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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랑스 기호학자 그레마스와 퐁타닐이 정념 기호학 Semiotique des passions 저서를 발표한 이래, 우리나라에서는 저자가 정념의 기호학적 분석이라는 주제로 접근한 것이다.

정념 기호학은 신비한 자연의 세계에 엄밀한 수학적 질서가 있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세계인 정념에도 모종의 구조가 존재한다는 가설에서 출발하고 있다. 언어의 세계가 결국 유한한 몇 십 개 음소 배열과 정돈 법칙에 의해 설명되는 것과 같이, 정념 기호학에서는 정념 세계에도 일정의 논리적 구조가 있으며, 이 구조가 테스트 내에서 반복되고 재생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념 구조가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레마스와 퐁타닐에게 정념 기호학의 목표는 텍스트에 무질서하게 표출되어 있는 정념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것, 불변적인 요소를 끌어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예로 김동인의 《배따라기》와 《감자》를 놓고 생각해볼 때, 두 작품이 모두 주인공의 질투로 인해 사건이 발생하고 결말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이처럼 질투 이야기라고 한결같이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두 작품에 모두가 인식하는 공통적인 모종의 구조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정념이 생성되고 표출되는 상황, 원인, 이유는 표면상으로 복잡하고 다양하긴 하지만 불변의 형식적인 구조가 반드시 존재하며, 그레마스와 퐁타닐은 나름대로 규칙성을 발견하여 정념의 여러 가지 분석 도구와 개념 장치를 구축한 것이다.

프롤로그 3
I. 서론 13

II. 그레마스 연구 21
1. 생애
2. 세 단계 연구
2.1. 제1단계 : 구조 의미론
2.2. 제2단계 : 서사 기호학
2.3. 제3단계 : 정념 기호학

III. 정념 41
1. 철학적 정의
2. 기호학적 정의

IV. 그레마스의 「분노에 대하여」 55
1. 어휘-사전적 접근
2. 기대감
3. 불만족
4. 복수
5. 분노
≪ 텍스트 분석 ≫
1. 박종화의 『금삼의 피』
2. 줄리앙 그린의 『인간이라는 괴물』
≪ 맺음 말 ≫

V. 의미 생성 행로 99
1. 선조건 층위
1.1. 긴장과 감의 공간
1.2. 발랑스
1.3. 분열과 행위소적 불안정성
1.4. 변조
1.5. 되어감
1.6. 범주화
2. 기호-서사 층위
2.1. 세 차원
2.2. 행위소 구조와 장치
2.3. 양태 범주
2.4. 양태 구조
2.5. 가상체
2.6. 양태 장치
2.7. 존재적 가상체
3. 담화 층위
3.1. 장치화
≪ 텍스트 분석 ≫
1. 샤를 루이 필립의 『만남』
2. 프랑수아 코페의 『슬픈 소녀』
≪ 맺음 말 ≫

VI. 정념 도식 157
1. 서사 도식과 정념 도식
2. 정념 도식
2.1. 형성화
2.2. 감성화
2.2.1. 장치화
2.2.2. 정념화
2.2.3. 정동화
2.3. 도덕화
3. 서사 도식과 정념 도식의 유사점과 차이점
4. 정념 도식과 존재적 가상체
≪ 텍스트 분석 ≫
1. 이효석의 『화분』
2. 줄리앙 그린의 『인간이라는 괴물』
≪ 맺음 말 ≫
1. 정의
2. 어휘 의미적 접근
2.1. 애착관계와 경쟁관계
2.2. 애착과 경쟁관계의 교차점에 있는 질투
3. 통사적 구성
3.1. 질투 모형의 초안
3.2. 불안, 의혹과 불신
3.3. 거시 시퀀스와 미시 시퀀스
≪ 텍스트 분석 ≫
1. 김동리의 『황토기』
2. 김동인의 『감자』
3. 모파상의 『고해성사』
4. 스탕달의 『적과 흑』
≪ 맺음 말 ≫

VIII. 새로운 정념 분석 247
1. 양태 구성 요소
1.1. 사행의 존재태
1.2. 사행에 전제된 조건
1.3. 양태의 유형학
1.4. 행위소의 정체성 구축을 위한 양태화
2. 긴장 현시 요소
3. 두 요소의 상보적 고찰과 분석
4. 새로운 담화 도식
5. 텍스트 내 정념의 발현
≪ 텍스트 분석 ≫
1. 박경리의 『표류도』
≪ 맺음 말 ≫

IX. 결론 295
참고 문헌 301
색인 310
차례

머리말

유럽 기호학의 창시자 소쉬르는 기호학을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기호의 삶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하였으며, 미국 기호학의 창시자 퍼스는 《우주 전체가 기호로 가득 차 있다》고 하였다. 소쉬르 이후 현대 기호학은 1960년대 프랑스에서 연구되기 시작하였는데, 그레마스, 쿠르테스, 코케, 프티토, 란도브스키, 제니나스카, 들로름므, 아리베, 파레트 등 이론가들의 활동에 고무되어서 그 대상과 영역이 양적으로 많은 팽창을 하였다.
기호학은 프랑스의 기호학자 에노의 말처럼 우리가 갖고 있던 세계에 대한 포착과 이해 방식을 변형시켰다. 오늘날 우리의 삶과 사회의 모든 현상을 새롭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욕구가 높아지고 있는데, 기호학은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특히 프랑스 기호학자 그레마스의 서사 기호학 이론, 서사도식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보편적 도식이라는 것에 대하여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이 다른 나라의 좋은 문화를 자신들의 나라에 도입하여 발전시키는 것을 보고, 필자도 프랑스의 문화로서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었다. 정념 기호학 Semiotique des passions은 프랑스 기호학자 그레마스와 퐁타닐이 저서를 발표한 이래, 우리나라에서는 필자가 정념의 기호학적 분석이라는 주제로 접근하였다.
현상학자 훗설은 모든 형태의 지식이 아무리 순수한 것, 지적인 것일지라도 결국 ‘삶의 세계’에 뿌리박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수학적 지식도 결국 ‘삶의 세계’의 추상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념 기호학도 인간의 정념 세계에 대한 추상적 표현이다. 이 이론은 신비한 자연의 세계에 엄밀한 수학적 질서가 있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세계인 정념에도 모종의 구조가 존재한다는 가설에서 출발하고 있다.
1997년부터 필자는 매년 여러 학회에 정념 기호학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한국연구재단(구 한국학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김동인의 《배따라기》에 나타난 정념의 기호학적 분석”(2004), “김동리의 《황토기》에 나타난 질투의 기호학적 분석”(2005), “그레마스 기호학에서 정념 도식의 적용과 한계”(2006), “박경리의 《표류도》에 나타난 정념의 기호학적 분석”(2007), “정념 기호학과 담화 기호학의 상호보완적 고찰”(2008), “정념 기호학 연구(2010), “담화 기호학 연구(무진기행을 중심으로)”(2012) 논문을 써왔다. 올해는 『정념 기호학』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그동안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연구할 수 있었던 것에 고마움을 전한다.
필자는 모교 한국외대 한불사전 편찬에 참여하면서 우리말 번역에 있어서 단어 선택의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프랑스의 소르본느를 비롯한 여러 대학 도서관과 국립 도서관에서 많은 자료를 찾아가면서 기호학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정념 기호학의 용어가 우리말로 정립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없이 고치고 고쳐 가면서 하나의 개념을 만들어 가는 작업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나의 온 열정을 바치고 애착을 가져 온 기호학 연구 덕분에 인생의 후반기를 바쁘고 보람되게 보내고 있다. 아무쪼록 후학들이 이 책으로 정념 기호학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끝으로 이 날이 있기까지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은사님과 모교 출판부에 감사드리고, 나의 연구 생활을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 준 가족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14년 여름 죽전에서
홍 정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