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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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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오직 상상력 하나로 지어 올린 낯설고 기묘한 이야기 박물관

    2012년 4월에 출간된 [블랙 주스]는 마고 래너건이라는 생소한 호주 작가의 이름을 국내에 알리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은유와 상징이라는 가장 문학적인 방식으로 구현해 낸 낯설고 기묘한 세계와의 만남은, 장르적 성격이 강한 SF?판타지에 익숙한 우리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블랙 주스]를 읽은 독자들의 찬사는 입소문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고, "깊이 있는 세계관,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장, 신선하고 시적인 언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사계절1318문고 여든여덟 번째 책 [화이트 타임]은 마고 래너건의 또 다른 작품으로, [블랙 주스]보다 4년 앞서 출간된 책이다. 오랫동안 청소년 장편소설을 써 온 작가가 처음으로 쓴 판타지 단편집으로, 낯설고 기묘한 '마고 래너건 식 세계'의 시원(始原)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마고 래너건은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독창적인 상상력과 우아한 언어를 갖춘 작가'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작품집에 실린 단편 [여왕의 관심]은 오리얼리스 상 청소년 단편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까지 안았다.
    [화이트 타임]에는 총 열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모든 이야기는 별다른 배경 설명 없이 독자들을 곧장 사건 속으로 끌어당긴다.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SF물부터 중세시대 왕이 등장하는 시대물과 요정이 나오는 판타지까지, 작가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자들을 이쪽에서 저쪽, 혹은 그 사이 어디쯤에 데려다 놓는다. 물기를 뺀 담백한 묘사와 단정하면서도 화려한 은유,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는 상상력 등 마고 래너건만의 매력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그 경계에 놓인 열 편의 이야기

    표제작 [화이트 타임]은 시간 여행과 직업 체험이라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 소재를 하나로 묶은 매력적인 이야기이다. '시간 밖의 시간', '모든 시간이 모인 시간'으로 묘사되는 '화이트 타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의 개념에서 벗어난 일종의 무시간 지대. 주인공 셔닐이 교내 체험 활동의 일환으로 화이트 타임 연구소를 방문하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는 과정을 그렸다.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 자체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이 돋보이는 점은 십대에게 필요한 성장소설의 역할을 썩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화이트 타임에 들어간 셔닐의 내면에 이제껏 가져 보지 못한 새로운 생각과 의심, 불안이 싹트는 변화를 섬세하게 따라간다.
    [봉헌식]은 중세 시대 어느 왕국에서 일어난 하루의 일을 담고 있다. 어느 날, 공주의 옷 시중꾼 하몬은 전쟁터에 나갔던 공주의 부음을 듣는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하몬의 쌍둥이 아기들이 봉헌식을 치르는 날이기도 하다. 공주의 시신을 단장하기 위해 봉헌식 준비도 제쳐 놓고 궁으로 향한 하몬은 공주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왕에게 그녀의 참혹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뒤늦게 찾아온 왕이 자신의 딸을 바라보며 짓는 냉혹한 미소를 엿본 순간, 마치 창에 꿰뚫려 마룻바닥에 꽂혀 버리는 듯한 강렬한 충격을 받는다. 시종일관 하몬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시대 배경이나 구성은 물론이고, 타인의 관찰을 통해 삶의 아이러니를 포착한다는 점에서 [블랙 주스]에 실린 [나의 주인님]과 비슷하다.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살이 찌는 이상한 세상의 이야기를 그린 [말하고 키스하라]는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을 숨기고 속에 쌓아 두면 살이 된다는 독특한 설정에서부터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주인공 에번도 한때 뚱보였다가 상담사의 도움으로 살을 거의 다 뺐지만, 또다시 살이 찔 기미가 보여 초조해한다. 에번을 살찌게 만드는 비밀은 다름아닌 소꿉친구 앤트워넷을 이성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 마음에 숨겨 둔 비밀이 몸의 살이 되어 드러나는 세계에서, 한 사춘기 소년이 자신 안에 자라나는 알 수 없는 마음을 조금씩 자각하고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 신선하게 그려진다.
    [사랑스러운 피핏]([블랙 주스])에서 코끼리의 세계를 멋지게 그려낸 래너건은 그보다 앞서 쓴 [여왕의 관심]에서 벌거숭이두더쥐의 사회를 매력적으로 묘사했다. 이야기의 주인공 디볼은 누구보다 뛰어난 잔사로, 타고난 용맹함 덕분에 여왕의 눈에 들어 번식 담당이라는 영광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것 때문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더 이상 긍지 높은 전사로서 살아가지 못한다. 디볼은 새로운 신분에 저항하려 하지만, 결국 본능 깊숙이 각인된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군체의 번영을 위해" 운명에 몸을 내맡긴다.
    [커다란 분노]에서는 현실과 다른 세계가 만난다. 남편 중심의 결혼 생활에 지친 빌리는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바닷가로 도망쳐 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 쓰러진 무사를 발견한다. 엄청나게 커다란 몸에 갑옷을 걸치고, 난생처음 듣는 언어로 말하는 무사의 모습은 결혼 때문에 잃어버린 본성을 찾아가는 빌리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암시한다. 남자를 치료해 주는 동안 빌리는 그가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빌리는 자신을 데리러 온 남편에게 그간 억눌린 분노를 쏟아내고,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떠난다.
    [밤 백합]은 열 편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낯선 서사 방식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상에서 구차한 삶을 살고 있는 첸코. 어느 날 그의 앞에 공중을 떠다니는 내장 덩어리가 나타난다. 첸코는 마치 강아지처럼 자신을 따르는 그것을 '백합'이라 부르며 정을 붙인다. 백합이 어떤 초자연적인 생명체인지, 첸코의 환상인지, 그 정체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세상에서 어린아이가 찾을 수 있는 위안이란 전쟁의 상흔과도 같은 기괴하고 뒤틀린 백합일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메시지는 명징하게 다가온다. 결국 첸코의 집은 포탄에 맞아 산산조각이 나고, 집 안에 있던 백합도 사라져 버린다.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이제껏 끊임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해 온 마을 사람들처럼 첸코도 상실의 아픔을 딛고 다시 삶을 이어 간다.
    [소원이 없는 소녀]에는 다른 사람의 소원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 소녀가 등장한다. 주인공 테스의 눈에 사람들은 저마다 갈망하고 집착하는 대상을 짐짝처럼 지고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테스는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 속을 훤히 드러낸 채 돌아다니는" 것을 경멸하면서도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외로워한다. 그런 테스 앞에 키노이라는 소년이 나타난다. 아무런 욕망도 결핍도 없이 그저 지금 그대로의 자신에 진심으로 만족하는 소년 키노이. 테스는 그에게 호감을 느끼며 자신도 닮길 간절히 원한다. 흥미로운 소재와 반전이 숨어 있는 결말, 한 편의 자기 고백 같은 진솔하고도 내밀한 목소리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그밖에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연상시키는 네 요정의 아기자기한 사랑 이야기 [한여름의 임무]와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돋보이는 [웰컴 블루],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강하게 묻어나는 [재산] 역시 독특하고 낯선 세계를 구체적이고도 세밀한 묘사로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이렇듯 [화이트 타임]은 고도로 절제된 서술 기법과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 기시감이 느껴지는 새로운 세계의 창조 등 래너건 특유의 매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제 막 마고 래너건이라는 매력적인 작가를 알게 된 독자들에겐 입문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며, 이미 [블랙 주스]를 읽고 팬이 된 독자라면 그 독창적인 스타일의 출발점이 어딘지 확인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마고 래너건이 축조한 세계에서는 낯선 것은 익숙하게, 익숙한 것은 전혀 낯설게 다가온다. 그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어느 순간 독자를 두 세계의 경계 어디쯤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놓는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가 지닌 매력이자 문학이 품은 힘이라는 것을 그는 열 개의 짧지만 강력한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있다. "훌륭한 SF와 판타지 문학은 타자가 아닌 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관해 사유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화이트 타임]은 그것을 완벽하게 구현해 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책장을 펼치면 오직 상상력 하나만으로 지어 올린 [화이트 타임]이라는 이야기 박물관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여러분을 기다릴 것이다. 이제 그곳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겨우 몇 페이지만으로도 당신을 어지럽히고, 끌어당기고, 눈멀게 할 테니.

    수상
    [화이트 타임]
    2007년 미국 청소년도서관서비스협회 최우수 청소년도서
    2007년 뉴욕 공립도서관 십대를 위핸 책
    2007년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교 협동 어린이책센터 선정 도서

    '여왕의 관심'
    2000년 오리얼리스 상 청소년 단편 부문

    추천사

    충격적인 이야기에서 쓰라린 이야기까지, 교활한 이야기에서 비극적인 이야기까지, 상상력 넘치는 반전과 세부 묘사로 가득한 한 편 한 편의 강력한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강렬하고 복합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커커스 리뷰

    마고 래너건은 판타지에 생명을 불어넣어 당신의 집 현관문 앞에 마치 현실의 기억처럼 떨어뜨려 놓고 간다. - 그레그 베어(미국 과학소설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생생하고, 독창적이다. 또 하나의 성공작. - 혼북

    이 오묘한 단편집은 문학의 창조성과 표현성을 넓고 큰 방식으로 찬양한다. -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마고 래너건의 대가다운 솜씨를 또 한 번 드러내는 각각의 이야기는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감성을 뒤흔들고,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 북리스트

    질감 있는 언어와 상상력 넘치는 상황이 독자들을 이 도전적인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길 것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단편이기 때문에 세계와 인물과 개념을 천천히 소개할 시간은 없다. 작가는 독자에게 곧장 자신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와 이해하라고 권한다. - BCF 북리뷰

    쉽게 읽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름답게 다루어진 시적이고 독창적인 언어가 마음을 움직인다. - 북트러스트

    마고 래너건은 단편 형식의 제한되고 통제된 공간이라는 이점을 살려 다양한 현실과 시간, 장소, 존재를 탐구한다. 독자들은 기묘한 이야기에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지만, 분위기에서 플롯으로 신속하게 초점이 바뀌면서 수수께끼도 이내 풀리게 된다. -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교 협동 어린이책센터

    남반구에서 온 열 편의 이야기가 인간 정신의 빛과 어둠을 탐구한다. - 미국 청소년도서관서비스협회

    목차

    1. 화이트 타임
    2. 봉헌식
    3. 말하고 키스하라
    4. 여왕의 관심
    5. 커다란 분노
    6. 밤 백합
    7. 소원이 없는 소년
    8. 한여름의 임무
    9. 웰컴 블루
    10. 재산

    작품 해설

    본문중에서

    "사실 가장 괴상한 건 말이다....... 셔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시시하다고 생각할 만한 녀석들이야. 인간을 닮은 녀석들. 그 녀석들은 그냥 일어나서 여기를 저벅저벅 걸어 나가 우리랑 같이 살아도 될 것처럼 보여.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럴 순 없지. 살짝만 긁히거나 뭘 잘못 먹기만 해도 미치거나 폭발하거나 죽어 버릴 테니까 말이야.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다르다는 거, 그게 바로 우주의 신비야."
    ([화이트 타임] 중에서/ p.39)

    나는 숨을 죽였다. 왕과 공주를, 산 얼굴과 죽은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는 '일어나, 공주!' 하고 속으로 말했다. 나는 공주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를, 그래서 아버지가 던지는 그 시선을 막아 낼 수 있기를 바랐다. 왕은 비록 등을 구부리고 힘없이 서서 비탄에 젖어 있었지만, 얼굴에서는 한 방울의 눈물도 떨어지지 않았기에. 왕의 눈에서는 그저 무한한 만족감이 서린 차가운 빛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봉헌식] 중에서/ pp.76∼77)

    상담을 받게 되면 상담사들은 맨 처음 뚱보들을 한데 모아 놓고 자기 몸속을 상상으로 그려 보게 한다. 먼저 내 혈관 영상을 보여 주면서 건강한 적혈구 사이를 떠다니는 노란 방울 모양의 지방 덩어리들을 가리킨다. 그러고는 이야기 벌레들이 혈관 속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자루에 구슬을 담듯 지방 덩어리들을 깔끔하게 모아 배설 기관으로 보내는 광경을 그려 보게 한다. 내 몸은 그렇게 매끄럽게 돌아가는 조그만 사회이고 나는 그곳의 지도자라서 어디든 내가 원하는 곳으로 벌레들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말하고 키스하라] 중에서/ pp.95)

    처음으로 디볼은 머릿속의 지도를 볼 수 없었다. 디볼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점점 강하게 다가오는 여왕의 욕구가 저릿저릿한 덩굴손을 뻗어 자신의 등뼈를 휘감고, 자신의 허리에서 뱀의 숨결처럼 야비하고 뜨거운 공포를 자아내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여왕의 관심] 중에서/ pp.130)

    우리는 단단한 모래밭으로 내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스모 경기장만 한 원의 둘레에 손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깊이로 도랑을 판다. 이윽고 결투가 시작된다. 씨름도 하고, 나무 막대기나 검을 들고 싸우기도 한다.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들이 먼저 나온다. 이 조그만 야생 꼬마들이 한 명 한 명 발을 헛디뎌 모래밭에 넘어질 때마다 모두들 무척 즐거워한다. 다음으로 좀 더 큰 아이들이 적절한 상대를 정해 맞붙고, 규칙도 더 확실해진다. 결투는 포옹으로 시작해서 포옹으로 끝나고, 상대방이 정말로 불리할 때는 적당히 힘을 빼고 친다. 쉽게 해치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되 진짜로 해치우지는 않는 것이다.
    ([커다란 분노] 중에서/ pp.163∼164)

    밤이면 백합은 등불처럼 환해졌지만, 빛을 내는 것은 아니었다. 바깥에서 불빛이 비칠 때 보면 백합은 그때그때 다른 곳에 있었다. 습기로 얼룩진 구석에 소복이 쌓여 있기도 하고, 첸코 바로 위에 떠서 투명한 공기 층 같은 곳에 밑바닥을 납작하게 붙이고 물웅덩이처럼 퍼져 있기도 하고, 창가에 후줄근하게 늘어져 있기도 했다. 어느 날 밤에 첸코가 잠에서 깼을 때는 백합이 물 위에 떨어진 기름처럼 달빛이 비치는 방 안에 죽 펼쳐져 있었는데, 훤히 드러난 장기들이 방문 근처에 한데 모여 가만가만 흔들리고 있었다.
    ([밤 백합] 중에서/ pp.182∼183)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사람을 좋아하기가 힘들다. 나는 이따금 자기 속을 훤히 드러낸 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가증스러워 보인다. 걸음걸이며 옷차림이며 '내가 잘 알아서 하고 있어.' 하고 말하는 바로 그 표정에 자신의 나약함이 다 드러나는데, 하물며 몸에 구멍이 뻥 뚫려 있거나 다른 사람들을 짐짝처럼 질질 끌고 다니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것들은 나한테만 분명하게 보이는 거라고 말한다. 나는 나한테는 그토록 충격적일 만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부럽고, 또 가증스럽다. -[소원이 없는 소년] 중에서/ pp.208)

    모토가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는 머리카락 풀밭에 앉아 있었다. 모토는 모자 가방에서 은종이 달린 별무늬 모자를 경건한 태도로 멋지게 꺼내 들었다. 모토가 그 모자를 쓰니 높으신 마법사 분위기가 제대로 풍겼다. 모토는 벨벳 천에서 구체(球體)를 꺼내 부드럽게 윤을 내어 준비를 하고는 다시 벨벳 천으로 구체를 감싸 윗옷 속에 집어넣었다.
    ([한여름의 임무] 중에서/ pp.245∼246)

    "이 꽃은 이름이 뭐예요?"
    퀘이드 씨는 라피다리움 어쩌고 하는 화려한 이름을 말한다.
    "대개는 '윈섬 블루', 또는 '웰컴 블루'라고 부르지."
    "'블루'요? 파랗지는 않은데! 파란 건 저기 하늘이 파랗죠! 이 꽃은 흰색이잖아요. 보랏빛이 살짝 도는."
    "아, 그럼. 하지만 보는 사람 눈에 파랗게 보이면 파란 거야. 세상에는 그런 것들이 많단다."
    "예를 들면, 아름다움 같은 거요?"
    내가 '아름다움' 같은 단어를 입 밖에 내다니 이상하게 들린다. 여기서, 이 노인 앞에서 말하니 더욱 이상하다.
    ([웰컴 블루] 중에서/ pp.278∼279)

    나는 현명하게 행동할 것이다. 반란군의 허튼 짓거리를 멀리하고, 악착같이 돈을 지키고,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해 보이는 방식으로 천천히 사업을 일으킬 것이다. 덩굴 구역과 열쇠 구역 사이에 있는 전문 공방들, 문 옆에 점잖은 명판만 달려 있는 가게들. 눈앞에 있는 이 동전들로 그런 가게 하나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제는 너무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나는 범법자로 사는 매력을 맛보았지만, 당연히 바로 여기서 멈출 것이다. (...) 나는 강해질 것이고, 고독해질 것이고, 부자가 될 것이고, 입을 싹 닫고 침묵을 지키며 깨끗하게, 그렇게 살 것이다.
    ([재산] 중에서/ pp.328∼329)

    저자소개

    마고 래너건(Margo Lanaga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0~
    출생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출간도서 2종
    판매수 492권

    1960년 오스트레일리아의 뉴사우스웨일스 주에서 태어났다. 주방 보조, 백과사전 판매원, 사무원을 거쳐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했으며, 출판사의 권유로 십대 로맨스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되었다. 래너건은 첫 판타지 단편집 'White Time'(2000)을 출간하면서 독창적인 상상력과 우아한 언어를 갖춘 작가로 주목받았다. 이어 2004년 발표한 두 번째 단편집 '블랙 주스'가 세계 환상문학상 2관왕을 차지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낯설고 신선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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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곳곳에 묻혀 있는 좋은 작품들을 찾아 우리말로 소개하고 어린이의 정신에 지식의 씨앗을 뿌리는 책을 집필하는 어린이책 전문 기획실입니다. 옮긴 책으로는 [학교에 간 사자], [에밀은 사고뭉치], [종이 인형 다섯 자매], [안데르센 동화집](전7권)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마법의 두루마리] 시리즈, [놀라운 생태계, 거꾸로 살아가는 동물들], [신기한 동물에게 배우는 생태계]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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