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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일이 지나고 오늘 : 이성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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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적을 수 있는 건 너의 목소리를 뺀 나머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세계에
    누구의 것도 아닌 단어로 쌓아 올리는
    빈칸의 건축


    "무거우나 끝내 발랄하고, 튼튼하지만 끝내 그 안에 허물어짐과 비어 있음을 포괄하는"(김정환) 이성미 시인의 두번째 시집 [칠 일이 지나고 오늘]이 출간되었다. 세상을 예민하게 기록했던 첫번째 시집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이다. 혁명은 끝났고 청춘은 지나갔다. "아무것도 아닌 밤"을 아무것도 아닌 나로서 그저 "오늘"을 살아내며, 시인은 지루하여 오히려 지난한 삶을 똑바로 마주 보기로 한다. [칠 일이 지나고 오늘]은 부를 수밖에 없는 이름들로 단단한 빈집을 세우고 무너지고 증발하고 사라지는 것들로 속을 채워 꾸려낸, 슬픔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내놓은 이성미의 정직한 고백이자 '오늘들'의 기록이다.

    슬픔과 함께 걷기―"우리는 슬픔으로 이루어진 덩어리니까"
    정신과 의사이자 죽음학의 대가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환자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의 심리 변화를 다섯 단계로 설명했다.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인', 왜 하필 나인가 원망하는 '분노', 피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협상', 현실에 절망하는 '우울',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용' 단계가 그것이다. 죽음에 빗대기는 어폐가 있지만, 언어를 다루는 예술가는 제가 사용한 말이 의도했던 의미 그대로 다른 이에게 온전히 가닿을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비슷한 좌절을 겪는 듯하다. 이성미의 이전 시집이 분노를 다듬고 우울을 매만져 뜻밖으로 산뜻하고 발랄하게 빚어낸 결과물이라면, 이번 시집 속 이성미의 시들은 첫번째 '수용' 이후, 슬픔의 다섯 단계를 어렵사리 넘어온 자신의 수용 방식을 끊임없이 허물고 부서뜨리면서 오히려 공고히 하고 있다.

    부서진 말들의 건축술―"그는 손에 쥐고 놓지 않았지. 반짝이는 모래 한 줌"
    이성미는 끊임없이 형식을 만든다. 이런저런 이름을 붙이고 단호한 마침표들로 견고하게 외벽을 쌓는다. 하지만 실은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것을 그것으로 만들어주는 독특한 불순물들을 너무도 말끔히 닦아버려 '그것'으로서 더는 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한 일임을 잘 알고 있다.

    돌멩이가 돌멩이 밖으로 굴러 나갈 때
    그가 돌멩이! 부르니
    돌멩이는 떨어뜨렸다
    돌멩이답지 않은 것들을

    너의 이름을 부르자, 그 자리에 꽃가루처럼 떨어지는 것들
    너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너

    그래서 돌멩이의 이름을 지우는 일
    꽃을 꽃밭에 숨겨두듯이

    그래서 돌멩이를 지키는 일
    이름을 부르면
    손에 쥐고 싶어지는 마음에 대하여
    이름에 대답하면
    위험에 빠지는 일에 대하여

    [......]

    어쩔 수 없이 돌멩이! 부르고 나면
    내가 한 짓을 고백해야지
    이름을 불러, 돌멩이의 서늘한 숨결에 손수건을 덮은 일
    이름을 불러, 너의 분홍빛 맨발에 양말을 신겨준 일

    ―[돌멩이라는 이름―돌멩이에게] 부분

    얼굴과 목소리가 희미해져서 나는
    네가 준 이름표를 달고, 답이 결정된 질문에 답한다.
    네가 정해준 배역을 달고 연기한다.

    이 이야기 밖에는
    내가 두고 온
    모래알같이 작은 얼굴들.

    그 얼굴들을 지키러
    너의 이야기에서 나가야겠다.

    ―[스토리텔러] 부분

    그래서 시인은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부르고 나면 이어 자신의 행동을 "고백"한다. 어쩐지 동화처럼 알쏭달쏭하면서도 깊이 들여다보면 상당히 직관적인, 시들의 제목과 총 네 부로 나뉜 부제목들을 그 '고백'의 일환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무엇의 '형식' '방식' '이름' 등 정직하게 고백한 제목이 눈에 띄는데, 이미 불완전하고 불충분할 줄 알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가닿기 위해 쌓아 올린 단단한 외벽의 빈집들은 와르르 무너지고 손 틈새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같이 작은 얼굴들"로 채워진다.

    시인은 이해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므로 "형식으로서 만나고 말을 건네고 손을 잡는다. 그러니 형식에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고 그 안에서 호흡하기로 한"(뒤표지 글) 것이다. 호흡할 수 있도록 숨구멍을 만드는 것은 형식의 빈집을 채우는 질료들이다. '형식' '방식' '이름'의 공고함과 대비되는 텅 비고 모자란 것들―아담의 것도 이브의 것도 아닌 시간, 손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 하얀 벌들이 와글거리듯 밤하늘에 휘몰아치는 눈보라, "말린 꽃잎 가루처럼" "점점이 떨어지고 날리"([未安])는 "부서진 말들"([밤의 서랍])처럼, 언제든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고 언젠가는 자연스레 허물어질 "휙휙 지나가는 것들"(뒤표지 글,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2005)로 채워진다.

    오십 편의 오늘들―"불쑥 시작되고 불쑥 끝나는 것들이 있어"
    이성미는 쥐었다가 놓치고, 밝아졌다 꺼지고, 있었다가 사그라드는 질료들로 '빈칸의 형식'을 채웠다가 비워내고, 세웠다가 무너뜨리는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지는 싸움"을 이어 나간다. 그리고 그 작업이 이루어지는 '오늘'은 시인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하루다. "아무것도 아닌 밤에,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무것도 아닌 밤에 대해서 쓴다"(뒤표지 글).

    한 사람이 가자 이어달리기하듯, 다른 사람이 왔다. 그는 가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넘겨주었다. 나는 파란 바통이 되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칠 일이 지나고...

    오늘은 일곱 개의 태양이 뜬 날.

    오늘은 일곱 나라의 언어로 종알거린다.
    나는 오늘의 입을 보고 있다.

    오늘은 주름치마를 입고
    시장 좌판을 펼치듯 하루를 펼친다.

    오늘은 뜨거운 시간, 서늘한 시간, 밝은 시간......
    각자 다른 길이와 온도를 가진다.

    ―[칠 일이 지나고 오늘] 부분

    나는 너를 반복한다. 너를 알 수 없을 때
    너의 이름을.
    나는 언덕을 반복한다.

    [......]

    노래를 부르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
    마치 형태가 있다는 듯이
    손으로 부드럽게 쥐어서
    너에게 줄 수 있을 것 같다.
    너에게서 건네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반복의 이유] 부분

    십일월은 한 손으로
    글자가 적힌 페이지를 뜯어낸다.
    십일월은 다른 손으로
    반복해서 창문을 그린다.

    창문 뒤에서 창문이 열리고
    창문 옆에서 창문이 투명해질 때까지

    ―[십일월에는] 부분

    그러나 한 편 한 편마다 '오늘'들이 켜켜이 쌓여 묶인 이 시집 속에서 오늘은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떼어내진, 어떤 '지점'에 가까울 것이다. '오늘'은 "재처럼 희미한" "개인의 전설" 같은 어제나 "누구도 누워본 적 없는"데도 "무한 반복되는 노래"처럼 헛되이 이야기되는 내일과 다르다. 생활을 구성하는 일주일, 칠 일이 지나고 그다음 '오늘'은 "오늘의 낙엽이 떨어"지고 "그 위에 다른 오늘의 낙엽이./층층이 쌓여가는 동안"([오늘은 보도블록])이며, "아무것도 품고 있지 않"은 "그곳을 향해/마음이 잠깐 열리는 시간"([그곳])이다. 오늘 이전에도 다음에도 다른 오늘이 있을 뿐, 나의 오늘이 누군가의 내일일 거라는 오만이나 누군가의 어제가 나의 오늘일 거라는 지나친 겸양 없이, 이성미의 '오늘'은 "불쑥 시작되고 불쑥 끝"([나도 나를])난다. "당신의 것도 엄마의 것도 아닌 시간에 누구의 것도 아닌 단어들이 태어나기를 빌며, 육각형의 빈칸들을 가득 지어놓"은 시집 [칠 일이 지나고 오늘]은 이렇게 끝나지만, 누군가는 기억할 것이다. "당신의 빈칸에서 처음으로 번쩍 눈떴던 그 순간을"(허윤진).

    이십 년 동안 잘못 알고 먹은 푸성귀의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된 날 시를 쓰던 때가 있었다. 서랍에 넣어 두었던 굳은 초콜릿을 버리면서 시를 쓰던 때가 있었다. 아직도 그럴 땐 슬프지만.

    흐린 저녁 속에는 없는 게 많다. 그날도 어제와 같았고, 아무것도 아닌 밤이 왔다.

    아무것도 아닌 밤에,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무것도 아닌 밤에 대해서... 쓴다. 쓴다는 것.
    다른 사물들과 우정을 나누고, 그 우정의 기록. 아니, 그 후가 아니라 쓰면서 우정이 시작된다. 쓰는 동안 나는 우정 속에 머물 수 있다.

    나에게는 형식이 있고 너에게도. 그러니 우정에도 형식이 있다. 형식은 변하지만. 우리는 형식으로서 만나고 말을 건네고 손을 잡는다. 그러니 형식에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고 그 안에서 호흡하기로 한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그렇다고 형식이 슬프지 않다는 건 아니다. 우리는 슬픔으로 이루어진 덩어리니까, 슬픔을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다.

    목차

    1. 모래
    뺄셈의 춤
    집의 형식
    직각
    오후와 나
    그림자를 줄이는 방식
    와요
    초록뱀의 꼬리가 사라지고 사흘 또는 일주일
    일요일 오후 네 시
    물방울들의 귀가
    돌멩이라는 이름
    거짓말에 대한 거짓말

    2. 온도

    십일월에는
    추위에 대하여
    북극에서 온 냉장고
    송아지의 밤
    호른과 기차
    식물의 밤
    달로 가는 줄사다리
    그들은 달린다

    3. 오늘

    납작한 아침
    다리 위 북극
    칠 일이 지나고 오늘
    오늘은 보도블록
    친구들의 행진
    지는 사람
    스토리텔러
    항아리가 없는 항아리이야기
    잠깐 들리는 음악
    처음
    휴가지 사람들
    중얼중얼 초청장
    집으로 가는 사람들
    나도 나를

    4. □□

    빈집의 형식
    셜록 홈즈 중고 가게
    눈의 형식
    웬디의 발
    봄의 안쪽
    번개. 철근. 나무.
    연기의 형식
    내일의 현관
    아다지오
    침묵과 번개
    반복의 이유
    그곳
    그런 향기
    밤의 서랍
    상륙
    관찰의 끝
    未安

    해설|영하의 여왕 폐하·허윤진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시인 이성미는 1967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2001년 [문학과사회]에 시 [나는 쓴다]외 3편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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