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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영화 : 작가주의 전통과 국가 정체성의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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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전복의 정신을 물려준 스페인 영화의 대부 부뉴엘에서
    프랑코 시대의 용기 있는 반역자 사우라,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스페인 문화의 아이콘이 된 알모도바르,
    국가성을 초월하여 세계 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아메나바르까지

    '국가 정체성'이라는 키워드로
    스페인 작가주의 감독들의 작품을 분석한
    국내 최초의 스페인 영화 연구서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들의 영화를 분석한 국내 첫 스페인 영화 연구서 [스페인 영화]가 출간되었다. 스페인문학과 영화 및 영화이론을 전공한 서울대 임호준 교수는 스페인 영화를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로 '국가 정체성'과 '작가주의'를 설정하여 루이스 부뉴엘부터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까지 12명의 스페인 감독들의 영화세계를 살펴본다. 또한 그들의 작가주의적 의식이 어떻게 국가적 이슈, 문화 기표, 스페인의 예술 전통과 만나는지 고찰한다. 작가주의의 영화들이 스페인 내전, 프랑코 독재, 민주화의 시대 등을 거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스페인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서술해나가고 있는 이 책은 전문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스페인 영화 개론서일 뿐 아니라, 스페인의 역사와 정치, 문화에 대한 충실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부뉴엘에서 이어져온 스페인 영화의 작가주의 전통

    저자는 스페인 영화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작가주의'의 전통을 지목한다.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 시기에 문학 영역에서의 작가와 견주어 손색없는 천재적 예술가로서의 영화감독을 지칭하기 위해 차용된 '작가' 개념은 오늘날에는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는 혼란스럽고도 문제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작가감독'이라는 말은 적어도 1990년대까지만 해도 상당히 합의된 개념이었다. 루이스 부뉴엘, 후안 안토니오 바르뎀, 루이스 가르시아 베를랑가, 카를로스 사우라, 빅토르 에리세 감독 등은 별다른 이견 없이 작가감독으로 인정받아왔다. 저자는 스페인에서 작가감독을 비교적 선명하게 구분하는 것을 프랑코 독재와 관련지어 설명한다. 스페인 내셔널 시네마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프랑코 시대 이래로 스페인에서 대중영화와 예술영화는 영화의 정치성에 의해 명백하게 구분되었고, 따라서 정치적으로 비판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지성적인 작가감독으로 분류되었다. 그러한 전통 아래 민주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상업영화의 시대에 이르렀을 때에도 여전히 작가영화라고 할 만한 작품들이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스페인 감독들은 스스로를 지성적인 작가로 여기고 자신의 개인적인 비전을 영화에 투사하는 경향이 다른 국가의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하며, 또한 그러한 영화들이 상업적으로도 경쟁력을 갖는 독특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1부에서는 스페인 영화를 논할 때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스페인 내셔널 시네마의 대부 루이스 부뉴엘과 진정한 의미에서 스페인 작가주의 영화의 선구자라 할 베를랑가와 바르뎀의 영화를 통해 스페인에서 작가주의 영화의 전통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이들의 영화가 스페인의 국가 정체성을 어떻게 그려냈는지 살펴본다. 사회적으로 신성시되던 가치를 전복시키고 부르주아 관객들의 평온한 삶에 도발을 가한 20세기 세계 영화사의 문제적 감독인 부뉴엘은 스페인 내전 후 멕시코에 망명하여 대부분의 작품을 멕시코와 프랑스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에게 '스페인 감독'이라는 경계를 지우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부뉴엘의 영화는 타국에서 제작되었을 경우에도 서사적?공간적으로 스페인과 연결되어 있었고, 스페인의 문화?정치적 환경 아래 갖게 된 세계관과 표현 방법, 이미지가 영화들 속에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스페인 작가주의 영화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청소년 시절 내전을 겪었고, 1950~60년대 스페인 영화의 황금기에 국민감독으로 등극했던 후안 안토니오 바르뎀과 루이스 베를랑가의 영화이다. 프랑코 정권의 까다로운 검열을 뚫고 이들이 내놓은 걸작들은 스페인 특유의 국민-민중적 예술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2부에서는 내전과 프랑코 독재 시대의 트라우마를 형상화하고 전통적 스페인성을 비판한 카를로스 사우라와, 역시 역사적 트라우마를 영화적으로 재현한 단 두 편의 영화로 대가의 반열에 오른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를 분석하여 이들이 정치적 억압과 역사를 어떻게 영화 속에서 재현하는지 살펴본다.
    3부에서는 프랑코 사망 후의 정치적 상황과 '상실감' '환멸'의 정서를 담은 호세 루이스 가르시의 영화와 '새로운 스페인'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소개한다. 스페인 사회가 본격적인 다원주의 시대로 접어든 시점에서 등장한 알모도바르는 이전의 스페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을 가져온다.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스페인적인 것이 고안되고 소비되는 방식은 포스트모던 시대 대중문화에서 국가 정체성이 창안되고 소비되는 전형적인 양상을 잘 보여준다.
    4부에서는 민주화 시대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스페인성'을 성찰한 카를로스 사우라와 스페인 전통문화의 기표를 비판적으로 성찰함과 동시에 상품화하는 데 성공한 비가스 루나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5부에서는 영화의 초국화 양상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알모도바르의 세대가 직접적인 정치성에서 탈피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잠재의식은 독재 시대가 남긴 유산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하는 국가적인 문제에 머물러 있었다면, 새로운 작가감독들은 국가적인 문제를 사회적인 관심으로 대체한다. 이들은 해외 시장에서 스페인적인 것이라 여기는 문화 기표, 예술 전통에 집착하지 않는 대신, 실직 노동자, 영세민, 방황하는 청소년, 이주 노동자, 성매매 여성 문제 등 새롭게 부각된 스페인 사회의 이슈들을 스크린에 담아 사회적 논의의 장에 꺼내놓는다. 한편으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은 충분한 제작비를 바탕으로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할 만한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 국가성을 넘어선 새로운 작가주의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스페인의 새로운 작가주의 영화들이 스페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흥행에 성공하면서 스페인 영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환경이 스페인 영화의 작가주의 전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감독의 지성적, 미학적 자질을 수식하기 위해 쓰이던 작가주의 영화라는 말은 오늘날에는 주로 마케팅에 동원되어 하나의 브랜드로 소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상업영화들이 등장하면서 스페인 작가주의 영화도 이전보다 많은 제작비를 사용하며 상업적인 면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면서, '영화적 작가'의 정의가 모호해진 것도 사실이다. 면면히 이어져온 스페인 영화의 작가주의 전통이 다른 내셔널 시네마의 경우처럼 상업영화에 수렴되어버릴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서문- 스페인 영화의 작가주의와 국가 정체성

    제1부 스페인 작가주의 영화의 형성과 스페인적인 것의 재현

    제2부 정치적 억압과 저항의 정체성화

    제3부 민주화 시대의 도래와 새로운 감수성의 출현

    제4부 스페인적인 것의 재협상과 작가주의의 갈등

    제5부 세계화 시대의 스페인 영화와 새로운 작가주의

    에필로그
    참고문헌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결국 고야는 이렇게 날조되고 박제된 스페인적 이미지를 거부하고 당대의 현실과 고민을 담아냄으로써 스페인적 정체성의 새로운 개념을 열었다. 고야의 작품은 스페인의 후대 예술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훗날 스페인의 많은 영화감독이 고야의 이미지를 영화에 차용했으며, 고야의 작품은 스페인적 정체성의 원형原形으로 받아들여졌다. 스페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상이 고야의 이름을 딴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 pp.16~17)

    프랑코 시대 동안 스페인적인 것으로 적극적으로 홍보된 풍속적인 이미지 또한 반체제 작가들에게 신랄하게 비판받았다.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에 열을 올리던 프랑코 정권은 해외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고, 낭만주의적 스페인의 이미지를 스페인적인 것의 전형으로 세계에 홍보했다. 따라서 프랑코 시대의 TV 프로그램이나 상업영화에는 플라멩코, 세비야나, 투우 등 안달루시아의 풍속 이미지가 자주 등장했다. 스페인 신新영화 감독들은 이러한 날조된 이미지에 반감을 품었고, 오히려 이러한 문화적 아이콘과 정형성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 p.19)

    카를로스 사우라 등 젊은 영화인들의 권유로 스페인을 방문한 부뉴엘은 고국에서 새로운 창작 의지가 샘솟는 것을 느꼈고, 비록 예술 작품에 대한 프랑코 정권의 검열은 여전했지만 망명 생활을 접고 스페인에서 영화 작업을 할 결심을 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영화가 [비리디아나Viridiana](1961)이다. 이 영화는 그해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걸작이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신성모독의 혐의와 함께 즉각 상영 금지되었고, 칸 영화제에 이 작품을 보내기로 결정했던 영화국 국장이 해임되었다. 또한 바티칸에서는 궐석 재판이 열려 부뉴엘에게 1년형을 선고했다.
    (/ p.40)

    그러나 당시 스페인 감독 중에서 네오리얼리즘의 원리를 그대로 차용한 작품을 만든 감독은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 엄격한 검열로 인해 전형적인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만들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기인한다. 그리하여 진보적 성향의 감독들은 멜로드라마 등 기존의 장르 코드를 활용하여 영화를 만들되 네오리얼리즘의 요소를 가미하여 진보적 메시지를 코드 속에 숨기는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 물론 멜로드라마 특유의 '과잉'의 수사학 역시 진보적인 함의를 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pp.82~83)

    스페인성을 블랙 유머로 패러디한 것은 베를랑가와 바르뎀이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베를랑가가 연출한 [환영합니다, 마셜 씨!]에서 두드러진다. 이 영화에서 미국 사절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안달루시아와 동떨어진 카스티야 마을을 안달루시아 풍으로 바꾸는 것은 전형적인 에스파뇰라다espanolada?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과 화가들의 작업에서 명성을 얻고 그후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안달루시아 풍속?로서 외국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스페인의 민속성을 왜곡하는 행위를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다. 미국인에게 의존하여 근대화를 이루려는 스페인 사람들의 애처로운 열망이 오히려 스페인의 전근대적 이미지를 소환하는 방식으로 시도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 pp.100~101)

    1985년 베를랑가는 내전을 희화화한 [송아지]를 발표하며 그때까지의 스페인 영화의 흥행 기록을 경신한다. 이 영화는 내전의 최대 격전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전쟁을 치열한 전투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희화화함으로써 "영화 역사상 전쟁의 쓸모없음을 가장 잘 말해주는 영화"라는 평을 들었다. 영화는 내전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아라곤 전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국민파가 확성기를 통해 자신들이 점령한 마을의 수호성인의 축제에 공화파 병사들을 초청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상대적으로 굶주리고 있는 공화파를 자극하기 위해 확성기의 목소리는 축제의 식사 메뉴를 일일이 열거하고 축제의 하이라이트로 투우가 있을 것이라고 선전한다.
    (/ pp.102~103)

    이러한 부모 세대의 적막 속에서 어린 두 딸 아나와 이사벨은 밝고 명랑한 아이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활기찬 음악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크레파스 그림으로 시작한 이 영화에서 동네 아이들은 영화 프린트를 실은 차가 도착하자 "영화가 왔다"고 소리치며 차를 에워싼다. 이윽고 동네 마을회관에서 영화가 상영되는데,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영화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이들은 마을회관의 조악한 스크린에 이동 영사기로 상영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본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에 친근감을 보이던 영화 속의 아이처럼, 아나 역시 괴물에게 연민을 갖는다. 그러다 괴물이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결말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 p.140)

    알모도바르는 스페인 영화계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영화감독의 모델을 제공했다. 우선 그는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이미 '대중 종합 예술가'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단편영화 감독, 록 가수, 코믹 콩트 작가, 재담꾼으로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스페인 언더그라운드 문화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게다가 고졸의 학력으로 예술 창작을 스스로 독학했다는 점에서 이전 스페인 영화계의 고전적 작가 모델인 고뇌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영화감독과 확연히 달랐다. 예를 들어 10년에 한 편씩 영화를 만들며 은둔 생활을 하는 에리세와 달리 알모도바르는 거의 1년에 한 편씩 새 작품을 내놓았고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으며 늘 문화계의 중심에 있었다. 알모도바르의 모델은 앤디 워홀이었다. 워홀이 그랬던 것처럼 알모도바르 역시 자신을 스스로 문화적으로 브랜드화하며 시시콜콜한 언행이 모두 문화 상품이 되도록 했다.
    (/ pp.186~187)

    [디 아더스]는 제2차 세계대전 말미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여 영국 저지 섬의 한 저택에서 벌어지는 유령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영어권 배우들이 등장하여 영어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적어도 표면적으로 볼 때 스페인적인 것이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영국에서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유행했던 고딕소설의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그러나 이 작품에 대해 스페인 영화 전문가들은 스페인 신영화의 고전인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이나 사우라의 [까마귀 기르기]를 들며 주제 면에서 유사한 상상력을 지목했다.
    (/ p.360)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
    지은 책으로 『즐거운 식인 : 서구의 야만 신화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유쾌한 응수』, 『스페인 영화 : 작가주의 전통과 국가 정체성의 재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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