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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목걸이 :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

원제 : Chain Of A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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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미스터리의 집, 딜쿠샤’의 영화 같은 이야기

KBS 1TV 3 1절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나라’
KBS 1TV 8 15 특집 [다큐 공감] ‘희망의 궁전, 딜쿠샤’
tbs TV 영상기록 [서울, 시간을 품다] ‘딜쿠샤 편’

호박 구슬을 꿰듯 엮어간 삶의 목걸이

... 배우, 인도, 결혼, 한국, 딜쿠샤, 금강산, 시베리아 ...

이 책의 지은이 메리 린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 1889~1982)는 어린 시절 집안의 귀중품 중에서 따뜻한 빛깔을 지닌 호박 목걸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생일이나 평소에 비해 얌전히 지낸 날이면 어른들이 그 목걸이를 걸어볼 수 있게 허락하셨다고 한다. 호기심 많고 모험을 좋아하던 메리 테일러는 호박 목걸이와의 기이한 인연을 삶의 갈피마다 떠올린다.
그중 가장 극적인 사건은 한국에서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광산업을 하던 브루스(본명은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 Albert Wilder Taylor)와의 만남과 결혼이었다. 호박 목걸이를 소중히 간직하던 메리에게 브루스는 한국의 호박 갓끈을 선물한다. 결혼 후 메리는 미국인 남편과 친구 플로렌스를 통해 자신의 영국 집안과 다른 개척정신과 코스모폴리탄적 분위기를 경험한다. 안전하게 확립된 관습과 질서 속에서 살아온 자신과 다르게 그들은 강인함과 용기와 끈기, 창의적인 기발함을 갖고 있음을 함께 생활하며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 메리 또한 남편이 운영하는 광산촌에서 영웅적이고 기발하던 옛 여인들을 어설프게 흉내 내며 ‘개척자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메리는 시아버지와 남편이 선택한 나라 한국에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다. 백계 러시아인 친구들을 통해 강렬한 자부심과 지나치게 감상적인 면, 예민함과 비현실성 등 성장 환경에서 기인한 특징을 경험하고, 그들과 새로 파견된 소련 외교관들의 화해를 시도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목격하면서도 한편으로 일본이 제공한 효율과 사업 기회와 위생과 법과 질서를 빼버린 한국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인식에 그친다. 메리가 살다간 한국은 일제강점기의 한국이었던 것이다.
예술가적 상상력이 풍부한 메리는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인과 한국의 자연 등에 관해 다채로운 기록을 남겨놓았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보면서 ‘억겁의 시간 동안 사라져간 수많은 영령들이 말없는 어떤 신에게 구원을 간청하며 뻗어 올린 기도하는 손들’로 묘사하고, "간섭하지 말 것, 불가피한 일은 받아들일 것, 가능하면 질문하지 말 것, 최대한 견뎌보다가 더 이상 안 되면 깨끗이 포기할 것, 모른 척하고 넘어가야 할 일과 져주어야 할 때를 알 것, ‘슬쩍 빼돌리는 것’은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경비에 포함시킬 것, 체면 차리기는 아주 오래된 습관이니 인정해줄 것, 거짓말은 많은 경우 예의상 하는 말임을 이해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동양의 방식에 맞서려고 하지 말 것!"이라는 남편의 한국 생활에 관한 유머러스한 조언을 기록하기도 한다.
호기심 많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이방인 여성의 20세기 초 한국살이에 관한 기록은, 여러 면에서 한국의 역사와 겹치면서도 식민지민의 생활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1917~1942년까지 그리고 1948년의 한국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 책을 통해 역사의 빈 페이지들을 더 촘촘히 메워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모험을 사랑한 메리의 인생
영국 첼트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모험을 좋아하는 소녀였던 메리는 프랑스 신부학교를 거부하고 꿈에 그리던 연극배우가 되었다. 동양 각지를 순회공연하던 중에 일본에서 만난 브루스와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린 메리는, 1917년에 한국으로 와서 1923년에 인왕산 자락에 ‘딜쿠샤’라는 집을 짓고 1942년까지 살았다. 이곳에서 그녀는 백계 러시아인을 포함한 많은 외국인들과 교류했으며, 3 1만세운동과 고종 황제의 장례식을 직접 목격했다.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으로 광산회사를 운영하던 남편을 따라 광산촌을 방문하고, 소련이 점령한 시베리아를 기차로 여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으로 미일 관계가 악화되자 결국 메리 가족은 일제에 의해 송환선에 실려 강제 추방되었다. 그녀는 그 뒤 1948년에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남편의 유골을 묻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캘리포니아에서 또 다른 딜쿠샤를 짓고 살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림과 함께 이 책에 담았다.

한국에서 거주한 외국인의 시선
여인의 집안은 인도와 인연이 깊었다. 엘리자베스 1세 치하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때로부터 선조 중 한 명은 성난 군중들로부터 충성스러운 토후의 목숨을 구해내었고, 할아버지는 딜쿠샤 궁전에서 적들을 물리쳤다. 인도와의 인연은 나중에 미국 남성 브루스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남성은 아버지와 동생과 한국에 와서 광산업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에서 둘은 처음 만난다. 브루스의 아버지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George Alexander Taylor)는 원래 광산 기술자였다가 한국으로 골드러시를 감행하여 알렌이 따낸 광산개발권을 인수한 인물로, 그 배경에는 고종에게 전기시설을 해준 대가였다는 설이 있다. 세계 3대 광산 중 하나인 운산광산은 그야말로 풍부한 금이 생산된 곳으로, 이로 인해 ‘No Touch!’, 즉 노다지라는 말이 생겨난 곳이다.
메리는 광산업을 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살았다. 이때는 이미 한국의 주권이 일본에게 넘어간 시기로, 두 사람이 추방된 1942년은 그 전 해에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일본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국내 외국인에 대한 일본의 압박이 거세져 거의 모든 외국인이 한국을 떠난 때였다. 한국에서 거주하는 동안 이들이 교류한 인물들은 매우 다채롭다. 당시는 외국인들이 히말라야를 정복하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지인인 에먼스는 중국 궁가 산(민야콩카)을 정복한 이야기를 담아 [구름에 맞선 사나이들]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또한 한국과 인연이 깊은 언더우드 가문의 2대와 3대와 교류했고, 주한 공사 핍스의 딸 조이스는 나중에 메리 부부의 아들 브루스(아버지의 애칭과 같은 이름)와 결혼을 한다. 윌리엄 C. 커는 한국에 개신교를 뿌리내린 인물로, 개신교 음악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모델이자 나가사키 구라바엔의 주인 미국 군인과 일본 여성의 딸과 결혼하여 제물포에서 양행을 운영하고 명예 영사를 지낸 조지 베넷도 등장한다. 한국에서 이들은 라디오를 통해 상하이에서 아시아 관련 뉴스를 진행하던 올콧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한국을 일정 기간 여행하거나 취재차 잠깐 들렀던 사람들과 다르다. 메리 부부는 한국에 딜쿠샤라는 저택을 짓고, 탄광마을을 방문하고, 금강산과 시베리아를 여행하고, 영국과 미국, 일본을 다니고, 외국 통신사 특파원을 겸하면서 한국의 독립운동 소식과 일제 만행을 해외에 알리고, 무역업을 통해 조선호텔 근처에 상점을 운영하였다. 또한 선교사부터 사업가와 광산업자, 교사, 게다가 골수 모험가들까지 관심사가 크게 다른 이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공통점에 따라 모임을 만들어 교류했는데, 메리의 표현에 의하면 "동양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우리 회원들만큼 속물적인 우월의식이 없고 소박한 이들도 드물었다. 우리는 말 그대로 하나의 용광로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잘 어우러져 지냈다"고 한다.
서구 열강이 조선의 빗장을 강제로 열고 마구 들어오던 시기에 광산업자로 한국에 들어와서 엄청난 부를 쌓으며 이 땅에 살았던 테일러 집안,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일제의 만행을 해외에 알린 브루스 테일러, 남편은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고 자신은 가택연금 된 채 이름 모를 한국인들이 가져다 준 달걀과 꿩고기 등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낸 메리....... 그녀는 한국 땅에 묻은 시아버지와 남편을 그리워하며 캘리포니아 해안가에 새로운 딜쿠샤를 짓고 살았다. 인생의 황금기를 이 땅에서 보낸 세 이방인에게 한국은 ‘또 다른 삶의 터전’이자 ‘사랑’과 ‘우정’으로 기억되는 곳이었던 듯하다.

딜쿠샤 이야기
갓 결혼한 메리는 1917년에 시아버지와 남편이 광산사업을 하던 한국에 도착하여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메리와 남편 브루스는 1923년에 인왕산 자락 지금의 사직공원 뒤에 1만 5000평의 땅을 매입했는데, 이곳은 조선시대 권율 장군의 집터로 장군이 손수 심은 것으로 알려진 수령이 400여 년에 달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다. 부부는 이곳에 당시 한국에서 제일 큰 개인 벽돌 저택을 짓고 ‘딜쿠샤’라고 이름 붙이고, 머릿돌에 ‘Dilkusha 1923’과 ‘P. S. ALM CXXVII-I’을 새겨 넣었다. 힌디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하는 이 집에서 메리는 남편과 함께 서울살이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한국에 온 최초의 금광 사업가인 시아버지는 1908년에 한국에서 사망하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혔으며, 브루스의 동생 윌리엄 웬트워스 테일러도 거의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다. 언니 베티와 여동생 우나도 동생을 만나러 딜쿠샤를 다녀갔고, 메리 부부에게 딜쿠샤는 각국에서 온 다양한 직업의 외국인들과 친교를 나누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1948년 메리의 마지막 방문 이후로, 2006년에 메리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티켈 테일러(Bruce Tickell Taylor)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어린 시절 공부를 위해 딜쿠샤를 떠났지만, 그곳은 늘 돌아가야 할 고향이었다. 이로써 ‘귀신 나오는 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을 품어온 종로구 행촌동 1-88번지 집의 비밀이 밝혀지게 되었다. 머릿돌에 새겨진 ‘딜쿠샤’라는 이름과 함께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서울에서 살았던 테일러 부부의 드라마틱한 사연이 되살아났다. 메리 테일러가 한국에서 강제 추방된 뒤에 일본인들이 딜쿠샤에 있던 물건들을 가져다 팔아버렸으며, 지키는 사람도 돌보는 사람도 없던 딜쿠샤에 가난한 피난민들이 찾아들자 딜쿠샤는 그들을 어머니처럼 품어주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먼저 살던 거주자로부터 거주권을 구입한 새 거주자가 다음 거주자에게 다시 거주권을 넘기는 식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지금은 열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품기 위해 넓은 방들이 칸막이로 조각조각 나뉘어야 했던 딜쿠샤는 현재 국유재산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으며, 문화재로 등록될 기쁨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편] 127장 1절)

목차

책을 펴내며
구슬 하나 - 깊어지는 전운, 1941
구슬 둘 - 불안한 정세
구슬 셋 - 일본과의 불화가 가져다준 시련
구슬 넷 - 기약 없는 이별
구슬 다섯 - 전쟁 속에서도 삶의 바퀴는 구르고
구슬 여섯 - 종전과 한국 방문
구슬 일곱 - 영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구슬 여덟 - 배우의 꿈을 이루다
구슬 아홉 - 일본에서 주고받은 마음
구슬 열 - 청혼
구슬 열하나 - 한국으로 가는 신혼여행길
구슬 열둘 -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구슬 열셋 - 한국에서 시작한 신혼생활
구슬 열넷 - 실수하고 오해하며
구슬 열다섯 - 황금의 나라를 찾아온 이방인들
구슬 열여섯 - 익숙해져가는 한국
구슬 열일곱 - 일만이천봉 금강산 여행
구슬 열여덟 - 만세 소리와 함께 아들이 태어나다
구슬 열아홉 - 전국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구슬 스물 - 한국인과의 충돌
구슬 스물하나 - 갈마 해변에서 보낸 여름
구슬 스물둘 - 원산의 백계 러시아인
구슬 스물셋 - 우리 집을 짓기로 하다
구슬 스물넷 -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
구슬 스물다섯 - 폐허가 된 딜쿠샤
구슬 스물여섯 - 서울살이의 친구들
구슬 스물일곱 - 사랑과 우정의 나날들
구슬 스물여덟 - 시베리아 횡단 여행
구슬 스물아홉 - 캘리포니아에서
구슬 서른 - 광산 사업가의 아내로서
구슬 서른하나 -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구슬 서른둘 - 다가오는 이별의 시간
구슬 서른셋 - 조선의 양반 김 주사
구슬 서른넷 - 6년 만의 서울 방문, 1948
옮긴이의 글

본문중에서

둘이 함께 웃었지만 내 웃음은 곧 흐느낌으로 변했다. 그는 그동안 겪은 일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자기가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포로로 잡혀 있는 한은 금광을 팔지도 않을 것이며 일본인들과 사업에 관한 협상도 하지 않을 거라고 버텼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그들은 그에게서 금광을 빼앗아갔고, 약탈도 반드시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는 그들의 신념에 따라 그 대가로 남편의 계좌에 약간의 돈을 넣었다.
(/ '구슬 넷 - 기약 없는 이별' 중에서)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항구를 떠난 후, 우리는 개인적인 책임을 잔뜩 짊어지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자유의 여신상은 조금 무서운 데가 있었다. 자유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우리는 미국 당국자들이 배에 올라와 우리를 따뜻한 환영 인사로 맞아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는 FBI에게서 한 사람씩 몇 시간에 걸쳐 철저한 조사를 받았다. 우리의 성(姓)인 테일러는 알파벳 순서로 뒤쪽에 있기 때문에 브루스와 나는 2 ~3일이 지나서야 배에서 내릴 수 있었다.
(/ '구슬 다섯 - 전쟁 속에서도 삶의 바퀴는 구르고' 중에서)

우리는 오랜 세월 한국에서 살았고 좋든 싫든 우리 집은 한국에 있었다. 미국에서 우리가 하던 일도 끝이 났다. 아파트에 살면서는 편안함도 행복도 느낄 수 없었다. 딜쿠샤와 한국이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브루스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 하고 묻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친절한 친구들의 말에 질색을 했다. 자기 마음과는 정반대로 대답함으로써 커다란 갈망을 감추려 하는 브루스의 청개구리 기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브루스도 한국으로 돌아갈 희망을 품은 적이 있었다. 도쿄에 있는 친구가 편지를 보내 브루스가 한국의 광산국 국장에 임명될 거라는 소식을 전해왔던 것이다. 그 편지는 "친구, 석면방화복을 준비하고 있게. 사방에서 불꽃이 튀고 있네!"라는 희망찬 말로 끝났다. 브루스가 진정으로 행복해하 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 '구슬 여섯 - 종전과 한국 방문' 중에서)

인도와 실론(지금의 스리랑카), 말레이, 중국, 일본....... 그 모든 이름들이 내 어린 시절의 친근한 기억들을 담고 있었다. 나는 거의 무아지경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지금 이 사람이 내 꿈을 실현시킬 제안을 하고 있는데, 이게 정말 현실이란 말인가 나는 조항들은 하나도 읽지 않은 채 계약서에 서명하고, 공중에 붕 뜬 기분으로 사무실을 나왔다.
(/ '구슬 일곱 - 영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중에서)

내가 생각한 결혼이란 공정한 터전에서 어떤 치우침도 없이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사랑에서 우러나온 수고와 공통된 갈망이 더해져 혼자라면 불가능할 피차의 성장을 소중히 여기며 이끌어낼 수 있는 관계 말이다. 남편의 생각은 나와 전혀 달랐던 것일까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결혼을 기사의 투구에 꽂을 하얀 새 깃털 정도로만, 아니면 자기 성 안 한쪽에 따로 마련한 제단에 놓아둘 일종의 성배 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그래서 이따금 그 제단 앞에서 경의를 표하고 사랑의 징표를 놓아두기만 하면 된다고
(/ '구슬 열하나 - 한국으로 가는 신혼여행길' 중에서)

내 심장은 우리가 한국에 도착할 날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곳에 가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삶에 도전장을 던지고 한판 승부를 겨뤄보리라. 나는 그곳에 도착해야만 브루스의 성 안으로 과감히 들어갈 수 있고, 성의 안주인으로서 내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느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같은 난롯가에 나란히 앉아 함께 몸을 녹이고, 같은 잔으로 사랑의 축배를 들고, 우리가 함께하는 삶을 상징하는 깃발을 높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 만났던 장소에 다시 가보고 싶어서 집으로 가는 일정을 뒤로 미루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었지만 그 사진들은 일본 경찰에게 모두 압수당했고 큰 의심만 사게 되었다. 1945년에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우리는 그 의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구슬 열하나 - 한국으로 가는 신혼여행길' 중에서)

이 ‘외국인’이라는 표현에 내가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설명해야겠다. 인도에 있을 때 우리 영국인들은 외국인이라고 불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이 아니면 모두 ‘외국인’이었다. 또 여행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을 마중하는 일 역시 나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풍습이었다. 내가 기차에서 내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연달아 인사를 건넸다. 나는 이 놀라운 경험을 통해 한국이 브루스와 내가 단둘이 살아갈 고립된 곳이 아님을 깨달았다. 물론 당시에는 미소를 띤 그 낯선 얼굴들 중 에 많은 이들이 내 평생의 친구가 되리라는 것도 몰랐다.
(/ '구슬 열둘 -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중에서)

동양에서는 그렇게 빼돌리는 일을 도둑질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부유한 사람이 자기를 위해 일해주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약간의 세금을 낸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있기에 오랜 세월 동안 허용되어온 관습인 듯했다. 빠져나가는 돈이 두 배로 불 때면 브루스는 그냥 김 보이를 불러서 현재 일하는 사람들을 내보내라고 지시하고 새 사람을 고용하곤 했다....... "그를 존중한다는 걸 보여주고 그의 체면을 세워준 거요. 동양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일종의 예의일 때가 종종 있다오.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하는 거짓말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가 거짓말하는 걸 내가 알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렸소."
(/ '구슬 열넷 - 실수하고 오해하며' 중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흥분해서 크게 화낼 일을 만들지 않으려면 몇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간섭하지 말 것, 불가피한 일은 받아들일 것, 가능하면 질문하지 말 것, 최대한 견뎌보다가 더 이상 안 되면 깨끗이 포기할 것, 모른 척하고 넘어가야 할 일과 져주어야 할 때를 알 것, ‘슬쩍 빼돌리는 것’은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경비에 포함시킬 것, 체면 차리기는 아주 오래된 습관이니 인정해줄 것, 거짓말은 많은 경우 예의상 하는 말임을 이해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동양의 방식에 맞서려고 하지 말 것!
(/ '구슬 열넷 - 실수하고 오해하며' 중에서)

바느질을 할 때 권씨는 바늘을 천에 꽂는 것이 아니라 천을 붙잡아 바늘에 꽂았다. 위아래가 뒤집힌 한국의 방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였다. 한번은 내 치마 하나를 주면서 그것을 본으로 삼아 같은 것을 하나 더 만들라고 했다. 찢어져서 천을 덧대 기운 치마였지만, 전체적인 디자인이 마음 에 들었기 때문이다. 완성된 치마는 딱 하나만 제외하면 꽤 훌륭했다. 권씨는 원래 치마와 똑같이 뒤쪽에 구멍을 내고 거기에 다시 천을 덧대 기워놓은 것이다!
(/ '구슬 열여섯 - 익숙해져가는 한국' 중에서)

어느 새 붉은 태양이 바다 위로 솟아오르더니 그 마법 같은 빛으로 겹겹이 솟은 거대한 병풍 같은 산줄기들이 차례로 하나씩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그 사이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봉우리들과 탑처럼 솟은 장대한 바위산들이 드러났다. 그야말로 세월과 자연의 풍화를 견뎌온 산의 핵심부였다. 한국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일만이천봉’이라고 부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억겁의 시간 동안 사라져간 수많은 영령들이 말없는 어떤 신에게 구원을 간청하며 뻗어 올린 기도하는 손들 같았다.
(/ '구슬 열일곱 - 일만이천봉 금강산 여행' 중에서)

그의 울대뼈가 꼼짝하지 않았다. 목이 멘 것이리라. 한국에 온 후 처음으로 한국 사람의 관점에서 들은 말이었다. 나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서 일본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는 한국에 살고 있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들어왔고, 그 말이 사실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우리는 상황을 우리의 관점에서만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일본이 제공한 효율과 사업 기회와 위생과 법과 질서를 빼버린 한국을 상상해보려고 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몇몇 선교사들과 모험가들만 남으려 할 것이다. 나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구슬 열일곱 - 일만이천봉 금강산 여행' 중에서)

나는 몇 세대 동안 기존에 안전하게 확립된 관습과 질서를 고수하며 살아온 집안에 속해 있었다. 그런 삶의 방식은 하나의 계급사회를 형성했고, 그 안에서 부유한 사람들은 세상의 실제적인 일들과는 점점 더 멀어지기만 했다. 어린 시절 우리 형제자매는 늘 우리를 위해 일해주는 사람들의 봉사에 기대어 살았고, 이런 방식이 오래 지속되면서 우리는 실제로 무언가를 하면서 스스로 배우는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내가 하는 음식은 부엌이나 캠핑장에서 요리해보며 배운 게 아니라, 프랑스의 신부 학교에서 배운 것이었다. 거기서는 젊은 처녀들을 모아놓고 머랭이나 에클레르 만드는 걸 가르칠 뿐 매일 먹어야 하는 빵이나 파이를 굽는 법은 가르치지 않았고, 바느질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자수뿐이었다. 아이 돌보는 방법에 관해서도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유능한 유모가 새로 태어난 동생을 돌보는 모습을 감탄스럽게 지켜보면서 배운 게 다였다. 우리는 상류층 가문의 사람과 결혼하여, 우리가 물려받았다고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훌륭하게 이어가야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자랐다.
(/ '구슬 열여덟 - 만세 소리와 함께 아들이 태어나다' 중에서)

한국인들은 민주주의 이념이 미국에서 직접 전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을 의지하게 되었다. 특히 선교사들은 자신들과 같은 대의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해 더욱 믿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외국인들의 집에서 일자리를 얻고 싶어했다. 정기적인 수입이 보장될 뿐 아니라 그들에게서 배운 문물이 자신들의 생활수준도 높여주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물건을 훔치는 일이 없었다. 인도에서 지냈던 경험에 비춰보면 이는 참으로 특별한 점이었다. 한국인들은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미국이 자신들의 독립운동을 도와주지 않은 것 역시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지독히 실망했고, 심지어 비열한 배신 행위라고 생각했다. 교육을 좀 더 많이 받은 사람들은 ‘민족자결주의’란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제국주의를 강고히 하기 위해 내세우는 구호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이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냐고 따져 물었다.
(/ '구슬 스물 - 한국인과의 충돌' 중에서)

우리가 즐긴 이런 모든 활동들은 이후 미군정 시대에 한국에 주둔한 미군과 그 가족들은 경험하지 못했다. 전시법과 38선에 가로막혀 북한에 있는 휴양지들에 갈 수 없고 더운 계절에도 서울에만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보낸 스물두 번의 여름 동안 나는 한 번도 서울에만 묶여 지낸 적이 없다.
(/ '구슬 스물하나 - 갈마 해변에서 보낸 여름' 중에서)

때때로 나는 갖가지 술책을 동원해 그의 그런 완고한 생각을 꺾어보려고 시도했다. 이를테면 양반은 절대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그 한 예였다. 나는 일부러 그보다 앞서 걸어가서 뒤를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오히려 내가 그 자리에 서서 그가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으로 천천히 다가올 때까지 그를 기다려야 했다. 때로는 그가 짐을 나르게 만들려고도 해보았다. 직접 짐을 나르는 것 역시 그의 원칙에는 위배되는 일이었다. 그럴 때면 그는 내게서 정중하게 짐을 받아들고 절을 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나중에 창문으로 내다보면 공 서방이 그 짐을 들고 종종거리며 김 주사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나와 브루스, 심지어 우리와 동행한 건축가도 은행나무가 있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느라 숨을 헐떡거렸다. 그러나 김 주사는 달랐다. 그는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 '구슬 스물셋 - 우리 집을 짓기로 하다' 중에서)

이런 경험들은 동양에서 살아가는 일에 동화 같은 느낌을 더해준다. 어떤 면에서는 예상한 것 이상의 좋은 경험을 하게 되지만, 또 어떤 때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삶이란 그렇게 끝없이 다양한 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한 여자의 꿈은 이루어졌다. 소망은 우리 삶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품었던 모든 소망은 이루어진 것 같고, 내 호박 목걸이의 구슬들은 그 소망들 하나하나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목걸이 자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인생의 여정을 구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살겠노라고 거의 확신에 가까운 꿈을 꾸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기술이 존재할 거라고, 또 그 기술은 영국 땅에 뿌리를 내린 나라는 나무가 이 머나먼 한국 땅에서도 울창하게 자라게 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낭만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었고, 낭만이 빠졌다면 내 사랑임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에 꼭 맞는 안식처가 되어줄 집을 꿈꾸었는데, 이제 그 상상 속의 집이 벽돌과 돌로 지은 현실의 집이 되어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계획의 궁극적인 열매인 아이라는 축복까지 받지 않았던가!
(/ '구슬 스물넷 -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 중에서)

나는 다가오는 새해를 생각하며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내가 처음 서울에 도착했을 때 역으로 마중 나와준 그들을 첫 대면했다. 그때 그들은 보석상 유리 진열장 너머에 있는 호박 구슬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소중한 나의 호박들이 되었고, 그중에는 보석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호박들도 많았다. 내가 그동안 이 호박 구슬들을, 이미 내 삶의 배경이 되어버린 나의 경험이라는 호박 구슬들과 함께 나의 인생이라는 실에 꿰어왔음을 느꼈다. 내가 경험한 그 호박 구슬들이 모두 다 찬란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티가 있거나 거품이 들어 있거나 금이 간 것도 있고, 층이 나 있는 것, 구멍이나 긁힌 자국이 난 것, 윤기는 없지만 반투명한 것, 색이 진하지만 투명한 것,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곤충이나 꽃의 파편을 품은 것도 있었다. 잘린 방식과 크기와 색깔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내가 그 구슬들을 하나하나 꿰어오는 동안 사이사이 완벽하게 깨끗하고 투명하고 선명한 빛을 발하는 구슬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현명한 셰익스피어가 "단단한 쇠줄로 자신의 영혼에 붙들어매야 한다"고 표현했던, 사랑과 우정을 나타내는 구슬들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여 사랑과 우정의 구슬들을 탄탄한 줄에 엮어왔다.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왔던, 내 인생의 호박 목걸이를 나는 사랑했다. 멍에인 것은 사실이지만 무겁고 힘겨운 멍에는 아니었다. 그것은 자력을 지니고 있고 동정적이며 따뜻했다. 내 목걸이는 순수한 진주로 엮은 것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살아낸 내 인생의 구슬들로 엮은 것이며, 거기에는 인간의 감정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정말로 그것은 하나의 사슬을 이루었다. 내 삶의 사슬은 한국인의 갓에 다 는 갓끈처럼 끝이 열려 있다. 그러니 마지막 매듭을 지을 때까지 앞으로 더 많은 구슬을 꿰어나갈 것이다.
(/ '구슬 스물일곱 - 사랑과 우정의 나날들' 중에서)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샤머니즘 또는 무속신앙이 근본적으로 매우 종교적인 한국 사람들에게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그 신앙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한민족의 시초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리고 이 이단적인 신앙의 괴상한 여사제들이 지니고 있는 저 힘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유사한 기원에서 생겨난 유사한 종교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 나라의 무당들은 스스로 자기 영향력의 영역을 구축해왔다. 신분으로는 천한 계급에 속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아주 사소한 일부터 대단히 중요한 일까지 수천 가지 경우에 무당에게 의지한다. 그들은 무당이 무생물까지 포함하여 만물에 깃든 혼령과 접촉할 수 있기 때문에 혼령들을 퇴치할 수 있다고 믿는다.
(/ '구슬 서른하나 -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중에서)

출발할 때는 가마꾼이 여덟 명이었는데 겨우 두 명이 남았다. 길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할 수 없이 일렬종대로 서서 나는 앞서 가는 가마꾼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고, 뒤에 오는 가마꾼은 내 허리띠를 뒤에서 잡아당기면서 언덕을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그때 우리는 경사가 아주 심하고 어디서 어떤 지형이 나올지 가늠할 수 없는 산비탈을 내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을 밟으며 가야 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넘어지곤 했다. 그래서 그들은 박자를 맞추기 위해 구호를 붙이기 시작했고,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나도 가세했다.
(/ '구슬 서른하나 -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중에서)

인간사 무릇 그러하듯이 이 집이 또다시 큰 고난을 겪게 되고, 나의 호박 목걸이마저 사라진다 해도, 우리가 사랑으로써 우리의 일부로 만들었던 그것들은 영원히 지속되며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바다와 바위와 모래보다 더 오래되고 영원한 것이 있다. 마르지도 녹지도 흐르지도 않는 것, 우리 불멸의 영혼들과 하나가 되었기에 인간의 기억이 다한다 해도 지울 수 없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호박 목걸이처럼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고 연결해주는 것이다. 나는 호박 목걸이에 달린 삶의 수레바퀴 같은 구슬을 손바닥에 놓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어루만져 보았다.
(/ '구슬 서른넷 - 6년 만의 서울 방문, 1948' 중에서)

영국 여인 메리 린리 테일러는, 세상의 모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한 겁 없는 여성이었다. 아시아 각지를 여행하던 중에 일본에서 만난 미국 남성과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새색시가 되어 1917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코리아’라는 나라에 도착했다. 그 후 1942년까지 서울의 ‘딜쿠샤’라는 저택에서 살았고, 외국인 사회에서 유명인사로 활약했다. 한국에서 잠시나마 거주한 외국인은 국적을 막론하고 메리를 모르고 지낼 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메리는 연극배우였고, 화가였으며, 작가이자 여행 탐험가였고, 어머니요 주부였다. 그녀는 백계 러시아인을 포함한 많은 외국인들과 교류했으며, 3 1만세운동과 고종 황제의 장례식을 직접 목격했다.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으로 광산회사를 운영하던 남편을 따라 광산촌을 방문하고, 소련이 점령한 시베리아를 기차로 여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메리 가족은 태평양전쟁으로 미일 관계가 악화되자 결국 일제에 의해 송환선에 실려 미국으로 강제 추방되었다. 남편의 유골을 한국 땅에 묻기 위해 우리나라를 다시 찾은 것은 해방이 되고 대한민국이 탄생한 1948년이었고, 그때가 마지막 한국 방문이었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저자소개

메리 린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889~1982
출생지 영국 첼트넘
출간도서 1종
판매수 127권

1889년 영국 첼트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연극배우가 되어 동양 각지를 순회 공연하던 중에 일본에서 만난 미국인 브루스(본명은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와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1917년에 한국으로 왔다. 1923년에 인왕산 자락에 ‘딜쿠샤’라는 집을 짓고 1942년까지 살다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추방되었다. 그 후 남편의 유언에 따라 1948년에 다시 한국에 와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시아버지 무덤 옆에 남편을 묻었고, 1982년에 캘리포니아에서 생을 마쳤다. 시아버지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George Alexander Taylor)는 한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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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37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 태생으로 서울고등학교, 연세대학교, 미국 조지아 대학교를 거쳐 196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와 이스트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정치학, 행정학 교수로 삼십여 년간 재직한 후 명예교수로 은퇴하여 현재는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거주하고 있다.
한국 관련 서양 고서(古書)와 서양인 화가들이 그린 한국 소재 그림 수집에 전념하고 있다. 그중 특히 엘리자베스 키스 작품의 역사적, 문화적, 미술사적 중요성을 인식해, 키스의 책 《올드 코리아》와 《동양의 창》을 우리말로 옮겨 펴냈고, 국립현대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경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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