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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 우주시대의 정치사 1 [양장]

원제 : The Heavens And the Earth: A Political History of the Space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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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냉전 시대를 되짚어보면서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우주정책을 샅샅이 조망하고 우주기술의 정치적 기원을 추적한다

    [하늘과 땅: 우주시대의 정치사]는 로켓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본격화되는 18세기 후반부터 우주 진출에 대한 기대와 경쟁이 한풀 꺾이는 1980년대까지를 다룬다. 그중에서도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시작된, V2 로켓을 둘러싼 미소의 쟁탈전에서 시작하여, 냉전이 도래하면서 본격화된 미소의 우주경쟁에 관심을 쏟고 있다. 미소 우주경쟁의 절정은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과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라 할 수 있다. [하늘과 땅: 우주시대의 정치사]는 이런 점을 고려하여 스푸트니크의 성공이 미국에 던진 충격과 아폴로계획의 수립 및 진행 과정을, 기밀해제된 문서를 포함한 정부 자료와 신문 자료, 외교문서, 관련 서적 등을 섭렵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스푸트니크 1호는 소련에는 영광과 자부심을 미국에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스푸트니크는 소련의 앞선 기술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음을 뜻했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미국이 꺼낸 카드는 아폴로계획으로 구체화되었다. NASA가 새로 만들어졌고, 미국은 총력전을 펼친 끝에 목표를 달성해냈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예산과 비용을 투입한 데 반해 명성 이외에 미국이 얻은 것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후 냉전의 종말로 비용 부담은 미소 양국에 족쇄로 작용했고, 우주개발의 열망은 급속히 사그라졌다.

    국제정치적 필요성과 막대한 힘을 가진 정부, 과학자들의 의지와 인류의 꿈 사이에서
    현재 우주개발 정책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하늘과 땅: 우주시대의 정치사]는 ‘우주시대의 정치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정치, 군사, 외교적 측면에서 우주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지닌 의미를 재해석한다. 이를 위해서 기술과 정치가 서로를 규정하면서 관계를 맺어나가는 방식에 주목하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기술관료제에 관심을 쏟는다. 거대과학(big science)을 통해 미국이 기술관료제 사회로 변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미 기술관료제 체계를 갖추고 강력한 과학기술혁명과 그 연장선상에서 우주 드라이브 정책을 펼치는 공산주의 적국 소련에 맞서 세계 평화의 수호자 미국의 힘을 보여주려면 소련과 반드시 경쟁해야 했고, 그러려면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조직 역량이 필요했다. 하지만, 미국의 참된 힘은 공화주의적 전통에 기초하여 개인의 자발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나온다. 따라서 미국이 민주주의 장점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소련과 우주경쟁에 돌입하는 것은 그 자체로 딜레마였던 셈이다.

    이런 사실을 가장 근본적으로 간파한 인물로 저자는 아이젠하워를 들고 있다. 이런 저자의 입장은 학계의 기존 입장과는 다른 새로운 해석이다. 아이젠하워가 우주개발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국제정세를 잘못 판단해서가 아니라, 정책에 따른 손익을 잘 파악하고 공화주의자로서 미국의 소중한 사회적 가치가 훼손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 전략의 핵심은 막대한 예산을 빨아들이는 폭주를 제어하면서 소련의 도발에 적절히 대응할 관리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소련을 수시로 감시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이 분야의 성과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거나 첩보위성처럼 비밀이어야 했던 반면 스푸트니크는 선전용으로 탁월했다. 소련의 선전이 자유진영의 지도자로서 미국의 위상을 위협함으로써 이것이 국제정치적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하늘과 땅: 우주시대의 정치사]는 기술관료제에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들어간 미국의 현실을 고발하고 아이젠하워의 경고를 되새겨, 배워야 할 바를 직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3억 6천만 년 전, 원생동물인 유스테노프테론은 바다에서 육지를 향해 기어오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왜 인류는 우주로 나아가려 하는가? 우주여행은 우리를 원생동물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방을 맛보게 할 수 있을까? 우주를 향한 꿈과 그 대가를 요구하는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가능한가? [하늘과 땅: 우주시대의 정치사]는 현재 우주개발 정책에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통찰을 제공해준다. 여전히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남아 있는 우주개발로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것, 복지예산 축소로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가시적 문제 못지않게 기술관료제 강화로 공동체 가치가 근본적으로 훼손된다는 비가시적 문제도 함께 떠안아야만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풀어낼 새로운 방법, 우주비행을 값싸고, 안전하며, 일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새로운 원리를 발견한다면 우주시대는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들어가는 글

    1부 스푸트니크의 기원

    01 인간의 씨앗과 사회의 토양: 로켓공학과 혁명
    02 정치적 비와 최초의 열매: 냉전과 스푸트니크
    결론

    2부 현대 무기와 자유민: 스푸트니크 이전의 미국

    03 수줍은 거인: 기술과 국가, 전쟁억지력의 탄생
    04 기술관료제를 기다리며: ICBM과 최초의 미국 우주프로그램
    05 위성 판단
    결론

    3부 전위와 후위: 아이젠하워와 미국 우주정책의 배경

    06 “새로운 역사 시대”와 미디어 폭동
    07 미국우주항공국(NASA)의 탄생
    08 미국을 위한 우주 전략
    09 송골매 둥지의 참새
    10 미래의 징후
    결론

    본문중에서

    모스크바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베데엔하(VDNKH) 전철역을 걸어 나오면 길 건너편에 코스모스호텔이 보인다. 그곳에서 뒤를 돌아보면 연기를 내뿜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비행기 조형물(스페이스 오벨리스크)이 시선을 끈다. 앞은 코스모스(우주)요, 뒤는 힘차게 날아가는 우주선…. 모스크바 우주박물관(우주기념관)은 높이 100미터에 이르는 티타늄 조형물인 스페이스 오벨리스크 밑에 조성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는 아담하지만 러시아의 우주 역사를 모두 담아낸 적지 않은 규모를 자랑한다. 입장을 하면 곧바로 스푸트니크 1호와 유리 가가린을 만날 수 있다. 소비에트를 빛낸 과학기술과 조국의 영웅으로, 그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한다. 박물관은 우리와의 인연도 담고 있는데, 국제우주정거장을 방문했던 이소연 씨를 통해서다. 그렇지만 곧 기쁨은 반감되고 마는데, 우주인이 아니라 우주관광객 이소연 씨를 만나기 때문이다.

    박물관을 나서면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주와 로켓은 러시아(소련)에게 어떤 의미일까? 찬란한 과거의 영광, 아니면 체제에 복무한 이데올로기를 위한 도구? 과거 소련은 우주 분야에서 미국과의 치열한 경합 속에서 많은 “최초들”을 이룩했고, 이는 곧 조국의 우월성을 상징했다. 동시에 우주분야의 과도한 예산투입은 체제경쟁에 따른 것으로 인식되었고, 지나친 국력의 낭비는 결국 체제붕괴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소련의 반대편에 서 있던 미국에게 우주는 과연 무엇일까? 더 나아가서 전체 인류와 우리나라에게 우주는 무엇인가?

    인류는 오랫동안 우주로 나아가는 꿈을 꿔왔지만 그 꿈이 이뤄진 것은 나치의 V2 로켓이라는 현실을 통해서였다. 즉, 우주비행을 통한 인류의 위대한 진보를 꿈꿨던 치올콥스키의 순수한 이상은, 강력한 전쟁무기 개발을 통해 적국을 제압하려는 강대국들의 현실적 필요성이라는 운반체의 상단에 실린 채 우주로 발사되었다. 이상과 현실의 환상적 조우 속에는 이처럼 우주를 둘러싼 인류의 슬픈 아이러니가 숨어 있었다. 이 책, [하늘과 땅]은 이런 아이러니를 ‘우주시대의 정치사’라는 창을 통해 매우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시기적으로 로켓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본격화되는 18세기 후반부터 우주 진출에 대한 기대와 경쟁이 한풀 꺾이는 1980년대까지를 다룬다. 그중에서도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시작된 V2 로켓을 둘러싼 미소의 쟁탈전에서 시작하여 냉전이 도래하면서 본격화된 미소의 우주경쟁에 관심을 쏟고 있다. 미소의 우주경쟁에서 그 절정은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과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점을 고려하여 스푸트니크의 성공이 미국에 던진 충격과 아폴로계획의 수립 및 진행 과정을 공개된 정부 자료와 신문 자료, 외교문서, 관련 서적 등을 섭렵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이 책이 주목하는 우주시대를 스케치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인공위성을 위한 로켓 실험이 계속되는 가운데, 소련이 먼저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렸다. 이는 소련에는 영광과 자부심을 미국에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스푸트니크는 소련의 앞선 우주기술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음을 뜻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잠자는 토끼요, 소련은 쉼 없이 나아가는 거북이었다. 잠에서 깬 토끼가 깜짝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사이에 거북은 계속 앞서 나갔다. 유인우주선 보스토크호를 비롯하여 소련은 많은 “최초들”을 만들어나갔고, 유리 가가린은 최초의 우주인으로 칭송되었다. 다급해진 미국은 소련의 많은 “최초들”을 한꺼번에 제압할 수 있는 카드를 생각했는데, 아폴로계획으로 구체화되었다. NASA가 새로 만들어졌고, 미국은 총력전을 펼친 끝에 목표를 달성해냈다. 하지만, 아폴로계획은 우주 진출의 막다른 골목이었다. 너무도 많은 예산과 비용을 투입한 데 반해 명성 이외에 미국이 얻은 것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냉전의 종말로 비용 부담은 미소 양국에 족쇄로 작용했고, 우주개발의 열망은 급속히 사그라졌다.

    이 책은 ‘우주시대의 정치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정치, 군사, 외교적 측면에서 우주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지닌 의미를 재해석한다. 이를 위해서 우주기술과 우주정치가 서로를 규정하면서 관계를 맺어나가는 방식에 주목하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기술관료제에 관심을 쏟는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관료제와 기술관료제를 구분하는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거대과학(big science)을 통해 미국이 기술관료제 사회로 변해나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어쩌면, 기술관료제 사회의 도래란 우주경쟁의 결과 미국 사회가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딜레마였을 수 있다. 이미 기술관료제 체계를 갖추고 강력한 과학기술혁명과 그 연장선상에서 우주 드라이브 정책을 펼치는 공산주의 적국 소련에 맞서 세계 평화의 수호자 미국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소련과의 경쟁이 필수적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조직 역량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참된 힘은 공화주의적 전통에 기초하여 개인의 자발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나온다. 따라서 미국이 민주주의 장점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소련과 우주경쟁에 돌입하는 것은 그 자체로 딜레마였던 셈이다.

    한편, 이런 사실을 가장 근본적으로 간파했던 인물로 저자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들고 있다. 케네디와는 달리 아이젠하워는 우주개발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그 당시 국제정세를 잘못 판단해서가 아니라 노련한 정치인으로서 우주 드라이브 정책에 따른 손익을 잘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공화주의자로서 미국의 소중한 사회적 가치 훼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자의 입장은 학계의 기존 입장과는 다른 새로운 해석으로, 그 자신이 기밀해제된 문서를 통해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먼저, 손익의 측면을 살펴보자. 군사적 목적에서 실용성을 고려할 때, 과연 스푸트니크호 사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미국이 인공위성에서 ‘최초’를 빼앗긴 것은 그야말로 단순히 기술력의 부족에 따른 것인가? 그 당시 미국의 군사적 이익은 주로 어디에 있었는가? U-2 격추사건과 영공권 통과를 둘러싼 국제법 갈등, 이어진 미국의 정찰위성(첩보위성) 개발을 위한 노력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더욱이, ICBM과 핵탄두의 성능과 규모에서도 미국은 거의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소련을 앞서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아이젠하워 전략의 핵심은 막대한 예산을 빨아들이는 미국의 폭주를 제어하면서 소련의 도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관리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소련을 수시로 감시할 수 있는 체제의 구축이 요구되었는데,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바로 이 부분에 집중했고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그렇지만 이 분야는 성격상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반면(특히, 정찰위성은 비밀에 부쳐졌다), 스푸트니크는 선전용으로 탁월했다. 발사체의 투사중량은 소련이 앞섰지만 그 차이란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실제로 미국은 곧바로 소련의 뒤를 쫓았다. 전반적으로 우주의 주도권은 미국이 쥐고 있다는 것이 아이젠하워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스푸트니크와 가가린의 상징성은 실용성을 가렸다. 계속된 우주의 ‘2등’이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자유진영의 지도자로서 미국의 위상을 위협함으로써 국제정치적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켜졌다.

    둘째, 사회 가치의 측면에서 아이젠하워는 군인 출신의 정치가이자 공화주의 신봉자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력에서 장점만을 취한 듯 보인다. 역사적으로 또 다른 정치적 목적에 대한 지적이 없지 않지만 유엔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주창했고, 군산복합체의 도래를 경고한 바 있다. 또한, 군인 출신으로 군조직의 원리가 사회를 지배해서는 곤란하다는 분명한 문제의식 속에서 기술관료제의 위험을 직시했다. 이런 차원에서 아이젠하워는 소련과의 우주경쟁에서 무조건적 승리를 위한 질주를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폴로 열망 속에 묻힌 채 미국인에게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차원에서 이 책은 아이젠하워를 재평가하여 미소의 우주경쟁을 냉전의 맥락 속에 위치시키면서도 미소의 다른 셈법을 반영해낸다. 특히, 기술관료제에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들어간 미국의 현실을 고발하고 아이젠하워의 경고를 되새긴다. 우주시대의 역사를 통해 미국이 배워야 할 바를 직시해야 한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우리 인류에게 우주란 무엇인가? 조금은 인식론적인 차원에서, 이 책은 인류에게 우주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왜 우리는 우주로 나아가려 하는가? 그것은 필연인가, 망상에 불과한가? 3억 6천만 년 전, 유스테노프테론은 바다에서 육지를 향해 기어오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간의 척도로서 볼 때, 유스테노프테론은 생존을 위해 그냥 본능에 따랐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신천지를 향한 열망이나 ‘육지복’ 같은 기술이 있었을 리 만무했을 테니까. 그렇지만, 우리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단순히 생존이 아니라 호기심과 드높은 이상을 품고 과학기술을 통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 우리에게는 유스테노프테론과 달리 과학기술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우주복과 우주선을 이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유스테노프테론과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인가? 치올콥스키가 말했듯, 우주여행은 우리를 원생동물에게서 벗어나서 더욱 완성된 존재로 우뚝 서게 해줄까? 중력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해방을 맛볼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을 하기는 힘든 것 같다. 여전히 우리는 유스테노프테론이 강가 진흙에서 철퍼덕거렸듯 지구의 대기권을 조금 넘어선 곳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또한, 우주는 인류의 신천지라기보다는 여전히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남아 있다. 그 양상은 다르지만 여전히 국제정치경제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최근 들어 중국은 야심 차게 우주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의 발사 성공에 이어, 우주정거장 톈궁 1호와 선저우 9호의 도킹을 성공시켰으며, 달 탐사도 계획 중이다. 이런 중국의 야심 찬 우주사업은 과거 미소의 우주경쟁이 그렇듯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중국은 왜 미소 우주경쟁의 발자취를 뒤따르려 하는가? 이것은 그 자체로 독자적으로 다뤄야 할 중요한 연구주제이지만, 과거의 경험을 비춰볼 때,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언급되는 국제정치적 현실과 전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최초의 유인우주선이 성공을 거둔 후 중국은 “천 년의 꿈이 마침내 이뤄졌다”고 환호를 보냈다. “천 년의 꿈”이란 찬사 속에는 세계 3대 우주강국의 지위를 부각함으로써 민족적 우월성과 단합을 강조하려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

    우리나라의 우주사업이라고 해서 예외일까? 우주사업을 둘러싼 논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아이젠하워가 고민했듯, ‘묻지마식의 우주개발’은 더 이상 불가능한 반면, 다방면에 걸친 국가적 필요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란 지극히 소박한 것일지 모른다. 우주개발을 통한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물론, 복지예산의 축소에 따른 삶의 질 악화라는 가시적 문제 못지않게 기술관료제의 강화에 따른 공동체 가치의 근본적 훼손이라는 비가시적 문제도 함께 떠안아야만 한다.

    우주를 향한 꿈과 그 대가를 요구하는 현실, 우리의 선택은 과연 무엇인가? 절묘한 균형은 과연 가능한가? 이 책, [하늘과 땅]은 두 강대국의 우주시대를 샅샅이 조망함으로써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되짚어볼 수 있도록 해줄 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우주개발과 정책에서 무엇을 고민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력을 제공해준다. 특히, 기술과 정치를 별개의 것으로 분리하여 기술 드라이브 정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의 경우, 이 책이 던져주는 교훈은 자못 크다.
    ('역자 서문' 중에서)

    나는 최초의 달 착륙을 직접 보지 못했다. 1969년 7월, 나는 남베트남의 3군단 지역에 있는 극도로 불쾌한 정글 기지에서 포병사격지휘대장으로 야간이동 중이었다. 3~4일이 지난 신문 [성조기](Stars and Stripes)에서 아폴로 11호의 기사를 봤다.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인상 깊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아이러니로 가득한 우리의 감각을 자극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는 훨씬 더 현실적인 관심사가 많았기 때문이리라. 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서 나는 대부분의 미국인처럼 텔레비전을 통해 우주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카운트다운의 지루함과 발사 순간과 착수의 긴장감을 알고 있었으나 ‘광팬’은 아니었다. 그 시대의 과도하게 활동적인 기술적 배경 속에서, 우주 로켓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폰티액 GTO[GM 자동차 모델로 1964년에서 1974년까지 미국에서 생산되었다]의 정부판 버전쯤으로.

    우주프로그램은 1974년, 대학원을 끝마친 내게 전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나는 스카이랩을 내 마음의 ‘특집 섹션’에 넣어둔 채, 미국-소련의 랑데부를 약간 통속적으로 데탕트의 종지부가 찍힌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무인 우주프로그램의 만연함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유럽의 외교사에 대한 강의록을 썼고, 캘리포니아 생활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었고, 1920년대 프랑스 외교정책에 대한 책을 집필하는 데 몹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979년 말, 아직 신임교수 시절에 연구실적을 평가할 목적으로 학과에서 내 미래 연구계획을 물어왔다. 1차 세계대전 기간에 동맹국의 경제협력(유망하지만 덜 연구된 분야)을 연구주제로 제출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특별한 게 없네요”, 의장이 말했고, 동료들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몹시 실망스러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따금 혼란 속에서 굳어지는 과감함을 생각하며, 나는 스스로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학술적 방향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정한 쏠림과는 무관하게 내 호기심을 쫓기로 마음먹었다. 국제관계에서 특별히 두 가지 주제가 내 흥미를 끌었다-해양과 남극과 같은 비(非)영토적 지역을 둘러싼 국제 관리, 그리고 국제 경쟁과 기술변화의 상호작용. 이런 분야들을 살펴본 결과 두 가지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초기 우주시대의 정치사는 이런 관심사를 모두 잘 포괄하고 있다. 둘째, 우주시대의 방아쇠를 당긴 스푸트니크 1호는 우리 시대의 국제 역사는 물론 국내 역사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그런 발견의 산물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사건들은 너무 최근의 일이어서 역사적으로 ‘진지하게’ 다루기에는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 쟁점을 길게 논할 생각은 없는데, 역사의 모든 시대적 구분이란 인공적이기 때문이다. 찰스 1세의 처형 이후를 ‘저널리즘’의 시작으로 간주하는 역사가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실용주의에 호소하고자 한다. 즉, 오늘날 대학생들에게 JFK와 베트남은 나에게 트루먼과 한국전쟁처럼 희미한 과거의 일에 불과하다. 그들은 역사가에게 전후 역사를 배울 필요가 있다. 또한, 나는 선례에 호소하고자 한다. 즉, 역사가들은 사건 발생 15~20년 뒤에 1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기원에 대해 쓰고 있는데, 결정판은 아니지만, 이득이 없지는 않다. 현재는 스푸트니크 1호에서 4반세기가 지났다.

    출처는 어떤가? 최근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자료는 충분한가? 다른 20세기 역사가들처럼 나에게도 문제는 자료가 너무 적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물론, 일부 문서는 기밀 자료로 묶여 있지만, 나머지는 정부공개법에 따라 공개된 상태이다. 활용 자료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을 때, 나는 자료의 한계를 밝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주시대에 대한 내 질문은 이 메모나 저 전보의 내용으로 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련의 자료는 짜증날 정도로 형편없는 것이었지만, 1917년 이후 역사를 연구하는 다른 학자들보다 더할 것은 없었다. 그들의 비밀성은 경험적 연구에 적합하지 않기에 소련에 대한 기존 연구들이 이 연구의 어려움을 경감시켜줄 수 없는 노릇이다. 정리하면, 현대사 연구자들은 전체를 종합적으로 다룰 수 없지만 그렇다고 중세사 연구자들보다 더 나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하고, 자의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관점은 어떤가? 우리는 어떻게 해서 우리 시대와 매우 가까운 사건들의 역사적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가? 이것은 위험한 질문인데, 필연적으로 인식론-역사가는 어떻게 해서 뭔가를 ‘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과 해석학-어떻게 하나의 관점은 다른 관점보다 더 ‘옳은’ 것이 될 수 있는가?-의 진퇴양난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나는 미래의 많은 역사가보다 1960년대의 심리상태(mentality)를ㅇㅍ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인데, 내가 그것을 공유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시대의 변화가 다가올 수십 년과 수세기에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다. 중세사 연구자들은 자신이 다루는 이야기의 끝(만약 역사가 끝을 가진다면)을 알고 있지만 14세기의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알고 있는 서사도 매우 적다. 나는 우리가 최근의 과거를 역사적으로 바라볼 의무가 있으며, 우리 시대의 변화는 매우 압축적이라는 사실로부터 용기를 얻고자 한다고 감히 말하는 바이다. 1960년대는 이미 소중하지만 죽은 시대이다. 미래의 역사가들은 더 많은 것을 말해줄뿐더러 여기에 내가 써넣은 많은 것을 바로 잡아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 또한 또 다른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워싱턴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허시혼 미술관(Smithsonian’s Hirshhorn Museum)에 전시된 커다란 그림이 있다. 그것은 아감(Israeli Yaacov Agam)이 만든 광학 예술작품으로, 12개의 수직 V-형 패널로 이루어져 있다. 각 패널에는 한쪽 면에는 흑색과 유색의 체크표시가 새겨져 있고, 반대 면에는 무작위 색들이 칠해져 있다. 만약 왼쪽 끝에 서서 경계면을 본다면, 무지개색 배경에 검은색의 수평선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색채의 장(場)이 나타날 것이다. 그림의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광활한 공간을 가로질러 가면, 계속해서 변하는 체크무늬 색들이 눈에 비칠 것이다. 앞에선 보이지 않았던 흰 상자와 사각형들도 보게 될 것이다. ‘투명한 리듬들’(Transparent Rhythms)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모든 곳에서 색이 스며나온다. 그러나 오른쪽 끝으로 가서 다시 경계면을 보면, 매트릭스 전체는 가장 단순한 패턴으로 돌변한다-세 개의 찬란한 수평 스펙트럼이 형성되는데, 중앙 스펙트럼의 극성은 역전되어 나타난다. 혼돈은 사라졌지만, 중간의 패턴들도 함께 사라졌다.

    인공적 질서를 구축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공학자와 마찬가지로 역사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역사가는 체크표시판 내부에 있지만, 그런 조건이 패턴 중 일부가 다른 것보다 더 참되고, 더 내구적이고 포괄적이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여기서 우리가 그 패턴들을 볼 수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경험주의가 아무리 세심할지라도 역사가 직관을 없앨 수 없는 이유이다. 그리고 ‘착각효과를 이용한 그림’(trompe l’oeil)의 신중함과 주도면밀함에도 불구하고, 이 역사가가 경계에서 역사를 보려는 야망을 품는 이유이다.
    ('저자 서문' 중에서)

    인간을 달에 보낸 최초의 사건, 아폴로 11호의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미국과학학술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으로부터 1989년 7월에 받았다. 심포지엄이 열리기 며칠 전, 나는 국회도서관의 카페테리아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때, 덥수룩한 모습의 노인이 내 테이블 건너편에 앉았다. 처음엔 무시하려 했지만, 이내 친절을 베풀기로 마음을 바꿔먹고 그와의 대화에 돌입했다. 그는 미국우주항공박물관(National Air and Space Museum)에서 열린 아폴로 전시회를 책임졌던 건축가이자 조각가였다. 나는 내 연구가 그 박물관에서 수행되었고, 그 결과가 책으로 나왔다고 서둘러 말했다. 그 책에서 나는 특히 그의 전시를 칭찬했는데, 그 전시야말로 여러 해에 걸쳐 아주 많은 방문자에게 감격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듣자 그는 큐레이터와 우주비행사로 이루어진 자신의 팀이 전시에 얼마나 큰 애정을 쏟아부었으며, 그 결과 박물관의 전시관을 단 1년 만에 완성했던 가슴 벅찬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러곤 곧바로 최근 들어 달 전시회가 찬밥 신세로 전락한 나머지 부분적으로 해체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음을 슬퍼했다.

    그와 헤어진 후, 나는 그 전시회의 운명이 아폴로와 미국 우주프로그램 전체의 운명과 거울상을 이루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빠졌다. 숙련되고 헌신적인 팀워크 덕분에 엄청난 정서적 애국주의를 품고 있던 훌륭한 창조물이 비교적 쉽게 태어날 수 있었지만, 승리 후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폐기되고, 해체되고, 왜곡되었으니 말이다. 1997년, 미국인들이 스푸트니크 1호(Sputnik I)를 ‘기술적 진주만 습격’(technological Pearl Harbor)으로 받아들인 지 40년이 지난 지금, 우주프로그램이 큰 실망만을 안겨주었을 뿐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실제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은…이 책 [하늘과 땅](the Heavens and the Earth)이 미국우주항공국(NASA)으로 상징되는 기술관료적 접근의 문제점을 드러내주는 일종의 선견지명으로 비치기는커녕, 1985년에 이르면 우주왕복선이 엄청난 잠재력으로 제2의 우주시대를 선도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졌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이 책을 처음 썼을 때보다 더욱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볼 때, 우주시대는 오만의 시대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1960~1970년대 기술과 두뇌집단의 연방정부 차원의 동원을 기반으로 한 ‘계획된 미래의 발명’은 베트남전쟁에서 시작하여 미국의 도심개선사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고, 심지어 이상적일 정도로 적합해 보이던 활동무대-즉, 우주기술-에서조차 실패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스푸트니크 1호 이후의 시간 속에서, 전문가들은 의회 위원회에서 2000년까지 미국과 소련은 달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레이저로 무장한 우주선이 궤도에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Space Odyssey, 1968)는 달에 있는 힐튼 호텔과 목성을 향한 유인탐사를 그려냈다(그 영화에서 1992년 1월 12일은 슈퍼컴퓨터 할(Hal)의 생일이다). 1960년대 후반, NASA의 진흥정책론자들은 우주왕복선(야곱의 사다리를 오르는 천사들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 영구적인 우주정거장, 화성 유인탐사 등을 상상했다-이 모든 것은 10년 이내에 이뤄질 것으로 여겨졌다. 1970년대, 몽상가들은 우주왕복선을 이용하여 거대한 태양전지 패널을 궤도로 쏘아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 패널은 지구에 무공해 에너지를 무한정 보내줄 것이고, 우주 수경농업이 가능해지면서 폭발하는 지구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지구의 기후통제 시스템을 민간용 및 군사용 목적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우주정거장사업이 재개되었고(또다시 ‘10년 이내’의 목표 속에서), 레이저빔 무기를 궤도에 올려놓아 미사일을 격추함으로써 핵무기를 낡은 것으로 만들려는 목적에서 전략방위사업(SDI)이 시도되었다. 또한, 우주망원경은 우주의 마지막 비밀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1990년에 이르면, 2010년을 목표로 한 화성 유인탐사 사업이 대통령의 희망목록에 올랐고, 우주항공기(오리엔트 익스프레스(Orient Express))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항공기는 승객을 싣고 태평양을 한 시간 만에 주파한 다음 아시아에서 비행기처럼 착륙한다.

    그 어떤 것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사실, 정부 후원 연구개발을 통한 무한한 진보의 꿈은 우주비행사들이 달 위를 걷기 전부터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NASA의 예산은 1966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고, NASA의 최고 엔지니어들은 민간 부문으로 떠났다. NASA의 로켓과 우주선 설계팀은 해체되었고, 우주기관은 창조적 시너지와 초기 영웅시대의 제도적 카리스마를 잃고 말았다. (NASA 기업문화의 타락과 ‘탈주술화’[베버의 용어를 사용하여]는 다음에서 전문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Howard McCurdy, Inside NASA: High Technology and Organizational Change in the U. S. Space Program,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3.) 그러자 닉슨 정부는 견줄 데 없이 뛰어난 아폴로-새턴 시스템을 버리고 재활용 발사시스템을 첫걸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NASA의 청장들은 우주왕복선을 끌어안았는데, 그들과 우주항공산업은 거대하고 새로운 ‘쇠가 휠 정도로 놀라운’ 프로그램을 너무도 간절히 원했고, 그 순간에 미묘하지만 예측가능한 변화가 정치와 기술 사이의 관계에 발생했다. 그 초기 단계에, 기술관료제란 기술이 정치적 의제를 위한 밑그림이 되어야 함을 뜻했지만(이 자체로도 충분히 위험한 현상), 1970년대와 80년대의 공공정책은 기술을 위한 밑그림이 되었다. 아폴로는 우리가 가고 싶은 곳에 데려다 줄 기술을 만든 경우라면, 우주왕복선은 기술을 먼저 만들고 나서 그 한계 속에서 우리가 갈 곳을 정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것은 우리를 멀리까지 데려다 주지 못했다.

    1970년대의 정치적, 경제적 압력 속에서, 닉슨과 포드, 카터 행정부 모두 한목소리로 우주왕복선을 저예산으로 달성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NASA는 어쩔 수 없이 ‘완전히 재사용할 수 있는’ 특징을 조건으로 받아들였고, 공군의 요구조건을 수용하여 설계 변경에 동의했다. 우주왕복선의 수행능력은 크게 제한되었지만 그 역량은 오히려 과장되었고, 이는 다시 비용을 깎으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1981년, 마침내 우주왕복선이 날아올랐지만 예상보다 크게 지체되었고, 예산은 과다 지출되었으며, 버그가 득실거렸던 까닭에 약속한 대로 해마다 24회가 아니라 단지 4~6회 정도밖에 운항에 나설 수 없었다. 따라서 발사 중량(파운드)당 비용을 ‘10배’ 줄이는 것은 고사하고, 우주왕복선은 옛 새턴-5 로켓의 7배에 달하는 비용 증가를 초래했다. 더욱이, 우주왕복선이 우주프로그램의 예산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했던 까닭에 로봇 탐험, 과학, 우주 응용 등은 구걸에 나서야 할 정도였다. 챌린저호 폭발사건은 하나의 계시였다. 우주왕복선을 잃었기 때문(곧 그런 일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이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재성과 참으로 깨끗한 효율성의 모델로 칭송받아 마지않던 그 기구가 너무도 큰 혼란 속에 빠져든 나머지 외부의 천재인 파인만 박사(Dr. Richard Feynman)를 청문회에 끌어들여 NASA가 어디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설명하는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우주정거장의 이야기도 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출발부터 난관에 처했다. 그러나 우주시대의 기술관료제가 지닌 약점은 그것을 기초 원리로 삼도록 했던 체제-소련-의 운명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다. 소련의 우주프로그램은 미국 프로그램보다 지켜낸 약속이 훨씬 더 적었을 뿐 아니라 소련 자체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불타버렸다.

    냉전의 종말보다 우주시대의 정치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크게 변화시킨 것은 없다. 1980년대, 우주의 ‘고지’를 점령하려고 치열한 경쟁 속에 뛰어든 미국을 염두에 둔 채 ‘별들의 전쟁’(Star Wars)에 대해 찬반을 표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했다. 소련 제국이 사라진 오늘날, 우주시대는 냉전 그 자체와 거의 겹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시대의 서막은 나치의 V-2와 그 설계자들을 손에 넣으려는 미국과 소련의 초기 경쟁 속에서 열렸다. 두 진영이 대륙 간 탄도미사일을 위한 경쟁을 펼쳤던 1950년대에 가속화되다가 스푸트니크 1호와 함께 솟아올랐고, 달 경쟁에서 최고조에 달한 후 데탕트와 함께 기울었고, 소련의 죽음과 운명을 같이 했다. (이 책의 초판은 1985년에 출판되었는데, 그 후에 새롭거나 더 완벽하게 비밀해제된 문서들을 통해 미국이 최초의 위성 발사에서 소련에 뒤처진 주요 원인이 미래의 첩보위성 시대를 위한 계획 때문이었다는 다소 도발적인 내 가정은 비교적 분명하게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우주경쟁을 부추겼던 냉전의 정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하나는 NASA 그 자체이다. NASA는 비밀 군사 우주프로그램을 위장하고, 미국 프로그램에 민간적 및 과학적 후광을 제공하고, 소련과 위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NASA는 10년 동안 이런 기능을 꽤나 잘 수행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기능이 이제는 부적절해졌는데, 이는 NASA를 존속시켜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게 하고 있다. 아마도 일부가 제안하고 있듯, 우주과학은 미국과학재단(NSF)으로 넘기고, 로켓 개발은 군사 및 민간 부문으로 파급효과를 확산시킬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우주 사업은 우주왕복선의 경우조차 이미 계약이 파기된 상태다.)

    또 다른 냉전의 유산은 우주프로그램을 인공적으로 군사와 민간 영역으로 나눈 것이다. 정치적으로 약삭빨랐을지는 몰라도, 그 판단은 사업의 중복, 관료적 경쟁, 정보공유의 실패, 부풀려진 지출 등을 초래했다. 골드워터(Barry Goldwater)와 같은 일부 비판자는 민간 우주사업 전체를 속임수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공군에 넘겨주기를 바랐다. 반대로 사회학자 에치오니(Amitai Etzioni)와 같은 다른 비판자들은 아폴로를 ‘달-뻘짓’(moon- doggle)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우주를 ‘군사화한’ 프로그램에 대해 훨씬 더 엄격하게 비판했다. 또 다른 비판자들도 군사적 사업은 중단하기를 바라면서도 NASA의 과학적ㆍ탐사적 사업에는 애정을 표했다. 더욱이, NASA와 군부는 모두 인간의 우주비행(극적이지만 비싼)을 강조할 것이냐 아니면 로봇 탐사와 우주개발(평범하지만 효율적인)을 강조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다년간 논쟁을 벌여오고 있었다. 탈(脫)냉전의 지금, 우리는 인간 우주비행이 그렇게 극적인 것인지 의심을 품게 되었다. 실제로, 우주기관이 궤도 임무를 ‘일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을 거두는 것은 뭔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를 제외하곤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반면, NASA가 뽐낼 수 있는 최근 몇 년 동안에 이루어진 몇 차례의 흥미진진한 승리는 로봇 탐사체와 천문학적 궤도비행체에서 나왔다. 결국, 냉전의 군비경쟁을 비난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미국의 궤도 군사시스템이 걸프전쟁에서 훌륭한 임무를 수행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 군사시스템이 없었다면 사막폭풍 작전을 실행할 수 있었을지, 그런 시스템이 없었다면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주시대 40년에 걸쳐, 한 가지 사실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성취된 약속이 그렇게 적었던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1940년대 독일 기술에 여전히 머문 채 그 개량된 판본을 가지고 궤도 속에서 사람과 사물을 절단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화학 로켓은 미래를 여는 열쇠가 아닐뿐더러 NASA와 그 동맹세력은 혁명적 발사기술의 추구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소수의 거대한 거인이 추진한 우주산업의 합병은 이 책이 출판된 이후에야 비로소 가속화되었다. 마지막 남은 것은 록히드/마틴/그루만(Lockheed/Martin/Grumman)과 보잉/맥도널/더글라스(Boeing/McDonnell/Douglas)의 합병기업이었다. 따라서 우주기술은 정부의 소수 구매독점(NASA와 공군)과 계약을 맺는 산업계 소수독점의 손으로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중 누구도 자신들의 기존 기술을 진부한 것으로 만드는 데 선뜻 나설 이유가 없었다.

    우주시대를 재개하는 방법은 우주비행을 참으로 값싸고, 안전하며, 일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새로운 원리를 발견해내는 것이다. 현재의 환경 속에서, 그런 획기적 돌파구는 NASA나 록웰(Rockwell)의 실험실에서 정치적 제약을 받으며 일하는 공학자들보다는 로스앤젤레스의 차고에서 일하는 24살의 몽상가에게서 마련될 가능성이 훨씬 커 보인다. 또 다른 가능성은 스푸트니크처럼 국가안보가 커다란 위협에 처한 다음 군부가 획기적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달성 여부와 무관하게, 제2의 우주 ‘허세’의 시대를 위한 정치적 의지와 대중적 지원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낡은 로켓의 교체가 요구된다.

    역사적 유비가 핵심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1776년부터 1870년경까지, 유럽의 대제국들은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식민지 정복에 나서기를 꺼렸는데, 비용 대비 이익이 따르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요한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동인도회사라는 민간기업이 정복에 나선 영국의 인도였다. 19세기 들어 갑자기 거의 모든 강대국은 해외 정복에 뛰어들어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를 분할했다. 역사가들은 줄곧 이 놀라운 현상의 동기를 제국주의의 귀환으로 설명해왔다. 그러나 헤드릭(Daniel Headrick)은 [제국의 도구](The Tools of Empire, 1981)에서 동기가 아니라 수단에 주목했다. 그는 1870년경 산업국가들이 어떻게 전신, 증기선, 기관총, 말라리아의 면역제인 키니네 등과 같은 기술을 발전시켰는가를 살펴봤다. 이런 기술들은 매우 적은 인력과 자금의 지출로 열대 국가들을 차지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30년 전, 유럽의 대중은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식민주의에 참여하지 않을 많은 이유를 생각해냈다. 그러나 일단 ‘값싸게 제국이’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자, 동일한 대중은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제국주의가 화려한 사상인 수많은 이유를 생각해냈다. 우주비행을 위한 값싼 도구들이 벼려졌을 때만 미국인들도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일을 중단할 것이다. “왜 우주를 탐험하는가? 얼마나 큰 비용이 드는가? 여기 지구상에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 않은가?” 대신 우리는 묻게 될 것이다. “왜 안 되지?”

    1986년, 퓰리처상 역사 부문의 수상자로 연단에 오를 때, 컬럼비아 대학교 총장이 속삭였다. “멋진 타이밍이에요.” 챌린저호의 비극이 단지 몇 달 전에 일어났다. 물론, 나는 내 책의 절대적 우수성 외의 무엇인가가 선택에 기여했다는 식의 말투에 화가 났다! 설령 그렇다 해도, 나는 익명의 퓰리처상 선정위원회 위원이 이 책을 선정해준 것에 깊이 감사한다. 캘리포니아 대학교(버클리)의 허(Richard Herr)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는 내 경력의 위기의 순간이었던 1978년, 나에게 이 주제를 우아하게 제안해주었다. 또한, 듀크 대학교의 롤랜드(Alex Roland)와 스미소니언 미국우주항공박물관의 뉴펠드(Michael Neufeld)에게도 감사드린다. 뉴펠드는 이 책의 내구적 가치를 반복적으로 검토해주었다. 브루거(Bob Bruger)와 존스홉킨스 대학교 출판사에도 이번에 재출간해준 점을 감사드린다. 이 책이 지닌 모든 장점은 앞서 언급한 분들의 ‘멋진 타이밍’에 힘입은 바 크다. 그분들께 영원히 빚을 지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 브린 모어(Bryn Mawr)
    1997년 3월
    ('존스홉킨스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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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터 맥두걸(Walter A. McDougall)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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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역사학 교수이자 앨로이-앤신(Alloy-Ansin) 국제관계학 교수이다. 애머스트 대학(Amherst College)을 졸업했으며, 베트남 참전용사이기도 하다. 1974년 시카고 대학교(the University of Chicago)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국, 유럽, 아시아/태평양 외교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많은 책의 저자이다. 가장 최근에 발간한 책은 Freedom Just Around the Corner: A New American History, 1585~1828(2004)이다. 또 다른 책으로는 Promised Land, Crusader State: The American Encounter With the World Since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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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과학기술학협동과정에서 과학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이 있고, 옮긴 책으로 《H2O : 지구를 색칠하는 투명한 액체》, 《하늘과 땅 : 우주시대의 정치사》, 《과학적 실천과 일상적 행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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