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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원제 : Ham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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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햄릿형이냐 돈키호테형이냐?!

    햄릿과 돈키호테

    여러분.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제1판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제1부는 17세기의 같은 초두, 더구나 같은 1년 안에 나타난 것이다.
    이 우연은 나에게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위 두 작품의 근접은 나로 하여금 온 사색을 기울이게 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나와 함께 잠시 이 사색에 종사하시기를 바라고 싶다. "시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그 영토에 들어가라."고 괴테는 말했다. 그러나 산문가는 그와 같은 요구를 할 모든 권리를 빼앗겼다. 그렇지만 그도 역시 그 독자―혹은 청중을 향하여 그의 영토, 그의 탐색에 동행을 구할 수는 있다.
    나는 관찰중 어느 약간은 흔해빠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혹시 여러분에게 의외라는 생각을 품게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야말로 그 창조주의 천재(天才)가 불사(不死)의 생명을 불어넣은 위대한 문학적 제작의 특수한 우월함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의견은 일반적으로 인생에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한히 다양할 수도 있는 동시에, 또 마찬가지로 바른 것이다. ‘햄릿’에 관하여 종래 얼마나 많이 주석(註釋)이 씌어졌을까? 또 앞으로도 얼마만큼이나 씌어질 것인가! 이 전연 확인할 수 없는 성격은 얼마나 잡다한 결론을 가져올 것인가? 다만, ‘돈키호테’는 그 문제의 본질에 의해서나 또 이야기의 진지 웅대하고 명료하기가 남쪽의 하늘에 빛나는 태양과 같은 것에서 주해(註解)를 기대하는 바가 보다 드물다. 오직 유감스럽게도 우리 러시아 사람은 ‘돈키호테’의 좋은 번역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대다수는 ‘돈키호테’에 대하여 매우 모호한 관념을 품고 있다. ‘돈키호테’라는 말에서 우리는 종종 한낱 익살스러운 느낌을 일으킨다. ‘돈키호테식’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멍청하다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돈키호테식 가운데서 오직 익살스러운 일면의 진취(眞趣)를 포착하는 이외에, 우리는 또 자기 희생이라는 고급한 원리를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돈키호테’의 좋은 번역은 참다운 사회 봉사일 것이며, 또 전사회의 감사는 이 유일의 창작을 그 온갖 아름다움을 가지고 변역하여 줄 문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야기의 본 줄기로 되돌아가기로 하자.
    나는 ‘돈키호테’와 ‘햄릿’의 동시 발표가 의미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 두 개의 전형(典型)에 있어서, 두 개의 근본적으로 상반된 특이성의 화신(化身)을 보는 것이다. 즉, 그것은 특이성이 그 위에서 회전하는 추축(樞軸)의 양극이다. 사람은 모두 다소라도 이 전형의 어느 것엔가에 속하며, 우리의 거의 모두는 돈키호테나, 아니면 햄릿과 연계(連繫)되는 것이라고 나에게는 생각된다. 우리의 시대에 있어서 햄릿은 돈키호테보다도 아주 다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러나, 돈키호테도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면, 어디 한번 설명을 시도하여 보자.
    모든 사람은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자기의 주의, 자기의 이상, 바꿔말하면, 그들이 진(眞), 선(善), 미(美)라고 생각하는 것에 의해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은 역사적으로 집성된 결정적 형식에 있어서, 일찍이 완전히 준비된 자기의 이상(理想)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은 이 이상에 비추어 그 생활을 영위하고, 때로는 감정상, 혹은 또 우연히, 이것과 배치(背馳)되는 일은 있지만, 결코 그것에 대하여 비판을 하거나 혹은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없다. 이와 반대로 다른 사람은 이상을 독자적인 사색의 해부에 붙이는 것이다. 어쨌든 모든 인간에 있어서, 그들이 존재의 목적, 이 이상, 이 근본은 그들의 외부엔가 혹은 그들 자신의 내부엔가의 어느 것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던바, 그것은 대단한 오류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달리 말하면 우리 각자에 있어서는 제각기 ‘나[我]’가 최초의 위치에 정지(停止)하는 것도 있는가 하면, 혹은 스스로 인정하기를 보다 높다고 하는, 얼마쯤 다른 위치에 오르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러한 분명한 구별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은 없다. 사실, 하나의 인간에 있어서, 이 두 가지는 교대하며, 어느 정도까지는 뒤섞이기까지 하지만, 나는 인간의 성질에 변화와 모순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이 자기의 이상에 대하는, 두 개의 다른 관계를 보이고 싶어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또, 무엇인가의 형태에 있어서, 우리가 해석하는 바에 따라 이 두 개의 다른 관계를 나에 의해서 선택한 두 개의 전형에 체현(體現)시킬 것을 힘쓰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돈키호테’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돈키호테’는 무엇을 나타내는가? 우리로 하여금 조급하게 그를 슬쩍 보게 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수박 겉핥기에 그치는 데 불과할 것이다. ‘돈키호테’에 있어서, 단순히 ‘서글픈 표정을 한 기사(騎士)’(돈키호테를 가리킴)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낡은 기사(騎士) 이야기를 비웃을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꼭두각시이다. 이 인물의 진가(眞價)는 그 불멸의 작자의 특이한 수완에 의해 증가된 것은 분명하다. 또 제2부의 돈키호테는 공작(公爵) 및 공작 부인에게서 사랑받는 상대이며 어제의 방패잡이, 오늘의 지사(산초 판사)의 현명한 고문역(顧問役)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아는 바이다. 이미 제1부, 특히 그 처음에 나오는, 터무니없이 큰 타격을 입는 저 기묘한, 우스꽝스러운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항의 진상에 투철하도록 노력하자. 되풀이해서 말한다, ‘돈키호테’는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 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신앙(信仰)을 나타내고 있다.―혹 영원부동(永遠不動)한 것에 있어서의 신앙,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리, 각 사람의 외부에 발견되어, 더구나 용이하게 주어지는 일 없이, 봉사와 희생을 요구하는 바의, 진리의 신앙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궁핍도 참고 생명조차도 버릴 각오까지 하고 있는 이상(理想)을 향하여, 있는 열성을 다 기울인다. 그 자신의 생명 그 자체를 그는 이상의 실현, 진리의 확립, 지상(地上)에 있어서의 공정(公正)에 대한 수단으로서 사용될 수 있는 만큼만 존중하고 있다. 우리는 듣는다, 이 이상(理想)은 기사(騎士) 이야기의 환상적 세계에서 얻은, 그의 공상(空想)에 붙잡혀올려진 것이라고. 동감이다. 그리고 거기에야말로 돈키호테의 익살스러운 일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상 그 자체는 그것이 온갖 무구(無垢)의 순결(純潔)인 채로 남겨진다.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자기의 일을 염려하는 것을 돈키호테는 수치로 생각했다. 그는 모두 자기의 밖에서 (만일 이런 것을 말할 수 있다면) 타인을 위해서, 자기의 형제를 위해서, 사악(邪惡)의 근절을 위해서, 인류에 적대하는 힘―마술사나 거인 등―바꿔 말하면, 박해자와 쟁투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이기주의(에고이즘)의 흔적조차도 없다. 그는 자기에 대하여 배려하지 않는다. 그는 모두 모두 이것이 자기 희생―이 말에 주의하라!―이다. 그는 강력하게,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일 없이 믿고 또 믿는다. 그러므로 그는 두려워하는 일 없이 견인불발(堅忍不拔)하여, 가장 조악(粗?)한 음식, 가장 빈약한 복장으로 만족한다. 그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도량이 아주 넓고 용감하다. 그의 겸허는 그의 자유를 압박하지 않는다. 허영과는 인연이 멀어, 그는 자기를, 자기의 본무(本務)를, 아니, 자기의 체력조차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의 의지는 어지럽힐 수 없는 의지이다. 동일한 목적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은 그의 사상에 어떤 단일한 형태를 부여하여, 그의 지능(智能)을 일면적(一面的)이 되게 한다. 그는 조금을 안다. 그에게는 많은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는 자기의 일이 무엇인지, 그는 왜 세상에 있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주요한 지식이다. 돈키호테는 어떤 경우에는 전연 발광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 까닭은 조금도 의심 없는 존재가 그의 안계(眼界)에서 소실(消失)하고 그의 열정의 불에 초처럼 녹아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참으로 목상(木像) 속에서 살아 있는 악마를 보고, 양떼 속에서 기사(騎士)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또 어떤 때에는 바보로도 보인다. 그 까닭은 쉽사리 동정하고 또 쉽사리 위자(慰藉)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여러 해의 성상(星霜)을 거쳐 온 거목(巨木)처럼 그 뿌리를 깊이 땅 속에 내리고 자기의 확신을 변하지 않고 한 사물로부터 다른 것으로 전행(轉行)하는 일이 없다. 그의 윤리 체계의 장점은 (이 미치광이와 같은 별난 기사는 세계 최대의 윤리적 실재이다.) 그가 끊임없이 빠지는 위치의 익살스럽고도 야비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판단, 사령(辭令), 용자(容姿)에 특수한 위력과 위대함을 더하는 것이다.
    그러면 햄릿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하략]
    ―1860년 1월 10일 곤궁 문학자 및 박학 부조(博學扶助)를 위해 행한 강연

    [‘햄릿’의 이모저모]
    ‘햄릿(Hamlet)’은 셰익스피어가 지은 비극. 5막으로 이루어졌는데, 1600년부터 1602년경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식 제목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비극(The Tragedy of Hamlet, Prince of Denmark)’. 4000행이 넘으며, 셰익스피어의 희곡 가운데 가장 길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하나.

    [영 화]
    1948년판 : 로렌스 올리비에가 감독하고, 자신이 햄릿을 연기했다. 흑백영화로 중후한 분위기.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된다. 출연진은 진 시몬즈, 바실 시드니, 에일린 헐리, 피터 쿠싱, 크리스토퍼 리 등, 음악은 윌리엄 월튼.
    1964년판 : 그레고리 코진체프 감독의 러시아 영화로,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원특별상을 수상했다. 음악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990년판 : 프란코 제피렐리 감독. 햄릿 연기는 멜 깁슨. 그 밖에 출연진은 헬레나 본햄 카터, 글렌 크로즈, 이안 홀름, 피트 포슬스웨이트 등이다.
    1996년판 :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하고, 자신이 햄릿을 연기했다. 무대는 19세기의 덴마크 왕국, 극중에 증기기관차가 나오지만, 대사를 빠짐없이 4시간에 걸쳐 셰익스피어의 세계를 그려 냈다. 출연은 케이트 윈슬렛 등.
    2000년판 : 마이클 알메레이다 감독 작품. 무대를 현대의 뉴욕으로 옮기고, 덴마크 왕국도 멀티미디어 기업으로 바꾸어 놓았으나 대사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약간 뒤죽박죽의 인상을 준다. 햄릿은 이산 호크가 연기했다.
    2006년판 ‘여제(女帝)’ : 펑샤오강(馮小剛) 감독의 홍콩?중국 합작 영화. 창쯔이 주연, 무대를 중국 왕조시대로, 주인공을 거트루드로 비꾸어 놓았다.

    [클래식 음악]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오페라 ‘햄릿’
    앙부르와즈 도마 : 오페라 ‘햄릿’(1868년)
    프란쯔 리스트:교향시 ‘햄릿’
    차이코프스키 : 환상서곡 ‘햄릿’, 극에 딸린 음악 ‘햄릿’
    프로코피에프:극에 딸린 음악 ‘햄릿’
    쇼스타코비치:극에 딸린 음악 ‘햄릿’
    알프레드 리드:‘햄릿’을 위한 음악

    [일러두기]
    ① 이 책은 셰익스피어 작, 설정식 역, 백양당 발행(1949) ‘하므렡’을 저본으로 삼았다.
    ② 표기는 현용 ‘한글맞춤법’에 준하였다. 외래어 표기는 현용 ‘외래어 표기법’에 따랐다.
    ③ ‘편자주’는 ( ) 안에 '주'로 표시하여 달았다. '주'표시가 없는 ( ) 안의 주는 원문(번역문)에 있는 주이다. '표'는 표준어이다.
    ④ 삽화는 1948년 Two Cities Films(영국) 제작,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 명편 영화 ‘햄릿(Hamlet)’의 여러 장면, 기타를 내용에 알맞게 수록하여 독자들의 감상에 이바지하도록 하였다.

    목차

    서 설정식

    제1막
    제1장 엘시노어. 궁전 앞 고대.
    제2장 궁전 내의 광실.
    제3장 폴로니어스의 집. 그 일실.
    제4장 방벽의 위.
    제5장 방벽의 상, 다른 장소.

    제2막
    제1장 폴로니어스의 집. 그 일실.
    제2장 성내의 일실.

    제3막
    제1장 성내의 일실.
    제2장 성내의 대광간.
    제3장 성내의 일실.
    제4장 거트루드 왕비의 방.

    제4막
    제1장 거트루드 왕비의 방.
    제2장 성내의 일실.
    제3장 성내의, 다른 일실.
    제4장 거트루드 왕비의 방.
    제5장 성내의 일실.
    제6장 성내의, 다른 일실.
    제7장 성내의, 다른 일실.

    제5막
    제1장 묘지.
    제2장 성내의 대광간.

    ‘햄릿’ 해설 : 설정식
    햄릿과 돈키호테 : 투르게네프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작품
    로렌스 올리비에의 생애와 영화

    본문중에서

    ‘햄릿’ 번역에 손을 댄 지 1년이 되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여러 달 쉬었고, 또 한꺼번에 계속하여 일을 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역시 번역 자체가 내게는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늦어진 것이다.
    13년 전 마운트 유니언 대학, 셰익스피어 강독에서 ‘햄릿’을 처음 읽었는데 그때에는 시험을 치러 넘기는 일에 쫓겨서 그랬던지, 여유 있이 음미를 할 겨를이 없었다가, 어느 해 하기 휴가에 산중에서 다시 읽고 문학이란 과연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러므로 나 개인으로 볼 때 ‘햄릿’은 문학수업에 있어서 유달리 의미 깊은 작품이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셰익스피어는 몇 권 되지 않는 내 서가에서, 사전류 다음에 가장 내 손이 자주 가는 책이 되었다.
    로버트 브라우닝이 말하기를 작가, 시인을 지망하는 사람은 "셰익스피어 되기를 노력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운명에 맡기라."고 하였지만, 나는 내 자신의 문학을 이룰 수 없을진대, 셰익스피어 번역이나마 하고 싶었던 것이 외유(外遊) 4년간 늘 하던 생각이었다.
    다행히 해방 후 기회가 돌아와 번역을 시작하여 보았다. 그러나 생각만이 간절한 것이지 마음대로 수월하게 되지 않는 일이었다.
    우선 ‘햄릿’을 번역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나의 우리말 어휘 부족이었다. 사뭇 호미 하나를 들고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옮겨다 심는 것 같은 고생이었다. 붓을 든 후에 처음 겪은 노릇이다.
    이번 번역은 직역이다. 내 자신 공부를 위해서나 후학을 위해서나 직역을 하여 놓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그러나 무대 대본이 되어야 할 것을 잊지 않았으며 어운 어조(語韻語調)를 될 수 있는 대로 살려 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한자를 부득이 혼용하면서도 관중이 들어서 알 수 있는 말로 골라 썼다.
    다만, ‘말 맞춤’이나 가사(歌辭) 같은 데서 어찌할 수 없이 의역(意譯) 내지 간접역(間接譯)을 한 데가 몇 군데 있다. 일테면 제2막 제2장에서 햄릿이 폴로니어스에게, 오필리어더러
    "머리로 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네 딸이 배로 배는 것은 좋지 않아."
    하는 거라든지, 제3막 제2장에서, 햄릿이 폴로니어스에게 대학 시절에 연극 출연을 했다니, 무슨 노릇을 맡아 하였느냐고 묻는 대목에 가서 폴로니어스가,
    "줄리어스 시저를 했습니다. 의사당에서 암살을 당했지요. 브루투스가 저를 죽였습니다."
    한 데 대하여, 햄릿이,
    "뭐? 사당(祠堂)에서 사람을 죽이다니 그것 참 듣기만 해도 부르르 떨리는 일이구나."
    하여 놓은 따위다.
    이렇게 내가 자의(恣意)로 의역을 하여 놓은 데는 밑줄을 그어(방점을 찍어) 놓았다. 그리고 독자의 편의를 위하여 원본에 없는 stage direction(지문)을 몇 군데 집어넣었고, 전후 맥락이 무슨 뜻인지 모를 데는 주해와 중복이 되는 줄 알면서도 간단한 주(註)를 몇 개 달아 놓았다.
    텍스트는 W. J. 크레이그(Craig)의 ‘셰익스피어 전집(The Complete Works of Shakespear)’을 썼고 주해(별책Hamlet, 설정식, 백양당, 1949)는 역시 크레이그의 ‘셰익스피어 전집 해설(The Complete Works of Shakespeare’s Glossary)’과 A. W. 베리티(Verity)의 ‘학생을 위한 셰익스피어 : 햄릿(The Student’s Shakespeare : Hamlet)’, 에드워드 다우든(Edward Dowden)의 ‘아든 셰익스피어 : 햄릿의 비극(The Arden Shakespeare : The Tragedy of Hamlet)’, 아서 E. 베이커(Arthur E. Baker)의 ‘셰익스피어 사전 : 파트 5 햄릿(A Shakespeare Dictionary, Part V. Hamlet)’, 번역에는 쓰즈키 도사쿠(都築東作)의 ‘집주(集註) 햄릿’, 오카쿠라 요시사부로(岡倉由三郞)와 이치카와 산키(市河三喜)의 연구사(硏究社) 영문학총서 ‘햄릿’ 등과 쓰보우치 쇼요(坪內逍遙)의 ‘햄릿’, 요코야마 유사쿠(橫山有策)의 ‘사옹걸작집(沙翁傑作集)’, 혼다 아키라(本多顯彰)의 ‘햄릿’ 등을 참고하였다.
    주해서는 주로 어학 공부에 도움이 될까 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므로 번역 에서는 그것을 다시 말글로 풀어 놓은 데가 많다.
    원고를 읽어 보매 셰익스피어라는 저 커다란 호랑이를 그야말로 사뭇 고양이로 만들어 놓은 감이 불무(不無)하다. 내 재간이 이것뿐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일후(日後)에 다른 이의 훌륭한 번역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아울러 선배 동학들의 준열(峻烈)한 비판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역자 설 정 식
    (/ '서(序)' 중에서)

    1
    아서 퀼러쿠치 경(Sir Arthur Quiller-Couch1863~1944, 영국 평론가, 소설가)은 ‘셰익스피어의 창작방법’에서 "‘햄릿’에 관한 문헌이 어찌나 많이 쏟아져나오는지 그 속에 파묻혀 버리는 ‘햄릿’ 자체를 찾아보기가 힘이 든다." 하였고, 윌리엄 해즐릿(William Hazlitt1778~1830, 영국 비평가, 수필가)은 그의 ‘햄릿론’에서 "우리들은 이 비극에 너무도 익숙하여져 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비판하기, 사뭇 제 얼굴을 비평하기처럼 힘이 든다."고 말하였다
    ‘셰익스피어 산업’이란 말이 나오고, 현재 영국의 신문, 잡지, 출판물 등에 평균 4,5일에 한 번씩 ‘햄릿’이 거들리지 않는 날이 없다는 정도이거니와 저 거창한 극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이 논의되고 읽히고 또 상연이 되는 것이 ‘햄릿’이다.
    헨리 매켄지(Henry Mackenzie1745~1831, 스코틀랜드 출신 소설가)가 1771년 그의 저서 ‘감각의 남자(The Man of Feeling)에서 ‘햄릿’을 극구 칭찬한 이래 슐레겔(Schlegel1767~1845, 독일 시인, 비평가.), 콜리지(Coleridge1772~1834, 영국 시인, 비평가)를 비롯하여 실로 무수한 학자, 비평가가 저마다 ‘햄릿’에 대하여 한마디씩 하는 것을 거의 의무와 예의로 알다시피 하였고, 개릭(Garrick), 켐블(Kemble), 킨(Kean), 머크리디(Macready), 어빙(Irving), 트리(Tree), 포브스 로버트슨(Forbes Robertson), 에드윈 부스(Edwin Booth)에서부터 심지어 현재 활약하고 있는 모리스 에번스(Morris Evans), 존 길구드(John Gielgud)나 레슬리 하워드(Leslie Howard)에 이르기까지 유명하다고 하는 배우는 모두 ‘햄릿’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을 최상의 영광으로 생각하여 왔다.
    콜리지가 ‘햄릿’은 이때까지 영국문학이 배양되어 오는 모든 나라의 총아(寵兒)였다고 한 비평으로 시작하여, 퀼러쿠치 말마따나 비평 논란의 소리가 총포(銃砲)같이 사람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여 일종의 ‘도덕적 무감각(moral stupor)’을 느끼게 하니, 논란을 하다못해 나중에는 할 소리가 없어서 "햄릿은 남장을 한 여자이며 그는 호레이쇼와 사랑하는 사이다, 그 이유는 햄릿이 레어티스와 격검(格劍)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보고 있던 왕비가 ‘저애는 몸이 나서 숨이 가빠한다.’는 것이 있지 않느냐?"고 에드워드 빈팅(Edward P. Vinting)이란 사람이 1860년 ‘월간 대중과학(Popular Science Monthly)’ 5월호에 썼다 하며(퀼러쿠치 인용), ‘셰익스피어 사전과 새로운 주석(Shakespeare Cyclopedia and New Glossary)’ 저자 존 핀(John Phin)은 "세상에서 셰익스피어에 대하여 쓰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통독(通讀), 정독(精讀)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이야기를 한 끝에 이름이 상당히 알려진 어떤 문인이 모 문학잡지에다가 햄릿은 결국 그 어머니를 죽이고 자살하였다."라고 버젓하게 썼더라고 하였는데, 이런 것은 생각해 보건대, 너무도 많이 읽히므로 부지중(不知中) 자기도 읽은 것처럼 착각을 느낀 데서 한 소리가 아닐까 한다.
    하여튼 영국 사람들이 ‘햄릿’ 구경 가는 것은 마치 우리가 ‘춘향전’ 보러 가는 것처럼 그야말로 콜리지 말마따나, "믿지 않겠다는 생각을 자진해서 보류하는" 심사로 뻔히 극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도 재미가 있으니까 자꾸 가는 것이고, 나중에는 누가 이 도령을 어떻게 하는가 보려고 가듯하여 ‘햄릿’은 사뭇 시비(是非) 없이 의례히 보는 극이 되고 말았다.

    2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서른일곱 개 중에서 가장 분량이 긴 것으로―필자가 뉴욕에서 본 에번스의 ‘햄릿’은 네 시간 이상 걸린 것 같다―셰익스피어 생존 중에만 전후 5판이 나왔는데 가장 오랜 ‘햄릿’ 원본이란 것은 1823년에 발견된 것이니, 이것은 1603년에 인쇄된 것으로서, 이른바 제1사절판(First Quarto)이다. 그 표제에 ‘The Tragicall Historie of Hamlet Prince of Denmark by William Shakespeare. As it hath been diverse Times Acted by his Highness Servants in The cittie of London : As elsewhere at London Printed for N. L., and John Trundell 1603’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현재 두 권이 남아 있는데 셰익스피어 학자들의 소설(所說)에 의하면 이 제1사절판(F. Q.)은 셰익스피어가 전에 써 두었던 각본을, 다른 사람이 상연용으로 함부로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그 까닭은 1604년에 출판된 신판과 대조하여 보면 우선 행수가 후자가 4천 행인 데 비해 2,143행밖에 되지 않고, 내용이 비교가 되지 않으리만큼 손색(遜色)이 있어 셰익스피어로서는 일찍이 한 번도 범한 일이 없는 졸렬한 대사 수법을 함부로 쓴 데가 여러 군데 라는 것이다. 이 신판이 소위 제2사절판(Second Quarto)인데 그 표제에 ‘The Tragical Historie of Hamlet Prince of Denmark, By William Shakespeare, Newly imprinted and enlarged to almost as much againe as it was, according to the True and perfect copie. Printed by 1. R. for N. L., and are to be sold at his shope’이라고 한 것을 보더라도 셰익스피어가 제1사절판(F. Q.)을 보고 놀라서 이 제2사절판(S. Q.)이야말로 자기가 책임지고 세상에 내놓은 것이라고 한 것이 역력하다. 그뿐만 아니라 제1사절판은 등장인물도 틀린다. 제2사절판의 폴로니어스(Polonius)가 제1사절판에는 코람비스(Corambis)로, 레이날도(Reynaldo)는 몬타노(Montano)로 되어 있으며, 오즈릭(Osric)의 이름은 없고 그 대신 ‘허풍선이 신사(Braggart gentleman)’로만 되어 있다. 프란시스코(Francisco)도 그냥 ‘군인 1(First Soldier)’로 되어 있다.
    학자의 소설(所說)에 의하여 이때의 사정을 잠시 밝혀 보면 1602년 7월 26일 셰익스피어 극단과 친하던 제임스 로버츠(James Roberts)라는 사람이 런던 서적출판업자조합에 ‘로드 체임벌린(Lord Chamberlain)이 분연(扮演)한 덴마크 왕자 햄릿의 복수’라는 책을 출판하겠다고 등록한 기록이 있는데, 이것을 보고 돈벌이 욕심이 생긴 어떤 사람이 앞질러서 ‘햄릿’을 곧 출판한 것이 제1사절판이라는 것이다. 정설에 의하면 제1사절판은 대체로 셰익스피어 극단에 종사하던 어떤 자가 극단에서 전부터 무대용 극본으로 써 온 낡은 ‘햄릿’을, 셰익스피어가 쓴 새로운 각본이 나왔기 때문에 내어버린 것을 얻어다가 니컬 러스 링(Nicholas Ling)과 존 트런들(John Trundell)에게 가지고 가서 출판하여 주기를 종용하여 내놓은 것이 제1사절판인데, 게다가 이것을 그자가 제멋대로 고치고 첨삭해 놓은 것이다. 그러기에 1604년 신판 표제에 셰익스피어 자신이 "이 신판은 증보 수정된 진정하고 완전한 원본"이라고 다져 놓은 것이며, I. R.이라는 것을 보면 1602년에 ‘햄릿’을 정당하게 출판하려고 하던 제임스 로버츠의 손에 그제야 정본(正本)이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때의 인쇄술의 부족으로선지 혹은 기술자들의 태만으로선지 이 로버츠가 만들어 내놓은 제2사절판은 오식(誤植) 결자(缺字)가 많을뿐더러, 원고를 잘못 읽었는지 가다가는 아주 수행씩 빼어 버린 곳도 있는데다가, 셰익스피어 자신이 그 당시 정치적으로 가해를 받을까 염려하였던 까닭인지, 기휘(忌諱)에 저촉될 것 같은 대목 두 군데를 빼어 버렸으니, 하나는 제2막 제2장(Ⅱ. 244-277)에서 햄릿이 길든스턴과 로젠크랜츠에게 자기 나라를 감옥같이 생각한다는 데와 역시 같은 장면에서 소년극단을 비난하는 대목(Ⅱ. 358-379)이다. 소년극단은 당시 여왕의 두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판은 1623년에 나온 것인데 이절판(二折版)으로 소위 제1이절판(First Folio)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 실제 무대 상연용으로 사용한 것이니 제2사절판(S. Q.)은 너무 길어서 상설극장 상연으로는 시간 관계상 부적당하기 때문이었다. 제1이절판(F. F.)은 제2사절판(S. Q.)에서 제4막 제4장 햄릿의 가장 긴 독백을 위시하여 약 200행을 삭감(削減)하고, 약간의 수정을 군데군데 가하였으며 그 대신 제2사절판(S. Q.)에 생략하였던 전기(前記) 두 대목을 살려 놓은 것이다. 우리가 현재 읽는 ‘햄릿’은 제2사절판(S. Q.)과 제1이절판(F. F.)을 가지고 재편한 것인데 이것은 제2사절판(S. Q.)과 제1이절판(F. F.)보다 양이 많다.
    그러면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쓴 것이 제1사절판(F. Q.)이 나온 1603년이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 팽브로크 홀(Pembroke Hall)의 선임연구원(fellow)으로 있던 가브리엘 하비(Gabriel Harvey, 1545~1630)의 기록, 1601년 2월조에 셰익스피어의 ‘햄릿’ 운운(云云) 조(條)가 있는 동시에, 동 기록에서 에식스(Essex)가 살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에식스는 1601년에 죽었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 에식스는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받았던 세력가로 문학인의 수호자이던 옥스포드 백작(제17세 Earl of Oxford)이다. 그는 사형을 당한 에드워드 드 비어(Edward De Vere)이다. 그가 생존한 것으로 기록된 점으로 보아 이 기록 자체가 1601년 이전 것이며, 따라서 하비가 ‘햄릿’에 대하여 언급한 것도 1601년 이전 사실이 분명하고 보변, ‘햄릿’은 1601년 전에 써 놓은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확실히 어느 해에 쓴 것인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여러 학자의 소견에 의하면, 대략 1598년에서 1601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즉 셰익스피어가 34에서 37세 되던 해 사이에 쓴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햄릿’은 ‘오셀로(Othello)’같이 셰익스피어가 창작한 것이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니고 예전부터 있던 것을 재료로 하여 완성한 것이니 저간(這間)의 소식과 거기 따르는 원작자, 개작자(改作者) 등 문제는 대략 다음과 같다.

    3
    햄릿 이야기는 멀리 전사(前史) 이전 스칸디나비아 전설에 그 근원을 두고 있던 것인데, 바이킹들이 덴마크령 아일랜드를 침범하였을 때 가지고 온 것 같다고 한다. 그것은 아일랜드 고담(古譚)에 이와 같은 것이 많은 것을 보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던 ‘햄릿’이 문자로 기록된 것은 1185년 덴마크 학자 삭소 그라마티쿠스(Saxo Grammaticus)가 이 이야기를 그가 라틴어로 쓴 ‘덴마크사(Historia Danica)’에 넣은 것인데, 1514년에 간행되었다. 그 책 제3권과 제4권에 있는 암레트(Am1eth, ‘햄릿’의 덴마크어) 이야기는 대략 아래와 같다
    유틀란트(Jutland)에 호르웬딜(Horwendil)과 팽(Feng)이라는 형제가 살았다. 호르웬딜은 무인(武人)인데 그는 노르웨이 왕을 죽이고 덴마크 왕녀 그루다(Grutha)를 아내로 삼았다. 이것을 시기한 팽은 형을 죽이고 형수를 아내로 삼고 유틀란트의 왕위에 올랐다. 호르웬딜에게는 아들이 하나 았었으니 이름을 암레트라고 하였다. 암레트는 부친이 살해당하고 모친이 농락당한 것을 분하게 여겨 그 복수를 하려고 함에 우선 제 신변 안전을 위해 양광(佯狂)을 시작한다. 팽이 처음에는 암레트가 정말 미친 줄 알고 내버려두었으나 차차 거동이 수상한 것을 보고 제 조카가 정말 미쳤는가 양광인가 알아보기 위하 여 어떤 미녀를 놓아 탐색케 한다. 그러나 여자는 도리어 암레트를 사랑하 기 때문에 팽은 실패한다. 여기에 암레트의 친구 한 사람이 암레트를 위하 여 활동한다. 팽은 다시 자기 친구를 시켜서 그루다의 침실 뒤에 숨게 하여 암레트가 자기 어머니와 얘기하는 것을 엿듣게 한다. 이것을 안 암레트는 이 미행자를 죽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어머니를 준열하게 공격하면서 자기는 복수를 하여야 되겠다는 말을 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팽은 조카를 공공연하게는 죽일 수가 없으니까 시종 두 사람을 주어 암레트를 영국으로 보낸다. 보내면서 그는 목각(木刻) 편지를 영국왕에게 가지고 가게 하는데 이 편지에 암레트를 죽여 버리라고 쌌다. 영국 가는 도중에 암레트는 이 편지를 몰래 보고 그 내용을 달리 써 넣되, 이것을 가지고 가는 두 시종을 죽이고 암레트에게 왕녀를 주어 사위를 삼으라고 하였다.
    일은 제대로 되어 암레트는 1년 후에 덴마크로 돌아왔는데 때마침 팽은 암레트의 죽음을 축하하는 주연을 베풀고 있었다. 여기서 암레트는 미친 거렁뱅이같이 차리고 파수 보는 병정들을 속이고 들어가 왕거(王居)에 불을 지르고 팽을 죽인다. 이튿날 아침 불탄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두족(頭足)이 떨어진 팽을 보고 놀란다. 암레트는 인민들에게 긴 연설을 하고 유틀란트의 왕이된다.
    이것이 대체로 원전설인데 1570년 벨포레(Belleforest)라는 프랑스 사람이 프랑스어로 의역을 하여 그의 ‘비극 설화집(Histories Tragiques)’ 제5권에 넣었다. 벨포레는 원전절에 약간 자의(恣意)의 가감을 하여 놓았는데 특히 팽이 그 형을 살해하기 전부터 형수와 사랑하는 사이로 만들어 놓았다. 이것을 영역한 것이 1608년에 나왔다. 제목은 ‘햄릿의 역사(The Historie of Hamlet)’이니, 전후 8장으로서 연대가 말하는 것같이 셰익스피어가 이 영역본을 재료로 썼는지, 혹은 벨포레의 것을 토대로 하였는지는 이설(異說)이 구구하여 단정하기 어려우나, 하여칸 기왕에 있던 얘기를 가지고 그의 ‘햄릿’을 만든 것만은 확실한 일이다. 어떤 학자는 셰익스피어가 영역 ‘햄릿(Hamlet)’은 쓰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도 한다. 차라리 ‘햄릿의 역사’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호평인 데 자극이 되어서 추후(追後)하여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에 그러면 셰익스피어만이 역시 ‘햄릿’을 희곡다운 희곡으로 만들어 놓았는가? 문제는 다시 간단치 않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이름이 적힌 2종의 ‘햄릿’ 이외에 늦어도 1589년 이전에 또 한 개의 ‘햄릿’이 있던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토머스 내시(Thomas Nash 혹은 Nashe, 1567~160l)가 자신의 첫 문학집필로서 썼고 나중에 ‘부조리의 해부학(Anatomie of Absurdities, 1589)’이라고 다시 퇴고한 글을 당시 가브리엘 하비의 공격을 받고 있던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 1560~1592)을 변호하기 위하여 그의 저서 ‘메나폰(Menaphon, 1599년에 Green’s Arcadia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온 것)에 서문으로 넣어 준 것이 있는데, 여기서 내시는 ‘햄릿’이라는 작품을 비난한 대목이 있는 동시에 다른 글에서 이 ‘햄릿’의 작자는 ‘스페인의 비극(The Spanish Tragedy)’의 작자 토머스 키드(Thomas Kyd, 1558~1594, 영국의 극작가)의 원작이라고 한 데가 있는 데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키드는 상당한 극작가였고 또 그 당시 프랑스 희곡을 번역, 번안하여 상연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것만큼 키드가 벨포레 것을 개작하였었을 수도 있는 일이나 출판된 것이 없으니 증거를 잡기가 곤란한 노릇이다. 다만 제1사절판(F. Q.)과 1857년경 독일학자가 만든 ‘징벌당한 친족 살해(Der Bestrafte Brudermord, 형의 복수)’에서 키드의 솜씨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있고, 또 그의 유명한 희곡 ‘스페인의 비극’에 쓴 수법으로 미루어 그의 ‘햄릿’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햄릿’을 지었다는 키드는 어떤 사람인가?
    프레더릭 보애스(Frederick S. Boas)의 소설(所說)에 의하면 대개 다음과 같다.
    토머스 키드는 1558년경에 나서 1594년경에 죽은 사람으로 셰익스피어를 빼놓고 당시 극작가로는 제일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전성기에 있어서도 그의 작품은 아직도 지방 같은 데서는 꾸준한 환영을 받고 있었으며 그의 ‘스페인의 비극’은 네덜란드 등에서 번역되어 상연도 되었다. 별로 교육을 체계 있게 받은 사람 같지는 않으나 독학으로 상당한 문예 소양을 쌓았으며, 라틴 문학 특히 희곡 섭렵이 많았었고, 세네카를 사숙(私淑)하였던 것 같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비극’에서 ‘햄릿’의 작자가 키드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 동시에 또 한 가지 그럴듯한 삽화(揷話)가 있으니, 그것은 대략 1586년 경에 어느 영국 극단이 덴마크 왕실의 초청을 받아 엘시노어 궁전에 가서 상연하고 1589년 귀국한 사실이 있다는 것인데, 내시가 ‘햄릿’을 비난했다는 것이 그해이니까 만일 키드가 ‘햄릿’을 썼다면 이해 전후 일이며 그 극과 유서 깊은 엘시노어로 영국 극단이 갔다니까 혹 키드가 쓴 ‘햄릿’을 상연하였던지도 모른다. 또 상기한 바와 같이 제1사절판이나 ‘징벌당한 친족 살해’가 키드의 소작(所作)과 가장 긴밀한 작품들이라면, 이것을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비교하여 보면 역시 희곡 구성, 다루는 수법, 어휘, 어조, 특히 인물 성격 창조가 저 대거장(大巨匠)의 천재에 원불급(遠不及)한 것이다.
    셰익스피어란 사람 자신이 과연 실제 인물이냐 하는 문제까지 제기되어,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라는 둥, 제17세 옥스퍼드 백작이 진짜 셰익스피어라는 둥 하는 시비조차 있는데 ‘햄릿’의 정본이 키드의 것이냐 셰익스피어의 것이냐는 우리에게 그다지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다만 셰익스피어가 써놓은 ‘햄릿’을 충분히 감상, 비평하여 내 문학에 좋은 거름을 삼는 것이 셰익스피어 학도의 제일차적인 임무인 것이다. 역자 설정식
    (/ '’햄릿‘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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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564.04~1616.04
    출생지 영국 워릭셔
    출간도서 521종
    판매수 127,940권

    영국 최고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1564년 4월 26일 영국 중부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문법학교에 다니며 논리학, 수사학 등의 교육을 받았으나 가세가 기울면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1582년 8살 연상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하여 두 딸과 아들을 얻고 난 후 고향을 떠나 방랑생활을 하였다. 1580년대 말부터 런던에서 생활하며 배우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590년 무렵부터는 극작가의 길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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