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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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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속도가 버리고 간 텁텁하고 맛깔진 우리 풍속과 정서를
    예리한 사려思慮와 해학에 실어 자분자분 거두어두는 손속의 미학…




    소설가 최일남의 열세 번째 소설집 『석류』가 출간되었다.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원로’라는 수식을 아예 불식시키는 최일남의 이번 소설집에는 2001년 이후의 발표작 7편과 1997년에 발표했던 <아침에 웃다>를 더한 8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이번 소설집은 “번개처럼 질주”하는 광속의 시대가 떨쳐버려 퇴화되고만 문화, 그렇지만 아직은 시효적절한 문화에 대한 발굴이라 할 만하다. 작가는 거시적이기보다는 미시적인, 국가의 역사 운운이 아닌 역사를 몸으로 살아낸 보통의 소시민들의 일상에 눈길을 주고 그들의 ‘삶의 질’을 측량해내고, 해낸 그 값을 미구의 잣대로 삼는다. 그 잣대는 예사롭지 않다. “웰빙” “신토불이” 등의 슬로건에 제압된 현실에 대한 예리하고 통렬한 비판이 수반되는 작업, 그러나 그 작업은 시종 근엄할 수가 없다. 최일남 특유의 해학이 물씬한 가락과 감칠맛 나는 어법에 힘입어 때로 강렬하게 다가오는 페이소스가 흥겹기조차 하다. 신구의 경계에 서서 무게중심을 잡는 노대가의 속 깊은 성찰은 그 자신의 문학적 성취 이전에 한국문학의 값진 수확이 될 것이다.



    <물구나무서는 입>은 노부부와 손녀, 맞벌이 주말부부 며느리와의 한때가 배경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정치 슬로건”이 있던 “옛날 한 옛날”이 지나 “못내 안타까운” 핵가족 시대, 세계화 열풍에 밀어닥친 영어와의 전쟁, 아파트 분양권 쟁탈전, 육아문제에 시달리는 도시 서민들의 일상이 단면적으로 묘사되고, 며느리의 물구나무서기와 할머니의 회상이 이어진다.

    <소주의 슬픔>은 친구를 하관하고 묘 앞에서 다른 한 친구와 죽음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며 술문화의 변천을 주고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동아전쟁 당시 줄서서 잔술을 사 마시던 풍경, 일제시대 마사무네(정종), 기린과 삿뽀로로 이어지는 삐루에 이르기까지 근대 한국의 술의 변천사를 일별할 수 있다. 그리고 끝 대목, 묘지 앞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던 친구가 넉 달 만에 “죽을 날을 기다리”면서 병상에 눕고, 주인공이 술 없이 빈손으로 문병 오자 “한잔 마셨다고 두 번 죽냐. 인정머리 없이 빈손으로” 왔다고 호통치는 대목과 “친구가 죽으면 쓸쓸하지만, 한편 즐겁기도 하다”는 “농반 진반의 해학”은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아침에 웃다>는 서민생활 풍속 중 가장 직접적이고 원색적인 ‘욕’에 대한 이야기. 인근에 욕쟁이 ‘할마이’로 명성을 굳힌 콩나물해장국집을 무대로 펼쳐지는 걸쭉한 욕설들, 그 욕설은 누구에게 해코지를 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입의 “배설”을 허락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작용이다. 하지만 욕쟁이 할마이의 욕설의 종말은 거리에서 안방에서 실제로 “오살 육시를 눈 하나 깜짝 않고 저질”러지는 현대에는 필연이 될 수밖에 없다고 자조하며 세태에 일침을 가한다.


    이 소설집 전편에서 소설가 최일남이 천착하고 있는 ‘과거’는 현대의 가속에 제동을 거는 ‘반문’인 동시에 현대인들에게 ‘여유’와 ‘숨통’을 터줄 수 있는 산소마스크 같은 테제들이다.

    목차

    작가의 말



    명필 한덕봉

    물구나무 서는 입

    멀리 가버렸네

    석류

    돈암동

    버선

    소주의 슬픔

    아침에 웃다



    해설 - 김윤식

    본문중에서

    “이것도 누군가가 지어낸 난센스의 하나겠지만, 어떤 신문기자가 시골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취재하다 말고 부지불식간에 뜨거운 감자를 만나셨군요 했단다. 하필 그런 자리에서 유식을 떨래서 그랬겠냐. 입에 붙은 말이 그냥 새나온 거야. 그랬더니 할머니가 뭐라고 대꾸한 줄 아니?”

    “몰라.”

    “감자는 뜨거울 때 먹어야 혀. 식으면 맛없어.”

    (/「멀리 가버렸네」중에서)




    한 팔로 마루 기둥을 감고 서산에 지는 빨간 햇덩이를 바라보며 흘린 말이 가령 그렇다. ‘엄마 나는 이런 시간이 가장 좋아’ 소리를 나직이 깔자 어머니는 금세 눈이 똥그래졌다. 이윽고 조르르 다가가 누이의 뒤통수에 알밤을 먹였다. ‘쥐방울만 한 것이 웬 청승이냐’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죽기 며칠 전, 어머니가 건넨 탕약 대접을 본체만체 ‘석류가 먹고 싶네’ 했을 때는 눈물부터 훔쳤다. ‘이 한겨울에 어디 가서’ 했을지언정 어머니는 그 걸음으로 당장 대문을 나섰다. 그날은 허탕을 쳐 빈손으로 돌아왔으나 다음 날은 어디를 어떻게 뒤졌는지 검붉게 말라비틀어진 석류 두 알을, 말라빠지기는 매한가지인 누이 손에 쥐어주었다. 숙진이는 고맙다고 힘없이 웃고, 어머니는 목이 메는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뿐이었다.

    (/「석류」중에서)



    “버선목처럼 뒤집어보일 수도 없어 답답하다는 말도 있더구만, 쉽기는 쉽네요.”

    “터진 입이라고…….”

    잠자코 구경이나 하면 될 걸, 그새를 못 참아 나불거린 누이를 어머니는 당장 비꼬았다.

    “버선도 이제 보니 이쁘네요. 오똑한 버선코가 참.”

    “언제는 밉디. 외씨버선 소리가 왜 나왔깐디. 조붓하고 갸름한 생김새를 어찌 양말에 댄다냐.”

    “근데 양말은 왜 양말이라고 부를까. 양버선이라 하지 않고. 양잿물, 양초는 머리에 모자를 얹듯이 다 갖다 붙임시롱.”

    (/「버선」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32.12.29~
    출생지 전북 전주
    출간도서 17종
    판매수 5,742권

    1932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하였고,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53년 '쑥 이야기'가 [문예]에, 그리고 1956년에는 '파양'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저서로는 소설집 [서울 사람들][타령][춘자의 사계][손꼽아 헤어보니][너무 큰 나무][홰치는 소리][누님의 겨울][히틀러나 진달래][그때 말이 있었네][아주 느린 시간][석류], 장편소설 [거룩한 응달][그리고 흔들리는 배][숨통][하얀 손][덧없어라, 그 들녘][만년필과 파피루스]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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