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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얼굴 : 윤제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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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윤제림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13년 12월 16일
  • 쪽수 : 12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462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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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지구가 점점 못쓰게 되어간다는 소문은 대부분 사실인데
    그냥 버리기는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소
    어르고 달래면 생각보다 오래 꽃이 피고
    열매는 쉬지 않고 붉어질 것이오
    (/ '부석사에서' 중에서)

    타자의 얼굴과 시선에 응답하는 ‘얼굴의 윤리학’, 그 안에 스민 지극한 연민과 휴머니즘...
    윤제림 여섯번째 시집 [새의 얼굴]


    1987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한 윤제림 시인이 [그는 걸어서 온다] 이후 5년 만에 찾아왔다. 그의 여섯번째 시집이다. 이홍섭 시인은 전작의 해설에서 "윤제림의 시는 누구보다도 세간(世間)의 윤리를 중요시하면서, 동시에 존재의 무상성을 드러낸다"며 "그의 시가 연기론의 무상성에 기반하면서도 쉬이 빠지기 쉬운 허무로 기울지 않는 것은 세간적 삶의 중요성과 가치를 누구보다도 믿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그동안 보여준 ‘낡거나 모자란 것’에 대한 관심, 연기론(緣起論)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삶에 대한 연민을 고스란히 담으면서도 타자의 얼굴과 시선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응답, 익숙한 풍경의 바깥을 향한 관조와 통찰을 더욱더 농밀하게 보여준다. 특유의 이야기성이 강한 시들 역시 만날 수 있다.

    [새의 얼굴]은 총 67편의 시가 4부로 나뉘어 담겼다. 특히 이번 시집에는 여행에 관한 시편들이 적지 않은데, 1부에 포진한 여행지는 2부에서 4부로 흘러가면서 자연 일반과 인생의 희로애락으로, 김소월, 박목월, 오규원부터 배병우 함민복까지 실존인물에 대한 회상과 인연에 대한 소회로, 마지막 4부에서는 별주부, 토끼 부인, 이몽룡씨 부인 등 시인 특유의 상황극적 시로 이어지며 의미와 논리로 가득찬 세계를 일순간에 뛰어넘는다.

    여행지에서 시인은 그의 눈에 들어오는 이국적인 풍광이나 그가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정서적 감흥에 심취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만나고 마주치고 의식한 시선들, 내면성에 갇혀 있던 ‘나’를 자극하고 다른 시공간으로 이끌고 가는 ‘얼굴’들이야말로 ‘내’가 다 볼 수 없는 것들로 나아가게 한다.

    대여섯 살 먹은 여자아이와 서너 살 사내아이
    어린 남매가 나란히 앉아 똥을 눈다
    먼저 일을 마친 동생이 엉거주춤 엉덩이를 쳐든다
    제 일도 못 다 본 누나가
    제 일은 미뤄놓고 동생의 밑을 닦아준다
    손으로,
    꽃잎 같은 손으로

    안개가 걷히면서 망고나무 숲이 보인다
    인도의 아침이다
    (/ '예토(穢土)라서 꽃이 핀다' 전문)

    예토의 ‘예(穢)’는 ‘똥’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흔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예토라고 한다. 똥들이 가득한 이 땅, 누나에게 똥을 눈 밑을 맡긴 채 엉덩이를 ‘쳐들고’ 앉아 있는 동생과 그런 동생의 밑을 닦아주는 누나. 그 "꽃잎 같은 손"은 예토를 헤집고 한 송이 꽃이 되어 시인의 눈앞에 피어난다.

    집으로 가는데,

    큰물에 떠내려왔다가
    판문점 넘어가는 북쪽의 사람들처럼
    이쪽의 옷은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만세를 외치며
    냅다 뛰어 달아나지 못하고

    집으로 가는데,

    돌 지난 아이 남겨두고 추방되는
    베트남 여자처럼
    아픈 몸으로
    처음 올 때 입었던
    그 옷을 입고.
    (/ '하구의 일몰' 전문)

    이 시의 주체가 ‘하구의 일몰’에서 본 것은 다만 풍경이 아니라 집으로 가는 약한 자들의 모습이다. 이 세계에 자신의 몫이 없는 이들의 모습이 해와 함께 서서히 진다.

    어떻게 생긴
    새가
    저렇게 슬피
    울까

    딱하고 안타깝고
    궁금해서
    밤새 잠을 못 이룬 어떤 편집자가
    자기가 만드는 시집에는

    시인의
    얼굴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뒤로부터, 시집에는 으레
    새의
    얼굴이
    실렸다.
    (/ '새의 얼굴' 전문)

    ‘딱하고 안타깝고 궁금해서’ 슬피 우는 새의 얼굴이 궁금하다. 타자의 울음을 듣고 그 얼굴을 궁금해하는 것. 타자의 울음을, 슬픔을 대면하고 응답하고자 하는 것. "윤제림의 시쓰기에서 힘없고 연약한 얼굴들, 그 무방비의 얼굴들 깊숙한 곳에서 만나는 것은 이 얼굴들의 ‘가늠할 수 없음’이다. 윤제림 시 특유의 위트마저도 결국 감동스러운 것은 이 연약한 존재들에 대한 느꺼운 감수성 때문이다."(이광호, 해설에서) 그리하여 시집에 실리는 시인들의 얼굴은 슬프게 우는 바로 그 새의 얼굴이다. ‘얼굴의 윤리학’이 가장 깊숙이 자리잡은 곳이 바로 시(詩) 아니겠는가.

    ‘그대의 얼굴’이 풍경을 뚫고 나온 그 순간, 그대는 깊고 다른 시간 속에 있다. 당신 얼굴이 나타날 때, ‘나’는 당신의 가없는 시간에 다가간다.
    (/ '이광호 - 해설 [풍경과 얼굴]' 중에서)

    [시인의 말]

    어깨에 고장이 생겨서, 한쪽 팔을 잘 쓰지 못한다. 당연히 다른 한쪽이 수고가 많다. 일 없는 이쪽 팔은 하릴없이 두 곱의 일을 떠안게 된 저쪽에 미안해서, 숨도 몰래 쉬는 눈치다. 가만히 매달려 있다. 팔이 둘인 것이 새삼 고맙다. 양팔이 날개가 아닌 것이, 내가 조류가 아닌 것이 다행스럽다.
    어떤 시간이 와도 시절을 탓하지 않고, 어떤 세상이 와도 공밥은 먹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 시는 조화와 평화를 꿈꾼다.

    2013년 12월
    윤제림

    목차

    시인의 말

    1부
    내가 살을 빼야 하는 이유
    예토(穢土)라서 꽃이 핀다
    설산 가는 길
    설산 가는 길 2
    설산 가는 길 3
    안나푸르나 저녁놀
    타클라마칸
    낙타
    물위의 학교

    섬 2
    수몰(水沒)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은각사 가는 길
    풍력발전
    소나무는 언제나 절벽 위에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곳

    2부
    국세청에 드리는 제안
    산수문경(山水紋鏡)
    목련꽃도 잘못이다
    우리나라 악기
    돌탑 꼭대기에 저 돌멩이
    의자들이 젖는다
    진달래
    춘일(春日)
    숙련의 봄
    작년 그 꽃
    동갑
    오십 청년을 위한 사랑 노래 소순의 결혼을 축하하며

    우리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
    떠나가는 배
    하구의 일몰
    안씨의 공부
    백두산은,

    3부
    새의 얼굴
    고양이가 차에 치었다
    제물포 봄 밀물
    박영준씨의 위로를 받으며 교문을 나왔다
    오규원씨의 집
    시인 이성선
    냉장고도 없는 사람에게
    지나가던 사람이 배병우 사진
    세검정에서 벽계수를 보다
    오류 선생은 낮술을 마신다
    함민복씨의 직장
    세 가지 경기의 미래에 대한 상상
    행선(行禪)
    미당(未堂)의 숙제


    4부
    가야산 홍류동
    살아남은 자의 슬픔
    당간지주(幢竿支柱)
    당간지주(幢竿支柱) 2
    부석사에서
    매미
    옛사랑은 라디오를 듣는다
    터미널의 키스
    미국에 가면 워커를 찾으시오
    꽃을 심었다
    별주부의 근황 화순 쌍봉사에서
    토끼 부인의 망부가
    곽씨 부인 소식
    이몽룡씨 부부의 일일(一日)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후일담

    해설 | 풍경과 얼굴
    | 이광호(문학평론가)

    본문중에서

    나는 곧 인도에 도착할 것이다, 길을 모르니
    릭샤를 부를 것이다

    체중 미달로 병역이 면제된
    본희 형보다 가냘픈 사내에게,
    꽃을 밟아도 꽃잎 하나 다치지 않았을
    피천득 선생만큼 가벼운 남자에게
    몸을 맡길 것이다

    사내는 나를 옮겨 실으며
    눈으로 물을 것이다
    뭐가 들어서 이렇게,
    불룩하지요?

    그러고는 옛날 서울역 지게꾼처럼
    기를 쓰고 일어나며 페달을 밟을 것이다
    릭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할 때
    맨발의 사내는
    혼잣말처럼 또 이렇게 물을 것이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무겁지요?
    (/ '내가 살을 빼야 하는 이유' 전문)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방법 하나는
    노래하며 걷거나
    신발을 끌며 느릿느릿
    걷는 것이다

    저를 모르시겠어요, 눈물을 훔치며
    손목을 잡는 버드나무가 있을라
    마침 흰구름까지 곁에 와 서서
    뜨거운 낯이 한껏 더 붉어진 소나무가 있을라
    풀섶을 헤치며 나오는 꽃뱀이 있을라

    옛사랑은 고개를 넘어오는
    버스의 숨 고르는 소리 하나로도
    금강운수 강원여객을 가려낸다
    봉양역 기적 소리만으로도
    안동행 강릉행을 안다

    이젠 어디서 마주쳐도 모르지
    그런 사람 찾고 싶다면
    노래를 부르거나, 신발을 끌며 느릿느릿
    걸을 일이다

    옛사랑은 라디오를 듣는다.
    (/ '옛사랑은 라디오를 듣는다' 전문)


    자고 일어난 산이 거울을 보네
    못물 가득한 논에 엎디어
    제 얼굴을 보네
    작년 봄 뻐꾸기 울 때 보고 지금 보네.
    그새,
    당신이 좋아하던 꽃은 지고
    내 머리맡에 와 울던 새도 멀리 떠났지,
    늙은 굴참나무는 아주 눕고
    내 놀던 바위는 저만치 굴러가버렸지,
    창식이 삼촌은 죽어서 올라오고
    몇 마리 짐승은 길에서 죽었지.
    민박집 뒷산이 거울을 보며 우네,
    작년 얼굴이 아니네
    이 얼굴은 아니네
    고개를 흔들며 우네.
    장화 한 짝과 막걸리 병과 두꺼비가 보이는
    논두렁에서 산이 우네,
    식전부터 우네.
    건너편 솔숲에서 자고 나온
    백로 한 마리가 무심코 논에 들어섰다가
    죽은듯이 멈춰 서 있네.
    산수문 흐려진 거울 복판에
    서 있네.
    (/ '산수문경(山水紋鏡)' 전문)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0.01.21~
    출생지 충북 제천
    출간도서 10종
    판매수 594권

    충북 제천에서 나고 인천에서 자랐다.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삼천리호 자전거]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 등이 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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