지켜보았다. 나란히 누운 시체들은 의류 공장에서 사용하는 옷감으로 덮여 있었다. 블라우스, 티셔츠, 그리고 바느질을 반쯤 끝낸 치마들. 카메라는 사망자 중 어린 소녀 한 명의 시체 위에서 잠시 머물렀다. 출입구 쪽을 향해 뒤에서 몰려드는 사람들과 잠긴 문의 쇠 빗살 사이에 끼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작은 소녀. 노동자들이 작업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선 항상 잠가 놓았던 바로 그 문과, 두려움에 우왕좌왕하며 파도처럼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던 작은 소녀. 경비원은 열쇠를 들고 잠긴 문을 향해 달려갔으나 여기저기서 밀치는 사람들 때문에 끝내 문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
    이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H&M, 즉 헨네스 마우리츠 사에 납품하기 위한 여름 상품을 작업하는 중이었다. 뉴스를 전하는 기자는 공장의 정보 담당 책임자도 함께 인터뷰했다. 정장을 입고 마이크 앞에 선 그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한 데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고 말하며, H&M 사에서는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동시에 최저 임금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회사가 지급하는 최저 임금으론 노동자들이 생계를 꾸려 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이라는 점과 그들이 생계를 꾸려 가기 위해선 초과 근무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H&M 사에서는 자사의 상품을 어디의 어느 하청 업자가 생산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H&M 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
    에밀리에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문 기사와 저녁 뉴스 시간에 아무리 자주 이런 사고들을 다룬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기 마련이다. 이전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다시 이전과 같은 가게에서 같은 물건을 구입할 것이 틀림없다. 에밀리에는 세상의 수호자 멤버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저녁 뉴스 봤어? 방글라데시 공장 사고? 다음 캠페인 주제로 어떨까?'
    ('비상경보!' 중에서)

    저자소개

    시몬 스트랑게르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76~
    출생지 노르웨이 오슬로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76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났다. 오슬로대학교에서 철학과 종교 역사를 공부했으며, 2003년 [그물처럼 얽힌 일상, 우리는 그것을 세상이라 부른다]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에 성장 소설 [혼령]으로 노르웨이에서 권위 있는 릭스물 포분데 문학상을 수상했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바 있는 [바르삭]을 비롯하여 주제 의식이 강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작가 활동과 겸해 현재 노르웨이 폰티니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손화수(Hwasue Warberg) [역]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대학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다. 1998년 노르웨이로 이주한 후 크빈헤라드 코뮤네 예술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다. 2002년부터 노르웨이 문학을 번역해 국내에 활발히 알리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노르웨이번역인협회 회원이 되었고 같은 해 노르웨이해외문학협회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번역가상]을 받았다. 현재 스테인셰르 코뮤네 예술학교에서 가르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나의 투쟁] [파리인간] [피렌체의 연인] [루시퍼의 복음] [노스트라다무스의 암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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