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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속의 일본이야기 : 일본이 말하지 않는 진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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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가면 속의 일본이야기』는 충성과 반역, 조화와 배신, 집단성과 개인성 양극단을 달리는 두 얼굴의 일본을 파헤친 책이다. 안과 밖, 우리와 그들, 가족과 나라 사이를 넘나드는 일본의 분명하고도 모호한 기준과 경계를 역사적 사건과 현상을 통해 살펴본다.

출판사 서평

충성과 반역, 조화와 배신, 집단성과 개인성
양극단을 달리는 두 얼굴의 일본을 파헤치다!


일본은 친절하다. 또한 음흉하다. 우리에게 일본의 양면성에 대한 이 두 가지 명제는 참으로 여겨질 만큼 익숙하다. 그러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말하는 듯 다정한 말투와 미소 뒤에 숨긴 극도로 절제된 내적 자아의 본성을 알아차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 일본은 양자를 극단적으로 선택하며, 철저하게 외면과 내면을 구분하는 두 얼굴을 갖게 됐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무사들의 이야기, ‘충신장(忠臣藏)’. 충신장 이야기는 일본 무사들의 충의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여겨져 일본인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대중에게 익숙한 이야기인 만큼 일본 위정자와 지식인들에 의해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의미가 변주되어 활용됐다. 충신장의 본질 그리고 일본 무사들의 이중적 태도는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읽을 수 있는 단서다. 예의와 싹싹한 미소 뒤에 차가운 무표정을 숨긴 일본인. 안과 밖, 우리와 그들, 가족과 나라 사이를 넘나드는 일본의 분명하고도 모호한 기준과 경계. 이 책은 일본의 역사적 사건과 현상을 통해 가면 속에 감춰진 일본의 속내를 파헤친다.

왜 일본 무사는 주군과 아버지를 배신했는가?
안과 밖이 다른, 미소 뒤에 숨겨진
일본의 속 모습!


일본인에게 나와 타인, 내부인과 외부인의 구분은 뚜렷하면서도 유연하다. 일본어로 타자(他者)란 ‘다른 사람’, 타인(他人)이란 ‘아주 남남인 사이’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또 일본에서의 ‘이에(家)’는 혈연집단을 초월하는 경영체의 성격을 갖고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남남이라도 필요하다면 바로 포용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즉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언제든지 타인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구조로 인해 일본에서의 효(孝)란 가업의 번성과 정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가족 공동체에서 나아가 더 큰 사회적 시스템으로 확대하면 무사와 주군과의 관계도 예상할 수 있다. 1603년 도쿠가와 막부가 성립되기 전 일본은 조정과 여러 무사 가문과의 갈등으로 혼란의 시대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혈연보다 가문의 이익을 우선하던 분위기는 무사들이 주군과 조정을 향해 끊임없이 대항하는 규범으로 발전했다. 주군을 위해 충성을 바치는 무사들은 제 아무리 더 높은 위치의 조정 관리나 천황이더라도 칼을 겨누며 배신과 반란을 일삼았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무사와 무사도의 이미지는 명예를 위해 목숨도 내놓는 늠름한 대장부이다. <헤이케 모노가타리 平家物語>, <요시쓰네 이야기義?記>, <태평기 太平記> 그리고 18세기 초 무사들의 집단 복수를 그린 <충신장 忠臣?> 등 일본 고전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무사들은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대의와 주군을 위한 충성을 위해 최후를 결정하는 용감한 사내들이다. 그러나 결연하게 명예를 지키려는 무사들은 정의와 충성에 대한 굳건한 실천의지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나의 체면’, ‘세간의 이목에 비친 나의 모습’을 중시한 결과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사에 대한 이런 환상은 연극, 영화 등으로 재생산되어 신군국주의 국가건설에 매진할 때 국민동원 수단으로 이용됐다.

우리가 모르는 일본의 본모습은 무엇인가?
가면 뒤에 감춰진 그들의 속내!


일본인에게 개인보다 집단, 나보다 조직을 우선하는 특징은 극도의 절제를 실천하는 공동체 내부인의 규범과 세간의 눈을 개의치 않는 외부세계 속 타인의 파격적인 행동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에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모두 예외 없이 선(善)이고, 진(眞)이고, 미(美)”이므로 구성원은 무조건 이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일제 강점기와 태평양 전쟁 시대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이런 논리로 전 국민을 ‘관념적 무사도’의 틀에 넣고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를 취하는 것이 미덕(美德)”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냈으며 극기, 인내, 충성 등을 강조했다. 전체주의적 가치관을 강요하며 사실상 국민들의 무조건적 희생을 강요했던 것이다. 극도로 절제된 도덕관과 규범의식으로 안에서는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한편 위안부 강제 동원과 강제징용, 731부대 생체실험과 난징 대학살, 그리고 미국 진주만 공습 등 바깥으로는 일본의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본성이 터져 나왔다. 내부의 도덕과 대의가 외부의 국가적 이익과 마주치는 지점에서 일본의 숨겨진 두 얼굴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두 얼굴의 일본이 가진 특징을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 가면 1_ 낯선 외부인을 경계하라
다리 밑이나 개천가에서 시체 처리 등의 궂은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나 산속에 사는 무속인, 화전민과 같이 촌락공동체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 살면서 직업을 달리하는 ‘사회관계상의 타자, 혹은 이인(異人)’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촌락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들은 때로는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들과는 이질적인 존재로서 편견, 차별, 배척의 대상이 되었고, 때로는 이해관계의 충돌로 자기들에게 도움을 준 그들을 배반, 살해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촌락사회의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남게 되는데, 이런 부당한 일을 “교묘하게 정당화”하여 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촌락공동체의 의식적 노력이 ‘이인의 요괴화’로 나타났고, 그 결과물이 원숭이 사위, 야마우바(山?), 덴구(天狗) 등의 이야기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이방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심리적 바탕의 한 면을 보여주는 이런 분석은 1923년, 간토 대지진(?東大震災)때 6,000명 이상의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한 일본인들의 심리적인 바탕도 같은 맥락에서 살필 수 있다.

▷ 가면 2_ 혈통보다 가문이 먼저다
일본 사회에서 효(孝)란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에 대한 효를 뜻하기보다는 이에(家)를 위한 효를 뜻한다. 따라서 최대의 불효는 가업에 힘쓰지 않아 이에의 재산인 가산을 없애고, 이에의 이름인 가명을 더럽히는 것이다. 이런 배경으로 친자식이 다른 이에에 종사하게 되면 그는 사실상 친아버지와의 부자관계가 소원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적이 될 수도 있으며 형제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구조 속에서 만약 현재의 가족 구성원이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된 경우에도, 그 이에의 가산과 제사 등을 어딘가 맡겨서 관념적으로 이에를 존속시켰다가, 혈연이나 가문에 그 어떤 관련 없는 사람이 나타나 기회를 얻기만 한다면 가문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 가능했다. 이와 반대로 양자로 간 가문을 지키기 위하여 친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도 손을 놓고 있는 일도 가능했다.

▷ 가면 3_ 도덕보다 나의 체면
일본 소설이나 시대극의 무사들은 흔히 목숨을 걸고서 결연하게 명예를 지키는 모습이 그려진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무사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이 옳다는 확고한 신념이나 주군에 대한 의리라기보다는 세상의 평판, 즉 ‘세상에 대한 나의 체면’이라는 점이다. 즉 그들은 하려는 일의 옳고 그름보다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 비친 나의 모습을 중시한다. 오사라기 지로의 소설 <아코낭사>의 한 대목에는 아코 무사들이 원통하게 죽은 주군을 따라 순사(殉死)를 할 것인지 복수를 할 것인지로 논쟁을 벌인다. “(원수) 기라(吉良) 님은 나이가 많아 우리가 복수를 하기 전에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의 희망은 수포로 돌아가고 오히려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순사하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일이다. ‘기라를 죽여서 주군의 원수를 갚는 일’은 그것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 가면4_ 일상화가 된 무사의 배반
도쿠가와 막부가 성립하기 전까지 일본에서는 늘 조정(朝廷)과 무가(武家), 또 무가와 무가 간의 권력다툼이 계속되었고 무사들 간의 이합집산이 되풀이됐다. 일본의 권력투쟁은 직접 칼을 들고 죽기 살기로 싸우면서 이루어졌고 ‘이기면 관군(官軍), 지면 적군(賊軍)’이라는 일본 속담이 말해 주듯이 반역자를 따로 구분할 수도 없었던 것이 일본의 역사이다. 전국시대가 끝날 때까지 영주와 종속(從屬) 무사들 간의 군신 관계는 대개 개인적 신뢰를 전제로 구축된 것이었다. 또 믿을 것은 오직 무력 밖에 없다고 여겼던 시대였으므로 무사들은 자기의 실력이 정당히 평가되지 않는 경우에는 주군이라도 당당히 배반했다. 따라서 주군의 입장에서는 늘 종속 무사들의 충성심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자립성을 유지하던 종속 무사들도 늘 주인의 신뢰성을 면밀히 주시했다.

▷ 가면 5_ 조화만이 살 길이다
일본에서 ‘화(和)’는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고 화합해 안정된 사회를 이루도록 하자는 사상을 말한다. 이 ‘화’라는 것이 ‘늘,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강조되는 듯하다. 그래서 “튀어나온 말뚝은 얻어맞는다”는 속담이 뜻하는 대로, 일본 사회에서 언제나 중요시되는 것은 옆에 있는 사람과 가지런히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곧 남에게 폐(迷惑)가 되고 부끄러움(恥)이 되는 일이다. 그래서 불만이 있어도 참고, 불편해도 참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대화할 때 애매모호한 간접적 표현을 선호해서 그들의 말은 표면상의 명분(建前: 다테마에)과 속마음(本音: 혼네)이 서로 다를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된다는 것도 화(和)를 위해 자기를 강하게 내세우지 않는 관습 때문이라는 평이다.

목차

들어가며

제1장 일본을 읽다
라이터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 멀고도 가까운 이웃 | 가문을 위해 아버지도 외면하는 무사의 나라

제2장 가족 문화를 알면 일본이 보인다
우치와 소토, 안과 밖 | 요괴와 이방인, 낯선 사람은 어리석은 자 | 우치와 이에, 이에와 혈연 | 가문과 주군, 그리고 오야가타 | 가문을 잇겠다면 혈통은 잊어라 | 성씨는 혈통, 직업 또는 지배지역의 표시 | 이름이 곧 신분, 족보도 쉽게 바꾼다

제3장 무사의 나라, 일본
무사의 출현 | 초기의 무사, 기분 나쁘고 겁나는 인간들 | 이에, 무사의 명예 요람 | 잇키, 사회의 조직화 | 군신제도의 재편성, 전업 무사의 등장 | 주군에 대한 절대적 충성 | 다이묘와 무사를 옥죄다 | 민중의 집단 저항, 무자비한 탄압 | 상급 무사와 하급 무사 | 무사의 특권 | 무사도, 싸움의 기술에서 도덕적 규범으로 | 충성의 자긍심, 무사들의 자기최면 | 만들어진 이미지, 무사도 | <하가쿠레>, 무사의 마음가짐 | 니토베의 <무사도>, 일본인의 도덕규범 | 옳고 그른 것보다 세상에 대한 나의 체면 | 무사도를 말하기에는 너무 비참한 일상

제4장 무사의 변절, 충성과 반역
무사의 배반은 늘 있던 일 | 기록된 최초의 배반 | 호겐의 난, 궁중의 권력투쟁 | 겐페이의 싸움, 군신 ? 혈육 간의 배신 | 남북조 시대, 천황과 무사의 대립 | 하극상의 전국 시대, 부자간에도 여차하면 힘 | 노부나가의 죽음 | 이에야스의 배신 | 세난 전쟁, 일본 최후의 내전 | 충신과 역적의 차이

제5장 충신장, 일본인의 로망과 환상
이야기의 시작 | 독재자의 핍박 | 억압받는 사람들, <싸움 양벌규정>과 <동물 연민령> | 태평성대에 가려진 서민들의 눈물 | 마쓰의 낭하사건 | 사건의 배경 | 막부의 아사노 할복 처분 | 주군의 복수를 이루다 | 충과 효, 가문과 아버지 | 민심의 반향 | 막부의 고민, 질서와 충성심 | 46인의 할복

제6장 일본인과 충신장
일본인의 공동 환상, 강제된 선택 | 현역의 전설, 관념화된 미담 | 무사도의 구현인가, 이름 팔기인가? | 국민 모두를 무사도의 틀 속으로 | 국민 세뇌의 도구가 된 <충신장> | 아코 무사처럼 용감하고 명예롭게 | 전쟁에도 평화에도 | 그 시대의 통신, 운송 수단 | 충성한 자와 도망간 자 | 불충신장(不忠臣?) | 개개인의 무사도, 체념과 명예 의식 | 할복과 명예, 죽음의 자기 결정권 | 가이샤쿠, 할복 도우미 | 메이지 시대 이후의 할복 | 원통한 영혼은 달래야 한다 | 두 주군을 섬기지 않는다는 허구 | 폐쇄적 공동체의 열린 성 의식 | 남색과 소년애

제7장 일본의 가면, 천황
또 하나의 연출된 일본의 모습 | 신토와 불교 | 일본 황실은 백제 혈통인가? | 천황, 애매모호한 일본의 상징 | 일본왕의 변해온 권위 | 필요한 만큼만 이용되는 천황 | 최고의 전제 군주, 쇼군 | 천황을 다스린 쇼군 | 천황 신격화와 국가 신토 | 일본 국학, 일본 신국론의 디딤돌 | 신성불가침의 초법적 존재 | 권위는 천황, 권력은 관리 | 주머니 속의 구슬, 권력다툼의 으뜸 패 | 고상한 꼭두각시 | 천황이 되려 한 무사들 | 천황의 인간 선언

제8장 집단이 있어야 개인이 있다
혈연보다 조직 | 칸막이, 차별화, 정형화 | 조직이 하는 일은 잘못이 없다 | 튀어나온 말뚝은 얻어맞는다 | 폭탄 3용사와 꾸며진 역사 | 집단성의 부작용, 부화뇌동과 무책임 | 폐쇄된 조직, 사디즘과 마조히즘 | 일본인의 선악관 | 목숨을 걸고 끈질기게 버틴다 | 무라하치부 ? 이지메의 일본인 | 타 민족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다 | 삿쵸 무사들, 270년 만의 설욕

제9장 울타리 속의 일본적 감성
벚꽃의 화려함에 가려진 모습 | 일본제일(Japan No.1)주의의 초조함 | 감정 표현도 정해진 방식으로 | 이키, 또 하나의 정형화 | 일본의 멋, 다른 곳의 다른 멋 | 와비와 사비, 꽃병의 손잡이 | 일본 안에서만 작동하는 일본적 감성 | 무원칙의 이중적 정신구조 | 애매모호함과 거침없는 융통성 | 부끄러운 것은 덮는다

나오며

본문중에서

이인(이방인)을 요괴로 취급해서 원숭이 사위와 같이 없애버리고 자기들은 행복하게 살 수도 있지만 부당한 일을 당한 그 원령은 언젠가 보복이나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한 '이인의 복수에 대한 민속사회의 공포'는 늘 그 구성원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이 된다. 1923년, 간토 대지진(?東大震災) 때 6,000명 이상의 조선인을 무차별 학살한 일본인들의 심리적인 바탕도 같은 맥락에서 살필 수 있을 것이다. _37쪽

일본 사회에서 효(孝)란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에 대한 효를 뜻하기보다는 이에를 위한 효를 뜻한다. 따라서 최대의 불효는 가업에 힘쓰지 않아 이에의 재산인 가산을 없애고, 이에의 이름인 가명을 더럽히는 것이다. “결국 가업(家業)에 정진하는 것이 효의 중심”인 셈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친자식이 다른 이에에 종사하게 되면 그는 사실상 친아버지와의 부자 관계가 소원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적이 될 수도 있다. 형제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구조이므로 일본에서는 설령 현재의 가족 구성원이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된 경우에도, 그 이에의 가산과 제사 등을 어딘가 맡겨서 관념적으로 이에를 존속시켰다가 기회가 있으면 다시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 _44쪽

소설이나 시대극에서는 흔히 목숨을 걸고 명예를 지켜내는 무사들의 결연한 모습이 그려진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무사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것은 자기의 생각이 옳다는 확고한 신념이나 주군에 대한 의리라기보다는 세상의 평판, 즉 ‘세상에 대한 나의 체면(世間?)’이라는 점이다. 즉 그들은 하려는 일의 옳고 그름보다는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 비친 나의 모습을 중시한다.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1897~1973년)의 소설 <아코 낭사 赤穗浪士>에는 아코 무사들이 원통하게 죽은 주군을 따라 순사를 할 것인지 복수를 할 것인지로 논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이런 대목이 나온다.
“(원수) 기라(吉良)님은 나이가 많아 우리가 복수를 하기 전에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의 희망은 수포로 돌아가고 오히려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순사하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여기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일이다. ‘기라를 죽여서 주군의 원수를 갚는 일’은 그것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다. _117쪽

구키 교수에 따르면, 결국 ‘이키’란 오직 일본인만이 간직한 ‘일본인 특유의 의식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일본 씨름꾼의 그 살찐 모습이 다른 민족으로서는 흉내 내고 싶은 생각이 별로 나지 않는 일본식 멋을 보여주는 것처럼 일본에 ‘일본인들만 즐기는 폐쇄적 미의식’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키’에 해당하는 말이 서양에는 없으므로 서양 문화에는 ‘이키’라는 의식 현상이 자리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결국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일본말로 표현되는 의식 현상을 일본인들과 공유할 수 없다는 뜻인데 동의하기 어렵다. 또 “무사도의 이상주의 및 불교의 비현실성”에 친숙하지 않은 민족은 ‘미태(媚態)로서의 이키의 모습’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말은 ‘이키’라는 말로 표현되는 아름다움이나 멋을 오히려 ‘일본인만을 위한 안경’, 즉 다른 민족의 보편적 공감을 얻기 힘든 것으로 만드는 일은 아닐까? _366쪽

이키(?), 와비(侘び), 사비(寂び), 모노노 아와레(物の哀れ) 등 모두 미묘하고 세밀한 관념의 세계까지 정형화하려다가 급기야는 실체가 모호한 기준을 만들어 곳곳에 그물망처럼 펼쳐놓고 모두가 이에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사회. 잠깐 한눈을 팔다가는 곧 길을 잃고 따돌림을 받게 됨으로 늘 같은 틀에서 서로 동화되려고 노력하고 불만이 있어도 자기최면으로 스스로 만족하게 만드는 사회. ‘아름다운 일본’에 대한 집착으로 어두운 과거는 없던 일처럼 외면하는 사회. 다른 세계의 사람들은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논리로 ‘일본만(日本ならでは)의 것’을 내세우면서 늘 ‘1등 일본(Japan No.1)’의 강박감에 쫓기는 사회.
‘일본적’이란 이런 폐쇄성 ㆍ 배타성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일까? 깨끗함, 꼼꼼함, 철저함 등 많은 장점을 가진 일본인들이다. 그러나 객관적 타당성이 없이 모든 면에서 ‘1등 일본’에 집착하는 것은 건강한 태도가 아니다. _3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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