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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사회이론과 전 지구적 문화 [양장]

원제 : Globalization: Social Theory and Global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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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서문

    필자가 세계화라는 일반적인 주제와 그 함의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였다. 1965년부터 1972년까지 피터 네틀 Peter Nettl과 함께 펴낸 일련의 출판물에서 나는 근대화 modernization 이론과 국제관계학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쟁점을 다루었으며, 그 당시 제3세계 사회들의 ‘근대화’로 널리 알려진 쟁점에 대해 특별히 언급했다. 이 구상에서 내 관심은 기본적으로 ‘세속적인’ 것이었다. 비록 내가 종교를 사회가 수렴하는 비교적 단순한 세계로 바라보는 일부 저자와는 달리 불연속성의 형태로 고려함에도 이 구상의 결과로 나온 논문 대부분은 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종류의 쟁점을 거의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의 시기에 나는 처음에는 영국에서 그 다음에는 미국에서 종교사회학 내에서의 논쟁에 점점 더 많이 개입하게 되었다. 적어도 출판물과 관련해서 1970년대 중반에 나의 가장 두드러진 관심사가 사실 종교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종교에 관한 나의 관심은 특별한 지향성이 있었는데, 이 점이 내가 상대적으로 고립된 영역으로서 종교사회학에 대해 항상 강한 유보를 하는 이유와 다른 한편으로 이 연구영역에서 나의 저술들이 종교에 관한 관심과 전 지구성 globality과 세계화 globalization에 대한 관심을 서로 뒤섞게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처음부터 그리고 단연코 내가 1880년부터 1920년까지의 고전적 사회학자들의 저작들을 읽은 덕분에 나는 ‘종교적인’ 주제들을 본질적으로 흥미로운 것으로 다룰 수가 없었다. 사실 오늘날까지도 나는 자신이 직접 종교에 관해 연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지적 공감대를 많이 가질 수 없었다. 종교에 대한 저술에서 나는 거의 1백 년 전부터 주요한 사회이론가나 사회학 이론가들이 관심을 두었던 ‘근대성’ modernity이라는 쟁점이 표현되는 장소로서 ‘종교’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나는 19세기와 20세기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시기보다는 20세기와 21세기의 관계를 더 많이 다루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종교사회학의 범위 내에 있는 다양한 주제와 현상에 대한 나의 분석은 종교 영역에서의 변화를 초래한 것과 그 분기 分岐 들뿐 아니라 종교와 인간 사회의 다른 영역 사이의 관계와 종교 연구와 다른 영역 또는 하위 영역의 쟁점 사이의 관계를 다루었다. 동시에 나는 종교를 사회이론가 사이의 일반적인 논쟁에서 제기된 논점을 비교하면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나는 종교가 ‘진지한 삶’ serious life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뒤르켐1의 주장의 함축된 의미를 받아들이고 있다.
    부분적으로 종교에 대한 내 관심을 간략하게 묘사한 것은 종교(가장 광의의 의미에서)와 세계화에 대한 내 관심이 왜 서로 연결되는지 그 이유를 보여 준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수렴 상황에 대해 구체적이어야 하고 또 1980년에서 1984년의 시기에 세계화에 대한 내 견해를 분명히 밝힌 대부분의 초기 저작이 왜 종교사회학의 구조 내에 있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왜 부적절한지 지적해야 한다. 내가 그 이유에 대해 이따금 지적했는데도 ‘일반적인’ 종교사회학의 중심에 있는 주제, 즉 세속화에 대한 논쟁에 큰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사회가 어느 정도로 세속화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모든 문제가 언급되고 제기되었을 때, 적어도 영향력 있는 영국-미국의 궤도에서 종교사회학과나 그 교수 모두가 무엇이고 누구인지 결정하는 데 상당히 결정적이다. 내가 상대적으로 흥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세속화와 관련한 이 문제가 ‘실제 세계’에서 추세에 대한 수수께끼에 집중하는 것만큼이나 (종교) 사회학자들의 ‘이미 확립된’ 관심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제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종교’가 19세기 동안에 그리고 특히 20세기 초반의 사반세기에 국가사회들 national societies의 ‘체계화’ ordering와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범주적 양식으로 변모한 것에 더 큰 관심이 있다.
    이것은 종교와 세계화에 대한 내 관심이 상당한 정도로 수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본보기일 뿐이다. 사실 더 오래된 또 다른 관심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난 ‘근본주의’와 교회/국가와 종교/정치의 융합과 긴장의 뚜렷한 동시성에서 생겨났다. 이런 쟁점은, 한 범주로서 종교의 확산이라는 쟁점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전 지구적 초점, 즉 전체로서 세계에 대한 초점을 요구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종교와 세계화에 대한 관심의 수렴을 쉽게 했던 또 다른 고려는 내가 고전 사회학에서 ‘세계’ world와 ‘세계적인 것’ worldliness이라는 생각의 이중적 의미라고 묘사한 것으로 제기되는데, 이것은 막스 베버2의 저작에서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이 책의 본문에서 이런 이중적 의미의 중요성을 고찰할 것이다. 여기서는 베버가 자신의 저작에서 중심적인 개념인 세계의 이미지(그의 ‘종교사회학’이 아니라)를 명확한 방식으로 형성했다는 점만 지적하도록 하자. 여기서 세계는 세속적인 활동 영역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동시에 베버는 점점 더 전 지구적이 되어 가는 국제관계나 ‘세계 정치’에 대해 꽤 분명한 견해를 내놓았는데, 그 견해는 현실주의 realism의 범주에 가장 잘 맞을 뿐 아니라 국제관계에 관한 신다윈주의 neo-Darwinian 3 개념을 이루는 것이다. 세계화(와 종교)에 대한 나의 사고는 베버의 주요한 ‘세계’관에 대한 이런 고찰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의 ‘세계’관은 국제 투쟁의 영역으로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보다는 종교에 대한 그의 저작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런 고찰은 근대성과 탈근대성이라는 사고에 관한 현대의 문제의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런 관찰은 브라이언 터너4가, 나의 일부 저작에 대한 비평에서, 전 지구적 자연의 구원론적 쟁점이라고 부른 것과 또한 매우 세계화된 세계에서 하나의 직업이나 소명calling으로서 사회학이나 다른 지적 노력이 의미하는 바와 커다란 관련이 있다. 에른스트 트뢸치5, 카를 야스퍼스6, 막스 셸러7, 카를 만하임8 등은 ‘구원론’ 논쟁으로 옮겨가고자 했을 뿐 아니라 더 직접 베버식의 토대에서 벗어나서 직업으로 옮아가고자 했던 독일인이거나 독일에 기반을 둔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종교에 대한 나의 관심과 내가 세계화라고 부르던 것 사이의 연관-더욱 체계적으로 말해서 삶(‘서방’의 관점에서 봤을 때)의 ‘부드러운’ soft 측면과 ‘딱딱한’ hard 측면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연결하는 것-을 충분히 파악하는 데 또 다른 지적 조우 遭遇 가 중요했다. 이런 조우는 1970년대 중반에 문명에 관한 비교연구라는 공통된 관심이라는 맥락에서 한편으로는 벤저민 넬슨9과 다른 한편으로는 비타우타스 카볼리스10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들과의 만남은 ‘문명을 소생시키는 것’에 대한 나의 전반적이지만 충분히 발전되지 않은 기여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나는 네틀과 함께 세계체제와 근대화 modernization에 대한 나의 저작을 문명의 비교연구라는 방향으로 돌렸지만, 문명들과 그들과의 조우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지닌 연구로의 방향 전환-명백히 ‘실제적인’ 것에 대비되는 것으로서 문명 사이의 그리고 사회들 사이의 그리고 하위 사회들 사이의 평범한 관계-은 전 지구성 globality 에 대한 나의 이해를 풍부하게 심화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문명주의자들’과의 조우로 말미암아 나는 종종 비난을 받았다. 이런 사람들 또는 1970년대에 비타우타스 카볼리스가 ‘문명 분석’이라고 부른 것에 관심이 있는 집단의 가장 저명한 사람들은 특히 미국에서 ‘완고한’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주변화되었다. 예를 들어 넬슨은 ‘체제에 포함되지 않은’unsystematic 인물 또는 (공손한 표현으로) ‘무소속’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문명주의자들’이 전 지구적 영역으로 묘사되는 것에 대해 분석적이고 해석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데서 (별로 중심적이지 않은 이 집단의 인물인 탤컷 파슨스11와 함께) 공헌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한편 전 지구적 영역으로 묘사되는 것을 ‘체제화’하려는 나의 시도는 내가 언급한 ‘문명주의자들’(파슨스는 제외)의 견해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나의 저작에서 ‘비교 문명주의자들’과 갈라지는 가장 두드러진 두 가지 점은 한편으로는 ‘주류의’ 사회문화 이론과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맥락에서 더 중요한 현실정치 Realpolitik에 대한 나의 평가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후자에 대한 나의 깊은 관심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데, 그것은 이 책의 부제목과 내용이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비교적 최근인 1960년대에 몇몇 선구적인 사회학자-레이몽 아롱12, 피터 하인츠 Peter Heintz, 요한 갈퉁13, 구스타보 라고스 Gustavo Lagos 그리고 아미타이 에치오니14 같은 사람들-은 국제관계의 영역 그 자체에 뛰어들었다. 1960년대 중반에 네틀과 함께 수행한 국제관계와 근대화 modernization에 관한 나의 저작들은 더욱 분명한 사회학적 방향에서 이들의 저작을 바로 세우고 보충하며 개선하고자 했다. 요즘에는 사회학자들이 ‘세계 정치’를 행위와 상호작용의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영역으로 다루는 데서 공통점이 조금, 그것도 매우 조금밖에 없다(그리고 수긍할 만한 이유 때문에 자율성에 대한 인식이 젠더와 국제 관계의 쟁점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에 의해 ‘다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학제 간’ 시도가 이루어지고 세계에 대한 전통적인 학문 분과의 개념이 지닌 일면성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는 현재의 풍토에서 국제관계학과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비판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이런 인식은 더욱 필요해졌다. 자전적 自傳的 의미에서 이 문제에 대한 나 자신의 인식은 초창기의 진지한 지적 선택 중의 하나였던 학부에서 사회학을 공부해야 할지 아니면 국제관계학을 공부해야 할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다. ‘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문화적 사회학’이라는 표현은 한편으로는 세계화에 대한 관심(더 협소하게는 국제관계학)과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 사이의 일종의 타협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내가 세계 정치학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 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경제적 문제가 사회 사이의 관계에서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국제관계에서 거대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런 문제들이 문화적 사건과 문화적 부호화 coding에 상당히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 더욱 분명히 인식한다. 현재의 맥락에서 연관성이 더욱 분명한 것으로, ‘적나라한’ 국가적 이기심이라는 쟁점이 국가의 상호작용에 아무리 많이 개입된다 해도 국가별로 조직된 사회 사이에 적대적인 것에서 우호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관계를 구조화하고 형성하는 기본적으로 문화적 성격의 핵심적 쟁점이 존재한다는 점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다인종성 polyethnicity이나 다문화성 multiculturality은 그 어떤 경우든 대외 정책 형성에 중요한 내적ㆍ외적 제약이 되고 있다. 사실 ‘국제 사회’의 역사에서 다양한 국면에서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세계 정치는 근대성(과 탈근대성)에 관한 논쟁에서 중심적인 주제와 경험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예를 들어-이 쟁점은 뒤의 몇몇 장에서 다뤄질 것이다-근대성과 탈근대성에 관한 논쟁에서 사회가 근대성에 진입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명확한 고려 없이는 사실상 주요 쟁점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수많은 사회가 근대성의 확산과 더불어 수반되는 문화적 주제와 문제를 직접 다루려고 그들의 정치적(군사적 그리고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정책과 행위의 한 측면으로서 시도한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주요한 본보기로서 일본은 메이지 Meiji 시대의 초창기 이후 ‘근대를 건너뛰기’ 위한 시도를 주기적으로 해왔으며, 남미에서는 탈근대성의 논의가 근대성, ‘토착화’ indigenization 그리고 민주화와 관련한 정치 쟁점과 뒤엉키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여러 세대에 걸쳐 국제관계의 전문가와 사회학자가 지적 작업의 불행한 분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적어도 최근까지 이것은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이해관계라는 직접적이고 명확한 주제로서 문명의 종교문화뿐 아니라 민족문화, 정체성, 전통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 아니라 인류학과 정치과학의 측면과 함께 사회학적 측면에서도 ‘초 사회적’ extra-societal 쟁점에 대한 무관심을 낳았다. 현재 문화연구라는 이름의 학문분과는 어느 정도는 이런 장벽을 허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문화연구의 어떤 측면들은 다음의 몇몇 장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진다. 그래서 ‘거친’ 세계 정치와 국제관계의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가 세계화와 전 지구적 복잡성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접근에서 핵심적이라는 것이 나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또한 문화적 요소들이 현실정치 Realpolitik의 영역에 들어올 뿐 아니라 국제관계나 이와 관련된 문제의 연구를 전문적으로 하는 학자 모두는 아니라 해도 많은 이들이 시인하는 것보다 더 많이 들어온다고 믿는다. 국제정치는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해도 모두 문화적이며, 우리는(하지만 이것의 새로움을 과장하진 말아야 한다) 전 지구적 globewide 문화정치학의 시대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리고 물론 문화가 더욱 뚜렷하게 정치화하여 문화정치학과 관련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몇 가지 고찰은 국내 사건과 외국 사건 사이의 ‘공식적인’ 경계선이 급속히 허물어진다는 널리 알려져 있는 관찰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많은 것은 그런 상황에 대한 표현일 뿐 아니라 대응으로서 두 가지 측면을 다 가지고 있다. 다양한 초국가적 supranational이고 다국적 transnational인 조직, 운동 그리고 제도들(전 지구적 자본주의나 전 지구적 미디어체제 같은)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사회 사이의 경계도 외부의 ‘간섭과 제약’에 더 많이 종속되기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 다른 한편 국제사회의 사건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외부의 다양한 요소, 즉 다른 사회에 대한 의식(보통 크게 잘못 알려진다)의 증대, 다른 사회 내의 집단에 대한 충성(모두는 아니라 해도 많은 경우가 이주 때문에 생겨난다), 경제적 통합 그리고 국가 경제의 ‘국제화’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모든 추세가 우리로 하여금 국가별로 구성된 사회 현실의 종말이나 심지어 의미 있는 약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게 하지 않는다. 첫 번째 추세와 두 번째 추세 사이의 긴장은 이 책의 중심적인 주제이다. 핵심을 말하면, 우리는 크게 변화된 조건에서 세계화 양상의 지속을 가져다주는 전 지구적인 전체 the global whole에 대한 이미지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그 중에서도 인류뿐 아니라 개인들과 개인들의 구성물이 이 이미지와 부합하는 곳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화에 대한 내 생각 중 몇몇은 종교사회학의 전망으로 한정되지는 않지만, 그 전망 내에서 발전했다. (수많은 관련 논문은 개별적으로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맥락에서 제기된 쟁점 중에는 사회적인 것과 기타 관점의 상대화 relativiztion와 정체성, 특히 집단적 정체성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여기서 언급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나는 이런 전망 내에서 그리고 이 전망을 넘어서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조건에서 단순하고 소개하는 언어로 정의하자면, 세계를 ‘하나의 단일한 곳’으로의 압축이라고 파악하는 동시대의 관심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했으며, 경험적 관심이 세계화의 한 측면으로 여겨지거나 아니면 그것에 저항하는 한 형태로 간주하는 정도를 파악하고자 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나는 전자의 방향에 크게 기울어져 있지만, 후자도 허용하는 편이다; 이 견해는 원칙상 그 ‘거시적’ 측면이 아니라 전체로서 전 지구적-인간 the global-human 조건의 주요한 특징을 포괄하는 전 지구성 globality의 모델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나의 지속적인 노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80년대 중반에 사람들은 내가 전 지구적 단일성 global unicity이라고 부른 방향으로의 전환이 전 지구적 통일성 global unity에 대한 일종의 유토피아적 견해를 낳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의 용어법에서 볼 때 첫 번째 단어(단일성)는 위험, 비용, 편익, 급속히 증대하는 상호의존의 위험, 상호침투, 전 지구적 의식성 등과 관련하여 중립적이라면, ‘통일성’ unity과 이와 관련된 용어-심지어 따옴표를 사용했을 때조차-는 꽤 강한 의미에서 사회적 통합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경우에 나의 단어 선택을 통한 이런 오해를 부분적으로 가치 있게 여기는데, 이런 오해가 특히 종교에 대한 초점 내에서는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종교적이고(거나) 도덕적으로 통합된 세계라고 이해하는 것에 대한 열광으로 이끈다. 사실 세계화를 ‘세계 평화’나 통합으로 나아가는 분명한 전환으로 보는 이런 잘못된 견해는 여전히 눈에 띈다(물론 어떤 사회문화적 운동이 이를 적극적으로 조장한다). 내가 이 단계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항상 세계화 때문에 생기는 문제와 특정한 집단, 운동 또는 기타 조직체가 전 지구적 환경에 대한 그들 자신의 ‘정의’를 강요하려는 시도에 내재해 있는 위험을 한결같이 지적해왔다는 것이다. 적어도 경험적으로 볼 때 세계화는 ‘세계 진보’를 어느 정도 가리킨다 해도 그 자체로 ‘적절한 것’은 절대 아니다.[1]
    마지막으로 나의 주요 관심사는 비교적 최근의 현상으로서 세계화라고 종종 말하곤 했는데, 이것은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세계화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말과 같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주된 관심사는 동시대의 세계화가 특정한 양상 또는 형태가 지배하는 것으로 발전했을 때 어떤 지점에 도달하는 시기를 분리하고자 노력하는 것이었다. 나는 때로는 1870년대 이래로 세계가 전체성 wholeness을 향해 매우 빨리 전환한다는 측면에서만 ‘세계화’라는 용어를 쓸 수 있다는 입장으로 빠져들곤 했다(당연하게도 반대 경향뿐 아니라 대안적인 경로에 대한 제시). 하지만 나의 의도는 세계화[때로는 탈세계화 deglobalization]의 전반적인 과정이 적어도 2천여 년 전에 이른바 세계 종교의 부상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세계화의 전반적인 과정은 집단 내/집단 밖의 관계와 깊이 뒤엉키게 되었고, 이것은 근대성, 세계화 그리고 탈근대성 사상 사이의 관계에 관한 논쟁의 이유 중의 하나이다.

    감사의 글

    나는 여기서 여러모로 나를 도와준 몇몇 사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다방면에 걸친 관심과 출판물 덕분에 여러 해 동안 나에게 자극이 된 브라이언 터너Bryan Turner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 마이크 피더스톤에게는 그의 격려와 ‘질서’나 ‘종교’ 같은 개념에 대한 그의 회의주의 그리고 현대 문화에 대한 그의 박식한 관심에 감사를 드린다. 나는 프랭크 레흐너에게도 많은 빚을 졌는데, 1980년대 초반에 그가 대학원생이었을 당시 세계화에 대한 그의 연구와 관찰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세계화에 대한 그의 통찰력 있는 분석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로널드 밀러 Ronald Miller에게는 세계화에 관한 그의 장기간에 걸친 관심과 현대 세계의 형성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의 상대자로서 많은 빚을 졌다. 빌 가렛 Bill Garrett은 끊임없는 자극의 원천이었을 뿐 아니라 인권이나 종교 이론에 관한 그의 연구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존 심프슨 John Simpson은 초기부터 다양하게 나타나는 전 지구적 조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사려 깊은 논평을 해 주었다. 최근에는 세계화의 여러 측면에 관한 연구를 팀 로빈스 Tim Robbins와 함께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밝힐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세이지 Sage 출판사의 스테판 바 Stephen Barr는 여러 측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에게 자극을 주고 도전하며 나를 괴롭히기까지 한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특히 피츠버그 대학교의 여러 대학원 학생을 들 수 있다. 최근에 동료가 된 조에 로이트 Joe Roidt는 여러 도움을 주고 유익한 논평을 해주었다. 내가 여기서 개별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점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때로는 그중 일부를 본문에서 언급했다. 피츠버그 대학교는 내가 1967년에 방문교수로서 처음 갔는데, 이 학교는 비교국제 연구를 장려하는 환경을 제공했다. 이 학교의 사회학과 조교들이 이 책을 편집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나를 위해 열심히 작업해 주었는데, 이 점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
    당연하게도 내가 가장 큰 빚을 진 사람은 아내 캐슬린 화이트 Kathleen White다. 국제관계학과에서 기획 및 관리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그녀의 작업은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다. 이는 다양한 정치적 책임을 지며 세계화된 영역에 대해 매일매일 끊임없이 대화하며 살고자 하는 그녀의 독립심도 마찬가지로 영감을 주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그 어느 사람도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에 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은 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거나 책이나 저널에서 처음 출판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어느 장도 원래 형태 그대로 싣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 같다. 이전 출판물에 실린 것 중의 어떤 것은 다양하게 개정했으며, 대부분 상당히 보완하였다.
    제2장은 1988년 ≪이론, 문화 그리고 사회≫ Theory, Culture & Society 5(1)에 실린 '문화의 사회학적 중요성: 몇 가지 일반적인 고찰'의 수정 증보판이다.
    제3장은 1990년 ≪이론, 문화 그리고 사회≫ Theory, Culture & Society 7(2~3)에 실린 '전 지구적 조건의 지도 그리기: 중심 개념으로서의 세계화'의 수정 증보판이다.
    제4장은 1985년 ≪이론, 문화 그리고 사회≫ Theory, Culture & Society 2(3)에 실린 '근대화, 세계화 그리고 세계-체제 이론에서 문화의 문제'의 개정판과 한스 하퍼캄프 Hans Haferkamp와 네일 스멜서 Neil J. Smelser가 편집한 책 '사회변화와 근대성' Social Change and Modernit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2)에 실린 '전 지구성, 전 지구적 문화 그리고 세계질서의 이미지'의 일부를 결합한 것이다. 앞의 글은 원래 프랭크 레흐너와 공동으로 작성한 것인데, 그는 이 글을 개정하여 출판하는 것에 기꺼이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개정판 글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제5장은 1987년 ≪사회학 분석≫ Sociological Analysis 47(S)에 처음 발표된 ‘세계화와 사회적 근대화: 일본과 일본 문화에 대한 노트’의 수정 증보판이다.
    제6장은 앤서니 킹 Anthony D. King이 편집한 '문화, 세계화 그리고 세계-체제' Culture, Globalization and the World-System (London: Macmillan; Binghamton: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1991)에 실린 '사회이론, 문화적 상대성 그리고 전 지구성의 문제'의 수정 증보판이다.
    제7장은 1992년 ≪이론, 문화 그리고 사회≫ Theory, Culture & Society 9(1)에 실린 '‘문명화’와 문명화 과정: 엘리아스, 세계화 그리고 분석적 종합'의 수정 증보판이다.
    제8장은 1987년 ≪비교문명비평≫ Comparative Civilizations Review 17(가을호)에 실린 '세계화 이론과 문명화 분석'의 편집판이다.
    제9장은 1992년 ≪이론, 문화 그리고 사회≫ Theory, Culture & Society 9(2)에 실린 '전 지구성과 근대성'이라는 제목의 책 서평을 변형한 것이다.
    제10장은 브라이언 터너 Bryan S. Turner가 편집한 '근대성과 탈근대성 이론들' Theories of Modernity and Postmodernity (London: Sage, 1990)에 실린 '노스탤지어 이후? 의지적 노스탤지어와 세계화 국면'을 많이 수정한 것이다.

    역자 후기

    이 책은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용어를 사회과학 분야에서 처음 사용함으로써 세계화 현상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길을 연 영국의 사회학자 롤런드 로버트슨Roland Robertson의 대표작이다.
    최근 세계화라는 용어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의 시공간적 확장과 이에 따른 국민국가의 역할 변모 그리고 국제관계의 변화에 관한 학계의 연구도 많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작 세계화라는 현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 지평이 경제적 세계화만큼 확장되었는지는 미지수다.
    이런 점에서 로버트슨의 세계화 연구는 사회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무엇보다 먼저 로버트슨은 세계화라는 용어를 모더니티(또는 근대성)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면서 근대 사회가 형성되었고, 근대사회에 대한 많은 연구자(로버트슨은 고전 사회학자라고 지칭한다)가 그들의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세계화라고 여겼다.
    로버트슨은 세계화의 또 다른 특징을 ‘전 지구성’globality이라고 표현한다. 이때 전 지구성이 갖는 의미는 보편주의, 총체성, 복합성complexity 등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특징들이 개별성과 차이를 무시하지 않고 또 복합성이 하나의 체제로 통합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로버트슨은 전 지구성 또는 전 지구적 영역을 국가사회, 사회들의 세계체제, 개인 그리고 인류라는 네 가지 기준으로 체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세계화 연구자와는 결을 달리한다. 그는 국민국가라는 개념틀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사회 속에서 일상의 삶을 사는 개인이라는 범주를 사상하지 않고 또 사회들의 세계체제를 구상하면서도 개별 국가사회가 갖는 상대적 가치를 무시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로버트슨이 종교가 인간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비중 있게 다룰 뿐 아니라 세계화와 종교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천착한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로버트슨은 이 책에서 세계화를 ‘전체로서 세계의 구체적 구조화’라고 정의하지만 이런 구조화가 경제적 맥락이나 정치적 맥락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구조화라는 표현을 심사숙고하여 사용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주체와 객체 그리고 개인과 사회 사이의 관계에 관한 철학적 맥락에서의 이해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로버트슨이 월러스틴 같은 세계체제론자들의 세계화 이해방식을 수용하면서도 그 영역을 정치적, 경제적 영역에서 문화적 영역으로까지 확장하여 논의하고 있다. 이 점에서 로버트슨의 세계화 논의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에 속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심성과 의식(이런 심성과 의식은 개인적 삶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세계적 삶의 경험 중 일부이기도 하다)의 형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버트슨은 세계화의 소국면에 따라 자본주의의 전체 역사를 다섯 단계로 구분할 뿐 아니라 퇴니에스의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라는 범주를 전 지구적 공동사회와 전 지구적 이익사회로 확장하여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 사회학 및 역사학 논의를 세계화라는 범주에 맞추어 재정립하고 확장한다.
    또한 로버트슨은 사회과학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중의 하나인 보편주의-특수주의 쟁점이나 여성과 젠더 문제를 세계화와 정체성과 관련하여 다룬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의 논지가 가장 빛나는 영역은 세계화와 문화 또는 문명을 다루는 부분이다.
    로버트슨은 문명이라는 것이 세계화 연구의 중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문명이란 양식 있는 우월한 인간들의 도덕적 감성이라는 통념적 의미가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되고 전 지구적 국가 체계(그것의 법적 표현이 국제법으로 나타났다)에 스며들고 있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문명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유럽의 패권 국가들이 비유럽 국가에 강압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라는 로버트슨의 주장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런 문명이 바로 유럽 중심의 ‘국제사회’에 편입할 수 있는 입장권이라고 지적한다.
    보통 유럽 중심주의를 경제 및 정치의 영역(제국주의나 식민주의 등)에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로버트슨은 문명과 공손함이라는 문화적 용어를 통해 전 지구화된 세계에 속한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의식 속에서 서구 중심적 개념의 내면화 과정을 잘 살피고 있다.
    특히 로버트슨이 일본의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종교에 스민 전 지구성과 보편성의 요소를 날카롭게 파악하여 다루는 부분에서 그의 예리한 통찰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로버트슨은 세계화에 관한 수많은 논자의 주장을 자기 나름의 체계에 편입시키고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그런 논자 중에는 뒤르켐이나 짐멜 같은 고전 사회과학자들도 있고, 아롱, 헤인츠, 파슨즈 같은 전후의 선구적 사회학자들도 있으며, 맥루한, 샬린스, 쿠디히, 카볼리스, 보드리야르 같은 그의 동년배 학자들도 있다. 또 그가 다루는 영역도 사회학을 넘어 경제학, 역사학, 인류학, 문화과학 등 다양하다. 로버트슨이 세계화라는 주제를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넓이와 깊이로 다루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마지막으로 로버트슨은 세계화 추세와 함께 근본적인 것 찾기라는 현상도 실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전 지구적인 것과 토착적인 것이라는 이분법 사이의 관계를 전 지구적으로 융합된 사상이라는 맥락에서 서로 대치되는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상대주의적이고 개별 사회와 개인들의 자율적인 과정을 옹호한다. 그는 이것을 보편성의 자기중심주의와 자기중심주의의 보편주의라는 이중의 과정이라고 파악한다. 이렇게 본다면 최근 세계화가 초래한 해악에서 벗어나는 방안으로 지역주의를 선택하는 것이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로버트슨의 논의에서 유추할 수 있다.
    로버트슨은 세계화 논의에서 개별 사회와 국가 그리고 개인의 삶에 대한 다원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보편적 기준과 가치를 추구하려 한다는 점에서 총체적 인식을 추구한다. 로버트슨이 이 책에서 제시한 논점과 아이디어는 학문적 영역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 한국연구재단과 읽을 수 있는 책이 되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주신 한국문화사의 이지은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목차

    감사의 글
    서문

    01 하나의 문제로서의 세계화
    02 문화적 전환
    03 전 지구적 조건의 지도 그리기
    04 세계-체제 이론, 문화 그리고 세계질서의 이미지
    05 일본의 전 지구성과 일본 종교
    06 보편주의-특수주의 쟁점
    07 ‘문명’, 공손함과 문명화 과정
    08 세계화 이론과 문명 분석
    09 전 지구성, 근대성 그리고 탈근대성의 쟁점
    10 세계화와 노스탤지어 패러다임
    11 전 지구적 전망에서 ‘근본적인 것 찾기’
    12 끝맺는 생각들

    참고문헌
    역자 후기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서문

    필자가 세계화라는 일반적인 주제와 그 함의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였다. 1965년부터 1972년까지 피터 네틀 Peter Nettl과 함께 펴낸 일련의 출판물에서 나는 근대화 modernization 이론과 국제관계학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쟁점을 다루었으며, 그 당시 제3세계 사회들의 ‘근대화’로 널리 알려진 쟁점에 대해 특별히 언급했다. 이 구상에서 내 관심은 기본적으로 ‘세속적인’ 것이었다. 비록 내가 종교를 사회가 수렴하는 비교적 단순한 세계로 바라보는 일부 저자와는 달리 불연속성의 형태로 고려함에도 이 구상의 결과로 나온 논문 대부분은 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종류의 쟁점을 거의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의 시기에 나는 처음에는 영국에서 그 다음에는 미국에서 종교사회학 내에서의 논쟁에 점점 더 많이 개입하게 되었다. 적어도 출판물과 관련해서 1970년대 중반에 나의 가장 두드러진 관심사가 사실 종교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종교에 관한 나의 관심은 특별한 지향성이 있었는데, 이 점이 내가 상대적으로 고립된 영역으로서 종교사회학에 대해 항상 강한 유보를 하는 이유와 다른 한편으로 이 연구영역에서 나의 저술들이 종교에 관한 관심과 전 지구성 globality과 세계화 globalization에 대한 관심을 서로 뒤섞게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처음부터 그리고 단연코 내가 1880년부터 1920년까지의 고전적 사회학자들의 저작들을 읽은 덕분에 나는 ‘종교적인’ 주제들을 본질적으로 흥미로운 것으로 다룰 수가 없었다. 사실 오늘날까지도 나는 자신이 직접 종교에 관해 연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지적 공감대를 많이 가질 수 없었다. 종교에 대한 저술에서 나는 거의 1백 년 전부터 주요한 사회이론가나 사회학 이론가들이 관심을 두었던 ‘근대성’ modernity이라는 쟁점이 표현되는 장소로서 ‘종교’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나는 19세기와 20세기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시기보다는 20세기와 21세기의 관계를 더 많이 다루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종교사회학의 범위 내에 있는 다양한 주제와 현상에 대한 나의 분석은 종교 영역에서의 변화를 초래한 것과 그 분기 分岐 들뿐 아니라 종교와 인간 사회의 다른 영역 사이의 관계와 종교 연구와 다른 영역 또는 하위 영역의 쟁점 사이의 관계를 다루었다. 동시에 나는 종교를 사회이론가 사이의 일반적인 논쟁에서 제기된 논점을 비교하면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나는 종교가 ‘진지한 삶’ serious life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뒤르켐1의 주장의 함축된 의미를 받아들이고 있다.
    부분적으로 종교에 대한 내 관심을 간략하게 묘사한 것은 종교(가장 광의의 의미에서)와 세계화에 대한 내 관심이 왜 서로 연결되는지 그 이유를 보여 준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수렴 상황에 대해 구체적이어야 하고 또 1980년에서 1984년의 시기에 세계화에 대한 내 견해를 분명히 밝힌 대부분의 초기 저작이 왜 종교사회학의 구조 내에 있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왜 부적절한지 지적해야 한다. 내가 그 이유에 대해 이따금 지적했는데도 ‘일반적인’ 종교사회학의 중심에 있는 주제, 즉 세속화에 대한 논쟁에 큰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사회가 어느 정도로 세속화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모든 문제가 언급되고 제기되었을 때, 적어도 영향력 있는 영국-미국의 궤도에서 종교사회학과나 그 교수 모두가 무엇이고 누구인지 결정하는 데 상당히 결정적이다. 내가 상대적으로 흥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세속화와 관련한 이 문제가 ‘실제 세계’에서 추세에 대한 수수께끼에 집중하는 것만큼이나 (종교) 사회학자들의 ‘이미 확립된’ 관심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제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종교’가 19세기 동안에 그리고 특히 20세기 초반의 사반세기에 국가사회들 national societies의 ‘체계화’ ordering와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범주적 양식으로 변모한 것에 더 큰 관심이 있다.
    이것은 종교와 세계화에 대한 내 관심이 상당한 정도로 수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가지 본보기일 뿐이다. 사실 더 오래된 또 다른 관심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난 ‘근본주의’와 교회/국가와 종교/정치의 융합과 긴장의 뚜렷한 동시성에서 생겨났다. 이런 쟁점은, 한 범주로서 종교의 확산이라는 쟁점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전 지구적 초점, 즉 전체로서 세계에 대한 초점을 요구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종교와 세계화에 대한 관심의 수렴을 쉽게 했던 또 다른 고려는 내가 고전 사회학에서 ‘세계’ world와 ‘세계적인 것’ worldliness이라는 생각의 이중적 의미라고 묘사한 것으로 제기되는데, 이것은 막스 베버2의 저작에서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이 책의 본문에서 이런 이중적 의미의 중요성을 고찰할 것이다. 여기서는 베버가 자신의 저작에서 중심적인 개념인 세계의 이미지(그의 ‘종교사회학’이 아니라)를 명확한 방식으로 형성했다는 점만 지적하도록 하자. 여기서 세계는 세속적인 활동 영역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동시에 베버는 점점 더 전 지구적이 되어 가는 국제관계나 ‘세계 정치’에 대해 꽤 분명한 견해를 내놓았는데, 그 견해는 현실주의 realism의 범주에 가장 잘 맞을 뿐 아니라 국제관계에 관한 신다윈주의 neo-Darwinian 3 개념을 이루는 것이다. 세계화(와 종교)에 대한 나의 사고는 베버의 주요한 ‘세계’관에 대한 이런 고찰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의 ‘세계’관은 국제 투쟁의 영역으로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보다는 종교에 대한 그의 저작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런 고찰은 근대성과 탈근대성이라는 사고에 관한 현대의 문제의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런 관찰은 브라이언 터너4가, 나의 일부 저작에 대한 비평에서, 전 지구적 자연의 구원론적 쟁점이라고 부른 것과 또한 매우 세계화된 세계에서 하나의 직업이나 소명calling으로서 사회학이나 다른 지적 노력이 의미하는 바와 커다란 관련이 있다. 에른스트 트뢸치5, 카를 야스퍼스6, 막스 셸러7, 카를 만하임8 등은 ‘구원론’ 논쟁으로 옮겨가고자 했을 뿐 아니라 더 직접 베버식의 토대에서 벗어나서 직업으로 옮아가고자 했던 독일인이거나 독일에 기반을 둔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종교에 대한 나의 관심과 내가 세계화라고 부르던 것 사이의 연관-더욱 체계적으로 말해서 삶(‘서방’의 관점에서 봤을 때)의 ‘부드러운’ soft 측면과 ‘딱딱한’ hard 측면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연결하는 것-을 충분히 파악하는 데 또 다른 지적 조우 遭遇 가 중요했다. 이런 조우는 1970년대 중반에 문명에 관한 비교연구라는 공통된 관심이라는 맥락에서 한편으로는 벤저민 넬슨9과 다른 한편으로는 비타우타스 카볼리스10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들과의 만남은 ‘문명을 소생시키는 것’에 대한 나의 전반적이지만 충분히 발전되지 않은 기여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나는 네틀과 함께 세계체제와 근대화 modernization에 대한 나의 저작을 문명의 비교연구라는 방향으로 돌렸지만, 문명들과 그들과의 조우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지닌 연구로의 방향 전환-명백히 ‘실제적인’ 것에 대비되는 것으로서 문명 사이의 그리고 사회들 사이의 그리고 하위 사회들 사이의 평범한 관계-은 전 지구성 globality 에 대한 나의 이해를 풍부하게 심화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문명주의자들’과의 조우로 말미암아 나는 종종 비난을 받았다. 이런 사람들 또는 1970년대에 비타우타스 카볼리스가 ‘문명 분석’이라고 부른 것에 관심이 있는 집단의 가장 저명한 사람들은 특히 미국에서 ‘완고한’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주변화되었다. 예를 들어 넬슨은 ‘체제에 포함되지 않은’unsystematic 인물 또는 (공손한 표현으로) ‘무소속’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문명주의자들’이 전 지구적 영역으로 묘사되는 것에 대해 분석적이고 해석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데서 (별로 중심적이지 않은 이 집단의 인물인 탤컷 파슨스11와 함께) 공헌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한편 전 지구적 영역으로 묘사되는 것을 ‘체제화’하려는 나의 시도는 내가 언급한 ‘문명주의자들’(파슨스는 제외)의 견해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나의 저작에서 ‘비교 문명주의자들’과 갈라지는 가장 두드러진 두 가지 점은 한편으로는 ‘주류의’ 사회문화 이론과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맥락에서 더 중요한 현실정치 Realpolitik에 대한 나의 평가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후자에 대한 나의 깊은 관심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데, 그것은 이 책의 부제목과 내용이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비교적 최근인 1960년대에 몇몇 선구적인 사회학자-레이몽 아롱12, 피터 하인츠 Peter Heintz, 요한 갈퉁13, 구스타보 라고스 Gustavo Lagos 그리고 아미타이 에치오니14 같은 사람들-은 국제관계의 영역 그 자체에 뛰어들었다. 1960년대 중반에 네틀과 함께 수행한 국제관계와 근대화 modernization에 관한 나의 저작들은 더욱 분명한 사회학적 방향에서 이들의 저작을 바로 세우고 보충하며 개선하고자 했다. 요즘에는 사회학자들이 ‘세계 정치’를 행위와 상호작용의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영역으로 다루는 데서 공통점이 조금, 그것도 매우 조금밖에 없다(그리고 수긍할 만한 이유 때문에 자율성에 대한 인식이 젠더와 국제 관계의 쟁점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에 의해 ‘다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학제 간’ 시도가 이루어지고 세계에 대한 전통적인 학문 분과의 개념이 지닌 일면성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는 현재의 풍토에서 국제관계학과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비판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이런 인식은 더욱 필요해졌다. 자전적 自傳的 의미에서 이 문제에 대한 나 자신의 인식은 초창기의 진지한 지적 선택 중의 하나였던 학부에서 사회학을 공부해야 할지 아니면 국제관계학을 공부해야 할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다. ‘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문화적 사회학’이라는 표현은 한편으로는 세계화에 대한 관심(더 협소하게는 국제관계학)과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 사이의 일종의 타협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내가 세계 정치학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 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경제적 문제가 사회 사이의 관계에서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국제관계에서 거대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런 문제들이 문화적 사건과 문화적 부호화 coding에 상당히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 더욱 분명히 인식한다. 현재의 맥락에서 연관성이 더욱 분명한 것으로, ‘적나라한’ 국가적 이기심이라는 쟁점이 국가의 상호작용에 아무리 많이 개입된다 해도 국가별로 조직된 사회 사이에 적대적인 것에서 우호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관계를 구조화하고 형성하는 기본적으로 문화적 성격의 핵심적 쟁점이 존재한다는 점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다인종성 polyethnicity이나 다문화성 multiculturality은 그 어떤 경우든 대외 정책 형성에 중요한 내적ㆍ외적 제약이 되고 있다. 사실 ‘국제 사회’의 역사에서 다양한 국면에서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세계 정치는 근대성(과 탈근대성)에 관한 논쟁에서 중심적인 주제와 경험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예를 들어-이 쟁점은 뒤의 몇몇 장에서 다뤄질 것이다-근대성과 탈근대성에 관한 논쟁에서 사회가 근대성에 진입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명확한 고려 없이는 사실상 주요 쟁점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수많은 사회가 근대성의 확산과 더불어 수반되는 문화적 주제와 문제를 직접 다루려고 그들의 정치적(군사적 그리고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정책과 행위의 한 측면으로서 시도한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주요한 본보기로서 일본은 메이지 Meiji 시대의 초창기 이후 ‘근대를 건너뛰기’ 위한 시도를 주기적으로 해왔으며, 남미에서는 탈근대성의 논의가 근대성, ‘토착화’ indigenization 그리고 민주화와 관련한 정치 쟁점과 뒤엉키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여러 세대에 걸쳐 국제관계의 전문가와 사회학자가 지적 작업의 불행한 분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적어도 최근까지 이것은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이해관계라는 직접적이고 명확한 주제로서 문명의 종교문화뿐 아니라 민족문화, 정체성, 전통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 아니라 인류학과 정치과학의 측면과 함께 사회학적 측면에서도 ‘초 사회적’ extra-societal 쟁점에 대한 무관심을 낳았다. 현재 문화연구라는 이름의 학문분과는 어느 정도는 이런 장벽을 허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문화연구의 어떤 측면들은 다음의 몇몇 장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진다. 그래서 ‘거친’ 세계 정치와 국제관계의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가 세계화와 전 지구적 복잡성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접근에서 핵심적이라는 것이 나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또한 문화적 요소들이 현실정치 Realpolitik의 영역에 들어올 뿐 아니라 국제관계나 이와 관련된 문제의 연구를 전문적으로 하는 학자 모두는 아니라 해도 많은 이들이 시인하는 것보다 더 많이 들어온다고 믿는다. 국제정치는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해도 모두 문화적이며, 우리는(하지만 이것의 새로움을 과장하진 말아야 한다) 전 지구적 globewide 문화정치학의 시대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리고 물론 문화가 더욱 뚜렷하게 정치화하여 문화정치학과 관련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몇 가지 고찰은 국내 사건과 외국 사건 사이의 ‘공식적인’ 경계선이 급속히 허물어진다는 널리 알려져 있는 관찰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많은 것은 그런 상황에 대한 표현일 뿐 아니라 대응으로서 두 가지 측면을 다 가지고 있다. 다양한 초국가적 supranational이고 다국적 transnational인 조직, 운동 그리고 제도들(전 지구적 자본주의나 전 지구적 미디어체제 같은)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사회 사이의 경계도 외부의 ‘간섭과 제약’에 더 많이 종속되기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 다른 한편 국제사회의 사건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외부의 다양한 요소, 즉 다른 사회에 대한 의식(보통 크게 잘못 알려진다)의 증대, 다른 사회 내의 집단에 대한 충성(모두는 아니라 해도 많은 경우가 이주 때문에 생겨난다), 경제적 통합 그리고 국가 경제의 ‘국제화’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모든 추세가 우리로 하여금 국가별로 구성된 사회 현실의 종말이나 심지어 의미 있는 약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게 하지 않는다. 첫 번째 추세와 두 번째 추세 사이의 긴장은 이 책의 중심적인 주제이다. 핵심을 말하면, 우리는 크게 변화된 조건에서 세계화 양상의 지속을 가져다주는 전 지구적인 전체 the global whole에 대한 이미지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그 중에서도 인류뿐 아니라 개인들과 개인들의 구성물이 이 이미지와 부합하는 곳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화에 대한 내 생각 중 몇몇은 종교사회학의 전망으로 한정되지는 않지만, 그 전망 내에서 발전했다. (수많은 관련 논문은 개별적으로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맥락에서 제기된 쟁점 중에는 사회적인 것과 기타 관점의 상대화 relativiztion와 정체성, 특히 집단적 정체성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여기서 언급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나는 이런 전망 내에서 그리고 이 전망을 넘어서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조건에서 단순하고 소개하는 언어로 정의하자면, 세계를 ‘하나의 단일한 곳’으로의 압축이라고 파악하는 동시대의 관심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했으며, 경험적 관심이 세계화의 한 측면으로 여겨지거나 아니면 그것에 저항하는 한 형태로 간주하는 정도를 파악하고자 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나는 전자의 방향에 크게 기울어져 있지만, 후자도 허용하는 편이다; 이 견해는 원칙상 그 ‘거시적’ 측면이 아니라 전체로서 전 지구적-인간 the global-human 조건의 주요한 특징을 포괄하는 전 지구성 globality의 모델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나의 지속적인 노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80년대 중반에 사람들은 내가 전 지구적 단일성 global unicity이라고 부른 방향으로의 전환이 전 지구적 통일성 global unity에 대한 일종의 유토피아적 견해를 낳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의 용어법에서 볼 때 첫 번째 단어(단일성)는 위험, 비용, 편익, 급속히 증대하는 상호의존의 위험, 상호침투, 전 지구적 의식성 등과 관련하여 중립적이라면, ‘통일성’ unity과 이와 관련된 용어-심지어 따옴표를 사용했을 때조차-는 꽤 강한 의미에서 사회적 통합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어떤 경우에 나의 단어 선택을 통한 이런 오해를 부분적으로 가치 있게 여기는데, 이런 오해가 특히 종교에 대한 초점 내에서는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종교적이고(거나) 도덕적으로 통합된 세계라고 이해하는 것에 대한 열광으로 이끈다. 사실 세계화를 ‘세계 평화’나 통합으로 나아가는 분명한 전환으로 보는 이런 잘못된 견해는 여전히 눈에 띈다(물론 어떤 사회문화적 운동이 이를 적극적으로 조장한다). 내가 이 단계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항상 세계화 때문에 생기는 문제와 특정한 집단, 운동 또는 기타 조직체가 전 지구적 환경에 대한 그들 자신의 ‘정의’를 강요하려는 시도에 내재해 있는 위험을 한결같이 지적해왔다는 것이다. 적어도 경험적으로 볼 때 세계화는 ‘세계 진보’를 어느 정도 가리킨다 해도 그 자체로 ‘적절한 것’은 절대 아니다.[1]
    마지막으로 나의 주요 관심사는 비교적 최근의 현상으로서 세계화라고 종종 말하곤 했는데, 이것은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세계화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말과 같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주된 관심사는 동시대의 세계화가 특정한 양상 또는 형태가 지배하는 것으로 발전했을 때 어떤 지점에 도달하는 시기를 분리하고자 노력하는 것이었다. 나는 때로는 1870년대 이래로 세계가 전체성 wholeness을 향해 매우 빨리 전환한다는 측면에서만 ‘세계화’라는 용어를 쓸 수 있다는 입장으로 빠져들곤 했다(당연하게도 반대 경향뿐 아니라 대안적인 경로에 대한 제시). 하지만 나의 의도는 세계화[때로는 탈세계화 deglobalization]의 전반적인 과정이 적어도 2천여 년 전에 이른바 세계 종교의 부상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세계화의 전반적인 과정은 집단 내/집단 밖의 관계와 깊이 뒤엉키게 되었고, 이것은 근대성, 세계화 그리고 탈근대성 사상 사이의 관계에 관한 논쟁의 이유 중의 하나이다.

    (/ '서문' 중에서)

    감사의 글

    나는 여기서 여러모로 나를 도와준 몇몇 사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다방면에 걸친 관심과 출판물 덕분에 여러 해 동안 나에게 자극이 된 브라이언 터너Bryan Turner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 마이크 피더스톤에게는 그의 격려와 ‘질서’나 ‘종교’ 같은 개념에 대한 그의 회의주의 그리고 현대 문화에 대한 그의 박식한 관심에 감사를 드린다. 나는 프랭크 레흐너에게도 많은 빚을 졌는데, 1980년대 초반에 그가 대학원생이었을 당시 세계화에 대한 그의 연구와 관찰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세계화에 대한 그의 통찰력 있는 분석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로널드 밀러 Ronald Miller에게는 세계화에 관한 그의 장기간에 걸친 관심과 현대 세계의 형성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의 상대자로서 많은 빚을 졌다. 빌 가렛 Bill Garrett은 끊임없는 자극의 원천이었을 뿐 아니라 인권이나 종교 이론에 관한 그의 연구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존 심프슨 John Simpson은 초기부터 다양하게 나타나는 전 지구적 조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사려 깊은 논평을 해 주었다. 최근에는 세계화의 여러 측면에 관한 연구를 팀 로빈스 Tim Robbins와 함께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밝힐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세이지 Sage 출판사의 스테판 바 Stephen Barr는 여러 측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에게 자극을 주고 도전하며 나를 괴롭히기까지 한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특히 피츠버그 대학교의 여러 대학원 학생을 들 수 있다. 최근에 동료가 된 조에 로이트 Joe Roidt는 여러 도움을 주고 유익한 논평을 해주었다. 내가 여기서 개별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점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때로는 그중 일부를 본문에서 언급했다. 피츠버그 대학교는 내가 1967년에 방문교수로서 처음 갔는데, 이 학교는 비교국제 연구를 장려하는 환경을 제공했다. 이 학교의 사회학과 조교들이 이 책을 편집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나를 위해 열심히 작업해 주었는데, 이 점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
    당연하게도 내가 가장 큰 빚을 진 사람은 아내 캐슬린 화이트 Kathleen White다. 국제관계학과에서 기획 및 관리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그녀의 작업은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다. 이는 다양한 정치적 책임을 지며 세계화된 영역에 대해 매일매일 끊임없이 대화하며 살고자 하는 그녀의 독립심도 마찬가지로 영감을 주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그 어느 사람도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에 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은 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거나 책이나 저널에서 처음 출판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어느 장도 원래 형태 그대로 싣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 같다. 이전 출판물에 실린 것 중의 어떤 것은 다양하게 개정했으며, 대부분 상당히 보완하였다.
    제2장은 1988년 ≪이론, 문화 그리고 사회≫ Theory, Culture & Society 5(1)에 실린 '문화의 사회학적 중요성: 몇 가지 일반적인 고찰'의 수정 증보판이다.
    제3장은 1990년 ≪이론, 문화 그리고 사회≫ Theory, Culture & Society 7(2~3)에 실린 '전 지구적 조건의 지도 그리기: 중심 개념으로서의 세계화'의 수정 증보판이다.
    제4장은 1985년 ≪이론, 문화 그리고 사회≫ Theory, Culture & Society 2(3)에 실린 '근대화, 세계화 그리고 세계-체제 이론에서 문화의 문제'의 개정판과 한스 하퍼캄프 Hans Haferkamp와 네일 스멜서 Neil J. Smelser가 편집한 책 '사회변화와 근대성' Social Change and Modernit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2)에 실린 '전 지구성, 전 지구적 문화 그리고 세계질서의 이미지'의 일부를 결합한 것이다. 앞의 글은 원래 프랭크 레흐너와 공동으로 작성한 것인데, 그는 이 글을 개정하여 출판하는 것에 기꺼이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개정판 글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제5장은 1987년 ≪사회학 분석≫ Sociological Analysis 47(S)에 처음 발표된 ‘세계화와 사회적 근대화: 일본과 일본 문화에 대한 노트’의 수정 증보판이다.
    제6장은 앤서니 킹 Anthony D. King이 편집한 '문화, 세계화 그리고 세계-체제' Culture, Globalization and the World-System (London: Macmillan; Binghamton: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1991)에 실린 '사회이론, 문화적 상대성 그리고 전 지구성의 문제'의 수정 증보판이다.
    제7장은 1992년 ≪이론, 문화 그리고 사회≫ Theory, Culture & Society 9(1)에 실린 '‘문명화’와 문명화 과정: 엘리아스, 세계화 그리고 분석적 종합'의 수정 증보판이다.
    제8장은 1987년 ≪비교문명비평≫ Comparative Civilizations Review 17(가을호)에 실린 '세계화 이론과 문명화 분석'의 편집판이다.
    제9장은 1992년 ≪이론, 문화 그리고 사회≫ Theory, Culture & Society 9(2)에 실린 '전 지구성과 근대성'이라는 제목의 책 서평을 변형한 것이다.
    제10장은 브라이언 터너 Bryan S. Turner가 편집한 '근대성과 탈근대성 이론들' Theories of Modernity and Postmodernity (London: Sage, 1990)에 실린 '노스탤지어 이후? 의지적 노스탤지어와 세계화 국면'을 많이 수정한 것이다.

    (/ '저자 후기' 중에서)

    역자 후기

    이 책은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용어를 사회과학 분야에서 처음 사용함으로써 세계화 현상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길을 연 영국의 사회학자 롤런드 로버트슨Roland Robertson의 대표작이다.
    최근 세계화라는 용어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의 시공간적 확장과 이에 따른 국민국가의 역할 변모 그리고 국제관계의 변화에 관한 학계의 연구도 많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작 세계화라는 현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 지평이 경제적 세계화만큼 확장되었는지는 미지수다.
    이런 점에서 로버트슨의 세계화 연구는 사회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무엇보다 먼저 로버트슨은 세계화라는 용어를 모더니티(또는 근대성)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면서 근대 사회가 형성되었고, 근대사회에 대한 많은 연구자(로버트슨은 고전 사회학자라고 지칭한다)가 그들의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세계화라고 여겼다.
    로버트슨은 세계화의 또 다른 특징을 ‘전 지구성’globality이라고 표현한다. 이때 전 지구성이 갖는 의미는 보편주의, 총체성, 복합성complexity 등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특징들이 개별성과 차이를 무시하지 않고 또 복합성이 하나의 체제로 통합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로버트슨은 전 지구성 또는 전 지구적 영역을 국가사회, 사회들의 세계체제, 개인 그리고 인류라는 네 가지 기준으로 체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세계화 연구자와는 결을 달리한다. 그는 국민국가라는 개념틀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사회 속에서 일상의 삶을 사는 개인이라는 범주를 사상하지 않고 또 사회들의 세계체제를 구상하면서도 개별 국가사회가 갖는 상대적 가치를 무시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로버트슨이 종교가 인간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비중 있게 다룰 뿐 아니라 세계화와 종교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천착한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로버트슨은 이 책에서 세계화를 ‘전체로서 세계의 구체적 구조화’라고 정의하지만 이런 구조화가 경제적 맥락이나 정치적 맥락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구조화라는 표현을 심사숙고하여 사용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주체와 객체 그리고 개인과 사회 사이의 관계에 관한 철학적 맥락에서의 이해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로버트슨이 월러스틴 같은 세계체제론자들의 세계화 이해방식을 수용하면서도 그 영역을 정치적, 경제적 영역에서 문화적 영역으로까지 확장하여 논의하고 있다. 이 점에서 로버트슨의 세계화 논의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에 속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심성과 의식(이런 심성과 의식은 개인적 삶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세계적 삶의 경험 중 일부이기도 하다)의 형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버트슨은 세계화의 소국면에 따라 자본주의의 전체 역사를 다섯 단계로 구분할 뿐 아니라 퇴니에스의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라는 범주를 전 지구적 공동사회와 전 지구적 이익사회로 확장하여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 사회학 및 역사학 논의를 세계화라는 범주에 맞추어 재정립하고 확장한다.
    또한 로버트슨은 사회과학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중의 하나인 보편주의-특수주의 쟁점이나 여성과 젠더 문제를 세계화와 정체성과 관련하여 다룬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의 논지가 가장 빛나는 영역은 세계화와 문화 또는 문명을 다루는 부분이다.
    로버트슨은 문명이라는 것이 세계화 연구의 중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문명이란 양식 있는 우월한 인간들의 도덕적 감성이라는 통념적 의미가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되고 전 지구적 국가 체계(그것의 법적 표현이 국제법으로 나타났다)에 스며들고 있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문명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유럽의 패권 국가들이 비유럽 국가에 강압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라는 로버트슨의 주장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런 문명이 바로 유럽 중심의 ‘국제사회’에 편입할 수 있는 입장권이라고 지적한다.
    보통 유럽 중심주의를 경제 및 정치의 영역(제국주의나 식민주의 등)에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로버트슨은 문명과 공손함이라는 문화적 용어를 통해 전 지구화된 세계에 속한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의식 속에서 서구 중심적 개념의 내면화 과정을 잘 살피고 있다.
    특히 로버트슨이 일본의 전통적이고 토속적인 종교에 스민 전 지구성과 보편성의 요소를 날카롭게 파악하여 다루는 부분에서 그의 예리한 통찰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로버트슨은 세계화에 관한 수많은 논자의 주장을 자기 나름의 체계에 편입시키고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그런 논자 중에는 뒤르켐이나 짐멜 같은 고전 사회과학자들도 있고, 아롱, 헤인츠, 파슨즈 같은 전후의 선구적 사회학자들도 있으며, 맥루한, 샬린스, 쿠디히, 카볼리스, 보드리야르 같은 그의 동년배 학자들도 있다. 또 그가 다루는 영역도 사회학을 넘어 경제학, 역사학, 인류학, 문화과학 등 다양하다. 로버트슨이 세계화라는 주제를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넓이와 깊이로 다루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마지막으로 로버트슨은 세계화 추세와 함께 근본적인 것 찾기라는 현상도 실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전 지구적인 것과 토착적인 것이라는 이분법 사이의 관계를 전 지구적으로 융합된 사상이라는 맥락에서 서로 대치되는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상대주의적이고 개별 사회와 개인들의 자율적인 과정을 옹호한다. 그는 이것을 보편성의 자기중심주의와 자기중심주의의 보편주의라는 이중의 과정이라고 파악한다. 이렇게 본다면 최근 세계화가 초래한 해악에서 벗어나는 방안으로 지역주의를 선택하는 것이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로버트슨의 논의에서 유추할 수 있다.
    로버트슨은 세계화 논의에서 개별 사회와 국가 그리고 개인의 삶에 대한 다원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보편적 기준과 가치를 추구하려 한다는 점에서 총체적 인식을 추구한다. 로버트슨이 이 책에서 제시한 논점과 아이디어는 학문적 영역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 한국연구재단과 읽을 수 있는 책이 되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주신 한국문화사의 이지은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역자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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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경상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마르크스21》을 편집하고 있다. 저서로는 《왜 우리는 더 불평등해지는가》(바다출판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강탈국가 이스라엘》(책갈피), 《좀비 자본주의》(책갈피), 《중국경제》(서울경제경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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