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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 청 황실이 빚어낸 영광과 치욕의 증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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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지상 최대 제국 청淸 자금성의 환관(태감)들
    권력의 수족이자 핵심이었던 그들이 최초로 베일을 벗다

    환관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황실 관리체계
    중국 최후의 구중궁궐에 가려진 권력의 내밀한 일상
    천명을 거스른 비운의 사내들의 삶 다양하게 복원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은 환관(태감) 제도의 유래는 물론이고 거대한 자금성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갖가지 연회를 담당한 청대 태감 조직의 체계와 직무, 녹봉과 태감의 일반적 품성에
    이르기까지, 청대 태감 제도의 모든 것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궁중의 비화와 태감의
    불운한 일생을 조명함과 동시에 5000년 동안 이어져온 태감 제도가 최후에 이르러
    어떤 모습을 띠고 있었는지를 세세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 궁궐의 일상과 각종 연회를 담당한 환관들의 조직과 일상생활을 세밀하게 복원
    ◆ 환관의 기억과 시선으로 들춰낸 청 황실의 숨겨진 이야기들
    ◆ 광서제는 왜 산해진미를 놔두고 환관의 찐빵을 빼앗아 먹었을까?
    ◆ 함풍제와 동치제는 왜 천수를 누리지 못했을까?
    ◆ 서태후는 왜 환관에게 똥을 먹였나? 그녀는 대머리였나?
    ◆ 환관은 어떻게 ‘권력의 수족’ 역할을 했는가
    ◆ 가난 때문에 거세한 뒤 인간 이하의 삶을 산 환관들의 애환 생생한 육성으로 듣다

    동서고금의 결정적 장면을 가감 없는 필치로 소개하는 글항아리 ‘걸작 논픽션’ 시리즈의 제6권인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은 중국 역사상 최후의 환관(이하 태감太監)들이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한 황궁의 화려하면서도 쇠잔한 풍경이다. (이 책에는 환관이라는 명칭 대신 ‘태감’이 쓰인다. 태감은 명청 시대 환관의 우두머리를 이르는 말이다.) 이 책은 70대에 접어든 마지막 태감 신슈밍이 젊은 시절 25년 동안 궁중에서 직접 겪고 보고 들은 은밀한 황실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제1부 [궁중의 숨겨진 이야기들]과 마더칭 외 14인의 태감이 자금성의 사생활과 함께 태감의 한 많은 삶을 구술한 회고록인 제2부 [거세에서 풍찬노숙까지, 태감의 굴곡 많은 삶] 그리고 서태후가 상주하던 궁전인 영수궁에서 일했던 태감 겅진시를 인터뷰한 제3부 [즉문즉답: 청 황실을 말하다]로 구성되어 있다. 5000년 가까이 이어져온 비인간적인 환관 제도에 희생당했던 태감들이 청말과 중화민국 초 권력의 묘혈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술회하는 황궁은 거대서사와 영웅서사가 포착할 수 없는 소소하고 비밀스러우며 잔인하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다.

    청대 태감 제도의 모든 것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은 태감 제도의 유래는 물론이고 거대한 자금성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갖가지 연회를 담당한 청대 태감 조직의 체계와 직무, 녹봉과 태감의 일반적 품성에 이르기까지, 청대 태감 제도의 모든 것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궁중의 비화와 태감의 불운한 일생을 조명함과 동시에 5000년 동안 이어져온 태감 제도가 최후에 이르러 어떤 모습을 띠고 있었는지를 세세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약 1000명에 달했던 청대 내정 태감들이 제각각 어떤 소임을 맡아 청 황실의 살림을 운영했는지 상세히 보여준다. 각 부처를 열거해보면, 상전을 가까이 모시는 ‘상’, 태후와 같은 여주인을 모시는 ‘하’를 비롯해 차(차茶를 담당하는 곳), 선(주방), 약(약을 달이는 곳), 사(사방, 사무 총괄처), 불(불당佛堂), 전(전상殿上. 궁과 전을 관리하는 곳), 산(산차散差. 전달, 보고, 가마를 부르는 일, 궁문을 지키는 일을 담당한 곳), 화(남화원과 북화원 및 전 안팎의 생화를 관리하는 곳) 등이 있었다. 그 가운데 대내 핵심기구는 서태후가 머무르던 영수궁의 사방이었다. 사방에서는 태후 궁의 모든 금은보화와 비단 창고 관리, 장부의 출납 정리, 황족 부인들과 명부命婦(황제에게서 봉호를 받은 부인을 뜻하며, 주로 관리의 부인이나 어머니가 해당된다)들의 태후 궁 출입 파악, 공물 진상과 하사품 보관, 매일 밤 본궁 태감들이 전 안팎에서 교대로 서는 불침번 명단, 전 안에 두는 명단 패, 사방의 원장부 보존과 같은 일을 모조리 사방에서 관리했다. 핵심기구인 만큼 사방에 차출되는 태감은 모집한 태감 가운데서도 가장 총기가 있는 이들이었다. 이 외의 태감 집단으로 대표적인 것이 ‘보천동경반’이라는 극단이다. 이 극단은 서태후가 황족과 대신 및 외국 사절과의 연회 때 올릴 연극을 준비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이 책의 제1부를 쓴 신슈밍이 몸담은 곳이기도 하다.
    입궁 뒤 태감이 밟는 승급에도 엄격한 법도가 있었다. 입궁하면 스승이 되는 태감 밑에서 궁의 규범을 배운 뒤 소小태감으로 일한다. 그 이후 회사태감(보고를 올리는 태감), 파선태감(상차림을 담당하는 태감), 장안태감(태후의 모든 음식과 생활을 책임지는 태감으로, 책임이 큰 만큼 대내 태감 가운데 가장 권력이 컸다), 어전 수령태감, 본궁 총관태감을 차례로 거치도록 되어 있었다.

    최후의 환관, 신슈밍은 누구인가?

    이 책의 골자는 신슈밍이 쓴 제1부 [궁중의 숨겨진 이야기들]이다. 제2부와 제3부는 분량이나 비중상 보론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신슈밍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살펴보면 이 책의 윤곽이 잡힌다. 엮은이가 지적하듯 그를 규정하는 단어는 지식인이다. 그는 정식으로 태감이 되기 전 부경군왕부에서 군왕의 손녀에게 [대학] [중용] 등을 가르친, 청대 황궁의 태감으로는 몇 안 되는 지식인이었다. 청대의 태감은 대개 못 먹고 못 배운 가난한 집안의 자제였다. 1000명 가운데 1명 나올까 말까 한 ‘부자 태감’이 될 소망을 품고 거세한 채 궁에 들어온 이들이었다. 신슈밍 또한 부친의 사망 이후 부모와 자식, 형제를 부양하기 위해 태감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 그의 나이 23세 때였다. 다만 그가 10년간 유학을 공부했으며 수사학당과 태의원 시험에 응시했다 떨어진 유생 출신이라는 사실이 여느 과문한 태감과 변별되는 지점이다.
    군왕부에 있던 그에게 변통으로 태감이 될 기회가 생긴다. 태감이 되고자 하나 기하인(만주족) 명단에 들지 못한 이들에게 도주한 태감의 이름을 빌려 태감으로 일할 수 있게 허가해주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그는 본명 ‘신롄자’를 버리고 ‘장셴시’라는 이름으로 태감이 된다. 이후 ‘즈슈다오’라는 이름을 거쳐 신슈밍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보다도 ‘신선 장’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렸다. 관상과 복점에 능한 그에게 서태후 앞에서 점을 칠 기회가 생겼고, 이때 그를 마음에 들어한 서태후가 직접 ‘신선’이라는 별칭을 내린 것이다. 광서 28년(1902)에 서태후의 사무 총괄처인 영수궁 사방의 태감이 된 이후 서태후를 8년, 융유태후(광서제의 황후)를 6년, 단강태비(광서제의 후궁)를 10년간 모셨다. 신슈밍은 서태후의 명으로 ‘보천동경반’이라는 극단에서 연극 각본 쓰는 일과 추길(길일을 택하는 것) 책임을 담당했는데, 모두 서태후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이었다.
    이처럼 서태후의 총애를 받은 신슈밍은 교만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며 매사에 신중하고 본분에 맞게 처신해 궁중에서 이름이 높았다. 또한 잇속을 차리는 데 급급해 승급과 돈에 눈이 먼 대신 뛰어난 관찰력과 세상사에 대한 관심 그리고 타고난 친화력으로 청 황궁의 비사를 자연스레 많이 접했다. 이 책은 그가 출궁 뒤 포충호국사 주지승으로 있으면서 일기에 적어둔 그 자료들을 정리한 것으로, 청 황실의 내밀한 사생활을 엿보는 데 매우 중요한 참고자료다. "고백하는 사람은 진실을 말해야 하는 법이다"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사실만을 전하겠다는 확고한 책임의식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신뢰를 갖게 한다.

    소소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

    1) 황제의 허기
    황실의 삶은 모든 것을 누리는 듯해도 대대로 내려오는 법도에 구속되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상식에 속하는 정보다. 하지만 허기진 황제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황제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아닌 태감과 유모들의 손에 길러졌는데, 이들은 소아과 어의의 말을 철칙으로 삼아 한 줌의 융통성도 발휘하지 않고 극도로 경직된 방법으로 황제를 키웠다. 혹여 어린 주인이 탈이라도 날까봐 ‘음식을 절제해서 먹여야 한다’ ‘외출을 삼가야 한다’ 등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것이다. "어린 황제를 마치 사형수를 지키듯 엄격히 관리해 황제가 배가 고파 계속 우는 경우까지 있었다. (...) 광서제가 열 살쯤이었을 무렵에는 매번 태감 방에 올 때마다 먼저 먹을 것을 찾아 들고 도망쳤다. 태감이 쫓아와 무릎을 꿇고 애걸했지만 들고 나온 찐빵은 이미 절반이나 황제의 뱃속으로 들어간 뒤였다."
    (/ pp.105~106)

    황제가 장성해서도 사정은 별반 나아진 것은 없었다. 황제의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만 300명에 이르는 어선방에서 내놓는 48가지 음식이 모두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맛이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황제가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들었다가 탈 날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 p.105)

    2) 함풍제와 동치제의 때 이른 죽음
    내무부 관할 기구인 경사방은 황제가 언제 어느 여주인과 합방했는지를 기록해두었다. 임신 시기로 따지면 도광제의 다섯째 아들인 혁종이 넷째 아들인 함풍제보다 일찍 들어섰지만 오히려 열흘이나 늦게 태어났다. 함풍제의 생모인 효전황후가 진찰하러 오는 어의에게 매번 아이를 일찍 낳을 방법을 구했고, 어의가 이를 실현시킨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단명할 수도 있다는 어의의 경고대로 함풍제는 평생 병을 달고 살다가 불과 서른 살에 붕어하고 만다.
    (/ p.84)

    동치제는 체구가 건장하고 총명했으나 밤에 홀로 궁문을 넘어 기방에 들락날락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 일이 궁내에 알려지자 어머니인 서태후까지 나서 동치제를 권면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동치제가 화류병에 걸렸는데, 사실을 감히 말하지 못한 어의가 이를 천연두라고 고하고 말았다. 천연두로 오인해 처방한 결과 일찍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 p.52)

    잔인하고 놀라운 이야기들

    1) 대소변을 강제로 먹이고 자신은 사람의 젖을 먹은 서태후
    태감은 궁녀와 더불어 구중궁궐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황제를 ‘하늘의 사람’으로 떠받들기 위해서 비참한 운명을 감수할 ‘천한 노비’가 필요했다. 황궁의 주인들은 작은 일로도 엄한 벌을 내리기 일쑤였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잘못 걸리면 끔찍한 화풀이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잔인했던 일은 바로 서태후가 어느 나이 든 태감에게 그의 대소변을 강제로 먹여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이다. 한편 서태후 자신은 젖을 잘 내는 두 부녀를 선별해 이들의 젖을 먹었다. 이들이 몸에 꼭 붙는 진홍색 상의를 입고 유두만 드러낸 채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침상에 누운 채로 젖을 먹었던 것이다. 이 부녀들은 서태후의 건강을 위해 젖 내는 기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좋은 젖을 낼 수 있도록 산해진미를 먹었으나 젖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진 소금이나 간장이 빠진 음식들이었으니, 이들이 잘(?) 먹는 이유는 오로지 서태후에게 바칠 젖을 달게 만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 p.419)

    좋은 젖을 식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젖을 쟁반에 짜내 태양광 아래에 놓고 볕에 건조시켜보면, 말랐을 때 핏물이 보이거나 찌끼가 나와 비리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이 있다. 건조시킨 뒤에 기름처럼 희고 깨끗한 것이라야만 좋은 젖으로 간주되었다."
    (/ p.265)

    2) 서태후는 대머리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태후는 결코 대머리가 아니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서태후의 몇 장의 사진을 봐도 하나같이 형형한 이마 위에 가르마를 따라 양쪽으로 가지런히 빗은 칠흑 같은 검은 머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에 걸쳐 언급되는 서태후의 두발 상태를 확인하면 사진 속 서태후의 ‘흑발’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서태후는 40세 이후에는 귀밑가와 뒷머리에만 짧은 머리털이 남아 있었다. 정교하게 장식해놓지 않으면 영락없이 머리가 듬성듬성한 노부인이었다. 위엄 있는 모습을 좋아했던 태후는 정수리에 붉은 점토로 가짜 검은 머리카락을 붙였고, 머리 양쪽으로 머릿단을 붙였다. 무엇보다 머리카락이 빠질까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 p.116)

    "내가 서태후를 처음 만난 때는 광서 28년, 태후가 68세 되던 해다. 이때 태후는 이미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귀 뒤쪽의 몇 가닥만 남아 있어 거의 대머리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정수리에 꽃을 붙이고, 머리를 빗을 때면 배우가 분장할 때처럼 가짜 머리카락을 붙였다."
    (/ p.40)


    쇠락하는 시대를 증언하다

    1) 무술정변, 세 번째 수령청정의 시작

    광서 15년 광서제에게 정권을 돌려준 서태후는 광서 24년(1898) 다시 정치 무대 전면에 등장한다. 위안스카이의 세력을 등에 업고 개혁을 이루려 했던 광서제의 계획이 서태후의 심복 영록에게 탄로 나면서 꼼짝없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이 무술정변 당시의 긴박한 사건 전개가 신슈밍의 글 제2부 ‘행복했다고 할 수 없는 서태후의 삶’의 ‘무술정변’ 부분에 잘 드러나 있다. 중난하이와 이화원을 오가며 한가로운 나날을 즐기던 서태후에게 광서 24년 8월 3일(음력) 밤 영록이 다급하게 찾아온다. 영록은 자신을 죽이라는 광서제의 밀명을 보고하며 환궁을 종용한다. 하지만 서태후는 그렇게까지 할 것 있느냐며 잠시 머뭇거리지만 끝내 환궁을 결행한다. 자금성에 도착한 서태후는 광서제에게 원망 섞인 한탄을 내뱉으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광서제 또한 눈물을 흘리며 서태후를 맞이한 뒤 다시 수렴청정을 맡긴다.
    (/ pp.117~120)

    신슈밍의 증언은 정치적 라이벌 관계의 서태후와 광서제가 아니라 모자 사이라는 사사로운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기존의 역사 서술에서 볼 수 없었던 시대의 한 자락을 보여준다.

    2) 허망하게 무너진 청 제국
    서태후의 붕어 이후 융유황후가 태후의 지위를 이어받아 대내의 안주인이 되어 나이 어린 선통제 푸이를 대신해 섭정을 했다. 그러나 선통 3년 무창 봉기와 신해혁명으로 선통제가 퇴위당하고 위안스카이가 정권을 장악해 공화정을 세우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봉건 왕조가 무너지고 근대 정체가 중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융유태후는 공화정이 무엇인지도 몰랐을뿐더러 위안스카이도 여전히 자신의 충신으로 생각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융유태후가 ‘대청제국’을 위안스카이 일파에게 내주고 받은 대가는 고작 400만 위안이었다. 중화민국이 매년 황실에 400만 위안을 주기로 한 결정에 융유태후도 만족했다는 사실에 청 제국이 얼마나 허망하게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붕괴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위안스카이가 황실우대비를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삭감해나갔음은 물론이다.
    (/ p.99)

    비운의 사내, 태감

    1) 무엇이 아버지를 화나게 한 것일까!

    제2부 [거세에서 풍찬노숙까지, 태감의 굴곡 많은 삶]의 제1장은 제목이 ‘어린 시절 받은 잊지 못할 벌’이다. 이 글의 주인공인 마더칭은 아홉 살에 아버지에 의해 거세를 당했다. 대개 거세를 전문적으로 해주고 궁에 들어갈 방도를 알선해주는 무리가 있었기에,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거세를 한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를 태감으로 만들려는 아버지의 의도는 역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마취제도 주사바늘도 지혈약 같은 것도 없던 그 시절, 세상모르고 뛰놀다 붙들려 생식기관이 절단되는 청천벽력과 같은 아픔은 사실 겪어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수술’을 마친 뒤에는 4개월이나 누워 지내야 했다. 대소변도 누운 채로 봐야 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생활을 하면서 그는 생각한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왜 나에게 그런 벌을 내렸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썽을 피워서 그토록 아버지를 화나게 한 것일까!"
    (/ p.378)

    2) 인간 이하의 대접은 궁에서나 저잣거리에서나 마찬가지
    태감들은 보통 어릴 때 궁에 들어와 더 이상 일을 할 기력이 없어지면 출궁했다. 그러나 서태후의 심복 리롄잉이나 융유태후의 총애를 받았던 샤오더장과 같이 재물을 쌓은 이가 아닌 일반 태감들은 출궁 이후의 노후가 막막했다. 앞서 보았듯, 주인의 대소변까지 받아먹어야 하는 비인간적인 일상을 견뎌낸 이후 궁 밖으로 나오면, 이제는 일반인들 가운데서도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부류로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학식이나 재주 같은 것은 눈곱만큼도 없으며 육신은 늙고 병들어 힘쓰는 일은 하지도 못하는데다가 일평생 권력자의 곁에서 빌붙어 사는 요령만 몸에 배었으니 앞날이 막막한 것이 당연지사. 실제로 풍찬노숙 끝에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는 태감들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신슈밍이 창립한 ‘은제자선보골회’는 이런 나이 든 태감의 여생을 위한 자선사업의 일환이었다.

    목차

    제1부 궁중의 숨겨진 이야기들
    자서: 태감 생활 25년 | 제1장 황제와 비빈들의 어려움 | 제2장 행복했다고 할 수 없는 서태후의 삶 | 제3장 태후의 일상생활 | 제4장 궁중의 수많은 규범 | 제5장 대내의 신화들 | 제6장 세세토록 평안하고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 제7장 중화민국 초기의 황궁 | 제8장 청대의 궁녀 선출 | 제9장 엄격한 규제가 결국 복이 되다 | 제10장 태감들에 얽힌 일화 | 제11장 승평서 및 그 외 이야기

    제2부 거세에서 풍찬노숙까지, 태감의 굴곡 많은 삶
    제1장 어린 시절 받은 잊지 못할 벌 | 제2장 도자광과 신형사 | 제3장 입궁해 스승을 정하는 일 | 제4장 입궁 뒤 받는 훈련 | 제5장 어전태감의 하루 일상 | 제6장 진비이 죽음을 목격한 왕샹 | 제7장 궁중 여인들의 일상 | 제8장 태감들의 일상 | 제9장 태감과 사원

    제3부 즉문즉답: 청 황실을 말하다
    제1장 창음각에서의 연극 공연 | 제2장 낙수당에서의 식사 | 제3장 태감과 주방 일꾼들의 처소 | 제4장 영수궁에서의 서태후

    엮은이 후기
    옮긴이의 말

    본문중에서

    동치제는 조정 일을 마치고 태후 궁에서 저녁 문안을 드리고 난 뒤 매번 태감이 입는 평상복 차림을 하고 붉은 술이 달린 모자를 쓴 채 심복 태감 하나를 데리고 궁을 빠져나가 창기의 집을 드나들며 향락을 즐겼다. 그러고는 이튿날 아침 조회에 맞추어 자금성으로 들어왔다. (...) 태후가 이따금 설득해도 황상은 듣기는커녕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곤 했다. 이 일로 모자간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 태후 역시 황상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황상을 말리지 못하는 황후만 탓했다. 이 때문에 또 궁에서는 태후가 황후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결국 동치제는 화류병에 걸리고 말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의원 어의가 그만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황상이 걸린 병이 화류병이라는 사실을 감히 말하지 못한 어의는 처방전을 논할 때 황상이 천연두에 걸렸다고 고했고, 천연두로 오인해 처방한 결과 황상은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 p.51~52)

    융유황후는 처음 궁에 들어와서부터 궁 경비 출납 장부를 쓰고 사방을 관리하며 월말과 연말에 태후와 황제 앞에서 반드시 보고를 올려야 했다. 청조의 제도상 궁 경비는 지극히 적게 정되었고, 매월 적자가 나도 감히 사실대로 보고하지 못해 흑자로 보고했다. 친정집도 원조를 보낼 형편은 아니었다. 또 삼절[설, 단오, 추석의 삼대 명절] 및 태후와 황제의 생신날에 올리는 공물은 반드시 준비해야 했다. 비록 이날 위에서 하사하는 은이 있긴 했지만 적자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황족 부인이나 명부들이 찾아와 예를 올릴 때도 반드시 작은 답례를 해야 했다. 때로는 돈이 달려 옷이나 장신구 등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는 용포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리기까지 했다.
    (/ p.95)

    태후의 머리는 늘 빗기가 어려웠다. 40세 이후에는 벌써 탈모가 오기 시작해 귀밑가와 뒷머리에만 짧은 머리털이 남아 있었다. 정교하게 장식해놓지 않으면 영락없이 머리가 듬성듬성한 노부인이었다. 위엄 있는 모습을 좋아했던 태후는 정수리에 붉은 점토로 가짜 검은 머리카락을 붙였고, 머리 양쪽으로 머릿단을 붙였다. 윗부분에 크게 양 갈래로 묶는 머리 모양[‘양파두兩把頭’라 부른다]은 만주식 귀부인의 치장법이었다. 무엇보다 머리카락이 빠질까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의복은 평상시에는 그리 오래 고르지 않았지만 조정에 들 때는 반드시 단정하면서도 화려하고 품위 있는 복장을 했다. 또한 태후는 키가 작아 약 20센티미터 높이의 신발을 즐겨 신었다.
    (/ p.116)

    거세를 마치고 나면 요도에 가느다란 대롱 같은 것을 끼워놓는다. 그러지 않으면 새 살이 자라 요도를 덮어서 생명을 잃게 된다. 만약 오줌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 나는 나중에야 이쪽 방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거세를 한 뒤 상처가 금방 아물어 딱지가 앉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100일이 지나 고름과 함께 새 살이 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주 ‘약’을 갈아주어야 하는데, 말이 쉽지, 약 같은 약이 어디 있었겠는가. 기껏해야 백랍, 향유, 산초열매 가루 같은 것을 바른 얇은 종이가 전부였다. 매번 약을 갈 때마다 나는 통증으로 이승과 저승을 왔다갔다하는 것만 같았다.
    (/ p.378)

    마음이 언짢을 때는 태감들이 화풀이 대상이 되곤 했다. 가장 잔인했던 일은 바로 서태후가 어느 나이 든 태감에게 그의 대소변을 강제로 먹였던 일이다. 궁 안 태감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 노인은 이 일로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서태후 자신은 젖을 잘 내는 두 부녀를 선별해 매일같이 온몸을 깨끗이 씻게 했다. 이들이 몸에 꼭 붙는 진홍색 상의를 입고 유두만 드러낸 채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서태후는 침상에 누운 채로 젖을 먹었다. 자신은 사람의 젖을 먹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대소변을 먹이는 것, 이것이 바로 황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태후 궁에서는 두 부녀가 좋은 젖을 낼 수 있도록 닭이며 오리, 생선, 돼지 등 온갖 산해진미를 제공했다. 다만 소금이나 간장은 넣지 않았다. 소금과 간장이 들어가면 젖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 두 부인네는 더없이 좋은 음식을 약을 먹듯이 풍미도 못 느끼며 먹어야 했다.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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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말의 환관(태감). 본명은 신롄자信連甲이며 지인들 사이에서는 한천翰臣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태감이 되어 황궁에 들어갈 때는 장셴시張獻喜라는 사람의 이름을 빌려야 했다. 관상과 복점에 능해 서태후의 점을 친 뒤부터 ‘신선神仙 장’으로 불렸으며, 매사에 신중하고 본분에 맞게 처신해 궁내에서 이름이 아주 높았다. 궁에 들어오기 전에는 10년 동안 유학을 공부했으며, 공명을 얻고자 수사학당水師學堂과 태의원太醫院에 응시했으나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부친이 별세한 뒤 모친과 나이 어린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처자가 있음에도 스스로 거세해 태감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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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U&J 에이전시에서 중 국어책을 번역하고 교정하는 일을 겸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기억을 잃은 소년], [서태후와 궁녀들],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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