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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 박영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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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나의 고독한 두리안 나무][라구나 이야기 외전][영우한테 잘해줘]에서 자신만의 확실한 작품세계와 문장으로 청소년을 만났던 박영란 작가가 들려주는 또다른 삶의 이야기이다.
    세상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을 내쫓지 않는 것은 광장뿐.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열 살 소년이 알아버린 삶의 무서운 진실, 인생 이야기.

    절대 무너지지 마!
    우리가 삶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여름방학이 다가오며 형은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르게 아이언맨을 찾으러 집을 나갔고, 그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서울역 광장에서 아이언맨과 형을 기다렸다.
    나는 일곱 살 때 열다섯 살이었던 형과 단둘이 살게 되었다. 엄마는 끓는 기름을 자신의 다리에 쏟아붓는 자해를 하면서까지 집을 떠나기를 원했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떠나보낸 뒤, 뒤따라 집을 나갔다.
    형과 나는 어리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생활을 꾸려나갔다. 가끔씩 이모가 밑반찬을 들고 찾아와 청소도 해주고 엄마가 주는 돈을 전해주면 규모있게 쓸 줄도 안다. 형은 어린 내게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줬다. 위험한 처하면 개다리 춤을 춰서 사람들을 웃겨라,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집안 사정을 바닥까지 드러내서는 안 된다. 부모 없는 아이들은 보호자가 12명쯤 있는 것처럼 연막을 쳐야 한다. 나는 형에게 배운 것을 십분 적용하여 서울역 광장에서 시간을 때운다.

    사실 그건 별거 아니었다.
    그건 그냥 형이 돌아온 후에도 계속되는 인생과 같은 거였다.


    나는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꼬질꼬질 유모차에 아기와 짐을 싣고 서울역 광장에서 살고 있는 귀차니 아줌마와 친구가 되어 같이 다닌다. 사기 치고 야반도주한 달의 궁전 누나나 귀차니 아줌마는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한 사람의 생애는 자기 책임 반이고, 세상 책임 반이야. 하필 재수 없게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팽개쳐졌다고 해도 자기 책임이 반은 된다는 거. 그러니까 세상이 인생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는 거지."

    추천사

    형제가 개다리춤을 춥니다. 그 춤이 이토록 슬프고 우습고 통쾌하고 절절한 승화의 안무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형제는 우리를 안내합니다. 불쌍하거나 불편하게만 보였던 서울역 주변의 노숙인과 귀차니 아줌마와 달의 궁전 누나와 맥도널드 누나의 따뜻한 피돌기와 부드러운 신경망으로 말입니다. 행복이란, 가고자 하는 세상의 귀천에 있지 아니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진위에 달렸노라고 말입니다.
    아, 이 이야기에는 열 살에 알아버린 삶의 무서운 진실이 담겨 있네요. 기다릴 그것이 있어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기다리기 때문에 기다릴 그것이 있게 된다는 것 말입니다. 화려한 꿈도 사치스런 성취도 아닌 그것은 무엇일까요. 기다림 자체의 뜻을 묻는군요.
    왜 서울역인지 알겠습니다. 떠나고 돌아오고 기다리는 이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결국, 모든 이들이, 평생을, 숙명의 역에서 사는 거겠네요. 그들은 당초 우리일 수밖에 없는데 어째서 우리는 아직 그들이 아닐까요. 나와 내 삶만을 터무니없이 귀히 여긴 까닭에 오히려 눈 멀어버린 건 아닐까요. 귀차니 아줌마가 귀치 않다고 자꾸 말하는 까닭에 귀 기울이세요. 어제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어제와는 완연히 다른 오늘을 만나게 해 주는 이야기니까요.
    - 구효서 / 소설가

    본문중에서

    아줌마가 가장 싫어하는 게 귀찮게 하는 거였다. 아줌마는 누가 다가오면 일단 귀찮아!부터 하고 봤다.
    뭐가 그렇게 귀찮아요?
    전부 다!
    왜요?
    귀찮으니까, 귀찮아.
    그래서 나는 아줌마를 귀차니 아줌마로 불렀다. 아줌마가 세상만사를 귀찮아하는 건 나와 다르지만 광장에 나와서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인 건 나와 같았다. 그러니까 거의 매일 광장에 나와 있는 것이다. 온갖 물건을 주렁주렁 매달아 하울성처럼 요란한 유모차와 아기까지 데리고 광장에 나와 있는 걸 보면 나보다 더 굉장한 걸 기다릴 것이다. 콩코스 광장에는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노숙자 아저씨들도, 귀차니 아줌마도, 심지어 경찰지구대 형들도 뭔가를 기다렸다. 뭔가를 기다려본 사람은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 눈이 어떤지 안다.
    (본문 중에서/ pp.13~14)

    귀차니 아줌마와 나는 밤바람을 쏘이면서 광장을 가로질러 왔다 갔다 했다. 광장에는 무서운 아저씨들이 있지만 아무도 우리를 건들지 않았다. 광장 사람들도 귀차니 아줌마는 절대 건들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보기에도 귀차니 아줌마는 뭔가 굉장히 위험한 인생이었다. 아줌마가 아기와 유모차 하나에 의지해 광장에 나와 산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게 바로 사람들이 그 아줌마를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다.
    전에 형이 그렇게 말했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귀차니 아줌마가 무시무시할지 몰라도 나한테 아줌마는 안 보이면 찾아다니게 되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귀차니 아줌마 곁에 있으면 편안했다. 어쩌면 아줌마가 세상을 귀찮아해서 그런지도 몰랐다. 세상을 귀찮아한다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행복을 잡으려고 아등바등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을 빼지 않는 뜻이다. 귀차니 아줌마는 행복이나 불행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행복이나 불행 같은 것이 아줌마 인생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편한 것이다.
    아줌마는 정말 모든 게 다 귀찮아요?
    응.
    그럼 아줌마는 앞으로 행복해질 거예요.
    왜.
    달의 궁전 누나가 그랬어요. 행복한 사람들은 진이 빠지도록 열심히 산대요. 그래서 결국 불행해지고 마는 거래요. 그런데 아줌마는 진이 빠지지 않을 거잖아요. 그러면 나중에 행복해질 수 있어요. 아줌마.
    응.
    우리 형도 어쩌면 아줌마처럼 세상이 다 귀찮아서 도망가 버린지도 몰라요. 나와 버드를 부양하는 일도 귀찮고
    (본문 중에서/ pp.108~109)

    아줌마.
    응.
    형이 올까요?
    불안해?
    전에 달의 궁전 누나가 아무리 힘든 순간도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라고 했어요.
    재수 없으면 평생 힘들 수도 있어.
    평생 힘들면 어떻게 살아요.
    할 수 없지. 힘들다고 인생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
    말은 쉽죠.
    난 요즘 그런 생각을 해. 한 사람의 생애는 자기 책임 반이고, 세상 책임 반이야. 하필 재수 없게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팽개쳐졌다고 해도 자기 책임이 반은 된다는 거. 그러니까 세상이 인생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는 거지.
    아줌마와 나는 재수 없는 경우죠?
    그럴걸.
    재수 없는 인생은 지랄 맞대요.
    누가 그래?
    형이요.
    참 좋은 형이다.
    형이 오면 그 말 해줘야겠어요.
    무슨 말.
    지금 아줌마가 한 말이요.
    (본문 중에서/ pp.204~205)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경북 영양
    출간도서 11종
    판매수 2,252권

    장편소설『편의점 가는 기분』과 『다정한 마음으로』『못된 정신의 확산』외에 여러 장편을 펴냈고, 단편집『라구나 이야기』가 있다. 동화 『옥상정원의 비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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